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이념성향 톺아보기⑦-2/4] 자유민주주의는 어떻게 탄생했나: 데모크라티아에대한 악평들 vs 호평들의 지성사
2천5백 여년간의 데모크라티아에대한 악평들
몇몇 데모크라티아에대한 호평들
아리스토텔레스, 중간계급 및 집단지성에 바탕한 데모크라티아를 찬양해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 정치철학은 3신분 포폴로 부르조아 피플주의·데모크라티아·자유주의의 시원이자 원조
갈등·불화·소란의 다원주의를 찬양한 마키아벨리
루쏘를 대표적인 데모크라티아 이론가로 보는 해석은 시대착오와 오독의 결과 수군작 서사제도연구자
입력 2023.12.27

이번 [정치이념성향 톺아보기⑦]은 글이 길다. 그래서 4개로 나누어서 연재한다. 연재순서는 아래와 같다. (순서 및 내용은 변경가능함) 오늘은 그 두번째이다.
<1/4> 자유민주주의는 어떻게 탄생했나: 피플의 분화 및 3종류의 피플주의
1. 피플이란 무엇인가? 그 역사적인 분화를 추적해보자
2. 학술용어·개념들은 반드시 지성사적으로 파악되어야만 한다
3. 피플주의의 3종류: 자유주의 vs 공산주의(또는 전체주의) vs 자유민주주의
<2/4>
4. 2천5백 여년간의 데모크라티아에대한 악평들
5. 몇몇 데모크라티아에대한 호평들
6. 루쏘 너 마저!
<3/4>
7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합쳐지다
<4/4>
8. 김민철의 아카데미즘·스콜라쉽의 어느 훌륭함
9. 중화문명의 <안민·양민·귀민·애민·휼민·구민·중민·위민·보민> 서사들은 과연 데모크라티아일까?
데모크라티아라는 학술개념은 그 역사 자체가 정리불가능할 만큼 파란만장한 어느 드라마이다.
첫째, 무엇보다 그 발명의 첫시점에서부터 데모크라티아는 악평으로 시작했다. 서양지성사 2500여년을 악평이 지배해왔던 것이다. 호평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극히 소수였다. 이처럼 데모크라티아를 악담하고, 혐오하고, 불신하고, 저주하고, 부정하고, 적대하는 숫자가 워낙 많고, 상대적으로 데모크라티아에 호의를 보이는 쪽수가 적다보니, 오늘날현재지금여기서도 데모크라티아를 부인·거부·비토하는 쪽은 이런 역사적으로 시효가 다한 악평들을 그 근거로 삼는다.
둘째, 데모크라티아를 찬성·찬양하는 쪽의 입장·관점·이론이 통일되어 있지 않다. 이것도 사람들을 헤깔리게 만들었다. 예컨대, 한편으로, 데모크라티아라는 것은, 직접민주주의라고, 인민직접통치라고, 인민일반의지의 지배라고 전체주의자들은 규정한다. 다른한편으로는, 데모크라티아라는 것은 자유민주주의라고, 시민민주주의라고 중도파들은 규정한다. 이처럼 데모크라티아에대한 해석들이 제각각이고, 서로가 서로를 야단치고, 꾸짖고, 혼내고, 나무래고, 비난하고, 비판하다 보니, 도대체 '뭐가 뭔지' 헤깔리게 되었다.
셋째, 학술장에서 형식민주주의·절차민주주의·숙의민주주의·다원민주주의·실질민주주의·다원민주주의 등등의 데모크라티아의 변이varition들이 넘쳐나다 보니, 도대체 '뭐가 뭔지' 갈수록 헤깔릴지 않을 도리가 없게 되었다.
이렇게 오늘날 데모크라티아에대한 이런저런 관점·입장·규정들이 서로 뒤섞이고, 각기 다른 입지점에서 다른 출발선에 서서,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거나 적대시한다. 서로가 서로를향해 '데모크라티아라는 건 그런게 아냐~'하면서 말이다.
오늘 글은 복잡다다한 그 드라마 가운데, 크게 <악평 vs 호평>만 대조비교해서, 현재액면상 귀결인 <리버럴 데모크라시>에 이르기 전까지의 역사를 살펴보도록 하자.
4. 2천5백 여년간의 데모크라티아에대한 악평들
아래는, 두권의 책, 곧 버나드 크릭 『옥스퍼드 베리 쇼트 인트로덕션 투 데모크라시』 및 김민철 『누가 민주주의를 두려워 하는가』에 쓰여진 글귀들 가운데 데모크라티아에대한 서양지성사의 악평·혹평들 일부를 모은 것이다.
4-1. 버나드 크릭 『옥스퍼드 베리 쇼트 인트로덕션 투 데모크라시』로부터 뽑아추린 악평들 일부
플라톤에게 데모크라티아란 철학이 아니라 독사doxa·의견·억측에 의한 지배, 곧 앎이 아니라 독사doxa을 따르는 지배였다. 단지 다수로 이루어진 떼거리일 뿐, 강력하고 에고주의적이며 변덕스럽고 일관성 없는 야수라는 식으로.
소련, 중국 그리고 그 연합국과 괴뢰국들puppet states은 모두 매우 진지하고 자랑스럽게 스스로를 ‘피플데모크라티아’ 국가로 칭했다. 이들은 프롤레타리아트가 해방되어야 하며, 계급없는 사회가 도래할 때까지 혁명적인 과도기 동안 프롤레타리아트가 다른 계급들을 지배해야 한다고 믿었다. 피플의 지배, 곧 데모크라티아다.
올리버 웬들 홈스 역시 “데모크라티아는 떼거리가 원하는 것democracy is what the crowd wants”이라고 했다.
데모크라티아는 무지한 빈민이 교육받은 지식인을 지배하는 것이라며 맹공격했다. 그는 지식과 독사doxa을 근본적으로 구분했으며, 데모크라티아는 한낱 독사doxa에 의한 지배, 더 정확히 말하면 무정부통치상태이다.
고대그리스인들에게 데모크라티아는 애초부터 당파적이고 호전적인, 지배체제와 사회계급양쪽의 철학을 분열시키는 낱말이었다.
무지하고 복수심에 불타는 다수로서의 떼거리, 공개토론과 공직에 걸맞은 자격을 갖추기 위한 교육을 받기에는 너무나 빈곤하며 권력을 위해 공약을 남발하는 선동가들에게 너무나 쉽게 흔들리는 떼거리의 주장이다.
진짜 데모크라티아가 부상할지 모른다는 현실적인 공포심
“모나키는 웅장한 함선과 같아 모든 돛을 펴고 위풍당당하게 나아가지만, 암초에 부딪히면 영영 가라앉고 만다. 데모크라티아는 뗏목과 같다. 절대 가라앉지 않지만, 빌어먹게도 두 발은 항상 물속에 잠겨 있다.”
데모크라티아는 무정부통치상태를 초래한다. 고전연구와 프랑스혁명의 교훈이 그들에게 알려주었으니까.
한나 아렌트189)는 책 『전체주의의 시원』에서 ‘피플(the people)’과 ‘군중(the mob)’을 구별했다. 피플은 효율적인 정치적인 대의제를 추구하지만, 떼거리는 자신을 소외시킨 사회를 증오한다. 흥미롭게도 아렌트는 이러한 떼거리를 모든 계급으로부터의 낙오자라고 불렀다.(체포된 축구 훌리건들의 사회계급과 직업은 많은 이들이 짐작하는 것보다 실
재로는 훨씬 다양하다.) 아렌트의 논지에 따르면, 떼거리는 극도로 에고주의적이다. 달리 말하자면, 오직 자기자신에게만 몰두한다.
4-2. 김민철 『누가 민주주의를 두려워 하는가』로부터 뽑아추린 악평들 일부
“데모크라티아는 무능한 방종 상태다”
불과 18세기까지만 해도 데모크라티아는 아예 현실적인 고려 가치가 없으며 몹시 위험한 망상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고대철학자들은 압도적인 비율로 데모크라티아에 반대표를 던졌다.
교육을 받지 못한 피플의 어리석음, 경험 부족, 비전문성이 국가를 근본에서부터 좀먹는다
“다수자인 가난한 자유민이 최고권력을 잡을 때는 데모크라티아고, 소수자인 웰쓰한 귀족들이 최고권력을 잡을 때는 올리가르키다.”
피플의 뜻이 법률 위에 있고 법률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원칙
이 말에는 데모크라티아에 대한 뿌리 깊은 공포가 스며들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가난한 다수가 “부당하게도 부자인 소수의 재산을 몰수할 것”이라는 두려움이다.
데모크라티아는 “법률이 아닌 다수plēthos가 최고권력을 갖는” 정부통치형식이라는 것이다. “법률 대신 다수의 결의가 최고권력을 갖는” 경우이며, 그것은 “피플선동가 탓”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처럼 법률이 최고권력을 갖지 못하고 피플의 뜻이 최고권력을 갖는 국가는 제대로 된 국가조차 아니라고 말한다. 그 이유인즉슨 “피플의 결의에는 보편타당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결정과 피플의 변덕스럽고 불합리하고 틀린 결정을 대비시키는 전통은 플라톤에게서나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나 강고하게 뿌리내리고 있었으며, 그뒤로도 오랫동안 이어지게 된다.
이런 이유로 고대에나 중세에나 근대초기에나 유럽인들은 대체로 로마공화국을 데모크라티아로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데모크라티아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닌 한 논의의 가치가 없을 정도로 국가의 존속과 성장에 해롭고 위험한 정부통치형식으로 간주되었다.
공화주의자의 눈에, 모나키에서는 국가의 흥망이 단 1명의 군주의 버츄에 좌우되는 반면, 데모크라티아에서는 버츄를 갖추지 못한 피플의 급변하는 감정적인 판단에 좌우된다.
니덤Marchamont Nedham에게 데모크라티아는 무지몽매한 폭도들의 지배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밀턴John Milton이나 시드니Algernon Sidney 같은 당대의 대표적인 공화주의 철학자들도 군주의 독단적인 통치에 반대하고 투표로 선출한 의회가 권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동시에 좋은 혈통을 이어받고 교육과 훈련을 거친, 버츄를 갖춘 소수의 통치를 강력하게 지지했다. 그들은 데모크라티아의 전망 앞에서 몸서리쳤다.
그런데 이런 수준의 평등이 존재하는 데모크라티아에서도 정부통치의 몰락을 초래하는 위험 요소가 있으니, 바로 선동, 인기, 군사정권이다. 먼저, 달변을 펼치는 웅변가들의 선동에 시민들이 넘어가서 국가를 멸망에 이르게 하는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또는 커다란 인기를 얻은 인물이 권력을 쥐고,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붙들어놓으려고 국가의 쇠퇴를 앞당길지도모르는 위험한 정책을 함부로 펼칠 수 있다.
그리스 도시국가들과 로마제국이 모두 몰락한 뒤의 유럽철학자들은 데모크라티아에서는 법률의 지배도 이루어질 수 없고 국가도 존속할 수 없다고 믿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데모크라티아를 거부하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공화국도 거부하면서 오직 모나키, 아리스토크라시, 또는 그 둘의 결합체만이 안정적인 법률의 지배와 국가의 번영을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하게 된다.
주스 나투랄레·자연법학은 공화주의와 마찬가지로 데모크라티아를 철저하게 배격했다.
데모크라티아가 주스 나투랄레의 원리에 합치하지 않는다
피플에게는 주스한가 언주스한가를 가리는 역량과 진리를 파악하는 역량이 부족하므로 그들이 통치권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
피플이 권력을 갖는 데모크라티아를 “오클로크라시”로, 곧 피플적인 파벌들과 무질서주의적인 파벌들로 코럽션할” 위험이 큰 정체로 간주했다.
사실 루쏘와 볼테르를 포함해 계몽주의자들 대부분은 데모크라티아를 배격했다.
계몽철학자들 사이에서도 데모크라티아는 최악의 정부통치형식 또는 비현실적인 망상이라는 데 대부분 의견이 일치했다.
루쏘는 데모크라티아 이론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데모크라티아를 세우고 유지하는 일은 현실에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자유국가에서는 피플의 뜻이 법률 위에 있다 … 데모크라티아적인 어쏘시에이션과 컨스티투션으로는 자유국가를 창설할 수 없는 것이다 … 루쏘에게 이 자유국가가 데모크라티아와 엄연히 다른 것이었다
선거와 투표는 아리스토크라시의 요소로 분류되었으며, 데모크라티아의 요소로 인식되지 않았다
루쏘는 데모크라티아의 가능성에 대해 절망적인 견해를 내비쳤다
루쏘 왈: 진정한 데모크라티아란 있어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 신들로 구성된 피플이 있다면, 이 피플은 데모크라티아로 스스로를 통치할 것이다. 그렇게 완전한 정부통치는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다 … “기실 나는 제네바에든 다른 어디에든 순수한 데모크라티아를 수립하는 것을 언제나 비난해왔다”
루쏘를 대표적인 데모크라티아 이론가로 보는 해석이 시대착오와 오독의 결과라는 점을 인식할 수 있다.
"데모크라티아는 고대의 낡은 유물이다” 루쏘 외에도 대부분의 계몽철학자들은 데모크라티아를 거부했다. 바로 18세기 서양의 지식인들이 다들 갖고 있던 세계관과 역사관에서 데모크라티아의 시대는 수천년 전에 이미 지나가버렸기 때문이었다.
18세기 서양의 역사관에서 고대그리스의 데모크라티아국가들은 야만적이고 호전적인 투사들의 세계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당시 사람들이 데모크라티아는 세련된 유럽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고대그리스의 데모크라티아가 이집트나 알제리의 폭군들이 수립한 것과 다를 바 없는 노예노동체제 위에 세워졌었다
데모크라티아에서는 웅변에 능한 광장의 선동가들이 자신들의 야심을 채우려고 피플을 호도하므로 피플의 선택은 언제나 엇나갈 위험이 크다 … 피플의 권력과 제국적인 확장이 결합하면 결국 군사정권이 들어선다
데모크라티아는 “폭도들이 다스리는” 정부통치형식이었고, 그것과 대비되는 더 나은 통치형식은 “우수한 사람들을 선출하여 다스리게 하는” 것, 곧 의회가 다스리는 것이었다.
피플의 대변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위험한 야심을 품고 있기 십상이며 역사에서 언제나 그들이야말로 공화국을 찬탈하고 폭군이 되었으므로 데모크라티아적인 열망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 … 미국에 데모크라티아가 수립되면 피플이 신뢰하는 소수의 선동가가 득세해서 평화, 안전, 재산권을 파괴하고 신생 국가의 멸망을 초래할 것 … 결국
미국헌정은 선출된 엘리트, 곧 대표들에게 강력한 권위를 주고 중앙정부통치를 강화하는 공화국을 수립하는 방향으로 제정되었다. 이런 관점이야말로 압도적인 다수 지식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었으며, 근대서양의 데모크라티아관을 대표한다고 해도 전혀 과언이 아니다.
대의정부통치는 피플정부통치popular government가 출현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된다. 18세기의 컨스티투션론에서 투표는 ‘주권자인 피플’을 정치로 끌어들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폭도·해적·강도인 피플’의 정치참가를 방지하기 위해 고안·활용되는 기제였다.
혁명가들은 프랑스에 데모크라티아를 수립하려는 의도를 갖고 혁명을 일으키거나 지도한 것이 아니었다.
이처럼 보수공화파를 비롯한 혁명기 공화주의자들은 프랑스에 데모크라티아가 들어선다면 국가가 안정될 수 없고 번영하지도 못하리라고 믿었고, “데모크라티아의 광신”을 경고했다. 그들은 “대의정부통치의 목적은 여론의 디벨롭먼트”이어야 하는데 “피플적인 정부통치는 여론을 망친다”고 확신했다.
벤담Jeremy Bentham은 대의제가 언제든 데모크라티아적인 요소들에 의해 손쉽게 “다수의 지배”로 “코럽션”할 수 있다
혁명기의 또다른 유명한 대의정부통치이론가인 시에예스Emmanuel Joseph Sieyès는 국회의원을 뽑는 것 외에는 절대로 피플의 정치참가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단언했다. 피플이 자신들의 의지를 행사하게 되면 프랑스는 그 즉시 바람직한 대의정부통치이기를 멈추고 위험천만한 데모크라티아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 데모크라티아
는 결국 모든 병사가 지휘관을 자처하는 아수라장이 될 수밖에 없다
혁명가들의 의사와는 반대로, 당시 데모크라티아라고 불리게 된 피플의 거리정치가 도래했다 … 피플주권론은 피플에게 권력을 쥐여주기 위해 탄생한 이론이 아니었으나, 혁명의 순간이 오자 피플은 그 이론을 지식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전유하고 행동한 것이다.
프랑스혁명이전까지 수백년 동안 거의 모든 철학자들은 피플의 정치참가 곧 데모크라티아에 대한 불안을 공유했다.
피플은 언제나 무지하고 정념에 휘둘리며, 극심한 무질서를 초래하고 재산권의 보호와 법률의 지배라는 원칙을 파괴하며, 결국 명망 있는 장군들에게 국가권력을 넘겨주기 쉬우므로 그들에게 권력을 주어서는 안 된다. 권력은 위험한 것이며, 신중한 컨스티투션주의적인 과정을 통해 분할되고 제한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1799년에 보나파르트 장군이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시민정권을 찬탈하기 전까지 10년 동안 데모크라티아라는 낱말은 자주 언급되지도않았고, 언급되는 경우에도 저주·경멸·혐오의 대상으로 언급되었다. 대체로 데모크라티아는 국가가 “데모크라티아로 코럽션하는” 것을 막을 방도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저지되어야 할 대상으로서 언급되었다.
실재로 당시 유럽인들은 대부분 공포정치가 데모크라티아의 결과라고 믿었다. 미국의 혁명가들을 포함한 서양의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오래전부터 갖고 있던 데모크라티아에 대한 온갖 우려들이 프랑스의 공포정치에서 여실히 드러났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런 평가는 그때부터 역사서술에 전격적으로 반영되었기 때문에 후대인들에게도 많은 영향
을 미쳤다.
나머지 대다수는 데모크라티아가 인류의 진보를 방해한다고 확신했다.
피플이 엘리트의 지도를 받아들이지 않고 저항하여 사회의 질서가 불안정해지거나 뒤집힐지도 모른다
피플이 권력을 잡으면 결국 인기를 얻은 장군에게 정권이 넘어갈 것
교육받지 못한 다수의 견해가 획일적이면서 억압적인 힘을 갖게 되어 의견의 다양성이 무시된다
데모크라티아에 대한 공포는 생생하게 살아남았다.
각 시대의 주류 철학은 각자 나름의 이유로 데모크라티아를 두려워했고, 데모크라티아가 도래하는 것을 막기 위해 견고한 이론적인 방파제를 세웠다.
데모크라티아가 국가와 문명을 멸망으로 이끌 것
19세기 철학자들 대부분은 데모크라티아의 도래를 막거나, 적어도 데모크라티아라는 이름을 제거할 수 없다면 그 핵심 요소라도 제거하려고 노력했다.
5. 몇몇 데모크라티아에대한 호평들
데모크라티아에 대한 악평들이 원체 많기도 하거니와, 긴 역사를 갖고 있는 반면, 호평은 그야말로 가뭄에 콩나듯 얼마 없다. 내가 공부해 온 바로 호평들을 차례잡아 보자면, 아래와 같다.
1. -4세기 아리스토텔레스의 <중간층 데모크라티아> 컨셉
2. 16세기 마키아벨리의 <넓은 정부통치·구베르노 라르고> 컨셉
3. 프랑스대혁명 때의 경우들: 로베스피에르·생 쥐스트·콩도르세·앙토넬
4. 미국의 잭슨대통령 및 윌슨대통령
5. 무엇보다 남자들의 챠티스트운동+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의 서프러제트운동
이 5개 가운데, 프랑스대혁명 이전의 두개를 이 글에서 훑어보고, 나머지 셋은 다음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합쳐지다》에서 다루겠다.
5-1. 아리스토텔레스: 중간계급 및 집단지성으로써의 데모크라티아

보수정치학자 레오 스트라우스의 『서양정치철학사』 및 진보정치학자 조지 세이빈의 『정치사상사], 두 권 모두 아리스토텔레스가 데모크라티아에 호의적임을 논증한다.
먼저 스트라우스의 논증부터 들어보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에서 설정하고 있는 중추적인 정치적 임무는, 부자와 빈자 간의 정치적 갈등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가능한 한 상당히 무디게 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주로 “올리가르키와 데모크라티아의 혼합"으로 서술하는 폴리테이아는 이러한 갈등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을 제공한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적 가르침의 특색, 그리고 오늘날 정치분석의 견지에서 볼 때 가장 흥미로운 에토스·윤리·캐릭터 중 하나는 폴리스에서 빈자와 부자간의 투쟁을 매개하는 "중간요소"에 그가 부여하고 있는 역할이다... 적어도 중간계급은 정부통치하고자 열렬히 원치도 않으며 또 정부통치당하고자 하지도 않는데, 이 둘은 어느 것이든 극단일 때 폴리스에 해로울 수 있다... 빈한한 자는 부러움에 의해 소진되며, 호화롭게 양육된 자는 경멸에 의해 그렇게 된다. 하지만 필리아·친애·우정·애정과 정치적 연대의식으로부터는 더 이상 어떤 것도 소진되지 않는다." 이러한 부자와 빈자의 관계는 분파적 투쟁으로 인도되며, 폴리테이아·컨스티투션·헌정은 좁은 의미의 올리가르키—빈자는 정부통치에 있어서 어떤 경쟁력도 갖지 못하는-이나 티란니·폭정의 방향으로 내몰리게 된다. 다른 한편, 중간 요소가 강력한 곳에서는 분파적 투쟁은 최소한으로 유지되며, 정치체는 더 안정적이고 지속적이다.
소수에 의한 음악이나 시보다 다수에 의한 것이 아레테한 것 ... 다수 개인들의 프쉬케·영혼의 아레테·버츄·덕과 개성의 총계가 소수의 우수한 사람의 아레테보다 나음 ... 사실상 그는 왜곡된 폴리테이아에 있어서 도편추방은 정부통치집단의 사적인 크레시모스·유용·이익에 봉사할 뿐만 아니라 또한 디카이오쉬네·저스티스·정의로운 것이기도 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철학으로부터, <중간계급의 중요함> 및 <다수가 소수보다 훌륭함 곧 집단지성의 우월함>을 스트라우스는 뽑아낸다. 그 다음으로는 세이빈의 논증을 보더라도 이 점은 마찬가지이다.
최고로 현명한 통치자의 지식이 관습법보다 더 나을 수 있을까 하는 점에 대해서는 명백히 그렇지 않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법률을 입법함에 있어서 데모스·피플의 집단적 지혜가, 누구보다도, 현명한 입법자의 지혜보다 더 아레테하다고 말한다 ... 집단은, 한 사람이 문제의 한 부분을 파악하고 또 다른 사람이 문제의 다른 부분을 파악하는 방법을 통해서 결국 그들이 함께 모이면 전체 주제를 골고루 파악하게 됨으로써, 뛰어난 방법으로 상호보완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논리를, 정치학에 있어서 대중적 기호는 장기적으로 신뢰할 만하지만 전문가들은 순간적으로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는 주장(반드시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으로 예증한다. 그가 글자법률(成文法)에 비해 관습법(customary law)을 더 좋아한 것도 어느 정도 이같은 영향 때문일 것이다.
상식과 집단의 지혜에 대해 무거운 비중을 두고 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 같이 그렇게 철저한 입장을 취할 수가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개량주의자였지 혁명적일 수는 결코 없었다.
아리스톤·최고선의 데모크라티아 ... 를 아리스토텔레스는 폴리테이아polity라고 명명하고 있는데, 바로 이 이름은 제3권에 있어서는 메조테스·중용의 데모크라티아를 지칭하여 사용되고 있다 ... 그 어떤 경우에 있어서든, 이 실현 가능한 아리스톤·최고선의 폴리스의 도덕적 모습은 올리가르키와 데모크라티아의 요소가 현명하게 결합된 혼합적 형태의 폴리테이아라는 데 있다 ... 이 폴리테이아의 사회적 기초는 너무 웰쓰하지도 않고 너무 가난하지도 않은 사람들로 구성된 다수의 중간계급계급의 존재이다. 에우리피데스가 일찍이 말한 바와 같이 '폴리스를 구제하는' 것은 바로 이 계급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천박할 만큼 너무 가난하지도 않고 당파적일 만큼 너무 웰쓰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중간계급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그들은 폴리스를 데모스적 기초 위에 두기에 충분하고 행정관들이 책임정치를 하도록 하기에 충분하게 사심이 없으며 데모스에 의한 폴리스의 폐해를 피하기에 충분히 분별있는 하나의 커다란 집단을 형성한다. 이와 같은 사회적 기초 위에서만 데모크라티아와 올리가르키 양자에서 모범적인 제도들을 끌어내는 정치구조를 건립할 수 있다 ... 어떤 점에 있어서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숫자에서 안전을 구하고 있다. 그것은 그가 건전한 여론의 집단적 지혜를 신봉하며 다수의 집단은 쉽게 부패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서양지성사에서 데모크라티아에 대해 호의를 보이고, 호평을 한 전근대 유일의 정치철학자가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데모크라티아에 대한 이런 어프루벌·찬성·찬동이 마키아벨리·콩도르세·앙토넬 등에게로 과연 직접 이어졌는가의 여부에 대해서 나는 확실하게 논증을 못한다. 하지만 서사소 차원에서의 닮음은 충분히 알 수 있다.
5-2. 마키아벨리의 "구베르노 라르고"

마키아벨리의 아리스토크라시·귀족헌정·귀족주의·귀족계급에대한 혐오 또는 증오는 아주 유명하다. 이때문에 아리스토크라시적인 공화국을 주장했던 귀차르디니와 자주 대조비교되곤한다.
아리스토크라시적인 공화국을 <좁은 정부통치·구베르노 스트레토guberno stretto>라고 하는데, 베네치아의 공화국이 그 대표적인 케이스이고, 귀차르디니가 그 대표적인 이론가이다.
이에 반해 마키아벨리는 <넓은 정부통치·구베르노 라르고guberno largo>를 주장했고, 피렌체의 공화국이 그 케이스였다. 이 넓은 통치는, 아리스토크라트·귀족을 배척하고, 포폴로 그라쏘·그랜드 부르조아에다가 포폴라니·쁘띠 부르조아까지 더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 정치철학은 <3신분 포폴로 부르조아 피플주의·데모크라티아·자유주의의 시원이자 선조이자 원조이다>, 이렇게 나는 본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지나치게 웰쓰·부유하지도 간하지도 않은 중간계급> 곧 포폴로 부르조아 일반을 마키아벨리가 주권의 정치신체political body로 세팅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의 <구베르노 라르고>에 관한 여러 학자들의 논증을 들어보자.
[스키너] 그러나 넓은 정부통치(governo largo)를 향한 이와 같은 선호의 대척점에서 좀더 작고 좀 더 긴밀하게 상호연관된 지배계급이 포폴로를 위해 리더십을 제공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좀더 아리스토크라시적인 형태의 공화주의자들도 상당수가 있었다 ... 만약에 "아리스토크라트·귀족계급 단독으로 또는 포폴로·부르조아 단독으로 지배하는 것"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면, 반드시 "포폴로보다는 아리스토크라트의 손에 정치가 맡겨져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아리스토크라트가 그 성격상 <보눔한 코뮤네good republic>에 훨씬 높은 정도로 헌신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fos.18a~b). 이 같은 관점을 가장 거칠 것 없이 발언한 이는, 혹자는 이미 예상할 수도 있었겠지만, 귀차르디니이다.
[라이언] 베네치아가 수수께끼처럼 보이는 이유는 아리스토크라시·귀족헌정인데도 지배적인 아리스토크라트·귀족에의해 몰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베네치아는 구베르노 스트레토guberno stretto(어의 그대로는 ‘좁은 정부통치'라는 뜻ㅡ옮긴이)라는 '좁은' 정부통치를 취했다. 이것의 메리트는, 직위 피선거권이 피선거 자격을 가진 사람의 후손에게만 국한되는 정부통치로, 콘실리오 그란데·큰평의회·대의회가 여러 차례의 오랜 개혁을 거쳐 1297년에 '폐회'되었을 때 정해졌다. 말하자면 좁은 올리가르키·소수헌정·과두제가 관리하는 아리스토크라시적인 공화국이었다. 그와 달리 피렌체는 원래 구베르노 라르고guberno largo, 곧 '넓은' 정부통치를 채택했다. 그 텔로스는 아리스토크라트들을 견제하는 한편, 과세 같은 중요한 사항들을 소수의 시민기구가 결정하기보다 더 많은 시민들이 결정에 동참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메디치가는 권좌에 복귀한 1512년에 콘실리오 그란데를 폐지하고 회의장으로 사용되던 건물마저 파괴해버렸다. 이로써 그들은 앞으로 공화국의 허울 아래 실상 군주가 지배할 것이며, 그 허울조차 포폴로적 공화국이 아닌 아리스토크라시적인 공화국이라고 선언한 셈이다. 마키아벨리는 베네치아가 아리스토크라트 때문에 파멸하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결국 그는 그들이 명목상으로만 아리스토크라트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베네치아의 아리스토크라트는 돈과 재물이 풍부한 상인들이었다. 상인들이 계속 장사만 한다면 공화국에 위협이 될일은 없었다. 그들은 동료 시민들을 노예처럼 만든다고 해서 얻을 게 없었고,소유하지도 않은 토지를 지키기 위해 사병 조직을 유지할 필요도 없었다. 후대의 정치사회학자들도 이에 동의했다.
더나아가, 정치적인 다원주의를 마키아벨리는 찬양하고, 포폴로·부르조아·시민citizen의 버츄는 이 갈등·불화·소란에 의해서 태어나고 길러진다고 그는 보았다. 이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논증을 들어보자. 이것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집단지성> 컨셉과 그 맥이 닿는다고 나는 본다.
[스키너] 마키아벨리가 보기에 그들은 고대 로마의 "소란"이라는 것이 바로 열렬한 정치 참여의 결과이며, 그러므로 최고의 포폴로 부르조아적 비르투스P가 현시된 것이라는 점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마키아벨리가 정치에 관해 가장 근본적이라고 보아 명시했던 통찰, 곧 계급 사이의 "충돌에서 자유에 우호적인 모든 법률이 태어"나며, 그러므로 계급갈등이란 공동체를 와해시키는 것이 아니라 한 데 묶어주는 접착제라는 통찰을 얻는 데에 실패했다(113쪽).
[스키너] "소란"과 포폴로 부르조아간의 불화가 공화국의 자유에 반드시 손상을 입힌다는 관습적인 견해를 동시에 지지할 수는 없다 ... 따라서 고대의 공화국에서 "아리스토크라트와 포폴로 사이에 다툼이 있었다고 매도하는 사람들"은 "로마로 하여금 자유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었던 제1 요인에 해당하는 사항들에 대해 부당하게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고 있다"고 결론짓는다(113쪽). 그와 같은 갈등 덕택으로 모든 분파적 페누스·이해관계·인터레스트C가 상쇄되었기 때문에 오로지 공동체 전체에게 페누스C가 되는 제안들만이 실재로 통과되어 법률이 되도록 보장하는 데에 그 갈등들이 또한 기여했다는 점을 그들은 보지 못한 까닭이다.
[스키너] 우리가 앞에서도 보았듯이, 포폴로 부르조아 내부의 불화는 모두 파당적이므로 불법화되어야 한다는 믿음, 그리고 아울러 파당은 정치적 자유에 대해 가장 심각한 위협 중의 하나라는 믿음은 레미치오, 라티니, 콤파니, 그리고 누구보다도 단테 등이 자신들의 동료시민을 향해 평화롭게 살기를 거부함으로써 스스로 정치적 자유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격렬하게 꾸짖었던 13세기 말 이래로 피렌체 정치이론을 주도해온 명제 중의 하나였다. 그러므로(마키아벨리가 표현한 바대로) "소란은 최고의 찬사를 받을 만하다"는 놀라운 판단을 고수하는 태도는 단순히 베네치아 정부통치에 대한 당대의 찬탄에 대한 반정거림을 지나서 피렌체 정치이론의 전체 역사에 가장 깊숙이 뿌리박은 한 가지 전제에 대한 문제제기였던 것이다(114쪽, 아울러 Pocock, 1975, 194쪽 참조).
마키아벨리의 이 주장은 신경써서 들여다 볼만하다. 집단주의PR의 디폴트값인, <가만히 있어라~> <위에서 다 알아서들 한다><대동단결> <국민총화> 같은 개소리들에 아주 강력한 반박논리를 마키아벨리가 제공하니까.
계급 사이의 '충돌에서 자유에 우호적인 모든 법률이 태어'나며, 그러므로 계급갈등이란 공동체를 와해시키는 것이 아니라 한 데 묶어주는 접착제이다
이러한 <소요·분열·불화>를 공화국의 바탕으로 보는 점, 이것이 나중에, 미국대혁명 당시, <당파나 분파의 국론분열을 빌미삼아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던 반연방주의자들>에게 맞선 연방주의자들의 강력한 무기가 된다. 이것은 <비적대적인 갈등이 조직에 더 생산적이고 이롭다>라는 주장과 같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집단지혜 또는 집단지성의 이로움> 컨셉을 더욱 실재적으로 고도화시킨 것이 마키아벨리의 "소란은 최고의 찬사를 받을 만하다"라는 컨셉이다.
지금도 흔히들 '국론분열'을 운운하며, 집단주의PR 공동선으로 소수의 여론을 억압하는 얼빠진 자들에게 써먹을 수 있는 대단히 쓸모많은 논리적인 무기라고 하겠다. 이런게 마키아벨리 서사의 장점이다.
그러나 이런 마키아벨리의 3신분 자유주의·피플주의·데모크라티아는 한낱 어느 소망생각에 지나지 않았다. 15세기 그당시 피렌체의 역사를 보면, 현실은 결국에 메디치 가문의 모나키로 귀결되어 버린다.
6. 루쏘, 너 마저!
오늘 글의 마지막으로, 흔히들 직접민주주의·풀뿌리민주주의·인민민주주의의 시조라고 말하는 루쏘가 실재로는 <데모크라티아불가능>을 주장했다는 점을, 먼저 김민철의 책 속에서 살펴보자.
루쏘는 『사회계약론』에서 대표를 선출하는 투표는 주권의 상실, 법권리의 양도, 권력의 찬탈이라고 설명했다.
루쏘와 시에예스를 비롯한 많은 당대 철학자가 데모크라티아는 인구가 많은 나라에서는 작동할 수 없으며 대의제와 결코 양립할 수 없다고 믿었던 것과 달리, 앙토넬은 콩도르세와 로베스피에르를 따라서 데모크라티아와 대의제를 결합시켰다.
루쏘가 제시한 공식에서 주권자인 피플은 대의제를 통하지 않고 직접 총회에 모여 법률을 만들어야 하고, 정부통치는 그 형식이 모나키이건 아리스토크라시이건 데모크라티아건 법률을 만들기보다는 행정적으로 법률을 집행하고 국가를 운영하는 역할을 맡았다.
루쏘는 모나키, 아리스토크라시, 데모크라티아 그 어느 것으로도 자유국가건설이 불가능하다고 선언하고 좌절했다. 나아가 루쏘는 의회제를 인정하지 않았다.
1770년에 쓴 어느 편지에서 그(루쏘)는 “기실 나는 제네바에든 다른 어디에든 순수한 데모크라티아를 수립하는 것을 언제나 비난해왔다”라고 말하면서 “내 글에서 제네바에 순수한 데모크라티아를 수립해야 한다는 주장을 발견한다고들 말하는” 읽는이들에게 반박하고, 자신의 의도를 표명하는 데서 종종 발생하는 “오해”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모든 구성원이 서로 알고 있는” 피플이라는 조건과 “웰쓰하지도 가난하지도 않고 자립할 수 있는” 피플이라는 조건이었다. 루쏘는 이 2가지 조건을 내세움으로써 경제적인 불평등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소규모 사회에서만 자유국가를 수립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루쏘에게 이 자유국가는 데모크라티아와 엄연히 다른 것이었다.
사실 루쏘와 볼테르를 포함해 계몽주의자들 대부분은 데모크라티아를 배격했다. 계몽철학자들 사이에서도 데모크라티아는 최악의 정부통치형식 또는 비현실적인 망상이라는 데 대부분 의견이 일치했다.
루쏘는 데모크라티아 이론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데모크라티아를 세우고 유지하는 일은 현실에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자유국가에서는 피플의 뜻이 법률 위에 있다 … 데모크라티아적인 어쏘시에이션과 컨스티투션으로는 자유국가를 창설할 수 없는 것이다 … 루쏘에게 이 자유국가가 데모크라티아와 엄연히 다른 것이었다.
루쏘의 피플주권론은 결코 데모크라티아이론이 아니다라는 점을 명심하자.
루쏘는 데모크라티아의 가능성에 대해 절망적인 견해를 내비쳤다. 진정한 데모크라티아란 있어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 신들로 구성된 피플이 있다면, 이 피플은 데모크라티아로 스스로를 통치할 것이다. 그렇게 완전한 정부통치는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다 … “기실 나는 제네바에든 다른 어디에든 순수한 데모크라티아를 수립하는 것을 언제나 비난해왔다”
진정한 자유국가를 수립할 수 있는 피플주권의 원칙이란 아무리 위대한 입법자와 뛰어난 버츄를 갖춘 피플이 있는 경우에도 오직 소국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 또한 그처럼 창설된 국가는 데모크라티아가 아닌 모종의 혼합정치체에 의해서만 통치될 수 있다.
루쏘를 대표적인 데모크라티아 이론가로 보는 해석이 시대착오와 오독의 결과라는 점을 인식할 수 있다.
루쏘를 대표적인 데모크라티아 이론가로 보는 해석이 시대착오와 오독의 결과라는 점
더 설명할 게 없을 듯 하다. 아리스토텔레스나 마키아벨리에 견주면, 이처럼 루쏘는 얼마나 다른지 모른다!
근대의 <모든 4신분 프롤레타리아 피플주의·데모크라티아 곧 모든 집단주의R진보평등주의인 공산주의의 근대적인 시조>인 루쏘는 반문명주의ㆍ반지성주의ㆍ반이성ㆍ반부르조아의 낭만주의 철학으로 인류지성사의 획을 그은 대가이다.

이것으로 오늘 글은 마치겠다. 다음 글은 3신분 피플주의·데모크라시인 자유주의와 4신분 피플주의·데모크라시인 공산주의가 절충타협한 미드웨이·가운데길·중도인 <자유민주주의의 발명·탄생>을 살펴보도록 하자.
나이테202회차 김민철 [누가 민주주의를 두려워 하는가] 발제(요약본 7분)
※ 윗동영상은 발제 앞부분의 자세한 설명들 다 걷어내 버리고, 딱 7분짜리 초압축요약본임. 이거 듣고 디테일들이 궁금하면, 아래 발제 풀영상을 봐도 좋겠다.
나이테202회차 김민철 [누가 민주주의를 두려워 하는가] 발제
서사제도진화이론가, 철학자, 서예가, 디지털 아티스트, SVA 미술석사, 실험영화작가, 불어불문학 학사. 인류문명사·철학사·지성사·개념사 곧 '지식의 지식'에관한 메타철학이자 인공지능을위한 메타윤리학인 서사제도진화이론을 연구중임. https://www.facebook.com/sugunz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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