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06

이완용 친일파를 규정하는 것은 그 개인의 삶이 품고 있는 다양한 결들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전제로 -

손민석
23 hrs · 
친일행위를 규정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용이할지 몰라도 친일파를 규정하는 것은 그 개인의 삶이 품고 있는 다양한 결들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전제로 한다. 나는 그러한 다양한 결에 대한 사유 없이 정치적으로 누군가를 부역자, 친일파, 친북파 등으로 규정하는 것은 정치적 상황에서나, 특히나 정치적 격변기에나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역사적 단절이란 그러한 정치적 격변 속에서만 가능하다. 규정하더라도 당대인의 정치적 감각 속에서 규정해야지, 후대의 사람들인 우리가 논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고 본다

한국사 연구에서는 최근까지도 친일파에 대한 깊이 있는 내면 분석이 이뤄지지 않았다. 
  • 하다못해 이완용 관련 평전들도 대부분 이완용은 친일파이고 매국노 그렇지 않더라도 도구적 합리성에 빠진 근대인이라는 식의 부정적인 결론을 정해놓고 쓰는 바람에 한국사의 결 속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 그 인간적 고뇌가 무엇인지 등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이 되지 못했다. 
  • 나는 개인적으로 이완용을 국가와 개인 사이의, 국왕과 인민 모두를 초월한 중간적 지대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한국적 귀족정치를 꿈꾼 최후의 인간이라 생각한다. 그 길이 막혔을 때 그는 친일을 선택했다. 
  • 그의 친일은 이 맥락에서 한국 사회가 지니고 있는 어떤 곤란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것은 내가 이런저런 연구들을 읽고 든 생각이고, 친일파를 학술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상당히 난망한 일이 아닌가 싶다.

오늘날의 우리 관점에서 식민통치의 경험을 비판적으로 사유한다고 하면 내가 보기에 주안점이 되어야 할 지점은 근대국가가 지니고 있는 차별성에 기초해 피식민자의 주권을 박탈하고 민주주의를 억압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하지 않나 싶다. 특히나 조선인, 대만인, 중국인 등의 여러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과 억압, 그리고 그러한 차이를 이용하는 근대국가의 억압성을 비판하면서 오늘날의 한국 사회가 지니고 있는 소수인종에 대한 차별, 배제 등을 비판적으로 독해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이러한 관점을 끌고 가자면 정치적 대표성 문제와 권위주의적 정치체제에 대한 비판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본다. 단순한 권위주의적 정치체제에 대한 비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러한 정치체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그 '봉기적 성격'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방향으로 논의를 전개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 맥락에서 독립운동사뿐만 아니라 5.18에 대해서도 그 봉기적 성격을 강하게 인정하는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인민에게는 체제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체제가 정당성을 잃었을 때 그것을 전복시킬 수 있는 권리, 무장할 권리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전개되어야 한국의 민주주의가 보다 공고화되고 현재 만연한 폭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나 5.18을 폭동으로 이해하는 방식을 무마할 수 있다고 본다. 무기를 들고 저항했다는 점에서, 비록 의식적인 게 아니라 저항군의 폭압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5.18은 다른 민주화 운동들보다 훨씬 더 급진성을 내재하고 있다고 본다. 이런 맥락 속에서 식민통치를 사유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다만.. 이건 대외적인 관점이고 개인적으로는 일본의 식민통치를 굳이 비판해야 하나 싶다. 내 개인적으로 식민통치는 이해의 대상이지, 비판의 대상이 아니다. 권위주의 통치 또한 그렇다. 그것들이 왜 이뤄질 수밖에 없었는지 그 필연성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지, 이미 사라지고 없는 이들을 비판하는 게 어떤 의미를 지닐지 나는 별로 관심이 없다. 인류사에서 서유럽 국가들 몇과 일본, 태국 등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지역이 식민화되었는데 한국이 식민화된 게 무슨 큰일일까. 오히려 민두기 선생의 표현대로 "시간과의 경쟁" 속에서 패한 어느 사회에서나 나타날 수 있는 그럴 법한 일이었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건 1906년 통감부가 들어선 뒤부터 1987년까지 80여 년에 걸쳐 이뤄진 (국가건설과 한국전쟁을 이끈 이승만을 다소 논외로 한다면) 군인 지배 기간을 한국사의 긴 맥락 속에서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조선왕조는 군인에 대해 그다지 높게 평가하지도 않았거니와 200여 년에 걸친 평화를 누렸다. 그런 곳에 군인들이 통치하는 시기가 80여년에 걸쳐, 노태우까지 합치면 86년에 걸쳐 나타났다는 점은 상당히 특이하게 느껴진다. 군인 통치라는 관점에서 식민지기까지의 기간을 통찰하는 게 중요하지, 식민지기를 부정하기 바쁜 건 내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세계사적으로 이런 군인 - 국가 지배가 얼마나 보편성을 지니고 있는지, 유형적 파악이 어떻게 가능한지 등이 논의의 대상이 되어야지,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접근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내 이래서 선생님들하고 대화가 잘 안된다.. 다들 화를 내시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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