鎌倉大仏と研究の"曼荼羅"
文学部民族学考古学専攻 佐藤孝雄教授
2018/05/29

佐藤教授は、人と自然の関係史を読み解くべく、シベリアや日本列島北部を主たるフィールドに、遺跡から出土する動物骨や貝殻の分析に取り組む考古学者。また、「露座の大仏」として名高い鎌倉大仏を本尊に仰ぐ高徳院(神奈川県鎌倉市長谷)の住職でもあります。大学教員、考古学者、住職という多彩な顔を併せ持つ教授に、その経歴や活動について伺いました。
二つの仕事を始めるまで
動物考古学を専門とし、シベリアや日本列島北部で発掘調査を重ねてきた佐藤教授。生き物への関心は、鎌倉に生まれ育つなか育まれたようです。
「鎌倉で自然に囲まれて育ちましたから、幼い頃より生き物には関心がありました。物心つく頃より昆虫採集やザリガニ捕りに熱中し、中学生の頃には、ハゼやフグ、ウミウシなど、潮だまりで捕らえた生き物を自宅の水槽で飼っていました。歴史も好きでした。動物考古学に惹かれたのは、多少なりとも、幼少期の興味関心が関係しているのかもしれません」

鎌倉のシンボルといえば、露座の大仏像。創建から今年で765年目。露仏として500年以上を経てなおほぼ原型を保ち続けるこの像は、国宝にも指定されており、今日国内外の仏教徒の信仰を集めています。教授はこの大仏像を本尊に仰ぐ高徳院の住職でもあります。2010年11月の訪日時、同院を再訪されたオバマ前アメリカ合衆国大統領の接遇に当たられたのも、他ならぬ佐藤教授です。どのような経緯で高徳院の住職となられたのでしょうか。

オバマ前アメリカ合衆国大統領来日時に©Akihito Nakanishi, U.S. Embassy, Tokyo
「特段のエピソードはありません。先住を務めていた祖父の跡を継ぎました。1998年に父が他界したのを受け、高齢の祖父を支えるべく、前任校の教員を務めながら僧籍を取得。祖父が他界した後、大仏像の創建750周年に当たる2002年を機に、住職を拝命しました」

考古学者としての視点
「大学教員と住職を兼務する私を、しばしば“二足のわらじを穿いている”と評す方もおられますが、そうした方は、概して二つの仕事を掛け持つことに批判的なのかもしれません(笑)。実際、若い頃は、私自身もそうでした。二つの仕事を両立させることに苦しみ、どちらかを投げ出してしまいたいと思う時期もありました。文学部に所属しながら自然科学とも分かち難く結びつく研究に従事してきたためなおのこと、はじめは、確たる証左に基づいて論理を展開する大学での仕事と観念を説くお寺での仕事が相入れない業のようにも感じていました。けれども、最近では、それら二つの仕事にさほどの隔たりはなく、むしろ両者が矛盾なく結びつき、お互いに補完し合って、自身を支えてくれているようにも感じています」
異なるように思える二つの仕事は、どのように結びついているというのでしょうか。佐藤教授の考古学者としての活動、研究の視点を伺うにつれ、その疑問は少しずつ解けていきます。
「分野によらず、今日、多くの研究者は、西洋近代科学によって築かれた知の体系を超えることを模索してい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一神教の思想にも根ざす西洋近代科学では、『自然』と『文化』、『人』と『動物』を区別し、それぞれについて研究する専門分野を確立してきました。今日の大学も、基本的にその学問体系に則り学部・専攻などが構成されています。けれども、『自然』と『文化』、『人』と『動物』は、本来、相互に分かちがたく結びつき、それらを別個に扱う縦割りの研究のみでは、実態を把握し得ない事象でもあると思います。
先住民の文化・思考法に接することは、その点に気づきを与えてくれます。例えば、長年北海道をフィールドとしてきた私には馴染み深いアイヌの人々。彼らは自ら獲得する動物を、さまざまな善神の化身と捉えています。また、北米北西沿岸の先住民達にとって、動物はトーテム、つまり自らの出自、祖先とも結びつく存在に他なりません。先住民の神話を研究したC. レヴィ=ストロースは、西洋の文明人とは根本的に異なる彼らの知識体系を“野生の思考”と呼びました(Lévi-Strauss 1962)」
「もっとも、異なる事象を結びつける思考法は、程度の差こそあれ、先住民のみならず西洋近代科学を享受する文明人にも認められます。特に文学・芸術はある面そうした思考によって支えられています。例えば、文学表現によく用いられる隠喩・換喩には、分けてもそのことが当てはまるでしょう。一例を挙げるなら、“雪の肌”、“薔薇の微笑み”などのように、隠喩は異なる事象を関連づける思考に支えられています。国会議員を“金バッジ”、ヤクザの幹部を“銀バッジ”などと呼ぶ換喩表現も同様です。
この点も踏まえると、異なる事象間に関連性を見出す流動的な知性、B. ラトゥールや中沢新一先生らが説く“対称性思考”(cf. Latour1991、中沢2004)は、本来、ホモ・サピエンスに等しく備わり、心の基体もなしていることに気づかされます。だとすれば、人の営みに関わるいかなる研究も、西洋近代科学が作り出した既存の枠組みを超え、領域横断的かつホリスティックに取り組まざるを得なくなります」

「幸いにも、人と動物との関係史について研究を続けるなか、私は、これまで異分野の方々との協業を数多く重ねてきました。そればかりか、ここ10年ほどは、地質学や地形学、生物学、遺伝学、解剖学、化学、物理学、工学に至るまで、多様な分野の研究者からなる学際的チームを指揮する機会にも恵まれました。異分野の研究者と学際的な研究を重ねれば重ねるほど、“我々はどこから来たのか 我々は何者か 我々はどこへ行くのか”という、かのポール・ゴーギャンの問いにも答えるべく総合的かつ多角的に研究を進めることが、考古学・人類学には不可欠であると痛感させられます」
Latour B. 1991 Nous n'avons jamais été modernes : Essai d'anthropologie symétrique. Paris, La Découverte,
Lévi-Strauss C. 1962 La Pensée sauvage. Paris, Plon
中沢新一 2004 対称性人類学. 東京: 講談社.
大仏像と“研究の曼荼羅”
学際性・総合性を志向する佐藤教授の研究姿勢は、大仏像を巡る調査・研究にも活かされています。佐藤教授は大仏像が多様な学問の研究対象となることに、「“曼荼羅”を見る感も抱く」と語られます。その語りに耳を傾けると、大学教員と住職の仕事の結びつきについて、一層理解が深まります。
「国宝に指定される貴重な文化財でもある大仏像は、露仏であるため、保存にことのほか注意を要します。また、本尊たる大仏像の現状を正しく把握し、保存に努めることは、住職としての重要な責務にも当たります。そのため2016年には、半世紀に一度の「健康診断」と称して、国庫補助金も得、大仏像について大規模な保存・調査事業も実施しました。
その一大事業も、大学教員・研究者を続けるなか培われた学際性・総合性への志向、学際的なチームを率いた経験、そしてその過程で得た人脈無くして、成し得なかったかもしれません。他大学の出身者ですが、2016年の保存・調査事業のリーダーを務めてくれた研究者は、なんと17年前、さる学会の大会事務局で協業して以来の知己。不思議な巡り合わせ、「縁」を感じます」

大仏像の内面に手を触れる佐藤教授

大仏像胎内の上部
「意外に思われるかもしれませんが、大仏像が造立された経緯は、よく分かっていません。北条得宗家の正史『吾妻鏡』には、その造立が始1252年(建長4年)8月17日に開始されたことが記されているばかり。諸説あるものの、原型作者も鋳造の経緯も、未だ不明なままなのです。その規模からして当時の国家的事業であったと考えられるにも関わらず、時の為政者たる北条得宗家がその詳細を記述していないことは、我が国の中世史における大きな謎とも言われます。それだけに、高徳院では大仏像の歴史に関しても、過去四半世紀に亘り多角的な調査・研究を重ねてきました」

庭石としても利用されている大仏殿の礎石群
「2000年・2001年に鎌倉市教育委員会の協力を得て実施した境内の発掘調査では、鋳造法や創建当初の様子を窺う上で重要な考古学的成果も得られました。確認された遺構群から、大仏像が紛れもなく今日も座すその場で鋳上げられたこと、創建当初には堂宇(大仏殿)に覆われていたことが確認されたのです。また、2016年の国庫補助事業に先立っては、理化学的・工学的な調査も数多く試みました。そして、多様な調査・分析を進め、大仏像がいかに多くの学問分野の研究対象となり得るかも再確認するなか、『大学』と『お寺』での仕事の隔たりは、次第に小さく感じられるようになりました。
実際、大仏像を対象とし得る研究もおよそ大学で講じられているほとんどの学問分野に及びます。「過去」と「未来」、「自然」と「文化」を貫く2軸を設け、その交点に大仏像を置いたとき、周囲に配置される諸学は、あたかも“曼荼羅”をなすようにも見えてきます(図1)」


http://www.kotoku-in.jp/casting.html
お寺に暮らしてきた余禄
佐藤教授は、お寺に生まれ、暮らしてきたこと、さらに仏教徒として育ったことも、今日、大学教員・研究者として抱くに至った視座に少なからず影響を及ぼしていると語られます。その語りに耳を傾けると、「大学とお寺での仕事にさしたる隔たりはない」という佐藤教授の真意に迫ることができます。
「自身の研究視点に総合性が育まれていったことには、お寺に生まれ育ち、仏教に親しんできたことも少なからず関係しているような気もします。同じ世界宗教でも、西洋近代科学が根ざす一神教と、諸神・諸仏を認める仏教とでは、思考法が大きく異なります。輪廻転生を説く仏教思想では、解脱に達しない人が動物に生まれ変わることも想定されており、それゆえに生きとし生けるものへの慈しみが説かれます。そこには、『人』と『動物』の分かち難い結びつきが認められます。さらに言えば、仏教には『自己』と『他者』の区別もありません。『ジャータカ』(釈迦の前世譚)に説かれる“捨身飼虎”はそうした思考をよく表す逸話でしょう」
「先に紹介した中沢新一先生は、それらの特徴にも着目し、仏教思想を“最高度に発達した野生の思考”と評価され、仏教を大宗教の中にあって唯一、“対称性思考”の可能性を追求することに挑んだ先駆者とも位置づけられています。こうした評価にも鑑みるなら、お寺に生まれ育ち、仏教の教理にも親しんできたことも、研究者としての私をして、多角性、総合性を志向させるに至った一因なのかもしれません」

異なる事象に関連性を見出すことの大切さ
多様な経験を踏まえ、佐藤教授は今学生に何を一番伝えたいと思っているのでしょうか。インタビューの締めくくりにこの点についても伺いました。
「考えてみれば、仏教思想で重んじられる“縁”も、異なる事象に共通性を見出す思考と捉える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
高徳院は、縁あって過去15年、現代版の“てらこや活動”とも言える教育ボランティアにも取り組んできました。はじめは社会の公器たる寺院の義務感から始めたこの活動も、今では、大学教員・研究者としての視野も広げ、自身を支えてくれる営みに感じています。
大学教員となってかれこれ四半世紀、住職となってからも15年を経過した今感じるのは、異なる事象に関連性を見出すことの大切さに他なりません。それだけに、慶應義塾で学ぶ学生諸君には、専門知を深めつつも、幅広い視野も身につけて欲しいと願っています」
佐藤 孝雄(さとう たかお)
1986年慶應義塾大学文学部卒業、1988年同大学院文学研究科修士課程修了、1994年同研究科博士課程単位取得退学。
2001年同文学部助教授、2009年より同教授、2011年より同大学院文学研究科委員を兼任、2015年より文学部長補佐。
2000年鎌倉大仏殿高徳院副住職、2002年より同住職。
2009年 NPO法人「鎌倉てらこや」顧問、NPO法人「全国てらこやネットワーク」顧問
※所属・職名等は取材時のもの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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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쿠라 대불과 연구의 "만다라"
문학부 민족학 고고학 전공 사토 타카오 교수
2018/05/29

사토 교수는, 사람과 자연의 관계사를 읽어내기 위해, 시베리아나 일본 열도 북부를 주된 필드에, 유적으로부터 출토하는 동물 뼈나 조개의 분석에 임하는 고고학자. 고명한 가마쿠라 대불을 본존으로 바라보는 다카토쿠인(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 하세)의 주직이기도 합니다.
두 가지 일을 시작할 때까지
동물 고고학을 전문으로 해, 시베리아나 일본 열도 북부에서 발굴 조사를 거듭해 온 사토 교수.
“가마쿠라에서 자연에 둘러싸여 자랐기 때문에, 어릴 적보다 생물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 조수 덩어리로 잡은 생물을 자택의 수조에서 기르고 있었습니다. 역사도 좋아했습니다.

가마쿠라의 상징이라고 하면 노좌의 대불상. 창건으로부터 올해로 765년째. 노불로서 500년 이상을 거쳐 여전히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이 동상은 국보로도 지정되어 있으며, 오늘날 국내외 불교도의 신앙을 모으고 있습니다. 교수는 이 대불상을 본존으로 바라보는 고덕원의 주직이기도 합니다. 2010년 11월의 방일 때, 동원을 재방문한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접대에 맞은 것도, 다름없는 사토 교수입니다.
가마쿠라 대불과 연구의 "만다라"
문학부 민족학 고고학 전공 사토 타카오 교수
2018/05/29

사토 교수는, 사람과 자연의 관계사를 읽어내기 위해, 시베리아나 일본 열도 북부를 주된 필드에, 유적으로부터 출토하는 동물 뼈나 조개의 분석에 임하는 고고학자. 고명한 가마쿠라 대불을 본존으로 바라보는 다카토쿠인(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 하세)의 주직이기도 합니다.
두 가지 일을 시작할 때까지
동물 고고학을 전문으로 해, 시베리아나 일본 열도 북부에서 발굴 조사를 거듭해 온 사토 교수.
“가마쿠라에서 자연에 둘러싸여 자랐기 때문에, 어릴 적보다 생물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 조수 덩어리로 잡은 생물을 자택의 수조에서 기르고 있었습니다. 역사도 좋아했습니다.

가마쿠라의 상징이라고 하면 노좌의 대불상. 창건으로부터 올해로 765년째. 노불로서 500년 이상을 거쳐 여전히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이 동상은 국보로도 지정되어 있으며, 오늘날 국내외 불교도의 신앙을 모으고 있습니다. 교수는 이 대불상을 본존으로 바라보는 고덕원의 주직이기도 합니다. 2010년 11월의 방일 때, 동원을 재방문한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접대에 맞은 것도, 다름없는 사토 교수입니다.
어떤 경위로 고덕원의 주직이 되었습니까?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방문일시© Akihito Nakanishi, US Embassy, Tokyo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습니다. 원주를 맡고 있던 할아버지의 흔적을 이어 왔습니다. 1998년에 아버지가 타계한 것을 받고, 고령의 할아버지를 지지하기 위해, 전임교의 교원을 맡으면서 승적을 취득.

고고학자로서의 관점
「대학교원과 주직을 겸무하는 나를, 자주“2족의 짚을 입고 있다”라고 평가하는 분도 있습니다만, 그러한 분은, 일반적으로 2개의 일을 걸는 것에 비판적인 것일지도 모릅니다(웃음).실제, 어렸을 때는, 나 자신도 그랬습니다 2개의 일을 양립시키는 것에 시달리고, 어느 쪽인지를 던져 버리고 싶은 시기도 있었습니다. 논리를 전개하는 대학에서의 일과 관념을 전하는 절에서의 일이 어울리지 않는 업처럼 느끼고 있었습니다만, 최근에는, 그 2개의 일에 그다지의 격차는 없고, 오히려 양자가 모순없이 연결되어, 서로 보완해, 자신 를 지지해 주고 있는 것처럼 느끼고 있습니다.”
다르게 보이는 두 가지 일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 것입니까.
“분야에 관계없이 오늘날 많은 연구자들은 서양 근대 과학에 의해 구축된 지식 체계를 넘어서는 것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각각에 대해 연구하는 전문 분야를 확립해 왔습니다.오늘의 대학도, 기본적으로 그 학문 체계에 따라 학부·전공 등이 구성되어 있습니다만, '자연'과 '문화', '사람'과 '동물'은, 본래, 서로 엇갈리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 그들을 별개로 취급하는 세로 할인의 연구만으로는, 실태를 파악할 수 없는 사건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 아이누의 사람들. 그들은 스스로 획득하는 동물을 다양한 선신의 화신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레비 - 스트로스는 서구 문명인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그들의 지식 체계를 "야생의 사고"라고 불렀다 (Lévi-Strauss 1962)
“가장 다른 사건을 연결하는 사고법은, 정도의 차이야말로, 원주민뿐만 아니라 서양 근대 과학을 누리는 문명인에게도 인정됩니다. 특히 문학·예술은 어느 면 그러한 사고에 의해 지지되고 있습니다. 어. 일례를 든다면, “눈의 피부”, “장미의 미소” 등과 같이, 은유는 다른 사건을 관련짓는 사고에 지지되고 있습니다. 배지”, 야쿠자의 간부를 “은 배지” 등이라고 부르는 환유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점도 감안하면, 다른 사건간에 관련성을 찾아내는 유동적인 지성, B. 라투르와 나카자와 신이치 선생님이 설교하는 "대칭성 사고"(cf. Latour 1991, 나카자와 2004)는 본래 호모 사피엔스와 똑같이 갖추어져 마음의 기체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다행히 사람과 동물과의 관계사에 대해 연구를 계속하는 가운데, 나는 지금까지 이 분야의 분들과의 협업을 많이 거듭해 왔습니다. 부학, 화학, 물리학, 엔지니어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로 구성된 학제간 팀을 지휘할 수 있는 기회도 축복받았습니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고 하는, 의 폴·고갱의 질문에도 대답하기 위해서 종합적이고 다각적으로 연구를 진행시키는 것이, 고고학·인류학에는 불가결하다고 통감하게 됩니다”
Latour B. 1991 Nous n'avons jamais été modernes : Essai d'anthropologie symétrique. Paris, La Découverte,
Lévi-Strauss C. 1962 La Pensée sauvage. Paris, Plon
나카자와 신이치 2004 대칭성 인류학. 도쿄 : 코단샤.
대불상과 “연구의 만다라”
학제 성·종합성을 지향하는 사토 교수의 연구 자세는, 대불상을 둘러싼 조사·연구에도 활용되고 있습니다.사토 교수는 대불상이 다양한 학문의 연구 대상이 되는 것에, ““만다라”를 보는 감도 안는다”라고 말해집니다.
“국보로 지정되는 귀중한 문화재이기도 한 대불상은 노불이기 때문에 보존에 주의를 요합니다. 의 중요한 책무에도 해당합니다.그 때문에 2016년에는, 반세기에 한 번의 「건강 진단」이라고 칭해, 국고 보조금도 얻고, 대불상에 대해서 대규모 보존·조사 사업도 실시했습니다
. 업도, 대학교원·연구자를 계속하는 가운데 길러진 학제성·종합성에의 지향, 학제적인 팀을 이끈 경험,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은 인맥 없게 해, 이룰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신자입니다만, 2016년의 보존·조사 사업의 리더를 맡아 준 연구자는, 무려 17년 전, 학회의 대회 사무국에서 협업한 이래의 지기.

대불상의 내면에 손을 대는 사토 교수

대불상태내 상부
「의외로 생각될지도 모릅니다만, 대불상이 조립된 경위는, 잘 알고 있지 않습니다. 호조 득종가의 정사 「아즈마 거울」에는, 그 조립이 시작 1252년(건장 4년) 8월 17일에 개시된 것이 기록되고 있을 뿐. 규모에서 당시의 국가적 사업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의 위정자인 호조 쿠네무네가 그 상세를 기술하고 있지 않은 것은 우리 나라의 중세사에 있어서의 큰 수수께끼라고도 합니다.

정석으로도 이용되고 있는 대불전의 초석군
“2000년·2001년에 가마쿠라시 교육위원회의 협력을 얻어 실시한 경내의 발굴 조사에서는, 주조법이나 창건 당초의 모습을 엿보는데 중요한 고고학적 성과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확인된 유구군으로부터, 대불상이 틀림없이 오늘도 자리잡고 의 장소에서 주조된 것, 창건 당초에는 당우(대불전)에 덮여 있었던 것이 확인되었습니다.또, 2016년의 국고 보조 사업에 앞서는, 이화학적적·공학적인 조사도 많이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조사·분석을 진행했습니다. 어, 대불상이 얼마나 많은 학문 분야의 연구 대상이 될 수 있을지도 재확인하는 가운데, 「대학」과 「절」에서의 일의 분리는, 점차 작게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실제, 대불상을 대상으로 할 수 있는 연구도 대략 대학에서 강조 되고 있는 대부분의 학문 분야에 걸친다. 「과거」와 「미래」, 「자연」과 「문화」를 관철하는 2축을 마련해, 그 교점에 대불상을 놓았을 때, 주위에 배치되는 제학은, 마치 “만다라”를 이루는 것처럼 보입니다(그림 1)”


http://www.kotoku-in.jp/casting.html
절에 살았던 여록
사토 교수는, 절에 태어나 살아 온 것, 한층 더 불교도로서 자란 것도, 오늘, 대학 교원·연구자로서 안고에 이른 시좌에 적지 않고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해집니다.
“자신의 연구 시점에 종합성이 길러져 온 것에는, 절에서 태어나 자라, 불교에 친숙해 온 것도 적지 않고 관계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도 합니다.같은 세계 종교로 심지어 서양 근대 과학이 뿌리 내리는 일신교와 제신 · 여러 부처를 인정하는 불교와는 사고법이 크게 다릅니다. 바뀌는 것도 상정되고 있어 그러므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자비가 전해집니다. 그렇게 말하면, 불교에는 『자기』와 『타자』의 구별도 없습니다.
“처음에 소개한 나카자와 신이치 선생님은, 그 특징에도 주목해, 불교 사상을 “최고도로 발달한 야생의 사고”라고 평가되어 불교를 대종교 안에 있어 유일, “대칭성 사고”의 가능성을 추구하는 데 도전한 선구자 모두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평가에도 감안한다면, 절에서 태어나 자라 불교의 교리에도 친숙해진 것도, 연구자로서의 나를 하고, 다각성, 종합성을 지향시키기에 이른 일인일지도 모릅니다」

다른 사건과 관련성을 찾는 것의 중요성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사토 교수는 지금 학생에게 무엇을 제일 전하고 싶은 것일까요. 인터뷰의 마무리에 이 점에 대해서도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불교사상에서 중점을 둔 ‘인연’도 다른 사건에 공통성을 찾는 사고로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
하고의 시야 도 넓혀, 자신을 지지해 주는 영업에 느끼고 있습니다. 에 관련성을 찾아내는 것의 소중함에 다르지 않습니다. 그것만큼, 게이오 대학에서 배우는 학생 여러분에게는, 전문지를 깊게 하면서도, 폭넓은 시야도 몸에 익혀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사토 타카오
1986년 게이오 요시카쿠 대학 문학부 졸업, 1988년 동 대학원 문학 연구과 석사 과정 수료, 1994년 동 연구과 박사 과정 단위 취득 퇴학.
2001년 동문학부 조교수, 2009년부터 동 교수, 2011년부터 동 대학원 문학 연구과 위원을 겸임, 2015년부터 문학부장 보좌.
2000년 가마쿠라 대불전 고덕원 부주직, 2002년부터 동주직.
2009년 NPO법인 「가마쿠라 테라코야」고문, NPO법인 「전국 테라코야 네트워크」고문
※소속・직명 등은 취재시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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