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반일 종족의 역사 내란』출판기념회에서
이제라도 ‘보수’가 ‘영미 진보’라는 아직 이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외래의 세계관을 파트너로서 인정하고 손잡는 것이 중요하다
러시아와 중국에서 만들어진 공산주의로부터 ‘영미 진보’로의 전향은 실상 조봉암 한 사람만이 한 것은 아니고, 그 세대 많은 사람들이 한 것
가장 심각한 행위는 박정희 대통령이 1969년에 이승만 동상이 있던 남산에 김구 동상을 세운 것
이제 민주공화국의 역사를 다시 구성할 때가 되었다
국부, 법통, 광복, 이런 용어들은 민주공화국에 어울리지 않는 말들 주대환
입력 2025.04.30

먼저, 공부하기 싫어서 액티비스트(activist)가 된 저에게 공부 많이 하신 분들 틈에 끼일 수 있는 이런 영광스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료집에 제가 좀 길게 쓴 감상문이 있습니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저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편저자이신 이영훈 교수께서 신동엽 시인을 길게 언급하고 그의 시를 인용한 대목이었습니다.
저는 2009년초에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하면서 “나는 4∙19의 시만 읽은 게 아니라 5∙16의 밥도 먹고 자랐다”라는 말을 하여 이후 저의 역사를 보는 태도를 대신해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저가 읽었던 4∙19의 시는 김수영의 시였다면, 실은 김수영보다는 신동엽의 시가 훨씬 중요하고 더 뿌리 깊은 정서를 대변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난겨울 저는 마음이 답답하여 만경강, 동진강, 영산강, 그리고 금강의 강둑과 강변 자전거 길을 따라 하루 종일 걸었습니다. 하루는 강경 역에서 내려 부여까지 걸었습니다. 그런데 부여에서 처음 저가 만난 것은 신동엽 시비(詩碑)였습니다.
그리고 하루 부여에 머무는 동안 틀림없이 많은 부여 사람들을 부자로 만들어주었을 김종필의 흔적은 겨우 공원 한 편에 있는 비석 하나인데 반하여 서른아홉 살까지 산 신동엽의 흔적은 곳곳에 있었습니다.
저가 본 부여는 김종필의 밥보다 신동엽의 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아마 대한민국 전체가 그러하지 않나 싶습니다.
신동엽은 우금치에서 죽은 수 만 원혼들을 깨끗이 목욕시켜 이 땅에 풀어놓은 듯합니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한국 민주주의의 뿌리로서 동학농민혁명을 이야기합니다.
종로에다 전봉준의 동상을 세우고, 최근에는 ‘남태령 대첩’ 운운하는 퍼포먼스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지영이 지어내고 신동엽이 되살려낸 허구의 이야기는 참으로 힘이 세구나 싶습니다.
반-자본주의, 반-서양, 반-문명, 농촌 향수, 조선 전통은 생태주의 미래 지향과 하나로 어우러져 있습니다. 여기에 반일(反日)이 매운 맛을 내는 양념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저는 이른바 ‘보수’가 ‘영미 진보’라는 아직 이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외래의 세계관을 파트너로서 인정하고 손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영미 진보의 자식일 수도 있는 대한민국을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까지는 자존심 때문에 애써 부인해왔다면 이제는 이를 정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조건이 준비되었다고 봅니다.
또 등장인물도 다양하게 준비하여 대한민국 이야기를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예를 들면 신익희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독립운동가들 중에서 아버지 벼슬이 가장 높은 판서입니다.
하지만 그는 서자도 못 되는 얼자입니다. 어머니가 천첩이니 조선 전기에 태어났더라면 그는 노비가 되었을 것입니다. 조선 후기에 태어났더라도 그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같은 처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운이 좋았고 좋은 시대에 태어났습니다. 그는 독립운동을 하였고 당당히 대한민국 2인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아마 대한민국을 무한 긍정하실 것입니다. 그런 그를 지금의 민주당은 원조(元祖) 할아버지로 모시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신익희로 하여금 후손들을 꾸짖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가 기념사업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조봉암의 경우도 있습니다. 그로 하여금 친북 주사파를 꾸짖게 할 수는 없을까요?
노무현 정부 시절 과거사위원회에 당시까지 생존하였던 엄숙진이라는 특무대 요원이 진술하였습니다. 그는 양이섭을 관리한 사람입니다. 그의 진술을 근거로 2011년 대법원의 재심 판결도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길게 할 이야기가 아닙니다만, 러시아와 중국에서 만들어진 공산주의로부터 ‘영미 진보’로의 전향은 실상 조봉암 한 사람만이 한 것은 아니고, 그 세대 많은 사람들이 한 것입니다.
그들이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하였습니다. 농지개혁에 큰 공을 세운 기획처장 이순탁도 있습니다. 우익 일부보다 오히려 미군정이나 미군 정보기관들과 대화가 잘 통하였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등장인물이 많고 캐릭터가 다양해야 삼국지 같은 재미있고 웅장한 스토리를 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비를 좋아하는 사람도 조조를 좋아하는 사람도 함께 즐기는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책의 내용으로 되돌아가서 저자들과 저의 생각이 다른 부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편저자이신 이영훈 교수는 이 책의 서두를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정치가들은 주어진 이데올로기 지형 속에서 권력을 추구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보는 이런 역사 인식의 뒤틀림에 책임이 있기로 친다면 역대 모든 지도자들이 다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중앙청을 때려 부수고 일본 놈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큰소리친 김영삼 대통령은 어떤가요? 반일 민족주의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로 친다면 이승만 대통령이 가장 격렬하지 않았을까요?
자료집 18페이지에 있는 사진을 보아주십시오. 군복을 입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심산 김창숙을 병문안하고 있습니다. 두 달 전에 심산에게 건국훈장 최고등급을 드렸습니다.
심산이 누구입니까? 1960년 4월 25일,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258명의 대학교수들의 정신적인 배후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젊은 시절 파리장서운동을 주도한 성리학자이지요.
자료집 19페이지를 보시면, 일주일 후에 심산이 돌아가시자 박정희 의장이 짧은 머리에 군복을 입은 채로 문상을 하고 있습니다. 박정희는 반-이승만, 4∙19 세력에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듣보잡 군인이 정권을 잡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그 해 박정희 군사정부가 대한제국의 충신들에게 대한민국 건국훈장 최고등급을 추서한 것입니다. 한꺼번에 18명에게 건국훈장 최고등급을 드렸는데, 조병세, 민영환, 이준, 최익현, 허위, 이강년, 여섯 분은 대한제국의 충신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월남 이상재와 인촌 김성수에게는 건국훈장 2등급을 추서한, 1917년생 박정희와 1926년생 김종필이 과연 우리나라 독립운동이 무엇인지를 알았던가 의심스럽습니다.
김용삼 선생은 이 책에서 “한 번 둑이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는 홍수에 휘말리게 된다"라고 썼습니다. 저는 김용삼 선생과 생각이 같습니다.
제 생각에 가장 심각한 행위는 박정희 대통령이 1969년에 이승만 동상이 있던 남산에 김구 동상을 세운 것입니다. 그로부터 56년이 흘러 이제 백범 김구는 성역이 되었습니다.
저가 어디 가서 이야기하다 말 잘못하여 중간에 강연이 중단될 뻔한 경우는 백범이 유일합니다. 털끝도 건드리지 못합니다. 이게 다 박정희의 유산이고, 김영삼도 김대중도 그 틀에서 놀았습니다.
저는 이제 민주공화국의 역사를 다시 구성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77년이 흘렀고 건국 후에 태어난 사람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성공한 나라입니다.
저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들판을 말 타고 달리다가 가끔 멈춰 서서 내 영혼이 뒤따라오는 지 되돌아본다는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지난 77년 대한민국은 너무 급하게 정신없이 달렸습니다.
멈춰 서서 생각하면 국부, 법통, 광복, 이런 용어들은 민주공화국에 어울리지 않는 말들입니다. 저는 사실 이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우리나라가 부끄럽습니다.
그 무슨 법통 때문이 아니라 5∙10총선이 자유롭고 공정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세계 여러 나라들과 UN은 대한민국을 승인하였습니다.
저는 헌법 개정을 논하는 자리에 가면 항상 주장합니다. “헌법 전문만큼은 조상들이, 건국자들이 합의하여 써놓은 그 문장을 존중하여 그대로 두자. 읽어보라, 얼마나 품위 있고 탄력적인 문장인가?”
제 손자 녀석이 유치원에서 배워온 노래를 들으면 여전히 단군 할아버지가 나라를 세웠다고 합니다.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이라는 정체성을 가르칩니다.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서 정체성을 교육하지 않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어떤 가치로, 어떤 꿈과 이상으로, 어떤 어려운 조건을 극복하고, 어떤 행운을 만나 누구의 도움으로 이 나라를 세웠는지 가르치지 않고 있습니다.
긍정과 감사의 마음으로 대한민국 역사와 조상들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할아버지, 1954년생. <좌파논어>, <주대환의 시민을 위한 한국현대사>, 등을 썼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