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커밍스(저자) | 이교선(역자) | 한기욱(역자) | 김동노(역자) | 이진준(역자) | 창비 | 2001-10-30 | 원제 Korea's Place in the Sun : A Modern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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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
해방 후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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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기원에 대한 수정주의적 시각으로 주목을 받았던 시카고 대학의 브루스 커밍스 교수가 쓴 한국 현대사 일반에 관한 연구서이다. 이 책은 지난날 운동권 학생들의 필독서이며, '남침유도설'의 근원지로 위험하게 취급되었던 <한국 전쟁의 기원>에서와 또 다른 모습을 보인다.
1997년 영어권 독자들을 위해 출간되었던 이 책에서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보다 넓은 논의를 펼친다. 한국고대사와 미국의 한인들, 최근의 햇볕정책까지 아우르는 그의 서술에는 기본적으로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애정이 묻어있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진보진영에선 논쟁적 주제를 좌파의 시각으로 다루었던 <한국전쟁의 기원>과 비교하며 실망하는 기색을, 보수진영에서는 환영의 제스처를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한국 현대사에 대한 자신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으며, 단지 역사가로서의 전체적인 인식이 드러났을 따름임을 강조하고 있다.
주석까지 포함하여 750여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지루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흥미로운 자료의 인용과 문학적 향취가 배어나오는 문장, 그리고 저자 자신의 경험까지 가미하여 한국현대사 전반을 다채롭게 재구성하였다.
일러두기
한국어판을 내면서
서문과 감사의 글
제1장. 미덕
한민족의 기원│삼국시대│신라 통치기의 한국│왕건, 고려의 이름으로 통일│조선시대: 번영기│고려사회의 변형│가문, 유동성, 교육│한국의 양지│영조와 사도세자│조선시대: 쇠퇴기│상업적 발효?│결론
제2장. 이익
은자의 왕국│무산된 개방과 그 대안│중흥, 개혁, 혁명│동학운동: 다른 이름의 개혁│근대 한국의 탄생│“이루 말할 수 없이 판에 박힌 세계”: 서양인이 받은 한국의 인상│결론
제3장. 망국 1905∼45년
조선왕조의 종말│행정식민주의: 근대화인가 착취인가│한국 민족주의와 공산주의의 발생│개발식민주의│식민지의 압력솥
제4장. 열정, 1945∼48년
한국의 분단│수백명의 보수주의자들: 초기의 협력│남한의 좌익과 우익│대한민국의 건국│제주반란과 여수반란│북한│경찰과 정보기관│결론
제5장. 충돌, 1948∼53년
북한과 중국│남한에서의 유격전│1949년 38도선상의 전투│전쟁 전야│옹진 사건│서울에서 부산으로, 다시 인천으로: 봉쇄전쟁│부산 총공세│반격전쟁│남한이 북한을 점령하다│중국의 참전│워싱턴의 경악│결론
제6장. 한국의 일출: 산업화, 1953년∼현재
미국 이용하기│한강의 기적│금융의 기술자들: 서울의 국제적 금융업자들│한일 국교정상화와 베트남전│대대적인 중공업 추진정책│대재벌│위기와 개혁│한씨의 기적│그다지 기적적이지 않은│비도덕적 가족주의│결론
제7장. 미덕 II: 1960년∼현재의 민주주의운동
4월혁명│군부통치│유신체제│1970년대의 중앙정보부│노동운동│광주│반미주의와 반한주의│6월의 돌파구│한국인들은 어떻게 독재와 민주주의의 통치를 고쳐 썼는가│결론
제8장. 태양의 왕국: 북한, 1953년∼현재
‘위대한 태양’: 북한의 조합주의│김정일의 권력승계│북한의 경제│농장에서의 생활│떨어진 태양의 왕│결론
제9장. 미국의 한인들
제10장. 세계 속의 한국의 위치
침범할 수 없는 경계선?│영변의 의혹들│일촉즉발에서 긴장완화로│미국의 한국 내 핵정책의 배경│긴장완화를 향해│햇볕정책│한국의 통일?│결론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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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브루스 커밍스 (Bruce Cum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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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시카고대학 석좌교수이며, 한국 근현대사와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연구해 왔다. 1960년대 후반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한국에 온 뒤 한국 현대사 연구에 몰두해 왔으며, 1981년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특히 『한국전쟁의 기원』은 국제정치학·사회학·역사학을 아우르는 학제적 접근을 통해, 전쟁의 발발과 전개에 대한 천착을 넘어 한국전쟁의 역사적·사회적 기원을 파고든 역작으로서 국내외 한국전쟁 연구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한국전쟁의 기원』 1권으로 미국역사학회의 존 K. 페어뱅크 상을, 『한국전쟁의 기원』 2권으로 국제연구학회...
역자 : 이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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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 서울대 강사, 영문학
역자 : 한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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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 1957년생. 한국외국어대와 서울대 영문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허먼 멜빌 연구로 박사학위 받음.
주요 논문으로 「'주홍글자'와 미국문학의 특성」 「추상적 인간과 자연」, 역서로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공역) 『우리 집에 불났어』 『마틴 에덴』『미국의 꿈에 갇힌 사람들』(공역) 등이 있음.
문학평론가, 2011년 현재 인제대 교수. 계간 『창작과비평』 편집위원.
역자 : 김동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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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 미 시카고대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사회학회 총무를 역임했으며, 현재 연세대 사회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역자 : 이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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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 동국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신대와 총신대 강사로 있으며 주요 번역서로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공역) 『헤밍웨이』『성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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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 7편
강추!! [서평] 남북한의 화해와 통일에의 헌정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 붉은구름 ㅣ 2014-03-25 ㅣ 공감(1) ㅣ 댓글 (0)
강추!! [서평]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 저, 한기욱 등 공역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 Korea's Place in the Sun>를 읽고 / 2001. 10., 751쪽, 창비
박세길, 조성오, 한홍구, 강준만 등 국내 역사학자들의 한국 근현대사를 읽은 후, 미국인 역사학자로서는 드물게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전공으로 하는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 대학 교수의 현대사 서적을 반갑게 읽는다. 그는 1986년에 첫 발간한 <한국전쟁(Korean War)의 기원>으로 한반도에서도 많이 알려진 편이다.(두 책 모두 '한국(인)'은 'Korea(n)'으로 남북을 아우르는 표현이며, 역자들이 번역상 편의 때문에 한국(인)으로 표기한 것 같다.)
그는 <한국전쟁의 기원>을 발간한 이후, 한반도의 근현대사를 불행하게 이끈 원인과 남북한의 문화적 역사적 전통이라는 과점에서 연구를 계속하여 1997년 이 책을 다시 발간했다. 한국어판을 위해서 특별히 원고지 150매 정도를 추가했다고 한다.
책의 원제목은 'Korea's Place in the Sun : a modern history'다. 저자는 원 제목이 '해 뜨는 나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으며 그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실로 우리의 흥망성쇠와 주기적인 일식을 관장하는 세계는 상대적으로 소수인 선진산업국들이 끊임없이 경쟁을 벌이는 산업시대이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태양게에 한국은 이제 막 합류하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제목에서 의미한 바이기도 하다."
커밍스 교수와 <한국현대사> 한국어판이 반가운 이유는 서문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책을 발간하게 된 궁극적인 이유를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 문장으로 말한다. "이 책을 한국인(Korean)의 화해와 통일에 헌정하고 싶다."
몇 마디 문장이 아니라 실제 책을 읽은 후 국내 역사학자들의 역사서와 비교했을 때, 커밍스 교수의 한국현대사 연구에서 두드러진 차이는 한민족의 5천년 역사 전체에 연속적으로 이어져오는 사상이나 철학, 또는 사회문화적 흐름, 연관성을 찾으려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근대 이전의 한국사에서 '미덕'을 발굴하여 1960년대 이후 한국의 민주화와 통일운동의 추진 과정에서 공통된 '미덕'을 발견했음을 주장한다. 또한 고려와 조선에서 형성된 파벌주의와 학벌주의가 현대의 남북한, 특히 남한에 뿌리깊게 잔존하는 모습과 고구려와 발해의 중국에 대한 저항이 북한의 자주독립 정신과 연관성이 있다는 것, 그리고 신라가 외세를 끌여들여 백제와 고구려에 승리한 것이 고려 말기의 원나라에 대한 사대주의와 조선 중기 이후 명나라에 대해, 말기에 청나라에 대해 의존한 모습과 연관성이 있으며 현대에 들어와서도 기득권층이 대부분 친일파로 변졀하였고 미군정이 들어오자 또다시 미국에 굴종하는 모습으로 이저졌다는 역사적 해석이 독특하면서도 시사점이 있다.(학문적 연구로서 타당성 검증과 별개로...)
저자는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전쟁이 19세기 말부터 싹트고 자라온 내전이자 국제 전쟁이고, 짧게는 1948년 9월 미-소군의 한반도 점령 이후 자주독립과 통일 위한 전쟁이자 길게는 20세기 초에 시작된 제국주의의 침탈에 대한 자주독립 투쟁의 최종전이라는 성격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한국)전쟁에 대한 나의 기본적인 판단은 결코 바뀐 적이 없다. 무엇보다도 1950년 6월에 전쟁이 시작된 것은 어느 누구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한국전쟁에 대한 내 책의 전체적 강조점은 내전은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역사 속에서 자라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가가 그 복잡한 역사를 알고 있는 한, 수많은 요인으로 빚어지는 전쟁에 대해 어느 한쪽을 비난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p.08)
대부분 학자나 정치가, 언론은 "한국전쟁이 남침이냐, 북침이냐"를 두고 격렬하게 논쟁하지만, 저자는 미국의 남북전쟁이나 베트남 전쟁처럼 한국 전쟁 역시 "언제, 누가 시작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전쟁의 성격이 무엇"이며 어떤 결말을 맺었고 어떤 교훈을 얻느냐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커밍스 교수가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논증하고자 하는 내용 중 하나로 독자들이 주의 깊게 읽어야 할 부분이 바로 위 인용문과 관련된 내용일 것이다.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커밍스 교수는 한국전쟁의 성격이 '내전'이며, 그 내전은 가깝게는 1945년 8~9월 미-소 양 강대국이 한민족의 의사와 상관없이 임의로 한반도를 군사점령하면서부터 자라났고, 길게는 20세기 초 미국-영국-중국-일본 등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군사적 전리품 나눠먹기식으로 일제가 한반도를 강제합병시키는 것에서부터 자라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커밍스 교수는 이 책 <한국현대사>에서는 현대의 남북한 체제와 문화를 비롯하여 20세기 초중반 한반도를 격동으로 들끓게 한 한민족의 전통과 문화가 어떤 특징과 장단점을 형성하고 있는지 분석하기 위하여 적지 않은 한민족의 사료와 문서들, 즉 고대사와 삼국시대, 남북국시대, 고려와 조선에 대해 방대하게 연구했다. 서구인으로서 '미덕(美德)'이라는 한자와 '마음(心)'이라는 한글의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그의 열정이 아름다웠다. 실제 그는 그런 노력을 통해 '미덕'과 '마음'이 한국인들에게 의미하는 바를 거의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현대 남한의 사회체제와 문화는 물론 북한의 사회체제와 문화도 지난 5천년 간 이어져온 한민족의 전통과 뿌리에서 연결되어 있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그 전통과 뿌리가 있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을 이루어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미국인을 비롯하여 서구 학자들 중에서 커밍스 교수만큼 한반도와 한민족에 대한 이해와 애정에 기초하여 한국(Korea)을 이해하는 전문가가 적다는 것이 한민족으로서는 불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한민족의 한 사람으로서 브루스 커밍스 교수에게 열 번이라도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커밍스 교수는 이 책을 통해 냉전과 전쟁, 분단체제라는 민족사적 불행과 아픔을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는 친일파 후예인 수구세력들이 삭제하고 감추어버린 한국 근현대사의 진실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수구세력이나 친일파 후예들이 아닌 모든 한국인들,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과 관계없이, 남북 갈등과 전쟁위기를 극복하고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을 바라는 이들이라면 꼭 한 번 읽을 것을 권유한다.
우리의 자식들, 후손들에게까지 분단의 아픔과 분단을 악용하여 부당하게 정치경제적 기득권을 유지확대하려는 악당들에게 이 사회를 물려줄 수는 없으니...
마지막으로 커밍스 교수의 한국현대사 연구에서 아쉬운 점은 미국인으로서 학자적 입장에서 한반도에서 진행된 사건과 상황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관련 자료도 한반도와 한민족에 관한 것들을 중심으로 수집하여 연구한 결과인 셈이다. 따라서 한민족의 입장 또는 미국의 국제관계사라는 관점에서 연구하지 않은 한계는 존재한다. 그것이 박세길의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나 한홍구의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등 국내 역사학자들의 현대사 저술과 다른 부분이다. 일종의 당파성이나 주체적인 관점이 없다고 할까...
그런 면에서 커밍스 교수와 이미 작고한 존슨 교수가 함께 한국현대사를 집필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같은 미국인 학자로서 찰머스 존슨 교수는 19세기 이후 미국의 군사외교적 정치경제적 역사를 다룬 <블로우 백>과 <제국의 슬픔>을 21세기 상반기에 출간했다. 그 책 안에는 제국주의 및 군국주의로서 미국이라는 국가 또는 지배집단이 19세기 이후 자국 내에서 어떻게 작동되어 왔으며, 한반도를 비롯한 제3세계를 상대로 어떤 전략과 행동을 취했는지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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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장의 내용 소개와 평가는 아래와 같다.
제1장 '미덕'에서 저자는 근대 한국의 배경에 대해 소개하는 부분으로 서기 1년부터 1860년대까지를 망라한다. 그는 이 장에서 한국의 과거 중 동시대적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를 건져내려고 한다. 그는 조선을 봉건국가가 아니라 '농업관료제' 사회라 새롭게 규정한다. 타당한 분석이라 공감이 된다.
이 장은 미국인들, 미국 정치가들이나 행정가, 언론인, 학자, 일반인들에 이르기까지 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한국의 역사와 전통, 문화와 언어, 장단점, 특징과 고충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알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영어권 독자들이 한반도와 한민족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기를 바라는 취지에서 포함시킨 단락이다.
제2장 '이익'은 1860년에서 1904년까지를 다루는 근대사의 첫 장으로, 이 시기의 한국은 열강의 출현에 의해 근대의 인장이 찍힌다.
왕조와 사대부들의 기득권 정치와 도탄에 빠진 민중들의 삶. 사회 전분야에서 변화의 흐름이 일어나지만 이를 제도적 문화적 행정적으로 뒷받침하지 못하는 지배계층. 살기 위해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항쟁을 일으키거나 만주로 중국으로 탈출하는 민중들. 제국주의 열강들의 제3세계 침탈과정에서 한반도에 들어닥치는 군사력과 한반도 내 전체 민족과 민중의 삶과 국가를 보호하지 못한 채 좌충추돌하는 지배계층. 민중들의 최대 저항인 갑오농민전쟁과 외세를 등에 엎고 지키지도 못할 기득권을 지키려는 특권층들. 가슴 아픈 역사적 사실이다.
그동안 국내 제도교육 과정의 국사 시간에 수능과 시험만을 위한 역사교육이 진행되어 왔기 때문에 커밍스 교수가 인용하거나 분석하는 내용 중에 처음 보는 정보나 처음 접하는 설명구가 많아 유익한 장이다.
제3장 '망국'은 1905년에서 1945년을 다루는 데, 일본의 한국합병, 즉 한국보다 더 빨리 산업시대에 적응한 일본이 한동안 이웃나라를 올라탈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설명이다.
일제 식민지 강점 기간 동안 한국인들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일제의 침략에 맞서 처절하게 저항하는 한국인과 일제에 머리 숙이고 기득권을 나누어 가지려는 친일파 매국노들, 그리고 이도저도 나서지 못하고 하루하루 생존을 영위해가며 버티는 민중들이다. 저자는 국내 언론이나 역사책에 누락되어 있는 친일파 매국노와 항일무장투쟁 등 민족지사들을 이름과 사실 행적과 활동에 대해 상당한 정보와 자료를 근거로 설명하고 있다.
특히 1937년 중일전쟁과 1941년 태평양전쟁 이후 해방때까지 일제의 필요에 의해 친일파 매국노 한국인들이 대거 식민지 관료체계에 편입되어 5~8년 동안 집중적으로 동족을 착취, 수탈, 탄압,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제4장 '열정'은 1945년에서 1948년까지, 제5장 '충돌'은 1948년에서 1953년까지를 다루는데, 일본 패배의 잿더미에서 시작해 하나의 반도 내에 자리잡은 두 개의 완전한 분단국으로 끝이 난 한국의 결정적인 위기를 탐사한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한국전쟁의 기원>과 동일한 장이다. 커밍스 교수는 미-소 양대 강국이, 특히 미국이 애초에 한반도를 군사점령하지 않았다면 한국인들이 스스로 친일파 매국노를 처단하고 자주독립국가를 세웠을 것이며 한국이 미래가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 평가한다. 비록 그 과정에서 일부 친일파들이 처단되었다 하더라도 1945년~1953년에 이르는 수백 만명의 인명피해는 없었을 것이고 내전과 분단도 없었을 것이라는 데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다.
해방 후 북한사회이 전개과정을 복기하면서 한반도 전체가 사회주의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비록 한반도가 일시적으로 사회주의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한민족이 판단하여 선택할 문제이고, 마찬가지로 내전을 통해 수백 만명이 희생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며, 설사 사회주의를 선택한다 하더라도 몇십 년 후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결국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되돌아왔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점 또한 중요한 부분이다.
특히 이 장들에서 그는 미국의 잘못된 정책과 판단, 군사적 강제점령과 친일파 매국노에게 남한의 권력을 안겨주고 남한을 군사경제적으로 종속시킨 것 등에 대해 매우 강력하게 비판을 가한다.
제6장 '한국의 일출(1953~1997)'과 제7장 미덕 II (1960~현재의 민주주의 운동)'은 끊임없이 쑤셔대는 독재적이고 간섭주의적인 남한 정부 아래에서 산업적 힘으로의 도약과, 상대적으로 산업화되고 상대적으로 민주적인 국가를 궁극적으로 창출해낸 힘에 대한 민중의 저항을 바라본다.
6장과 7장은 남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와 관련된 장이다. 커밍스 교수는 남한의 경제적 성장과 민주주의 정착이 일부 지배계층의 능력이 아니라 남한 민중들의 피와 땀이 서려 일구어진 성과물임을 강조한다.
남한 지배계층의 외세의존적 태도와 군사경제적으로 미국 등 서구에 종속되어 있는 문제와 관련하여 그는 신라의 지배계층이 당나라를 끌여들여 삼국을 통일한 선례와 그 이후 지속된 외세의존적, 사대주의적 경향과 문화와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제8장 '태양왕의 나라, 북한(1953~현재)은 김일성의 북한을 탐구한다.
커밍스 교수는 북한의 정치외교 체제나 문화가 한편으로는 고구려에서 시작된 북방민족의 자주적 독립적 성향과 문화에서 비롯된 측면과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 말기에 나타난 척사파의 노선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또한 북한이 주체사상과 정치체제 및 문화가 고려 및 조선의 사상문화 중 일부를 승계한 것으로 분석하기도 한다.(저자는 정보와 자료 상의 한계로 북한을 제대로 파악하고 평가하기 어렵다는 점을 솔직하게 전제한다.)
제9장 '미국의 한일들'은 처음 미국 영토에 도착한 조선인들을 시작으로 그 이후 미국 내에서 인종차별을 겪으면서 미국인이자 한국인으로, 중간자로 자리잡은 재미교포 이야기를 다룬다.
제10장 '세계 속의 한국의 위치'는 김정일의 권력에의 접근에서 시작해, 1990년 한미 관계의 위기, 한국의 통일전망 등으로 이어진다.
마지막 장에서 커밍스 교수는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 체제가 막을 내린 직후인 1990년대를 전후하여 남과 북의 정치외교군사적 변화를 분석하고 특히 냉전체제 해체에 상응하는 북한의 변화와 이에 맞서 한반도에서 냉전체제를 유지하려는 미국 지배집단의 갈등을 살펴본다.
그는 북한이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탄 개발이 사회주의 진영이라는 보호막이 사라진 북한의 자위이자 자구책임을 보여주고, 미국이 냉전체제 해체에 맞게 한반도와 동북아시아를 평화적인 환경으로 변화시켜야 함에도 미국의 내부적인 사정과 목적으로 북한을 계속 군사경제적으로 고립시키고 위협하여 결국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개발을 강제한 책임이 크다는 점을 지적한다.
※ 제가 개인 블로그에 이 책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소감을 밝혀놓은 게 있습니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사 연구에서 인상 깊은 대목"이라는 제목으로... 64회로 나누어 정리하였으니 궁금하신 분은 링크(http://blog.daum.net/hy2oxy/8691691)를 클릭하시기 바랍니다..^^
[ 2014년 3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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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이전에 커밍스가 있다 신나 ㅣ 2012-02-22 ㅣ 공감(2) ㅣ 댓글 (0)
700쪽이 넘는 분량도 부담스럽고 4만원이 넘는 값도 부담스럽지만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의무감으로 읽으라는 건 아니다. 은근히 웃긴 표현들이 많다. 저자는 미국 시카고 대학 교수인 브루스커밍스이다. 미국사람이지만 조국에 대해서 비판적인 이야기를 하는 양심적인 학자이다. 북한을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남한 사회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다만 일제강점기나 박정희독재정권기에 대해서도 일면 좋은 점도 있었다고 판단한 점은 의아했다. 그렇게 판단한 주된 근거는 한국인인 그의 아내의 논문이었는데, 그 아내분의 아버지가 박정희 정권 시절 경제 관료이자 재계 회장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해가 된다.
<인상적인 구절>
한국의 분단에는 어떤 역사적인 정당성도 없었다. 만약 어떤 동아시아 나라를 분단했어야 한다면 그것은 (침략자인 독일처럼) 일본이었다. 그 대신 한국과 중국과 베트남이 모두 2차대전의 여파로 분단되었다.
서북청년단은 가장 악랄한 정치조직이었다. 미국 정보기관은 그것을 “극우 정치요인들을 지지하는 테러리스트단체”라고 발표했다. 초기에는 “그 회원들이 모두 소련과 한국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실제적 혹은 가상적 불만을 품고 북한에서 도망온 사람들이었다” (생략) 제주도민을 가장 분노하게 만든 것은 서북청년단의 준동이었다. 1947년 말에 미국 방첩대는 이 단체에게 그들이 제주도에서 자행하는 “광범위한 테러행위”에 대해 경고했다. 그러나 미국의 지휘 아래 바로 이 청년들이 경찰과 경비대에 합류하여 제주도 유격대 진압작전에 나섰던 것이다. (생략) 한국 서북부 출신의 젊은이들로 이루어진 한 청년단체가 들어온 뒤 (섬) 주민들과 본토 출신 주민들 사이의 감정이 격해지기 시작했다 (생략) 서북청년단은 “경찰 이상으로 경찰력을 행사했으며 그들의 잔인한 행동은 주민들의 심한 분노를 초래했다”고 알려졌다.
6월 25일 당일이나 그 이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든 두말할 나위 없이 분명한 것은 이 전쟁이 “한국인들이 한국 땅을 침략한” 문제였다는 것이다. 그것을 일반적으로 인정된 나라간의 국경을 침범한 공격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전의 투쟁이 시작된 지점도 아니었다. 이데올로기적인 폭발성으로 충만한 “누가 한국전쟁을 시작했는가?”하는 질문은 분명 잘못된 질문이다. 그것은 내전에 관한 질문이 아니며, 단지 동족상잔의 투쟁으로 직접 고통을 당한 세대들의 애간장을 쥐어짤 뿐이다. 미국인들은 남부가 썸터 요새(Fort Sumter)에서 먼저 발포했다는 사실에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지만 노예제도와 남부의 연방 탈퇴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다. 아무도 누가 베트남 전쟁을 시작했는지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남북의 한국인들은 미국인들이 마침내 그랬듯이 내전은 혼자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는 지혜를 깨닫고 화해할 것이다. 미국인들이 그렇게 하는 데 1세기 가량이 걸렸다. 그러므로 50년이 지난 후에도 한국의 화해가 여전히 미결정 상태인 것은 놀라울 것이 없다.
이승만은 이병철한테 제일제당과 제일모직과 같은 이전의 일본기업들을 두드러지게 유리한 구매가격으로 내어주었다. (생략) 삼성의 창립자인 이병철은 항상 자신을 ‘일본신사’로 여겼고 일본여성과 결혼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입증했다. 삼성(‘별 셋’)은 미쯔비시의 ‘다이어몬드 셋’을 응용한 것인데, 미쯔비시 역시 메르세데스의 로고를 본 뜬 것일 공산이 크다. 수많은 재벌 총수들과는 달리 이병철은 식민지시대에 첫출발을 했다. 지주가문 출신인 그는 1930년대 마산에서 정미소로 시작하였고 그후 대구에서 쌀로 빚은 술을 수출했다. 그의 사업은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급속하게 팽창하였는데, 그때 그는 자기 공장 부지내의 막사같은 건물에 사는 노동자들에게 일을 시켰다. 항상 노조에 적대적이었던 이병철은 종종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삼성에 노조를 허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삼성은 이승만 정권 동안 특매가로 일본인 공장들을 전략적으로 사들인 데 힘입어 가장 중요한 경공업회사가 되었다. 이 무렵 이병철은 한국 최고의 갑부였다. 그러나 중공업 추진정책 동안 삼성은 컴퓨터, 가정용 전자, 조선을 포함한 다른 많은 분야로 다각화하였다. 1994년 삼성은 정부로부터 거제도의 새 공장에서 자동차 제작을 시작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았는데, 거제도는 우연찮게도 김영삼 대통령의 출생지였다. 1994년 <포천>지의 500대 기업 목록에서 삼성은 146억 달러의 매출을 올려 221위를 차지했다.
이를테면 일본의 한 은행이 12인치 흑백 텔레비전을 만드는 자금으로 당신에게 시세보다 낮은 금리로 1천만 달러를 빌려 주도록 내가 주선하고 은행에 대여금 상황을 보장한다. 나는우리의 자유무역지대의 한 부지를 당신에게 떼어주고, 당신 공장까지 이르는 도로를 건설해주고, 우대금리로 에너지와 전기를 공급하고, 당신이 건물을 짓도록 미국의 잉여 시멘트를 챙겨준다. 나는 시장과 기술과 유통채널을 확보하고 있는 외국회사를 찾아서, 당신의 텔레비전을 미국의 어느 곳에서나 심지어 식료품가게에서도 팔 수 있게 해준다. 나는 교육과 훈련을 받은 노동력을 정해진 가격(역시 시세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지속적으로 공급할 것을 보장하고 노동조합을 불법화하고 노동현장에서 위험스런 결사체들이 출현할 때에는 언제나 군대를 보내준다. 나는 당신이 몇 개의 기업과 경쟁해야 할지를 결정하며, 당신의 연간 생산목표액을 정해주고 (초과달성 시에 보너스를 주겠다는 약속과 아울러), 당신들 모두가 성장할 수 있는 여지가 있도록 확실히 배려한다. (당신이 내 처남이다 뭐다 하는 사실은 거론할 필요도 없다) 이런 체계가 1960년대에는 간혈적으로 운용되었다면 1970년대에는 시계처럼 정확하게 운용되어 ‘한국형 모델’의 정수가 되었다.
14~16살의 어린 소녀들이 마루바닥에 꿇어앉아서 오전 8시에서 밤11시까지 하루 평균 15시간을 일해야만 했다. 노동자들은 한 달에 이틀, 쳇째 셋째 일요일에만 쉴 수 있었다. 할 일이 많을 때는 철야작업까지 해야만 했다. 깨어 있기 위해서는 각성제를 먹어야만 했다. 1970년 이런 가혹한 노동에 대한 임금은 월 1,500원에서 3,000원 사이였다. 이들의 하루 임금은 다방에서의 커피 한 잔 값에 해당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의 북한 경제는 세계 최고의 성장률을 기록하였다. 외부의 관찰자들에 의하면, 북한의 산업은 한국전쟁 이후 십년 동안 연평균 25%로 성장했고, 1965~1978년 사이에는 약 14%의 성장을 이루었다. (생략) 한국 전쟁 이후 20년 동안 북한의 경제성장은 남한의 성장을 훨씬 능가했고, 남한이 도대체 경제성장을 시작할 수 있을지 걱정하던 미국 관리들의 마음에 두려움을 주었다. (생략) 북한의 일인당 국민총생산량이 최소한 1983년까지는 (남한고) 비슷하게 유지 (생략) 사회주의 블록의 붕괴로 인해 북한은 주 시장을 상실하였고 1990년대 초반 몇 년 동안 국민총생산량이 감소하게 되었다
왜 최고수준의 대학에 다니는 한국계 미국인들이 그렇게 많은가? 꼭 하나의 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이 오래된 나라에서의 교육은 여러 세대를 걸쳐 최고의 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향후 전체 가족의 물질적인 복지를 위해서 필수적이었고, 대학에 갈 여력이 없거나 입학시험에 떨어진 이들의 운명이 어떤 것인지를 냉엄하게 가르쳐왔다. 초등학교 교복을 걸친 채 무거운 짐에 허리가 휘도록 일하는 노동자의 모습은 서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1903년에서 1905년 사이에 수많은 한인들이 하와이에 도착했는데, 그 수는 모두 약 7천 명에 달했고 주로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했다.미국인 선교사들은 한국인들이 사탕수수농장 노동으로 자신들의 “상황을 향상시키고 유용한 지식을 얻을 것”으로 확신하여 이 이민을 촉진시켰던 것과 마친가지로 농장주들은 “백인들이 도저히 사탕수수농장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한국인들을 환영했던 것이다. 호러스 앨랜은 하와이 지사인 쌘포드 돌에게 한국인들은 “인내심 있고, 근면하며, 오랜 복종의 습관으로 인해 다루기 쉬운 유순한 인종”이라는 점에서 중국인보다 우수하다고 말했다.
한국인들은 대단한 가족애와 교육의 미덕에 대한 놀라운 믿음을 지닌, 기백이 넘치고 근면한 도덕적인 사람들이다. 이들은 지도자로부터 좀더 나은 대접을 받아 마땅하고, 반세기 동안 한국인들의 삶에 깊숙이 관여해왔으면서도 아직도 한국인들을 모르는 미국이라는 나라로부터 여태껏 받아온 대접보다는 더 낳은 대접을 받아 마땅하다. (생략) 이제 “내란에 의해 완성된” 자유를 지닌, 통일되고 당당하고 근대적인 한국을 상상해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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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 유도명인황장엽 ㅣ 2009-02-20 ㅣ 공감(0) ㅣ 댓글 (0)
완성도도 높았지만 책이 재밌기도 엄청 재미있었다. 물론 역사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해당될 것이지만.
그의 주장이 모두 옳다는 것은 아닌데 보수 쪽에서 싫어할 주장(한국전쟁 관련)과 진보 쪽에서 싫어할 주장(일본이 조선에서 공업화를 한 것에 대한 인정,박정희의 산업화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을 모두 담고 있을 정도로 치우치지 않게 건강하고 건전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책에서 시종일관 계속 서양이 한국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오리엔탈리즘적 시각으로 일관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며 그런 시각들을 교정할 것을 주문한다. 진정으로 한국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임을 느끼면서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나라를 사랑해 줘서 고마운게 아니라 동양 쪽 나라에 대해 그나마 이렇게 균형잡힌 시각을 가진 서양사람을 또 한명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 인상적이었던 내용,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
- 한국전쟁에 대해서 브루스 커밍스는 "전쟁을 누가 먼저 시작했느냐"를 중요시하기보다는 이 전쟁이 "대립하는 두 집단간의 내전"이었음을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이 지배했던 어떤 식민지에도 그런 일은 없었는데 30년대 조선에서는 공업화로 대자본가 집단이 출현했다. 김연수,박흥식 등..
- 중일전쟁 발발 이후 관료사회에 진출하는 한국인들이 많이 증가하였다
(이 점을 커밍스가 일제 통치의 긍정적인 면으로 서술했다는 말이 아니다. 내가 잘 모르고 있었던 사실들이라는 말이다)
- 공산당,좌익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그들의 항일,애국에 대한 것이었다. 그들이 엄청나게
희생하고 고생하는 것에 대하여 대중들은 미안한 감정,존경심을 갖고 있었다
- 미국 본토의 국무부의 노선과 달리 존 하지의 미군정은 1945년의 시점부터 단독정부를 하고 싶어했다. 남과 북의 이질화에 크게 영향을 미쳤던 북한의 토지개혁은 1946년 2월에 있었는데 군대,경찰 등 권력기구를 먼저 창설한 것은 남한이었다고 한다. 하지는 ‘아시아의 패튼’이라고 할 정도로 전쟁터에서의 능력은 용장이었다
- 1945~50년 국공내전에 수많은 조선인들이 참전하였다. 북한이 미국과 잘 싸웠던 것에는 이러한 경험들도 컸다고 한다
- 중공군 참전 이후 공산군 측이 승승장구한 것에는 북한의 기여도 상당했다
중국공산당에서 항일을 했던 방호산, 만주 게릴라에서 김일성의 동료였던 김책이 아주 유능한 군사지도자였다. 특히 방호산은 진짜 군인..
- 미국은 폭격으로 북한을 X창냈다. 특히 댐 폭발은 완전히 만행이었다. 이것은 북한 지역의 농사를 불가능하게 만들어 대량아사를 낳았다
- KCIA는 안 하는 것이 없다. 정보기관이 하는 일 말고도 관여하지 않는 것이 없어
단순한 정보기관이라고 볼 수가 없는 수준이다
- 외무부장관 김동조의 과거
- 여운형, 김규식에 대해서 역시 나았던 정치인으로 묘사
- 70년대 중화학 공업화는 관료들의 반대에도 불구, 박정희의 웅대한 포부로 밀어붙여졌다. 이는 80년대 이후의 번영에 기틀이 되었다
- 80년대 초 남한의 체제위기 극복에 나카소네,레이건의 40억불 외채상환금도 많이 도움을 주었다
- DRP(민주공화당)의 조직에는 일본 회사 자금 6,600만 달러가 들어갔다
- 1997년 초 노동자들의 구조조정, 정리해고 반대 총파업으로 YS정부가 하려고 했던 것이
벽에 막혔으나 불과 1년 뒤 IMF가 이것을 대신해서 성공한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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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경찰의 탄생비화-민중 억압의 트라이엥글 기픈옹달 ㅣ 2008-07-10 ㅣ 공감(0) ㅣ 댓글 (0)
남한 단독의 공공 조직들을 수립하는 일이 급속히 진행되었다.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에야 선포되었지만 이남의 정치조직은 점령한 지 첫 몇달 안에 조직되어 1960년대까지 실질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1945년 11월과 12월 하지와 그의 고문들은 네 단계를 취하기로 했다. 첫째 38도선을 지킬 군대를 창설한다. 둘째, 남한을 진정시키기 위한 주된 정치적 무기로서 한국국립경찰을 창설한다. 셋째, 우익 정당들과의 협력을 강화한다. 넷째, 이런 정책들을 좋아하지 않는 한국인들은 억압한다. 일본의 무장해제를 위해 한국을 점령한 군대가 이제 남한에 봉쇄 방파제를 집중적으로 쌓고 있었다.
... 하지를 지휘하는 토오꾜오의 연합군 최고사령부는 최초의 보고서에서 경찰이 "철저하게 일본화되었으며 폭정의 도구로서 효과적으로 이용되었다"고 말했다. ... 이때쯤에는 일본 경찰에서 근무한 한국인들의 약 85%가 국립경찰에 채용되어 있었는데, 그 수치는 일년 후에도 거의 달라진 것이 없었다.
... 미국인들은 그들의 역사에서 국립경찰에 저항해왔으며, 일본에서는 매카서가 비무장화와 민주화라는 두 가지 점령 목표에 장애가 된다고 해서 일본의 국립경찰을 해산시켰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하지와 그의 고문들이 주된 정치적 반대세력이며 1945년 9월 서울에서 수립된 조선인민공화국과 그것과 연계된 많은 시골의 위원회들, 노조들과 농민단체들에 대항해 독자적인 국립경찰을 창설했다.
... 뉴욕에 거주한 소설가이자 반공주의자인 강용흘은 웨드마이어에게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지독한 경찰국가 중의 하나였다"고 썼다. 그는 한국에서의 투쟁은 "소수의 살찐 지주와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배고픈 사람들 사이의 싸움이었다. 이들 소수가 오늘날 [한민당을] 통제하고 있으며, 일반대중들은 이 오래된 악습을 고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 282~288쪽 발췌 인용
브 루스 커밍스는 '한국전쟁' 연구를 중심으로 해서 한국 현대사및 북한 연구의 권위자이다. 이미 발간된 책들이 몇권 있지만 집에 있는 것이라고는 이 '한국현대사' 뿐이다. 결코 얇지 않은 이 책을 다시 꺼내들게 만든 것은 이 책에서 알려준 경찰의 탄생비화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망하자 38도선 이남에는 미군이 이북에는 소련군이 각각 담당하게 된다. 이후의 역사는 모두가 알고 있는대로... 그런데 그 가운데 재미있는 것이 점령 사령관 하지에 의해서 국립경찰이 창설되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군대와 함께! 맨 처음 인용된 하지의 네 가지 계획을 보면 '군대-경찰-우익'의 트라이엥글로 민중을 억압하고자 했던 그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미국은 이미 국립경찰에 대한 저항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으며, 메카서(맥아더)가 관리한 일본에서는 도리어 국립경찰이 해산되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일본의 경찰조직이 고스란히 국립경찰제도로 옮아온 것이다. 그것도 국가 수립이전에!!!
결국 역사적으로 군대-경찰-우익이라는 것은 초국가적인 억압도구로서 작동해왔다는 말이다. 그 중에 경찰은 이름만 경찰일뿐 사실상 '치안'의 의무보다는 권력의 몽둥이로서 작동해왔다. 태생적으로 경찰은 권력의 손과 발이었다. 결국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공(公)권력'이라는 것도 허울에 불과할 뿐이다. 실상은 국가제도로서 용인된 폭력집단일 뿐이다.
2008년 여름, 대한민국 수도 한 복판에서 보여준 경찰의 행태는 그들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반정권 운동을 벌인다는 이유로 시민들은 아무 이유없이 물대포를 맞아야 했고 방패에 찍혀야 했다. (누군가 '불법 도로점거'라는 쓸데 없는 말을 꺼내면 그냥 비웃어주자. 시민들을 위한 소통-교통이 아닌 정권의 청소용역을 떠맡았을 뿐이다) 개국 60년이란다. 그렇지만 그 보다 더 질긴 경찰권력은 여전히 민중을 억압하고 있다. 군대-경찰-우익이라는 억압의 트라이엥글과 그 배후의 미국, 씁쓸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 http://ZZiRAC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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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외국인의 눈을 통해 한국사를 바라봐야 하는가? 암향부동 ㅣ 2008-07-08 ㅣ 공감(2) ㅣ 댓글 (0)
그동안 한국 근현대사 관련 책을 읽다 보면 언제나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를 만날 수 있었다. <옮긴이의 말>에서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김동노 교수가 고백하듯이 ‘현대 우리 학계에서는 그의 입장에 기대거나 혹은 빗대어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는 것이 현대사 연구의 관례였을 정도였다.’(p.726)로 브루스 커밍스가 한국 근현대사학계에 미친 영향을 지대하다. 하지만 브루스 커밍스 자신도 고백하듯이 ‘나는 미국에서 연구를 하고 있고 나 자신을 순미국인으로 생각하고 있다’(p.21)는데 직접 한국 근현대사를 겪은 <한국인>이 아니라 외국인의 연구가 얼마나 객관적이고 과학적일 수 있는지 언제나 의심을 품었으며 또한 외국인의 저작에 기댈 수밖에 없는 척박한 한국 근현대사 연구와 외국인이 이런 저작물을 내 놓을 동안 별다른 연구 성과물도 내놓지 못한 이른바 ‘한국 근현대사 전문가’들에 대해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국가로부터 수많은 연구비를 받으면서도 고작 하는 일이라고는 <김일성 조작론>같은 완벽한 어용학자의 연구만 하고 있을 뿐이지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조금도 없는 그냥 ‘돈 먹는 기계’, ‘생각 없는 권력의 파수꾼’에 다름이 아니었다. 물론 근래에는 젊은 학자들 중심으로 특히 정병준씨의 [한국전쟁]이나 [우남 이승만 연구], 그리고 김동춘 교수의 [전쟁과 사회]등 드디어 <연구 성과물>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이 나오고 있는 점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바이다.
결국 브루스 커밍스의 노작인 [한국현대사(Korea's Place in the Sun)]은 언젠가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었다. 하지만 일단 700여 쪽에 이르는 책의 두께부터 독자를 압도한다. 마치 ‘과연 나를 넘을 수 있을까?’라고 이야기 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설혹 브루스 커밍스가 이런 의도로 책을 썼다 하더라도 그건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철저하게 분석하고 비판해주마’라는 마음가짐으로 이 책에 달려들기 시작하였다.
일단 이 책의 1, 2장은 본격적인 한국현대사를 서술하기에 앞서서 미국 독자를 위해 간략히 한국의 오래된 역사와 문화를 설명하는데 할애하였다. 커밍스도 밝히고 있듯이 1, 2장은 대부분 다른 이의 탁월한 연구 성과에 의존(p.20)하고 있는데 먼저 <유교>에 대한 커밍스의 생각이 드러나는 부분이 있다.(p.27~28) 이에 대해 커밍스는 정적이고, 권위적이고, 반민주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외국의 견해를 반박하고 있다. 이런 커밍스의 지적은 날카롭지만 “그러면 유교는 무엇이냐?”라는 질문에는 모호한 답변으로 회피하고 있다. ‘유교라는 시냇물 옆에는 말로 표현되지 않는 격언과 믿음의 거대한 강이 흐르고 있다’(p.28)라고 하는데 골수부터 한국인인 나조차 알지 못하는 [거대한 강]을 커밍스는 어떻게 발견했는지 궁금하다.
그러나 커밍스는 <민족>의 개념을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집어내고 있다.(p.33) 특히 ‘세계 여러 민족 중에, 종족상, 인종상, 언어상의 심각한 차이 없이 한 국가에 살고 있는 민족은 별로 없으며 한국은 실로 종족과 국가가 일치하는, 지구상에서 가장 동질적인 민족 중의 하나인 것이다’라는 지적은 매우 정확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과학적으로 <민족>의 실체는 없다는 것이 사실이지만 <민족>이란 생물학적 의미보다는 ‘정신적’인 면을 강조해야 하는 단어로 여러 민족의 피가 섞인 우리도 최소한 정신적으로는 <韓民族>이라는 민족성을 끊임없이 인식하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민족>이란 정신적 실체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이어서 그는 양반 제도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고발한다.(p.75~78) 물론 본인의 집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집안이 <족보>를 애지중지하며 스스로를 양반 집안이라고 우기지만 사실상 ‘임진왜란’ 이후 양반 제도는 붕괴한 것이 옳으며 이를 알고 난 후 비록 집안 어른들 앞에서 입 밖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족보를 전혀 신뢰하지 않고 있었다. 또 안동 김씨로 대표되는 양반들이 조선 후기에 나라를 속된 말로 ‘말아 드셨는데’ 이런 양반의 후예라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벼슬이라고 사람 만날 때마다 “누구의 몇 대손입니다.“라고 자랑하고 다니는지 젊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커밍스의 지적에는 100%를 넘어 200% 동감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 여성의 지위에 대해 이야기가 계속된다.(p.86~88) 이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 분명 문제 있는 것이고 점점 고쳐져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른바 “깨어 있는” 여성의 투쟁으로 여성의 참정권이 보장되고 유산 상속에 있어 남녀 자식 간에 평등하게 받으며 미망인의 경우 남편의 재산을 자식과 비교하여 50%를 가산해서 받는 법이 통과되었고 2005년 경에 이른바 <딸들의 반란>이라고 불리는 획기적인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마지막 보루였던 ‘종중 재산’의 경우에도 여성의 권리가 인정받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오랜 관습(과연 ‘관습’이라고 부를 가치가 있는지는 의문이지만)속에 남성 우월주의는 남아 있으며 사회의 발전과 여성의 사회 진출을 가로막는 이런 편견들은 최대한 빠르게 사라져야 할 것이다.
이제 <임진왜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커밍스는 임진왜란으로 사실상 조선의 모든 법률, 세제 체계가 무너지고 말았으며 이로서 조선을 멸망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한다.(p.106~107) 과거 본인이 고등학교에서 국사 수업을 들을 때 선생님께서 “조선은 임진왜란으로 멸망하고 새로운 나라가 탄생했어야 되었다”라는 말씀을 들을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실제 임진왜란, 병자호란으로 조선을 지켜오던 탁월함, 덕(virtue)는 사라지고 말았는데 차라리 이 때 조선이 멸망하고 한 번 깨끗이 개혁을 한 후에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았다면 20세기 초반에 이렇게 우리의 조상들이 고생하지는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역사에는 “만약”이라는 가정은 의미가 없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설사 새 왕조가 들어서기 위해 반란이 일어났더라도 지배 계층을 이루는 ‘지주, 양반 계층’의 비협조로 성과를 달성하기는 힘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본격적으로 <치욕의 역사>를 배우게 되는데 먼저 우리나라에서 계급제, 노예제도가 폐지된 것이 고작 100여년 밖에 되지 않았다(p.170)는 점을 언급하고 싶다. 그런 만큼 아직도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에는 계급제와 노예제도에 대한 기억이 있으며 결국 오늘날의 <양반>이 되기 위한 소과인 “수능”, 대과인 “고시”에 많은 학생이 지원하며 이에 떨어지면 실패자 취급을 받고 이렇게 교육이 과열되는 것도 이렇게 계급제, 노예제도가 폐지된 시기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어서 이른바 <친일파>, <부역자>들의 이름이 하나 둘 등장하는데 그중 특히 언급하고 싶은 사람은 “윤치호”다. 윤치호를 특별히 언급하는 것은 과거 좋은 책을 찾아 다니 던 중에 <윤치호 일기>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윤치호 일기는 일종의 <판도라의 상자>이다. 기독교계의 친일 행동을 이끌었던 그의 일기를 통해 당시 이른바 “지식인”이 왜 친일을 하게 되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특히 “물지도 못할 거라면 짖지도 마라”는 그의 주장은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란 존재가 <친일파>가 되는 의식을 단명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이제 3장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제 3장의 시작은 <잃어버린 역사>부터 시작된다.(p.199) 한일 양국에서 1935~45년 사이의 역사가 “지워진” 것은 아직 한국에서는 친일파 청산이 끝나지 않았으며 일본은 아직 제국주의의 충동이 가시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커밍스의 지적에 깜짝 놀라게 되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의 지적은 옳은 것 같다. 아직도 <역사 바로 세우기>는 갈 길이 먼 것 같고 얼마 전 친일파 재산 환수 소송을 보면서 언제쯤 친일 잔재 청산이 이루어질까하는 안타까움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커밍스는 남한에서 논쟁이 많은 식민시대의 <근대화>에 대해 설명한다. 아직도 잊을 만하면 일본 고위 관료나 한국의 교수들이 “한국은 일본 덕분에 근대화, 산업화 되었다”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국민의 감정은 매우 폭발적이다. 물론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커밍스가 주장하는 수송 및 통신시설의 확충(p.236), 한국내 산업혁명(p.241)에 대해서는 솔직히 인정하기가 싫다. 그리고 “성장의 이익은 전부 일본으로 갔으며 한국은 일본의 도움 없이도 어차피 급속하게 발전했을 것이라고 항상 생각한다”(p.211)고 지적하면서 타이완과 비교하는데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은 편협하지만 “그건 너희 미국인이 필리핀 착취하면서 내세우는 논리와 다른 것이 무엇이냐? 이런 너의 논리는 미국이 식민 지배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냐”라고 반박하고 싶다. 결국 이런 일본의 강요된 산업화 모델은 관료제-권위주의 발전 모델로 한국에 뿌리 깊게 자리 잡았으며 특히 당시 지배 계층인 양반 계급은 일본에 협조적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알 수 있었다.(p.215) 또한 한국 기독교의 경우 오직 출세의 수단인 <영어>를 위한 수단(p.223)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뭐 이건 지금도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은 요새 기독교는 “표”를 위한 수단이란 점만 다를까? 나는 아직도 김영삼이 주말에는 꼬박 꼬박 교회 다니면서 임기 막판에 사형을 집행한 것을 잊지 않고 있다.
이어서 커밍스는 과거에 대한 급진적 부정이 한국 사회를 분열로 이끌었다(p.224)고 주장한다. 이런 지적은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왜?” 한국에서 과거에 대한 급진적 부정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는 것 같다. 뭐 커밍스의 모국인 미국이야 역사도 짧고 침략하는 역사와 승리하는 역사로 이루어져 있어서 과거에 대한 급진적 부정은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한국의 역사는 미국과 정반대이다. 백날 유구한 역사 자랑해보았자 결국 나에게 돌아온 것은 가혹한 식민지배뿐 아닌가? 게다가 유구한 문화와 전통을 이끌어 오던 양반 지주 계층은 오히려 일본에 빌붙어 가혹하게 수탈하고 있으니 누구든 과거에 대한 부정을 하고 싶지 않았을까?
그리고 일제시대를 정리하면서 마지막으로 커밍스가 언급하는 것(p.252~253)는 그저 “그랬군…. 그래서 그런 것이었군…”이라는 한탄 밖에 나의 입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역사인가…. 마치 나라도 당시 살았다면 앞에서 커밍스가 언급한 과거에 대한 급진적 부정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 이런 일제시대를 통해 얻게 되는 교훈은 명확하다. “지 한 몸 지가 간수하라” 이것이다. 홉스가 지적하듯이 “개인의 생명과 재산권”을 지켜 주지 못하는 국가는 이미 그 존재 가치를 상실한 것이다. 그리고 백날 충성하고 지배계층의 말을 잘 들어도 결정적인 순간에 그들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다수를 배반할 준비가 언제나 되어있다. 누가 나를 배신할 것이 뻔하다면 내가 먼저 배신하는 것이 나은 방법 아닐까? 괜히 요새 젊은이들이 전쟁 일어나면 외국으로 도망간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전부 그들이 과거의 <역사>에서 가르쳐주고 있는 <교훈>인 것이다.
이어서 4장이다. 특히 4장의 초반에는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으며 커밍스를 다른 사람과 구별하게 만드는 이른바 <미국 책임론>이 등장한다.(p.263) 이런 한국 분단에 대한 미국 책임론은 이 책에서 수많은 근거로 뒷받침되고 있다. 가장 먼저 미 군정의 하지 장군은 공산주의와 파시즘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고 수 백명의 보수주의자들을 지원하게 되었으며(p.273) p.281에서 커밍스는 “미국과 러시아가 한국을 떠났더라면 좌익정권이 재빨리 권력을 접수했을 것이며, 그 정권은 혁명적인 민족주의 정부가 되었을 것이고, 중국이 그랬고, 베트남이 오늘날 그러는 것처럼 세월이 흐름에 따라 온건해져 국제 사회에 다시 참여하게 되었을 것이다.”라는 과거라면 금기시될 주장을 하고 있다.
또한 김구에 대해 묘사한 부분(p.278)에서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과 너무도 다른 김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그에 대한 묘사는 오늘 테러리스트에 대한 묘사와 다른 점을 구별하기 힘들 정도이다. 이어서 군대와 경찰이 일본에 부역했던 자들이 그대로 고위층에 존재했으며(p.284) 오늘날 한나라당의 전신인 한민당이 친일파들의 집단이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p.285) 특히 오늘날 시사할 만한 점이 있는 것은 <서북청년단>에 대한 설명(p.293)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정치 깡패, 깡패 정치”로 대표되는 어용 단체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잔존하고 있는 것 같다. 오늘날 촛불집회를 방해하는 단체 특히 HID는 서북청년단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얼마 전에 오랜만에 시골에 내려갈 때 나이 드신 분이 술 취해서 괜히 고속버스 운전기사에게 시비 걸면서 “자유당 시절이면 너희들 다 죽었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었다. 이것을 봐도 아직도 그 잔재는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승만에 대한 언급이 이어지는데 이는 정병준의 [우남 이승만 연구]를 참고하는 것이 더 좋을 듯 하다.
5장은 한국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일단 “내전은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다가온다”라는 언급이 참으로 내전의 진실을 알려주고 있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전쟁>에 대해서도 역시 정병준의 역저 <한국전쟁>이 더 많은 진실을 알려주고 있는 것 같지만 인상 깊은 점만 언급해보면 한국전쟁 낙동강 방어선의 격전지를 이루었던 포항(p.375)이 바로 나의 군부대가 있던 곳이었다. 가끔 육본에서 유해 발굴단이 와서 근처 야산을 뒤엎고 다니다가 유해를 발견하곤 했었다. 또한 인천상륙작전 후 북진하여 함흠에서 북한군과 중공군의 협공을 받고 무적을 자랑하던 미 해병이 궤멸적인 타격을 받고 흥남부두에서 철수했다는 점 또한 교묘하게 넘어가고 있다.(p.402) 글쓴이도 미국인이니 아무래도 궤멸적인 타격을 받았다는 점은 숨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글쓴이는 한국전쟁이 한국 사회에서 평등화를 강제하였다(p.423)고 주장한다. 이것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물론 일반적으로 한국전쟁이 평등화를 강제한 점은 있지만 이에 대한 참고문헌을 실었더라면 좀 더 인상 깊지 않았을까? 그 외 한국 전쟁의 <학살>과 그에 대한 <미군의 방조>(p.379)에 대해서는 역시 김동춘의 역저 <전쟁과 사회>를 참고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 이 부분은 아마도 다른 많은 분들의 의견이 있을 것 같아서 그냥 언급만 하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결국 <한국전쟁>은 커밍스가 말하는 대로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전쟁”이었다. 수많은 피를 흘렸지만 조국은 통일되지 않았으며 수많은 이산가족이 발생하였으며 산업화의 기반은 송두리째 사라지고 말았다. 게다가 남북한의 균열과 반목은 더욱더 심해지게 되었다. 결국 상처뿐인 전쟁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6장은 전부 브루스 커밍스의 아내인 우정숙(메러더스 우 커밍스)의 의견이다. 그러니 특별히 언급한 것은 없지만 단지 “기적은 없었다”(p.483)라는 의견으로 만족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우리의 주된 목적은 <경제>적인 면에서 한국근현대사를 살펴보기 보다는 다른 면에서 한국근현대사를 총체적으로 조망하는데 있지 않은가?
7장은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특히 커밍스는 “민주주의는 쟁취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당시 국회의원에 대한 신랄한 비판(p.504~505)은 참으로 인상 깊었다. 괜히 국회의원이 구캐우원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미국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원하지 않았다는 점(p.538)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오직 미국은 한국의 정치적 안정을 통해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국익을 지키는 데만 관심이 있었으며 사실상 군부 독재를 방치하였다. 이런 미국의 태도는 광주 사태에서 더욱 더 잘 드러난다.(p.540, 551) 아직 많은 문서가 기밀로 묶여 있어서 진실을 알기는 힘들지만 분명 미국의 개입 혹은 최소한 방조가 있었다는 점은 옳은 것 같다. 결국 이 모든 것이 미국의 영향력 하에 있을 수 밖에 없는 약소국의 애환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보면 현재 주 호주 대사로 임명된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김우상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한국에서는 친미파가 아니고서는 성공할 수 없다”
이어서 8장은 북한에 대한 언급인데 다른 것은 다 버리더라도 “공산주의 병 속에 담긴 성리학”, “마오쩌뚱의 옷을 입은 주희”라는 것은 알고 넘어가야 갈 것 같다. 즉 커밍스는 북한의 정신 속에는 가족주의로 대표되는 유교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9장은 잘라서 버려도 될 부분이다. 10장은 “북한은 수십년 간 미국으로부터 주기적으로 핵위협을 받았으며, 폭넓은 핵억제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북한 자신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p.694)을 말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1994년 전쟁 위기의 실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1954년에 이승만이 한국에서 수소폭탄 사용을 요구했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한 나라의 지도자라는 사람이 고작 이 정도 생각 밖에 못했다는 점은 우리나라의 불행이다. 또한 북한 전력의 70%가 전진 배치된 것은 전쟁 초기 남한의 군대나 민간인과 뒤섞여 핵무기 사용을 억제하기 위해서라는 지적(p.702)도 흥미롭다. 사실 그동안 우리는 북한이 전진배치를 한 것은 남침의 의도 때문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런 숨겨진 사실도 있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참고로 정치외교학과 수업을 통해 이른바 핵무기는 <상호간의 완벽한 파괴>를 의미하기 때문에 전쟁 억지력으로 작용하고 <핵 확산 금지조약>을 통해 다른 나라의 핵 개발을 막는 대신 “핵을 가지지 않는 나라와 전쟁을 할 때에는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라는 약속을 했다고 하던데 이 책을 보면 역시 국제관계에서 약속은 언제나 어길 수 있는 공수표에 불과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p.707에서 커밍스가 2008년을 예상한 것과 현재를 비교해 보는 것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커밍스는 “미국과 북한이 마침내 완전한 외교관계를 수립할 것이며 북한의 핵에너지 프로그램은 핵확산금지체제를 완전히 따르게 될 것이며 우리는 북한이 원자폭탄 생산에 충분한 양의 플루토늄을 재처리했는지 여부를 마침내 알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이런 커밍스의 예상은 2008년 현재 어떻게 생각되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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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한국 현대사 정재형 ㅣ 2001-12-05 ㅣ 공감(8) ㅣ 댓글 (1)
흔히들 대한민국이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들 한다. 위로는 공산국가들이 있고, 아래로는 태평양을 가로질러 대륙을 진출하려는 서구세력(특히,미국)들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리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면 이 지정학적 위치속에서 우리의 역사가 어떠한 우여곡절을 겪었는지 보여주는 자료가 있다면 굉장한 관심을 끌었을 것이다. 이 점에서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는 이러한 기대를 충족시킬만한 몇 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였었다.
첫째로, 미국의 역사학자가 썼다는 것이고, 그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한국의 역사가들 못지않게 열정적이라는 점에서였다.
둘째로, 그가 한국의 현대사를 다루었다는 점이다. 미국과 그 밖의 한국과 관련된 위치에 있는 나라(러시아, 중국등) 들의 상호 대립의 장으로 한국의 현대사는 점철되어왔으며, 앞으로도 이들 국가들과의 틈바구니속에서 한국의 위치가 어떠해야 할지 가르쳐 줄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나의 기대의 결과에 대해서는 적잖히 실망하였지만, 한국의 여러 특징적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 고대의 사건들을 연결시킨 커밍스의 일관적인 서술 구조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예를 들어, 영조와 사도 세자의 이야기를 들어 한국의 재벌구조들의 족벌체제가 갖는 현상을 말하려 하였다는 점과 이순신이 거북선을 제조한 놀라운 조선술과 달랑 두장의 사진으로 세계 굴지의 조선업 사업을 따낸 정주영 회장의 기백을 연결한 점들이 그것이다.
개인적으로 커밍스의 글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가 주장한 6,25전쟁 북침가능성 이론과 이승만 대통령을 통렬하게 비판한 점들 그리고, 일본에 의해 식민지 착취기간동안 한국의 근대화가 진전되었다는 그의 편협한 태도 또한 처음이긴 하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을 둘째치고라도 개인적으로 커밍스의 견해에 좀 더 실망한 점이 있다면 미국의 정책으로 인하여 한국의 발전과정이 어떻게 바뀌어 갔는지 그 점을 밝혀주지 않은 점이 아쉽다. 미국이 마치 한국의 정치에 언제나 방관자의 위치에 있었다는 식의 그의 주장엔 동의할 수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한국이 미국과의 관계를 빼면 알 수가 없는 부분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이 점을 분명히 한다면 그가 주장한 것처럼 향후 미국의 영향에서 한국이 벗어났을 때 세계를 위해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 명확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논쟁적인, 그러나 훨씬 편안하게 다가온 현대사의 노작 비로그인 ㅣ 2001-12-05 ㅣ 공감(3) ㅣ 댓글 (0)
커밍스의 새 책을 만난다는 것은 흡사 저명하고 논쟁적인 중단편 이후 동일한 감독에게서 연출된 장편 영화의 개봉을 기다리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실제로 그의 전작 [한국전쟁의 기원]은 많은 역사 연구자들에게, 특별히 대학 초년생들에게 현대사에 대한 어지러움증과 풍부한 상상력을 동시에 가져다 준 역사서 였다.
“내전은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자라나는 것”이라는 그의 일관된 지론처럼, 그는 분단의 역사가 상대방의 일방적인 책임을 추궁하는 단편성을 초월하는 것임을 논증하려 했다. 이를 반영하듯 커밍스는 [한국전쟁의 기원]을 통해 한반도에서 존재하였던 갈등의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였고, 사상적/정치적 갈등에 따른 민중의 삶의 모습의 변화를 여러 각도로 추적하였다. 그리하여 커밍스가 밝혀낸 한국전쟁, 분단 기원의 역사는 다채로운 동시에 논쟁적인 것이었다.
그런 [한국전쟁의 기원]이 한국전쟁에 대한 새로운 관점으로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면, 이번 [현대사]는 그에 비해 다소 편안 느낌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역사서 라 할만하다. 그것은 주되게 전작보다 훨씬 여유 넘치는 커밍스의 화법에 따른 것이라 생각되는데, 그는 한편으로는 철저한 타자의 관점에서 한국사를 다루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오리엔탈리즘적 편견을 뿌리치기 위한 내재적 관점에서 한국사를 언급하면서도, 그 아슬아슬한 경계를 유려하게 넘나들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현대사]를 통해 마치 ‘겸손한 타인으로부터 우리 스스로 보지 못한 우리 자신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 소상히 전해 듣는 느낌’을 갖게 된다. 특히 이번 장편에는 남과 북의 민중은 물론 재외동포들 까지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함으로써, 커밍스가 설정한 현대사의 “범주”에서부터 우리는 그 ‘소상함’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의 ‘한국적인 것’에 대한 통찰력은 이 책의 [9장; 미국의 한인들]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듯 하다)
물론 커밍스의 이번 장편이 전작과 같은 논란의 소지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한국전쟁의 기원] 에서 보여준 한국전쟁에 대한 그의 기본적인 입장은 이번 [현대사] 에서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기에, 냉전적 시각이 득세하는 남북 모두의 일반적 현대사 인식에 있어서 ‘브루스 커밍스’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커밍스의 이번 장편이 한반도에서의 긴장완화와 평화공존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내용으로 끝맺고 있는 점은 여러모로 생각해 볼 만한 일이다. 사실 커밍스가 한국 현대사 분야에서 지니는 존재 의의란, 냉전적 역사 서술의 맹점을 채워주기 위해 필연적으로 ‘외부자’가 개입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따른 탓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반도의 평화 시계가 순탄히 제 방향으로 돌아가고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더더욱 진척될 때, 커밍스의 전작과 [현대사]는 한 외국인의 ‘딴지걸기’ 와 ‘논쟁거리’로서의 의미로서가 아니라 한국 현대사에 바치는 노작이자 소중한 선물로 본격 인식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커밍스의 장편을 마무리하며 책을 덮는 순간, 곳곳에서 드러나는 노력의 흔적으로 이 책에 투자한 거금(?)이 아깝지 않을 수 있었다. 물론 대학 초년 시절 긴장감으로 넘겼던 [한국전쟁의 기원]과는 다소 색다른 느낌이었지만, 그럼에도 커밍스의 [한국현대사]는 그의 유려한 화법과 어울려 우리 현대사를 읽는데 더 없이 훌륭한 안내서임을 보여주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대학 초년생, 혹은 대학생활을 예비하는 많은 이들에게 밤새 읽힐 수 있길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 인문학의 위기, 역사의 위기가 회자되는 이 시점에서 그건 분명히 뜻 있고, 의미 있는 일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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