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06

Anabaptist Kim-Park 까무러치기

(10) 까무러치기 1년에 한 두 차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잠을 자는 일이 일어난다. 의지와... - Anabaptist Kim-Park


까무러치기
1년에 한 두 차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잠을 자는 일이 일어난다. 의지와 상관없이 쓰러져 곤히 잠을 자는 일이다.
요즈음 운동을 한답시고, 자전거 놀이를 하고 있다. 매일 4시간 잠을 자면 깨는 습관 때문인지, 11시에 자면 3시, 12시에 자면 4시, 1시에 자면 5시라는 패턴으로 눈이 떠진다.
어제도 새벽 4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다. 일찍일어나 하루 할일을 몇시간 만에 마치고 하루 종일 여유롭게 지내는 경우도 있지만, 일이란게 끝이 없는지라, 대략 두배로 일을 하기도 한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을 보면서 아내는 김복기가 둘 셋은 더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농을 한다. 일이란게 열심히 한다고 되는 건 아니기에, 때로는 inspiration감동을 받아 일을 하는 게 중요함을 잘 알고 있다.
어제는 오후 다른 지역을 방문할 일이 있어 오전 내로 하루 할일을 다 끝내버렸다. 그리고 자전거로 아침운동을 하고, 따라잡아야 할 일 몇 가지를 끝내고 오후 4시에 뜻밖의 외출을 감행했다.
한국신학의 갈피를 잡고 계신 이정배 교수님께서 계신 횡성의 현장아카데미(顯藏神學)를 방문하였다. 서울에 있는 현장신학은 한달에 한번 모임이 있어 몇 번 가서 보았지만, 횡성은 말로만 들어서 기대가 되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산자락에 무성히 자란 풀과 나무를 벗삼아 고즈넉히 들어서 있는 몇 채의 건물들. 건물 옆에 놓인 피크닉 테이블에 칡즙과 바나나케익과 수박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착시간은 저녁 6시. 20년 전에 이곳 횡성에 땅을 매입하고 들어오신 이유를 들으며, 한국 신학의 흐름, 감리교의 전통, 그리고 현재 신학의 흐름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일본 아브람 공동체의 오보 신부님, 입교대학, 청산학원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누구나 함께 만나는 장소로서 아브람이라는 일본의 공동체.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아브람 공동체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을 한권 들고 오게 한 전통이었다.
책에 적힌 각 사람의 스토리를 읽으며 서로 배운다는 개념도 의미있게 다가왔고, 오보 신부가 말한 "나는 돈이 없었기에 이 일이 가능했다"는 역설이 가슴에 다가왔다.
오보 신부님과의 조우가 이정배 교수님이 이곳 횡성으로 들어와 현장신학을 꾸리게 된 단초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경 20년 전의 일이다. 이 곳에 들어와 땅을 매입하게 된 경위. 그리고 그 후 더 많은 땅을 넓히게 된 경위 등을 들었다.
어두워지기 전에 주변의 땅을 돌아보면서, 지형지세를 살폈고 골짝기마다 앞으로 어떤 건물을 짓고 어떤 목적으로 활용하고 싶은지에 대해 말씀을 들었다.
가까운 곳에서 어두우면 문을 닫는다는 옻닭/오리집을 가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산골짜기에 숨어있는 식당으로 가는 길 옆에는 낙엽송이 우거져있고, 평상을 깔아놓은 것을 보니 손님꽤나 방문하는 곳처럼 보였다.
불룩 나온 배를 두드리며 잠깐의 food comma를 누리다, 어두운 밤길을 되돌려, 다시 현장아카데미로 돌아왔다. 남기고 갔던 수박과 빵조각이 여전히 우리를 기다려주었기에 같은 자리에 앉아 저녁 식사전 1부에 이어 2부 이야기 시간을 가졌다.
밤 10시까지 이어진 이야기는 현장아카데미를 너머, 한국 감리교 신학과 감리교 학장이셨던 변선환 교수님, 다석 유영모, 그리고 장인 어르신이신 이신 목사에 대해 말씀으로 이어졌다.
김일성의 스승이셨던 손정도 목사, 3.1운동의 대표였던 김창준 목사.
그리스도
환원운동을 펼치셨던 동석기, 김은석 그리고 그 운동에 뛰어 들으셨던 이신 목사님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정배 교수님은 이런 맥락에서 토착화 신학에 대한 깊은 고민과 더불어 70년대 게렛 밴더빌트 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서도 가난을 삶으로 선택하셨던 이신 목사님에 대한 역사와 남겨진 숙제, 그리고 그 분의 딸이었던 아내를 만나 수도원과 공동체에 대한 꿈을 갖게 된 경위를 풀어 놓으셨다.
감리교라는 전통에 속하였으면서도 감리교를 넘어 한국 신학, 토착화 신학, 수도원의 정신을 이어가고자 마련한 현장아카데미. 이제 이야기를 들으면서 왜 이 횡성 산골짜기에 현장아카데미가 있게 되었는지, 갈피를 잡게 되었다.
독서, 노동, 기도로 이어질 현장아카데미가 어떻게 펼쳐질 지 기대가 커졌다. 이제 막 알기 시작한 현장아카데미. 이정배 교수님과의 만남이 시작된 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가까이에 귀한 뜻을 펼치는 그리스도인을 만나게 된 느낌이라 감사의 마음이 한 껏 부풀어 올랐다.
무엇보다 顯藏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드러나있으나 감추어 있고, 감추어져 있으나 드러나는 것에 대한 신학.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없이 있고, 있이 없이 계신 하나님의 신비가 이곳에 잔잔히 임해지면 좋겠다.
이야기가 깊어서일까?
밤이 깊어감에 시간이 너무 아쉬웠고,
첫 방문으로 만족할만큼 짧지만 깊은 배움의 시간이었다.
함께 한 지인들과 춘천으로 돌아오니 11시 30분.
그리고 피곤한 몸을 뉘었다 눈을 떠 금요일 오전 8시에 예약된 NARI Northeast Asia Reconciliation Initiative모임에 참여하였다.
5시간 논스톱 zoom 모임을 하고 나니 피곤했던 모양이다. 아마도 간만에 영어로 진행된 5시간 모임이라 더 피곤했던지, 모임이 끝나자 마자 까무러쳤다. 리차드 헤이스의 기조강연, 조이의 북한에 대한 하나님의 일하심과 비전, 그리고 각 나라별로 진행된 모둠 토의, 코로나 시대 이후의 화해 사역은 어떻게 진행될 지에 대한 나름의 지혜를 나누는 귀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24시간 동안 엄청난 몰입의 시간을 보내서였을까? 까무러치듯 2-3시간을 자다가 저녁식사 시간이 되어서야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저녁식사 후 아내와 의암댐으로 늦은 산보를 나갔다가 이렇게 하루를 시작하는 듯 정리하고 있다.
불금으로 새워야 할 밤. 짧은 기간 동안 경험한 엄청난 이야기들을 가슴에 품으면서 하루를 정리하고 있다.
이제 내일 또 춘천으로 손님이 오신다니 오늘은 어제, 오늘 용량 이상으로 들은 귀한 顯藏acadamy이야기와 NARI에서 나눈 내용을 묵상하는 것으로 하루를 접어야겠다.
또 까무러치기 전에...
평화로...
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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