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득 - 다쓰미 요시히로와 쓰게 요시하루의 만화를 보면 전후 열패감에 사로잡힌 일본인(주로 일본인 남성)의 내면과...
권용득
1 June at 00:27 ·
다쓰미 요시히로와 쓰게 요시하루의 만화를 보면 전후 열패감에 사로잡힌 일본인(주로 일본인 남성)의 내면과 당시 암울한 일본 사회상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이들보다 바로 윗세대인 미즈키 시게루의 만화는 결이 좀 다른데, 경쾌하면서 어둡다. 반면 쓰게 요시하루의 만화는 상징적이면서 어둡다.
다쓰미 요시히로의 만화는 보다 구체적이면서 어둡다. 이를테면 다쓰미 요시히로의 단편 중에는 오키나와를 점령한 미군에게 몸을 파는 딸과 그 딸에게 얹혀사는 패잔병 아버지 이야기가 있는데(굿바이, 새만화책vol.2),
어쩌면 한국 사회에서 그와 같은 이야기는 가해자 주제에 피해자 코스프레 한다며 욕먹을 수 있다.
<반딧불의 묘>나 <바람이 분다> 같은 애니메이션도 같은 맥락으로 비난받았고,
지난해 노재팬운동이 한창이던 무렵 천하의 도라에몽도 몸을 사려야 했으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이 필요없다.
게다가 과거 일본이 미국한테 핵폭탄 두 방 맞은 것조차 한국 사회에서는 대규모 학살로 보지 않고 응징으로 여긴다. <바람이 분다> 네이버 관람평 중 가장 큰 호응을 얻은 베스트 댓글은 다음과 같다.
“일본에 떨어뜨린 핵폭탄을 만든 오펜하이머의 열정과 사랑을 다룬 '핵폭탄이 터진다' 국내에서 시급히 제작해서 일본에서 상영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낭만적이고, 서사적이고, 오펜하이머의 열정을 아름답게 그려서...”
이 댓글을 단 사람은 원폭 피해자 중에 조선인도 적지 않다는 사실은 모르는 모양이다. 참고로 나는 <바람이 분다>는 아직 못 봤고, 딱히 궁금하지도 않다.
아무튼 앞서 말한 만화가 세 명은 일본뿐만 아니라 유럽과 북미 만화계에서도 중요한 인물로 손꼽히는데, 특히 프랑스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는 편이다. 이들의 만화를 진지하게 연구하는 연구자도 제법 있고, 프랑스 만화 전문 서점 어디든 이들의 만화책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쓰게 요시하루는 자기 만화를 해외에 번역 출간하지 않는다는 자기만의 원칙을 고수했다. 그런데 마음이 바뀌었는지 몇 년 전부터 불어판은 출간하기 시작했다. 연대보증이라도 섰나...)
지난해 프랑스 갔을 때 마침 한 서점에 미즈키 시게루의 두꺼운 만화책들이 신줏단지처럼 모셔져 있길래 내용이 궁금해서 대충 훑어봤다. 하지만 읽을 수 없었다. 불어를 한마디도 못해서 그림만 구경했다는 얘기고, 솔까말 그림이 더럽게 매력적이어서 더럽게 읽고 싶었다. 아마도 전쟁에 동원됐다 한쪽 팔을 잃고 망한 일본을 거지처럼 배회하는 자전적 내용인 것 같은데, 물론 그와 같은 내용의 만화는 앞서 얘기했듯 국내에 번역 출간되더라도 가해자 주제에 피해자 코스프레 한다고 욕먹을 것이다.
아무튼 앞서 말한 만화가 세 명은 해외에는 꽤 알려졌지만 국내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그건 전후 열패감에 사로잡힌 일본인이 어떤 식으로 현타가 왔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는 얘기지만, 국내에는 이들의 만화 중 극히 일부만 소개됐고 그마저 지금은 다 절판 상태다.
그건 마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에서처럼 사건의 일면만 보고 있는 셈이다. 그건 또한 <라쇼몽> 원작 소설가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 때려잡는 자경단 활동을 한 단편적 사실은 알더라도, 그가 왜 자경단 활동을 곧바로 그만뒀고 끝내 스스로 목숨까지 끊었는지는 알 수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런 시도는 가해국의 가해자를 헤아린다고 욕먹기 일쑤고, 심지어 앞서 말한 만화가 세 명은 ‘통렬한 반성’ 따위 앞세우지 않는다. 그저 자기 자신을 얘기할 뿐이다. 국내에 번역 출간되더라도 작품으로 소비되기 어렵다.
아무튼 앞서 말한 만화가 세 명은 분명히 한계도 있다. 이들의 만화는 남성 중심 서사고(그것도 가해국 남성), 그 세대가 착취했던 주변 여성과 조선인 여성은 단편적으로 그려질 뿐이다. 다만 나는 이들의 만화를 통해 ‘순응하고 저항하는 개인’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건 그것만으로 충분히 가치롭다고 생각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화해해야 할 대상은 아베나 일본 정부가 아닐 것이다. 정치 집단은 (보수든 진보든) 지들한테 이익이 된다면 알아서 사과도 하고 용서도 하고 사우나도 같이 하고 그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화해해야 할 대상은 순응하고 저항하는 동시대를 살고 있는 개개인 아닐까. 정치 집단이 화해보다는 갈등이 자신들에게 이로워서 화해를 가로막더라도 한 번쯤 시도해 볼 만한 일 아닐까. 말하자면 정부를 뛰어넘어 연대하는 상상, 그것만이 국가의 목적에 함부로 동원된 불운한 개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 아닐까.
참, 나는 앞서 말한 만화가들의 만화를 사실 사서 보지 않았다. 국내에도 이들의 매니아가 소수나마 있다. 그들이 불법 스캔한 만화를 부지런히 번역까지 해서 자기 블로그에 올려뒀다. 대부분 나도 그렇게 찾아봤고, 그러니까 결론은 국가도 통제하지 못하는 해적판 만세다.
50김희숙, Park Yuha and 48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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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yong Park
Jinyong Park 열심히 찾아 읽었는데 '나사식'이라는 이름의 만화군요.https://www.hoodedutilitarian.com/2010/09/dwyck-isho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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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WYCK: Ishoku « The Hooded Utilitar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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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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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Donghyeok
Lee Donghyeok 소개 감사합니다. 찾아 읽어보겠습니다.
그런데 ‘다쓰미 요시히로 辰巳ヨシヒロ’로 나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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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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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jin Jeon
Soojin Jeon 서구사회에서도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작품이 많지만 유럽사회입장의 가해국인 독일의 아픔을 다루면 종종 비난받는걸 보면 어쩔수 없는 부분 같기도해요 반대로 서구사회에서 짧지만 지내면서 독일이 유대인에게 행한 참상을 제외하면 본인들이 아프리카나 중동에 행한 만행은 무감각한거보면(그래놓고 샤를리 앱도 같은 사건 이전에 본인들은 표현의 자유라면서 인종차별에 가까운 칼럼을 내기도 했었으니까요)일본이 전범국이다 헤아리진 않을 거 같기도 하네요 실제로 그들에겐 그저 남일이고 대부분의 유럽회사는 식민정책에서 자유롭지 못해서 아니 생각보다 꽤 무감각해서 오로지 작품으로만도 받아 들일 수 있는게 아닐까 하네요
저는 언급한 작품중에 반딧불의 묘만 봤는데 저의 감상의 전쟁은 역시 승전국의 윗대가리나좋지 가해국이든 피해국이든 존나 힘들구나 생각했는데 세간의 평가는 우익애니래서 뭐 그렇게도 볼수 있구나 오히려 내가 너무 단순했었나 생각했었었네요 언급하신 두 작품은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개인적으로 전 반딧불의 묘도 괜찮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반대의 생각도 부정 할 생각은 없네요 물론 제 의견역시 용득님 의견에 토 단거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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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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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g Ju Kwon
Sung Ju Kwon 최근 총원 옥쇄하라 봤는데 근래 본 만화 중 최고작. 타츠미 센세의 극화표류는 인생만화. 쓰게 센세는
제가 만화가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해준 선생님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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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득
권용득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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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g Ju Kwon
Sung Ju Kwon 쓰게 선생님은 작품집에 최근 전 작품 엮어서 다시
발매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생애 마지막 복각 전집이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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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hee Dong
Sunhee Dong 안녕하세요. 포스팅하신 건 많이 읽었는데 처음 댓글을 씁니다. 미즈키 시게루는 돗토리현 사카이미나토 출신인데 지역 사람들이 상권을 살리려고 미즈키 시게루 거리를 조성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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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hee Dong
Sunhee Dong 자기 만화 캐릭터들을 마음껏 활용하게 하고 로열티를 받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현지 사람들이 그를 '인간성이 좋은 사람'으로 얘기하는 것도 들었구요. 소개해 주신 만화가들의 작품을 읽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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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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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Kwan Kim
Chee-Kwan Kim 핵폭탄을 응징으로 보는 인간들을 길러내는 사회가 정상사회일 수는 없어요. 반일이 온갖 야만을 정당화시키는 나라에 살고 있으니..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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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혁
유동혁 해적판 만쉐이! 전 바람이 분다 봤는데요. 전 좋았슴다.
물론 실존인물에 대한 미화가 있긴 했지만 원래 이쁘잖아요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가...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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