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북]24.(금)[방북인사 인터뷰]세계적 정형외과 의사 오인동 박사
NK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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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음악]
정확한 북한 소식을 통해 평화 통일을 앞당기는 NK 투데이 공식 팟캐스트
스케치북 4월 24일 금요일 방송을 시작합니다네 진행을 맡은 김혜
기자입니다 이동 기자입니다 안녕하세요 문교환 [음악]
기자입니다네 오늘은 북한에 방문한 인사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좀 들어보는
날이죠 금요일이니까네네 그러면은 오늘 소개할 방북인사 분을 오리 운경 기자님께서
또 준비를 해 오셨죠네
오늘은 미국의 유명한 인공고관절 전문 정형외과
의사인 오인동 박사님 인터뷰 내용을 소개하겠습니다 네 근데 미국에 계신
분인데 오인동 박사님이랑 하니까 재미동포네 그렇습니다 재미동포 어
고향은 북쪽이 황해도 옹진 태어나셨고 남쪽에 이제 내려와서 가톨릭대학교
의대를 졸업하셨고 1970년에 이제 미국으로 건너가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제 미국에서 사시는 분인데 어 정영관 의사 하시고 하버드 의대
조교수 MIT 대학 강사도 하셨고요 인공 관절기 고안으로 이 의학 의과에
크게 기여한 분이다 그래 상당히 유명한 이쪽 계통에서는 상당히 이제 유명한 분이라고 하더라고요 아 지금
이제 로스앤젤레스 인공관절 연구원 원장인데 원래 이제 미국이 의학 쪽이
인종 차별이 되게 심하 대요 백인이 아니면 교수나 원장 하기가 되게 힘든데네 이렇게 이제 된 걸 보면
상당한 이제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죠 인공 관절기를
고안하다 인공 관절기를 개발 하셨다는죠 적 개발하신 거죠 인공 관이요 예 그러니까 뭐 무릎이나
팔꿈치 같은데 그 이제 뭐 쓸 수 없는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무릎을 쓸
수 없는 사람들이 사람들 이제 인공 관제를 넣어 주는 거예요 거기에 그래서 이렇게 움직일 수 있게네네
그런 거죠음 그런 거를 만드시는 분음 어제 좀 대단하신 거
같아
근데 이분이 뭐 황해도 출신이라 그런 건가 북한을 방문하신 거죠 예
이게 언제 북한을 가게 됐냐면 면 1992년에이 북한의 이제 북한
방문단을 모았어요 한미 의사회 대표단이 해서 그렇게 해서 이제
북한을 그때 갔다 온 거예요 갔다 오고 나서 어 처음에 이제 별 생각
없이 이제 살다가 북한에 한번 갔다 와서 야 이게 통일에 관심을 갖게 된
거죠 그래서 그때부터 이제 분단의 기원과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공부를
하기 시작했대요 근현대사 공부를 하고 이 분단을 극복하기 위한 이제 여러
활동들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뭐 한미 연합회 동포 사회와 미국 주류
사회에서 활발한 활동들을 하고 있는데 현재 61호 공동선언 실천 미국위원회 공동 위원장 이시고요 또 글도 많이
쓰세요 그래서 뭐 문학 관련된 상도 받으셨어요 글도 많이 쓰셔 가지고
지금까지 평양 의학대학 병원에서 인공 관절 수술을 이렇게 전술을 하고 있습니다네 네 엄청 대단한 분인데요네
그렇죠 의학 게임에서 문학 인까지 어네 대박이다 어쨌든 통일운동도
하시면서 글도 쓰시는 거죠네 책도 많이 쓰셨어요 꼬레아 코리아 이런
책도 있고요 평양에 두고온 수술 가발 아니 수술 수술 가발이 수술
가방입니다네 아 수술 가방이면 진짜 웃기겠다 평양이 두거운 수술 가방
그다음에 통일의 날이 참다운 광복의 날이다 음 밖에서 그려보는 통일의 꿈 이런 책들 쓰셨고 지금도 책을 또
쓰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저한테도 원고를 좀 보내 주셨어요 한번 보라고 아 진짜요 예 근데 왜 기자님한테 원
거를 주신 거죠 아 제가 이제 예전에 몇 번 만나서 안면이 있다 보니까 저보고 뭐 읽어보고 의견 있으면 좀
달라 뭐 이렇게 부탁하시고 이메일로 어 더 대단한 사람 같다
갑기네 어쨌든 의사의 통일 운동가의 책도 여러 건 쓰시고 정말 다제 다행한 분이 계신데 또
그분을이 또 뭐 이렇게 연계가 있는 분이 또 제 옆에 계신다고 하니까네 정말 대단한 거 같습니다 어쨌든
그분께서 북한을 다녀 오셨으니까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좀 잘 아시겠네요
네 그렇게 친하니까네 하나씩
들어보면 좋을 것 같네요 일단은 좀 의사하고
싶거든요네 한번 어떻게 얘기 하셨는지 얘기해 주실까요네이 북한이 경제적으로
좀 많이 어렵기 때문에 사실 모든 분야가 다 어렵고 의료 부분도 마찬가지라 그래요네 그 특히 이제
의료 같은 경우는 시설이 되게 많이 필요하잖아요 고가의 장비들이 많이
필요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제 더더욱 어려운 문제가 많다 그러네요 근데 어쨌든 이걸 한국이나 미국
기준으로 이렇게 비교하는 거는 적절하지 않다 이렇게 이제 얘기를 합니다 그 시설은 연락하라 그걸
그대로 그 시설만 놓고 비교하는 건 옳지 않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왜 그러냐면이 제도가 좀 다르다는 거예요
그니까 북한의 의료 제도가 완전 무상 의료기 때문에 보험이라는 개념도 없고
국가 자체가 이제 보험이라는 거죠 아 예 그다음에이 예방 의학을 또
중시하고 있어서 병에 걸려서 치료하기 전에 아예 병에 안 걸리도록 이렇게
어 많은 치중을 하고 있다 그러네요 그쪽으로네 그래서 지금 이제 경제적 여유는 없다 보니까 의료의 질은 많이
떨어진 상태인데 지금도 이제 중진 국가들의 의료 수준과 같다 뭐 이렇게
좀 보면 된다 그러고 그러니까 이제 한국 같은 경우는 지금 뭐 병원 아주 좋은 병원들이 많이 생겼는데 그 전에
이제 한국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잖아요 뭐 병원도 이제 동네 병원 밖에 없고 막 이런 그런 이제 시절에 의료의
이제 상황은 그렇다 뭐 이렇게 좀 얘기를 하고
또 재밌는게 이 의사가네
보수가 많지가 않대요네 그래서 의사 일을 좋아해서 의사를 하는 거지 돈
많이 벌려고 의사를 하는 사람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일종에 이제 봉사 정신을 가지고 있는 거죠
그래서이 의사들이 가정 방문도 이렇게 많이 한대요 집집마다 돌면서 어 어디
아픈 사람 없나 이렇게 확인도 하고 이런 걸 가지고 이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의료를 이렇게 계속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얘기 하셨습니다네 어쨌든
의료 시설은 좀 열악한 거 같은데 데 시스템 자체는 좋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하신 거 같거든요네 근데 이제 이분이 아까 얘기했던 인공관절 전문이자아요 그
북한의 인공 간절 기술도 좀 전수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예 처음
그 1992년도에 갔을 때이 인공 관절기를 가지고 갔대요네이 수술법을 정리한 책과
비디오도 기증을 했어요 그래서 이걸 가지고 뭐 북한 의료에 이제 도움이
좀 되라 이렇게 했다 그래요 그 당시 북에서는 이제 그런 인공
관절 수술 이런 것들은 하지 못한 상황이었어요네 그리고 나서 이제 한참
뒤에 다시 이제 그러니까 1992년에 방북을 하고 한동안은 방북을 안
했어요
네 나중에 이제 다시 방북을 하기 시작한 건데 2006년에네이 62로 민족 통일대회
한국에서 열렸었어요 그때음 그때 이제 한국에 오셨는데 북한 사람들도 왔을
거 아니에요 대표들이 그때 이제 최창식 보건 상이 왔었는데 그 사람 이제 만났어요 그니까 오랜만에 만난
거죠 거의 10몇 년 만에 이제 만난 거죠 그래서 얘기를 쭉 이제 들어 보니까 아 오인동 박사께서 이제
기증한 그 인공 고관 절기 표본을 가지고 뭔가를 좀 해보려고 했는데네
92년도 그 몇 태 지나서 바로 이제 고난 행군이 시작됐다는 거죠 북한에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거예요 안타깝게도 그리고 나서 이제 2000년대 들어서서 경제가 다시 이제
회복되니 우리도 이제 이걸 해보자 그래서 인공 관절기를 가지고 이제
따라서 만들어 봤대요 자체 제작을 좀 해봤는데 아 자료 획득에 제약이 많아서 낭패를 봤다 이렇게 얘기를
했다는 거예요 그 이게 인공 간절기에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재질이든 어떤
특수 재질을 쓰냐가 이제 되게 중요한데 그래야 이게 사실 무릎 같은 경우 하루에도 뭐 수없이 이렇게
굽혔다 폈다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이게 마모가 되면 안 된다는 거죠 그다음에이 재질이 또 사람 인체하다
또 맞아야 돼요 그니까 뼈에이 관절을 고정을 시켜야 되기 때문에 이게 안 맞으면 또 뼈 뼈에 이상이 생길 수가
있어서 그래서 인간의 뼈에도 잘 맞고 마모도 되지 않는 내구성이 좋은 그런
이제 특수 폴리에틸렌을 원래 쓴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이런게 이제 북한에 없다 보니까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이제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어이 오인동 박사님이 좀 실수를 하셨대요
무슨 실수를 하셨냐면 그
이제 식사 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쭉 하다 보니까 이제 몇 번 이제 만난 사람이다 보니까 좀 편해 가지고네
최창식 보건상이 뭐라 했냐면 우리가 한참 고생하고 있을 때 오 선생은 한 번도 평양에 와서 도와주지 않았다
이렇게 이제 좀 얘기를 했다는 거예요 왜 와서 안 도와 줬냐 그러니까 아니
나한테 도와와 달라고 초청이도 한번 해 봤냐 이런 식으로 이제 대답을 했다는 거예요
음 근데 갑자기 이제
분위기가 좀 어색해져 버린 거죠 그래서 아 내가 지금 어려운 처지인 동포 테 이런 식으로 를 대답한게 좀
잘못됐다 이렇게 좀 후회를 많이 하셨다 그러대요음 근데 뭐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음 착한 분인 거 같아요 오인 박사님이네 아 좋은 분이죠네 착하기까지
하시네요네 어쨌든 근데 한두 번 가서 뭐 샘플 전달하고 뭐 이렇게 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렇 예 이게 이제 재료부터 해가지고 다 전달이
돼야 되는 이제 그런 상황인데 어쨌든 2008년도에 6로네 해외측 위원회
동포 대회를 워싱턴에서 이제 했는데 그걸 이제 마치고 전 세계 해외
동포들이 다 모인 거예요 거기에 거 다 모였는데 뉴욕에 있는 그 북한의
유엔 대표부가 있어요 거기를 이제 찾아갔습니다이 사람들이 그래 신선호 그때 당시에 이제 대사가 신선호
대사였는데이 사람이 이제 만나 가지고 북한에 대한 지원 사업 이런 것들 계속 얘기를
했대요네 그래서 이제 그때부터 해가지고 매년 북한을 이제 가기
시작한 거예요네 가서 평양 의학대학 병원에서 인공관절 치환 수술도 전수를
해 주고 직접이 수술도 하고 그다음에 관절기 자체 제작하는 것도 좀
도와주고 이렇게 이제 하고 있고이 북한의 의사들이 실력이 많이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유학도 많이 간데요 주로 이제 동유럽 쪽으로 이렇게 독일 헝가리 체코 이런 데에서 이제 유학도
받아오고 중 중국에서도 좀 중국으로 유학하는 사람들도 많이 그래서 알아야 할 지식들은 많이
있는데 이제 재료가 없는게 이제 문제라고 합니다음 인공 관절기게 원래 엄청
비싸거든요 이게 아 그래요 미국에서도 한 벌에 5 6,000 달러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하면 5 600만 원
되는 거죠 아 그 정도 이제 비싼 거기 때문에 사실 보험이 안
되나 이게 쉽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그런 건 아닌 거 같고 만드는 것도 상당히 좀 어려운 거
같습니다네 히 이제 재료 폴리 에틸렌이 이렇게 아까 말씀하셨는데 그러면 이게 석유 화학 제품 아닌가요
그렇죠음 북한에는 당장 뭐 석교를 뽑아서 쓰고 있는 건 아니니까 수입도
많이 좀 제한돼 있고네 그러다 보니까 재료를 구입한 그 마련하는데 상당히
좀 어려움이 될 것 같습니다음 그게 이제 그냥 단순한 폴리에틸렌 아니고 좀 특수한 재질이라 보니까 많이
어려울 것 같아요음 그럼 어쨌든 인공 관절을 좀 주는 거잖아요
북한에
네지 회사들이 수술하는 거죠 그렇죠 그리고 직접 오인동 박사님이 직접
같이 수술을 하기도 하고요네 그래서 한번 이렇게 시범 수술을 해 주고 어 나 다음에 이제
북한 은사들이 직접 하게하고 뭐 이렇게 이제 하는 시기라고 합니다 그럼 북한 의사 실력들이 좀 좋다는
말인 거 같다는 느낌도 드는데 예이 수술 솜시가 상당히 좋다 그래요 이게
기재나 동력 사용 수술 기구가 부족한 속 도이 창의적으로 수술 솜씨를
만들어 냈다 그래요 그 상황에서 그래서 뭐 우리 민족이 원래 젓가락을
잘 쓰기 때문에 수술 잘한다 뭐 이렇게도 말씀하시던데 아네 옛날에 그거
있잖아요 예 그 황무석 박사가 그 줄기 세포 그 연구할 때네 해외
기자들이 물어봤잖아요 어떻게 그걸 할 수 있었냐 그랬더니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젓가락을 쓰기 때문에 할 수
있다 젓가락 문화가 되게 유명하죠 아 아무튼 이게 이게 그 상당히 이제
수술을 하다 보면 미세한 이런 것들 많이 해야 되기 때문에 손재주가 되게 중요한데 이런 섬세한 솜씨들이
서양인들보다 훨씬 잘한다 그래요 서양인들은 일단 손이 커 가지고 그 잘 잘 못 하나 봐요 일단 그리고이
사람 그 북한에서 인공 관절 시제품도 이제 만들기 시작했대요에 그래 이제
오인동 박사님이 좀 격려를 많이 했다 그래요 인공위성도 쏘아 올린 나란데 뭐 핵도 있고 첨당 과학 기술도
있다고 하는데 뭐 뭘 못 하겠냐 기계 깎는 CNC 기술도 세음 이라고 하고 인공 관절기 한번 만들어 봐라 뭐
이렇게 이제 얘기를 했다 그러는데 오인동 박사님 얘기로는 한국에서는 인공 관절기 생산을 못
한다 그래요 아 근데 왜 못 하냐면 기술이 없는게 아니라 돈이 안 되니까
그냥 사다가 쓰는게 훨씬 싸기 때문에 직접 개발 안 한다는 거예요네 그래서 어 북한에서 자체
기술로 이걸 개발을 하면 싸게 만들 수 있을 거니까 한번 남과 북이 합작을 해가지고 이걸 인공 관절기를
만 면 세계 시장에 진출할 수 있지 않겠냐 이런 이제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럼 인공 간절기는 지금 미국에서만 생산되는 건가요 미국에서 많은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뭐 유럽에도 생산하는
나라들이 있긴 있겠죠 주로 이제 미국에서 생산된다고 현재 추축이 되는 거 거네요 어 그건 뭐 알 수가 없죠
아 개발을 오인동 박사님이 하셨다고 하니까 오인동 박사님이 최초로 한 건
아니고 원래 인공 관절이 있는데 아 그 을 한 걸 새로을 하니까 더 이제
좋은 이런 걸 만든 거죠네 다음 주제로
넘어가겠습니다네 북한의 의학품 상황이 많이 열악하다 뭐 이런 얘기 좀 들어갔거든요 실제
어떻던가요 예 일단 오유동 박사님은 자기 전공 분야만 봤기 때문에 의료의
전반에 대해서 얘기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이렇게 좀 전제를 다 하셨고요데 어쨌든 의약품 약품 이런 것들이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이걸 인도적 차원에서 좀 많이네 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 미국의 린튼 재단이라고
있는데 여기서 많이 도와준대요 근데 미국에서 도와주는 거보다 한국이 도와주는게 좋지
않겠냐 이렇게 이제 얘기 하셨고 해외동포 의사들도 알게 모르게 좀
북한을 방문해서 많이 좀 돕고 있다 그래요음 그리고 그 일반 약품이나
위생 제품들 이런 것들이 좀 많이 부족한데네 뭐든지네 뭐든지 많이
지원하면 좋다 이렇게 얘기를 한대요 그래서 미국의 제약 회사나 의료기구 회사들의 기증을 요청하는데 어 더
Bo 더베러 이렇게 기증 요청서를 써서 보내 준대요 그니까 뭐든지 아무거나 좀 제발 많이 좀 기증해
이렇게 얘기를 한다 그래요 근데 이제 한 6년 정도를 계속 북한을 이제
해년마다 들어가고 계신데 갈 때마다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 건 눈에 보인다
얘기를 합니다 그러면은 이제 의학 이야기 좀 넘어가서네 북한 에 뭐
숙소나 식당 뭐 편의 시설 이런 거 전반 이용했을 것 같거든요 혹시 그런 이야기는 혹시 있었나요 평양에 가면
평양 의학대학 병원을 가기 때문에 거기 가까이에 있는 고려 호텔에 머문다 그래요 아침
식사는 호텔 식당에서 하고네음 주로 점심은 수술음 그
병원에서 의사들하고 수술하고 점심을 먹는대요 그뭐 수술실 옆에 있는 휴게실에서 그냥 수술복 분채로 그냥
식사를 한다 그래요네 그리고 이제 주로 먹는 거는 평양 냉면을 좋아하기 때문에 평양
냉면 많이 먹고 그다음에 오리고기를 또 좋아하신다 그래 가지고 오리고기나 이제 뭐 생선 이런 것들이
어 많이 올라 올라온다 그러네요네 그리고 이제 식사하면서도 뭐 수술한
환자 엑스레이 사진 뭐 다음 수술한 환자 얘기 뭐 이런 걸 하고 그러니까 거의 진짜 가서 일만 하시는 거
같아요음 그 여기저기 막 돌아다니고 이런게 거의 없다고 하더라고요네 일만
하고 이제 병원일 다 끝나고 오후 되면은 이제 고려호텔 면담실 북한의
학자들이나 뭐 관료들이 찾아와서 얘기도 많이 하고
그런 이제 뭐 남북
관계나 통일 문제 이런 것들 얘기를 많이 한대요
그도 이제 뭐 미국 소식이나 한국 소식 뭐 이런 것들도
좀 많이 알려 주고음 어 이런 얘기를 하는데 이분이음 북한에 그냥네 좀 쓴 소리도
많이 한대요 북한에서 뭐 뭐 이런 이런 건 좀 잘못된 거 아니냐이 이렇게 좀 해라 뭐 이런 얘기도 좀 많이 하는데
그 이분 쓴 책들 보면은 그래서 북한의 이제 외교 관료들고이 편지 주고받은 것도 좀
나와요 그래서 아 그럼 이제 북한의 관료들이 아 뭐 우리가 이런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했다 뭐 좀 이해를 해 달라 뭐 이런 답변도 보내고
그러더라고요네 그래서 이제 결국 결론은 이분은 평양 시내에 뭐 여기저기 돌아다니지를 않아 가지고
별로 해줄만한 곳이 없다이 결입니다네 진짜 수술에 집중하셨다네
병원만 사실상 병원만 가진 거네요 숙소랑 병원 그렇구나 어쨌든 너무 안타깝다
북한의 어쨌든 고급 식당 좋은 식당이 많이 생겼다는데 못 가셨다는가 너무
좀 아쉬운 거 같 아 근데 한 군데는 간 데가 있대요
그 2012년도
있는데네 명예 의학 박사 하기를 받았어요
북한에서 그래서 아 만수대
의사당에서 이제 이제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국가 학위 학지 수요 위원회이 회장이 있어요 김용진 내각
부총리인 어 이분이 이제 명예 의학 박사를 이제 주는 거죠 그래서 이제
축하 점심 식사를 했는데 새로 그때 막 개점한 해마지 식당이라는 곳에
했대요 아 새로 만들어 가지고 되게 고급스럽게 만드는 곳인데네 내부가
아주 고급스럽고 우하다 그리고 이제 접대원들이 있고 매우 친절하게 어
봉사를 하더라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이제 북한 사람들하고 같이 식사하는데 어 자신이 어 한 턱
대접을 했다고 합니다 오 많 많이 별로 안 비싼가 봐요 한 턱
대접했는데 아 뭐 이제 그 미국에서 돈 많이 보셨으니 이런 데서 이제 한턱 쏘는
거죠 아 그렇구나 어쨌든 그러면은 뭐 그외 좀 넘어가서 북한에 어쨌든 대형
건축물이 좀 많잖아요 거기에 대해서도 좀 뭐 어떤 이야기를 하시 건 있으실까요 북한 어쨌든 건축물을 직접
가보진 않아도 차를 타고 가면은 다 보게 되니까 많이 보셨어요 근데이
기념비적 건축물들이 북한에 상당히 이제 큰 것들이 많이 있거든요 그리고 어 일단 크기도 크고이 모양 자체가
의미를 담아서 만든다 그래요 뭐 예전에 정부 청사나 뭐 박물관 미술관
이런 것들 많이 있는데 대부분 이제 신고전 풍의 서방 건축 양식을 어
쓰고 있다 저는 뭐 잘 모르겠습니다이 뭔 소린지네네 그런 이제 거고 근래 지은
건축물들은 좀 현대적인 어 모양을 많이 띄고 있는데네 일단 북한의 이제
특징이 토지가 모두 국가 소유다 보니까이 건축가들이 설계를 할 때도
그냥 아주 여유 있게 하는 거예요 한 한정을 딱 지어 가지고이 좁은 공간 안에 어떻게 해야 된다 막 이런게
없고네음 땅을 넓게 여유 있게 쓰면서 여유 있게 자기들의 이제이 예술성을
막 발휘할 수 있다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음네 어쨌든 토지가 국가
소유다 보니까 건물 모양이 막 바뀌는 거예요 그렇죠 국가이 건물 모양이 자유롭게 이제 형상할 수 있는 거죠음
그래서 이제 이분 인동 박사님 얘기는 뭐냐면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쨌든 부동산 값이 비싸기 때문에 주어진
대지 위에 가장 경제적 효율을 높이는 그런 방식으로 짓게 된다 그러니까 결국 뭐냐 성냥갑 모양의 건축물 밖에
지을 수가 없다 이렇게 이제 어 얘기를 하고 한국에 아파트 단지를 보면은 무섭다는 느낌까지 든대요 너무
똑같은 건물들이 막 수백 채식 있잖아요 맞아맞아 그런게 있데 북한에서는 그런 이제 제약을 안 받다
보니까 아파트도 뭐 원형으로 짓고 타원형으로 짓고 막 다양하게 이제
변화 무쌍하게 이렇게 어 건물들을 짓고 있다 그래요음 그리고 뭐 아주 시 아주 넓고 시원시원하게 이렇게
많이 만든다 그럽니다네 음 그리고 이제 최근에 완공된 그 창전거리
그리고 뭐 김일성 종합대학이 교원 숙소 이런데 이제또 보셨는데 아 뭐
지붕 꼭대기에 뭐 책 책을 펼쳐 놓은 모양을 형상을 한다거나 이런 식으로
어 나름 건물을 지을 때도 의미를 부여해서 이렇게 이제 짓고 뭐 인민대학습당 같은 데는 기와집
지붕으로 이렇게 쭉 만들어서 어 아주 색깔도 시원시원하게 이렇게 잘 만든
근데 여기가 동양 최대 건축물이라 그래요 이민대 학당이 그렇게 큰 건물인가 봅니다 동양
최대요금이라 그러네요 아무튼 이런 특징들이 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 어쨌든 건축 조회도 전반적으로 뭐 그렇긴 한 거 같긴 한데 건축
뿐이에서도 조회가 좀 깊으신 거 같거든요네네 그렇죠네 그 기자님 말고
그분이네 그런데 북 건물 이름 자체가 좀 특이한게 많잖아요 그리고 좀
이름이 약간 유치하다는 느낌도 들어요 궁전 이런 거 하니까 궁전네 그 이름
얘기도 좀 하더라고요 어린 학생들의 과외 학습장을 그냥 무슨 학생 회관 뭐 이렇게 지으면 너무 무덤덤하지
않느냐 그래서 많은 학자들의 고민 끝에 학생 궁전이란 이름을 붙이지 않았겠는가 이렇게 좀 얘기를
하더라고요 어린이들이 나라의 보이 아니냐 그래서 궁전에 잘 모셔야 된다 뭐 이렇게 얘기를 하고 그 북한의
국민 묘지가 있을 거 아니에요 북한에도 근데 북한의 국립 묘지는 이름이 혁명 열사릉 애국 열사릉 이런
식이거든요 그러니까 묘지라고 하지 않고 링이라는게 원래 이제 임금의 무덤을
능이라고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아이 애국 애국자들을 국립 묘지에 이렇게
딱 안치할 때 여기를 이제 응이라고 표현한 거 자체도 상당히 이제 신경을 많이 썼다 이름 하나 짓는데도 신경을
많이 쓰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셨다 그래요 그렇네 생각하지 못했는데 진짜음
그러면 어쨌든 미국에서 뭐 쭉 오래 살다가 오신 거잖아요 북한에 아 오신게 아니죠 갔다 온 것인 거죠네
그러면 어쨌든 문화적 차이도 좀 있었을 것 같거든요네 그 미국에서 이제 워낙 오래 살다 보니까 미국식
문화에 아주 익숙하실 거 아니에요 근데 이제 북한에 딱 갔는데이 문화적 차이를 많이 느꼈어요
그 진짜 어려웠을 것 같아네 그중에서 이제 가장 딱 눈에 띄는게
뭐냐면네이 미국이나 한국은 개인 중심의 문화인데 북한에서는 집단 중심의 문화가 아 전반적으로 다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자기 개인보다는 나라나 뭐 통일 문제 이런
거에 상당히 마음을 다하더라 공부를 해도 뭐 조선을 위해 배우자 뭐 이런 구호를 붙여놓고
그다음에 뭐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뭐 이런 표 표들도 많이 붙어 있고 이렇게 됐다
그래요네 그래서 이런게 있고 그다음에 그 북한 의 또 이제 특징 중에
하나가이 북한의 지도자들에 대한이 주민들의 이런 자세 이런 것들이 좀
특이하잖아요
우리 한국이나 뭐 서양에서는 사실 좀 이해하기 힘든
그런 이제 모양들도 많이 보는데 예를 들면 이제 오인동 박사님 가셨을 때 그 김일성 주석 사망 4년
뒤였는데 그때 기록 영화를 보면서 그때도 사람들이 기록 영화를 보고 막 눈물을 흘린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
그냥 잘 이해 못하는 사람들은 저게 뭐지 왜 저 러지 막 좀 그렇게
이해할 수 있는데 어쨌든 자 본인이 봤을 때는 그니까 오인동 박사님이 봤을 때는 그게 진심에서 우라는
눈물이다 이렇게 이제 얘기하고 그고 본인들이 그렇게 눈물을 흘리는데 그거
가지고 누가 뭐라 하겠느냐 이렇게 이제 얘기를 하더라고요 또 이제 비슷한 얘기가 또
그 2년이었다 지나가는데 그때 이제
겨울이여 가지고 눈이 막 내리는데 거기에 이제 그 민 외투를 벗어서 이제 막 깔아주고 막
그랬단 말이에요 도로 위에 뭐 그런 것들도 보면서 어 저것도 그냥 그들의
진심이라는데 뭐 어쩌겠느냐 어 그걸 우리가 이해 못한다고 뭐음 굳이 뭐 그런 걸 문제삼을 필요
없다 이렇게또 얘기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이제 비교한게 뭐 한국의 옛날 얘기인데 이승만 대통령이 그
결국 이제 쫓겨 나잖아요 하와이로 망명하자아요 근데 청와대를 쫓겨나는 길에 길에 서서 그 우는 사람들이
있었대요음 어 저 저는 뭐 그때 안 살아서 모르겠는데 우는 사람도 있고 환호하는 사람도 있었다는 거예요
그다음에 그 박정희 대통령이 어쨌든 독재자였던 했는데 그래도 결국은 이제
총맞다 죽으니까 사람들이 어 막 눈물을 흘리는 사람 국민들이 있었다는 거죠 뭐 그런 것과 뭐 비교해 보면
뭐 이해할 수 있지 않겠냐 뭐 이렇게 이제음 얘기를 하더라고요네 그래서 어쨌든
오인 박사님 얘기는 직접 만나봐야 된다 사람들이 북한 사람들 직접 만나보고 어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얘기도 하고 이래 이래야 북한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음네음 그러면은 이제 뭐 문화에 대한 얘기 했으니까 또 넘어가서 전반적으로 한국이랑 북한이랑
뭐 미국 관료들을 많이 만나봤을 것 같거든요 예 이분이 많이 만나봤어요 실제로 네네네 그랬을 것 같아요 근데
좀 궁금해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예 뭐 이런 거 그 아무래도 이제 통일 문제를
가지고네 남북미 관료들을 다 만나 봤대요 근데 이제 한국의 경우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통일부 장관들을 여러 번 이제 만나서 얘기를 나눴는데 어 좀 의견들을 많이 공감을
했대요 본인의 의견도 많이 이제 좀 공감을 해 줬고 어 어려움 없이
자신들의 이제 요구 의견 이런 것들도 잘 받아들여줬다 그래요 근데 어 국민들
중에서이 북한에 대한 인식차가 좀 크다 보니까이 특히 이제이 수구
보수층 이런 쪽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데 어려움이 많아서 실제로는
잘 안 됐다 그래요 여러 가지 뭐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음 정책들은
있었으나 결국 안 됐다 그다음에 이제 이명박 박근혜 정부 같은 경우는 뭐
통일부 장관이나 이쪽 관계자들을 만나고 싶어도 별로 그런 기회나 자리가 마련되지 않고 있대요
네 좀 안타깝다네 그래서 아니 생각이 다르더라도 어쨌든 만나서 좀 토론을
해야 될 텐데음 그런 이제 기회가 많지도 않고 사실 한국에 자주 오는 편은 아니기
때문에 1년에 뭐 한 번 정도 오는데 그럴 때 이제 딱 기회를 잡아서
만나야 되는데 그게 좀 잘 안 됐다 그래요음 어 그리고 또 한 가지는 1990년대 전반과
중반에이 통일부 쪽 사람들이 이제 미국에서 열린이 회의에 참석을 했대요
한미 전현직 관료 학자 회의 이런게 있나 봐요 이제 이런 사람 그 그래서
미국에서 이제 본 거예요 아 한국의 이제 통일 관계자들을 이제 봤는데
실망을 많이 했다 그래요음 자세한 얘기는 안 해 주셨는데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한국이
왜 미국의 종속적이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그래서이 그 한국의 뭐 국방부 쪽
사람들 뭐 통일부 쪽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미국에 와서 말하는 걸 보면네 로서 수치심을 금할 수가
없대요 그래서 아이대 저러든 남녀 보수층이 이제 큰 문제다 이렇게
얘기를 하시더라고요음 그러면 어쨌든 좀 미국 관료들은 어떨지 좀 궁금한데
갑자기 예 미국 쪽 관 관료들도 많이 만나봤다 그래요 그래서 특히 이제
6일로네 그 6일로 해외본부 6일로 해외본부 미국 위원들고 같이 뭐
상하원 외교 위원회 또 뭐 방문해 면담도네 하고 막 국무부 찾아가서 면담도 하고 그랬는데 어 미국
관료들은 일단 점잖고 여유 있고 우아하고네 얘기하면 다 들어주고
그런데요 어 근데 정책은 안 바뀐대요 뭐지 들어주기만 잘 들어준다는
거예 그냥 이제 좀 미국에도 한반도 전문가들 중에 좀 양심적인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좀 공감을 해 주는데 어 현직 관료들은 보통 이렇게
그냥 예 바르게 앉아만 있지음 정책을 실제 받고 반영을 해하거나 그러진 않는다 그래요 그리고 이제 미국이란
나라가 어쨌든 큰 나라지 않습니까 뭐 국토도 크고 뭐 국력도 크고 근데
이게 이제 우리 민족한남 하지만 남북이 하나의
목소리를 내면 미국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또 얘기를 하셨습니다
그러면은 미국 뭐 관료들 아지 얘기는 좀 들어봤고 이제 다음 북한 관료들
어떤가 궁금합니다 북한의 이제 관료들 만나서도 얘기를 많이 했는데 일단 좀 그 답답한 점이 많다 그래요 왜
그러냐면이 북한에서는이 관료들이 자기 개인 생각을 달 얘기를 안 한데요 아
그래서이 국가 정부의 어떤 정책 공식적인 입장 이것만 얘기를 하지
자기 개인 얘기를 잘 안 한대요 그러니까 토론을 해도 뭔가 좀 재미가 없는 거예요 자기만 일방적으로 얘기를
하게 되고 상대방은 뭔가 이렇게 자기 속내를 얘기를 안 해 주니까 좀 이제 답답하다 그래서 북한 의 이제 정책
결정 과정 자체가이 밑에서부터 의견 수렴을 쭉 거쳐 가지고 토론을 아주
오랫동안 치열하게 해서 그걸 정책으로 딱 만든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 정책을
그대로 집행을 해야 된다는 거죠 그러니까 이제 관료 어느 한 관료가 생각이 좀 다르다고 해도 그 사람은
그 자기 생각대로 일을 하는게 아니에요 그냥 결정된 그 정책에 따라서 일을 하는 거지 그러다 보니까
북한 관료들은 누구를 만나서 얘기를 다 똑같은 얘기 토론은 이제 집체적 해서 각기 다른
얘기를 막 하다가도 토론할 때 그렇게 하다가도 결정이 되면 무조건 좀 그
결정된 대로 한다 이할 수요 그죠 예 그래서 이제 뭐 좀 자신은 사실 이제
개인 자유주의적이 사고에 빠져 있는데 북한 관료들 아고 이제 얘기를 하다 보니까 많이
답답했다 그리고 이제 어쨌든 상당히 그 얘기는 잘 듣는데요 얘기는 잘
듣는데 어 얘기를 안 해서 문제지 전반적인 좀 봤을 때 좀 통일을 바라
입장에서 마른 고민과 노력을 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좀 많이 들어요네 그렇습니다 네네 어쨌든 좀 북한 뭐
한국 그다음에 미국 관료들 얘기까지 좀 잘 들어봤습니다
네 마지막으로 혹시
이제 오인동 박사님께서 하신 이야기네 같은게 있을까요 네네 그 미국에서
남과 북을 바라볼 때 어 해외동포 입장에서 아 아
남과북이 천년 이상을 한 민족으로 이렇게 한 결례로 살았는데 지금 너무
많이 다르다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이런 이제 생각이 든데요 일단은 이제 북한 같은 경우는 자고 가난한데
혼자 힘으로 미국 같은 나라를 상대로 해서 어 마음대로 막 한다는 거예요네
근데 한국은 북한에 비해서는 인구도 많고 경제적으로도 수십배 어 더
큰데도 어떻게 이렇게 자주성이 없을까 아 이제 생각을 많이 하셨다 그래요네
그래서 이분은 이제이 통일을 어떻게든 좀 해보려고 남북미 이렇게 와 오고
가면서 계속 얘기를 하다 보니까 그런 것들이 좀 눈에 많이 들어왔나 보더라고요음 그랬던 거 같 그래서
이렇게 되다 보니까 결국 남가 북이 이런 차이가 있다 보니까이 미국한테
계속이 요리를 당하는 거 아니냐 그래서 그게 되게 안타깝고음 어
남과북이 갈라지지 않고 하나로이 딱 모였을 때음 음 미국의 방해라는 이런
것들도 이겨낼 수 있지 않겠나 그런 점에서 좀 많이 반성을 해야 된다
이렇게 얘기를 하셨습니다 아네 마치 박사님이 오신 거 같이 생생하게 얘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네 다음으로 이동훈 기자님께서 댓글을 준비해 오셨죠 예 오늘 아 또 댓글 달아 주신 분이
계셨습니다 아 다행이다네네 아름다워라 닉네임을 쓰는 분이신데요 북한에서 체하는 거 뻔
하죠 저는 성이랑 금강산 쪽을 여행해 봐서 잘 모르겠지만네 북한 특히
평양에 다녀오신 분들의 말씀에 의하면 음식도 자기 마대로 못 먹고 무조건
젊은 여성 접대원들이 주는 거 이외의 음식들은 먹을 수 없다고 할 정도로 그렇게 통제를 한다더군요 이렇게
남겨주셨습니다 좋은데 건 아니네요 뭐라 뭐라 해야 될지 겠네 좀 말이 안 되 스스로 쓰면서도 말이
안 된다는 생각 안 들었을까 모르겠네요 뭐 음식을 뭐 주는 것만 먹을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얘기는 그
평양에 다녀오신 분들 중에 어 누가 그런 얘기를 했는지 모르겠는데 한 번도 전 그런 얘기 못 들어왔거든요
어 아니 그냥 저는 주는 거 먹 먹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해 봤는데네 원래
주는 거만 먹는 거 아닌가요 아니 예를 들어서 식당에 가면 주문을 할 거 아니에요 아 오늘은 육계장 뭐
내일은 냉면 뭐 이런 식으로 주문을 하는 건데네 주문을 하면 그 주문한 걸 먹는 거지 무슨 식당에 앉아
있으면 자 당신은 오늘 냉 명만 먹으시오 뭐 이렇게 갖다 주는 건 아니요 아마 좀 그랬던 거 같은데
관광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다 이제 예약을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녁 식사나 아침
식사나 이런 것들이 다 메뉴가 대체로 이제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결정된 경우가 좀 가끔씩 있지 않을까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좀 들어고 원래 그런 건 다 있는 거잖아요 관광 상품에 다시 다 껴 넣어 가지고
그렇죠 저 제가 저도 그 해외 여행 가면 단체 관광을 가니까 식당에 가면
메뉴가 다 정해져 있어요음 딱 가서 앉아 있으면 알아서 와요 그럼 그거 먹어요 그랬던 걸 좀 약간 그걸 무슨
통제라고 합니까게 아닌가 생각 좀 들고네 뭐 여성 접대원들이 주는 거
이외의 음식들을 먹을 수 없다 이건 이것도 그냥 안 시켰으니까 먹을 수 없겠 먹 그런 거
같습니다네 어쨌든 뭐 그래도 댓글 달아 주신게 어딥니까 댓글 달아 주셔서 감사합니다네 악플도 무플
무플보다는 훨씬 좋습니다네 이상으로 4월 24 인네 스케치 방송을
마치겠습니다네 주말이에요 주말 잘 보내시고 저희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네 안녕히계세요
[음악] 안녕히계세요 신은미 황은 왜 테러를
다했을까 그들은 통일 콘서트에서 어떤 말을 했을까 했던 그들은 무엇을
봤을까 되 종국 무리에 중독된 사회 당신은 종북 중독에서
자유롭습니까 [음악] 신은미 황선 문제 아줌마들의 통일대
담집 그래도 나는 노래하리 교보문고 알라딘 인터파크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도사 출판 [음악]
대오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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