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03

권용득 - 지지난겨울 프랑스 앙굴렘 만화축제에서였다.

(30) 권용득 - 지지난겨울 프랑스 앙굴렘 만화축제에서였다. 한 현지 관계자와 저녁을 같이 먹는데, 2014년 앙굴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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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득
18 May ·

지지난겨울 프랑스 앙굴렘 만화축제에서였다. 한 현지 관계자와 저녁을 같이 먹는데, 2014년 앙굴렘 만화축제에서 있었던 한국만화기획전 얘기가 나왔다. 그 기획전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루고 있었고, 당시 일본 측은 주최 측에게 전시를 중단해 달라고 항의했다. 그 소식은 재빨리 기사화됐다. 국내 여론은 과거에 그와 같은 만행을 저질러 놓고 여전히 반성할 줄 모른다면서 ‘일본이 또 일본했다’는 식의 비난 일색이었다. 뒤늦게 전시에 참여한 작품들을 훑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반공교육이 한창이던 시절의 자극적인 선전물 같았다. 성욕에 굶주린 일본 병사와 겁에 잔뜩 질린 어린 소녀 이미지 없이는 위안부 문제를 얘기할 수 없는 건가 싶었다.
그러나 주최 측은 작품 내용과 상관없이 표현의 자유가 먼저라면서 일본 측의 항의를 무시했고, 항의하던 일본 측만 우스운 꼴이 됐다. 관계자는 당시 한국에서 온 한 고위직 관료의 수완이 좋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관료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관계자는 한동안 말없이 자기 스마트폰을 뒤적거렸다. 그러더니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사진 속 인물은 현직 장관으로서는 임기 중 최초로 구속 수감된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었다.
돌이켜보면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임기 중 최초로 구속 수감된 박근혜 전 대통령도 위안부 문제 해결만큼은 그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 해결 없이는 아베 총리와 밥도 같이 먹을 수 없다며 단호한 태도로 일관했다. 그러다 2015년 연말 일본 정부와 위안부 문제를 불가역적으로 해결했다는 합의문을 발표했다. 피해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합의였고, 위안부 문제를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물론 그 합의는 정권이 바뀌면서 뒤집어졌다. 그 합의의 상징이나 다름없던 화해·치유재단도 해산됐다. 지금 정권은 세상에 불가역적인 것은 없다는 것처럼 한일 양국의 합의를 시원하게 뒤집었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대책이 없다. 말하자면 위안부 문제를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한 건 박근혜 정권만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 위안부 문제를 정치적 수단으로만 이용했다. 위안부 문제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했다. 피해자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듣지 않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했다. 자극적인 이미지를 부지런히 소비하면서 일본을 향한 증오와 원한을 오랜 시간 키워왔다.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꾸짖고 싶을 때마다 피해자를 앞장세웠다. 한때 제국의 대의와 명분에 희생됐던 피해자를 또 다시 국가와 민족의 대의와 명분으로 희생시켰다. 좀처럼 변하지 않는 우리 자신에게는 스스로 면죄부를 주기 일쑤였다. 우리가 그러는 동안 피해자는 하나둘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가까스로 호명된 피해자도 있었다. 끝내 호명되지 못한 피해자도 있을 것이다. 애초에 불가역적이었던 것은 그 무엇보다 피해자의 유한한 삶이다. 있을 때 잘하자.

이하 사족
*지난달 말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전 세계 의료진에게 헌정하는 뮤직비디오 ‘다시 부르는 상록수 2020’은 탁현민 전 청와대 행정관이 기획·제작했다. 탁 전 행정관은 그 뮤직비디오 첫 장면으로 마스크 낀 소녀상 이미지를 갖다 쓰려고 했다.
2017년 11월 트럼프 대통령 방한 기념 청와대 국빈만찬에는 이용수 할머니도 초청됐다. 일본을 먼저 방문하고 방한한 트럼프 대통령과 이용수 할머니의 포옹 장면은 ‘보고 있나, 아베?’ 식으로 기사화됐다. 덩달아 독도새우도 큰 주목을 받았다.

**이번 포스팅에 글과 그림은 사실 연재 중이던 동아일보 지면에 게재하려고 했다. 그런데 빠꾸 먹었다. 오랜만에 빠꾸 먹어서 약간 멘붕이긴 한데, 민감한 주제인 만큼 일면 이해는 간다. 다만 안타깝다. 대부분의 언론사가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전 대표 관련 의혹 기사는 그토록 많이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위안부 문제에 관한 유의미한 얘기는 찾아보기 어렵다.(그동안 내가 한 얘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위안부 문제는 당분간 이게 마지막) 그런 식의 기사만 생산되는 까닭은 그만큼 그런 식의 기사만 소비하는 환경 없이 불가능하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한통속이라는 얘기고, 그건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는 여전히 위안부 문제에는 별 관심 없다는 자기 고백이나 다름없다.
첨부한 그림의 제목은 ‘이것은 반일인가, 친일인가’이다. 정답은 반일이다. 그림의 배경으로 욱일기 문양을 반만 갖다 썼으므로 이건 말하자면 진정한 반일인 셈. 농담이고, 별 뜻 없다. 반일 프로파간다 지겨워 죽겠다는 피로감 정도로 이해해주면 고맙겠다.
149崔明淑, Park Yuha and 147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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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kyung Ahn
Meekyung Ahn 언론사의 '빠꾸'라는 절차의 존재 자체가 충격스럽네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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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kyung Ahn
Meekyung Ahn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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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yong  Park
Jinyong Park 아 이글 아까운데요...아쉬운대로 한겨레에다가....아 보나마나 빠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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