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Eunhee Kim - 거짓을 부추기는 문화 거짓말이 어느 정도 심각한 잘못으로 받아들여지는가는 문화에 따라 다르다....
Eunhee Kim
21 October 2019 ·
거짓을 부추기는 문화
거짓말이 어느 정도 심각한 잘못으로 받아들여지는가는 문화에 따라 다르다. 고백하지만 나도 대학교 때 친구 실험 레포트를 베껴낸 적이 있었다. 나 자신을 포함하여 사회정의를 외치던 대학생들이 일상생활에서 거짓말을 하는 것에 대해서 크게 죄책감을 갖지 못했던 것 같다.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미국사회에서는 일상생활에서 거짓말이 거의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산층의 평범한 시민들은 서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의도가 무엇일까 의심하는 일은 흔하지 않다. 아파서 수업에 빠졌다는 학생의 말에 교수가 의심스럽다는듯이 정말이냐고 거듭 물어보면 그 학생은 모욕당했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에게 거짓말장이라고 말하는 것은 대단한 인신공격이다. 미국 사회에서 정직함을 중시하는 가치관은 초등학교 때부터 학습된다. 초등학생이 짧은 레포트를 쓸 때도 다른 사람의 생각을 도용하지 않고 올바르게 인용하는 법을 배운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자신의 생각인 것처럼 거짓말 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대학에 들어갈 때 입학원서에 봉사활동 경력을 증빙하는 서류를 첨부하는 일은 없다.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에게 양심에 따라 행동할 것을 당연히 기대하기 때문에 입학원서의 내용이 거짓이 아니라고 선언하는 문구아래 본인이 사인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에 돌아와 학생들 가르칠 때 곤혹스러웠던 일 중 하나는 취업준비하는 졸업반 학생들이 취직을 했거나 혹은 취직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출석하지도 않았는데 출석으로 해달라거나 특정 점수 이상을 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즉 나에게 거짓평가를 할 것을 당당히 요구하였다. 그들은 사정을 이야기하였고 다른 강사나 교수들도 다 그렇게 한다고 '압력'을 넣었다. 또한 교수들도 대리출석 같은 것을 알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묵인해주는 것을 많이 보았다. 오히려 대리출석 안하는 학생을 '고지식하다'고 딱하게 여겼다. 데모하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었던 학생은 시험을 망쳐도 좋은 점수를 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수들도 있었다. 이번 조국 사태의 발단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는 조국 딸의 허위논문도 너무 무리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분노한 것이지 대학입시현장에는 경력이나 스펙을 사실보다 부풀리는 일이 흔하다고 최근에 자식을 대학에 보낸 한 지인은 얘기한다. 한국 사회는 아직도 거짓을 부추기는 사회다.
양심에 따라 정직하게 사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도덕적 가치관은 서구에서도 근대에 들어와서 개인주의와 함께 확립되었다고 나는 본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 자본주의 시장경제, 민주주의 정치제도 등은 객관적 사실에 대한 인식, 그리고 외부 세계를 객관화하는 주체로서의 자유롭고 평등하고 존엄한 개인을 상정하지 않으면 존재하기 어렵다. 종교적 가치관과 자본주의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나를 연구한 막스 베버는 서구의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고대사회부터 있어왔던 탐욕스런 부의 축적 (the pursuit of greed)과 구분하였다. 베버의 주장에 따르면 종교개혁 이후 신교도들은 현세에서 사적 이익을 추구하며 재물을 쌓는 것에 도덕적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정직하게 그리고 합리적으로 일하고 저축하고 투자하여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발전을 촉진하였다. 20세기에 들어와 상공업활동에 부여된 종교적 의미는 많이 퇴색하였지만 경제가치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에 기초하여 움직이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더욱 더 공정한 경쟁을 지향하고 있다.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서 거짓 자료에 근거하여 거짓으로 평가하는 것은 타인의 생명과 재산에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고 공정한 경쟁의 기반을 허무는 일로 간주되어 심각한 범죄로 다루어진다. 거짓이 난무할 때 사회정의는 사라질 수 밖에 없다.
반면에 개인보다 집단을 중요시하는 문화에서 거짓말은 쉽게 용인된다. 조선시대 유교문화에서 공동체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양반선비에게 있어서 자신의 몸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부모의 것이었고 죽은 후에도 아들과 아들의 아들로 이어지는 남계 후손들을 통하여 영원히 존재하게 된다. 부모와 자식, 그리고 먼 과거의 조상과 미래의 후손이 동일시되었고 개인의 삶은 대대로 존속하는 가족집단인 家로부터 분리되지 않았다. 친족집단 밖의 국가도 家가 확장된 것으로 보았다. 국가의 목적이 백성을 도덕적으로 교화하는 데 있었던 조선시대의 통치철학은 부모에 대한 효는 백행의 근본이어서 효도하는 백성이 많으면 저절로 나라의 질서가 잡히고 백성들은 평온하게 살 것이라고 보았다. 선비들의 꿈이었던 '입신양명'은 국가의 정치무대에서 덕망높은 관직자나 유학자로서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이었고 이는 또 동시에 부모에 대한 효도였으며 집안을 일으켜세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삶에 있어서 나 자신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하며 의롭게 살아야 한다는 유교적 도덕률이 언제나 실천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떳떳하게 추구하지 못할 때 말로는 '대의명분'을 내세우고 실제로는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인류학자들이 연구했던 소규모 전근대적 사회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고 이기적인 동기를 갖고 있다고 끊임없이 의심하게 된다. 분쟁과 갈등이 일어날 때는 추상적이고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규칙이나 도덕적인 원칙에 따라 해결되지 않았다. 도시화, 산업화가 많이 진행되기 전의 한국 농촌에서 현지조사를 했던 외국의 인류학자들도 비슷한 점을 지적하였다. 그것은 전통적인 한국 농민사회에서도 분쟁이 생길 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원리원칙이 엄격히 적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분쟁은 흔히 비공식적인 뒷담화의 형태로 진행되었으며 이 때 지지자들을 설득하고 동원할 수 있는 당사자들의 정치적 능력이 분쟁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해결을 하였다. 그리고 지지자들을 동원하는데 있어 당사자들의 인간관계와 그들이 살아온 내력에 대한 평판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지난 두 달 동안 벌어진 '조국사태'는 한국의 전통적 농민사회에서 갈등과 반목이 전개되던 양식을 판박이로 재현하였다. 양심적 '강남좌파'로 알려졌던 조국과 그의 친인척이 거짓 논문, 거짓 표창장, 거짓 인턴 활동, 수상한 사모펀드 운용, 웅동학원 운영과 관련된 비리 등 온갖 거짓말에 연루되어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대부분의 국민은 충격에 빠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조국이 실제로 어떤 불법 혹은 부도덕한 행위를 했는가 하는 객관적인 실체에 대해 정확하게 밝히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거짓 스펙을 쌓는 것은 너도 나도 하는 일이었으며 대부분의 의혹은 '극우' 언론에 의하여 조작된 가짜 뉴스이거나 왜곡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지지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조국이 사회주의자로 노동운동을 위해,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위해 '의롭게' 살아왔다는 내력과 평판이었다. 그들은 조국의 도덕적 우월성을 의심치 않았다. '적폐청산', '검찰개혁'과 같이 사회의 '거악'을 일소하는데 조국은 적임자라고 외쳤다. 일부 지지자들은 조국을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으로까지 비유하였다. 조국과 그의 가족을 변호하는 변호인들이 십여 명이나 되어도 검찰의 수사결과를 기다려 법정에서 싸우기보다 조국 지지자들은 촛불시위로 더 많은 지지자들을 결집시켜 조국을 '수호'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입에서 입으로, 그리고 SNS 등으로 전해지는 온갖 소문과 동영상은 조국 일가에게 불리하였다. 특히 조국의 부인 정경심에 대한 평판은 박근혜 대통령 때의 최순실보다 더 안좋았다. 정경심에 대한 세간의 악평은 결정적으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조국에게 등을 돌리게 만들었을 것이다. 결국 조국은 법무부 장관 직에서 사퇴하였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조국 반대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많은 '좌파'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은 촛불 시위를 '민의'라고 생각하고 '직접 민주주의'의 실현이라고 추켜올렸었다. 그러나 분쟁이 있을 때 자기 편을 들어주는 지지자들을 동원하는 전략은 위에 언급한 것처럼 개인의 이익이 부당하게 침해받지 않도록 보호해주는 근대적 정치경제 제도와 인권의식이 부재한 소규모 공동체 사회에서 사용하는 전략이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도 제도화된 문제해결방식이 없는 조직사회에서 조국 사태와 비슷한 현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시민단체든 재벌기업이든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공식적인 절차보다 비공식적인 뒷담화를 통하여 형성된 여론이 조직 내의 의사 결정에 더 영향을 끼치는 일은 흔히 볼 수 있다. 그 과정에 남에 대한 험담, 거짓 뉴스, 중상모략이 범람하고 선전선동에 의해 내분은 격화된다. 그리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책임과 권리가 분명한 제도권 밖에서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인구 몇 천만의 도시화되고 산업화된 한국사회에서 시민들이 의사표현을 하기 위해 쟁점이 있을 때마다 대규모 집단 시위에 의지하는 것은 전근대 사회로 퇴행하는 것이다.
398박정미, 李宇衍 and 396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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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흠
김정흠 올바름과 청렴을 자부심으로 여겼던 것은
한국인의 근본이었습니다
나라가 군사력의 힘이 약해
열강에 짓밟히고
온갖. 사상이 난무하는 가운데
우리의 것의 빛나고 좋은 것들을 잃어버린채
남의 것들을 부러워하는 시간들을 보내왔고
보내왔지만
스스로의 자부심과 정체성을 찾으리라 믿습니다
좋은하루 되세요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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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hee Kim
Eunhee Kim 감사합니다. 우리 것의 장점, 단점 둘 다 제대로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무조건 우리 것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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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흠
김정흠 Eunhee Kim ^^ 저는 장점을 먼저 보고 우선 보려고 합니다
교수님 글에서 저는 이미
교수님 마음을 읽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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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jin P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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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찬
김승찬 감사히 읽었습니다. 매우 공감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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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hee Kim
Eunhee Kim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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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jin P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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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chan Lee
Kangchan Lee 천천히 2번 읽었습니다. 현재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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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hee Kim
Eunhee Kim 공감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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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jin P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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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gKoo Chang
SungKoo Chang 한국농촌의 인류학적 연구가 있다는게 놀랍고 21세기도 비슷하단게 더 놀랍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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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hee Kim
Eunhee Kim 네, 한국 농촌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는 중국, 일본과 비교하면 적지만 60년대, 70년대에 현지조사를 한 심층적인 연구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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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jin P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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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성준
배성준 남을 비판하기 전에 저부터 작은 불의에 떳떳한지부터 생각해야겠습니다. 고3 수험생이지만 배우고 있습니다. 고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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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갑로
박갑로 배성준 고3수험생이 대단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30년 이상을 부정부패와 싸우고 있습니다.…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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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성준
배성준 거창하게 입으로 개혁하시는 분들중 진심으로 개혁적인 분을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사회에 나가서는 나사못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나가고 싶습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뒷받침되기 위해 학업도 소홀히 하면 안 되지요. 주신 말씀, 항상 생각하며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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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hee Kim
Eunhee Kim 배성준 '나사못' 같은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 지지합니다.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 바로 사회를 위해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소위 '정의'를 위해 사는 것이 일상생활에서 자신이 맡은 일을 성실히 하는 것과 따로 떨어져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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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jin P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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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seong Lee
Yoonseong Lee 사이비 종교에 빠진사람들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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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hee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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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Doosoo
Lee Doosoo 독립도 그렇지만 우린 자주적 근대화가 되질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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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hee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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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갑로
박갑로 길어서 솔직히 대충봤습니다.
오랜만에 쓰신 글이 논문수준이라서 눈물을 흘립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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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hee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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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순
정중순 세상에 기적은 늘 일어나는군요
제가 겪었고, 겪어왔고, 제가 느끼고 하고 싶은 말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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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hee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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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pyo Kang
Shin-pyo Kang 잘 정리해 놓았습니다. 오랫만에 김은희 박사 글을 읽으면서, 참 내공을 많이 쌓은 인류학자임을 확인했습니다.
다음에 이 글에 대한 제 이론인 대대문화문법 으로 댓글 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제 서울백병원에서 일주일 입원해 있다가 나와서, 지금은 힘이 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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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hee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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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채수
하채수 잘 읽었습니다.
공감합니다.
이제 우리 사회도 차분히 자성하면서 거리에서 의사를 집단으로 표출하는 형태를 벗어나서 대의민주주의의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해야할 것 같습니다.…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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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ki Lee
Jongki Lee 잘 읽었습니다. 정말 적절히 분석하고 법 이전에 거짓말이 횡행하는 현실을 잘 지적하신 글입니다.
이번 조국사태로 저들의 거짓말에 구역질이 났습니다. 법을 위반했느냐 아니냐보다 본인의 비도덕적 행위에 대해 일말의 가책도 없이 뻔뻔한 저들의 모습은 참으로 분노를 자아냈지요.
저들이 그렇게 하게 된 원인으로 두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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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m Choi
Bum Choi 문화는 장기지속의 감옥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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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미
이은미 공유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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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만
이선만 왕조가 500년이상 지속된 왕조는 거의없습니다. 선비정신으로 무장한 조선왕조는 대단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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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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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순
정중순 제가 아직 페이스북 문화를 잘모릅니다.
이 포스팅을 공유했는데 실례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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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hee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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