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17
대학가 호칭, 선배가 웬말? 학번 상관없이 'OO씨' | Daum 뉴스
대학가 호칭, 선배가 웬말? 학번 상관없이 'OO씨' | Daum 뉴스
대학가 호칭, 선배가 웬말? 학번 상관없이 'OO씨'방윤영 기자 입력 2018.12.10. 05:37 수정 2018.12.10. 07:29 댓글 192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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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나이 위계문화 깨지는 변화..굳이 서로 학번 안 궁금해하는 성향도 영향"
지난해 한 대학 캠퍼스에서 신입생들이 교정을 거닐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사진=뉴스1
서울 소재 A 대학에 재학 중인 이승진씨(가명·28)는 최근 교양과목 조별과제를 하던 중 황당한 경험을 했다. 같은 조원인 18학번 후배가 "승진씨"라고 부르면서다. 이씨는 학번으로만 6년 차이가 나는, 그것도 신입생인 후배에게 '~씨' 호칭을 듣고는 순간 당황했다.
이씨는 "세상이 바뀐 건지, 아니면 내가 '젊은 꼰대'인 건지 헷갈려 18학번 후배들에게 물어봤다"며 "후배들은 '이제 모두 같은 성인이어서 선배나 형·오빠' 같은 호칭은 지양하고 OO씨라고 부르는 분위기'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학교뿐 아니라 인근 대학들 대부분 비슷하다더라"고도 밝혔다.
대학가 호칭이 변하고 있다. 학번에 따라 선·후배로 부르던 호칭에서 수평적 개념인 'OO씨'로 바뀌는 경우가 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학가에 학번제는 엄격한 편이었다. 일부 대학에서는 학번을 무기로 폭력을 행사하는 악습이 남아 사회적 문제로까지 지적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학번이나 나이를 따지지 않는 수평적 문화가 퍼지고 있다. 전통적 위계질서에 거부감을 나타내는 동시에 굳이 서로의 서열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개인화된 의식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또 다른 서울 소재 B 대학에 재학 중인 김모씨(25·14학번)도 군대를 다녀온 뒤 지난해 1학기에 복학했다가 비슷한 경험을 했다. 김씨는 "올해에도 후배들과 섞여 조별 수업을 했는데 한 학기 내내 서로 'OO씨'라고 불렀다"며 "군대 갔다 휴학하고 온 3년 만에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김씨는 "후배에 대해 조심스러워지고 친해지고 싶어도 호칭 때문에 벽이 생긴 거 같아 어려운 느낌도 든다"며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라 긍정적"이라고 밝혔다.
대학가에 따르면 15학번만 되도 학번에 상관없이 서로 존대하는 분위기가 일반적이다. B 대학 재학생인 김모씨(25·15학번)는 "교양 수업에서는 나이 상관없이 무조건 서로 존댓말을 하고 전공 수업에서도 대부분 'OO씨'라고 부르는 분위기"라며 "최근 1~2년 사이에 이런 분위기가 점점 형성돼가는 것 같다"고 밝혔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다. 아직 학번에 따른 서열을 따지는 학과 등에서는 '씨'라는 호칭은 어색하다. 대놓고 기분 나빠하는 경우도 적잖다.
서울 소재 C 대학에 재학 중인 서모씨(26·13학번)는 "학과 사무실에서 20대 중반의 조교가 10학번 재학생에게 'OO씨 되시죠?'라고 말했다가 상대방이 화를 내며 욕을 한 적이 있었다"며 "후배가 선배에게 'OO씨'라고 말하면 '버릇없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위계 문화가 점점 깨지고 있다고 말한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개인의 사회적 지위를 평가할 때 한국에서는 유독 나이가 중요하게 치부돼왔다"며 "하지만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나이 위계 문화에 균열이 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OO씨' 호칭은 상대방을 낮춘다기보다 존중의 의미가 크다"며 "한국 사회에 '나이'에 따른 사회적 폐해도 많은 만큼 긍정적인 변화"라고 밝혔다.
사적인 영역을 중요시하는 요즘 세대들의 사고방식도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나이나 학번 등 뭔가 따지는 것 자체가 싫으니까 굳이 묻지 않고 서로 'OO씨'라고 존대하는 것 같다"며 "요즘 젊은 세대들은 사적인 부분을 공개하기 꺼려 하고 서로 궁금해하지도 않는 성향이 있는데 이 영역에 나이와 학번도 포함된 것 같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부모님의 직업·재산이나 결혼 여부 등을 묻는 게 당연 했지만 이제는 실례가 되는 분위기와 비슷한 변화라는 설명이다.
방윤영 기자 byy@mt.co.kr, 이해진 기자 hjl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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