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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을 대하는 관점
기자명 편집국 승인 2020.05.02 14:59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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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지도(1)
북한정치연구를 연재하며
앞으로 북한정치에 대한 다양한 연구성과를 연재할 예정이다. 공동연구의 산물이므로 편집국이름으로 연재한다.
북 바로알기의 본령은 북의 사람들을 바로 아는 것이다. 그것은 북의 지도자, 북의 당, 북의 인민을 바로 아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이번 연재는 북의 지도자, 당, 인민들을 바로안다는 시각을 담은 최초의 시도이다.
최근 급속하게 퍼진 북 지도자에 대한 각종 가짜뉴스들은 이 땅에서 북맹이 여전히 심각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연재가 약간의 도움이 되길 바란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어느 늦겨울, 부산에 있는 유엔군묘지가 푸른 잔디로 뒤덮였다. 유엔군사령관의 묘지 시찰을 앞두고 ‘유엔군사령관이 푸른 잔디가 펼쳐진 묘지를 보고 싶어한다’고 미군이 한국정부에 요구한 결과였다.
‘한겨울의 푸른 잔디밭’은 이승만정부가 미국의 이 황당한 요구를 해결할 사람을 물색하는 소동을 벌인 끝에 만들어진 장면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한겨울에도 풀색을 유지하는 잔디가 있지만 그 당시에 그런 잔디가 있을 리 없었다.
훗날 국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재벌의 창립자가 되었던 그 사람은 회고록에서 자기가 기발한 착상으로 이 과제를 해결했다고 자랑하였다. 그 ‘기발한 착상’이란 것은 밭에서 싹이 트기 시작한 보리를 묘지에 옮겨 심는 것이었다.
보리와 잔디를 구별못하는 유엔군사령관은 ‘원더풀’을 연발했고 이후 그는 미군과 정부의 온갖 혜택 속에 재벌로 성장하는 기회를 잡게 되었다.
하지만 봄이면 힘겹게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던 당시의 한국 사람들에게는 유엔군사령관의 눈요기를 위해 벌인 이 소동은 우울하고 씁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권력자나 정부의 고위직은 ‘현지시찰’을 한다. 그런데 이 현지시찰이라는 것은 대개 이런 류의 원님행차식 행사다.
고위층의 방문이 정해지면 사람들은 쓸고 닦는 등 의전준비를 하느라고 몇 날 며칠을 보내야 한다. ‘한겨울의 푸른 잔디 소동’과 같은 일도 드물지 않게 벌어진다.
▲ 김정은 위원장의 현지지도 모습 [사진 : 조선중앙통신 캡처]
▲ 김정은 위원장의 현지지도 모습 [사진 : 조선중앙통신 캡처]
북한 정치에서 특색있는 것을 꼽으라면 현지지도가 앞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현지지도는 김일성주석 때부터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나라를 운영하는 기본방식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김일성주석과 김정일국방위원장을 거치며 북의 최고지도자는 한 해의 3분의 1 이상의 날을 현지지도를 하고 있다. 보름정도 현지지도 소식이 없으면 한국언론에서는 신변이상설이 나오고 분석기사를 내놓을 정도다.
그런데 권력자의 방문은 그가 ‘황제의전’을 즐기지 않는다 해도 보여주기식 원님행차가 되기 십상이다. 따라서 권력자가 현지방문을 많이 하면 국가운영에 부담이 된다.
더구나 북한에서는 최고지도자의 위상이 매우 높다. 기업소나 군부대, 공장들은 최고지도자가 찾아오면 다른 일을 제쳐놓아야 할 것이다.
‘현지시찰’ 준비에 쏟아야 하는 이런 노력 소모를 감안하면 ‘현지시찰’로 국가를 운영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최고지도자의 현지지도를 국가운영과 경제발전에서 최고의 동력으로 삼고 있다. 실제로 최고지도자의 현지방문이 해당 사업소나 부문에서 생산증대와 사업혁신을 불러오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사례로 북에서는 김일성주석의 청산리농업협동조합과 대안전기공장의 현지지도를 꼽는다.
김정일국방위원장때는 영화, 가극을 비롯한 문예창작부분에서 큰 발전을 불러온 현지지도와 가혹한 제재속에서 경제발전의 돌파구를 마련한 강원도에 대한 거듭된 현지지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 지난 3월 17일 김정은국무위원장이 평양종합병원건설 착공식에서 연설하고 있다.[사진 : 조선중앙통신 캡처]
▲ 지난 3월 17일 김정은국무위원장이 평양종합병원건설 착공식에서 연설하고 있다.[사진 : 조선중앙통신 캡처]
대부분의 나라들에서는 여론조성용, 언론보도용 행사이기 마련인 현지방문이 북에서는 나라를 움직여 나가는 가장 힘있는 방식, 기본방도로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지난 3월 17일 김정은국무위원장의 평양종합병원건설 착공식에서 한 연설을 통해 엿볼 수 있다.
김정은국무위원장은 연설에서 ‘원래 계획에는 없었지만 착공의 첫 삽을 뜨는 동무들을 전투적으로 고무격려해주기 위해 이 자리에 참가하였다’고 하였다. 이는 현지지도가 이미지조성을 목적으로 기획되는 행사가 아니라는 것, 해당 사업에 나선 애로와 난관을 해결하고 극복하기 위한 것임을 말해준다.
김정은국무위원장은 ‘대단히 방대하고 공사기일이 긴박한’ 병원건설을 완성하기 위해 ‘자신이 가장 믿는 건설부대인 근위영웅려단과 8건설국’을 병원건설에 투입하는 것과 착공식을 찾아 연설하는 것을 결심하였다고 밝혔다.
김정은국무위원장은 이 연설에서 병원건설을 결정하게 된 이유와 과정에 대해 솔직하게 밝히고 병원건설이 가지는 의의에 대해 상세하게 말하였다.
김정은국무위원장은 연설에서 ‘평양종합병원건설을 통하여 오늘의 정면돌파전을 인민에 대한 멸사복무로 일관시키며 병원건설과정에 창조되는 결사관철의 정신, 건설속도가 사회주의건설의 모든 부문에 파급되게 하려는 것이 당의 기본의도’라고 하였다.
국가최고 수준의 대규모 종합의료시설을 200일 만에 만드는 유례가 없는 목표를 세운 것은 단지 큰 병원 하나를 만드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제재속에서도 경제강국을 건설하는 ‘정면돌파전’을 구현하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제 기일 안에 공사를 완공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들의 노력여하에 달려있습니다. 조건은 어렵고 난관은 많지만 우리의 행복과 우리의 미래는 누가 가져다주지 않으며 오직 우리자신의 손으로 개척하고 투쟁으로 쟁취하여야 한다는 자각들을 가지고 모든 힘을 다하여 적극 투쟁한다면 공사과정에 부닥치는 난관들을 능히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정은국무위원장은 건설에 참가한 사람들이 더 높은 열의와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목표를 달성하는 방도라고 천명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연설에서 총적방향만 제시하지는 않았다. 종합병원건설을 위한 준비사업이 빈틈없이 진행되어왔다는 것을 밝혀 건설자들에게 건설에 대한 자신감과 믿음을 높여주었다.
200일만에 건설을 완료할 수 있는 기본방법으로 ‘돌격전’, ‘철야전’, ‘전격전’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시공에서 질을 높이는 문제, 건설속도를 가속화하도록 건설자재와 설비들의 보장하는 대책 등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언급하였다.
▲ 지난 3월 17일 김정은국무위원장이 평양종합병원건설 착공식 현지지도 모습[사진 : 조선중앙통신 캡처]
▲ 지난 3월 17일 김정은국무위원장이 평양종합병원건설 착공식 현지지도 모습[사진 : 조선중앙통신 캡처]
북전문가라는 사람중에는 북이 현지지도를 기본방식으로 삼는 것은 최고지도자가 절대권한을 행사하는 1인체제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권력이 강해질수록 명령과 지시의 비중이 더 커지는 것이 일반적인 법칙이다. 또한 권력자의 영향력과 권한이 크면 클수록 현지방문이 낳는 폐단과 비효율성이 더 심해지므로 이 방식을 국가운영의 기본방법으로 삼을 수 없게 된다.
북 최고지도자의 현지지도가 큰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1인체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중에 대한 관점에 있다.
대중을 지배의 대상으로 보면 원님행차식 방문을 면할 길이 없다. 대중을 정권이나 권력자를 지지하는 객체로만 보는 경우에도 보여주기식 모양내기식 행사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대중을 사회의 주인으로 대하고, 사회를 발전시키는 힘이 대중자신에게 있다고 보면 현지지도는 나라가 가진 잠재력을 더 높이 발휘하고, 혁신적인 사업방법을 창조하며, 첨단의 돌파구를 찾아내는 방도로 된다.
북의 현지지도가 다른 나라 국가수반의 현지방문이나 시찰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사회구조가 복잡해지고 고도화될수록 북에서는 현지지도가 국가운영의 기본방식으로 더 큰 힘을 발휘하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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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이북정치연구 #현지지도 #북바로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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