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전쟁』의 이승만우상화를 어떻게 봐야 하나?
취약국가 대한민국의 국가건설은 주인공이 없는 국가건설
개인주의·자유주의에 대한 이승만의 인식 수준 형편없어
분단'획책'이라는 백낙청이나 운동권386들의 헛소리들은 다 공상·망상
남북합작·평화통일은 그당시 국내외정세 상 공상
6.25전쟁은 김일성-박헌영의 필생사업
그것은 모택동따라하기, 반제·반식민지 민족해방통일전쟁
6.25전쟁에서 적화되지 않은게 천운
건국의 주인공/영웅을 갈구하는 보통사람들의 소망생각 수군작 서사제도연구자
입력 2024.02.14
출처: 허현준의 '굿모닝 대한민국'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관람객 24만을 돌파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가수 나얼이 『건국전쟁』을 관람하고 포스터를 올렸다가 악플에 시달리고 가수 강원래가 가족과 함께 영화관람을 위해 극장에 갔다가 장애인 시설이 없어 입장하지 못했다는 뉴스까지 전해진다.
당시 법무부 장관이던 한동훈이 작년 7월 대한상공회의소 주최 제주포럼 정책강연에서 발언했던 토지개혁에 관한 강연 내용도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본지 기사 참조: 한동훈 법무장관의 '광폭행보' 그리고 역사인식)
또한 13일 대통령실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최근 설 연휴 중 참모들에게 윤석열 대통령도 "역사를 올바르게 알 수 있는 기회"라고 이 영화를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윤 대통령은 2022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동포 간담회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을 비롯한 민족 선각자들이 국권 회복을 위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고 말했으며, 지난해 1월 스위스 방문 때도 "이승만 대통령은 1933년 제네바에서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대한 독립을 탄원했다"고 언급했다.
그렇다면 과연 『건국전쟁』이 불러일으킨 이승만우상화는 정당할까? 이에 본지는 몇개의 물음들 및 그에 대한 답변으로, 이에 대한 생각을 전하고자 한다. 읽는이들 여러분의 관람에 참조가 됐으면 한다.
※편집자 주: 별도의 출처표기가 없으면, 이택선의 『취약국가 대한민국의 탄생』으로부터의 인용들임.

Q1. 첫째, 이승만이 나라를 세웠나?
A1. 이택선의 『취약국가 대한민국의 탄생』에 따르면, 아님: "취약국가 대한민국의 국가건설은 주인공이 없는 국가건설이라는 유형으로 진행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해서 남한 단독정부를 수립한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다.
"대한민국은 ...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와 제헌헌정등 임시정부(임정)의 상징과 제도를 계승함으로써 임시정부의 상징적인 정통성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임시정부출신들이 상층부를 형성했던 군 창설 초기"
"다수의 임시정부출신 인사들과 중도파 인사들은 점차 대한민국의 건국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국가건설에 참가"
"당시 제헌국회에서 한민당 소속으로 당선된 의원들 가운데 임시정부출신의 인물들은 토지개혁에 자발적으로 협조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런 사실들은 그당시 <네이션스테이트빌딩nation-state building·국민국가건설·건국> 과정에서 부족한 인적 물적인 인프라스트럭쳐 탓에, 임시정부라는 공동자산이 그나마 동원가능한 인적 이데올로기 자원으로 중요했음을 말해 준다.
오늘 날을 기준으로 해방직후를 평가해서 밤이면 빛이 없는 북한과 구별되는 밤에도 빛나는 대한민국을 건국했다고 그 업적을 과대포장하는 것은 아닌가?

북조선 vs 한국의 밤불빛풍경은 과대포장이 아니다. 지난 70여년간, 초기 국가자원 측면에서 수준 차가 크게 났던, 남과 북 두개의 정치체가, 그뒤 경제성장에서 우열이 뒤집어진다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다. 따라서 그 과정·절차에서 그리고 현재의 실적·업적·성적·공적merit에서, 두 국가의 실재적인 차이는 과대포장이 아니고, 학술적으로 논증돼 있다.
설사 대한민국 건국의 공이 있다하더라도 이는 독립의 의지를 꺽지않은 민중과 독립운동가들의 노력이라고 봐야지 이승만 초대 대통령 개인을 건국 대통령이라고 추앙하는 것은 대한민국을 고려나 조선같은 왕조국가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앞의 답변1에서 "주인공/영웅이 없는 국가건설"이었다고 했는데, 건국의 진짜 주인공/영웅은 사람이 아니라 6.25전쟁이었지 않을까? 6.25전쟁에서 패배하지 않음으로써, 네이션스테이트빌딩이 굳어진 것은 천재일우이고 천만다행이지 않을까?
"이승만 초대 대통령 개인을 건국 대통령이라고 추앙하는 것은 대한민국을 고려나 조선같은 왕조국가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이것은 근대교양시민계급이 형성되지 못한 모든 후진나라들 평균일반의 보통사람90%의 집단주의정서이고, 불가피한 것이지 않을까?
Q2. 김구, 김규식, 여운형 등의 통일정부를 향한 노력이 역사적으로 단죄받아야 할 성질의 것인가?
A2. 아니다. 김구는 김구대로, 김규식은 김규식대로, 여운형은 여운형대로, 해방공간에서 각자의 정치관에따른 그들의 실천들은 인정받아야 한다. 그들을 단죄하겠다는 이들은, 다원주의가 뭔지 모르는, 선악2분법에 사로잡힌 답정너들이다.
이승만 개인의 야심이 이들의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게 만든 것 아니었던가?
첨부파일 : 2017 정승현_이승만과 한국 자유주의.pdf
개인주의·자유주의에 대한 이승만의 인식 수준을 파헤친 윗 논문이라든가, 이승만이 <일민주의>를 들고나온 것을 보면, 공적인것respublica과 사적인것resprivata을 이승만이 구별분리하지 못했다고 보여진다.
따라서 이승만의 경우, 사적인 야심 자체를 곧 공적인 국가적 민족적인 공동선으로 여겼다고 보여진다. '내가 곧 국가이고 민족이다!'
이승만의 자유주의는 가짜이다. 이런 이승만을 자유주의의 아버지라 여기는 보통사람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렇게 만든 김덕영같은 지식인들이 문제라면 문제다.
이런 가짜자유관은 비단 이승만만 그런게 아니라, 멀리로는 박영효·유길준부터 장준하··함석헌·박정희를 거쳐, 노무현·문재인 및 유시민·김어준·조국에 이르기까지, 한국 리더·지식인·엘리트들 거의 대다수의 자유주의 또는 자유관은 가짜이다.
그러나 보통사람들은 물론이고, 지성들 조차도 이런 가짜자유(주의)를 자유민주주의라고 여긴다. 전체주의가 자유주의의 모습을 하고 있는 곳이 한국이다.

이뿐만 아니라, 해방공간 대혼란기에 이승만의 여러 정치적인 라이벌들이 암살당했다. 이승만에게 상당한 정치적인 유리함을 가져다 준 이들 암살들은 거의다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여기에 과연 이승만이 전적으로 무관할까?
이승만이 국제정세를 꿰뚫는 혜안을 발휘하여 김구 김규식 여운형 등과 힘을 합쳐 노력했다면 통일정부의 수립은 가능하지 않았을까?
대혼란기 해방공간 당시 남북정치리더들이 제각각 스스로의 관점이 "국제정세를 꿰뚫는 혜안"이라고들 여겼을 터이다. 이들 다원적인 혜안들 가운데 이승만 보다 더 나은 것들이 있었는데, 예컨대 여운형의 혜안같은,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암살당했다. 결과적으로는, 그들 가운데 이승만의 혜안이 살아남게 됐다.

당시 국내외정세 상 <통일정부수립>은 어느 백일몽·공상·망상이었다. 왜냐하면 김일성-박헌영이 이미 전쟁결정을 했기 때문이다. 이 점은 확고부동하다. 이것을 꿰뚫어본 이들 가운데는 그당시 미군정 하지와 이승만이 있었다. 따라서 이런 전쟁이 눈앞에 닥쳐있음을 김구·김규식·여운형 등은 알고도 모르쇠했든가, 아니면 스스로들의 판타지 속에서 외면했던가일 것이다. 따라서 이들과 이승만 사이의 "힘을 합친 노력"은 불가능했다고 보여진다.
이승만이 권력에 대한 야망때문에 분단을 획책한 측면은 없는가?
분단'획책'이라는 낱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획책> 따위를 할 건덕지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김일성-박헌영이 이미 전쟁결정했기 때문에, 분단을 <획책>한다는 것 자체가 성립불가능했다. 선택지는 딱 두개였다: 북조선이 적화통일 하든가, 아니면 자동빵으로 분단으로 가든가. 이것 말고는 딴 수가 없었다. 곧 <남북합작·평화통일>은 그당시 국내외정세 상 공상이었다.
전쟁없는 평화통일을 바랬던 이들이 그당시 다수의 바램인게 맞지만, 또 말하지만, 김일성-박헌영 및 북로당원들과 남로당원들에게는 그딴 것보다 무조건 전쟁에의한 통일이 정답이었다. 이들이 전쟁을 '획책'했고, 이들 앞에 그 어느 누구의 방안도 사실상 무쓸모였다. 따라서 전쟁이 없어야 평화통일이 되는데, 전쟁을 했고, 전쟁을 했으면 승리해서 적화통일이라도 했어야 하는데, 실패했고, 따라서 결론은 분단인 것이다.
분단을 두고, 백낙청이나 운동권386들이 하는 '획책' 등의 헛소리들은 다 공상·망상에 가득한 원한·원망·르쌍티망ressentiment이라고 보면 된다.
정치가가 권력야망이 있음은 당연한 것이다. 문제는 앞에서 얘기했듯이, 이승만(을 비롯 그당시 리더들 전부다) 공적인것과 사적인것을 동일시하거나 또는 <천리를 앞세우고 인욕을 뒤로했다·존천리 멸인욕>했다. 시쳇말로, "공과 사가 다 망해버린 것·공사다망"했던 것이다.
Q3. 한국전쟁의 책임에서 이승만이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A3. 6.25전쟁은 그당시 정치공동체 전체에게 닥친 비극이었다. 그러나, <6.25전쟁은 김일성-박헌영의 필생사업이었다>고 믿는다면, <6.25전쟁이 어느 필연이었다>고 믿는다면, <김일성-박헌영의 확고한 전쟁의지 앞에서 전쟁방지를위한 모든 분투들이 도루묵이었다>는 것을 믿는다면, <6.25전쟁을 '일으킨 책임'만큼은 이승만에게 없다>는 것이다.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겠다며 허풍을 떨던 이승만이 북의 남침을 대비하지 못한 책임을 피할 수 있을까?
허풍 맞다. 그리고 남침대비조처가 부족했다. 그러나 그당시 한국이 어느정도로 <취약국가>였는 지를 안다면, 사실상 이승만정부가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그러나 전쟁 전의 《숙군작업》 같은 것은 군사전략 측면에서 가장 핵심적인 남침대비조처라고 평가받는다. 퉁쳐서, 그냥 6.25전쟁에서 적화되지 않은게 천운이었다. 하지만 공산전체주의자들이나 집단주의R국가진보들 곧 인민민주주의자들로서는 공산적화에 실패해서 민족통일을 못한 것이 뼈아픈 한일 것이다.
이승만이 한강교 폭파 전에 피난민의 진입을 막았고 이승만이 서울이 안전하다고 방송했다는 말이 사실이 아님을 발굴했다고 해서 이승만의 전쟁 책임이 면제되는 것인가?
6.25전쟁을 일으킨 책임을 이승만에게 물을 수 없고, 그에게 남침대비조처부족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이승만에게 물을만한 전쟁책임으로 남는 것이 뭐가 있을까?
단독정부 수립을 강행해서 근본적으로 전쟁의 씨앗을 잉태했고 김일성의 남침을 대비하지 못한 책임이 그리도 가벼운가?
단독정부수립강행은 <1947년 11월 14일 남북동시선거 유엔총회결의 및 1948년 2월 26일 남한단독선거 유엔총회결의>를 따른 것이다.
이 결정을 두고, 좌우대립이 격렬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넷》에 서술된 아래 내용을 보자.
남조선노동당 등 좌익세력은 미소 양군의 철수와 유엔을 배제한 전국총선을 주장하면서 선거를 거부했고, 무력을 통한 단선 저지 투쟁에 들어갔다. 김구·한국독립당과 김규식·민족자주연맹 세력은 남북지도자회담에 의한 통일국가수립 협상, 즉 납북협상을 통해 단독정부 수립을 저지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남한만의 5·10총선거는 예정대로 치러지게 되었다.
결론은, 김일성-박헌영의 전쟁확정이 전쟁의 씨앗이지, 이승만이 "단독정부 수립을 강행해서 근본적으로 전쟁의 씨앗을 잉태했다"고 볼 수는 없다.
한국전쟁의 참화 아래 이름없이 스러져간 영령들 앞에 과연 이승만은 떳떳할 수 있을까?
6.25전쟁의 제1전범은 김일성-박헌영이다. 이 둘이 6.25를 일으키지 않았어야 했다, 이게 중요하다. 하지만 그들은 모택동처럼, 반제·반식민지 민족해방통일전쟁을 통해, 조선인민을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억압·기만·착취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했다. 실패해서 다행이지만 말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일단 전쟁이 일어나면 "참화 아래 이름없이 스러져간 영령들"이 수를 헤아릴 수 없고, 그앞에 누구도 떳떳할 수 없다. 다만 후세들이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해야 한다.
Q4. 지금 우리가 누리는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이 오롯이 이승만이라는 국부의 덕택인가?
A4. 건국의 주인공/영웅을 갖고 싶어하는 보통사람들 90%의 소망생각이 이런 어설픈 의인화 스토리를 만들어야만 만족해하니까 그런 것이다. 사람형상으로 된 주인공/영웅을 갖고 싶어 하니까. 워싱턴, 케말 파샤, 모택동, 호치민 등등.
하지만, 취약국가 대한민국의 경우, <네이션스테이트빌딩/건국>에 그렇게 부를만큼 영웅적인 어느 사람캐릭터가 없다고 본다면, 반대로 전쟁이야말로 그 주인공/영웅이라고 본다면, 저런 생각안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생각방식은 정말로 극소수만 할 수 있는 생각이다.
통일정부의 수립 아래 전쟁과 학살 없이 더 큰 자유와 풍요를 누릴수도 있지 않았을까?
공상망상은 자유이고, 판타지소설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역사라는 것은 실재현실이고, 피와 땀과 죽음이 증거하는 바에 따르자면, 해방공간(1945~ 1950) 대혼란기에는 통일정부수립은 불능이었고, 분단'획책' 따위는 없었고, 그 제1원인은 김일성-박헌영의 전쟁'획책'이었다.
단독정부 강행과정에 자행된 학살과 김구 여운형의 암살, 이산가족의 아픔, 60년대 빈곤과 전쟁에 시달리며 희생된 국민을 현재 우리가 누리는 풍요를 기준으로 재단해서 이승만을 찬양해도 되는 것일까?
이승만찬양은 의인화된 주인공/영웅hero를 소망하는 보통사람정서같은 것이다. 박정희찬양숭배 또는 김일성찬양숭배랑 같다. 이걸 뭐라 할 거 없다고 본다. 그게 보통사람들이 바라는 거니까. 문제는 리더·지식인·엘리트들의 국가관-전쟁관-정치관-자유관-민주관이 문제이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의 감독 김덕영은, 공적지성이 결여된, 또다른 어느 포퓰리스트·대중인기영합주의자이다.
Q5. 4.19혁명 때 더 큰 희생을 치르지 않고 스스로 하야를 결단한 이승만을 높게 평가한다. 그러나 이를 높게 평가하기위해 전제되어야할 것은 국민들의 항거와 희생을 부른 이승만의 부정과 실정을 먼저 인정하는 것이어야지 그를 우상화하는 것이 아니다.
A5. 동의한다.
Q6. 이승만이 항일무장독립투쟁을 대립시하지 않고 본인의 외교독립운동과 보완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김구 안창호와 함께 보조를 맞췄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이승만의 천재성과 독립에 대한 노력, 국제정세를 읽는 현안과 자유민주주의에대한 선각자적인 면모를 영화를 통해 새삼 확인했다.
A6. 이택선의 책 속 논증에 따르자면, 해방공간 대혼란기의 네이션스테이트빌딩과정은, "항일무장독립투쟁을 대립시하지 않았고" 이승만의 "외교독립운동과 보완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김구 안창호와 함께 보조를 맞췄다"고 보여진다.
다만 이승만이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미군정의 미국식 의회주의 제도틀이 그런 절차적인 민주주의를 강제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승만 또한 비록 공사다망했으나, '부분적'으로는 절차적인 의회민주주의 교양상식은 지키려 했던 것이다.
Q7. 이승만의 이런 공과 장점은 모두 묻히고 독재자와 야심가로만 악마화하여 그리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이며 국부라고 미화하고 우상화하는 편향 또한 경계해야하지 않을까?
A7. 이승만찬양이건 이승만악마화이건, 둘 다 의인화된 주인공/영웅hero를 소망하는 보통사람정서같은 것이다.
박정희찬양숭배 또는 김일성찬양숭배랑 같다. 이걸 뭐라 할 거 없다고 본다. 문제는 리더·지식인·엘리트들의 국가관-전쟁관-정치관-자유관-민주관이 문제이다. 리더·지식인·엘리트들이 자기주관없이, 인문교양부실한채, 저런 대중적인 의인화정서에 덩달이치는 것이 문제이다.
한편으로는 대중들의 의인화 그림자놀이극은 그러라고 냅두고, 다른한편으로는 부단히 네이션스테이트빌딩의 역사성에대한 깊고 풍성한 자유평등한 시민교양상식을 리더·지식인·엘리트들이 앞장서서 발언행동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게 큰 문제이다.
스스로의 역사를 자기생각 갖고 해석할 역량이 부실빈약빈곤한, 한국의 리더·지식인·엘리트들 전반의 근대고전교양부실이 뼈아픈 문제이다.
※ 해방공간~ 유신독재까지, 한국자유주의의 파행의 역사
이택선 [취약국가 대한민국의 탄생] 발제
서사제도진화이론가, 철학자, 서예가, 디지털 아티스트, SVA 미술석사, 실험영화작가, 불어불문학 학사. 인류문명사·철학사·지성사·개념사 곧 '지식의 지식'에관한 메타철학이자 인공지능을위한 메타윤리학인 서사제도진화이론을 연구중임. https://www.facebook.com/sugunz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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