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07

Du Hyeogn Cha 남북관계, 그 근본적 고민들(4): 판이 바뀌고 있다고?



Du Hyeogn Cha

Du Hyeogn Cha
8 hrs ·

남북관계, 그 근본적 고민들(4): 판이 바뀌고 있다고?

금년 들어 남북한 관계와 관련된 토론회에 나가다 보면, 바뀌고 있는 ‘판’을 보아야 한다는 분들이 자주 등장한다. 종래의 남북 대치적인 관계에서 보면 현재의 판이 바뀌지 않는다고, 현재는 한국 정부뿐만 아니라 김정은과 트럼프 그리고 여타 주변국까지도 판을 바꾸려고 하고 있다고. 따라서 북한의 실제 변화 의도를 더 후하게 평가해주고 남북관계를 전망해야 한다는 것이 이분들의 지론이다.

어느 정도 공감한다, 특히 ‘판’이 바뀌는, 즉 패러다임의 변화(paradigm shift)의 시대에는 미시(micro)에 집착해서 거시(macro)를 놓치기 쉽다. 나 역시 이러한 면을 항상 생각하려 하는 편이다. “내가 틀릴 수 있다”를 항상 되뇌고 현상을 관찰할 필요가 있다. 탈냉전도 그렇게 도래했으며, 21세기의 세 가지 변화 정보화, 민주화, 세계화는 모두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들었다.


그런데, 한 번 골똘히 생각해 보자. ‘판’이 어떠한 시기에 바뀌었는지. ‘판’은 걸출한 선각자들이나 대가(大家)들의 결심에 의해 바뀌는 것이 아니다. 전반적인 여건 및 환경이 판의 변화를 촉진했다. 선각자들이나 대가는 이 판의 변화를 제대로 깨달은 사람들일 뿐이다, 유도한 사람이 아니고.

예를 들어볼까? 탈냉전 시대의 도래는 단순히 사회주의적 실험의 현실적 실패, 즉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이론에 대한 자본주의의 승리에서 온 것이 아니다. 냉전을 둘러싸고 있던 구조, 즉 서방과 공산권이 서로 딴 장막을 치고 사는 두 개의 생활권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여건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공산권 무역’을 통해 자신의 부(富)를 위성국이나 멤버들에게 무상 분배할 수 없었던 종주국의 한계와 일부 자본주의적 요소를 받아들이면서 소련에게 장악당하기 이전 동구권의 민주제도에 대한 향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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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도 ‘판’이 바뀌기 위해서는 전반적인 여건과 구조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적어도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1) 한반도 및 동아시아에서 잔존한 냉전구조가 더 이상 자신들의 생존과 번영을 지켜줄 수 없다는 자각이 대치하는 쌍방 즉 남북한 간에 제기된다
(2)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과 지역/국제질서 역시 한반도를 더 이상 냉전구조 하에서 활용하는 것, 더 쉽게 이야기하면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를 전략적 경쟁의 통로로 활용하려는 데 대한 동기가 약화된다
(3) 남북한 및 주변국의 국내질서 차원에서도 이를 촉진할 수 있는 변화가 일어나며 결과적으로 이는 (1)과 (2)의 과정을 강화시킨다
(4) 참여하는 다양한 행위자들이 기존의 수단, 즉 핵이나 군비경쟁 등의 무장이 더 이상 감내할 수 없다는 전제하에 새로운 대체재(평화레짐이나 구조)를 찾는 움직임이 활발해진다
(5) 새로운 관계를 촉진할 수 있는 국가 간 거래관계가 발생한다. 즉, 평화나 세력의 안정화 같은 불신이나 대치 이외에 더 매력 있는 가치들 찾는 정향들이 늘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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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국내정치적 변화와 김정은의 대오각성으로 (1)이 일부 촉진되었다고 하자. (3)의 경우 한국에서 일부 그 동인이 발생하지만 북한의 경우 아직 요원하다. (3)과 (4), (5)는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발생했다는 어떠한 징후도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판’의 변화는 한반도와 동아시아 질서를 모두 변화시켜나가겠다는 한반도와 동아시아 행위자(각 국가와 비국가행위자)의 광범위한 공감대를 필요로 한다. 일부 지도자들의 의식이 이를 일부 촉진할 수는 있겠지만, 전 과정에서 견인해 나갈 수는 없다. 즉, 여건과 의식이 동시에 변화되어야 한다.

특히, 가장 기존의 ‘판’에 충실해서, 냉전구조 속에서 때론 주변국과 절연(insulation)하면서 때론 그들의 경쟁 심리를 복합적으로 이용해 온 북한의 행태가 근본적으로 변화하여야 한다. 이게 김정은이 일부 유화 제스추어를 취한다고 해서 촉발된다고 한다면 그건 일종의 과장이요 희망적인 사고이다.

지도자들 선에서 한반도의 근본적 변화를 위한 의식을 보려면 김정은의 핵 집착과 한반도/동아시아 질서에 대한 새로운 통찰이 눈에 보여야 한다. 유감스럽게 이게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평창의 봄과 북ㆍ중 정상회담에서 나타난 김정은의 행태는 “북한에게 불리한 판의 일부 조정” 시도에 가깝다. 국내정치적으로 민주적 제도의 일부 도입이나 핵에 대한 전략적 가치의 再판단 등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제재 무용론자들이나 북한의 현 경제가 지속 가능하다는 이들에게 물어보자. 만약 국제제재의 틀 내에서도 평양이 자기 생존이나 번영이 가능하다면 그들은 완벽한 자급자족형(autarky) 체제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이 지속가능하다. 실제로 세계 경제사를 뒤흔들 이 모델이 정말 가능하다고 보는가?

바뀌는 ‘판’은 잘 보아야 한다, 맞다. 그런데 그 이상으로 엄밀히 관찰해야 할 것은 그 바뀌는 것이 ‘판’ 자체인가 그 ‘판’을 조절하기 위한 전술적 행태의 변화인가이다. “북한이 변하고 있다”는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가 핵심이다. 가시적 징후로 나타나지 않는 변화는 그렇기에 유동적이고 일시적일 뿐이다.
우리는 남북한 관계의 근본적 개선을 꾀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 수준에서는 ‘비핵화’라는 대성찬(大盛饌)의 본메뉴가 메뉴판에라도 등장해야 한다. 그렇기에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에서 “선대의 유훈”이나 “대북 적대시 정책의 포기”와 같은 과거의 양념을 치지 않은, 새로운 본메뉴를 내놓는지 아닌지를 지켜보아야 한다. 예술단이 교환되고 그래서 잠시 남북한이 감흥에 젖는 것 그 자체도 장기적으로는 의미가 있다. 그래도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할 대상은 “본 메뉴는 언제?”이다. 사이드 메뉴에 배불러하면 본 메뉴를 먹을 수 없다. 그리고 이 본 메뉴를 불러내야 하는 결심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사이드 메뉴 먹고 본 메뉴라고 주장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제는 기다려 볼 뿐이다, 정말 평양이 제대로 본 메뉴를 내놓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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