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25

대한민국을 다시 보면서, 인촌 김성수도 다시 보아야! < 김대중 < 기사본문 - 스탠다드

대한민국을 다시 보면서, 인촌 김성수도 다시 보아야! < 김대중 < 기사본문 - 스탠다드

대한민국을 다시 보면서, 인촌 김성수도 다시 보아야!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주류, 큰 줄기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산업과 언론과 교육 전 분야에서 전근대 지주는 근대 부르주아지로 변신해
인촌의 사랑방은 대한민국의 산실
인촌그룹이 한 일은 근대 시민의 형성 주대환
입력 2025.01.10 


출처: 인촌기념회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학자들이 개발도상국들이 따라가야 할 모범으로 우리나라를 지목하였다고 한다. 또 그들의 이론을 극명한 남한과 북한의 대비(對比)로서 설명하고 있다고도 한다. 사람들은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라는 말로 그들의 이론을 설명하고 있다. 제도와 정치 체제가 장기적으로 경제 성장을 결정하고 한계 짓는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곰곰이 생각하다보면 혹시 인류가, 아니면 역사의 간지(奸智)가 일부러 실험을 하기 위해서 남북한을 갈라놓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그런데 이 놀라운 경제 성장을 가져온 정치 체제, 즉 자유와 인권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의회 민주주의, 삼권 분립 등을 핵심 요소로 하는 한국 민주주의는 어디서 왔는가?

그 뿌리를 찾다보면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주류, 큰 줄기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다른 나라의 자유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이른바 ‘부르주아 민주주의’로서, 근대 부르주아지와 인텔리겐차의 존재라는 사회경제적 기초 위에 발전한 사상과 사회운동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부르주아지가 없이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없는 것이다.

“미국과 같이 모두가 황제가 되는 나라, 민주공화국을 세워서 천년의 숙명, 중화제국의 번속국(藩屬國)에서 벗어나서 독립하자”는 비전을 처음 나누어 갖게 된 만민공동회 이래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큰 줄기는 잡혔다. 그러나 이승만, 안창호 등이 모두 해외로 망명하고 나서 국내에서 이 흐름을 계승하여 3∙1운동에 이어 기초를 다져간 분들이 있었다.

이들의 중심에는 바위처럼 흔들리지 않는 한 사나이가 있었으니 사려 깊고 헌신적이며, 앞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최종적인 책임을 지는 인촌 김성수였다. 아직 해외 시장에 내놓아서 돈이 될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을 때, 호남평야에서 생산되는 쌀을 수출하여 만든 자본을 종자돈으로 중앙학교를 인수하고, 경성방직을 세우고, 동아일보를 창간하였다.

대지주가, 큰 부자의 아들이 김성수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중심이 되어 산업과 언론과 교육 전 분야에서 전근대 지주는 근대 부르주아지로 변신해 나가면서, 식민 치하에서이지만 근대 시민을 형성해나갔고, 이들이 바로 해방을 맞이하여 민주공화국을 세우는 핵심 역량이 된다. 미군정도 실상은 인촌이 이끄는 한민당이 운영하였다.

인촌의 사람 유진오가 헌법을 기초하고, 내각책임제로 되어 있던 초안을 이승만 박사가 거부하자 급히 인촌사랑방에 모여서 역시 한민당 중진이자 인촌의 측근인 김준연이 내각제와 대통령제의 혼합 절충안을 만든 것도 모두 우연이 아니다. 인촌의 사랑방은 미군정 시절의 각료들이 모여서 의논하고 헌법 기초안을 검토한 대한민국의 산실(産室)이었다.

그래서 인촌은 한사코 거부했지만 결국에는 한민당의 대표도 하고, 부통령으로 선출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또 인촌이 서거했을 때, 이승만 대통령은 몸소 문상을 하고, 장문의 간곡한 추도사를 발표하고 국민장으로 예우를 하였던 것이다. 이승만은 추도사에서 “내가 하와이에 있을 때부터 김 공과 고인이 된 송진우, 장덕수와 친분이 생겼다”고 말하고 있다.

인촌 그룹의 대변인으로 볼 수 있는 고하 송진우는 이미 1925년에 “앞으로 4, 5년 지나지 않아 태평양을 중심으로 ‘세계적 풍운’이 일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그는 “장차 조선 문제가 미국과 일본의 충돌 결과에 따라서 결정될 것이기 때문에 조선과 미국의 관계 형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인촌 그룹이 얼마나 멀리 내다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런 인식으로 그들은 인내하고 실력을 키워나갔다. 결국 그들이 한 일은 국민 형성, 근대 시민의 형성이었다. 그래서 혹자는 일제 치하에서 동아일보를 ‘또 하나의 정부’라고 불렀던 것이다. 제헌국회 헌법기초위원장 서상일은 ‘대구의 프린스’라고 불릴 만큼 지지 기반이 탄탄하였지만, 그의 가장 큰 경력은 동아일보 대구지국장이라는 사실이 말해주지 않는가?

그런데 그동안 우리는 인촌 그룹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것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결국 그들이 만든 나라 대한민국을 무시하는 사상의 경향이 근저에 깔려 있다. 심지어 우리는 이들을 친일파라고 부른다. 인식의 오류, 그 밑에 있는 것은 야만인이라 얕잡아보던 일본인들에게 식민 지배를 당한 엄연한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유아적 심리다.

그래서 총을 들고 종로 거리에서 활극을 벌여서 일본 경찰을 다 죽이는 만화 같은 영화를 좋아한다. 이제는 성인(成人)이 되어야 한다. 성공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뿌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래서 배은망덕(背恩忘德)이나 환부역조(換父易祖)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패륜 행위를 멈추어야 한다. 성공한 민주공화국을 세우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풍요를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가? 먼저 후손들을 잘 가르쳐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가 누구인지’, ‘누가 세운 어떤 나라에 살고 있는지’를 가르쳐야 한다. 마침 세계인들이 대한민국을 다시 볼 때, 우리는 독립운동의 역사, 대한민국의 뿌리를 찾아 그 한가운데 서 있는 심모원려(深謀遠慮)의 지도자 인촌 김성수를 다시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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