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남이 사랑한 사람들과 시간들
요시다 미치에 수필가, 번역가입력 2025.06.25 08:11
호수 202507
지면296면다른 공유 찾기기사스크랩하기글씨크기인쇄하기
[요시다 미치에 ‘고독한 여행자’]
태국 방콕에서 살았던 기억의 조각
크메르 천 년 역사 간직한 신의 정원 카오프라비한, 영토 분쟁 휘말리기도
‘태국 비단왕’ 짐 톰슨의 흡인력이 타향에서 마주친 이들을 선으로 이어줘
캄보디아와 태국의 국경에 위치한 프레아비히아(신성한 사원) 전경. [사진 캄보디아 관광청]해발 625m의 낭떠러지 절벽에 튀어나온 바위 위에서 나는 바람을 맞고 있었다. 눈 아래 캄보디아 밀림이 펼쳐지고, 멀리 지평선 언저리는 하늘과 땅이 서로 섞여 있었다. 그 낭떠러지 위에 카오프라비한의 가람(伽藍)이 천공을 향해 그 모습을 뿜고 있었다. 이 사원은 캄보디아어로 ‘신성한 사원’이라는 의미의 ‘프레아비히아(Preah Vihear)’라고 불리며 태국어로도 같은 의미인 ‘카오프라비한’이라고 불린다. 캄보디아와 태국 양국의 국경지대에 있는 카오프라비한을 방콕에 살 때 버스를 타고 찾아갔다.
흔들리는 버스 좌석에 앉아 마른 대지 위를 얼마나 달렸을까. 카오프라비한 국립공원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자 ‘천공의 사원’이라고 불리는 사원 유적이 나타난다. 기억이 명확하지 않지만, 북쪽에 있는 지붕이 무너져 내린 제1탑문으로 들어갔던 것 같다. 5개의 돌탑 문을 빠져나오자 중앙 사당이 나타났다.
카오프라비한 국립공원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천공의 사원’이라 불리는 사원 유적이 나타난다. [사진 요시다 미치에]
‘천공의 사원’이라 불리는 사원 유적. [사진 요시다 미치에]내가 캄보디아 평원을 내려다본 단애(斷崖)는 그 사당 너머, 유적 남단이었을 것이다. 인상에 남은 것은 날씨와 물을 다스리는 다두사신(多頭蛇神)인 ‘나가’의 난간이었다. 당시 유적 전체가 아랫부분이 땅속에 묻혀 있었는지, 현재 사진과 인상이 꽤 달랐다.
2008년에 캄보디아 측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계기로 그 영유권을 둘러싸고 캄보디아와 태국 사이에 사상자를 낼 정도의 군사 충돌이 일어났다. 그러다 2013년에 분쟁이 진정돼 캄보디아령으로 인정됐다. 9세기에 창건된 이 사원은 12세기 초에 창건된 앙코르와트보다 오래된 사원이다. 지금 남아 있는 부분은 12~13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태국 피마이에 있는 유적을 포함해 크메르 유적들은 모두 앙코르와트 방향을 향하고 있다고 한다. 앙코르와트는 이른바 ‘왕도(王都)의 사원’인 것이다. 현재 이 유적에 접근하려면 앙코르와트가 있는 캄보디아 시엠아프(Siem Reap)에서만 갈 수 있다. 태국 쪽에선 카오프라비한 국립공원을 빠져나가 사원 입구까지 가면 사원 모습을 볼 수 있다. 내가 방문했을 땐 아직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 전이었고, 아주 짧은 기간 태국 측에서만 발을 들여놓을 수 있던 시기였다.
지붕이 무너져 내린 제1탑문. 5개의 돌탑 문을 빠져나오자 중앙 사당이 나타났다. [사진 요시다 미치에]
날씨와 물을 다스리는 다두사신(多頭蛇神)인 ‘나가’의 모습. [사진 요시다 미치에]몽환의 경계에 위치한 신성한 사원
캄보디아 등 5개국을 흐르는 메콩의 이름은 ‘어머니의 강’이란 뜻의 태국어에서 유래했다. 메콩이 태국과 라오스 사이를 흐르며 루악강과 합류하는 밀림지대가 이른바 골든 트라이앵글이라 불리는 곳이다. 그곳에서 생산하는 대마 섬유로 직조된 대마포의 감촉이 소박하고 아름다운데, 대마 관련 가게는 대마를 규제하면서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대마포도 충분히 매력 있지만 태국에서는 비단을 빼놓을 수 없다. 카오프라비한 국립공원에서 가깝고 태국·캄보디아·라오스와 맞닿은 곳에 이산이라고 불리는, 1000년 전부터 비단을 만드는 곳이 있다. 태국 동북부에는 들잠의 명주실을 이용해 손으로 짠 견직물을 생산하는 마을들이 점재한다.
카오프라비한에서 내려와 만난 어느 마을에서 견직물 가게에 들렀다. 비단에 무늬를 넣은 것을 매트미(mat mee)라고 부른다. 쇠퇴해 가던 태국의 비단 산업은 1950년에 즉위한 선대 푸미폰 국왕의 부인 시리낏(1932~현재) 왕비의 산업 육성 프로젝트에 의해 보호받고 되살아났다. 치마 부분의 옷자락에 직조 무늬를 넣은 것은 한국의 색동 치마를 연상케 했다.
내가 구입한 천은 두꺼운 진녹색 옷감으로 표면에 광택이 있어 캄보디아 밀림에 석양이 희미하게 비치는 것처럼 보인다. 수작업이기 때문에 생기는 혹처럼 튀어나온 부분은 ‘결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약간 거친 감촉과 팽팽함, 복잡한 발색의 아름다움은 한국 실크에 대한 나의 애착을 되살렸다. 내가 비단의 매력을 알게 된 것은 한국에서였다. 난초꽃 무늬가 희미하게 섞인 연두색 원단과 가장자리에 색동이 장식된 분홍색 원단이었다. 나는 그 천으로 만든 원피스를 십수 년 후에 태국으로 가져갔다. 광택이 있다 보니 일본 생활에서는 좀처럼 입을 기회가 없었던 옷들이었는데, 방콕에서는 아무런 이질감이 없었다.
이 지역에는 태국의 실크왕으로 불렸던 미국인 짐 톰슨(제임스 해리슨 윌슨 톰프슨, 1906~1967)의 공방이 있다. 그가 태국에 온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으로, 일본군에 관한 정보 수집을 위해서였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태국 실크에 매료된 그는 종전 후에도 태국에 남아 수제 실크 육성과 부흥에 나섰다. 급기야 ‘짐톰슨(Jim Thompson)’이란 브랜드도 만들었다. 짐톰슨의 주얼리 파우치나 소품은 나도 애용한다. 그 촉감과 함께 사용하기 쉬운 디자인은 ‘마약적’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그러나 1967년 짐 톰슨은 그가 머물던 말레이시아 고원에 있는 지인의 별장에서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실종사건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뜨거운 비단>이라는 소설이 있다. 일본인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松本清張)가 짐 톰슨의 실종사건을 소재로 쓴 장편소설이다. ‘뜨거운 비단’이라는 제목은 짐 톰슨의 비단에 대한 열정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와 같은 세대 추리작가로서 짐 톰슨의 삶에 대한 탐구심의 뜨거움인 걸까.
브랜드 짐톰슨의 창립자이자 태국의 실크왕으로 불렸던 짐 톰슨. 말레이시아에서 의문의 실종사를 당하면서 그의 마지막은 지금도 미스터리로 남았다. [중앙포토]삶도 죽음도 수수께끼 투성이였던 실크왕
짐 톰슨 실종사건은 작가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가 사업가로서 한창일 때에 갑자기 행방불명이 된 것, 미국 정보국(CIA의 전신 OSS)의 요원이었다는 것, 지금도 실종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것, 그의 사후 친누나가 미국의 자택에서 수상한 죽음을 당했다는 것 등이 많은 억측을 불러일으켰다.
마쓰모토 세이초 소설에서는 짐 톰슨의 여동생이 일본 피서지인 가르이자와(軽井沢) 별장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짐 톰슨은 캄보디아 군부 하부조직에 습격당한 것이 확인됐다는 설도 있다. 소설 <뜨거운 비단>은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장편 역작이지만, 베트남전 보도에 쫓겨 있던 당시 일본 신문사들에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고 한다.
젊은 시절 건축가로 뉴욕에서 활약한 짐 톰슨은 방콕 시내에 태국 전통 양식으로 집을 지었다. 집은 고도 아유타야 등에서 해체돼 매남(차오프라야 강)으로부터 운하를 통해 배로 옮겨져 재조립됐다. 운하선을 타면 그의 집 뒤에 선착장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운하의 존재를 전혀 몰랐다. 일본 방문객들을 안내해 그곳에 갈 기회는 많았지만, 차량으로 이동했기 때문에 들를 일이 없었던 것이다. 벽에 방부제가 발라진 적갈색의 여섯 동 건물은 울창한 남국의 나무들로 뒤덮여 있다. 태국 저명인들이 모였다는 자택 내부에는 그가 수집한 크메르를 비롯한 버마(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의 미술품이 전시돼 박물관으로서 관광명소가 됐다.
태국에서 매남의 은혜를 누리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남의 원류는 태국 북부로 태국 내에서만 흐르는데, 하류에서 그물 모양으로 펼쳐져 타일랜드만으로 흘러 들어간다. 방콕에 그 매남과 평행하게 달리는 차런크른 길이 있다. 그 길은 서양 문화를 접목해 근대화를 목표로 한 라마 4세(1804~1868)가 운하를 매립해 만든 새로운 길이었다. 그 지역에 이른 시기에 정착한 외국인들은 이 길을 ‘뉴로드’라고 불렀다.
지금은 쓸쓸한 거리가 돼버렸으니 ‘올드 로드’라고 부르는 게 적당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뉴로드와 수리웡(Surawong) 길이 서쪽 끝에서 만나는 곳 근처에 있는 작은 보석학교에 다녔다. 학생들은 대부분 인도인과 베트남인이었고, 비가 오면 지붕에서 비가 새곤 했다. 수리웡 길과 평행하는 실롬(Silom)이라는 비즈니스 거리에는 보석 메카인 방콕을 상징하는 주얼리 트레이드 센터가 있다. 하지만 나는 감정이나 비즈니스보다 디자인을 즐기고 싶었다. 태국에서 금을 취급하는 금행(金行)과 보석상은 인도계와 중국계가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부동산을 포함해 자본을 움켜쥔 주류 세력이었다.
스콜이 한 차례 지나간 뒤 살갗을 찌르는 듯한 뙤약볕 아래, 가로수 그늘을 꿰매듯이 걷고 있으려니 삼베 정장과 모자 차림의 남성이 낡은 건물과 건물 사이로 나타났다가 사라진 것 같았다. 영화 <연인>의 잔영이었던 걸까. 영화는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자전적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프랑스 식민지가 된 베트남에서 피식민자이지만 부유한 중국인 남자와 식민자에 속하는 가난한 프랑스 소녀의 권태감이 감도는 사랑 이야기다. 당시 프랑스령이었던 베트남에서 태어난 주인공은 어머니와 동생들과 함께 척박한 땅에서 남겨진 듯이 살았다.
차오프라야 강과 뉴로드의 추억
빈부 격차와 인종 차이,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뒤틀린 사랑 이야기는 애틋한 결말을 맞는다. 각각의 타산과 순수함이 뒤섞인 사랑과 마음속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가 자신의 삶을 잠식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생생하게, 에로틱하면서도 담담하게 그려진다. 두 사람이 만난 그 거리의 나른한 분위기는 방콕 중국인 거리의 허름한 분위기와 비슷했다. 시종 무표정하던 소녀는 난생처음 조국 프랑스로 향하는 배 위에서 스며드는 슬픔에 눈물을 흘린다.
수리웡 거리의 서쪽 끝, 뉴로드와 만나는 곳에서 길을 건너면 매남 둔치에 오리엔탈 호텔이 있다. 1876년에 서양식 호텔로서는 방콕 최초로 문을 연 곳으로, 짐 톰슨이 경영에 참여하고 직접 육성한 견직물로 인테리어를 꾸민 곳이다.
그 호텔에서 만난 여러 사람을 통해 나는 외국에서 오래 생활한 사람들의 유대감과 시대성을 새삼 느끼곤 했다. 그곳에서 나는 회색 머리카락이 아름다운 여성을 마주쳤다. 우리가 동향임을 알게 된 것은 매남 위에 뜬 배에서 열린 모임에서였다. 그녀는 그 후 어딘가에 짐 톰슨 숍을 열었다고 들었다. 내가 가끔 여행할 때 수배를 부탁한 짐 톰슨 하우스 등 박물관 가이드 자원봉사자를 조직한 여성도 일본의 우리 집에서 가까운 초등학교에 다녔던 분이었다. 또 번화가 수리웡 거리에 있는 짐 톰슨 숍 바로 옆에 사무실을 차렸던 남편의 지인은 우리 집 메이드가 모셨던 분이기도 했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첫 장편 추리소설인 <점과 선>의 제목처럼, 점에 지나지 않았던 사람들이 짐 톰슨이란 옛사람의 흡인력에 의해 선으로 이어진다. 소문을 통해 알게 되는 게 아니라 마치 오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보이는 지도랄까. 짐 톰슨 하우스 정면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운하라는 또 다른 길이 존재하고, 매남을 중심으로 뻗어 있었던 수로가 보이기 시작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제 방콕에서 나의 고향으로 이어진 지도 또한 캄보디아 밀림 너머 하늘과 대지가 뒤섞인 지평선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흐릿해져 간다. 프레아비히아의 절벽 위에 서서 내가 막연히 느낀 것은 국경이라는 선이 그어진 한 장의 지도가 아니라, 점재하는 유적들이 그린 크메르 문화권이라는 지도였다. 그것은 시대를 초월해 겹겹이 쌓인 바위 같은 문화의 중층성(重層性)*의 현장이었다.
*〈일본민속학〉을 쓴 민속학자이자 기록문학 작가인 야나기다 구니오의 이론.

요시다 미치에
20대에 서울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귀국 후 남북한 뉴스를 주로 다루는 <신아통신>에서 번역 업무를 맡았다. 국회의원 비서, 한국문화원 근무를 거쳐 프리랜서 번역가로 활동하며 에세이를 쓰고 있다. 일본의 언론인 중심 온라인 커뮤니티 인포넷에서 15년간 에세이를 연재했다. <조선왕조의 의상과 장신구>(2007, 공저), <한국 현대 문학>(1992, 번역서)을 저술했다.
요시다 미치에 수필가, 번역가 wmyoshid@ybb.ne.jp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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