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27

ByungKook Lee 이병국| Facebook 장자연 사건 미투관련

<2018년 3월 8일 작성했던 글입니다.>

최근의 미투관련해서도 동일한 시각이어서 
저의 생각을 밝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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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얼마 전까지도 장자연 사건의 인지 조사의 필요성을 전현직  검사들에게 말해 왔습니다. 
이 사건은 같은 소속사  가수와 텔런트등 알려진 것만도 두명의 자살자가 더 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에게까지 달려들며 호기를 부렸던 검사들은 
하나같이꼬리를 숨겼습니다.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이 국민의 인권인가? 사회 정의인가? 
아니면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무엇인가?
서검사가 검찰내부에서 당했던 성추행을 문제삼고, 이를 내부 에서 고발하고, 청와대에 알리고, 이마저도 미진하자 언론에  나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전현직 권력자들을 고발한 것에  대해 현재의 검찰 조직을 생각하면, 그녀의 용기와 희생을 
각오한 마음에 대해 고마움을 표합니다.
그녀의 행동은 그녀가 말한 것처럼 개인의 문제만이 아닌 같은 고통을 당하는 모든 이를 위한 것이었다 생각합니다.
“사건을 인지조사하겠다고 하는 순간 지방으로 좌천될 것이다”
라며 꼬리를 내렸던 동창 검사들은 검사의 본분을 잃은 처사이고,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사법정의에 눈을 감은 자들이라 생각합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리고 그 포도청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양심에 저버린 행동을  했다며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에 대해 익숙해 보입니다.

누구나 그렇게 한다면, 이 사회는 계속해서 또 다른 최순실을  양산해 나갈 것이고, 양심을 저버린 개인 개인들에게 책임이 있음을 통감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최근 안희정을 고발한 김지은씨의 말을 다시 들어 봅니다.
“그는 도지사고 나는 힘이 없는 일개 수행비서였다.”

저는 제가 직접 겪었던 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 왔습니다.
몇 가지 이유 중에,
1. 그 상황에 대해 자세하게 말할 수 있어, 토론의 빈약함을 극복할 수 있고,
2. 나의 사례를 검토하여, 지혜롭게, 용기를 내어 주라는 무언의 부탁을 하고자 함입니다.
저는 1991년에 공사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최근 6개월 동안, 유성구청, 대전시, 공주시청,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경찰청, 한국인터넷진흥원, 국통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의 직원들과 
협의하며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제가 무슨 힘이 있습니까...” 였습니다.

이 말을 들으면, 상대방은 최소한 10분 이상 저에게 설교를 들어야 했고, 어떤 경우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상사와 함께 30분 이상 고통을 맞봐야 했습니다.
공무원들의 일은 국민의 이익과 안위에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일이 많습니다.
제가 공사에서 일할 때 작게는 수백억에서 크게는 수조에 이르는 많은 공사들이 진행되었는데, 어느 하나 국민의 이익과  안위에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들은 경제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따져서 절대  하지 말하야 하는 공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수행하는 직원들의 입에서 나왔던 말은
“내가 무슨 힘이 있어...” 였습니다.
사장 이하 모든 직원들은 자신에게 힘이 없음을 한탄하고, 심지어 사장마저 위의 지시라며 자신에게 힘이 없음을 말합니다.
공사 직원 모두가 잘못된 계획과 잘못 될 수 있는 일의 결정에  대해서 자신은 힘이 없다며, 그 책임을 힘 있는 오직 한 사람에게 전가합니다.
결과는 엄청남 세금의 낭비입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저는 김지은씨가 여성이라는 의미보다, 충남도청의 직원 이라는 시각에서 그녀를 바라봅니다.
여성의 열악한 인권 사항을 말하기에는 우리 사회가 많이  발전해 왔음을 목도하기 때문이며, 중요한 것은 그녀가 30살이  넘은 성인 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녀가 미성년자 였다면 이야기는 전혀 다르게 전개될  것입니다.
학부 때부터 7년 동안 여성과 아동권리 신장을 위한 단체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군인의 아내였던 어머님의 삶이 영향을 끼친 것이었는데요, 
이때가 1980년 중반이니 이때와 비교했을 때 2018년의 현재의 여성의 인권은 획기적으로 발전 되있다라고 할 수 있고, 특히  공조직 에서의 여성 인권은 민간 기업보다도 월등하다고 말하는 것이 객관적 판단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여기서 스스로 힘이 없다고 말했던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당신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가요?”
성추행, 성폭력은 당하는 사람의 의지와 상관없이 당합니다.
그러나 성관계는 서로간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기에, 개인의  노력에 의해 얼마든지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는 김지은씨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당신이 지키고자 한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자주 듣습니다.
어떤 옳은 말과 행동을 하면, 직장내에서의 불이익이 걱정 된다고...
그녀의 대상은 안희정이라는 충남지사지만, 그 사람이 마을  통장일 수 있고, 동대표일 수 있고, 상사일 수 있고, 대기업일 수 있고, 국가권력일 수 있습니다.
이런 권력과 마주했을 때, 우리는 무엇을 더 지키고자 하는가?
제가 한번은 언급했던 공사에서의 일화가 있습니다.
‘5천억 공사. 대우건설. 보스또치니 신항’
아침에 출근했을 때 제 책상에 놓여있던 사장실에서의 쪽지였습니다.
우리 부서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압니다. 이게 어떤 내용인지.

풀어서 말하면,
- 러시아 보스또치니 컨테이너항 증축 사업을 하라.
- 예산은 5천억을 써라.
- 사업은 대우건설에 줘라.
- 청와대와 연결되어 있다.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일개’ 과장이 이를 거부하기 위해서는 먼저 부장을 넘어야 하고, 부실장과 실장을 넘어야 하고, 본부장을 넘어야 하고, 부사장을 넘어야 하고, 결국 사장도 넘어야 합니다.
저는 공사에서 일을 수행함에 있어 기준은 간단했습니다.
“부정한 일이고, 내가 막을 수 있는 것이라면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
당시 직원들은 제가 부자집 자식이고, 배경 좋은 집안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큰 형님이 사업을 하면서 부도를 내고, 본인도 사망을 하면서, 집안은 풍지박살이 난 후 몇 년이 지나지 않은 상태였으며, 저는 반 지하 집에 전세를 살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마도 저의 행동은 절대적 신앙심으로 사시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웃음을 잃지 않으셨던 어머님의 영향이 클 것입니다.
아침에 받은 쪽지를 들고, 몇몇 고참 과장들을 만나 협의를 했지만, “그냥 적당히 해서 올려”라는 대답만 들어야 했습니다.
결국 대우건설 이사진 네분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만들었고, 경제적타당성 조사는 다음에 하더라도 일단 기술적타당성을 검토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미 현지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공사 자체가 불가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현지를 다녀온 대우건설 관계자는 공사 불가라는 결론을  내 주었고,저는 이를  부장과 실장에게 보고를 하였습니다.
그들은 나서기를 꺼리면 혼자 직보하라고 하였고, 결국  보고서를 들고 말단 과장이 본부장과 부사장을 거쳐 사장에게 까지 직보를 하게 되었습니다.
보고 받는 사장의 일그러진 얼굴은 지금도 기억합니다.
저의 행동은 한 가지 위험과 한 가지 기회를 잃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가지 위험은 목구멍이라는 포도청에 끌려가는 위험이며, 한 가지 기회는 수십억, 수백억의 리베이트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김지은씨가 자신의 안위를 걱정한 것처럼,
저 역시 저 자신의 안위에 치명적인 위험을 감수해야 했으며, 부가적으로 엄청난 경제적 이득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 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국민의 세금이고,
둘째는 저의 양심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피해를 입어 저와 가족이 고통을 받더라도 그것은 감내해야할 일로 여겼습니다.
이 부분에서 같은 약자지만, 저와 시키는 일을 묵묵히 따라했던 사람들과의 차이가 납니다.
저는 공무원들과 공무원인 조카들과 공부하는 제 자식에게도 강조합니다.
“개인의 편의를 추구하기 위해 공무원을 하지 마라.”
특히 제 자식에게는 중학교 때부터 공직에 진출할려 할 때는 국가나 국민 등에 대한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하지, 자신 직업의 안정성과 편리를 추구해서 한다면 아빠 자식이 아니라고 강조해 왔습니다.
조직에서 불의에 항거하기 위해서, 그리고 효율적인 일의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세배이상 부지런해야 하고, 세배이상 참아야 하고, 세배이상 잠을 줄여야 했습니다.
학부와 대학원 때, 목숨의 위협을 느끼며 민주주의를 찾기 위해 노력했던 것, 러시아에서 북한 영사관의 위협을 당해야 했던 기억들은 저를 위축시키기 보다는 더 강한 자신을 만들어 
주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안희정과 김지은의 성관계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문제이고, 그들 가족이 심판할 문제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30이 넘은 김지은씨가 어떤 완력을 사용하지 않은 안희정이란 권력이 커보이는 사람에게 자신의 몸을 지키지  못한 것이 그가 도지사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고, 
그것이 성폭력이란 뉘앙스로 말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냥 싫다고 하고, 왜 문을 박차고 나오지 않았을까요?
그녀가 걱정한 것이 국가의 이익, 지역 사회의 이익, 또는 국민이나 도민의 이익과 관련이 있나요?
그런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마음은 전혀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녀가 걱정한 것은 오직 자신의 안위였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직업에 대한 불안감이 자신이 부정하거나, 불법이거나, 성폭력이라고 생각하는 일에 자신을 내어주었다 했을 때 이를 어떻게 이해해 줘야 할 까요?

저는 그녀가 적장을 끌어안고 강물에 뛰어든 논개가 되라고 하지 않습니다.
누구를 위함도 아닌,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싫다고 말하고, 문을 박차고 나왔어야 했습니다. 
몇 번을 반복적인 상황에
자신을 내 버려 방치한 것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표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남성과 여성의 성 문제로 보기 보다는
현재 우리의 젊은 친구들이 추구하는 가치,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이며, 그것을 지키기 위해 어떤 위험을 무릅쓰며, 
어떤 노력을 하는 지를 묻는 것입니다.
최근 많은 공공기관에 건의와 질의를 하는 과정에서, ‘제가 무슨 힘이 있나요’, ‘위의 지시사항 인데요’, ‘법이 그런데요.’라며 자신들을 숨기고, 한없이 낮추었던 젊은 남녀 공무원을 
접하면서, 이들이 공무원이 된 것이 공무가 아닌 사무를 보기 위함이고, 이들의 생각과 관심이 이렇게 머물러 있는 이상 국가 발전을 오히려 저해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적극적으로
그들과 소통하고자 노력해오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지인들과 만나 더 이상 아이들에게 편안하고, 경제적으로 좋아 보이는 직장을 추천하지 말자고 말합니다.
그런 제안은 없고, 굶주림을 걱정했던 60-70년의 우리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2020년은 사는 아이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어려움을 뚫고 현재를 만들어온 우리가 있기에, 우리는 아이들을 도전시키고,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상당부분을 희생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줘야 할 때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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