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25

[정치이념성향 톺아보기⑤] 다원주의 vs 상대주의, 해석의 풍경 < 정치이념성향 톺아보기 < 김대중 < 기사본문 - 스탠다드

[정치이념성향 톺아보기⑤] 다원주의 vs 상대주의, 해석의 풍경 < 정치이념성향 톺아보기 < 김대중 < 기사본문 - 스탠다드

[정치이념성향 톺아보기⑤] 다원주의 vs 상대주의, 해석의 풍경
왜 어째서 하필이면 그렇게 해석하는지
그렇게 해석한다면, 다른 해석들이 어떻게 비춰질까
다원주의자가 될 필요
오독이나 미진함이나 왜곡을 관용하는 게 우리에게 필요하다 수군작 서사제도연구자
입력 2023.10.22






이제까지의 정치이념성향들 톺아보기

아래처럼 그동안 모두 4차례 정도, 정치이념성향의 주된 키워드들을 나는 살펴 보았다.




[정치이념성향 톺아보기①] 집단주의R진보 공동체의식은 무엇이 문제일까?

[정치이념성향 톺아보기②] 인종주의: '저건 사람이 아니다!'

[정치이념성향 톺아보기 ③] 대한민국 정체성은 전체주의가 아니라 자유주의이다

[정치이념성향 톺아보기 ④] 데모크라티아의 폭정을 회피하기: '혼합된' 어느 헌정에 대한 공화주의적인 이상





앞으로 써보려는 정치이념성향들

앞으로는 나름 정평있고 권위있는 학술책들 읽기를 통해 정치이념성향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엮어 볼까 한다. 아래는 예상하는 그 순서이다. 물론, 이 순서는 확정된 게 아니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또한 정치이념성향들에 대한 나의 정리가 유일·절대·진리·정답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최대한 내 나름으로는 학술·제도적인 객관성을 갖추려고 노력하겠지만, 분명히 여기저기 나의 담론·서사는 적지않은 허물들이 있을 것이다. 이것들에 대해서 만큼은 눈밝은이들의 꾸지람 및 채찍질을 겸허하게 나는 받을 생각이다.



▶ 자유주의/리버럴리즘

▶ 민주주의/데모크라티아/데모크라시

▶ <자유주의+ 민주주의 곧 리버럴 데모크라시>의 한국적인 수입ㆍ이식ㆍ시궁창화 과정

▶ 공화주의/리퍼블리카니즘

▶ 보수주의/콘저브티즘

▶ 텔로스주의 vs 디온트주의: 《정의론 논쟁》



이들 6개 정치이념성향들을 톺아보기 전에 한가지 먼저 밝힐 게 있다. 바로 다원주의에 관한 것이다. 다원주의를 종종 상대주의 또는 플랫티즘flatism·평원주의·납작주의와 헤깔리는 이들을 나는 접한다. 그래서 먼저 이에 관해 한번쯤 짚고 나서, 계획한 정치이념성향들 6개는 다음부터 짚어 보기로 하자.

어느 토픽·잇슈·테마에 관해서, 유일·절대·진리·정답 따위는 없다고 나는 믿는다. 따라서 언제든지 더많은 시각들, 그리고 더 다양한 관점들이 나오는 것을 나는 바란다. 대중들에게 더많은 선택의 옵션들이 생길수록, 대중들에게 더 이롭다라고 나는 믿는 편이라서 그렇다.

이처럼 다원주의pluralism을 나는 찬양한다. 정치이념성향들에 대해서도 나는 그러하다. 그러나 다원주의의 찬양이 결코 흔해빠진 상대주의ㆍ납작주의flatism로 여겨지지 않기를 나는 바란다. <다원주의자의 자세stance>에 관해, 분명한 개념규정을 나는 내 나름 내리고 있다. 그에 대해서 설명할 필요가 있다.







해석의 풍경

현실에서 (예컨대 특정한 정치이념성향같은) 어느 토픽잇슈테마에 대해, <그 당사자들은 다들 자기나름의 '진심어린' 모종의 프루던스prudence·신중·타산·사려깊음을 갖고 주장한다>고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상대방의 주장에 대해 <'제대로·맞게·있는그대로·틀림없이 올바르게' 나는 독해하고, 그결과로 내 해석을 내놓고 있다>라고 우리가 스스로 여길 거라는 점도 미리 알아두어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각양각색의 가즌 주장들 및 해석들이 서로 다투거나 또는 합의할 거라는 점, 이것 또한 분명하다.

여기까지 주어진 바는 우리 모두에게 꼭같다. 이 다음부터 논의·대화·토론·논쟁·논증·말타툼·언쟁·의사소통의 자세 또는 태도attitude 또는 매너manner의 차이가 갈라진다고 나는 본다.

내 경우를 말해 보자면 이렇다: 나의 자세는, <왜 어째서 하필이면 상대방이 그렇게 해석하는지>를 1차적으로 따져본다. 그다음 <그렇게 해석한다면, 다른 해석들이 어떻게 그에게 비춰질까>를 따져보는게 2차적이다. 이 자세를 나는 <외부주의적인 메타인지meta-cognition>라고 부른다.

그리고 비록 해석들이 제각각이더라도, 서사제도진화이론을 써서, 그 해석을 구성하는 서사소narratime들을 존재론ontology적으로 인식론적epistemology으로 가치론axiology적으로 분석하고, 그 결과 <그 해석이 어떤 절충·융합·혼성·짬뽕·꽈배기인가>에대한 지성사적인 최상위 어느 메타분석을 나는 내놓는다.







다원주의 vs 상대주의ㆍ납작주의

다원주의 vs 상대주의 또는 납작주의·평원주의·플랫티즘, 이 둘을 내가 구별하는 방식은 <왜 어째서 하필이면 그렇게 해석하는지> 및 <그렇게 해석한다면, 다른 해석들이 어떻게 비춰질까>, 이 <외부주의적인 메타인지meta-cognition>의 실재·실존여부가 그 잣대이다.

이 잣대가 있으면, 다원주의라고 나는 규정하고, 이 잣대가 없으면, 한낱 상대주의·납작주의라고 여긴다.

<나도 맞고·옳고·정당하고, 너도 그렇다>라는 데서 끝내는 것이 상대주의·납작주의라고 한다면, 다원주의는 그게 아니라, <왜 어째서 하필이면 그렇게 너가 지각·인지·인식할 수 밖에 없고, 그럴 경우 너에게는 아마도 상대방이 그렇게 보이리라>는 것을 해명한다. 큰 차이다. 아주 큰 차이.

<왜 어째서 하필이면 그렇게 너가 지각·인지·인식할 수 밖에 없고, 그럴 경우 너에게는 아마도 상대방이 그렇게 보이리라>는 것을 사례를 들어 조금 더 설명하자면 아래와 같다.






예컨대, 개인주의C보수 공동체의식에 바탕한 해석자의 눈에, 개인주의F진보 공동체서사라는 것은, 집단주의R진보 공동체의식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진보=좌파, 보수=우파>라는 납작한 흑백2분법 때문이다. 더군다나 <능력주의>를 약빨아 먹었기 때문에, 개인주의F진보 안의 <평등주의> 서사소를 꼴보기 싫어 한다. 그래서 개인주의F진보의 자유주의 가치지향을 부정해 버리고, 개인주의F진보를 굳이 집단주의R진보로 납작하게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이번에는 집단주의R진보 공동체의식에 바탕한 해석자의 눈에, 개인주의F진보 공동체서사라는 것은, 개인주의C보수 공동체의식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진보=좌파, 보수=우파>라는 납작한 흑백2분법 때문이다. 더군다나 <평등주의>를 약빨아 먹었기 때문에, 개인주의F진보 안의 <능력주의> 서사소를 꼴보기 싫어 한다. 그래서 개인주의F진보의 평등주의 가치지향을 부정해 버리고, 개인주의F진보를 개인주의C보수와 꼭같다고 납작하게 만들어 버려야 속이 시원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진보=좌파, 보수=우파>라는 납작한 흑백2분법으로만 정치이념성향을 해석하는 한, 개인주의F진보는 설 자리가 없다.






한번 더 정리하자면, 다원주의는 이런 외부주의-메타인지를 내놓는 반면, 상대주의·납작주의는 그것을 내놓지 못하고, 그저 평평하게 '너도 옳고 나도 옳아'라고, 서로의 서사를 납작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외부주의 인식론 훈련이 꽝이라서 그렇다. 외부주의 인식론의 공부 수준이 이들 상대주의·납작주의자들에게 인지과부하를 갖다주기 때문이다.










다원주의자가 될 필요

상대주의에 빠지지 말고, 납작주의자가 되지 말고, 우리는 다원주의자가 될 필요가 있다. 상대방의 해석이 내 뜻과 다르다고, 내 입맛이 아니라고 해서, 무조건 백안시하거나 부정하는 그런 답정너여서는 곤란하다.

윤석열의 반공전체주의가 그런 답정너의 대표적인 어느 사례이고, 운동권386 일부의 공산전체주의가 또다른 사례이다.

그렇다고, <너도 옳고, 나도 옳고, 다 옳다>라는 상대주의로도 부족하다.

<이게 맞다, 저게 틀렸다> 보다는 <이런 해석의 자세를 선택하게 되면, 저게 맞아보이고, 저런 해석의 관점에 서게 되면, 이게 틀려보인다>라는 <외부주의적인 메타인지>의 다원주의가 우리에게는 이롭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원주의는 답정너가 아니라서, 각자의 관점에서 '왜/하필이면/어째서' 그렇게 밖에 볼 수 없나를 시민들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이렇게 <다른관점들, 다른 서사들을 나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그 바탕 위에서, 하지만! 우리는 이게 맞다고 본다>라고 일관되게 호소하는 것이 바로 다원주의자의 자세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원주의자들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각자가 절실한 해석을 내놓고, 각자가 스스로의 주장이 맞다고 할 때, 한가지 불가피한 어느 사태가 있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서로가 서로를 <오독·오해·오판·오인·오식>하는 것이다. 이때 다원주의자들이라면 아마 다음처럼 처우treatment·처리·취급·대처할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독해comprehension를 잘못하고 있다면, 서로 고치자>라고 말해줄 것이다라는 점이다. 이것이 합리적인 것이다. 상대방의 워딩이나 메세지를 설령 상대방의 진심·진의·의도·지향대로 독해못했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1도 쪽팔릴 까닭이 없다. 또 그때문에 열받을 일도 없다. '내 진심은 이것인데, 독해가 틀렸으니 고쳐주길 바란다'라고 해주어도 거듭거듭 독해를 못한다면, 몰라도 말이다.

이처럼 그냥 한두어번 정도는 오독이나 미진함이나 왜곡을 관용하는 게 우리에게 필요하다. 이런 관용 위에 다원주의자들의 민주주의가 꽃핀다고 나는 본다. 그렇게 해서, 독해의 실수들을 바로잡은 결과, 각자의 욕심 또는 이해관계interest·이익·관심·이자·인터레스트를 일관되게 서로 간에 오해·왜곡없이 독해했다면, 그러고 나서 서로 양보할 건 양보해가면서, 타협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처럼 서로 간의 합리적인 논의가 가능하고, 타협이 가능하다면, 그것이 바로 통합되어있는 것이다.

답정너로 살지 말자. 상대주의자로 살지 말자. 단선적이고 단세포적이고 고정단일한 거수기 인생 또는 깃발부대인생은 그만 살자.

분명히 자기의견을 얘기하고, 왜곡·오해없이 욕심 및 인터레스트를 정직하게 털어놓고, 서로 타협하자.

이런 방식으로, 다원주의적으로 합리적으로 논의가능한 사람들이 리더가 되어야 한다. 끝까지 경청하고 끝까지 독해해내고, 끝까지 인지(과)부하cognitive (over)load를 견디는 이들이 다원주의적인 민주주의의 리더가 되어야 한다. 반대없고 갈등없고 충돌없고 불일치없는 그런 획일적인 교조주의를 바란다면, 자유평등의 공진화라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다원주의적인 자유민주주의는 따라서, 가즌 해석들의 잡다함으로 시끄럽고 늘언제나 아웅다웅하는 것이다. 다만 합리적으로 논의하고, 타협하는 것이다. 이게 통합된 것이다.




"가만히 있어라"라는 세월호를 거부하기

"입닥치고, 집단이 정한 대로 따라라. 따지지 말라, 혼난다!"를 거부하기



<나를 따르게 하려면, 논의와 타협을 거쳐, 나의 동의ㆍ합의를 얻어라!>, 이것이 다원주의적인 민주주의자의 목소리이다.




서사제도진화이론가, 철학자, 서예가, 디지털 아티스트, SVA 미술석사, 실험영화작가, 불어불문학 학사. 인류문명사·철학사·지성사·개념사 곧 '지식의 지식'에관한 메타철학이자 인공지능을위한 메타윤리학인 서사제도진화이론을 연구중임. https://www.facebook.com/sugunzag/

키워드
#다원주의 #상대주의 #평원주의 #플랫티즘 #납작주의 #반공전체주의 #공산전체주의 #민주주의 #메타인지 #외부주의 #세사제도진화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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