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Eunhee Kim - 도덕 교과서 유감
딸아이가 초등학교 때 쓰던 교과서 중 몇 권을 자료로 쓰기 위하여 버리지...
Eunhee Kim
30 August 2017 ·
도덕 교과서 유감
딸아이가 초등학교 때 쓰던 교과서 중 몇 권을 자료로 쓰기 위하여 버리지 않고 책꽂이에 꽂아 놓고 있었다. 미국에 조기유학가서 중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미국에서 졸업하여 문화적으로 한국과 미국 하이브리드인 딸애가 그 책 중 에 '도덕 교과서'가 우연히 눈에 띄어 펼쳐보고 읽다가 어이없어 하였다. 그 책은 2005년도에 나온 책이니 요즘 나오는 교과서와 내용이 다를 수도 있다. 어쨋든 2005년 4학년 도덕 교과서에는 매 단원마다 '반성'하라고 써있었다.그 내용 중에 지원이는 특히 어른 앞에서 무릎 꿇고 앉으라는 것에 발끈하였다. 식사 때에는 어른이 먼저 수저를 들어야 하고.. 사실 나는 딸아이한테 어른을 공경하라는 식의 가정 교육은 시키지 않았다. 어른 말씀 잘 들으라는 말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내 자신이 납득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딸아이한테 단지 '어른'이라는 이유로 말을 잘들어야 한다고 가르치나? 실제 나쁜 어른들도 많은데. 어른이건 아니건 간에 서로 인격을 존중해줘야 한다. 딸아이가 특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옷차림, 신발, 머리 등이 단정하지 못하다고 문제아 취급하는 것이었다.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는 것은 '노는 아이들'이나 하는 것으로 교과서에는 나와 있다. 지원이는 어떻게 겉모습만 보고 그 아이에 대해서 판단할 수 있는지 따졌다. 그 아이의 내면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원이는 '도덕 교과서'가 왜 있어야 하는지 문제를 제기하였다. 나도 사실 학교에서 도덕을 가르친다는 것에 대하여 오래 전에 미국 친구랑 열나게 토론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내가 충격적으로 느꼈던 것은 (문화 충격이었다) 학교에서 도덕을 가르치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는 나의 얘기에 그 친구가 펄쩍 뛰며 하는 말이 미국 공교육에서는 도덕(morals)을 안가르치며 가르쳐서도 안된다는 것이었다. 자기 문화도 객관화하는 게 직업인 문화인류학자인 나 역시 한국인인지라 학교에서 도덕을 가르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올바르게' 사는 법을 안가르친다면 선생님이 아니지...그런데 나의 이런 무의식적 사고는 그 친구의 그 말에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스승' 이라는 말이 있듯이 한국문화에서는 선생님이 '단지' 어떤 지식을 전달하고 기술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선 안된다고 본다. 유교적 전통이다. 조선시대에 교육은 바로 도덕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근현대 한국문화에서도 '교육'은 '도덕'과 떼어놓을 수 없다. 반면에 미국문화에서 '교육'은 '도덕'과 상관없다. 그러고 보니 미국의 교육 시스템에서는 '페다고지'(pedagogy)가 발달해 있는듯 하다. 가령 피아노 교습에 관한 책은 대부분 미국인들이 쓴 책들이다. 즉 어떻게 효율적으로 혹은 재미있게 가르칠수 있는가의 문제에 보다 천착한다. 아이들의 연령대에 맞춰서, 아이들의 다양한 수준에 맞춰서 어떻게 가르쳐야 잘 가르치는 것인가 하는 문제가 미국의 교육에서는 중요한 이슈이다.
사실 도덕과 교육의 문제는 '국가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어있다. 미국 공교육의 목표는 '시민'을 키우는 데 맞춰져 있다. 법을 지키고 세금을 내고 자기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줄 아는 시민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사회 질서를 유지할 수 없으며 미국의 민주주의 역시 기능할 수 없다고 본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르게 사는 것인가의 문제는 개인적인 신앙이나 믿음의 문제이지 민주주의 국가가 도덕 교과서를 만들어 학교에서 획일적으로 가르치게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누구나 자기나름대로 '올바르게' 사는 방법을 찾을 것이고 하나의 절대적 기준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딸 아이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였다. 문화마다 다양한 가치가 있는데 왜 어른을 공경하라고 가르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한 사회 내에서도 도덕의 내용은 다양할 수 있다. 개신교도, 가톨릭교도, 불교도, 이슬람 교도, 무신론자들이 자기 직업을 갖고 공통의 법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다. 미국 학교에서 규칙은 가르치는데 그건 학교생활의 한 부분이지 따로 교과목을 만들어 가르치지 않는다. 사상의 자유가 있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르게' 사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각각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데 왜 학교에서 하나의 행동규범을 가르쳐야 하는가 딸은 반문하였다. 그렇다. 자유란 바로 이런 것이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자신이 살고 싶은대로 사는 것이다.
나는 한국의 공교육에서 도덕을 가르치는 것은 국가가 하나의 단일한 도덕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여전히 유교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다. 도덕적 사회에서 이상적인 사회는 법을 지켜서 정의가 구현되는 사회가 아니라 도덕적 이상이 구현되는 사회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통령은 '역사 바로 세우기' 를 부르짖고 좌파든 우파든 '올바른' 역사를 국가가 가르쳐야 한다고 믿는다. 최근의 '갑질'에 대한 논란들, 착한 기업과 나쁜 기업으로 분류하는 것, 모든 것 제쳐놓고 분배의 정의가 최우선 국정과제라고 보는 것 등은 모두 도덕적 이슈들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받는 '도덕' 교육을 생각해볼 때 한국 사회가 이렇게 도덕적 이슈에 함몰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321박정미, Park Yuha and 319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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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동석
손동석 길에서 미군 젊은 친구들과 조우하게되면 먼저 인사하는 쪽은 그들이었습니다 가벼운 목례 또는 미소를 보내줍니다 하늘빛 푸르러지고 햇살은 더욱 눈부십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의와 도덕을 지킴은 우리 사는 인간세상을 더욱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드는 중요한 가치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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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hee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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