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25

[정치이념성향 톺아보기⑦-4/4] 자유민주주의는 어떻게 탄생했나:김민철의 공헌 및 "민본주의"라는 허상 < 정치이념성향 톺아보기 < 김대중 < 기사본문 - 스탠다드

[정치이념성향 톺아보기⑦-4/4] 자유민주주의는 어떻게 탄생했나:김민철의 공헌 및 "민본주의"라는 허상 < 정치이념성향 톺아보기 < 김대중 < 기사본문 - 스탠다드



[정치이념성향 톺아보기⑦-4/4] 자유민주주의는 어떻게 탄생했나:김민철의 공헌 및 "민본주의"라는 허상
김민철의 아카데미즘·스콜라쉽의 어느 훌륭함
그의 책은 바로 한국지성의 이런 눈어두움을 밝혀주는 빛나는 어느 횃불
중화문명의 민본주의民本主義 서사들은 데모크라티아가 아니다
중국민본주의라는 것은 잡아먹기위해 아껴주는 가축들의 사육이론과 같은 것 수군작 서사제도연구자
입력 2024.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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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정치이념성향 톺아보기⑦]은 글이 길다. 그래서 4개로 나누어서 연재한다. 연재순서는 아래와 같다. (순서 및 내용은 변경가능함) 오늘이 그 마지막이다.






<1/4> 자유민주주의는 어떻게 탄생했나: 피플의 분화 및 3종류의 피플주의
1. 피플이란 무엇인가? 그 역사적인 분화를 추적해보자

2. 학술용어·개념들은 반드시 지성사적으로 파악되어야만 한다

3. 피플주의의 3종류: 자유주의 vs 공산주의(또는 전체주의) vs 자유민주주의



<2/4> 자유민주주의는 어떻게 탄생했나: 데모크라티아에대한 악평들 vs 호평들의 지성사

4. 2천5백 여년간의 데모크라티아에대한 악평들

5. 몇몇 데모크라티아에대한 호평들

6. 루쏘 너 마저!



<3/4> 자유민주주의는 어떻게 탄생했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접합되다(3/4)

7-1. 콩도르세

7-2. 콘술라트 시기의 데모크라트들: 앙토넬

7-4. 차티스트운동과 서프러제트-페미니즘운동



<4/4>

8. 김민철의 아카데미즘·스콜라쉽의 어느 훌륭함

9. 중화문명의 <안민·양민·귀민·애민·휼민·구민·중민·위민·보민> 서사들은 과연 데모크라티아일까?



8. 김민철의 아카데미즘·스콜라쉽의 어느 훌륭함

이번 모임에서, 버나드 크릭의 『민주주의를위한 짧은 안내서』와 김민철의 『누가 민주주의를 두려워하는가』, 두권을 나는 발제를 했다. 크릭 책은 정평있고 권위만땅인 옥스포드대학 출판부의 《베리 쇼트 인트로덕션》이지만, 내 경우 그닥 질좋은 통찰을 많이 얻지는 못했다.

그에 반해 김민철의 책은, 한국학술장의 평균일반적인 지성수준을 불신하는 나에게 단비같은 일깨움을 줬다. 크릭이나 김민철이나 (그리고 내가 읽은 이런저런 관련책들도) 데모크라티아에관한 악평 및 호평들을 다룬다.

하지만, <왜 어째서 어떻게 데모크라티아에대해 호평하는 호의적인 담론서사들이 근대서양에서 발현됐나>를 버나드 크릭은 해명하지 못한다. 크릭 뿐만 아니라, 이제까지 내가 읽은 그 어떤 책들도 이 테마·토픽을 해명못했다.

그러나 김민철은 근거를 내놓으면서 악평들에 맞서 호평의 발현을 논증해 내고 있다. 이 점이 내가 감명받은 지점이다. 이것이 내가 인정하게 된, 김민철의 스콜라쉽·학자됨 또는 아카데미즘·학술내공의 뛰어남이다.

문외한의 어느 겐또이지만, 만약 김민철이 캠브릿지지성사학파의 어느 멤버로 인정받게 된다면, 그 까닭은 아마도 그의 이런 스콜라쉽에대한 학술적인 인정 때문이지 싶다.






김민철로부터 내가 배운 두가지는 아래와 같다.




하나, 루쏘에대한 착각을 바로잡다: 이것은 지난번글 속 「6. 루쏘, 너마저!」에서 다뤘다. 흔히들 루쏘를 근대데모크라티아의 시조라고들 알지만, 정작 루쏘는 데모크라티아를 디스어프루벌/불찬동하거나 또는 불가능하다고 봤다, 이점이다.



다른 하나, 앙토넬의 "레프리젠타티브 데모크라티아 이론"을 복권해냈다. 이것은 프랑스대혁명 기간에 일어났는 데, 지난번글 속 「7-1. 콩도르세」 및 로베스피에르와 나폴레옹 사이에 낀 1795~1799년 총재정부기에 「7-2. 콘술라트 시기의 데모크라트들: 앙토넬」에서 다뤘다.

정치철학 일반 및 특히 데모크라티아에 관심있는 한국지성들이라면, 김민철의 책을 나는 필독서로 반드시 강추하고자 한다. 어느 학술용어컨셉 하나에는 사람인류의 피ㆍ땀ㆍ눈물의 역사가 배어 있다. <대의제 데모크라티아>라는 개념도 그러하다.

콩도르세 및 앙토넬같은 프랑스대혁명 데모크라트들이 없었다면, 그들의 땀과 피가 없었다면, 그들이 <큰나라에서 대의제 대모크라티아의 실현됨>을 논증해 두지 않았더라면, 미국의 코먼피플들에게도, 19세기 후반 영국의 서프라제트들에게도, 20세기 초 러시아의 소비에트에게도, 1920년대 일본의 다이쇼 데모크라트들에게도, 1945년 남한 피플들에게도, 오늘날에 와서는 당연시되고 있는, 이 리버럴데모크라티아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당근 자유주의와 데모크라티아의 접합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근대 100여년 한국지성사의 약점은 <자유주의가 뭔지 모른다>는 것이고, 동시에 <데모크라티아의 이런 역사적인 형성과정에 눈어둡다>는 것이다.

김민철의 책은 바로 한국지성의 이런 눈어두움을 밝혀주는 빛나는 어느 횃불이다, 이렇게 나는 찬사하고자 한다.









9. 중화문명의 <안민·양민·귀민·애민·휼민·구민·중민·위민·보민> 등의 민본주의民本主義 서사들은 과연 데모크라티아일까?

이제까지 서양지성사를 훑어봤다면, 이번 글의 마지막에서, 중화문명의 정치철학에도 과연 <데모크라티아> 서사소가 있을까에 대한 나의 뜬금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소공권 『중국정치사상사』

리쩌허우 『중국사상사론1,2,3』

이정우 『세계철학사2, 중국편』

신정근 『철학사의 전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민본주의" 항목

류쩌화 『중국정치사상사1~3』

북경대 철학연구원 『중국철학사 1~4』

김영민 『중국정치사상사』

거자오광 『중국사상사1,2』

이를 위해, 나는 위 총 9개의 소스들을 뒤적였다. 그리고 "민본" 관련글귀들을 쭈욱 훑어 최대한 뽑아추렸다. 먼저, 결론부터 얘기하고, 그다음 논증해 나가보자.

중화문명 속의 정치철학 담론서사들에<민본주의> 담론서사들이 실재실존한다고 중국정치철학연구자들은 모두 여긴다. 그러나 연구자들 사이에서 '과연 중국전통정치철학들의 민본주의가 근대서양의 리버럴데모크라티아인가>에 대해서는 그 관점이 제각각이다. 그러나 그 작은 차이들보다 더큰 공동분모들을 중심으로 알기 쉽게, 크게 두종류로 나는 구별분류하고자 한다.




소공권·리쩌허우·신정근·이정우·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민본주의"가 과연 서양(근대)데모크라티아인지 아닌지는 불분명하지만, 최소한 근대데모크라티아로의 잠재적인 씨앗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일종의 복지국가론이다



진독수·북경대·류쩌화·김영민·수군작: "민본주의"를 전근대지배계급의 통치이데올로기로써 보는 관점은 진독수-북경대-류쩌화-김영민-수군작이다.



9-1. 소공권·리쩌허우·신정근·이정우·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중국정치철학의 "민본주의"를 서양데모크라티아에 견줘, 이들은 대부분 의식적으로 비교분석하고 있지는 않다. 달리말해, 명확하게 <민본주의= 데모크라티아>라고 이들은 밝히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대체적으로 "민본주의"에 호의적임은 확실하고, 비록 전근대지배계급의 통치이데올로기이지만, "대동세상-복지국가"를 향한 어느 비전이라고 그것을 이들은 해석한다.






"민본주의"는 서양(근대)데모크라티아인지 아닌지는 불분명하지만, 최소한 근대데모크라티아로의 잠재적인 씨앗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일종의 복지국가론이다




소공권의 『중국정치사상사』

9-1-1. 소공권

소공권 『중국정치사상사』 1,444쪽의 경우, 검색결과는 대충 35개 정도가 나온다. 소공권이야말로, 서양데모크라티아에 대한 정연한 자기의식적인 비교분석이 없이, <민본주의·민본론·민본사상·데모크라티아>에대한 가장 전통적인 해석관점을 보는 주는 어느 경우이다. 그러니까, 중국정치철학책들 속의 "안민·양민·귀민·애민·휼민·구민·중민·위민·보민"을 그냥 <민본주의>라고 관습적으로 즉자적으로 여기는 대표적인 어느 사례가 소공권이다.




춘추 이전의 사람들도 정치생활을 하였으니, 어찌 정치에 대한 관념이없었겠는가? 『시경』과 『서경』과 같은 옛책에 나오는 천명(天命)과 민본(民本)이나 예악(禮樂)과 병형(兵刑)에 관한 개념들은 이미 모두 선진의 각 학파들이 채용했던 것이고, 그것들은 중국정치사상의 기본적인 요소를 이루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옛 개념들은 본래 체계적이 못 되었고, 그 함의 또한 비교적 간단했다. 우리는 그러한 과거의 것과 선진 대가들이 발전시키고 바로잡은 개념들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그것들은 그후에 비로소 찬란하게 문채를 이루고 온축 심원하여져서 각 학파의 학설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옛것을 녹여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일은 실로 창조라고 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다.(10쪽)



*소공권이야말로, <민본주의·민본론·민본사상·데모크라티아>에대한 가장 전통적인 해석관점이다.



유가의 맹자 일파는 민본주의를 강조하였다. 진, 한 이후에 있어서 민본철학과 전통적인 유학과의 관계는 도가와 유가와의 관계와 다소 흡사했다. (24쪽)



유가의 민본위 철학은 대체로 종법봉건사회의 유풍을 이어받은 것이고, 법가의 군본위 철학은 종법봉건제도가 쇠미하게 된 이후의 산물이다. (303쪽)



가의의 ... 민본설은 맹자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508쪽)



*이처럼 춘추전국 제자백가 써뒤 진한당송원명청까지 1,233쪽에 걸쳐 <민본주의 유학자들>을 소공권은 쭈욱 나열한다. 다만 민본주의라는 것에대한 자기의식적인 문제의식이나 메타인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리쩌허우의 『중국고대-근대-현대사상사론』

9-1-2. 이택후/리쩌허우

리쩌허우 『중국사상사론1,2,3』 총 1,799쪽에서는 "민본"으로 6개, "민주주의"로는 235개가 나온다. 이택후는 "민본주의"를 명시적으로 <민본주의= 데모크라티아>라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은근쓸쩍 그렇다고 여긴다 싶다.

이것은 마치, '니들한테 있는게 우리에게라고 왜 없겠냐~! 우리집에도 항금송아지있었어~!'라는 격이라고나 할까? 근대서양에대한 어느 열등감·자격지심·인정투쟁을 리쩌허우에게서 나는 느낀다.

그리고 이런 주장에는 황태연 부류의 <유학근대성/서양계몽주의의 시원은 유학/유학공화주의> 또는 리콴유의 <유학자본주의>와도 가닿는 무엇이 있다고 나는 본다. 이들에 따르자면, 중화문명의 "태평성대 대동세상"이야말로, 참답고 진정한 데모크라티아 소사이어티인 것이다.




공자가 지지하던 주례(周禮)는 본래 주공(周公)이 창제한 씨족귀족제를 규범화한 제도이다. 여기에는 원시적인 의미의 인도주의와 민주주의의 잔재가 들어 있다. 고전 문헌학과 현대의 민속학은 이런 관점들을 증명해낼 수 있을 것이다.(1권 42쪽)



*이건 <민본주의>를 <원시적인 부족민주주의>로 여기는 글귀이다.



(청왕조 황종희의 철학은) 근대적인 민주주의 관념에 매우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민족전통에 근원하고 있는 원시유학적인 민주사상이 새로운 현실조건 속에서 새롭게 발전된 것이다.(1권, 543쪽)



천두슈/진독수의 주요한 흥분점은 시종일관 정치였다. 그는 정치의 각도에서 문학의 혁신을 바라봄으로써, 후스의 '팔불주의'(八不主義)를 돌파했다. 천은 공맹과 정·주를 구분하고 중국전통의 민본주의와 서양의 근대적 민주주의를 한데 섞어서 이야기하는 것에 반대했다. (3권, 36쪽)



둘째, 진독수/천두슈는 공교 곧 유학의 민본주의와 근대 서구의 민주주의는 근본이 다른 것임을 강조하여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무릇 서구의 민주주의는 인민을 주체로 하는 것이나... 이른바 인민이 보고 듣는 것(民視民聽), 이른바 인민이 귀하고 군주는 가볍다는 것(貴君輕), 이른바 인민은 나라의 바탕(民惟邦本)이라는 것은 모두 군주의 사직, 즉 군주의 조상이 남겨준 가산(産)을 본위로한다. 이러한 인민(仁民)·애민(愛民)·위민(爲民)의 민본주의는 모두 다 근본적으로 국민의 인격을 취소하는 것으로, 인민을 주체로 하는 민주주의에 의한 민주정치와 결코 같은 것이 아니다... 옛적의 민본주의를 현대의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은 말가죽을 범가죽으로 속이는 것이다. 이른바 큰 도(大道)가 행해지면 천하가 여러 사람의 것이 된다는것은 군주의 선양(禪)을 가리키는 것이지 민주공화와는 전혀 다르다. 현대 생활은 경제를 명맥으로 하고 있으며, 개인독립의 원칙이나경제학 생산의 대법칙은 마침내 윤리학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현대 윤리학에서 개인의 인격적 독립은 경제학에서 개인재산의 독립이 이를 증명하여 마침내 움직일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사회의 풍기나 물질문명도 이 때문에 크게 진보했다. 그런데 중국의 유자들은 강상으로 가르침을 세우고 있어 아들이나 아내가 되는 사람은 개인의 독립된 인격을 완전히 상실하고 있으며, 또한 개인의 독립된 재산도 없어 부형(父兄)은 그 자제(子弟)를 키우고... 자제는 그 부형을 받드는데... 이것은 개인독립의 원칙과 아주 다르다. 강 선생 (강유위를 가리킴)은... 개인독립주의는 공자에게서 이미 나타난다고 말하는데 이 말은 정말 잠꼬대와 같다." (3권, 185~ 186쪽)



“인민을 위해 주인이 되는 중국고전의 민본주의를 근대 서구의 "인민을 주인으로 한다"는 민주주의와 혼동하고, 원시유학과 후세유학, 도통(道統)과 '정통'(政統), 사학(私學)과 관학官學)을 확연히 천두슈는 구분하고있다. 물론 이것들은 구별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공통점, 그것들이 의지하여 성장해온 공동의 토양과 기본성질이 더 주요하다. 전통을 긍정·계승하고 공문유학도 포함하여 그 가운데에서 일부를 흡수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3권, 187쪽)



*이처럼 이택후는, '진독수처럼 구별하는 것도 일리가 있지만, 그 가운데 공동분모를 흡수하는 것은 문제없다'라고 여긴다. 그러니까, "민본"이라는 컨셉을 <데모크라티아>라고 은근쓸쩍 이택후는 간주하는 것이다, 이렇게 나는 본다.
신정근의 『철학사의 전환』

9-1-3. 신정근

신정근 『철학사의 전환』에서는, "민본"은 0이지만 대신 "신민"이 27개, "인민" 111개가 나오는데, 그 관점은 <전통적인 해석관점>이고, "민주주의"는 20개 나오지만 모두다 <서양전통관점>이다.

신정근은 분명히 <민본주의≠데모크라티아>라고 여긴다는 점에서, 어찌보면 앞의 소공권·리쩌허우와는 다르다. 하지만, '서양데모크라티아는 무엇이고, 민본주의는 그것과 왜 다른지'를 신정근은 논증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민본주의= 복지국가"라고 여긴다. 이에 그 다른점을 밝히면서, 첫째그룹에 그를 나는 분류했다.




유가는 비록 신민을 주권자로 여기지는 않았지만 인민의 생명과재산을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인민의 복지국가를 만들고자 했다. 이로써 국가는 군주의 사적 기구로 변질되는 길을 예방하고 인민에게 적대적이지 않고 우호적인 기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26쪽)



근대의 개막과 더불어 동아시아인은 4민의 신분제에서 벗어나 천민·공민·인민·국민이 되었다. 하지만 천민·공민 인민·국민은 개별적 주체로서 개인이 되지 못하고 민족적 주체로서 한국인 중국인·일본인 등이 되어야 했다.(46쪽)



따질 필요도 없이 서주시대는 민주주의 시대가 아니다(101쪽)



과학과 민주주의는 중국이 모방해야 할 이상이자 실현해야 할 과제였다. (506쪽)



근대 중국에서 과학과 민주주의의 위상이 얼마나 높았던지 각각 싸이선생先生(science)과 더선생德先生(democracy)처럼 인격화되어 표현될 정도였다. (506쪽


이정우의 『세계철학사2』

9-1-4. 이정우

이정우 『세계철학사2, 중국편』에서는 "민본"이 5개 나오는데, 여기까지는 그냥 소공권같은, 전통적인 민본주의 관점을 채택하고 있지만, 살짝 다른 점은 "민본주의"를 <피지배계급의 피플주의 곧 "민중사상">이라고 여기면서, 여기서 "현대 데모크라티아를 예비한" 잠재적인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 지점이 의미심장한 바는 운동권386 특유의 황당한 어느 개통철학 일반을 그 또한 무의식적으로 당연시하며, 그것에 빠져있음을 증거한다.


성선에 바탕해 민본을 구현코자 하는 길(유가)



(맹가는) 양→ 제 → 추→ 등(鄧) → 노로 주유하면서 자신의 민본사상을 펼쳤지만, 이를 전격적으로 수용한 왕/공은 없었다.



그렇다면 '인'으로 다스려지는 국가는 어떤 국가일까? 바로 '민본(民本)'의 국가이다.



오로지 인정과 민본을 외치는 맹자의 철학



근대 동북아 지식인들에게 절실했던 또 하나의 시대적 과제는 봉건사회의 한계를 돌파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민본주의를 창조해내는 것이었다. 이것은 결국 첫 번째 과제로서 논했던 근대적 주체의 개념화의 또 다른측면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현대 민주주의를 철학적으로 예비한 이 '민중사상'은 근대적 '실'학의 또 다른 국면이다. 그러나 민중사상은 종종 네이션주의와 착잡하게 얽혀 전개되기도 했다. 네이션주의가 화이질서'로부터의 탈주 또는 서유럽 제국주의에의 저항 운동이었다 할 때, 이 화이질서, 제국주의가 또한 지배계급의 억압적 철학인 한에서, 그것은 네이션주의와도 연계되었기 때문이다. 네이션주의와 민중사상은 우선은 별도의 구분되는 철학적 갈래였으나, 동북아세계에서 양자는 흔히 결합되어 나타났다.



*이것은, <민본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창조주체가 2신분왕공귀족이었다는 진독수-소공권-북경대-류쩌화 같은 전통적인 해석이 아니라, 이택후와 차라리 더 가까운 해석으로써, <민본주의>를 집단주의R진보서사로 해석하는 한국운동권386들의 왜곡된 생각을 잘 드러낸다고 나는 본다.

9-1-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민족문화대백과사전(집필자: 최병철)의 "민본주의" 관점 또한 <서양근대데모크라티아>와의 의식적인 비교분석은 없고, 소공권 부류의 전통적인 관습적인 해석을 따른다.

다만 특징적인 점은, 박정희 유신독재가 펼쳤던, "민족적인 자긍심 고취·민족문화창달·국학중흥"의 정책에 부응해서, "민본주의"를 국가통치이념으로 끌어올리고, 집단평등주의R진보서사로 다시구성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놀랍게도 이런 박정희의 네이션주의적인 "민본주의" 관점을 운동권386들이 무반성적으로 무의식적으로 '그러니까 그런갑다'라는 수준에서 즉자적으로 고스란히 약빨고 내면화했다는 점이다.




유교 경전 속에 나타난 민본의 개념을 보다 구체적으로 분류한다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성이 나타난다.

첫째, 정치적 주체로서의 민본이다.

둘째, 정치적 객체로서의 민본이다.

셋째, 국가 구성 요소로서의 민본이다.

민본사상의 특성을 한마디로 말하면, 결국 민심(民心)을 근본으로 하는 사상이라 할 수 있다. 예로부터 우리에게는 ‘민심이 천심’이라는 의식이 잠재해 왔다. 그러므로 민심과 천심이 일치할 때 민본이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만민을 널리 유익하게 하며, 합리적 교화로 세상을 구제하려는 것으로, 여기에 위민 의식이 깃들어 있다고 하겠다. 이는 우리 민족의 근원적 국가 이념이기도 하였다.



이황의 정치사상은 ... 백성을 귀하게 여기는 중민·애민 사상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이에 의하면, 공론은 ... 곧 국시가 된다는 것이다. 이이의 입장과 태도는 오로지 민생안정과 민의창달에 역점을 둔 것이며, 이러한 사상이야말로 민본사상의 본질적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정약용은 백성을 적극적인 정치적 주체로 파악한 특징적 인물이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 민관념(民觀念)의 획기적 변용이라고 할 수 있다 ... 부·토지·혜택 등의 분배에서 백성에 대한 평등성과 배분적 정의를 논하기도 하였다.






9-2. 진독수·북경대·류쩌화·김영민·수군작

9-2-1. 진독수/천두슈

리쩌허우의 책으로부터 다시뽑아오겠다.




천두슈/진독수의 주요한 흥분점은 시종일관 정치였다. 그는 정치의 각도에서 문학의 혁신을 바라봄으로써, 후스의 '팔불주의'(八不主義)를 돌파했다. 천은 공맹과 정·주를 구분하고 중국전통의 민본주의와 서양의 근대적 민주주의를 한데 섞어서 이야기하는 것에 반대했다. (3권, 36쪽)



둘째, 진독수/천두슈는 공교 곧 유학의 민본주의와 근대 서구의 민주주의는 근본이 다른 것임을 강조하여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무릇 서구의 민주주의는 인민을 주체로 하는 것이나... 이른바 인민이 보고 듣는 것(民視民聽), 이른바 인민이 귀하고 군주는 가볍다는 것(貴君輕), 이른바 인민은 나라의 바탕(民惟邦本)이라는 것은 모두 군주의 사직, 즉 군주의 조상이 남겨준 가산(産)을 본위로한다. 이러한 인민(仁民)·애민(愛民)·위민(爲民)의 민본주의는 모두 다 근본적으로 국민의 인격을 취소하는 것으로, 인민을 주체로 하는 민주주의에 의한 민주정치와 결코 같은 것이 아니다... 옛적의 민본주의를 현대의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은 말가죽을 범가죽으로 속이는 것이다. 이른바 큰 도(大道)가 행해지면 천하가 여러 사람의 것이 된다는것은 군주의 선양(禪)을 가리키는 것이지 민주공화와는 전혀 다르다. 현대 생활은 경제를 명맥으로 하고 있으며, 개인독립의 원칙이나경제학 생산의 대법칙은 마침내 윤리학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현대 윤리학에서 개인의 인격적 독립은 경제학에서 개인재산의 독립이 이를 증명하여 마침내 움직일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사회의 풍기나 물질문명도 이 때문에 크게 진보했다. 그런데 중국의 유자들은 강상으로 가르침을 세우고 있어 아들이나 아내가 되는 사람은 개인의 독립된 인격을 완전히 상실하고 있으며, 또한 개인의 독립된 재산도 없어 부형(父兄)은 그 자제(子弟)를 키우고... 자제는 그 부형을 받드는데... 이것은 개인독립의 원칙과 아주 다르다. 강 선생 (강유위를 가리킴)은... 개인독립주의는 공자에게서 이미 나타난다고 말하는데 이 말은 정말 잠꼬대와 같다." (3권, 185~ 186쪽)
북경대 철학연구원의 『중국철학사 1~ 4』



9-2-2. 북경대 철학연구원

북경대 철학연구원 『중국철학사 1~4』, "민본"은 0개, "민주주의"는 62개. 하지만 "인민"으로 검색하면 384개가 나온다. 북대철학사는 원체 맑스주의 계급사관에 철저한 탓에, 일체의 전근대 민본주의를 한마디로 <군주절대주의를 옹호하고, 노동인민의 봉기를 억누르고, 전근대지배계급의 이익에 복무하는 일종의 계급조화론이다>라고 본다.

이런 점에서 류쩌화·수군작의 관점과 통하는 바가 있다. 쪽수표기없이 그냥 검색결과 일부만 올리겠다. 춘추전국시대부터 명왕조 왕양명까지 중요한 검색글귀들을 올리는데, 대충 보면 감이 확 올 것이다.




노자의 이러한 사상은, “백성이 따르게 하는 것은 옳지만 알게하여서는 안 된다"12)고 한 공구의 사상과 마찬가지로, 역대의 통치자들에게 이용되었다. 그들은 이런 사상들에 힘입어 우민정책을 시행하고 노동인민을 착취하며 문화적 권리를 장악하였던 것이다.



송대에서 청대 중기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중국 전근대사회의 모순은 전근대지주와 농민 사이의 모순이었다. 이 시기의 전근대지주계급은 인민을 속박하는 네 가지 권력, 즉 정권政權족권權ᆞ신권神權·부권夫權을 강화하였다. 그러나 농민의 혁명투쟁 또한 아주 빈번히 발생하였다. 북송의 건국 이래 전근대지주계급과 농민 간의 모순은 더욱 첨예하였다. 송나라는 북방의 요나라에 대하여 소극적 방어정책을 취하여, 재물을 갖다 바치는 방식으로 구차한 평화를 얻어냈다. 하지만 이 재물들은 모두 인민들에게서 나왔다. 송나라는 과거제도의 강화를 통해 지주계급 각 계층의 지식분자를 흡수하여 정권에 참가시켰다. 이에 쓸데없는 관직과 한적이 설치되어 방대한 관료기구가 형성되었는데, 이들 관리의 녹봉 또한 인민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인민의 부담은 날이 갈수록 무거워져서 조익이 말한 것처럼 '관리들의 녹봉마저 모자라지 않을까 걱정하게 되고, 재정을 백성에게서 거둬들이 조금도 남겨두지 않는 이십이사찰기二十二史記) 시대 상황을 낳았다. 또한 심각한 토지겸병의 분위기가 성행하는, 이른바 '태평성대가 이미 오래되어 간악하고 거짓된 사람이 생겨나고, 관직에 있으면서 세력이 있는 사람은 토지를 끝도 없이 차지하는'(『송사宋史』「식화지食貨志) 상황이 전개되었다.



송대에는 예로부터 있었던 문벌세족과 지주계급이 소멸하였지만, 관료대지주가 문벌세족의 지위를 대체하였다. 관료지주계급은 새로운 통치사상을 필요로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전근대통치를 옹호하는 사상적 도구를 만들어 인민에 대한 새로운 사상적 통치를 진행하였으며, 농민에 대한 지주계급의 독재를 공고히 하였다. 북송 초기의 주돈이周·정호程顥ㆍ정이程는 새로운 형식의 관념론체계인 도학관념론道學觀念을 내놓아서 송대 중앙집권적 전근대 군주절대주의를 위해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였다. 주돈이와 정호 · 정이는 이전의 유학을 계승하였다고 자처하지만, 실제로는 불교와 도가의 많은 사상을 받아들였다. 그들의 관념론체계는 고대 유학인 공자나 맹자의 도와, 도가인 노자와 장자의 학설 및 불교관념론의 종합이었다. 그들은 모두 전근대사회의 등급제도를 영원히변치 않는 이치라 말하였고, 전근대도덕의 기본원칙인 '삼강오상三綱五常’을 절대화 · 영구화하여 관료지주계급이 사상적 통치를 진행하려는 요구를 만족시켜주었다. 남송의 주희와 육구연九淵, 그리고 명대의 왕수인王守仁은 주돈이와 이정(정호 · 정이)의 관념론을 계승하고 발전시켰다.그러나 그들 사이에도 논쟁은 있었다. 주희는 객관적 관념론이요, 육구연과 왕수인은 주관적 관념론이다. 그들이 비록 서로를 비판하고 반박하였으나, 유물론을 반대한 점에서는 일치한다. 도학관념론은 후기 전근대사회에서 통치지위를 차지하는 통치철학이 되었다.



왕안석의 변법과 혁신의 주장은 노동인민의 이익을 대표하지는 않았으며, 반대로 농민봉기를 억누르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는 그의 사상의 실제적인 뜻은 전근대통치계급 내부의 모순을 없애고, 전근대통치계급과 피압박인민 사이의 모순투쟁을 완화시켜 당시의 여러 가지 위기에 직면한 전근대제도를 유지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순전히 환상적인 것이다. 장재는 비록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고 부르짖었으나, 사실 그 자신도 실행할 수 없었다.



장재는 서명에서 이러한 박애사상을 한 걸음 더 발전시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늘은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고 땅은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다. 나는 아주 작지만 만물과 마찬가지로 천지간에서 살아간다. 따라서 천지간에 가득 찬 기는 나의 몸을 구성하며, 기의 본성은 즉 천지지간을 이끄는 것이 되니 이것이 곧 나의 본성이다. 인민들은 모두 나의 동포이며 형제요, 만물은 모두 나의 짝이다. 임금은 내 부모의 큰아들이요, 그의 대신들은 임금의 집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노인을 존경하는 것은 곧 나의 나이든 형을 존경하는 것이요, 고아와 어린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곧 나의 어린 동생을 사랑하는 것이다. 성인은 곧 천지의 품덕을 체현할 수 있으며, 현인은 곧 천지의 뛰어난 아들이다. 모든 천하의 어렵고 병든 사람과 외롭고 고통스런 사람은 모두 고난을 받고 있는 불쌍한 나의 형제들이다.



장재는 천지를 부모에 비유하여,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은 모두 천지가 낳은 것이요, 또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은 나의 동포요 나의 짝이므로 마땅히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을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추상적 사랑은 전근대적 등급제도를 없앨 것을 요구하거나 평등을 제창하지는 않았고, 오직 전근대적 종법관계를 기초로 한 '인과 사랑'을 고취한 것으로 일종의 계급조화론이다.



그의 박애설은노동인민에 대해 완전히 기만적인 것이고, 다만 인민의 투쟁의지를 마비시키는 작용을 일으켰을 뿐이다. 결국 장재의 도덕학설은 전근대통계급의 이익을 위해 복무한 것이다.



주돈이가 말한 성의 실재는 전근대도덕에 대한 절대복종이다. 그는 이것을 사람의 본성이라고 말하였는데, 이렇게 사람들로 하여금 전근대적 도덕법칙을 따라 행위하도록 강요한 것은 전근대지주계급의 자아도취일 뿐만 아니라 인민대중의 투쟁의식을 마비시키는 거짓된 교설이다.



주돈이는 전근대통치계급이 내세운 인·의를 음양 두 기가 만물을 낳고 변화시키는 것의 체현이라고 말하였으며, 성인이 인 · 의로 백성을 교화하는 것은 천도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가 말한 성인은 곧 전근대제왕이다. 그는 전근대제왕을 인민의 근본이라고 떠받들어 '천하의 어떤 무리에 있어서도 그 근본은 한 사람에게 있다'고 말하였다. 이것은 제왕이나 장군 및 재상이 역사를 창조한다는 관념사관을 고취하여 군권과 지고무상한 전근대군주절대주의를 변호한 것이다. 주돈이는 또한 음양설을 이용하여 전근대사회의 상부구조가 합리적임을 논증하였다.



이정은 사람이 처한 곳의 위치에 자각적으로 안주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여, '아버지와 자식, 임금과 신하 간은 천하의 정하여진 이치로 천지 사이에 피할 곳이 없다'(하남정씨유서 권5)고 말하였다. 이것은 그들이 불교의 선종에 보다 가까이 간 것으로, 물 긷고 장작 패는 것이 신묘한 도일 뿐만 아니라 아버지를 모시고 임금을 모시는 것도 또한 신묘한 도이며, 사람은 다만 자신이 처한 곳에서 편안히 여겨 '사물이 오면 따라서 순응할 뿐 자기가 처한 환경에 대해서 가리지 않는다면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당연히 인민을 노예화시키려는 반동적인 교설이다.



청대의 유물론자인 대진은 이학에 대해서 '사람이 법에 의해 죽으면 오히려 그를 불쌍히 여기는 사람이 있지만, 이에 의해 죽으면 누가 그를 불쌍히 여기랴'(『맹자자의소증孟子字義蔬證』)라고 말하였다. 따라서 그는 이학을 '이로써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노신魯迅은 더욱 날카롭게 관념론적 이학의 실제 내용을 밝혀내었는데, 그는 『광인일기 다음과 같이』에서 쓰고 있다.



내가 한번 역사책을 뒤졌는데, 이 역사책은 각 쪽마다 '인 · 의 · 도·덕' 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나는 한밤중이 되도록 자세히 보고서야글자 사이 사이마다 있는 두 글자를 알아보았다. 책을 가득히 채운 그 두글자란 바로 '사람을 잡아먹는다 (吃人)'는 두 글자였다.



'인·의·도·덕'이라는 글자 사이에서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글자를 보았다는 것은 노신이 진정으로 이학자의 위선적인 얼굴을 붉은 피가 질펀하도록 찢어발긴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실제로 그들은 전근대적 도덕표준을 절대화 · 영구화하여, 삼강오상이 우주의 근본이며 모든 사물의 근원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전근대도덕의 기본원칙이 자연세계의 기본원리이며, 전근대적 사회질서를 자연의 영원한 질서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전근대도덕의 원칙을 신비화 영구화한 것이요,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세계에 도덕적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그 목적은 전근대도덕의 지위를 높힘으로써 전근대사회의 등급질서를 공고히 하고, 노동인민에 대한 전근대지주계급의 통치를 유지하려는 것이었다. 정주학파는 이를 중심 관념으로 삼았기에 그들의 학문을 이학理學이라 부른다..



천리와 인욕의 구별은 주희철학사상의 반동성과 승려주의적 속뜻을 집중적으로 드러내주고 있다. 종교는 물질적인 욕망을 모든 죄악을 낳는 근원이라 본다. 주희는 바로 이와 같이 종교적 금욕주의를 받아들여 전근대적 도덕과 제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남송 이래 정주학파는 '이욕지변理欲之辨'을 내세워 전근대예교의 강제성과 잔혹성, 그리고 군권·부권父權·부권夫權 등 전근대적 굴레를 강화하였다. 그리고 '인욕을 없애고 천리를 간직한다'는 것은 인민의 사상을 구속하고 인민들의 투쟁의식을 없애버리는 반동적인 도구가 되어버렸다.



남송 초기에 주희는 이일원론 객관적 관념론을 내세워의 전근대사회의 제도를 절대화하고 영구화하였으며, 전근대지주계급의 도덕원칙을 천지 만물의 근원이라고 떠받드는 한편, 노동인민에 대한 전근대지주계급의 통치를 공고히 하고 중앙집권적 전근대 군주절대주의를 더욱 강화하고자 기도하였다.

섭적은 공리를 말하였으나 당연히 노동인민의 공리가 아니며, 그렇다고 전근대제왕의 한 가문과 한 성씨만의 공리도 아니었다. 그가 말한 공리는 다름아닌 지주계급과 상인계급의 공리이다.



왕수인의 주관적 관념론은 여러 가지 모순 가운데 처해 있는 전근대관료 지주계급에게 있어 자기를 위안하는 강심제 역할을 하였다.


류쩌화의 『중국정치사상사 1~ 3』

9-2-3. 류쩌화/유택화

류쩌화 『중국정치사상사1~3』 책들 속의 "민본" 검색결과들 대충 67개 정도가 나옴*류쩌화의 관점이 내가 채택하는 것이다. 나머지 책들은 그닥 여기서 더 나아간 것이 없는데, 그래도 훑어보자.


민본은 민주인가 아닌가? 아니다 ... 민본주의는 민주주의와는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다 ... 민본주의는 그저 군주의 주머니 속 물건일 따름이다. 전통정치문화에는 개인의 정치적 권리라는 관념이나 그에 상응하는 규정이 없었다. 민본주의는 민주주의와는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다. 이론이든 실천이든 민본주의는 절대로 군주전제 제도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갈 수가 없었다. '민위국본’ 명제는 ‘군위민주’의 명제의 부속품이다. 민본주의라는 것은, 마치 잡아먹기위해 아껴주는 가축들의 사육이론과 같은 것이다.






맹자는 피플을 지극히 중시했으며, 적잖은 사람이 맹자를 민본주의자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엄격하게 말해 이 견해는 정확한 것이 아니다. (1권 402쪽)



덕치에 관해 왕부는 전통적 민본주의를 계승했다. (2권 800쪽)



수양제 양광은 대대로 폭군의 전형으로 간주되었다. 깊이 생각해볼 점은 그의 인식이 명군의 전형인 당 태종과 질적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민본, 현인 임용, 법제, 납간 등은 수 양제가 내린 조서에 쓰이지 않는 경우가 없었다. (3권, 20쪽)



중민重民, 곧 피플을 중시함은 전통정치사상의 중요 특징 가운데 하나였다.

『서경』「반경」 편의 중민, 주공의 보민保民, 공자의 애민愛民으로부터 맹자의 민귀군경론民貴君輕論, 순자의 군주민수론君舟民水論을 거쳐 양한 이래의 중민주의에 이르기까지 민본주의는 철학자들의 수중에서 부단히 충실해져왔다. 고대철학과 관련된 자료만 보더라도 세계 어떤 나라도 중국처럼 다양하게 민에 관해 풍부한 철학적 이치를 함장한 성현의 교훈을 갖추고 있는 경우는 없다. 전국 시대와 진한 이래 중민은 정치의 기본 원칙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수많은 통치자는 민본주의를 실제 정책으로 전환시켰으며, 이를 정치적으로 실천하는 과정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피플은 역사적 범주의 하나다. 전국 이후의 문헌에서 피플은 일반적으로 전근대시대 군, 신(관료), 민이라는 3대 사회 등급 가운데 최하층에 속하는부류의 사람들을 지칭한 말이었다. 전근대법전에 따르면 피플은 또 양良, 천賤의 구분이 있었고, 그 가운데 양인은 평민, 지주와 자경농을 포함했다. 강대한 성씨의 호족이나 부유한 상인이 설령 향리를 횡행하고 일방의 갑부가 되었더라도 정치적 공명을 얻을 방법을 찾지 못하면 서민과 다를 바없었다. 따라서 엄격히 말해서 피플은 계급 개념의 하나라기보다 정치적 지위에 따라 구분된 사회 등급 개념의 하나다. (3권 44쪽)



민본은 민주인가 아닌가? 아니다. 민본주의 가운데 특히 민이 군주를 선택한다거나 피플을 얻어야 군주가 된다는 등의 명제는 피플의 의향이 최고 권력에게 제약을 가하고 있음을 정말로 인정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민주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민본주의 가운데서 피플은 목적이 아니며 권력의 주체도 아니다. 전통적 민본주의는 민의 정치적권리, 특히 민의 개인적인 정치권리에 대해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다. 오히려 하층 민중을 무지몽매한 집단으로 취급하는데, 이는 통치자들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3권, 51쪽)



*이게 내가 기사에 쓰려는 핵심내용이다. 이 주장은 3권 끝 청왕조 당견의 민본주의를 류쩌화가 비판하면서 되풀이된다.



이를 통해 민본이나 중민이 보통 백성 개개인의 가치나 권리에 대한 존중을 담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전통정치문화에는 개인의 정치적 권리라는 관념이나 그에 상응하는 규정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피플이 하나의 집단주체가 되더라도 마찬가지로 특정한 권리는 없었다. 다시 말해 “백성은 스스로 다스릴 수가 없어 군주를 세워 그들을 주재토록 했다"는 것이다. 군주를 세워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 하늘의 뜻이며, 군주가 통치를 행하는 것이야말로 영원불변의 진리다. 이런 특질을 지닌 민본주의는 민주주의와는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다. (3권, 53쪽)



민본주의는 결국 중민주의다. 중민의 주체는 군주와 관료이며, 중민주의를 실천하면 명주,청관으로 불린다. 당 태종을 우두머리로 한 통치집단(이하 정관군신貞觀君臣이라 약칭)들은 군주야말로 백성의 부모이므로 군주는 이치상 응당 중민을 임무로 여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자관계 양식으로 군민관계를 규범화하는 것이야말로 전통정치철학에 보이는 분명한 특징 가운데 하나다. 군주가 백성의 부모가 된다는 주장은 중민론의 출발점이자 귀결점이다. 시대가 다르고 철학자가 다르므로 군주가 백성의 부모가 된다는 주장의 함의와 논증 방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그 주된 취지는 부모는 자애롭고 자식은 효성스러워야한다는 종법 윤리가 군주와 백성의 행위 규범을 확정짓는 것이었다. 이는 군민관계의 절대성과 상대성을 천명한 것이다. (3권, 54쪽)



민본주의는 통치계급이 자아비판을 통해 자신의 안위에 대한 조건을 분석하고 인식한 데 따른 산물이다. 이런 식의 생각과 논리는 정치적 주도권과 결정권을 절대로 자신의 통치대상에게 귀속시키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명군의 치국이나 청관의 정무 처리에 희망을 걸게 된다. 정치에서 유일한 최고의 주체는 군주이며, 민본주의는 그저 군도의 주머니 속 물건일 따름이다. (3권, 54쪽)



민본주의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민중에 대한 통치자의 착취나 압박을 일정 정도 완화시켜주는 것뿐이다. 바꾸어 말하면 민본주의는 기성의 정치제도와 경제 제도를 바꿀 아무 의향도 없으며, 따라서 민본주의의 지도 아래 군민 간의 기본적인 정치관계와 경제관계는 그 어떠한 질적 변화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론이든 실천이든 민본주의는 절대로 군주전제 제도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갈 수가 없었다. (3권, 65쪽)



민본주의는 군주정치의 대립물이라기보다 전근대통치를 합리화시키는 이론이었던 셈이다 ... 많은 사람이 중민·민본·민주를 하나의 발전 체계로 오해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민본주의로부터 민주주의을 발굴해내는 데 심혈을 기울이기도 한다. 이는 피상적인 견해다. (3권, 66쪽)



민본주의의 발생과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는 통치계급의 자아인식, 자아비판의 산물로 주로 통치계급의 철학이 및 왕후장상들이 제기하고 논의를 덧붙인 것이다. 민본주의의 모형은 늦어도 은주 시기에 벌써 생겨났다. 주공의 존천, 경덕, 보민 철학은 초기중민철학을 대표한다. 은주 교체 과정에서 피플은 처음으로 그들의 위력을 보여주었으며, 군주의 지위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조건이 있음을 증명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통치철학에 반영되었는데, 주공은 천제의 무한 권위를 민의와 교묘하게 결합시켜 "천명이 늘 한곳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127 "하늘을 두려워하고 참마음을 도와야 하니 백성의 뜻을 대략 알 수가 있다. 128 "하늘은 반드시 백성이 바라는 바를 따른다 129 등의 명제를 제기하여 천·덕·민 3자를 하나로 연결시키는 순환논증의 철학체계를 구성했다. 이 철학의 제기는 통치자 가운데 일부분이 벌써부터 피플을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제약 역량으로 인정하고, 군주절대권력에는 조건이 있음을 표명한 것이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해보면 민본주의를 촉진시킨 근본 원인은 피플의 폭력적 저항이다. 전근대 시대에는 정치권력이 일체를 지배했는데, 오직 강권을 지닌 세력만이 강권을 전복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정권 체계 내부로부터 오는 정변을 방비하고 정권 체계 외부로부터 오는 피플폭동을 없애는 것이 전통정치사상에서 줄곧 가장 큰 관심을 가져온 두 가지 과제였다. 전민폭동은 언제든 궤멸을 가져올 만한 역량을 지니고 있었다. 이는 전근대 통치자들로 하여금 피플이라는 사회 역량을 고도로 중시하여 적극적으로 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민본주의는 이렇게 생겨났다. 이 철학의 발전과 변천은 주로 통치계급 정치가의 자아비판과 자아인식을 통해 완성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당견의 민본주의를 피플주권이론으로 여기면 안된다라고 다시 류쩌화는 지적한다. 그러나 민본주의 속에서 피플주권 관념을 도출해내지는 못했다. 그래서 당견은 ‘보민’ ‘양민’의 희망을 모두 군주및 관료의 신상에 걸었다. 그의 정치론 가운데 피플은 그저 피치자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당견의 민본주의는 그간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바인, 양민 귀민 애민 휼민 구민 중민 위민 보민 등등의 정치이론과 별 다를바가 없으며, 이것은 마치 잡아먹기위해 아껴주는 가축들의 사육이론과 같은 것이다. (『중정사 강의록, 당견』)
김영민의 『중국정치사상사』

9-2-4. 김영민

김영민 『중국정치사상사』에서는, "민본"이 8개, "민주주의"가 19개 나오는데, 이렇게 김영민은 이정우보다는 조금더 진독수·류쩌화·수군작의 관점에 가까운 메타해석을 하고 있다. 맹가철학을 분석하는 이 부분 말고는 책 전체에서 더이상 "민본"은 안나온다. 그리고 김영민의 <민주주의>는 서양전통관점을 따르고 있다.


셋째, 맹가가 피플근본/민본철학을 제시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200쪽)

그렇다고 해서 맹가가 직접적 또는 대의적representative 피플주권 이론을 전개한 것은 아니다. (201쪽)



맹가에게 보다 바람직한 정치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개인의 법권리 때문이 아니라 공동의 안전과 혜택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마찬가지로 근대데모크라티아 이론가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시민들이 통치자를 창출할 법권리를 양도한다는 식의 생각도 없다.(202쪽)



그것은 피치자 계급을 사회하층에 안정적으로 온존시키고자 하는 통치자의 인터레스트에 봉사한다. 맹가가 명시적으로 피플근본/민본을 운운할 때조차, 그의 주된 청중은 통치자와 지식인들이지 일반 신민이 아니다. (212쪽)


거자오광의 『중국사상사 1~ 2』



끝으로, 9개 소스들 가운데 거자오광이 빠졌는데, 그의 『중국사상사1,2』 총 1825쪽에는 "민본"은 0, "민주주의"는 5개이다. 거자오광 책은 정치철학내용들은 거의 다루지 않아서 그렇지 싶다. "위민, 중민, 애민, 보민"을 넣어도 경전원문글귀들이고, 그것들에대한 정치철학적인 메타해석은 1도 없다.

이것으로 길었던 <데모크라티아>에 대한 4차례 걸친 긴 글을 끝내도록 하자.





나이테202회차 김민철 [누가 민주주의를 두려워 하는가] 발제(요약본 7분)

※ 윗동영상은 발제 앞부분의 자세한 설명들 다 걷어내 버리고, 딱 7분짜리 초압축요약본임. 이거 듣고 디테일들이 궁금하면, 아래 발제 풀영상을 봐도 좋겠다.



나이테202회차 김민철 [누가 민주주의를 두려워 하는가] 발제




서사제도진화이론가, 철학자, 서예가, 디지털 아티스트, SVA 미술석사, 실험영화작가, 불어불문학 학사. 인류문명사·철학사·지성사·개념사 곧 '지식의 지식'에관한 메타철학이자 인공지능을위한 메타윤리학인 서사제도진화이론을 연구중임. https://www.facebook.com/sugunz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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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 #소공권 #진독수 #리쩌허우 #거자오광 #류쩌화 #김영민 #신정근 #북경대 철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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