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01

07 초록불의 잡학다식 : 이영훈 교수에 대한 오해

초록불의 잡학다식 : 이영훈 교수에 대한 오해

이영훈 교수에 대한 오해 *..역........사..*



이영훈 교수에 대한 인터넷 상의 악평은 이교수의 책을 읽어보지 않은 채 인터넷 상에서 확대재생산되는 근거없는 이야기에 기초하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최근에 [대한민국 이야기]라는 이영훈 교수의 책을 읽었는데, 그런 오해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잘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에 대해서 몇가지 의문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확인하려면 논문들을 찾아봐야 할 것 같아서 아직 추천을 하진 않는다. (내가 추천하는 책은 알라딘에서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 TTB 기능을 이용하고 있다.)

아무튼 이영훈 교수에 대한 오해에 대해서 좀더 이야기해보자.

1. 이영훈 교수는 일제 강점기를 찬양한다
이영훈 교수는 일제에 의해 서양근대 사상, 즉 인권에 대한 개념, 소유권에 대한 개념이 우리에게 들어왔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이런 신학문은 일본유학생들에 의해 조선에 전파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국내에는 근대사상을 실현하고 독립을 원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게 된다. 이것은 나폴레옹이 유럽에 근대적인 나폴레옹 헌법을 전파시키면서 자신에 대한 적대세력을 만들어내는 과정과 비슷하다.

- 그래서 저는 일제의 조선 지배 체제는 조만간 해체될 수밖에 없는 모순에 가득 찬 것이었다고 보았지요. (p82)
- 수탈 여부와 무관하게 제국주의는 그 자체로 비판의 대상입니다. 왜 그럴까요? 다름아니라 인간 본성에 반하는 체제가 제국주의이기 때문입니다. (p80)


2. 이영훈 교수는 식민지 수탈에 대하여 이야기 하지 않는다
수탈론은 (1) 토지조사 사업을 통한 토지 수탈 (2) 미곡 수출에 의한 미곡 수탈 (3) 일제를 위한 산업투자를 통한 노동력(경제력)의 수탈로 나뉘어질 수 있다. 이영훈 교수는 토지 수탈에 대한 오류와 잘못을 하나하나 지적하고 있다. 기존 연구의 잘못을 따지고 있으며 그 결과 수탈론은 잘못된 인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체 이영훈 교수가 일제 수탈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는 사람들은 뭘보고 그렇게 이야기하는지 알 수가 없다.

사실 이 문제는 최근에 본 책중 하나인 [차이나 타운 없는 나라]에서 화교의 경제력이 일제강점기에 어떻게 성장했는지 하는 자료에서도 충분히 암시를 받을 수 있었다. 식민지 조선의 경제 성장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 경제성장의 결과가 모조리 수탈당한다는 것은 자본주의의 논리상 성립할 수 없는 이야기다. 1980년대에 다국적 기업이 들어서면서 한국 경제의 성과를 다국적 기업이 모조리 수탈해간다는 논리가 횡행했다. 그러나 그 시기에 한국 경제는 분명히 성장했고, 오늘날에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없다.

- 생산된 쌀의 거의 절반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쌀이 건너간 경로는 빼앗아 간 것이 아니라 수출이라는 시장경제의 경로를 통해서였습니다. (중략) 쌀이 수출된 것은 총독부가 강제한 것이 아니라 일본의 쌀값이 30% 정도 높았기 때문이지요. (중략) 모자라는 식량은 만주에서 조나 콩과 같은 대용 식량을 사와서 충당하였습니다. (중략) 수출소득으로 면제품과 같은 공산품을 일본에서 수입하거나 아예 기계나 원료를 수입하여 방직공장을 차릴 수도 있습니다. 실제 김성수 선생의 경성방직이 그렇게 해서 세워진 공장입니다. (pp69-71)
- 그렇게 분쟁을 거쳐 남은 국유지는 전국의 총 484만 정보의 토지 가운데 12.7만 정보에 불과했습니다. 그것마저 대부분 1924년까지 일본 이민이 아니라 조선인 연고 소작농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불하해 버렸습니다. (p76)
- 그런데 그런 식의 경제 성장이 계속 되면 결국 어떻게 됩니까? 조선의 토지와 자원과 공업시설은 점점 일본인의 소유가 되지요. 바로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식민지적 수탈이지요. (p94)


3. 이영훈 교수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통해 일제를 찬양한다
이영훈 교수는 일제가 식민지 조선에 많은 투자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과 조선 사이에는 관세를 철폐되어 하나의 시장으로 묶였으며 그 결과 일본의 자본은 아무 장애없이 조선에 침입하게 된다는 것이 이영훈 교수의 이야기다. 이를 통해 식민지 조선의 경제도 성장했으며, 그 성장의 대가를 전부 수탈해 갔다는 것은 수치적으로 증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진정한 의미의 수탈과 차별이 어떠한 메카니즘을 통해 벌어졌는지를 제대로 보자는 것이 식민지 근대화론이지요. 문자 그대로 식민지적으로 이루어진 근대화였습니다. (p94)

4. 이영훈 교수는 일제 종군위안부를 모욕하고 총독부를 비호하고 있다
이영훈 교수의 논리는 매우 치밀해서 여기서 짧게 소개하기가 어렵다. 간략하게 말한다면 이영훈 교수는 일제가 위안부(성노예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문제에 있어서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에 이의를 달지 않는다.

- 이상이 여인들이 끌려간 다양한 경로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사건을 기획하고 연출한 최종 책임자가 따로 있습니다. 다름아니라 일본군과 총독부입니다. 일본군의 수뇌는 위안소의 설치를 명하였습니다. (중략) 거기에 총독부가 협조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영훈 교수는 공권력에 대한 강제 징집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증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나도 이 부분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있다. 좀더 공부해볼 생각이다. 이영훈 교수는 길견의명(요시미 요시아키)의 지적에 동의한다고 하는데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 일본군과 일본정부는 매춘업을 위해 부인과 아동의 매매를 금지한 1911년의 국제조약을 위반했다.
- 일본군과 일본정부는 강제노동을 금지한 1907년의 국제협약을 위반했다.
- 일본군과 일본정부는 노예제를 금지한 국제법을 위반했다.
- 일본군과 일본정부는 미성년의 강제노동을 금지한 국제법을 위반했다.


이영훈은 길전청치(요시다 세이지)의 [나의 전쟁범죄] 책도 세밀히 검토하고 있다. 이영훈 교수는 이 문제를 군대, 식민지, 가부장 제도라는 세 측면에서 검토하고 있으며 이 검토는 경청할만한 가치가 있다.

나는 이영훈 교수의 조선 말기의 경제 상황이나, 해방 이후 건국 세력에 대한 평가, 최근 조선일보에 기고하고 있는 글들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점들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덧글

  •  愚公 2007/08/26 11:19 #

    현재 정치판에 '이용'되지 않는다면 경청할만한 연구라고 생각합니다.
  •  이준님 2007/08/26 11:26 #

    1. 커밍스 교수가 80년대(그리고 지금까지도) 비난받는거나 똑같은 궤적을 밟는거지요. 심지어 비판하는 쪽도 "그렇게 좋은 의도가 아닌"쪽에서 발췌번역하거나 악명높은 "청사" 번역판을 텍스트로 하고 있구요. 다만 그것이 인터넷인지 정부의 조직적인 확대 재생산인지의 차이가 있습니다만(커밍스 교수도 몇년전 나온 모 책에서 그 관련 이야기를 한탄한적이 있습니다.)

    2. 글구보니 두 사람 다 "자료취합과 해석"에서는 동종업계 최강이라는 공통점도 있군요

    PS: 다만 이영훈 교수는 "언제든지 그의 글을 찾아볼수 있다"는 잇점이 있는 반면에 (그러니까 그것도 하지 않으면서 인터넷의 말만 믿고 기사 쓰시는 분은 안습) 커밍스의 저작들은 "번역이 거의 안되"는게 문제라면 문제이지요( 한국전쟁의 기원 2권 말입니다. -_-;;)
  •  듀란달 2007/08/26 13:55 #

    환빠들이 또 제목만 보고 "거봐라, 초록불이는 매국노 이영훈이를 지지하는 매국노 아니냐'라고 할까봐 벌써부터 걱정되네요.
  •  이녁 2007/08/26 13:57 #

    저는 이른바 '뉴 라이트' 계열의 주도적 역할을 하고계신 이영훈 교수나 박지향 교수, 두 분 모두를 좋아하기는 합니다만 그분들의 '학문적인 업적' 과 '현실에서의 (정치적)활동' 에 괴리가 있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ㅠㅠ 특히나 이영훈 교수 같은 경우에는 최근 모 신문에 칼럼을 쓰시면서 자신의 학자로서의 업적/양심을 스스로 깎아먹는 듯한 모습마저 보여서 말입니다.
  •  초록불 2007/08/26 14:23 #

    듀란달 / 걔네 이야긴 신경쓸 것도 없어.

    이녁님 / 저도 그런 생각이 좀 듭니다.
  •  슈타인호프 2007/08/26 15:18 #

    일단 그쪽계열에서 쓴 책이든 논문이든 하나만 직접 읽어보면 인터넷에서 하는 것처럼 막무가내 비판을 할래야 할수가 없게 되더군요. 분명히 옳은 부분이 있으니까...이 부분에 대한 내 생각을 어떻게 바꿔야 하나, 여기서 또 틀린 부분은 뭘까, 그리고 맞는 건데 내가 모르고 있기 때문에 틀리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하다 보면 아무 말도 못 하게 됩니다-_-;;
  •  스칼렛 2007/08/26 15:41 #

    30%밖에 안 비쌌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40~50전 하던 게 오사카로 가면 6~7엔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으음.
  •  초록불 2007/08/26 15:50 #

    스칼렛님 / 그런 부분은 연도에 따라, 또 도매와 소매에 따라 달라지겠죠. 제가 본 책은 논문이 아니라서 구체적인 자료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논문은 명시되어 있습니다만...
  •  크악크악 2007/08/26 15:58 #

    일단 뉴라이트 교과서 포럼에서 나와야하지 않을까요? 그교과서에 이영훈 교수의 생각이 어느 정도 담겨있는지 모르지만......
  •  永革 2007/08/26 17:33 #

    너무 '근대화는 좋은 거다! 근데 그걸 일본이 해준 거라니 이런 매국노!'라는 단순한 여론에 두들겨 맞으면서 도리어 정치적으로 삐딱하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짐작을 해봅니다. '식민지'와 '근대'라는 주제를 놓고 보면 이영훈의 연구는 경청할 점이 참 많더라구요. 그런데 낙성대 연구소에 들어가는 자금 출처가 일본 우익 재단이라던가.. 이런 소식을 듣고 나면 개운하지 못한 건 어쩔 수가 없더군요.
  •  matercide 2010/09/13 00:46 #

    자금출처는 일본 재벌 토요타 산하의 토요타 재단입니다. 토요타의 설립년도는 1938년.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침략으로 한창 군수공장 노릇을 한 게 토요타의 처음입니다.
  •  고어핀드 2007/08/26 20:47 #

    저도 꼭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학자의 정치적인 취향은 접어두고 말이죠 - 특히 일제의 수탈 형식이 칼 들고 뺏어가는 형식이 아닌 법에 의한 통치였다는 점은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한국 현대사에 대한 의문점들을 설명해 주는 것 같아서 좋은 책 한 권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  지구호 2007/08/27 08:43 #

    [식민지적으로 이루어진 근대화였습니다] 참 애매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눈에 보이는 경제가 성장을 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민중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적었던 것은 사실인 듯합니다. 일본의 자본이 한반도 이주 일본인들과 매판 자본가들에게 집중이 되었다는 것도 사실이고, 그로인하여 자본이 한쪽으로 치우쳐져서 1920~30년대에 농장에는 소작농이 공장에는 열악한 노동자들이 증가하여 소작쟁의 및 노동쟁이가 많이 발생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식민지근대화론을 어디까지 긍정을 해야할 지 모르겠네요.
  •  초록불 2007/08/27 08:48 #

    지구호님 / 이 문제는 저도 대학 시절에 의문을 가져본 바 있습니다. 민족자본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였습니다. 이건 그냥 자본과 노동의 문제가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박정희의 경제개발 시절 구로공단의 열악한 노동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갔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태일이 분신한 이유는 과연 무엇인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겁니다. 일제강점기에 자본주의화가 진행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노동자들이 행복했다거나 착취당하지 않았다거나 하는 관점은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지구호님도 자본과 노동의 문제로 이 시기를 들여다보면 생각이 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  지구호 2007/08/27 08:49 #

    본문에 면화 이야기가 잠시 언급이 되지만, 조선시대 면화시장에 대하여도 다시 생각을 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18세기 중엽까지 일본으로의 조선 수출품중에는 면화의 비중이 컸었고, 조선의 세입이 면화와 쌀이 중심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조선의 면화산업도 상당한 규모였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수출소득으로 면제품과 같은 공산품을 일본에서 수입하거나 아예 기계나 원료를 수입하여 방직공장을 차릴 수도 있습니다.]

    이말은 다시말하면 개화시기 값싼 영국산(이후 일본산) 면화의 수입으로 인하여 조선의 면화산업은 완전히 붕괴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대한제국시기나 일제시대 정부가 조선의 면화산업을 전혀 보호해 주지 못했다는 것을 이야기하기도 하는 듯 합니다.
  •  초록불 2007/08/27 10:17 #

    지구호님 / 그 문제는 조선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양 전체의 문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중국도 같은 시기에 이쪽 산업이 붕괴해버리는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  措大 2007/08/27 10:42 #

    지구호님, 초록불님//가지무라 히데키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물론 그분은 최대한 매뉴팩쳐화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강변하려는 자세로 자료를 분석했지만) 구한말에 이미 실질적으로 면화 및 방직산업이 무너지고 있더군요. (한국근대경제사연구, 사계절)
  •  지구호 2007/08/27 12:50 #

    1. 1910년대~40년까지 농업 1.7%, 공업 10.2%, 건설 8.4%의 성장
    2. 1910년 39개의 한국인 소유의 공장수는 1938년 3,963개로 증가
    3. 1929년 한국인 공장노동자 수는 84,420명에서 1941년 272,221명으로 증가(한국인 기술자 1,381명)
    4. 식민지 기간 2~3년을 제외한 전 기간에 걸쳐 식민지정부에 보조금 지급
    5. 1910~1918년까지 2,040만원을 지출한 토지조사 사업 (1918년 지세액인 1,160만원의 1.8배에 해당하는 금액)
    6. 민간 투자 1910년대 1억 7,340만엔, 1920년대 2억 360만엔, 1930년대 5억 3,090만엔
    7. 식민지(한국)내 총지출 1912~37년 연평균 3.7% 성장
    8. 1인당 소비지출 연평균 0.97% 증가
    9. 1938년 기준 인구 1인당 투자액은 38달러로 같은 시기 인도의 1인당 8달러보다 높음
    10. 조선총독부의 잘 정비된 행정조직(인구 1,000명당 3.3명의 공무원)
    11. 발달된 농업기술의 이전 (1912년 헥타르당 1,400톤에서 1944년 3,500톤으로 생산량 증가)
    12. 1942년 기준 6,586km의 철도와 다수의 항만, 도로, 교량 건설
    13. 화폐, 금융, 재정, 토지소유권등에 관한 제도 정비
    14. 참정권의 확대 (부(府), 면, 읍의 협의회의원 민선선출, 도의회의원의 2/3 읍과 면의원에 의한 간선 선출, 1931년 일본 국회에 한국 대표 파견, 1945년 중의원에 한국대표 파견, 총 23명의 한국인이 중의원에 선출)
  •  지구호 2007/08/27 12:58 #

    이와같은 숫치데이터는 이전의 식민지수탈론을 다시한번 생각해보기에 충분할 요건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일제시대의 자본의 성격은 일부 일본인과 매판자본가에 집중이 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드렸습니다.
    투자받은 공업계열이나 농업계열의 자본가는 자신에게 투자를 한 투자자(주로 금융권)의 이윤과 자신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농업에서는 소작율을 높이며, 공장에서는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요구합니다.
    즉, 노동자들에게는 착취를 위한 자본이었다고 단정을 짓는데, 별 무리가 없어보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착취의 대상이 대부분의 조선사람이었다는 것이 민족적인 착취의 개념으로까지 발전이 된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위의 덧글의 3번항목을 보면 더욱 확실해 집니다. [1941년 한국인 기술자 1,381명] 해방이후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들이 공장들을 접수하면서 일본인 기술자들을 억류했다는 것은 잘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일본인 기술자가 없으면 공장이 멈춰버리기 때문이지요.
    이는 식민지근대화라는 것이 한반도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이영훈 교수의 주장에 확실한 의혹을 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식민지근대화론의 요점은 착취론의 반대라기 보다는 대한민국의 1970년대 평균 7.7%의 성장의 기반은 일제시대 3.7%의 성장이 기반이라는 주장이지요)
    문제는 식민지시대의 경제성장이 해방이후 대한민국의 근대화에 영향을 미쳤고, 그 혜택을 대한민국이 보았는가에 집중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사회간접자본은 한국전쟁으로 거의 파괴가 되어 전쟁후 미국무성의 보고에 한반도는 석기시대로 돌아갔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물론 일제시대의 사회시스템에 대한 경험이 대한민국의 근대화에 영향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이영훈 교수가 이야기를 할 정도의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하여는 의문을 느끼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자본과 노동력의 개념으로만 접근하여 군사독재시절과 비교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식민지에서 해방의 과정에서는 자본과 기술력이 거의 단절이 되었지만, 군사독재시절의 경제성장은 현재까지 연속이 되고 있으며, 결국은 전태일시대에 착취당했던 노동자들이 그 혜택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  지구호 2007/08/27 13:14 #

    물론 이영훈 교수가 일제를 찬양하고 있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왠지 교묘하게 느껴집니다. 학자적인 입장으로 치부를 하며, 역사를 보는데 있어서 조금더 깊이있게 접근을 해보자는 의도일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일제시대였기 때문에 피해를 보신 분들이 존재하고 있는데, 그것을 단순하게 민족주의에 세뇌되어 응석부림 정도로 치부를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안쓰럽습니다. 더 화가 나는 것은 낙성대연구소의 주요 접속자들이 일본의 네티즌들이며, 그들이 이러한 주장을 식민지시대는 혜택이었다고 주장하는데,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지요. 물론 그것은 이영훈교수의 잘못은 아니겠지만....
  •  초록불 2007/08/27 17:13 #

    지구호님 / 그 부분에서 이영훈 교수는 지구호님의 의견에 이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동일한 이야기를 그 책에서 하고 있습니다. 이영훈 교수는 남한이 물려받은 것은 인적 자원, 즉 일제강점기에 근대화된 인간들에 의한 한국 건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해당 책을 읽어보시는게 빠를 것 같습니다.
  •  초록불 2007/08/27 17:14 #

    댓글을 써놓고보니 여전히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군요. 인적 자원의 근대화란 일본유학 등의 지식인만을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에 의한 20세기의 근대화 물결에 의한 세례와 비슷한 견해기도 합니다. 역시 이 점 또한 이영훈 교수의 책을 직접 보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  지구호 2007/08/27 18:34 #

    -.- 책은 읽어보지도 않고 마음대로 지껄인것 같습니다. orz...
    최근 신복룡교수의 구한말 외국인들의 기록 시리즈를 읽고 있는 중이라 이영훈 교수의 책은 후일로 미뤄야겠습니다. 책값도 많이 들고(20권이 넘던데...), 시간도 오래걸리고... 휴~
  •  이준님 2007/08/27 19:00 #

    초록불님,지구호님.// 간단한 논리로 박명림 교수(커밍스의 학설을 깼다고 평가되는) 조차도 남한군의 인적 자원은 "일본군"이라고 이야기 하지요. 그렇다고 이것이 흔히 이야기하는 "일본군 출신들이 군 수뇌부를 독점하는"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겁니다.(사실 대한민국군 군수뇌부건은 따로 말씀드리는게 맞습니다만) 상당히 많은 사병이나 부사관 계층이 일본군대 출신이 많았고-친일파라고 하기는 그렇지요. 강제 징병이 있으니- 전체적 군 분위기가 일본군대식으로 돌아간다는 스토리입니다. 이건 친일파 문제를 떠나서 상당히 우리도 긍정했던 이야기이기도 하지요

    이영훈 교수(놀랍게도 커밍스 교수조차도) 남한 경제 성장의 인적자원은 좋건 싫건 근대화의 개념을 일제시대의 사회분위기및 교육-소학교 교육이나 기타 공적 교육기관이 아닌 간접 경험을 포함해서-을 받은 부류로 정의하지요. 이교수는 그 자료로 "식민지 근대화"이론을 커밍스는 "남한의 경제 발전의 모순"을 지적하는게 다르지만 말입니다.-그래서 모 수구 사이트에서는 커밍스를 바로 그런 이유로 싫어하더군요
  •  이준님 2007/08/27 19:02 #

    ps: 박교수 이야기를 하자면 남한군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정통성으로 두고 미국의 기술을 익힌 일본의 인적자원"이고 북한군은 "항일 게릴라-김일성파-를 정통으로 두고 소련의 기술을 익힌 중국의 인적자원"이라고 하더군요,.(물론 70년대 이후는 이러한 태생적 한계를 극복해서 독자적인 특성을 가진것으로 진화합니다만) 정확한 지적이라고 봅니다.
  •  지구호 2007/08/27 20:07 #

    이준님 / 맞습니다.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얻게된 사회시스템에 대한 경험이 해방이후 대한민국의 발전에 도움이 된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하지만, 식민지근대화론에 반대를 하는 의견을 보면 같은 시기(1905년~1945년)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의 발전도를 보아도 비슷하거나 식민지 조선을 능가하는 숫치들은 쉽게 접할 수가 있습니다. 식민지근대화론에 대하여 가장 크게 적용을 받는 것은 일제시대이기 때문에 그러한 발전을 할 수가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이태진교수님의 대한제국근대화맹아론은 일제의 식민지가 아니었어도 대한제국이 그러한 발전을 할 수가 있지 않았겠냐는 의견일 것입니다. 물론 if이기는 하지만, 같은 시기 세계적으로 인구수가 늘어난다든지 공업화등이 발전을 한다든지 하는 공통적인 요소가 대한제국에게만 예외가 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요는 이러한 경우에서 단순하게 학문적인 입장에서만 식민지시대도 발전을 했다로 끝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일본의 우익들은 이러한 데이터를 보면서 일제시대는 혜택이며, 축복이었다고 주장을 하며, 한국의 反日을 무조껀적인 국수적민족주의로 폄하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식민지근대화론은 이영훈교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간의 민족적(국가적) 감정의 싸움으로 번질 수 있는 폭탄입니다.

    저의 사감이지만 식민지근대화론은 순진하게도 너무 학문적으로만 접근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위에서도 언급을 하였듯이, 낙성대연구소의 데이터를 얻기 위하여 일본측의 접속이 너무 활발하다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  초록불 2007/08/27 21:57 #

    지구호님 / 최소한 제가 읽은 바로는, 이영훈 교수는 한번도 일제강점기의 조선이 타 지역에 비해 빠르게 성장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대한제국이 그렇게 발전할 수 있었겠느냐는 점은 변수가 너무 많아서 의미가 없는 가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지구호 2007/08/27 22:30 #

    초록불님 / [이교수의 책을 읽어보지 않은 채 인터넷 상에서 확대재생산되는 근거없는 이야기에 기초하고...] 제가 그런 꼴이로군요. 책을 읽어보지도 않은 저는 빠집니다. 꾸벅~
  •  초록불 2007/08/27 22:44 #

    지구호님 / 그런 생각은 없었습니다...^^;; 지구호님이 이 책을 읽어보면 저보다 빨리 문제점들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글 말미에 달아둔 것처럼 저도 이 교수의 의견에 모두 찬성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  도널드 2007/08/30 09:22 #

    오래동안 관심있던 주제였는데..챙겨놓고 보고자 트랙백 해갑니다. :D
    좋은 하루 되세요~
  •  dunkbear 2007/08/30 10:40 #

    안녕하세요, 초록불님. 몇개월 전에 한단고기 및 고대사 관련 기사의 내용을 읽고 잠시 검색하면서 초록불님의 좋은 글들을 많이 읽었었는데 여기서 다 뵙게되서 반갑습니다. 이 글도 잘 읽었네요. ^^

    근데 본문과 리플들을 주욱 읽어보니 이 주제에서는 [근대화]라는 표현보다는 [자본주의화]라는 표현이 오히려 더 어울리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근대화]라는 표현이 단순히 경제와 산업만 적용되는 것이 아닐 뿐더러 과연 그게 누구의 시각에서 보는 것인지도 고민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경제와 산업, 군사력 등 몇개 분야를 빼고 서구열강이 동양이나 다른 지역보다 정치나 사상,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월등했을까요? 영국이 민주주의 체제였다고 과연 우리나라의 왕정체제보다 더 월등했을지... 민주주의의 개념 자체만 보면 그럴지 몰라도 영국의 정치제도를 자세히 분석하면 다른 답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아, 죄송합니다... 괜히 쓸데없는 얘기를 주절거렸네요... ㅜ.ㅜ

    아무튼 [식민지적 근대화]라는 표현에 잠시 괴리를 느껴서 한번 끄적였습니다. ^^;;;

    좋은 글 다시 감사드립니다. (__)
  •  MoGo 2007/08/30 11:09 #

    흠.. 말씀하시는 것이 맞기는 한데, 이영훈 교수의 학문적 업적이 실제로 현실에서 보이는 행적에 비추어 볼 때 텍스트 그대로의 의미로는 안 보인다는 게 문제 아닐까요. 의심이 안 갈래야 안 갈 수가 없는 상황..;;
  •  Dataman 2007/08/30 11:31 #

    요는 '근대화'라는 개념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는가 아닐까요.

    식민지의 수탈이라고 하지만, 잠깐 쓰고 버릴 식민지인 것도 아니고 경영을 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투자가 있는 건 당연하지요. 그 정도의 '근대화론'도 용인하지 않아서야 (혹은 거꾸로 강변하거나) 곤란해 보입니다.
  •  초록불 2007/08/30 11:40 #

    dunkbear님 / 근대화와 자본주의화라는 용어에 대해서 dunkbear님이 어떻게 정의하고 계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영훈 교수는 말씀하신 것처럼 단순히 경제와 산업에 국한해서 근대화라는 말을 쓰고 있지는 않습니다.

    MoGo님 / 그런 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은 그것대로 비판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Dataman님 / 말씀에 동의합니다.
  •  dunkbear 2007/08/30 12:42 #

    말씀처럼 저도 확실히 정의를 못해서 헷갈립니다... 확실히 책들을 읽어야겠네요... 쿨럭...
  •  오돌또기 2007/08/30 16:18 #

    잘 읽었습니다. 링크도 신고합니다.
  •  9625 2007/08/30 18:54 #

    책은 읽지 않았습니다만 2004년에

    <이교수는 지난 2일 과거사 진상규명 논란을 주제로 열린 ‘MBC 100분 토론’에서 “조선총독부가 강제로 위안부를 동원했다고 어느 학자가 주장하느냐”며 “정신대 보고서를 안 읽어보고 하는 말”이라고 말했다.

    이교수는 또 “정신대 관련 일본 자료를 보면 (정신대) 범죄행위는 권력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고 참여하는 많은 민간인들이 있었다”며 “한국 여성들을 관리한 것은 한국업소 주인들이고 그 명단이 있다”고 주장했다.>
    [경향신문 2004-09-03 부분 인용]

    "위안부는 범죄지만 총독부가 강제로 끌고 가지는 않았다"라는 것이 이영훈
    교수의 주장이 맞나요?
    강제로 끌고 가지 않았지만 위안부가 범죄라는 것은 성매매자들이 자발적으로(!)
    가서 위안부가 되었지만 되는 것 자체가 범죄였다. 라는 것으로 이해가 되는데...
    (혹은 한국인들이 자발적으로 피해자들을 잡아서 일본에 상납했다는 의미?)

    아무래도 책을 보던지 논문을 보던지 해야겠네요.
  •  스카이 2007/08/30 22:42 #

    식민지 근대화론을 무조건 일제 찬양으로 받아들이는 인식, 문제죠.
  •  초록불 2007/08/31 01:04 #

    9625님 /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립니다. 이영훈 교수는 총독부와 일본 군부의 암묵적 승인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지요. 또한 한국여성들을 관리한 한국업소 주인들도 있다는 말이고, 한국업소 주인들만 일본군 성노예를 관리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스카이님 / 맞습니다.
  •  거울 2007/08/31 14:40 #

    이영훈의 주장이 너무 학자적이어서, 오히려 일반인들이 오해했다고 봅니다.
    사학에 권위있는 사람 아무도 이영훈의 주장에 반론을 제시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그냥 욕만 했었죠. 어찌보면 참 저급한 사회현상입니다.
  •  2007/09/02 00:13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현묘 2007/09/09 08:52 #

    제일 문제는 진실여부보다는 정치적인 이슈와 정치적 입장에 따라 대상을 대하는 괴상한 안목이 절대 다수의 이나라 국민들의 제일큰 문제입니다. 아직도 어느정도는 정치적 이분법의 기준이 되고 있는 소위 말하는 그 진보와 수구꼴통이란 편가르기 논법이 제법 먹히고 있는 실정입니다.
    학문의 영역에서도 제법 먹혀들어가는 이데올로기가 민족주의란 물건 아닙니까? 환빠의 난이 일어난 배경도, 초대환빠들이 논쟁거리도 안되는걸 친일매국노로 사학계를 매도하면서 절대다수의 무지한 국민들이 호응을 하며 일어난 헤프닝에 불과한겁니다.
    참 편하지 않습니까? 수틀리면 그냥 그 시대를 주름잡는 이데올로기의 가죽을 덮어 씌워 그 이데올로기에 반대하는 반동이란 낙인만 찍어주면 끝나니 말입니다. 물론 그런다고 진실이 가려지는건 아니지만, 그 이데올로기에 대한 회의가 생길때까지는 필요없는 헤프닝은 일어나고 있습니다.
    논리로 따지자면 우물의 독풀기와 인신공격의 오류에 해당되겠지요. 여기까지 오면 더이상 논쟁이 아닙니다.
  •  현묘 2007/09/09 08:59 #

    이영훈 교수건도 그렇습니다. 상대의 논리를 반박하기위해서는 당연히 그 사람의 논리를 충분히 주지해야 하는것임에도 절대다수의 우리 네티즌들은 언론에서 흘러나온 선정적인 기사를 보고 흥분부터 먼저하죠. 그리고 욕질부터 먼저합니다. 벌써 합리적인 반박따위는 머리속에 없는겁니다.
    논리적인척하며 글을 끄적거려대며 비난하기 바쁜 양반들은 더 구역질이 납니다. 처음부터 논리적인 출발도 못한 주제가 논리적인척 하니 웃기기 짝이 없습니다. 상대방의 주장을 확실히 인지도 못해놓고서 흥분해서 글을 써봐야 애초에 동문서답이란게 어디 가겠습니까?
  •  초록불 2007/09/09 09:13 #

    현묘님 / 맞는 말씀입니다. 못 배워서 그러는 거죠. 갈수록 교육의 중요성을 더 느끼게 됩니다.
  •  FELIX 2008/03/25 03:31 #

    초록불// 이영훈 교수의 월간조선이나 조선일보의 인터뷰를 일독해 보시길 권합니다. 기존의 관념이 많이 바뀌실겁니다.
  •  초록불 2008/03/25 09:20 #

    FELIX님 / 조선일보의 컬럼은 몇가지 읽어보았습니다. 월간조선까지 찾아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읽어보았으면 하는 기사가 있으면 링크를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참고로 저는 이영훈 교수의 학문적 성과는 인정하지만 현 정치에 대한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  Fedaykin 2008/06/16 12:42 #

    숙제하다가 관련 주제가 있어서 링크를 겁니다.

    내발론 vs 식민근대화론을 공부하다보면 항상 이영훈 교수가 나오더군요. 인격적인 모독이나 근거없는 비난은 처치하더라도, 몇가지 정치적인 발언들은 참 안타깝네요.

    하지만 식민근대화론을 전개해나가다보면 필연적으로 조선의 내재적 발전 가능성을 거의 제로로 보기 때문에 '우리는 일본이 없었다면 근대화를 할 수 조차 없었다, 그러니 일본의 식민통치에 어느정도는 감사를 해야 한다.' 까지 전개를 시키다보니 반대입장이 과격해지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영훈교수가 직접적으로 그런 발언을 하진 않았습니다만, 저런 주장 자체를 일본이 먼저 식민통치를 정당화 하기 위해 사용했었다보니 그를 옹호하는 논지를 펼친다면 한국인으로썬 당연히 화가 나는 모양입니다. 역사에 대한 인식이 현재에 대한 평가까지 집어삼켜버린다고 해야할까요.

    사실 공부를 하다보면 그당시 조선의 지독한 상황에 절망을 하게 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조선의 발전 가능성을 무한히 제로에 가까움으로 넘겨버리는건 지나친 패배주의가 아닌가 싶네요.

    물론 이영훈 교수가 직접 '대한제국의 발전 가능성은 제로'라고 말 한 것은 아니지만,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듣다보면 그런 말이 들리니까요.

    역시 특정인물과 그가 대표하는 학설을 분리하기는 너무 어렵네요.
  •  초록불 2008/06/16 13:31 #

    조선의 발전 가능성이라는 문제는, 조선에 국한해서 볼 것이 아니라 유럽 대 비유럽의 구도, 다시 말하면 산업혁명 대 비산업혁명의 거시적인 틀 아래서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영훈 교수의 컬럼을 보다보면, 점점 수구꼴통화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  식객 2008/09/11 11:03 #

    이만열 교수님의 『일제 식민지 근대화론 문제 검토』나 허수열 교수의 신동아에 적힌 글만 봐도 통계 오류의 떡밥인데 이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니요? 문맹률도 해방 이후 1~2년 안에 급격히 감소된 것만 보아도 별로 일제의 식민 통치가 획기적이였다던가, 발전을 시켜줬다던가는 안 보이는데요? 일제가 조선을 정말로 발전시킬려고 했다면 그 문맹률을 퇴치하고 전문 기술직을 양성해야 할텐데, 한글 문맹률은 왜 30년이 넘는 기간보다 1~2년 동안 퇴치한 문맹률이 더 높은지..그저 노동자로써 부려먹었다면 모를까..
  •  초록불 2008/09/11 11:47 #

    초점이 안 맞는 말씀입니다. 제가 검토하겠다고 달아놓은 부분이 뭔지 다시 읽어주세요.
  •  굿바이 2010/06/06 01:46 #

    근대화를 경제적인 부분에만 봐서 문제인 것이 아닌가요?
    근대화를 근대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보고
    또 근대사회는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나 자주적 정치체계를,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사회적으로는 신분제의식이나 그 제도적 폐지같은 평등사상의 실현이 성취된 사회라고 한다면
    이런 것들은 일제시대의 국익아래 거의 묵살된 거나 마찬가이었으니까요.
  •  초록불 2010/06/06 01:48 #

    본문에 분명히 적어놓았습니다만...

    이영훈 교수는 일제에 의해 서양근대 사상, 즉 인권에 대한 개념, 소유권에 대한 개념이 우리에게 들어왔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이런 신학문은 일본유학생들에 의해 조선에 전파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국내에는 근대사상을 실현하고 독립을 원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게 된다. 이것은 나폴레옹이 유럽에 근대적인 나폴레옹 헌법을 전파시키면서 자신에 대한 적대세력을 만들어내는 과정과 비슷하다.

    책을 보지 않은 것 같은데,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읽는데 별로 시간이 걸리지도 않는 책입니다...^^
  •  만슈타인 2010/09/05 07:49 #

    오래된 글이지만, 다시 보니 참... 원전의 중요성이 다시 느껴집니다
  •  matercide 2010/09/13 00:48 #

    글쎄 그래도 식민피해국가에서 식민지근대화론이 나왔다는 건 충격인데...
  •  용공폭도 2010/11/07 22:36 #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꼭 짚고 넘어가야 하겠다 싶은게.. 사람들이 소위 근대화라 불리는 산업화 및 서구국가화를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좋은 것'이고 '꼭 해야 할 것'으로 보지 않느냐는 겁니다. '너희는 미개한 비 문명국이니 근대화 해서 문명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명제 자체가 사실 굉장히 서구중심주의적이고 식민주의적이지 않을까요? 물론, 그런 길이 현재의 강대국들을 만들어 온 길인 것은 사실입니다만, 근대화가 유일한 살 길이고, 유일한 정답이라고 볼 근거는 없다 싶네요. 그 부분에 대한 고려 없이 무비판적으로 '조국 근대화'의 논리에 매몰되어 생각한다면, 근대화는 무조건 좋은 것이니 절대로 식민지 시대에 이루어졌을 리가 없다는 일종의 편견이 생길 수 밖에 없겠죠. 사실 식민지 근대화론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그 주장에서 일종의 정서적인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 근대화라는 것이 반드시 국가발전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은 아니지요. 착취나 수탈의 도구로써의 근대화도 있을 수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  초록불 2010/11/07 22:41 #

    말씀하신 부분은 근대화의 정의에 대한 부분입니다. 정의가 서로 다르면 대화가 성립하지 않겠지요.

    정의에 대해서 제가 진지하게 토론할 시간적 여유가 없으므로 그렇다는 점만 말씀드립니다.
  •  용공폭도 2010/11/07 22:47 #

    그러니까 넌센스라는 거지요. 근대화가 뭔지도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서 토론하자고 달려들지 않습니까.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  파랑나리 2010/11/25 22:09 #

    어쨌든 식민지근대화론은 2ch같은 데서 찌질거리는 일본의 혐한네티즌들에게 좋은 소재거리입니다. 이영훈 교수는 자기 주장을 한국이 아니라 2ch에서 해야 했습니다.
  •  선무공신 2011/06/23 04:02 #

    맞습니다!
  •  선무공신 2011/06/23 02:38 #

    이영훈 교수에 대한 해명글을 잘 읽었습니다.

    하지만 뉴라이트재단 애새끼들이 편찬한 대안교과서가 친일교과서인거 사실이죠.교과서를 편찬한 이들은 한국사 전공 교수가 아예 없습니다.(테러리스트론과 독립군 비하론에 대한 소문은 논파됐죠,)

    환빠들은 거짓말해도 우익쪽을 지나치게 신뢰하지 말아야합니다.
  •  선무공신 2011/06/23 04:05 #

    하여간 이영훈교순지 뭔지 못말린다니까~
    그사람은 사학과가 아니고 경제학과입니다.사학과로 복수전공인지 부전공했다는 기록도 없고요.
    tv까지 찍혔고 위키백과에서 이영훈교수가 위안부할머니들께 사과드렸다는 기록이 있는데 식민지근대화론과 위안부부인설을 내뱉었다는 증거죠.
  •  yhpdoit 2012/02/20 08:09 #

    이영호 교수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호의적이신거 같습니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전혀 공감하지 못합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근대화" 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영호 교수의 주장대로 한국 경제는 발달햇습니다. 하지만 한국 경제의 발달과 근대화는 동의어가 아닙니다. 한국 무역량이 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게 근대화와 동의어는 아닙니다.

    현대의 대한민국은 경제가 매일 발전하고 있으며 무역량은 매달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근대화됫다는 주장은 아무도 펴지 않습니다. 근대화는 그것을 말하는게 아니기 떄문입니다.근대화는 산업화로 인한 산업 구조와 사람들의 의식의 변화를 기반으로합니다.

    일제 시대에 산업 구조가 근대화되었나요? 아닙니다. 사람들 의식이 근대화되게 교육에 일제가 투자했나요? 아닙니다. 일제 시대의 한반도는 그냥 농업과 수공업 국가에 지나지 않았고 교육 수준은 무척 낮았습니다. 이건 절대 근대화된 한국이 아닙니다. 제가 보기엔 일제의 만행을 근대화란 허울좋은거에 숨기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  yhpdoit 2012/02/20 08:12 #

    "그러나 이영훈 교수는 공권력에 대한 강제 징집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증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나도 이 부분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있다."

    정신대가 강제 징용이 아니라고요?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아직까지 강제로 끌려감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정신대 분들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강제 징용을 일본이 가입한 조약 몇개 대면서 아니라고 믿고 계신다면 초록불님에게 너무나도 실망입니다.

    실제 경험자가 살아있고 경험을 증언하는데 그런게 있을 리가 없을수도 있다고 생각하시는 초록불님의 생각이 초록불님이 그렇게 비난하는 유사역사학자들과 다른게 대체 뭡니까? 그분들 다 죽으면 무슨 괴변을 넣으실려고 그러시는 건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  yhpdoit 2012/02/20 08:20 #

    "이영훈 교수는 일제에 의해 서양근대 사상, 즉 인권에 대한 개념, 소유권에 대한 개념이 우리에게 들어왔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

    도대게 일제에 인권과 소유권의 개념이 들어왓다는 주장부터 황당합니다.소유권은 조선시대에도 있었습니다. 일제 시대 이전은 무슨 공산주의 사회였다는 겁니까? 소유권이 없게. 대한 제국 시절만 해도 소유권은 분명햇습니다.

    인권에 대한 개념이요? 일제가 행한 그 고문의 흔적이 남아있는데 인권요? 요즘은 고문을 인권으로 계산하는 겁니까? 조선시대 고문보다 일제시대 고문이 더 강하고 심각햇습니다. 조선시대가 오히려 일제보다 인권을 생각햇다고 보면 정확합니다.

    서양근대 사상은 대체 뭔지 모르겟습니다.설사 저런 사상들이 들어왓다고 해도, 저런 사상의 전파는 일제가 지배하든 강아지가 지배하든 들어왓을 껍니다. 자연스런 교류로 번져나간 거니까요. 일제가 그걸 도와준건 없습니다. 오히려 방해했지요. 그걸 일제 시대에 일어낫다고 해서 일제의 덕입니다 찬양은 대체 뭔 소리인지 모르겟습니다. 천주교 사상은 조선시대 들어왓습니다. 천주교는 조선의 왕들을 찬양해야 할거같습니다.
  •  yhpdoit 2012/02/20 08:28 #

    이영호란 사람은 그냥 자기 눈에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는 사람일 뿐입니다.

    이영호에게 반드시 묻고 싶습니다. 일제 정부가 "보통, 평등, 자유의 권리"를 위해 대체 무엇을 햇는지? 일제가 통제하지 않아도 흘러간거 말고 공식 명령으로 그걸 촉진하기 위해서 어떠한 노력을 햇는지 말이죠.

    요즘 북한에선 자본주의가 퍼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거 김정일 정권 시절에 일어난 것이니 김정일은북한에 자본주의를 퍼트린 사람이다 라고 주장하면 초록불님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이영호는 딱 그런 사람입니다.

    아직까지 강제 징용자와 강제 노역,강제 위안부등 그걸 압제한 흔적과 증인들이 뻔히 살아있는데 저런 말을 하는거 보면 기가 안 찹니다. 뭐라? 인권? 친일파의 인권이겟지요.
  •  초록불 2012/02/20 10:36 #

    이영호가 아니라 이영훈입니다.

    이영훈 교수는 "식민지적으로 이루어진 근대화"라고 말하고 있으며, 식민지 시대에 대한 찬양도 아닙니다. 착취와 차별이 근대적 메카니즘에 의해서일어났다, 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일제강점기의 경우 몇 단계로 나누어 통치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제국주의와 파시즘은 동일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지요.

    저는 대체로 제가 읽어본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잘 모르는 부분은 잘 모른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화내지 마시고, 그보다 참고할만한 책을 권해주시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yhpdoit 2012/02/28 13:36 #

    그러니까 근대적 메카니즘이 대체 뭐냐 이겁니다. 화낸거 없습니다. 어처구니없을 뿐이죠.
    도무지 말도 안되는 내용을 이어서 주장을 만드니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겁니다.

    게다가 식민지 근대화론이 역사학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주장도 아니고 제가 왜 반증해야 하는지.....마치 신이 없음을 증명해봐. 못하지? 고로 신은 있어. 이소리와 다를바 없게 들립니다만..

    하지만 그럼 너무 성의없으니 대충 한부분만 반박해드리죠.

    "생산된 쌀의 거의 절반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쌀이 건너간 경로는 빼앗아 간 것이 아니라 수출이라는 시장경제의 경로를 통해서였습니다. (중략) 쌀이 수출된 것은 총독부가 강제한 것이 아니라 일본의 쌀값이 30% 정도 높았기 때문이지요. (중략) 모자라는 식량은 만주에서 조나 콩과 같은 대용 식량을 사와서 충당하였습니다. (중략) 수출소득으로 면제품과 같은 공산품을 일본에서 수입하거나 아예 기계나 원료를 수입하여 방직공장을 차릴 수도 있습니다. 실제 김성수 선생의 경성방직이 그렇게 해서 세워진 공장입니다."

    도대체 첫번째 문단부터 이해가 안 가는게, 조금 비꼬아 비유하자면, "제가 누구한테 돈 100만원을 훔쳣습니다. 그걸 가지고 시장에서 물건을 샀습니다. 시장에서 물건을 사는건 정상적인 시장경제의 경로입니다. 따라서 나는 도둑질한게 아니라 시장이라는 시장경제의 경로를 통해서 물건이 오간겁니다." 이런 주장을 해대니 이해할 수가 없는게 당연합니다.

    총독부가 강제하지 않았다는 걸 2차 근거로 들고있는데,일제가 1920년대부터 1934년까지 수행한 산미증식계획은 관심이 없나 봅니다.일본은 산업화되면서 농촌인구가 급감해서 1918년 대규모의 쌀폭동 때문에 한국에서 쌀을 도입하는 계획을 세웟고 그게 산미증식계획입니다.

    하지만 생산량 증가는 예상에 미치지 못햇고, 결국 한국인의 쌀 소모를 착취해 모자라는 양을 일본으로 돌리게 됩니다. 쌀이 없어서 굶주리는 사람이 생기자 그걸 만주지방에서 가져온 콩과 팥으로 메꾼겁니다.

    경성방직은 대체 왜나오는지 모르겟습니다. 경성방직은 일부 조선인 대지주와 국민 성금으로 만들어진 공장입니다.(1인 1주운동) 산미증식계획이 경성방직에 도움이 됫다는건 억지 주장입니다. 그냥 그때 비슷한 시기의 좋은일 하나 끌어온거에 불과합니다. 산미증식계획으로 일부 조선인 대지주 이외에 자영농,자작농,소작농등 조선인 농업가들이 대부분 몰락하는 결과를 가져왓는데 오히려 손해봣으면 손해봣지 그쪽으로 흘러갓다는 어떠한 근거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논리가 도저히 맞지 않고(시장경제의 경로니까 수탈은 아니야!) 해석은 자기 맘대로 같다 붙였으며(산미증식계획은 안들려! 그냥 일본쌀 비싼거만 보여!),예시는 전혀 상관없는걸 억지로 붙여놔(경성방직같은 민족기업을 내세우면 그럴듯하겟지) 잘 모르는 사람들을 그럴듯한 소리로 선동하려고 한 수작으로밖에 안보입니다. 그저 어떻게든 일제를 미화할려고 별짓 다하는 느낌입니다. .

    산미증식계획은 다음 자료를 참고햇습니다.
    http://yoksa.aks.ac.kr/jsp/cc/View.jsp?cc10id=C0001771
  •  초록불 2012/02/28 23:21 #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이영훈의 책을 보시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전문은 인터넷에도 공개되어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리 길지 않은 책이므로 한 번 보실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제가 더 이야기해보아야 위 포스팅 내용의 되풀이에 불과할 것입니다. 저는 제 눈으로 본 것을 가지고 판단하기 때문에, 유사역사학 비판의 경우도 읽지 않고는 언급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링크해주신 글은 물론 읽었으며, 이외의 글도 소개해주시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제가 요즘 생업에 매우 바쁘고 일제강점기 문제는 사실 제 관심사에서는 다소 거리가 있는 부분이라 빨리 피드백해드리기는 어려우리라 생각합니다. 이 점 양해를 구합니다.
  •  알파캣 2012/07/12 00:57 #

    음.. 여담이지만,

    저 글에 의하면 알제리나 베트남같은 경우도 식민지 근대화론에

    정당성이 부여될수 있을지 궁금해지네요.

    물론 똑같을순 없겠지만.

    일부 프랑스인들이 주장하는것도 저 범주와는 크게 다르지 않은것 같아서요.
  •  초록불 2012/07/12 08:08 #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것은 "정당성"의 문제가 아니라 "현상"에 대한 이야기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제국주의는 어떤 말로도 정당화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민소정 2012/11/07 21:56 #

    식민지 근대화론을 부정하는 주장을 보면 환빠가 생각나지요.

    주류 사학 = 식민 사관 = 매국
    식민지 근대화론 = 식민지 시혜론 = 매국

    여기 댓글들 중에도 그런 경향이 엄청나게 많이 보이네요.
  •  강철남작 2014/03/03 08:54 #

    근대화: 정치·경제·사회·문화·가치관 등의 모든 면에서 전반적으로 구조적 변화가 진행되어 후진적인 상태에서 보다 향상된 생활조건을 조성해 가는 과정.

    일제의 식민화는 다음과 같은 변화를 낳았습니다.

    정치: 입헌군주제에서 좋게 평가해야 입헌군주제, 사실을 직시한다면 원시 제정일치 사회(왕정복고 천황제)로의 퇴보.

    사회: 양천/반상제에서 황족-화족-평민-부라쿠민(향소부곡은 조선조때 없어짐.) 체제로 변경. 민족차별이라는 악폐 생김.

    종교: 유-불-도 체제에서 원시 종교의 파시즘적 변종인 국가신토로 강제 변경. 종교강요.

    문화: 인습의 범주 외에 있는 전통문화 또한 소실되고 민족 정체성이 위협받음

    경제구조의 자본주의적 산업화적 변개(실제로 그러한 변개가 있었느냐는 차치하고서라도)외의, 정치, 사회, 문화, 가치관에서 어떤 요건을 충족했기에 그것을 근대화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지? 근대화는 지향해야할 발전, 식민화는 제거해야할 악폐인데 식민지적 근대화라는 것은, 무슨놈의 말장난이냐는 생각밖에 들지 않을텐데, 악질 민족빠와 환빠에 대한 옳은 대처방법이 될 수있을런지? 어째 근대화란 말로 일제식민통치를 포장하려는 알량한 수작이 아닙니까?

    더우기 제가 악질 민족빠, 환빠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코자 말씀드리니 예컨대 일제의 해수구제사업은 반도의 조선인을 호환의 공포로부터 해방시키고 현대 한국인들조차도 그 수혜를 입고있고 감정적 거부를 하고싶더라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는 터, 허나 그 저의가 조선인에 대한 인류애적 인도주의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식민통치를 수월케하기 위함에 잇을 터, 저의를 무시하고 결과만 놓고 평가한다면 영국은 진주만 기습 건으로 미국을 끌어들인 일본에게 감사해야하고, 전후 일본은 625 남침 건으로 자국경제를 살려준 김일성에게 감사해야하는 작태가 발생하게됨.

    올바른 역사관을 가지자면, 정신을 차려야합니다. 식근론은 멀리하세요.
  •  초록불 2014/03/03 10:59 #

    어떤 일의 원인을 소급해나가다보면 끝이 없고, 말씀하신대로 터무니없는 인과 관계를 맺기도 하지요.

    일제 식민기나 식민 정책을 긍정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비판에는 항상 정확한 메스가 가해져야 하고, 그래야 문제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 분야는 사실 제가 잘 아는 분야가 아니고, 이 당시 상당히 시끌시끌한 문제였기 때문에 정리의 차원에서 살펴본 것에 불과합니다. 이후 더 읽어보아야지라는 생각은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취미로 들어가기는 생업이 바빠서 더 천착해보지 못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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