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겨레는 1910년 8월 29일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합병 당하였다. 일제의 무단 통치와 경제적 수탈로 커다란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꺼질 줄 모르는 3․1 독립의 정신으로 과감히 맞서 일제를 놀라게 하였다. 이후 일제는 문화 통치라는 속임수를 써서 민족 분열을 꾀하였다.
1910년 8월 29일
1910년 8월 대한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이로써 한국은 조선왕조가 건국된 지 27대 519년 만에 망하였다.
조선 총독부가 설치되어 조선 통치를 시작했다. 한국인은 모두 일본인의 일부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한국인이 일본인이 될 수도 없었고, 일본인 역시 한국인을 그들처럼 대우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일제는 입으로는 늘 한국인들을 더 잘 살게 하기 위해서 하나로 ‘합병’하였다고 주장했다. 한 줌 밖에 안 되는 매국노들도 두 나라를 합치는 것이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고 떠벌였다.
일제와 매국노들은 관리들을 협박하고 황실의 안전을 보장하겠고 얼르면서, “한국의 황제 폐하께서는 대한제국 정부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히 또한 영구히 대일본 제국 천황 폐하께 넘겨준다”는 조약문안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조약의 체결은 선언되었다. 황제의 서명도 없이..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일제와 매국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 조약에 반대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으로서 조약 체결에 반대하였으며, 더 많은 사람들이 일제와 매국노에 맞선 새로운 투쟁을 다짐하였다.
삼천리 금수강산 지옥이 되어..
국민적 저항 속에 이루어진 일제의 ‘합병’은 오직 군대의 힘으로만 유지될 수 있는 ‘강제 점령’이었고 폭력을 통해서만 유지할 수 있는 무단 통치였다.
그들은 전국 곳곳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그리고 한국인들이 말과 행동 하나하나를 감시했다. 그들의 눈에 조금이라도 어긋날 경우에는 가차없는 폭력이 가해졌고, 심지어는 학교의 교사들조차 칼을 차고 위협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그리하여 어느 독립 운동가는,
“강도 일본이 헌병 정치, 경찰 정치를 행하여 우리 민족은 조그만 행동도 마음대로 못하고, 언론․출판, 집회의 일체 자유가 없어 고통과 울분, 원한이 있어도 벙어리 냉가슴이나 만질 뿐이오 눈뜬 소경이 되고 말았으며, 자식을 낳으면 일어를 국어라, 일본글을 국문이라 가르치는 노예 양성소(학교)로 보내고, 조선 사람으로 조선 역사를 읽게 된다면 한강 이남은 예로부터 일본 땅이었다는 엉터리 역사를 배우게 되며, 신문이나 잡지를 본다면 강도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정치를 찬양하는 노예적 글밖에 없으니, 똑똑한 자식을 낳으면 세상을 비관하고 절망하는 타락자가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음모사건의 이름 아래 감옥으로 끌려가 온갖 악형을 다 당하고 요행히 살아서 감옥 문을 나오더라도 일생동안 불구가 되어 폐인이 될 뿐이며, 그렇지 않을지라도 창의적 생각이 짓밟히고, 진취적이고 활발한 기상은 소멸되어 …”
라며 분통을 터트렸으며, 만주에서 활동하던 독립군은, “삼천리 금수강산 지옥이 되어, 모두 도탄에서 헤매고 있다. 동포는 기다린다. 어서 가자 조국에” 란 노래를 부르며 옷고름을 다잡았다고 한다.
간추린 얘기
1) 국권 강탈 (1910) ․일제의 합병 조약 강요 : 이완용 등 친일 내각의 협조 (경술)국치일: 1910.8.29 2) 무단 통치 (헌병경찰제도) ① 조선 총독부 : 일제 식민 통치의 중추 기구 ② 내용 : 한국인의 모든 정치 활동 금지 집회․결사의 자유 박탈 민족 신문의 발행 금지 애국 지사들의 투옥 교원에게 제복과 칼 착용 강요 |
3) 문화 통치 (민족분열통치, 보통경찰제도) ① 배경 : 3․1 운동이라는 우리 민족의 저항 ② 내용 : 신문 발행 허용, 단체 설립 허용, 사회 활동 인정 → 친일 단체의 조직과 지원에 노력 |
그게 뭐꼬?
1) 무단 통치
무력으로 억누르며 다스리는 정치. 일제는 조선을 식민지로 길들이기 위해 폭력을 휘둘렀다. 당시 세계 최고의 구속율, 군인이 경찰 노릇을 하는 헌병경찰제, 교사들이 학교에서 칼을 차고 다니는 등 살벌한 분위기를 만들어 저항 의지를 꺾으려고 하였다.
2) 매국노
나라를 팔아먹는 노예. 자기 한 몸의 부귀영화를 위해 나라 전체에 못된 짓을 하는 이들이다. 몽고 침략 때의 앞잡이들이 그렇고, 을사조약 때 이완용을 비롯한 5적도 나라를 팔아먹었다. 일진회는 한일 합방이 조선에게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고 다녔다.
<민족분열통치 - 친일파 양성>
(가) 이제부터 조선인의 임용과 대우 등에 관해서 더욱 고려하여 각각 그 할 바를 얻게 하고 조선의 문화 및 옛 관습 중 채택할 것이 있다면 이를 채택하여 통치의 자료로 제공할 것이다. 나아가 제반 행정을 쇄신하고 장래 기회를 보아 지방 자치 제도를 실시하여 국민 생활을 안정시키고 일반 복리를 증진시킬 것이다. 이에 관민은 서로 가슴을 터놓고 협력하여 조선 문화를 향상시키고 문화적 정치의 기초를 확립시켜 천황의 고명한 덕을 받들기 바란다. 혹시 함부로 불령한 언동을 하며 인심을 교란시키는 따위의 일을 하는 자가 있다면, 이는 공공의 안녕을 가장 저해하는 일이 될 것이다. 준엄한 형벌로 가차없이 다루고자하니 일반민중은양해하기 바란다. <총독취임사, 사이토문서>
(나) 1. 귀족, 양반, 유생, 부호, 교육가, 종교가에 침투하여 계급과 사정을 참 작하여 각종 친일 단체를 조직케 할 것. 2. 친일적 민간 유지들에게 편의와 원조를 주고 수재 교육의 이름 아래 우 수한 조선 청년들을 친일 분자로 양성할 것. 3. 조선인 부호, 자본가에 대해 ‘일선 자본가의 유착’을 촉진할 것. <사이토의 ‘조선 민족 운동에 대한 대책’(1920),『현대사 자료집 26』중 조선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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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8월 일장기만 걸려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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