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육체탐구생활 : 김현진 산문집
김현진 (지은이) | 박하 | 2017-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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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스트 김현진이 말하는 우리 육신의 은밀한 기억. 자칭 집도 절도 돈도 빽도 없는 도시빈민이자 비정규직 노동자로 가난한 삶을 건사했으나 영혼은 가난하지 않았던 에세이스트 김현진이 우리 육체에 깃든 은밀한 생의 기억을 탐구한다.
<육체탐구생활>은 에세이스트 김현진이 우리의 육신이 우리의 삶을 이루는 모든 것이었음을, 상심한 영혼을 되찾기 위해 그토록 헤맸으나 손에 만져지는 것은 오직 육체가 전부였음을 뒤늦게 깨달아간 방황의 여정과, 그간 척진 육체에게 건네는 화해의 인사다.
김현진은 말한다.
“슬픔과 기쁨, 모든 기억들은 죄다 몸에 새겨져 있었다. 당신도 그럴 것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는 모두 몸을 지니고 이 세상을 살아간다. (…) 마구 함부로 해왔던 내 육신이 이제는 나를 용서하기를. 그리고 당신의 육체에도 부디 축복이 있기를. 사랑에 빠지고 또 상심하시길, 우리가 끝내 어딘가에 닿을 때까지. 또 그 여정 동안 당신의 육체가 영혼을 지탱해줄 만큼 튼튼하기를.”
작가의 말 - 우리가 사랑한 모든 것들은 ‘몸’에 깃들어 있다
1. 슬픔이 말을 걸어오거든
내 생애 가장 차가웠던 ‘그’와의 키스
봄날은 잘 간다
내 안에, 아버지
전혀 스마트하지 못한 이야기
나한테 그만 소리 질러 이것들아
남자가 입 맞추고 싶은 손
낭만적 낙오자
울지 말아요, 다들
나주순대국
경찰아저씨의 옷자락
격렬한 손길이 애정이라 생각했다
사랑 때문에 죽은 이는 아무도 없다
2. 사랑이라는 ‘불완전’명사
서른 즈음의 연애
할리우드 액션
여자를 유혹하는 두 가지 방법
왜 화내고 그러세요?
그 스키니진에 남자가 어떻게 들어갔지?
부산 남자, 대구 남자, ‘웃장’ 까는 남자
정녕 남자의 섹시함이란 무엇인가?
그 남자의 몸
가장 강렬했던 남자의 감촉
송지선에게 술이라도 한 잔 사먹일 수 있었다면
3. 파란만장 미스 김
2010년 봄 지금은 이게 다예요
2010 초여름 연애와 영업의 결정적 차이
2010 여름 이런 시급!
2010 한여름 개미지옥
2010 가을 보수와 진보가 다르지 않을 때
2010 가을 유명한 아버지는 유명하기도 하지
2010 초겨울 배달의 민족 녹즙 아가씨의 푸르딩딩한 나날
2011 겨울 백수의 혜택
2011 늦겨울 녹즙 아가씨 드디어 사표 썼다!
2011 봄 녹즙 아가씨 시즌 2: 리로디드.
2011 초여름 쥐가 죽었다.
2011 여름 고양아 넌 어디서 왔니?
2011 한여름 힘내요 건당 인생
2011 가을 당신들이 선물이다
2011 초겨울 녹즙 병장 미스 김 전역하다
2012 겨울 혼자가 팔자는 아니겠지요
2012 봄 동아줄보다 새끼줄
2012 한창 봄 살겠다는 것들은 다 이쁘다
2012 봄 야옹아 할아버지가 뭐라시디?
2012 여름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을 수 있는 힘
4. 차마 그러려니 할 수 없었던 날들
나쁜 짓
태어나서 미안합니다
가만 있으라, 가슴에 묻으라
무혈의 테러리스트
아사는 그리 쉽지 않다
남의 남편 밥을 차리면서
주여, 이 주둥이를
당신은 누구시기에
안녕, 이재영, 상큼함의 빛과 소금이여
왜소한 철의 여인, 이소선
영원한 사상의 오빠, 리영희
P.52 : 대다수가 보기에, 나는 30대 초반에 이미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기준으로 보면, 얼마든지 책을 보고 마음대로 노래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사람이다. 돈을 많이 벌 수는 없지만 굶어 죽지 않을 만큼 벌 수 있는 거래 관계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고, 내가 원할 때 일할 수 있다. 아, 왜 나는 좋은 회사원이 되고자 그토록 노력했던 걸까. 아마 그건 내가 이 사회의 낙오자가 아님을 증명하지 못할까 봐 불안에 떨며 몸부림친 것일 테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경쟁 시대에서, 누군가는 낙오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사무실에 들어앉아 있을 때 즐기지 못했던 가을 정취 속을 개를 데리고 천천히 걸으면서, 인정했다. 그렇다 나는 낙오자다, 또한 하자품이다. 그리고 아주 낭만적인 낙오자다. 지금은 이것으로 좋다.
P.84 : 나는 앞으로도 분명히 다칠 것이다. 또 누군가에게 상처받고 울 것이다. 그렇지만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 같은 해피엔딩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어차피 생은 누구에게나 고된 것이라는 걸 진심으로 인정한다면, 아무런 나쁜 일도 없는 곳은 공동묘지뿐이고 어차피 다 내 맘 같지 않다는 단 하나의 진실을 진실로 새기게 된다면, 비로소 나는 나에게 돌아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먼 길을 돌아서 마침내 나는 내가 원하는 상태에 도달할 수 있을까. 행복보다 고요, 편안이 아니고 평안. 방황하는 네덜란드인도 아니고 아직도 제 몸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한심한 여자, 그러니까 나에게 폴란드 시인 쉼보르스카의 시를 읽어주고 싶다. 정신 좀 차리자, 하면서. 우리 생에 두 번은 없다’ 고. 그러니 어서 돌아오라고. 그리고 ‘사랑 때문에 죽은 이는 아무도 없다’ 고…… 그러니 제발 돌아오길, 이 남루하고 구질구질한 삶으로. 20년째인 모라토리엄은 이제 끝내고, 두 번 살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으니 사는 것처럼 좀 살아보자고..
P.104 : 나는 다 크다 못해 늙어가기 시작한 것도 이미 오래되었으며 그에 더해 천천히 죽어가고 있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 고통을 자꾸 삼키면 꿀꺽 넘어가게 된다는 걸 이제는 알 만한 나이가 됐으면서도, 내심 속으로는 친숙한 어둠을 떠나보내기 싫어서. 아프지 않다고 코웃음을 치며 마음의 상처를 모른 척하니 대신 몸이 시퍼렇게 멍들어줬던 것이다. 그 생각을 하자마자 어느새 멍이 사라졌다. 한 움큼 집어먹은 진통제가 듣기 시작하자 훨씬 편해졌다. 몸은 어리석은 나에게 앞으로 무슨 말을 더 해줄까. 나는 그걸 지금 정도만큼이나 제때 알아듣기나 할까.
저자 : 김현진
최근작 : <XX 같지만, 이건 사랑 이야기>,<우리는 갈 곳이 없다>,<말해봐, 나한테 왜 그랬어> … 총 29종 (모두보기)
소개 : 10대에 쓴 공교육 탈퇴기 『네 멋대로 해라』를 시작으로 여러 책을 써냈으며,
나를 스쳐간 당신의 몸,
당신의 이마를 한때 어루만졌던 누군가의 손,
아스팔트 위에서 사정없이 깎여나가던 누군가의 피와 살,
철탑에서 얼거나 타들어가는 몸들,
당신이 나를 낚아채주길 바라면서 숨죽여 뺨을 대보았던 당신의 쇄골.
몸은 당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은밀한 삶을 알고 있다.
이것은 그 ‘몸’에 대한 이야기다.
생에 두 번은 없으니 돌아오라, 이 남루한 삶으로―
우리 시대의 에세이스트 김현진이 말하는 우리 육신의 은밀한 기억
자칭 집도 절도 돈도 빽도 없는 도시빈민이자 비정규직 노동자로 가난한 삶을 건사했으나 영혼은 가난하지 않았던 에세이스트 김현진이 우리 육체에 깃든 은밀한 생의 기억을 탐구한다.
고등학교 1학년 중퇴, 《네 멋대로 해라》 출간, 단편영화 감독, 웹진 최연소 편집장,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최연소 합격 등 한 시사주간지에서 ‘성공한 10대’라는 제목으로 그를 표지모델로 세웠을 만큼 수많은 미디어와 세간의 관심을 받았으나, 김현진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뒤로 하고 묵묵히 촛불집회장, 기륭전자 옥상 컨테이너, KTX 고공농성장, 쌍용자동차 굴뚝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상처 입은 영혼들의 비명을 채집하여 위무해왔다.
《육체탐구생활》은 우리 시대의 에세이스트 김현진이 우리의 육신이 우리의 삶을 이루는 모든 것이었음을, 상심한 영혼을 되찾기 위해 그토록 헤맸으나 손에 만져지는 것은 오직 육체가 전부였음을 뒤늦게 깨달아간 방황의 여정과, 그간 척진 육체에게 건네는 화해의 인사다.
김현진은 말한다. “슬픔과 기쁨, 모든 기억들은 죄다 몸에 새겨져 있었다. 당신도 그럴 것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는 모두 몸을 지니고 이 세상을 살아간다. (…) 마구 함부로 해왔던 내 육신이 이제는 나를 용서하기를. 그리고 당신의 육체에도 부디 축복이 있기를. 사랑에 빠지고 또 상심하시길, 우리가 끝내 어딘가에 닿을 때까지. 또 그 여정 동안 당신의 육체가 영혼을 지탱해줄 만큼 튼튼하기를.”
이제 《육체탐구생활》과 함께 영혼을 담는 그릇, 육체 속에 새겨진 당신도 기억 못할 내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시기를.
차마 그러려니 할 수 없었던 사랑과 동의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거부,
비껴갈 수 없었던 슬픔, 이 모든 것을 와락 끌어안는 고열의 문장!
2014년 봄, SNS를 뜨겁게 달군 한 편의 글이 있었다. 제목은 ‘내 생애 가장 차가웠던 ‘그’와의 키스’. “내가 본 육신 중 가장 차가운 것은 내 아버지의 것이었다.”라고 시작되는 이 글은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게 작별을 고하는 너무나도 처연한 과정을 특유의 위트와 유머로 경쾌하게 그려나가면서도 끝내 읽는 이를 울리게 만드는 ‘쎈’ 글이었다.
그렇게 김현진이라는 에세이스트가 얼마나 근사한 글쟁이인지 새삼스럽게 절감케 하며 우리 앞에 돌아온 그는 자기도 모르게 새겨졌던 육체의 기억을 《육체탐구생활》을 통해 농밀하게 그려낸다. 갈비뼈가 욱신거리자 몇 년 전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라고 울부짖으며 자신을 걷어찼던 모르는 남자를 떠올린다. “그러게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사람이니까. 그런데 그렇게 대답해버리긴 너무 슬퍼요. 나 때린 건 용서해줄게요. 어차피 그렇게 귀하신 몸도 아니니까 난 괜찮아요. 두 사람, 잘 지내요? 차에서 떨어져서 다치지는 않았나요? 벌써 몇 년 전 일인데도, 이따금 그 세찬 울음이 생각나서, 아직도 같이 울고 싶어진다. 요즘 들어 아픈 갈비뼈를 보니, 그때 걷어차였던 곳이다. 내 갈비뼈도 그동안 울음을 참았나 보다. 잘…… 있나요? 부디 울지 말아요, 다들.”
“부디 울지 말아요, 다들.” 김현진은 늘 그랬듯이 《육체탐구생활》을 통해서도 우리를 위로하고 보듬어 안는다.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했던, 재가 된 이들에게 보내는 레퀴엠
그럼에도 어기차게 이야기한다. “육체의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축복을!”
아버지를 잃은 세상 모든 이들로부터 눈물을 뽑아낸 ‘내 생애 가장 차가웠던 ‘그’와의 키스’를 비롯하여 《육체탐구생활》에서는 이미 육체를 잃고 한 줌의 재가 된 이들에게 보내는 진혼가가 담겨 있다.
4월 중순의 따스한 봄볕은 아버지를 잃은 날을 상기할 뿐이다. “나는 비참하고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젠 날씨가 좋아도 난리냐 하면, 누군가를 잃은 날씨와 너무나 흡사한 날은 그대로 그날을 판화로 떠낸 듯 한구석에 억지로 처박고 여며놓았던 슬픔이 질기게 찾아와서 비참해지는데, 하필 아버지는 날씨가 한창 화창한 봄날에 세상을 떠났다.”(‘봄날은 잘 간다’ 20쪽)
원치 않았던 대통령의 등장으로 사람들이 멘붕에 빠졌을 때 “뭐 어때, 우린 지는 법이 없지.”라고 말해줄 진보정치의 꽃 이재영의 부재를 누구보다 안타까워한다. “선생님, 정말로 우린 지는 법이 없습니까. 당신이 없는데 누가 우리에게 우린 지는 법이 없다고 상큼하게 뻥을 쳐준단 말인가요. 안녕히 가세요, 이재영 선생님. 상큼함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이 땅에 당신은 빛과 소금이었고 어두운 창턱 위의 등불이었습니다.”(‘안녕, 이재영, 상큼함의 빛과 소금이여’ 314쪽)
그렇게 자신이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했던 이들이 불시에 재가 되었어도 김현진은 여전히 어기차다. 그리고 우리의 몸이 아직도 생을 이어가는 한 꿋꿋하게 버티자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친구였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 당신을 요만큼이라도 도울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손톱만큼이라도 돕고 싶었는데. 허나 이제 다 늦어버렸다. 잘 가라 어여쁜 당신. 남자 때문에 우는 거야 우리 다 어쩔 수 없지만 이게 그냥 사람들이 함부로 놀리던 대로 자살 ‘드립’으로 그칠 만큼 당신이 세게 사는 걸 봤으면 참 좋았을 걸 그랬다. 혹시라도 남자 때문에 울고 사람 입에 오르내려 우는 여자 있거든 그냥 이것저것 다 끊어버려라, 딱 하나 목숨만 빼고.” (‘송지선에게 술이라도 한 잔 사 먹일 수 있었다면’ 158쪽)
《육체탐구생활》은 우리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어떻게든 살아보자고 말하는 그의 진심 어린 응원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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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하지 않다 가볍게 무겁다 멋있고 웃겨서 섹시하다
채드 ㅣ 2017-09-08 l 공감(0) ㅣ 댓글(0)
줄곧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하마터면 무슨 맛인지조차 모르는 녹즙을 무턱대고 신청할 뻔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끄는 힘이 굉장한 아가씨로군요~.
zikomo ㅣ 2017-08-02 l 공감(1) ㅣ 댓글(0)
2016-035_[관악도서관]
그녀가 누군지 몰랐다. 책 내용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한명의 에세이스트가 몸으로 부딪히며 써온 글.
실로 정직한 글은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있었던 현장에서 몸으로 나오는 것을 보여준다.
지키미 ㅣ 2016-02-15 l 공감(3) ㅣ 댓글(0)
이게 무슨 `녹차즙 판매기`인가 하고 회의에 빠져들 즈음, 김현진은 기륭 전자, 쌍용자동차 시위 현장으로 날아간다.
게다가 `사상의 오빠` 리영희 선생님과 이소선 어머님을 생전에 만나다니!
비록 그녀의 가슴 싸이즈가 AA컵일지언정 그녀는 섹시하다.
시이소오 ㅣ 2016-02-02 l 공감(1) ㅣ 댓글(0)
솔직하고 발랄한 글쓰기. 재미나게 보고있어요.
lindylindy ㅣ 2015-10-11 l 공감(3) ㅣ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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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 11편
삶의 고통도 때론 익숙해진다 꼼쥐 ㅣ 2016-02-17 ㅣ 공감(17) ㅣ 댓글 (0)
자신의 약점이나 치부를 가리는 것 하나 없이 솔직하게 드러내는 사람을 보면 이유도 없이 괜히 화가 난다.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 숨김 없이 내보이는 작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데 정작 그것을 읽는 내가 마치 내 일인 양 화가 나는 것이다. 이건 또 무슨 시츄에이션? 하고 묻겠지만 사실 왜 그런지 정확한 이유를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자신의 약점을 적당히 가리고 살짝 내비치거나 조금만 힌트를 준다 한들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아닌데 굳이 시시콜콜 다 까발려서 자신의 이미지만 깎아먹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작가와 친밀하다거나 특별한 관계가 있어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독자로서 안타까운 마음에 하는 말이다.
최근에 알게 된 김현진 작가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육체 탐구 생활>은 그녀가 쓴 책 중 내가 읽은 두 번째 작품에 불과하지만 지나친 솔직함으로 인해 작가의 문학적 재능이 덜 부각된다거나 작가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독자가 있을까 우려하는 마음이 드는 걸 어찌할 수 없었다. 우리 사회에서 솔직함이라는 게 때로는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하거니와 젊은 사람의 치기 어린 반항, 또는 세상을 향한 삐딱한 시선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상처는 어느 누구에게도 하소연하지 못한 채 고스란히 작가 자신이 떠안아야 하는 몫으로 남기 때문이다.
"화내야 할 때 화낼 줄 모르고 참아야 할 때 참을 줄 모르는 불균형한 어른이 되면서 내 영혼은 몸에서 달아나는 법에 너무 익숙해져버렸다. 모멸과 슬픔에 맞서 싸우지 않고 천장 어디쯤에서 남처럼 자기 몸을 쳐다보면서, 저기 가서 좋은 일이 없었다면서, 잊고 싶은 기억이 불로 지지듯 들고 일어나 어제 일처럼 쿠킹호일 구기듯 마음을 구겨버리면 술을 찾아 사고를 저지르고 후회한 게 지난 10년이었다." (p.83)
이 책에는 그닥 길다고 말할 수도 없는 작가의 지난 삶이 빼곡히 자리잡고 있다. 책은 50대의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한 아버지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녹즙 배달을 하던 시기에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를 서둘러 화장하고 유골함이 엄마와 함께 대구로 향할 때 자신은 집에 남았다고 한다. 그때 그녀의 엄마는 유골 일부를 청국장통에 남겨두고 가셨는데 작가는 자신이 마련한 예쁜 통에 유골을 옮겨 담고 빈 통을 헹구는데 물 위에 뜨는 유골을 차마 하수구에 버릴 수 없어서 물과 함께 마셨다고 한다. 역시 도발적이다. 작가는 그렇게 자신의 육체를 제공한 아빠의 죽음으로부터 자신의 육체가 걸어온 길을 더듬는다.
생활에 지쳐 자학하듯 살았던 이야기며, 사랑으로부터 늘 피하고 도망치기만 했던 지난 날이며, 그 과정에서 만났던 이웃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길지 않았던 그녀의 삶에 비해 그녀가 들려 주는 이야기는 50년대 피란민의 아주 오래된 이야기처럼 파란만장하기만 하다. 어찌 살았나 싶을 정도로 피폐하다. 30대 아가씨의 삶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러나 냉정한 말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 중의 일부는 작가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자신의 나약함을 숨기기 위해 없는 발톱을 일부러 드러낸 채 악다구니를 썼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총 4부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작가는 자신의 연애 경험담(2.사랑이라는 '불완전'명사)과 새벽에 녹즙을 돌리며 낮에는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의 이야기(3.파란만장 미스김)와 그녀가 참가했던 농성장과 가슴 아픈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내가 안타깝게 생각했던 것도 바로 그런 점이었다. 우리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누드 모델을 보고 성욕을 느끼거나 섹시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아무리 파란만장한 개인의 삶이라 할지라도 솔직하게 쓴 작가의 글이 그것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끔찍하다고 느껴진다면 인정을 받지 못하는 건 자명한 일. 그것은 작가의 재능과는 하등 무관한 일일 터였다.
"까마득한 옛날, 고등학교 그만두면 모두 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가출하고 담배 피고 신나 불고 그런 애들이 된다고 다들 생각할 무렵 교장과 싸우고 싸우다 고등학교를 때려치운 것부터 시작해서 왜 그렇게 사느냐 하고 잔소리 들을 일이 서른 먹을 때까지 참 많고도 많았다. 삐딱한 글도 많이 썼고, 팔리지도 않는 삐딱한 책들도 많이 썼고, 부르는 데가 있으면 가서 삐뚤어진 이야기를 잔뜩 해댔다. 물론 이건 피곤한 짓이다.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관심병이라 한다면 그 또한 맞는 이야기다." (p.277~p.278)
어린 시절의 고통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과도하면 과도할수록 가난이나 삶의 고통으로부터 탈출할 방법을 궁리하기보다 고통에 견디는 법을 먼저 익힌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왜 그렇게 사느냐고 하지만 고통이 더 이상 고통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익숙해졌다는 걸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른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너무나 뻔한 생각을 했더랬다. 작가의 지난 삶이 순탄하지만은 않았구나, 하는 그런 시답잖은 생각 말이다. 작가가 리영희 선생님의 병문안을 갔던 이야기를 이 책의 끝에 실었던 것도 다 이유가 있을 터였다. 어쩌면 작가는 자신의 육체 탐구를 마치고 영혼의 탐구를 새로이 시작했는지도... 아무튼 그녀의 앞날에 건투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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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육체탐구생활 mystar28 ㅣ 2016-02-04 ㅣ 공감(0) ㅣ 댓글 (0)시원시원한 문장과 세상을 향한 당찬 시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여자다
『육체 탐구 생활』가짜를 이겨내는 방법 bubu ㅣ 2015-12-01 ㅣ 공감(1) ㅣ 댓글 (0)
이 책을 만난 건 이웃 리니님 덕분이었다. 아마 그 때 그 리뷰를 보지 못했더라면 이 책을 읽을 일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눈에 강렬히 내려꽂히는 제목과 흑백 표지는 분명 인상 깊었지만 몇장 들추었을 때 느낀 것은 과연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였다. 그리곤 잠시 잊고 있었다. 다시 리니님의 블로그 이벤트에 덜컥 당첨이 되고 나서야 기억해냈다. 읽어야겠다, 마음 먹은 것도 그 때. 리니님이 걱정하셨을 만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책이라 조금은 고심했지만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 읽고 난 지금은 글쎄, 읽기는 잘했다. 남은 것도 있다. 다만 글로 표현하기가 참 힘든 책이다 싶었다.
『육체 탐구 생활』는 칼럼니스트 김현진이 자신의 경험담을 적은 에세이다. 자신의 몸에 하나, 둘, 새겨져 잊혀지지 않는 기억과 경험을 담았기에 제목에 강렬히 육체, 탐구, 생활이란 단어가 조화를 이루어 제목을 만들어냈다. 후반부에 들어가면 내가 정치 이념에 관한 책을 읽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김현진의 정치색이 확연히 드러나기도 하고 도대체 무슨 주제로 엮인 거야? 싶은 글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맨 첫 표지로 돌아가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다. 아, 이 모든 게 저자의 몸에 새겨진 잊혀지지 않는 기억, 추억, 상처를 모아 만든 책이었지 싶은, 웃음이 나왔다가 묘하게 숙연해지기도 하는 책이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언제나 영혼의 성숙, 성장을 바란다. 육체는 나이가 먹으면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법이라고, 육체를 사랑하는 것은 금기시되어 있지만 실상 우리의 영혼을 담아내는 그릇은 몸이고, 결국 우리의 손에 만져지고 느껴지는 것 또한 몸이라는 것을 종종 잊고 산다. 만져지지 않는 것을 좇으려고 하나 결국 우리는 만져지는 것만을 믿고 사는데도 육체에 대해서는 그런 생각을 지금껏 전혀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랬기에 『육체 탐구 생활』은 조금 껄끄럽다.
갑작스럽게 병세가 악화되어 돌아가신 아버지의 육신에 대한 이야기, 기륭전자 등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싸움터에서의 상처, 금식 등 자신의 몸이나 타인의 몸에 난 상처와 흔적으로 기억되는 추억을 조심스럽게 더듬어 간다.
내가 껄끄러워했던 수많은 문장들이 거기서 비롯되었다. 도대체 왜?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자는 노골적이고 담담하게 묘사를 한다. 아니 그게 묘사일까. 그저 적는다. 자신의 가슴 께에 갑작스럽게 생긴 멍을 보며 오래 전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나요?라며 울부짖으며 자신을 걷어찼던 이를 생각해내고, 고독과 외로움에 사무친 모습 그대로 손톱 끝으로 살짝 자신의 손목을 건드리고 놀라버린 장기 복역 출소자의 모습에 이기적인 이들의 모습을 생각해내고.
울컥, 눈물이 쏟아질 만큼 가슴 아프면서 절절하고, 불쾌하며 괴롭고, 외로운 기억이 육체에 새겨진 채 나와 함께 한다는 것을 나는 어째서 잊고 살았던지.
물론 여전히 불편한 문장들 또한 숨쉬고 있고, 누군가에게 추천하기에는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읽어보면 좋을 텐데 싶은 사람들이 몇몇 떠오르기는 하는데 딱 그 정도다. 물어보면 스치듯 책 제목을 추천해줄 수도 있겠지만 내가 먼저 꼭 읽어봐, 라고 말하기엔 쉽지가 않다. 술술 읽히는 글에 담긴 메세지가, 무겁기도 하고 외면하고 싶기도 하고, 또는 나와 맞지 않아 오랜 고민을 하게 되서 더욱 그렇다.
그리고 어떤 점이 좋았는데? 라고 묻는 다면 글쎄, 표현하기가 어렵다. 이 글을 남기기 위해 글을 적어내려가면서도 제목 옆에 쓸 내가 느낀 주제 또는 가장 중요한 문장 등을 표현해줄 문구가 생각하지 않았다. 이 정도로 생각나지 않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던 듯 싶다. 책 문장에서 하나를 뺏겨볼까. 앞뒤가 잘려나간 문장은 내가 느낀 바를 제대로 표현해주지 못했다. 그래서 '가짜를 이겨내는 방법'이라고 적었다. 너무 멀리 나갔나, 이게 뭐지, 싶긴 한데 수정할 수가 없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저걸 떠올렸나. 책을 잘못 읽었나 싶을 정도로 어색하다.
나는 이 책을 추천하진 않겠다. 그냥 끌리는 사람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혹시 끌려 서점 같은 곳에서 좀 보고 사야지,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스치듯 보면 선뜻 다시 책을 들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서점 등에서 서서 또는 앉아서 읽기에도 가볍지만은 않은 에세이라, 끌린다면 차라리 도서관 등에서 빌려다가 시간을 두고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그게 좋을 것 같은 책이다. 어느 샌가 손톱을 까득 물어대며 몰입할 지도 모른다. 그러다 소스라치게 놀랄 지도. 이 책은 나의 육신에 상처를 남겼다. 종이를 무심코 넘기다가 베이고, 손톱을 깨물어대다 살점을 짓이겼다. 아프단 생각이 들었다가 이게 이 책이 나의 육시에 남긴 기억인가보다 싶어 그냥 두었다.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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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 크다 못해 늙어가기 시작한 것도 이미 오래되었으며 그에 더해 천천히 죽어가고 있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 고통을 자꾸 삼키면 꿀꺽 넘어가게 된다는 걸 이제는 알 만한 나이가 됐으면서도, 내심 속으로는 친숙한 어둠을 떠나 보내기 싫어서. 아프지 않다고 코웃음을 치며 마음의 상처를 모른 척하니 대신 몸이 시퍼렇게 멍들어줬던 것이다. 그 생각을 하자마자 어느새 멍이 사라졌다. 한 움큼 집어먹은 진통제가 듣기 시작하자 훨씬 편해졌다. 몸은 어리석은 나에게 앞으로 무슨 말을 더 해줄까. 나는 그걸 지금 정도만큼이나 제때 알아듣기나 할까. -p.104
왜 남의 손을 만지고 그러세요! 하기엔 마음이 뭔가 찡하고 울렸어요. 사실 만졌다고 하기에도 뭐한 찰나의 순간이었어요. 그냥 내가 대신 마구 억울했어요. 그 좁은 방에서의, 내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긴 고득이. 한번 달라고 치근대기는커녕 사람 그림자도 보기 힘들었을 시간들이. 한참을 망설이다가 손가락도 아닌 손톱 끝으로 여자애 손목을 살짝 건드려만 보는, 죽어도 내가 알 수 없을 그 고독의 무게가. 아마도 그 고독 때문이겠죠. 정신이 아득해질 것 같은 키스를 할 줄 알던 남자보다도, 능란하게 여자를 안을 줄 알던 남자보다도, 몸과 마음에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남자의 감촉을 골라보라면 아무래도 그때 그 짧은 순간, 이라고밖에 대답할 수 없는 것은. -p.151
한국에서, 싸우는 여성은 모두 안티고네다. 연약한 단독자, 슬픈 단독자, 어둡고 캄캄한 굴 속의 그 안티고네의 일당으로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것뿐이다. 앉아서 사느니, 서서 죽겠다고. 당신이 준 그 얼마 안 되는 음식물로 버틸 수 있을 때가지 버티다가 목숨을 끊기느니 모질게 매듭을 지은 끈으로 스스로 끊고야 말겠다고. 당신이 강퍅해질수록 국가와 우리의 끈은 희박해질 뿐이라고, 기어코 굶겨 죽여야 속이 시원하겠느냐고. 정녕 목을 매서 죽어야 속이 후련하겠느냐고. 더 이상 안티고네의, 하이몬의 죽음은 없어야 한다. 굴 속에 넣어준 고작 그 만큼의 음식물로는 안티고네를 살릴 수 없다. 이제는 길 위의 피를, 멈춰야 한다. 그 피가 시작된 바로 이 길 위에서. -p.274
육체 탐구 생활 리제 ㅣ 2015-11-13 ㅣ 공감(2) ㅣ 댓글 (0)
김현진 작가의 [육체 탐구 생활]을 간략하게 한 줄로 정리해보면, 제목에 적은 것처럼 '키보드만 두드리지말고 몸으로 보여주기'라고 생각한다. 다소 거칠고 야릇하게 들리는 '육체탐구'라는 것이 결국 몸뚱이를 가지고 태어난 존재라면 모두 살아숨쉬는 동안 하고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누군가는 자신의 육체를 탐구하는 데 그치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타인의 육체를 혹은 전 인류의 건강한 육체를 탐구하느라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이 책에는 저자 김현진과 만났던 육체를 가진 존재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돈이란 건 좋은 것을 주기도 하지만 나쁜 것을 막아주는 기능도 있어서 다들 돈을 좋아하는 거였다. 다들 사치하고 싶어서, 좋은 걸 누리고 싶어서만 돈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구나. 이 꼴 저 꼴 안 볼 수 있기 때문에 다들 돈을 그렇게 좋아하는구나. 39
걸어서 출근하는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버스나 전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매일 같이 출퇴근 시간에 넘쳐나는 광고를 보게 된다. 병원광고나 한약방 광고를 보면 피곤하고, 지치고, 살이 찌고 잠이 안오는 이유가 저마다 다 다르다. 어찌되었든 그 병원에 가지 않으면 만성질환으로 우리는 죽는 내내 고통을 당할 것 처럼 몰아붙인다. 성형도 이제 안하면 큰일이다. 나쁜 놈이라서 날 버리고 내 후배를 만난 것도 다 내가 수술을 안해서라고 말한다. 해당 병원의 논리로 치자면 내가 수술을 한다면 누군가의 연인이었던 남자가 그녀를 버리고 내게 온다는 건데 그렇다면 난 절대 성형하지 않겠다. 돈들이고 고통까지 견뎌내며 나쁜놈을 뭐가 좋다고 만나야하는지 모르겠다. 저자말처럼 그런 광고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자차를 이용하거나 가급적 걸어서 후다닥 회사에 출근해야한다. 7포세대는 아니지만 어쨌든 돈이 있어야 가능한 건 사실이다. 흙수저로 태어난 육체는 고생할 수 밖에 없는 사회다. 그래서 오늘도 육체는 고단하고 힘들다.
우리가 사랑하지 않는 것들은 우리에게 손해를 끼칠 수는 있을지언정 결코 우리에게 상처를 입힐 수는 없다. 그리고 상처보다는 손해가 언제나 낫다. 그게 그나마 견딜 만하다. 63
손해보다 상처가 낫다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야금야금 나를 은행처럼 여기던 나쁜놈이 돈많은 여자를 만나 결혼하면서도 빌려간 돈을 갚지 않아 전세집에서 월세집으로 이사가야 할 때, 10년지기 친구라 믿고 보증섰더니 저 혼자 날라버렸을 때가 그렇다. 하지만 저자처럼 애초에 부모에게 손 한번 안빌리고 10원도 안받으며 학교를 다녔다면 분명 마음속에서 계속 곪고 있는 상처보다는 몸을 부지런히 하면 다시 벌수도 있는 금전적 손해가 더 나을 수도 있다. 어짜피 둘 중 뭐가 나은지를 따지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손해라면 욕하고 다시 채우면 되지만 상처를 치료하는 것은 손해를 복구하는 것보다 몇 배 더 어렵거나 불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일까. 마음의 상처가 났을 때 자신을 '아가'라고 불러주던 순대국밥집 할머니를 떠올리는 저자에게 나이차이도 나지 않는 나라도 가서 '아가~'하며 불러주고 싶었다.
예전에는 뭔가를 할 수 있는 것, 가질 수 있는 것만이 자유라고 믿었지만 그렇게 믿고 있던 세상이 얼마나 좁은 세상이었나 돌이켜보니 부끄럽다. 아마 앞으로 더 부끄러울 일이 많을 것이다. 하지 않는 것, 사지 않는 것, 가지 않는 것 역시 자유였다. 어쩌면 이게 더 질 높은 자유였다. 166
가장 중요한 얘기를 안하고 있었다. 저자가 미스김으로 불렸던 때를, 녹즙아가씨로 불렸던 때의 이야기다. 복이라면 복일텐데 저자는 아침잠이 없다고 한다. 잠이 없다기 보다는 아침에 일어나는 게 그렇게 힘들지 않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미혼인데다 나이어린 아가씨가 만만하게 덤빌일이 아니란 것은 해보지 않았어도 알 수 있다. 모두의 기대와는 달리 저자는 녹즙배달을 무려 2년2개월을 했다. 수십년 하신 어머님들에게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녹즙배달을 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녹즙을 배달하는 저자와 내기를 걸면서 자신이 이기면 한달치 무료녹즙을, 자신이 지면 저자 대신 하루 녹즙 배달을 하겠다고 했다던 그 분은 참 읽는 독자입장에서 봐도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대단하신 분이 그 귀한 시간을 어찌 녹즙배달하는 아가씨와 대화하는 데 사용하셨는지 이해불가다. 직업의 귀천이 없다는 말은 사어라고 생각한다. 귀천이 없었지만 귀천을 만들어버린 사람은 남도 아니고 나 자신이기도 하다. 나도 바뀌지 않는데 남을 뭐라할 수는 없다. 다만 아주 조금의 양심으로 겉으로 티를 내지 않을 뿐이다. 이런 육체도 살겠다고 버티는데 저자가 함께 '죽기를'각오하며 만나러 다니는 사람들의 사연은 따듯한 방안에서 읽고 있는 것 마저 죄송하다. 죄송한 마음마저 사치였다.
밥이 얼마나 귀한지, 그러므로 밥 먹는 살마들은 밥값 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웃의 입에도 밥이 들어가는지 살펴야 한다는 것을 기륭 선생님들이 말을 않고도 내게 가르쳐주었다. 289
기륭전자 농성자분들, 쌍용자동차, 촛불시위로 자신의 뜻을 내보였던 선량한 시민들의 그저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기본적인 희망을 갈구하는 육체들 속에 저자의 육체도 함께했다. 나의 육체는 그 시간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들이 다치지 않기를 바라며 기도라도 했었을까 생각해본다. 조용히 살라는 사람들, 그저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살라는 사람들, 감사한 마음이 없어서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다. 태어난 순간, 육체가 주어진 순간부터 감사한 마음으로 살지만 그 감사를 받을 대상이 자신들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다같이 육체를 가진 사람들끼리 잘 좀 살자는건데 왜이리 힘든걸까. 필사도 중요하고 독서도 중요하고 블로그로 정보를 공유하는 것도 퍼나르는 것, 좋아요를 누르는 것도 다 중요하다. 하지만 행동하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겁많은 나는 두손모아 간절하게 기도라도 꼬박꼬박 해야겠다.
굳세어라, 미스 김! 『육체 탐구 생활』 김현진 리니 ㅣ 2015-11-11 ㅣ 공감(2) ㅣ 댓글 (0)
▒ 책을 읽고 나서 요즘엔 '폴 오스터'의 『겨울일기』라든지, '다니엘 페낙'의 『몸의 일기』라든지, 육체로 인생을 회고하는 책을 줄곧 사들이는 중인데, 이 책도 그 관심의 연장선으로 내게 들어왔다. '육체 탐구'라 하면 모든 오감을 총동원하여 어떤 일과, 사건과 때로는 찰나의 순간까지 드러내기 마련인데, 이 책은 겉으로 보기에는 '육체 탐구'라는 단어와 깊게는 관련이 없어 보인다. 초반의 강렬한 기억을 빼놓고서는. 오히려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쭉 나열한 에세이에 가깝다. 간...
총 : 5편
장석주, <불면의 등불이 나를 인도한다> 봄 시이소오 ㅣ 2016-05-01 ㅣ 공감(33) ㅣ 댓글 (16)
장석주는 시인인가? 서평가인가? 우매한 질문이다. 그는 시인이면서 서평가니까. <글쓰기는 스타일이다>를 채 읽지 못했는데 언제 또 서평집을 내신건지. 고즈넉한 시골에서 읽고 쓰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그가 좋아하면 반갑고 (아, 당신도!) 모르는 작가의 책이 나오면 나의 무지를 들여다 볼 수 있어 좋다. 사계절 동안 그가 함께한 책들을 따라가 본다. 봄. 벤야민의 <일방통행로>로 시작된다. 도서관에 갔더니 이 책과 함께 <발터벤야민의 공부법&...
육체탐구생활 브륀 ㅣ 2016-01-17 ㅣ 공감(2) ㅣ 댓글 (0)
김현진
<육체탐구생활>,<가장 사소한 구원>,<나는 천천히 울기 시작했다>,<후회할 거야>,<리영희 프리즘>
김현진의 책을 처음 읽은 건 초등학생때였다. 초4인지 5였는지.. 지금 생각하면 얼척이 없긴 하다. 아마도 19금 책이 아닌 이상 내가 읽는 책에 대해 어떤 검열도 하지 않으셨던 어무니께서 내가 서점에서 고른 책을 그냥 사주신 것 같다.
어떤 경로로 손에 넣었는지는 까먹었는데, 아직도 그 '네 멋대로 해라'는 본가 책꽂이에 고이 꽂혀 있다. 그 책은 착한 아이 컴플렉스가 있었던 내게 이렇게 살 수도 있다니! 하는 충격을 줬던 걸로 기억한다. (네 멋대로 해라와 이빈의 '걸스'가 청소년기 내 성격형성에 영향이 컸다.)
네 멋대로 해라를 좋아했던 나머지 담임 선생님이 복도에 게시할 독후감을 써오라는 퀘스트를 줬을 때 그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갔는데, 파릇한 새싹을 키워야하는 초등학교 5학년 교실로 올라가는 복도에 게시하기엔 너무 자극적이었기 때문인지 빠꾸당했다. 다른 책으로 다시 써오라고... 그래서 난 '안네의 일기'를 읽고 써갔다. 최고의 고전으로 골랐으니 이제 됐나요? 하듯이.
그때 그 책을 읽고 얼마나 이해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예종이 뭔지도 모를 때니까!
독후감도 빠꾸당한 마당에 어디 써놓은게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지금 읽으면 당연히 그때완 소회가 다르겠다만, 올 설에 내려가면 한번 읽어봐야겠다. 간질간질하게 어릴 때의 기억이 떠오를지도.
신문과 한겨레21을 통해서 드문드문 그녀가 어떻게 지내는지는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 이
책으로, 다시금 그녀의 책들을 책장에 꽂아야겠단 생각을 했다.
분명 이야기들은 정말 먹먹하거나, 슬프거나, 답답한 이야기였는데 특유의 문체때문인지 재미있어서 이걸 재밌어 하는 내가 나쁜 년이 된 것 같은 배덕감이 들기도 하고, 책을 읽으면서 복잡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울면서 "재밌어.."라고 하는 내 꼴을 보면서 애인도 복잡한 기분이었겠지만.
거기에 반가움 반, 그동안 여러 책이 있었음에도 사지 않았던 것에 대한 미안함과 아쉬움 반 해서 여유 있을 때마다 다른 책도 사읽기로 했다. 그리고 주변에 계속 추천하는 걸로 내 팬심에 대한 부채감을 좀 갚아보고 싶다.
같은 세대 작가이니만큼 내가 책을 계속 읽을 수 있는 동안 그녀가 계속해서 글을 써주면 좋겠다. 여러 매체에 기고하는 것 같으니 매번 찾아서 보기는 힘들겠지만 책이 나오면 챙겨보는 걸로.
내가 따로 간직하려고 엄마에게 아버지를 좀 놓고 가라고 했더니 엄마도 참, 아버지를 빈 청국장통에 넣어놨지 뭐예요. 핑크색 프림통에 당신을 한 점 흘리지 않고 무사히 옮겨 담고 빈 통을 헹구려 하니, 물에 둥둥 뜬 당신의 조각들이 왜 그렇게 눈을 찌르듯 아파왔을까요. 아버지, 당신이 살아 계셨다면 얼굴을 찡그렸을 테지만 차마 당신을 하수구로 흘려보내 김치찌꺼기니 어느 집의 먹다 남은 찌개국물이니 하는 것과 섞이는 걸 볼 수 없어서 저는 당신을 원샷했답니다. 웬일로 목에 걸리는 것 없이 넘어가준 아버지는 아무 맛도 나지 않았어요.
-p.29 내 안에, 아버지
여기저기 파헤쳐 찾아봤지만 낙엽이며 흙이며 온통 파놓은 거기서 그 조그만 아이폰을 찾을 수 있을리가. 죽은 개 묻다가 아이폰을 묻어버리다니 하도 한심한 일이라 슬프다가 갑자기 우스워졌다. 그렇다고 무덤을 다시 파헤칠 수는 없는 일.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다가 비직비직 웃었다. 올리야, 그래 아이폰 가져가라. 아버지 갖다 드려라. 아버지가 아이패드 갖고 싶어 하셧는데 이거라도 갖다 드려. 네가 가져다 드려. 보고 싶으면 전화할게. 잘 지내고, 가끔 카톡해라....
이것이, 내가 리퍼까지 받고도 끝내 스마트한 인생을 살지 못한 한심한 이야기다.
-p.35 전혀 스마트하지 못한 이야기
세상만사를 전혀 모르시는 부모님의 해맑은 얼굴을 보면서, 닳고 닳은 기분에 젖은 나는 피해의식에 시달렸다. 실제로 피해를 봤을 경우 의식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난센스라고 후에 어떤 친구가 말해주었다. 부모님이 그렇게 맑은 얼굴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깊은 신앙 덕분이었다. 내게는 없었던 바로 그것. 아무도 오지 않는 교회의 목사였던 아버지는 해맑은 얼굴을 하고 나에게 말하곤 했다. 나중에 다 하나님이 갚아주신다. 그러면 뭔가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라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지르곤 했다. 지금, 지금 갚아줘요! 바로 지금! 물론 하나님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고, 나는 술을 마시러 갔다.
p.68 경찰 아저씨의 옷자락
지금 병상에 누워 힘겹게 싸우고 계시는 리영희 선생님 역시, 그 `일체의 비결`을 알고 계셨다. 선생님은 ˝인생에 대단히 로맨틱한 것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기대를 버리면, 많은 것이 간단해진다˝고 특유의 간명한 말투로 딱 잘라 말했다. 20대가 그토록 독하고 힘들었던 이유는 여기보다 어딘가에, 라고 중얼거리며 끝없이 뭔가 대단히 로맨틱한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삿된 망상이었다. 그 망상이 헛된 기대를 부르고 망상과 기대가 힘을 합쳐 피를 펄펄 끓게 하던 거였다.
-p. 164 지금은 이게 다예요
그나마 강용석 같은 인간들이 `강용석 모먼트`를 일으킬 때는 우리 편 아니니까 날라차기라도 할 텐데, 그래도 `동지`인 것 같은 사람들이, 우리 쪽인 것 같은 사람들이 저런 순간을 일으킬 때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때 제일 곤란하다. 이럴 때 그냥 분위기 맞춰서 좋게 넘어가야 하는 것이 동지인 건지 다음에 어디 가서 그러지 말라고 똑바로 쏘아붙이는 게 동지인 건지 헷갈리다가 나중에 말하려고 생각하다 보면 어영부영 시간만 지나가 결국 나만 뻘쭘하고 속이 상하는 지경이 되어 결국에는 아 내가 싸게 굴었나, 내가 잘못된 사인을 보냈나? 하고 자책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성폭력 피해자가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보면 빠져 들어가는 전형적인 개미지옥이다.
-pp. 184~185 보수와 진보가 다르지 않을 때
사는 게 강퍅하다는 생각이 들 때면 그때 과자를 뿌리던 할머니 모습을 생각하고 그 목소리를 떠올린다. 살겠다는 것들은 다 이뻐. 악에 받쳐 잘 살겠다는 것들은 안 이쁘지만 살겠다는 것들은 이쁘다. 그 다음부터 나는 함부로 비둘기 징그럽다 말 안 하기로 했다. 누가 그럴 자격이 있단 말인가. 살겠다고 하는 것들끼리.
-pp.234~235 살겠다는 것들은 다 이쁘다
그 일 할 사람, 그 일 하지 않을 사람으로 나누는 이러한 태도는 한 발자국만 떼면 홍대 청소용역 노동자들이나 한진중공업 노동자 같은 사람들을 탄압하는 사용자들과 같은 태도가 쉽다. 그런 대접을 당하고 싶지 않았으면 그런 일을 하지 않았으면 될 것이 아닌가, 그런 일 할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될 것이 아닌가, 하고 그런 일 할 사람들의 일, 남의 일 이렇게 칼같이 줄을 그을 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우리 자신도 누군가에 의해 그런 일 할 사람, 아닌 사람으로 우리가 남을 판단한 바로 그 잣대로 나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능력에 따라 그의 시장가치가 정해지는 것이 자본주의에서 사람 사는 질서라고 칼같이 당연히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마 나처럼 시장 가치가 없는 사람과는 별로 가까이 지내고 싶지 않겠지만, 나 역시 그런 분들과는 마구 척지고 싶다. 있는 대로 척지고 싶다. 평생 척지고 싶다. 만나봤자 서로 별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확실하게 척지고 사는 게 피차 정신 건강에 좋으니까.
pp.276~277 무혈의 테러리스트
<육체탐구생활>은 우리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어떻게든 살아보자고 말하는 그의 진심 어린 응원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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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 우리가 사랑한 모든 것들은 ‘몸’에 깃들어 있다
1. 슬픔이 말을 걸어오거든
내 생애 가장 차가웠던 ‘그’와의 키스
봄날은 잘 간다
내 안에, 아버지
전혀 스마트하지 못한 이야기
나한테 그만 소리 질러 이것들아
남자가 입 맞추고 싶은 손
낭만적 낙오자
울지 말아요, 다들
나주순대국
경찰아저씨의 옷자락
격렬한 손길이 애정이라 생각했다
사랑 때문에 죽은 이는 아무도 없다
2. 사랑이라는 ‘불완전’명사
서른 즈음의 연애
할리우드 액션
여자를 유혹하는 두 가지 방법
왜 화내고 그러세요?
그 스키니진에 남자가 어떻게 들어갔지?
부산 남자, 대구 남자, ‘웃장’ 까는 남자
정녕 남자의 섹시함이란 무엇인가?
그 남자의 몸
가장 강렬했던 남자의 감촉
송지선에게 술이라도 한 잔 사먹일 수 있었다면
3. 파란만장 미스 김
2010년 봄 지금은 이게 다예요
2010 초여름 연애와 영업의 결정적 차이
2010 여름 이런 시급!
2010 한여름 개미지옥
2010 가을 보수와 진보가 다르지 않을 때
2010 가을 유명한 아버지는 유명하기도 하지
2010 초겨울 배달의 민족 녹즙 아가씨의 푸르딩딩한 나날
2011 겨울 백수의 혜택
2011 늦겨울 녹즙 아가씨 드디어 사표 썼다!
2011 봄 녹즙 아가씨 시즌 2: 리로디드.
2011 초여름 쥐가 죽었다.
2011 여름 고양아 넌 어디서 왔니?
2011 한여름 힘내요 건당 인생
2011 가을 당신들이 선물이다
2011 초겨울 녹즙 병장 미스 김 전역하다
2012 겨울 혼자가 팔자는 아니겠지요
2012 봄 동아줄보다 새끼줄
2012 한창 봄 살겠다는 것들은 다 이쁘다
2012 봄 야옹아 할아버지가 뭐라시디?
2012 여름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을 수 있는 힘
4. 차마 그러려니 할 수 없었던 날들
나쁜 짓
태어나서 미안합니다
가만 있으라, 가슴에 묻으라
무혈의 테러리스트
아사는 그리 쉽지 않다
남의 남편 밥을 차리면서
주여, 이 주둥이를
당신은 누구시기에
안녕, 이재영, 상큼함의 빛과 소금이여
왜소한 철의 여인, 이소선
영원한 사상의 오빠, 리영희
P.52 : 대다수가 보기에, 나는 30대 초반에 이미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기준으로 보면, 얼마든지 책을 보고 마음대로 노래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사람이다. 돈을 많이 벌 수는 없지만 굶어 죽지 않을 만큼 벌 수 있는 거래 관계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고, 내가 원할 때 일할 수 있다. 아, 왜 나는 좋은 회사원이 되고자 그토록 노력했던 걸까. 아마 그건 내가 이 사회의 낙오자가 아님을 증명하지 못할까 봐 불안에 떨며 몸부림친 것일 테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경쟁 시대에서, 누군가는 낙오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사무실에 들어앉아 있을 때 즐기지 못했던 가을 정취 속을 개를 데리고 천천히 걸으면서, 인정했다. 그렇다 나는 낙오자다, 또한 하자품이다. 그리고 아주 낭만적인 낙오자다. 지금은 이것으로 좋다.
P.84 : 나는 앞으로도 분명히 다칠 것이다. 또 누군가에게 상처받고 울 것이다. 그렇지만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 같은 해피엔딩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어차피 생은 누구에게나 고된 것이라는 걸 진심으로 인정한다면, 아무런 나쁜 일도 없는 곳은 공동묘지뿐이고 어차피 다 내 맘 같지 않다는 단 하나의 진실을 진실로 새기게 된다면, 비로소 나는 나에게 돌아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먼 길을 돌아서 마침내 나는 내가 원하는 상태에 도달할 수 있을까. 행복보다 고요, 편안이 아니고 평안. 방황하는 네덜란드인도 아니고 아직도 제 몸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한심한 여자, 그러니까 나에게 폴란드 시인 쉼보르스카의 시를 읽어주고 싶다. 정신 좀 차리자, 하면서. 우리 생에 두 번은 없다’ 고. 그러니 어서 돌아오라고. 그리고 ‘사랑 때문에 죽은 이는 아무도 없다’ 고…… 그러니 제발 돌아오길, 이 남루하고 구질구질한 삶으로. 20년째인 모라토리엄은 이제 끝내고, 두 번 살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으니 사는 것처럼 좀 살아보자고..
P.104 : 나는 다 크다 못해 늙어가기 시작한 것도 이미 오래되었으며 그에 더해 천천히 죽어가고 있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 고통을 자꾸 삼키면 꿀꺽 넘어가게 된다는 걸 이제는 알 만한 나이가 됐으면서도, 내심 속으로는 친숙한 어둠을 떠나보내기 싫어서. 아프지 않다고 코웃음을 치며 마음의 상처를 모른 척하니 대신 몸이 시퍼렇게 멍들어줬던 것이다. 그 생각을 하자마자 어느새 멍이 사라졌다. 한 움큼 집어먹은 진통제가 듣기 시작하자 훨씬 편해졌다. 몸은 어리석은 나에게 앞으로 무슨 말을 더 해줄까. 나는 그걸 지금 정도만큼이나 제때 알아듣기나 할까.
저자 : 김현진
최근작 : <XX 같지만, 이건 사랑 이야기>,<우리는 갈 곳이 없다>,<말해봐, 나한테 왜 그랬어> … 총 29종 (모두보기)
소개 : 10대에 쓴 공교육 탈퇴기 『네 멋대로 해라』를 시작으로 여러 책을 써냈으며,
30대가 된 지금까지 돈 없고 집 없고 빽 없는 사람들 이야기를 다양한 매체에 쓰고 있다.
페미니즘 에세이 『불량소녀 백서』 『당신의 스무 살을 사랑하라』,
MB시대를 살아 낸 치열한 삶의 기록 『그래도 언니는 간다』,
서울살이의 비망록 『뜨겁게 안녕』 등 여러 책을 냈으며
지은 소설로 『말해봐, 나한테 왜 그랬어』(공저)가 있다.
나를 스쳐간 당신의 몸,
당신의 이마를 한때 어루만졌던 누군가의 손,
아스팔트 위에서 사정없이 깎여나가던 누군가의 피와 살,
철탑에서 얼거나 타들어가는 몸들,
당신이 나를 낚아채주길 바라면서 숨죽여 뺨을 대보았던 당신의 쇄골.
몸은 당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은밀한 삶을 알고 있다.
이것은 그 ‘몸’에 대한 이야기다.
생에 두 번은 없으니 돌아오라, 이 남루한 삶으로―
우리 시대의 에세이스트 김현진이 말하는 우리 육신의 은밀한 기억
자칭 집도 절도 돈도 빽도 없는 도시빈민이자 비정규직 노동자로 가난한 삶을 건사했으나 영혼은 가난하지 않았던 에세이스트 김현진이 우리 육체에 깃든 은밀한 생의 기억을 탐구한다.
고등학교 1학년 중퇴, 《네 멋대로 해라》 출간, 단편영화 감독, 웹진 최연소 편집장,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최연소 합격 등 한 시사주간지에서 ‘성공한 10대’라는 제목으로 그를 표지모델로 세웠을 만큼 수많은 미디어와 세간의 관심을 받았으나, 김현진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뒤로 하고 묵묵히 촛불집회장, 기륭전자 옥상 컨테이너, KTX 고공농성장, 쌍용자동차 굴뚝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상처 입은 영혼들의 비명을 채집하여 위무해왔다.
《육체탐구생활》은 우리 시대의 에세이스트 김현진이 우리의 육신이 우리의 삶을 이루는 모든 것이었음을, 상심한 영혼을 되찾기 위해 그토록 헤맸으나 손에 만져지는 것은 오직 육체가 전부였음을 뒤늦게 깨달아간 방황의 여정과, 그간 척진 육체에게 건네는 화해의 인사다.
김현진은 말한다. “슬픔과 기쁨, 모든 기억들은 죄다 몸에 새겨져 있었다. 당신도 그럴 것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는 모두 몸을 지니고 이 세상을 살아간다. (…) 마구 함부로 해왔던 내 육신이 이제는 나를 용서하기를. 그리고 당신의 육체에도 부디 축복이 있기를. 사랑에 빠지고 또 상심하시길, 우리가 끝내 어딘가에 닿을 때까지. 또 그 여정 동안 당신의 육체가 영혼을 지탱해줄 만큼 튼튼하기를.”
이제 《육체탐구생활》과 함께 영혼을 담는 그릇, 육체 속에 새겨진 당신도 기억 못할 내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시기를.
차마 그러려니 할 수 없었던 사랑과 동의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거부,
비껴갈 수 없었던 슬픔, 이 모든 것을 와락 끌어안는 고열의 문장!
2014년 봄, SNS를 뜨겁게 달군 한 편의 글이 있었다. 제목은 ‘내 생애 가장 차가웠던 ‘그’와의 키스’. “내가 본 육신 중 가장 차가운 것은 내 아버지의 것이었다.”라고 시작되는 이 글은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게 작별을 고하는 너무나도 처연한 과정을 특유의 위트와 유머로 경쾌하게 그려나가면서도 끝내 읽는 이를 울리게 만드는 ‘쎈’ 글이었다.
그렇다. ‘쎈 언니’ 김현진의 복귀였다.
<미디어스>에 연재된 이 글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이렇게 화사한 봄날에 눈물이라니…….” “읽으며 눈으로 땀을 콸콸 흘렸다.” “아버지가 갑자기 그리워 택시를 잡아타고 찾아가 목 놓아 울었습니다.” 등 공감의 눈물을 흘린 독자들은 이 글을 공유하고 리트윗하며 김현진의 복귀를 환영했다. 이 글을 본 음악평론가 김작가는 이렇게도 말했다. “나보다 나중에 태어난 사람들 중 ‘글 존나 잘 쓴다!’라 생각했던 첫 두 명이 있다. 하나는 허지웅, 하나는 김현진.”
그렇게 김현진이라는 에세이스트가 얼마나 근사한 글쟁이인지 새삼스럽게 절감케 하며 우리 앞에 돌아온 그는 자기도 모르게 새겨졌던 육체의 기억을 《육체탐구생활》을 통해 농밀하게 그려낸다. 갈비뼈가 욱신거리자 몇 년 전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라고 울부짖으며 자신을 걷어찼던 모르는 남자를 떠올린다. “그러게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사람이니까. 그런데 그렇게 대답해버리긴 너무 슬퍼요. 나 때린 건 용서해줄게요. 어차피 그렇게 귀하신 몸도 아니니까 난 괜찮아요. 두 사람, 잘 지내요? 차에서 떨어져서 다치지는 않았나요? 벌써 몇 년 전 일인데도, 이따금 그 세찬 울음이 생각나서, 아직도 같이 울고 싶어진다. 요즘 들어 아픈 갈비뼈를 보니, 그때 걷어차였던 곳이다. 내 갈비뼈도 그동안 울음을 참았나 보다. 잘…… 있나요? 부디 울지 말아요, 다들.”
“부디 울지 말아요, 다들.” 김현진은 늘 그랬듯이 《육체탐구생활》을 통해서도 우리를 위로하고 보듬어 안는다.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했던, 재가 된 이들에게 보내는 레퀴엠
그럼에도 어기차게 이야기한다. “육체의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축복을!”
아버지를 잃은 세상 모든 이들로부터 눈물을 뽑아낸 ‘내 생애 가장 차가웠던 ‘그’와의 키스’를 비롯하여 《육체탐구생활》에서는 이미 육체를 잃고 한 줌의 재가 된 이들에게 보내는 진혼가가 담겨 있다.
4월 중순의 따스한 봄볕은 아버지를 잃은 날을 상기할 뿐이다. “나는 비참하고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젠 날씨가 좋아도 난리냐 하면, 누군가를 잃은 날씨와 너무나 흡사한 날은 그대로 그날을 판화로 떠낸 듯 한구석에 억지로 처박고 여며놓았던 슬픔이 질기게 찾아와서 비참해지는데, 하필 아버지는 날씨가 한창 화창한 봄날에 세상을 떠났다.”(‘봄날은 잘 간다’ 20쪽)
원치 않았던 대통령의 등장으로 사람들이 멘붕에 빠졌을 때 “뭐 어때, 우린 지는 법이 없지.”라고 말해줄 진보정치의 꽃 이재영의 부재를 누구보다 안타까워한다. “선생님, 정말로 우린 지는 법이 없습니까. 당신이 없는데 누가 우리에게 우린 지는 법이 없다고 상큼하게 뻥을 쳐준단 말인가요. 안녕히 가세요, 이재영 선생님. 상큼함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이 땅에 당신은 빛과 소금이었고 어두운 창턱 위의 등불이었습니다.”(‘안녕, 이재영, 상큼함의 빛과 소금이여’ 314쪽)
그렇게 자신이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했던 이들이 불시에 재가 되었어도 김현진은 여전히 어기차다. 그리고 우리의 몸이 아직도 생을 이어가는 한 꿋꿋하게 버티자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친구였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 당신을 요만큼이라도 도울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손톱만큼이라도 돕고 싶었는데. 허나 이제 다 늦어버렸다. 잘 가라 어여쁜 당신. 남자 때문에 우는 거야 우리 다 어쩔 수 없지만 이게 그냥 사람들이 함부로 놀리던 대로 자살 ‘드립’으로 그칠 만큼 당신이 세게 사는 걸 봤으면 참 좋았을 걸 그랬다. 혹시라도 남자 때문에 울고 사람 입에 오르내려 우는 여자 있거든 그냥 이것저것 다 끊어버려라, 딱 하나 목숨만 빼고.” (‘송지선에게 술이라도 한 잔 사 먹일 수 있었다면’ 158쪽)
《육체탐구생활》은 우리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어떻게든 살아보자고 말하는 그의 진심 어린 응원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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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하지 않다 가볍게 무겁다 멋있고 웃겨서 섹시하다
채드 ㅣ 2017-09-08 l 공감(0) ㅣ 댓글(0)
줄곧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하마터면 무슨 맛인지조차 모르는 녹즙을 무턱대고 신청할 뻔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끄는 힘이 굉장한 아가씨로군요~.
zikomo ㅣ 2017-08-02 l 공감(1) ㅣ 댓글(0)
2016-035_[관악도서관]
그녀가 누군지 몰랐다. 책 내용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한명의 에세이스트가 몸으로 부딪히며 써온 글.
실로 정직한 글은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있었던 현장에서 몸으로 나오는 것을 보여준다.
지키미 ㅣ 2016-02-15 l 공감(3) ㅣ 댓글(0)
이게 무슨 `녹차즙 판매기`인가 하고 회의에 빠져들 즈음, 김현진은 기륭 전자, 쌍용자동차 시위 현장으로 날아간다.
게다가 `사상의 오빠` 리영희 선생님과 이소선 어머님을 생전에 만나다니!
비록 그녀의 가슴 싸이즈가 AA컵일지언정 그녀는 섹시하다.
시이소오 ㅣ 2016-02-02 l 공감(1) ㅣ 댓글(0)
솔직하고 발랄한 글쓰기. 재미나게 보고있어요.
lindylindy ㅣ 2015-10-11 l 공감(3) ㅣ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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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 11편
삶의 고통도 때론 익숙해진다 꼼쥐 ㅣ 2016-02-17 ㅣ 공감(17) ㅣ 댓글 (0)
자신의 약점이나 치부를 가리는 것 하나 없이 솔직하게 드러내는 사람을 보면 이유도 없이 괜히 화가 난다.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 숨김 없이 내보이는 작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데 정작 그것을 읽는 내가 마치 내 일인 양 화가 나는 것이다. 이건 또 무슨 시츄에이션? 하고 묻겠지만 사실 왜 그런지 정확한 이유를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자신의 약점을 적당히 가리고 살짝 내비치거나 조금만 힌트를 준다 한들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아닌데 굳이 시시콜콜 다 까발려서 자신의 이미지만 깎아먹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작가와 친밀하다거나 특별한 관계가 있어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독자로서 안타까운 마음에 하는 말이다.
최근에 알게 된 김현진 작가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육체 탐구 생활>은 그녀가 쓴 책 중 내가 읽은 두 번째 작품에 불과하지만 지나친 솔직함으로 인해 작가의 문학적 재능이 덜 부각된다거나 작가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독자가 있을까 우려하는 마음이 드는 걸 어찌할 수 없었다. 우리 사회에서 솔직함이라는 게 때로는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하거니와 젊은 사람의 치기 어린 반항, 또는 세상을 향한 삐딱한 시선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상처는 어느 누구에게도 하소연하지 못한 채 고스란히 작가 자신이 떠안아야 하는 몫으로 남기 때문이다.
"화내야 할 때 화낼 줄 모르고 참아야 할 때 참을 줄 모르는 불균형한 어른이 되면서 내 영혼은 몸에서 달아나는 법에 너무 익숙해져버렸다. 모멸과 슬픔에 맞서 싸우지 않고 천장 어디쯤에서 남처럼 자기 몸을 쳐다보면서, 저기 가서 좋은 일이 없었다면서, 잊고 싶은 기억이 불로 지지듯 들고 일어나 어제 일처럼 쿠킹호일 구기듯 마음을 구겨버리면 술을 찾아 사고를 저지르고 후회한 게 지난 10년이었다." (p.83)
이 책에는 그닥 길다고 말할 수도 없는 작가의 지난 삶이 빼곡히 자리잡고 있다. 책은 50대의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한 아버지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녹즙 배달을 하던 시기에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를 서둘러 화장하고 유골함이 엄마와 함께 대구로 향할 때 자신은 집에 남았다고 한다. 그때 그녀의 엄마는 유골 일부를 청국장통에 남겨두고 가셨는데 작가는 자신이 마련한 예쁜 통에 유골을 옮겨 담고 빈 통을 헹구는데 물 위에 뜨는 유골을 차마 하수구에 버릴 수 없어서 물과 함께 마셨다고 한다. 역시 도발적이다. 작가는 그렇게 자신의 육체를 제공한 아빠의 죽음으로부터 자신의 육체가 걸어온 길을 더듬는다.
생활에 지쳐 자학하듯 살았던 이야기며, 사랑으로부터 늘 피하고 도망치기만 했던 지난 날이며, 그 과정에서 만났던 이웃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길지 않았던 그녀의 삶에 비해 그녀가 들려 주는 이야기는 50년대 피란민의 아주 오래된 이야기처럼 파란만장하기만 하다. 어찌 살았나 싶을 정도로 피폐하다. 30대 아가씨의 삶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러나 냉정한 말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 중의 일부는 작가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자신의 나약함을 숨기기 위해 없는 발톱을 일부러 드러낸 채 악다구니를 썼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총 4부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작가는 자신의 연애 경험담(2.사랑이라는 '불완전'명사)과 새벽에 녹즙을 돌리며 낮에는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의 이야기(3.파란만장 미스김)와 그녀가 참가했던 농성장과 가슴 아픈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내가 안타깝게 생각했던 것도 바로 그런 점이었다. 우리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누드 모델을 보고 성욕을 느끼거나 섹시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아무리 파란만장한 개인의 삶이라 할지라도 솔직하게 쓴 작가의 글이 그것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끔찍하다고 느껴진다면 인정을 받지 못하는 건 자명한 일. 그것은 작가의 재능과는 하등 무관한 일일 터였다.
"까마득한 옛날, 고등학교 그만두면 모두 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가출하고 담배 피고 신나 불고 그런 애들이 된다고 다들 생각할 무렵 교장과 싸우고 싸우다 고등학교를 때려치운 것부터 시작해서 왜 그렇게 사느냐 하고 잔소리 들을 일이 서른 먹을 때까지 참 많고도 많았다. 삐딱한 글도 많이 썼고, 팔리지도 않는 삐딱한 책들도 많이 썼고, 부르는 데가 있으면 가서 삐뚤어진 이야기를 잔뜩 해댔다. 물론 이건 피곤한 짓이다.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관심병이라 한다면 그 또한 맞는 이야기다." (p.277~p.278)
어린 시절의 고통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과도하면 과도할수록 가난이나 삶의 고통으로부터 탈출할 방법을 궁리하기보다 고통에 견디는 법을 먼저 익힌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왜 그렇게 사느냐고 하지만 고통이 더 이상 고통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익숙해졌다는 걸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른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너무나 뻔한 생각을 했더랬다. 작가의 지난 삶이 순탄하지만은 않았구나, 하는 그런 시답잖은 생각 말이다. 작가가 리영희 선생님의 병문안을 갔던 이야기를 이 책의 끝에 실었던 것도 다 이유가 있을 터였다. 어쩌면 작가는 자신의 육체 탐구를 마치고 영혼의 탐구를 새로이 시작했는지도... 아무튼 그녀의 앞날에 건투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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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육체탐구생활 mystar28 ㅣ 2016-02-04 ㅣ 공감(0) ㅣ 댓글 (0)시원시원한 문장과 세상을 향한 당찬 시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여자다
『육체 탐구 생활』가짜를 이겨내는 방법 bubu ㅣ 2015-12-01 ㅣ 공감(1) ㅣ 댓글 (0)
이 책을 만난 건 이웃 리니님 덕분이었다. 아마 그 때 그 리뷰를 보지 못했더라면 이 책을 읽을 일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눈에 강렬히 내려꽂히는 제목과 흑백 표지는 분명 인상 깊었지만 몇장 들추었을 때 느낀 것은 과연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였다. 그리곤 잠시 잊고 있었다. 다시 리니님의 블로그 이벤트에 덜컥 당첨이 되고 나서야 기억해냈다. 읽어야겠다, 마음 먹은 것도 그 때. 리니님이 걱정하셨을 만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책이라 조금은 고심했지만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 읽고 난 지금은 글쎄, 읽기는 잘했다. 남은 것도 있다. 다만 글로 표현하기가 참 힘든 책이다 싶었다.
『육체 탐구 생활』는 칼럼니스트 김현진이 자신의 경험담을 적은 에세이다. 자신의 몸에 하나, 둘, 새겨져 잊혀지지 않는 기억과 경험을 담았기에 제목에 강렬히 육체, 탐구, 생활이란 단어가 조화를 이루어 제목을 만들어냈다. 후반부에 들어가면 내가 정치 이념에 관한 책을 읽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김현진의 정치색이 확연히 드러나기도 하고 도대체 무슨 주제로 엮인 거야? 싶은 글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맨 첫 표지로 돌아가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다. 아, 이 모든 게 저자의 몸에 새겨진 잊혀지지 않는 기억, 추억, 상처를 모아 만든 책이었지 싶은, 웃음이 나왔다가 묘하게 숙연해지기도 하는 책이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언제나 영혼의 성숙, 성장을 바란다. 육체는 나이가 먹으면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법이라고, 육체를 사랑하는 것은 금기시되어 있지만 실상 우리의 영혼을 담아내는 그릇은 몸이고, 결국 우리의 손에 만져지고 느껴지는 것 또한 몸이라는 것을 종종 잊고 산다. 만져지지 않는 것을 좇으려고 하나 결국 우리는 만져지는 것만을 믿고 사는데도 육체에 대해서는 그런 생각을 지금껏 전혀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랬기에 『육체 탐구 생활』은 조금 껄끄럽다.
갑작스럽게 병세가 악화되어 돌아가신 아버지의 육신에 대한 이야기, 기륭전자 등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싸움터에서의 상처, 금식 등 자신의 몸이나 타인의 몸에 난 상처와 흔적으로 기억되는 추억을 조심스럽게 더듬어 간다.
내가 껄끄러워했던 수많은 문장들이 거기서 비롯되었다. 도대체 왜?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자는 노골적이고 담담하게 묘사를 한다. 아니 그게 묘사일까. 그저 적는다. 자신의 가슴 께에 갑작스럽게 생긴 멍을 보며 오래 전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나요?라며 울부짖으며 자신을 걷어찼던 이를 생각해내고, 고독과 외로움에 사무친 모습 그대로 손톱 끝으로 살짝 자신의 손목을 건드리고 놀라버린 장기 복역 출소자의 모습에 이기적인 이들의 모습을 생각해내고.
울컥, 눈물이 쏟아질 만큼 가슴 아프면서 절절하고, 불쾌하며 괴롭고, 외로운 기억이 육체에 새겨진 채 나와 함께 한다는 것을 나는 어째서 잊고 살았던지.
물론 여전히 불편한 문장들 또한 숨쉬고 있고, 누군가에게 추천하기에는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읽어보면 좋을 텐데 싶은 사람들이 몇몇 떠오르기는 하는데 딱 그 정도다. 물어보면 스치듯 책 제목을 추천해줄 수도 있겠지만 내가 먼저 꼭 읽어봐, 라고 말하기엔 쉽지가 않다. 술술 읽히는 글에 담긴 메세지가, 무겁기도 하고 외면하고 싶기도 하고, 또는 나와 맞지 않아 오랜 고민을 하게 되서 더욱 그렇다.
그리고 어떤 점이 좋았는데? 라고 묻는 다면 글쎄, 표현하기가 어렵다. 이 글을 남기기 위해 글을 적어내려가면서도 제목 옆에 쓸 내가 느낀 주제 또는 가장 중요한 문장 등을 표현해줄 문구가 생각하지 않았다. 이 정도로 생각나지 않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던 듯 싶다. 책 문장에서 하나를 뺏겨볼까. 앞뒤가 잘려나간 문장은 내가 느낀 바를 제대로 표현해주지 못했다. 그래서 '가짜를 이겨내는 방법'이라고 적었다. 너무 멀리 나갔나, 이게 뭐지, 싶긴 한데 수정할 수가 없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저걸 떠올렸나. 책을 잘못 읽었나 싶을 정도로 어색하다.
나는 이 책을 추천하진 않겠다. 그냥 끌리는 사람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혹시 끌려 서점 같은 곳에서 좀 보고 사야지,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스치듯 보면 선뜻 다시 책을 들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서점 등에서 서서 또는 앉아서 읽기에도 가볍지만은 않은 에세이라, 끌린다면 차라리 도서관 등에서 빌려다가 시간을 두고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그게 좋을 것 같은 책이다. 어느 샌가 손톱을 까득 물어대며 몰입할 지도 모른다. 그러다 소스라치게 놀랄 지도. 이 책은 나의 육신에 상처를 남겼다. 종이를 무심코 넘기다가 베이고, 손톱을 깨물어대다 살점을 짓이겼다. 아프단 생각이 들었다가 이게 이 책이 나의 육시에 남긴 기억인가보다 싶어 그냥 두었다.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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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 크다 못해 늙어가기 시작한 것도 이미 오래되었으며 그에 더해 천천히 죽어가고 있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 고통을 자꾸 삼키면 꿀꺽 넘어가게 된다는 걸 이제는 알 만한 나이가 됐으면서도, 내심 속으로는 친숙한 어둠을 떠나 보내기 싫어서. 아프지 않다고 코웃음을 치며 마음의 상처를 모른 척하니 대신 몸이 시퍼렇게 멍들어줬던 것이다. 그 생각을 하자마자 어느새 멍이 사라졌다. 한 움큼 집어먹은 진통제가 듣기 시작하자 훨씬 편해졌다. 몸은 어리석은 나에게 앞으로 무슨 말을 더 해줄까. 나는 그걸 지금 정도만큼이나 제때 알아듣기나 할까. -p.104
왜 남의 손을 만지고 그러세요! 하기엔 마음이 뭔가 찡하고 울렸어요. 사실 만졌다고 하기에도 뭐한 찰나의 순간이었어요. 그냥 내가 대신 마구 억울했어요. 그 좁은 방에서의, 내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긴 고득이. 한번 달라고 치근대기는커녕 사람 그림자도 보기 힘들었을 시간들이. 한참을 망설이다가 손가락도 아닌 손톱 끝으로 여자애 손목을 살짝 건드려만 보는, 죽어도 내가 알 수 없을 그 고독의 무게가. 아마도 그 고독 때문이겠죠. 정신이 아득해질 것 같은 키스를 할 줄 알던 남자보다도, 능란하게 여자를 안을 줄 알던 남자보다도, 몸과 마음에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남자의 감촉을 골라보라면 아무래도 그때 그 짧은 순간, 이라고밖에 대답할 수 없는 것은. -p.151
한국에서, 싸우는 여성은 모두 안티고네다. 연약한 단독자, 슬픈 단독자, 어둡고 캄캄한 굴 속의 그 안티고네의 일당으로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것뿐이다. 앉아서 사느니, 서서 죽겠다고. 당신이 준 그 얼마 안 되는 음식물로 버틸 수 있을 때가지 버티다가 목숨을 끊기느니 모질게 매듭을 지은 끈으로 스스로 끊고야 말겠다고. 당신이 강퍅해질수록 국가와 우리의 끈은 희박해질 뿐이라고, 기어코 굶겨 죽여야 속이 시원하겠느냐고. 정녕 목을 매서 죽어야 속이 후련하겠느냐고. 더 이상 안티고네의, 하이몬의 죽음은 없어야 한다. 굴 속에 넣어준 고작 그 만큼의 음식물로는 안티고네를 살릴 수 없다. 이제는 길 위의 피를, 멈춰야 한다. 그 피가 시작된 바로 이 길 위에서. -p.274
육체 탐구 생활 리제 ㅣ 2015-11-13 ㅣ 공감(2) ㅣ 댓글 (0)
김현진 작가의 [육체 탐구 생활]을 간략하게 한 줄로 정리해보면, 제목에 적은 것처럼 '키보드만 두드리지말고 몸으로 보여주기'라고 생각한다. 다소 거칠고 야릇하게 들리는 '육체탐구'라는 것이 결국 몸뚱이를 가지고 태어난 존재라면 모두 살아숨쉬는 동안 하고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누군가는 자신의 육체를 탐구하는 데 그치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타인의 육체를 혹은 전 인류의 건강한 육체를 탐구하느라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이 책에는 저자 김현진과 만났던 육체를 가진 존재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돈이란 건 좋은 것을 주기도 하지만 나쁜 것을 막아주는 기능도 있어서 다들 돈을 좋아하는 거였다. 다들 사치하고 싶어서, 좋은 걸 누리고 싶어서만 돈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구나. 이 꼴 저 꼴 안 볼 수 있기 때문에 다들 돈을 그렇게 좋아하는구나. 39
걸어서 출근하는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버스나 전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매일 같이 출퇴근 시간에 넘쳐나는 광고를 보게 된다. 병원광고나 한약방 광고를 보면 피곤하고, 지치고, 살이 찌고 잠이 안오는 이유가 저마다 다 다르다. 어찌되었든 그 병원에 가지 않으면 만성질환으로 우리는 죽는 내내 고통을 당할 것 처럼 몰아붙인다. 성형도 이제 안하면 큰일이다. 나쁜 놈이라서 날 버리고 내 후배를 만난 것도 다 내가 수술을 안해서라고 말한다. 해당 병원의 논리로 치자면 내가 수술을 한다면 누군가의 연인이었던 남자가 그녀를 버리고 내게 온다는 건데 그렇다면 난 절대 성형하지 않겠다. 돈들이고 고통까지 견뎌내며 나쁜놈을 뭐가 좋다고 만나야하는지 모르겠다. 저자말처럼 그런 광고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자차를 이용하거나 가급적 걸어서 후다닥 회사에 출근해야한다. 7포세대는 아니지만 어쨌든 돈이 있어야 가능한 건 사실이다. 흙수저로 태어난 육체는 고생할 수 밖에 없는 사회다. 그래서 오늘도 육체는 고단하고 힘들다.
우리가 사랑하지 않는 것들은 우리에게 손해를 끼칠 수는 있을지언정 결코 우리에게 상처를 입힐 수는 없다. 그리고 상처보다는 손해가 언제나 낫다. 그게 그나마 견딜 만하다. 63
손해보다 상처가 낫다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야금야금 나를 은행처럼 여기던 나쁜놈이 돈많은 여자를 만나 결혼하면서도 빌려간 돈을 갚지 않아 전세집에서 월세집으로 이사가야 할 때, 10년지기 친구라 믿고 보증섰더니 저 혼자 날라버렸을 때가 그렇다. 하지만 저자처럼 애초에 부모에게 손 한번 안빌리고 10원도 안받으며 학교를 다녔다면 분명 마음속에서 계속 곪고 있는 상처보다는 몸을 부지런히 하면 다시 벌수도 있는 금전적 손해가 더 나을 수도 있다. 어짜피 둘 중 뭐가 나은지를 따지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손해라면 욕하고 다시 채우면 되지만 상처를 치료하는 것은 손해를 복구하는 것보다 몇 배 더 어렵거나 불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일까. 마음의 상처가 났을 때 자신을 '아가'라고 불러주던 순대국밥집 할머니를 떠올리는 저자에게 나이차이도 나지 않는 나라도 가서 '아가~'하며 불러주고 싶었다.
예전에는 뭔가를 할 수 있는 것, 가질 수 있는 것만이 자유라고 믿었지만 그렇게 믿고 있던 세상이 얼마나 좁은 세상이었나 돌이켜보니 부끄럽다. 아마 앞으로 더 부끄러울 일이 많을 것이다. 하지 않는 것, 사지 않는 것, 가지 않는 것 역시 자유였다. 어쩌면 이게 더 질 높은 자유였다. 166
가장 중요한 얘기를 안하고 있었다. 저자가 미스김으로 불렸던 때를, 녹즙아가씨로 불렸던 때의 이야기다. 복이라면 복일텐데 저자는 아침잠이 없다고 한다. 잠이 없다기 보다는 아침에 일어나는 게 그렇게 힘들지 않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미혼인데다 나이어린 아가씨가 만만하게 덤빌일이 아니란 것은 해보지 않았어도 알 수 있다. 모두의 기대와는 달리 저자는 녹즙배달을 무려 2년2개월을 했다. 수십년 하신 어머님들에게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녹즙배달을 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녹즙을 배달하는 저자와 내기를 걸면서 자신이 이기면 한달치 무료녹즙을, 자신이 지면 저자 대신 하루 녹즙 배달을 하겠다고 했다던 그 분은 참 읽는 독자입장에서 봐도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대단하신 분이 그 귀한 시간을 어찌 녹즙배달하는 아가씨와 대화하는 데 사용하셨는지 이해불가다. 직업의 귀천이 없다는 말은 사어라고 생각한다. 귀천이 없었지만 귀천을 만들어버린 사람은 남도 아니고 나 자신이기도 하다. 나도 바뀌지 않는데 남을 뭐라할 수는 없다. 다만 아주 조금의 양심으로 겉으로 티를 내지 않을 뿐이다. 이런 육체도 살겠다고 버티는데 저자가 함께 '죽기를'각오하며 만나러 다니는 사람들의 사연은 따듯한 방안에서 읽고 있는 것 마저 죄송하다. 죄송한 마음마저 사치였다.
밥이 얼마나 귀한지, 그러므로 밥 먹는 살마들은 밥값 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웃의 입에도 밥이 들어가는지 살펴야 한다는 것을 기륭 선생님들이 말을 않고도 내게 가르쳐주었다. 289
기륭전자 농성자분들, 쌍용자동차, 촛불시위로 자신의 뜻을 내보였던 선량한 시민들의 그저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기본적인 희망을 갈구하는 육체들 속에 저자의 육체도 함께했다. 나의 육체는 그 시간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들이 다치지 않기를 바라며 기도라도 했었을까 생각해본다. 조용히 살라는 사람들, 그저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살라는 사람들, 감사한 마음이 없어서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다. 태어난 순간, 육체가 주어진 순간부터 감사한 마음으로 살지만 그 감사를 받을 대상이 자신들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다같이 육체를 가진 사람들끼리 잘 좀 살자는건데 왜이리 힘든걸까. 필사도 중요하고 독서도 중요하고 블로그로 정보를 공유하는 것도 퍼나르는 것, 좋아요를 누르는 것도 다 중요하다. 하지만 행동하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겁많은 나는 두손모아 간절하게 기도라도 꼬박꼬박 해야겠다.
굳세어라, 미스 김! 『육체 탐구 생활』 김현진 리니 ㅣ 2015-11-11 ㅣ 공감(2) ㅣ 댓글 (0)
▒ 책을 읽고 나서 요즘엔 '폴 오스터'의 『겨울일기』라든지, '다니엘 페낙'의 『몸의 일기』라든지, 육체로 인생을 회고하는 책을 줄곧 사들이는 중인데, 이 책도 그 관심의 연장선으로 내게 들어왔다. '육체 탐구'라 하면 모든 오감을 총동원하여 어떤 일과, 사건과 때로는 찰나의 순간까지 드러내기 마련인데, 이 책은 겉으로 보기에는 '육체 탐구'라는 단어와 깊게는 관련이 없어 보인다. 초반의 강렬한 기억을 빼놓고서는. 오히려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쭉 나열한 에세이에 가깝다. 간...
총 : 5편
장석주, <불면의 등불이 나를 인도한다> 봄 시이소오 ㅣ 2016-05-01 ㅣ 공감(33) ㅣ 댓글 (16)
장석주는 시인인가? 서평가인가? 우매한 질문이다. 그는 시인이면서 서평가니까. <글쓰기는 스타일이다>를 채 읽지 못했는데 언제 또 서평집을 내신건지. 고즈넉한 시골에서 읽고 쓰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그가 좋아하면 반갑고 (아, 당신도!) 모르는 작가의 책이 나오면 나의 무지를 들여다 볼 수 있어 좋다. 사계절 동안 그가 함께한 책들을 따라가 본다. 봄. 벤야민의 <일방통행로>로 시작된다. 도서관에 갔더니 이 책과 함께 <발터벤야민의 공부법&...
육체탐구생활 브륀 ㅣ 2016-01-17 ㅣ 공감(2) ㅣ 댓글 (0)
김현진
<육체탐구생활>,<가장 사소한 구원>,<나는 천천히 울기 시작했다>,<후회할 거야>,<리영희 프리즘>
김현진의 책을 처음 읽은 건 초등학생때였다. 초4인지 5였는지.. 지금 생각하면 얼척이 없긴 하다. 아마도 19금 책이 아닌 이상 내가 읽는 책에 대해 어떤 검열도 하지 않으셨던 어무니께서 내가 서점에서 고른 책을 그냥 사주신 것 같다.
어떤 경로로 손에 넣었는지는 까먹었는데, 아직도 그 '네 멋대로 해라'는 본가 책꽂이에 고이 꽂혀 있다. 그 책은 착한 아이 컴플렉스가 있었던 내게 이렇게 살 수도 있다니! 하는 충격을 줬던 걸로 기억한다. (네 멋대로 해라와 이빈의 '걸스'가 청소년기 내 성격형성에 영향이 컸다.)
네 멋대로 해라를 좋아했던 나머지 담임 선생님이 복도에 게시할 독후감을 써오라는 퀘스트를 줬을 때 그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갔는데, 파릇한 새싹을 키워야하는 초등학교 5학년 교실로 올라가는 복도에 게시하기엔 너무 자극적이었기 때문인지 빠꾸당했다. 다른 책으로 다시 써오라고... 그래서 난 '안네의 일기'를 읽고 써갔다. 최고의 고전으로 골랐으니 이제 됐나요? 하듯이.
그때 그 책을 읽고 얼마나 이해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예종이 뭔지도 모를 때니까!
독후감도 빠꾸당한 마당에 어디 써놓은게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지금 읽으면 당연히 그때완 소회가 다르겠다만, 올 설에 내려가면 한번 읽어봐야겠다. 간질간질하게 어릴 때의 기억이 떠오를지도.
신문과 한겨레21을 통해서 드문드문 그녀가 어떻게 지내는지는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 이
책으로, 다시금 그녀의 책들을 책장에 꽂아야겠단 생각을 했다.
분명 이야기들은 정말 먹먹하거나, 슬프거나, 답답한 이야기였는데 특유의 문체때문인지 재미있어서 이걸 재밌어 하는 내가 나쁜 년이 된 것 같은 배덕감이 들기도 하고, 책을 읽으면서 복잡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울면서 "재밌어.."라고 하는 내 꼴을 보면서 애인도 복잡한 기분이었겠지만.
거기에 반가움 반, 그동안 여러 책이 있었음에도 사지 않았던 것에 대한 미안함과 아쉬움 반 해서 여유 있을 때마다 다른 책도 사읽기로 했다. 그리고 주변에 계속 추천하는 걸로 내 팬심에 대한 부채감을 좀 갚아보고 싶다.
같은 세대 작가이니만큼 내가 책을 계속 읽을 수 있는 동안 그녀가 계속해서 글을 써주면 좋겠다. 여러 매체에 기고하는 것 같으니 매번 찾아서 보기는 힘들겠지만 책이 나오면 챙겨보는 걸로.
내가 따로 간직하려고 엄마에게 아버지를 좀 놓고 가라고 했더니 엄마도 참, 아버지를 빈 청국장통에 넣어놨지 뭐예요. 핑크색 프림통에 당신을 한 점 흘리지 않고 무사히 옮겨 담고 빈 통을 헹구려 하니, 물에 둥둥 뜬 당신의 조각들이 왜 그렇게 눈을 찌르듯 아파왔을까요. 아버지, 당신이 살아 계셨다면 얼굴을 찡그렸을 테지만 차마 당신을 하수구로 흘려보내 김치찌꺼기니 어느 집의 먹다 남은 찌개국물이니 하는 것과 섞이는 걸 볼 수 없어서 저는 당신을 원샷했답니다. 웬일로 목에 걸리는 것 없이 넘어가준 아버지는 아무 맛도 나지 않았어요.
-p.29 내 안에, 아버지
여기저기 파헤쳐 찾아봤지만 낙엽이며 흙이며 온통 파놓은 거기서 그 조그만 아이폰을 찾을 수 있을리가. 죽은 개 묻다가 아이폰을 묻어버리다니 하도 한심한 일이라 슬프다가 갑자기 우스워졌다. 그렇다고 무덤을 다시 파헤칠 수는 없는 일.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다가 비직비직 웃었다. 올리야, 그래 아이폰 가져가라. 아버지 갖다 드려라. 아버지가 아이패드 갖고 싶어 하셧는데 이거라도 갖다 드려. 네가 가져다 드려. 보고 싶으면 전화할게. 잘 지내고, 가끔 카톡해라....
이것이, 내가 리퍼까지 받고도 끝내 스마트한 인생을 살지 못한 한심한 이야기다.
-p.35 전혀 스마트하지 못한 이야기
세상만사를 전혀 모르시는 부모님의 해맑은 얼굴을 보면서, 닳고 닳은 기분에 젖은 나는 피해의식에 시달렸다. 실제로 피해를 봤을 경우 의식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난센스라고 후에 어떤 친구가 말해주었다. 부모님이 그렇게 맑은 얼굴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깊은 신앙 덕분이었다. 내게는 없었던 바로 그것. 아무도 오지 않는 교회의 목사였던 아버지는 해맑은 얼굴을 하고 나에게 말하곤 했다. 나중에 다 하나님이 갚아주신다. 그러면 뭔가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라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지르곤 했다. 지금, 지금 갚아줘요! 바로 지금! 물론 하나님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고, 나는 술을 마시러 갔다.
p.68 경찰 아저씨의 옷자락
지금 병상에 누워 힘겹게 싸우고 계시는 리영희 선생님 역시, 그 `일체의 비결`을 알고 계셨다. 선생님은 ˝인생에 대단히 로맨틱한 것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기대를 버리면, 많은 것이 간단해진다˝고 특유의 간명한 말투로 딱 잘라 말했다. 20대가 그토록 독하고 힘들었던 이유는 여기보다 어딘가에, 라고 중얼거리며 끝없이 뭔가 대단히 로맨틱한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삿된 망상이었다. 그 망상이 헛된 기대를 부르고 망상과 기대가 힘을 합쳐 피를 펄펄 끓게 하던 거였다.
-p. 164 지금은 이게 다예요
그나마 강용석 같은 인간들이 `강용석 모먼트`를 일으킬 때는 우리 편 아니니까 날라차기라도 할 텐데, 그래도 `동지`인 것 같은 사람들이, 우리 쪽인 것 같은 사람들이 저런 순간을 일으킬 때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때 제일 곤란하다. 이럴 때 그냥 분위기 맞춰서 좋게 넘어가야 하는 것이 동지인 건지 다음에 어디 가서 그러지 말라고 똑바로 쏘아붙이는 게 동지인 건지 헷갈리다가 나중에 말하려고 생각하다 보면 어영부영 시간만 지나가 결국 나만 뻘쭘하고 속이 상하는 지경이 되어 결국에는 아 내가 싸게 굴었나, 내가 잘못된 사인을 보냈나? 하고 자책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성폭력 피해자가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보면 빠져 들어가는 전형적인 개미지옥이다.
-pp. 184~185 보수와 진보가 다르지 않을 때
사는 게 강퍅하다는 생각이 들 때면 그때 과자를 뿌리던 할머니 모습을 생각하고 그 목소리를 떠올린다. 살겠다는 것들은 다 이뻐. 악에 받쳐 잘 살겠다는 것들은 안 이쁘지만 살겠다는 것들은 이쁘다. 그 다음부터 나는 함부로 비둘기 징그럽다 말 안 하기로 했다. 누가 그럴 자격이 있단 말인가. 살겠다고 하는 것들끼리.
-pp.234~235 살겠다는 것들은 다 이쁘다
그 일 할 사람, 그 일 하지 않을 사람으로 나누는 이러한 태도는 한 발자국만 떼면 홍대 청소용역 노동자들이나 한진중공업 노동자 같은 사람들을 탄압하는 사용자들과 같은 태도가 쉽다. 그런 대접을 당하고 싶지 않았으면 그런 일을 하지 않았으면 될 것이 아닌가, 그런 일 할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될 것이 아닌가, 하고 그런 일 할 사람들의 일, 남의 일 이렇게 칼같이 줄을 그을 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우리 자신도 누군가에 의해 그런 일 할 사람, 아닌 사람으로 우리가 남을 판단한 바로 그 잣대로 나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능력에 따라 그의 시장가치가 정해지는 것이 자본주의에서 사람 사는 질서라고 칼같이 당연히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마 나처럼 시장 가치가 없는 사람과는 별로 가까이 지내고 싶지 않겠지만, 나 역시 그런 분들과는 마구 척지고 싶다. 있는 대로 척지고 싶다. 평생 척지고 싶다. 만나봤자 서로 별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확실하게 척지고 사는 게 피차 정신 건강에 좋으니까.
pp.276~277 무혈의 테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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