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의 ‘여자 마광수’ 김별아
“자기 몸에 솔직할 수 없다면 자유롭지 않다는 거죠”
입력2005-03-23
신라왕 3대를 색(色)으로 조종하며 권력을 주물렀던 희대의 팜 파탈 ‘미실’. 역사서 ‘화랑세기’에 주역급으로 등장하는 그가 소설가 김별아를 통해 환생했다. 김별아가 그려낸 미실은 본능에 따라 사랑을 좇는 성녀이자 창녀이고, ‘소년’을 ‘남성’으로 이끈 어머니이자 요부다.
소설가 김별아(36)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00년 이맘때쯤 한 서점에서였다. 눈길을 사로잡은 형광빛 주홍색 책. ‘내 마음의 포르노그라피’라는 다소 선정적인 제목도, ‘김별아’라는 낯설고 ‘별난’ 이름도 인상에 남았다. 성을 주제로 한 여성의 성장소설이라니…. 게다가 그는 ‘야한 여자’를 좋아한다는 마광수 교수의 ‘애제자’라고 했다.
그런데 소설은 제목처럼 ‘야하지’ 않았다. 작가의 분신이기도 한 여주인공 ‘이분’은 이른바 ‘탈선 소녀’가 아니다. 처음 성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된 세 살 때부터 제 딸을 출산하는 스물다섯 살까지 그려진 이분의 삶은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특별한’ 것이었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성을 둘러싼 죄의식, 도덕, 인습, 환상과의 치열한 갈등은 한 여성의 삶에서 특별한 경험일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에서 살아온 여성이라면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쳐 소녀에서 여인이 됐을 것이다.
소설 속 다양한 에피소드도 꽤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가슴이 큰 친구에게 질투를 느끼고, 은행에 가면 꼭 여성지 흑백 페이지를 찾아 읽으며, 밤에 걸려오는 ‘음란 폰팅’ 전화에 소스라치게 놀라면서도 무언가 모를 흥분감에 휩싸인다. 그리고 처음 ‘포르노’를 접했을 때의 경악과 밤길 ‘바바리맨’의 추억, 확 깨져버린 남자에 대한 ‘환상’까지.
기자 또한 작가의 후기처럼 ‘성에 대해서 풍선처럼 터질 듯한 호기심을 가진 소녀’를 지나 ‘죄의식과 갈등에 들끓고 있는 미혼여성’이 되어 ‘탄로나버린 비밀에 대한 허탈감과 모성이라는 세습된 굴레에 사로잡힌 기혼여성’을 앞두고 있었던 것 같다.
1993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한 김별아는 1995년 ‘내 마음의 포르노그라피’를 낸 이래 소설집 ‘꿈의 부족’, 장편소설 ‘개인적 체험’ ‘축구전쟁’, 산문집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 ‘식구’와 다수의 동화책을 선보였다. 그는 체험에 바탕을 둔 자전적인 글쓰기에서 벗어나 외국의 문명사와 우리 역사로 시야를 돌리고 있었다. 그러던 올초 큰 ‘사고’를 치고 만다. 국내 최대 규모의 1억원 고료가 걸린 세계문학상(세계일보사 주관) 수상자로 선정된 것이다. 수상작은 역사소설 ‘미실’. 미실은 화랑(花郞) 등 신라시대 중심인물들의 사생활을 기록한 ‘화랑세기’에 자주 등장하는 요희(妖姬)로, 신라의 ‘팜 파탈’이라 할 수 있다.
여성의 성욕과 역사의 만남
3월5일 오후 2시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김별아와 인터뷰하기로 약속했다. 1시간쯤 전 카페에 도착해 ‘내 마음의 포르노그라피’와 ‘미실’을 다시 한번 훑어봤다. 두 소설은 닮은 듯하면서도 많이 다르다. 똑같이 여성과 성에 대해 다뤘지만 풀어내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 아마 20대 중반이던 작가가 열 살을 더 먹으면서 나타난 변화일 것이다. 잠시후 ‘내 마음의 포르노그라피’ 책표지와 같은 화사한 주홍빛 아이섀도를 한 김별아가 환하게 웃으며 카페로 들어섰다.
-‘미실’의 세계문학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그동안 복권 한 장 당첨되지 않았을 만큼 횡재수가 없었는데 놀랍고 기쁘죠. 하지만 부담스럽기도 해요. 지금까지 그랬듯 죽을 때까지 꾸준히 책을 내는 이름 없는 소설가로 있고 싶었는데, 갑자기 큰 격려를 받으니 당황스럽죠. 그런 격려와 기대에 부흥하지 못할까 두렵기도 하네요. 다른 데는 ‘자신감’ 덩어리인데, 문학과 관련해서는 ‘열등감’ 덩어리거든요(웃음).”
-신라 여인 미실에 대한 이야기를 쓰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등단 이후 계속해서 개인적인 체험에 바탕을 둔 글을 써온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한계를 느껴 몇 년 전부터 한국사를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이를 바탕으로 고대사에서 현대에 이르는 연작소설을 써야겠다고 결심했죠. 그러다가 ‘화랑세기’의 미실을 만나게 된 거예요. 제가 꾸준히 탐구해온 여성의 성적 욕망과도 관련이 있고요.”
소설 ‘미실’은 신라 성덕왕 때 김대문이 썼다는 ‘화랑세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화랑세기’는 화랑의 우두머리인 풍월주 32명의 전기를 싣고 있는데, 흥미롭게도 성과 권력에 대한 이야기가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근친혼, 통정, 사통은 물론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이 권력자에게 자신의 아내를 받치는 일종의 성 상납인 색공(色供) 등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표현되고 있는 것.
1/4
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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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세기’에 가장 빈번하게 나오는 요희가 바로 미실이다. 미실은 남편이 있는데도 진흥왕, 진지왕(진흥왕의 아들), 진평왕(진흥왕의 손자) 등 신라왕 3대를 성(性)으로 받들어 모신다. 반대로 수많은 미모의 화랑으로부터 성으로 받들어 모심을 받으며 이들과의 사통 관계에서 아이를 낳기도 한다. 그처럼 미실은 단 한번도 권력의 끈을 놓지 않은 채 옥새를 관장하고 화랑도의 원화(源花)가 되는 등 권세를 휘둘렀다. 이런 비도덕성과 음란성 때문에 ‘화랑세기’ 필사본이 위작이라는 논란이 오랫동안 끊이지 않았다.
-‘화랑세기’ 필사본의 위작 논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는 ‘화랑세기’가 사실일 거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체위를 형상화한 토우(土偶)들만 봐도 신라의 성문화가 어땠는지 알 수 있잖아요. 사실 도덕적으로 음란하다는 건 참 웃기는 말이에요. 그때를 산 사람은 현실에 아무도 없는데, 누구도 모르는 세계를 지금의 잣대로 본다는 것은 말이 안 되죠. ‘화랑세기’ 필사본이 위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건 지어낸 이야기다, 소설이다’하는데, 소설가가 듣기엔 참 기분 나쁜 말이에요. 그들이 말하는 ‘소설’은 현실에선 일어날 수 없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뜻하잖아요. 하지만 진정 소설은 그렇지 않아요. 현실의 반영이죠. ‘그래, 그대들이 소설 같다고 하면 내가 정말 소설을 써서 보여주마’고 생각했어요. 인간사를 소설만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건 없거든요.”
풍만한 여체 속 치명적 매력
-그래도 왜 하필 미실입니까.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과 차례로 관계를 맺고 수많은 남자를 애인으로 거느린 미실의 남자관계가 그리 자연스러워 보이진 않는데요.
“문학에 등장하는 여성은 대개 성녀 아니면 창녀였어요. 하지만 미실은 두 경우에 다 해당하는 여성이죠. 미실은 아이를 여덟 명이나 낳아요. 어머니로서의 본능에도 충실했죠. 어머니이면서 여자였고, 사랑에 모든 것을 불태우면서 권력의 화신이기도 했어요. 사실 모든 여자들은 항상 ‘어머니로 살 것이냐’ ‘여성으로 살 것이냐’의 기로에 놓이잖아요. 어머니가 여성으로 살면 돌을 맞고, 여성이 어머니로 살면 성적 매력이 거세되죠. 하지만 여자들은 여성이면서 어머니로, 사랑에 모든 걸 걸면서도 권력과 명예를 함께 갖고 싶어하거든요.
또한 미실을 지금의 삶과 도덕의 잣대로 판단하면 안 돼요. 신라는 유교적인 도덕이 성립되기 이전의 시대였어요. 화랑도 사상에서 볼 수 있듯 아름다움과 풍류가 넘치는 삶을 살고자 했죠. 오히려 본능을 억누르는 게 죄악이었어요. 영웅이 많았고 남자들이 아름다웠죠. 간통과 같은 도덕적 금기는 물론 없었고요. 이와 같은 신라의 고유한 문화는 결국 삼국을 통일하는 원동력이 됐다고 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미모와 지략, 그리고 풍부한 여체 속 성적 매력은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능력이자 무기였어요. 그때는 열녀가 각광받던 시대가 아니었죠. 극히 자유롭게 생물학적인 본성에 따라 사랑하고 열심히 살았던 여인이 바로 미실입니다. 그는 소년을 남성으로 만드는 ‘스승’이기도 했어요.”
‘미실’을 읽다 보면 미실만 ‘문제 있는’ 여성이었던 건 아니다. 미실은 남편 세종의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안 돼 진흥왕의 부인이자 자신의 이모인 사도왕후의 부탁으로 동륜 태자와 관계를 가진다. 사도황후는 “네가 태자와 정을 나눠 아들을 갖게 되면 있는 힘을 다하여 후(后)로 삼으리라”고 약속한다. 시어머니와의 권력싸움에서 밀리자 조카인 미실의 색공을 앞세워 왕실을 장악하려 했던 것이다. 나중엔 아예 남편 진흥왕에게 미실의 색공을 바치게 할 뿐 아니라 둘째아들 진지왕에 이어 손자인 진평왕이 왕위에 오르자 13세의 어린 왕에게 색을 가르치도록 미실에게 명한다.
“마 교수님처럼 써야 하는데…”
그럼에도 미실의 남성편력은 놀라울 따름이다. 신라 최고의 ‘꽃미남’ 사다함과 풋풋한 첫사랑을 나누던 소녀는 간 데없고 본능에 충실한 삶을 좇는 여인네만 남는다. 갈수록 과감한 음행에 취하게 된 미실은 사다함의 아우인 설원랑, 자신의 동생 미생과 2대 1 섹스를 나누기도 하고, 말 못하는 꼽추의 ‘물건’을 덥석 물어 자위행위를 돕기도 한다. ‘여인과 살을 부대껴보지도 못했지만 그럼에도 꼿꼿이 발기하는 더러운 살덩이, 어여쁜 자지, 슬픈 물건’을.
-친동생과의 성관계나 꼽추와의 에피소드는 사서엔 나와 있지 않은 작가의 창작물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굳이 넣은 이유라면?
“사실 꼽추와의 정사 장면은 가장 심혈을 기울여 쓴 부분입니다. 본능의 끝, 타락의 끝까지 간 모습, 인간 남녀이기 전에 수컷과 암컷의 동물적 욕망만이 남은 극단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사실 부부라는 관계 자체가 본능에 역행하는 일이잖아요. 일부일처를 유지하는 건 조류와 인간밖에 없다고 해요. 조류조차도 둥지 속 알의 40%는 다른 수컷의 것이라고 하죠. 모든 인위적인 것들을 다 깨버리고 남은 후의 적나라한 원초성을 표현하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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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소설은 제목처럼 ‘야하지’ 않았다. 작가의 분신이기도 한 여주인공 ‘이분’은 이른바 ‘탈선 소녀’가 아니다. 처음 성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된 세 살 때부터 제 딸을 출산하는 스물다섯 살까지 그려진 이분의 삶은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특별한’ 것이었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성을 둘러싼 죄의식, 도덕, 인습, 환상과의 치열한 갈등은 한 여성의 삶에서 특별한 경험일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에서 살아온 여성이라면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쳐 소녀에서 여인이 됐을 것이다.
소설 속 다양한 에피소드도 꽤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가슴이 큰 친구에게 질투를 느끼고, 은행에 가면 꼭 여성지 흑백 페이지를 찾아 읽으며, 밤에 걸려오는 ‘음란 폰팅’ 전화에 소스라치게 놀라면서도 무언가 모를 흥분감에 휩싸인다. 그리고 처음 ‘포르노’를 접했을 때의 경악과 밤길 ‘바바리맨’의 추억, 확 깨져버린 남자에 대한 ‘환상’까지.
기자 또한 작가의 후기처럼 ‘성에 대해서 풍선처럼 터질 듯한 호기심을 가진 소녀’를 지나 ‘죄의식과 갈등에 들끓고 있는 미혼여성’이 되어 ‘탄로나버린 비밀에 대한 허탈감과 모성이라는 세습된 굴레에 사로잡힌 기혼여성’을 앞두고 있었던 것 같다.
1993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한 김별아는 1995년 ‘내 마음의 포르노그라피’를 낸 이래 소설집 ‘꿈의 부족’, 장편소설 ‘개인적 체험’ ‘축구전쟁’, 산문집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 ‘식구’와 다수의 동화책을 선보였다. 그는 체험에 바탕을 둔 자전적인 글쓰기에서 벗어나 외국의 문명사와 우리 역사로 시야를 돌리고 있었다. 그러던 올초 큰 ‘사고’를 치고 만다. 국내 최대 규모의 1억원 고료가 걸린 세계문학상(세계일보사 주관) 수상자로 선정된 것이다. 수상작은 역사소설 ‘미실’. 미실은 화랑(花郞) 등 신라시대 중심인물들의 사생활을 기록한 ‘화랑세기’에 자주 등장하는 요희(妖姬)로, 신라의 ‘팜 파탈’이라 할 수 있다.
여성의 성욕과 역사의 만남
3월5일 오후 2시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김별아와 인터뷰하기로 약속했다. 1시간쯤 전 카페에 도착해 ‘내 마음의 포르노그라피’와 ‘미실’을 다시 한번 훑어봤다. 두 소설은 닮은 듯하면서도 많이 다르다. 똑같이 여성과 성에 대해 다뤘지만 풀어내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 아마 20대 중반이던 작가가 열 살을 더 먹으면서 나타난 변화일 것이다. 잠시후 ‘내 마음의 포르노그라피’ 책표지와 같은 화사한 주홍빛 아이섀도를 한 김별아가 환하게 웃으며 카페로 들어섰다.
-‘미실’의 세계문학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그동안 복권 한 장 당첨되지 않았을 만큼 횡재수가 없었는데 놀랍고 기쁘죠. 하지만 부담스럽기도 해요. 지금까지 그랬듯 죽을 때까지 꾸준히 책을 내는 이름 없는 소설가로 있고 싶었는데, 갑자기 큰 격려를 받으니 당황스럽죠. 그런 격려와 기대에 부흥하지 못할까 두렵기도 하네요. 다른 데는 ‘자신감’ 덩어리인데, 문학과 관련해서는 ‘열등감’ 덩어리거든요(웃음).”
-신라 여인 미실에 대한 이야기를 쓰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등단 이후 계속해서 개인적인 체험에 바탕을 둔 글을 써온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한계를 느껴 몇 년 전부터 한국사를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이를 바탕으로 고대사에서 현대에 이르는 연작소설을 써야겠다고 결심했죠. 그러다가 ‘화랑세기’의 미실을 만나게 된 거예요. 제가 꾸준히 탐구해온 여성의 성적 욕망과도 관련이 있고요.”
소설 ‘미실’은 신라 성덕왕 때 김대문이 썼다는 ‘화랑세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화랑세기’는 화랑의 우두머리인 풍월주 32명의 전기를 싣고 있는데, 흥미롭게도 성과 권력에 대한 이야기가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근친혼, 통정, 사통은 물론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이 권력자에게 자신의 아내를 받치는 일종의 성 상납인 색공(色供) 등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표현되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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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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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세기’에 가장 빈번하게 나오는 요희가 바로 미실이다. 미실은 남편이 있는데도 진흥왕, 진지왕(진흥왕의 아들), 진평왕(진흥왕의 손자) 등 신라왕 3대를 성(性)으로 받들어 모신다. 반대로 수많은 미모의 화랑으로부터 성으로 받들어 모심을 받으며 이들과의 사통 관계에서 아이를 낳기도 한다. 그처럼 미실은 단 한번도 권력의 끈을 놓지 않은 채 옥새를 관장하고 화랑도의 원화(源花)가 되는 등 권세를 휘둘렀다. 이런 비도덕성과 음란성 때문에 ‘화랑세기’ 필사본이 위작이라는 논란이 오랫동안 끊이지 않았다.
-‘화랑세기’ 필사본의 위작 논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는 ‘화랑세기’가 사실일 거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체위를 형상화한 토우(土偶)들만 봐도 신라의 성문화가 어땠는지 알 수 있잖아요. 사실 도덕적으로 음란하다는 건 참 웃기는 말이에요. 그때를 산 사람은 현실에 아무도 없는데, 누구도 모르는 세계를 지금의 잣대로 본다는 것은 말이 안 되죠. ‘화랑세기’ 필사본이 위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건 지어낸 이야기다, 소설이다’하는데, 소설가가 듣기엔 참 기분 나쁜 말이에요. 그들이 말하는 ‘소설’은 현실에선 일어날 수 없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뜻하잖아요. 하지만 진정 소설은 그렇지 않아요. 현실의 반영이죠. ‘그래, 그대들이 소설 같다고 하면 내가 정말 소설을 써서 보여주마’고 생각했어요. 인간사를 소설만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건 없거든요.”
풍만한 여체 속 치명적 매력
-그래도 왜 하필 미실입니까.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과 차례로 관계를 맺고 수많은 남자를 애인으로 거느린 미실의 남자관계가 그리 자연스러워 보이진 않는데요.
“문학에 등장하는 여성은 대개 성녀 아니면 창녀였어요. 하지만 미실은 두 경우에 다 해당하는 여성이죠. 미실은 아이를 여덟 명이나 낳아요. 어머니로서의 본능에도 충실했죠. 어머니이면서 여자였고, 사랑에 모든 것을 불태우면서 권력의 화신이기도 했어요. 사실 모든 여자들은 항상 ‘어머니로 살 것이냐’ ‘여성으로 살 것이냐’의 기로에 놓이잖아요. 어머니가 여성으로 살면 돌을 맞고, 여성이 어머니로 살면 성적 매력이 거세되죠. 하지만 여자들은 여성이면서 어머니로, 사랑에 모든 걸 걸면서도 권력과 명예를 함께 갖고 싶어하거든요.
또한 미실을 지금의 삶과 도덕의 잣대로 판단하면 안 돼요. 신라는 유교적인 도덕이 성립되기 이전의 시대였어요. 화랑도 사상에서 볼 수 있듯 아름다움과 풍류가 넘치는 삶을 살고자 했죠. 오히려 본능을 억누르는 게 죄악이었어요. 영웅이 많았고 남자들이 아름다웠죠. 간통과 같은 도덕적 금기는 물론 없었고요. 이와 같은 신라의 고유한 문화는 결국 삼국을 통일하는 원동력이 됐다고 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미모와 지략, 그리고 풍부한 여체 속 성적 매력은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능력이자 무기였어요. 그때는 열녀가 각광받던 시대가 아니었죠. 극히 자유롭게 생물학적인 본성에 따라 사랑하고 열심히 살았던 여인이 바로 미실입니다. 그는 소년을 남성으로 만드는 ‘스승’이기도 했어요.”
‘미실’을 읽다 보면 미실만 ‘문제 있는’ 여성이었던 건 아니다. 미실은 남편 세종의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안 돼 진흥왕의 부인이자 자신의 이모인 사도왕후의 부탁으로 동륜 태자와 관계를 가진다. 사도황후는 “네가 태자와 정을 나눠 아들을 갖게 되면 있는 힘을 다하여 후(后)로 삼으리라”고 약속한다. 시어머니와의 권력싸움에서 밀리자 조카인 미실의 색공을 앞세워 왕실을 장악하려 했던 것이다. 나중엔 아예 남편 진흥왕에게 미실의 색공을 바치게 할 뿐 아니라 둘째아들 진지왕에 이어 손자인 진평왕이 왕위에 오르자 13세의 어린 왕에게 색을 가르치도록 미실에게 명한다.
“마 교수님처럼 써야 하는데…”
그럼에도 미실의 남성편력은 놀라울 따름이다. 신라 최고의 ‘꽃미남’ 사다함과 풋풋한 첫사랑을 나누던 소녀는 간 데없고 본능에 충실한 삶을 좇는 여인네만 남는다. 갈수록 과감한 음행에 취하게 된 미실은 사다함의 아우인 설원랑, 자신의 동생 미생과 2대 1 섹스를 나누기도 하고, 말 못하는 꼽추의 ‘물건’을 덥석 물어 자위행위를 돕기도 한다. ‘여인과 살을 부대껴보지도 못했지만 그럼에도 꼿꼿이 발기하는 더러운 살덩이, 어여쁜 자지, 슬픈 물건’을.
-친동생과의 성관계나 꼽추와의 에피소드는 사서엔 나와 있지 않은 작가의 창작물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굳이 넣은 이유라면?
“사실 꼽추와의 정사 장면은 가장 심혈을 기울여 쓴 부분입니다. 본능의 끝, 타락의 끝까지 간 모습, 인간 남녀이기 전에 수컷과 암컷의 동물적 욕망만이 남은 극단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사실 부부라는 관계 자체가 본능에 역행하는 일이잖아요. 일부일처를 유지하는 건 조류와 인간밖에 없다고 해요. 조류조차도 둥지 속 알의 40%는 다른 수컷의 것이라고 하죠. 모든 인위적인 것들을 다 깨버리고 남은 후의 적나라한 원초성을 표현하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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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별아는 “오늘날 우리 여성들도 솔직하고 자유롭고 얽매이지 않았던 ‘미실’의 본능을 끄집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늘날 한국 여성들도 인위적인 것들을 다 벗겨내면 미실과 다를 게 없겠군요.
“미실은 남성의 것을 빼앗아가는 팜 파탈이 아니라 여성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그냥 여자일 뿐이에요. 여자라면 누구나 가슴속에 미실을 가지고 있죠. 삶이란 먼지처럼 스러져가는 건데, 우리 여성들도 솔직하고 자유롭고 얽매이지 않았던 미실의 본능을 끄집어낼 수 있었으면 해요.”
-미실은 자신을 가장 사랑한 여자인 것 같아요. 심지어 첫사랑인 사다함마저도 진정한 의미에서는 사랑하지 않았던 것 같고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나요? 자신이 중심축에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제대로 사랑할 수 없어요. 세계문학상 심사위원 중 한 분이 ‘어떻게 모든 남자들이 미실한테 빠지느냐’고 묻더군요. 미실은 남자들 하나하나의 결핍된 부분을 알고 그것을 채워줬어요. 머리로 확실하게 계산했던 거죠. 하지만 사랑 하나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면 그렇게 판단할 수가 없어요. 실제로도 이기적인 여자들이 더 잘살잖아요.”
‘미실’에 나오는 인물 묘사는 무척 섬세하다. ‘화랑세기’엔 단지 ‘용모가 뛰어나다’고만 돼 있는 미실의 풍만한 육체가 눈앞에서 남성들을 유혹하며 살아 숨쉬는 것만 같다. 미실을 사랑하는 남성들의 외모 또한 아름답게 그려진다. 김별아는 “현실엔 아름다운 남성이 없기에, 머릿속으로 그려온 내 이상형들을 쏟아부었다”며 살짝 웃는다. 정사 묘사 또한 그러하다. 거의 동물적인 것에 가까운 원초적인 야함이 한 편의 시처럼 아주 고풍스럽게 그려진다.
-정사 장면이 상당 분량을 차지하는데, 생각보다 덜 야하더라고요. 강렬한 원색이 아닌, 예쁜 파스텔 색이랄까.
“더 야하게 쓰려고 했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웃음). 마광수 교수님처럼 써야 하는데. 사실 교수님은 이런 스타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어요. 아니, 상당히 싫어하셨죠. ‘핥고 빨고 정액을 묻혀야지, 그렇지 않으면 위선일 뿐’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당시엔 적나라하게 쓰는 것 자체가 작가를 짓누르는 억압을 해소하는 방법이었지만, 전 그런 억압을 받은 세대는 아니거든요. 전 제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야함을 그렸을 뿐이에요. 또 적나라하고 강렬한 야함은 소설이 아니어도 접할 수 있잖아요.”
김별아는 문단에서 ‘여자 마광수’라 불린다. 마 교수의 제자일 뿐 아니라 톡톡 튀는 표현이나 파격적인 묘사, 금기에 대한 도전 등이 마 교수의 그것과 꽤 닮았다. 마 교수가 1992년 음란물 제조혐의로 구속된 후 여러 차례 교도소로 격려 편지를 보내면서 그와 친분을 쌓았다는 김별아는, 그렇지만 자신은 “마광수의 ‘야한 여자’보단 영화 ‘스캔들’의 ‘숙부인’에 더 가깝다”며 손사래를 친다.
性의 이면, 족쇄와 부채
김별아는 1969년 강릉에서 부부 교사인 부모의 1남1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성장했고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사다준 세계명작전집을 읽기 시작한 이래 책벌레가 됐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친구도 많지 않았던 그는 덕분에 책에 더 몰두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문학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진로를 ‘소설가’로 정한 후 지도교사의 도움을 받아 숱하게 책을 읽고 습작을 했다. 학창시절 10년 연속 반장을 한 ‘범생이’였지만 학교 밖에선 17세 때부터 선후배 문학 지망생들과 술 마시고 담배 피우며 ‘꽤 놀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창작의 자양분을 키운다는 생각으로 고향에서 두 달간 버스안내양을 하는 등 특이한 경험도 많이 했다.
소설가의 꿈을 품고 1988년 연세대 국문과에 입학하지만 연일 최루탄 가스를 마시며 징글징글하게 ‘운동’만 했다고 한다. 여러 남자들과 연애도 숱하게 했다. 하지만 3개월 넘게 만난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조건은 안 보고 ‘얼굴’만 본 덕분에 다양한 사람들과 만났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광고회사에 카피라이터로 들어갔는데, 딱 하루 출근하고는 그만뒀다. 사무실에 사람들이 획일적으로 앉아 있는 광경이 너무 헛되고 답답해 보였기 때문이란다. 그후 따로 등단 절차를 밟지 않고 무작정 소설집 ‘신촌블루스’를 펴내기도 했지만, 등단을 권유하는 주변의 권고에 따라 1993년 ‘실천문학’에 중편 ‘닫힌 문 밖의 바람소리’를 발표하면서 정식으로 소설가의 길을 걷는다.
어린 시절부터 여성과 성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이는 여느 여자아이들처럼 관심과 죄의식의 팽팽한 갈등이기도 했다. 그는 “호기심과 욕망은 여태까지 내 성장을 이끈 친근한 벗이었고, 내 발목을 잡는 족쇄였고, 내가 마지막으로 해방될 부채”라고 고백했다. 이런 체험들은 장편소설 ‘내 마음의 포르노그라피’에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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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포르노그라피’의 여주인공은 너무나 모범적인 소녀였고, 작가 본인도 사회가 만들어놓은 성과 관련된 규범과 규격에서 확 벗어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성이 자유로워야 여성의 인권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몸에 솔직할 수 없다는 것 자체가 자유롭지 않다는 걸 뜻하죠. 저 역시 100% 솔직하다고 할 수는 없고요. 저는 열등감이 있는 부분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렇기에 성에 대해 많이 쓰는 것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임신과 출산을 겪으면서 1차적으로는 그런 족쇄와 부채에서 벗어났어요. 사실 아이를 밴다는 건 여자로선 바닥까지 가는 거예요. 그저 새끼를 밴 암컷으로서 여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채 가장 낮고 힘든 허드렛일을 하는 거죠. 하지만 그러고 나니까 모든 것이 더 자유롭고 당당해졌어요.”
1994년 스물여섯 살에 그는 ‘잘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남편과 결혼했고 2년 후 아들 혜준(9)을 낳았다. 남편은 좋은 사람이지만 자라온 환경이 너무 달라 자신과는 사소한 것부터 큰 문제까지 사사건건 부딪쳤다. 대판 부부싸움을 벌인 것도 부지기수. 지난해에는 이혼 서류까지 준비했다가 간신히 고비를 넘겼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 김별아는 부부와 가족의 개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별거나 이혼이 많아지면서 언론에서 ‘가족의 해체’란 말을 많이 하는데, 전 그게 해체가 아니라 새로운 가족형태가 나타나는 거라고 봐요. 이젠 무조건 이혼 방지책만 찾을 게 아니라 상처를 덜 받으며 이혼하는 법, 이혼 후 상처를 치유하는 법 등에 관심을 가져야 해요. 또한 애정이 아닌 우정으로만 살아가는 부부들도 하나의 가족 형태로 인정해야죠. 이젠 가족 공동체를 위해 한 개인이 희생하는 시대가 아니라고 봐요. 개인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가족 공동체를 구성해야죠.”
콘돔을 가르치는 엄마
‘여자 마광수’라 불리지만 그 역시 아이에게는 그저 평범한 엄마다. 아이가 없는 시간을 이용해 글을 쓰고, 웬만하면 밤을 새우지도 않는다. “다음날 살림에 막대한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과천에 사는 그는 동네 아줌마들과 편안하게 티타임을 가진 적도 없고, 서울 외출도 일주일에 한 번 할까 말까할 정도다.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책이며 자료를 보거나 글을 쓸 짬을 낼 수 없다. 인터뷰를 토요일로 잡은 것도 그가 “평일엔 아이 때문에 바쁘다”고 했기 때문이다.
-요즘 386 엄마들이 너무 똑똑해서 아이에게 오히려 안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어떤 엄마입니까.
“아이가 3학년이 되니까 슬슬 반항하기 시작해요. 요즘엔 성에 눈을 떠서 ‘콘돔’이니 ‘섹스’니 하는 얘기를 하죠. 전에 한번 콘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아이가 지하철에서 ‘저 사람들 다 콘돔 했어’라고 하더군요. 성과 관련된 여성지 기사를 읽다가 저한테 걸린 적도 많아요. 혼내지는 않고 그냥 ‘나중에 커서 읽어’라고 말해줬죠. ‘아이는 자유롭게 키우자’ 주의예요. 그래서 학원에 많이 안 보내려고 하는데, 사람 욕심이라는 게 이상해서 남보다 뒤처지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기도 해요. 현명한 엄마가 되는 건 참 힘든 일 같아요.”
그는 올해 말쯤 아이와 함께 캐나다로 떠나 2∼3년쯤 살다가 올 예정이다. 아이의 어학연수를 핑계삼은 일종의 도피다. 일중독에 빠진 사람처럼 살림하면서 부지런히 글을 써낸 자신에 대한 선물이기도 하다. 여기엔 세계문학상 1억원 고료가 유용하게 사용될 것 같다며 웃었다.
김별아는 역사공부를 하면서 시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시간은 흘러가버리는 것인가, 아니면 같은 공간에 남아 잔류하는 것인가.’
“지금 이 공간에 다양한 시간대의 사람들이 공존한다고 생각해요. 수많은 유령들과 부대끼며 사는 거죠. 간략하게 적힌 사서 내용을 보면서 바로 이 자리에 있는 그들의 숨막히게 치열한 일상을 상상해봐요. 권력다툼, 혁명, 전쟁, 사랑, 불륜, 치정 등을 겪으며 살아가는 우리와 닮은 그들의 진정한 삶. 그게 곧 소설인 거죠.”
신동아 2005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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