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06

(2) 박가분 - <합리적 중도층에 대한 이상한 망상>

(2) 박가분 - <합리적 중도층에 대한 이상한 망상>



박가분
17 April ·
<합리적 중도층에 대한 이상한 망상>

1. 합리적 중도층이라는 유니콘

정의당 선거 관련해서 마지막 글. 열심히 한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소금 뿌리는 말을 하고 싶지 않지만, 선거 과정에서 제일 의아했던 것 몇가지만 짚고 싶다. 그중 하나가 심상정 대표의 발언에서 간혹 엿보였던 '합리적 중도층'이라는 워딩이었다.

심상정 대표는 이들 뿔 달린 유니콘들을 굉장히 의식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했는데, 그의 세계관 속에서 저 유니콘들의 역할은 대략 이런 것 같다.

조국사태를 거치며 확인된 이들 합리적 중도세력은 기존 거대여야에 대한 환멸을 느끼며 '다당제'에 대한 강렬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고, 권력구조 재편을 원하는 이들의 열망에 편승하면 정의당의 세력 확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인지 진중권 류의 반조국 투쟁노선에 뒤늦게 합류해 뜬금 없이 조국 장관임명에 대해 (누구에게 하는지도 모를) 사과를 하거나, 위성정당 문제에서도 여야 전부를 강하게 싸잡아 비판하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몇몇 여론조사기관은 이런 중도성향 유권자들의 존재를 부각시키며 이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한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스스로 중도라고 응답한다고 해서, 혹은 몇몇 정책이슈에서 신중한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진보적인 사회경제적 개혁을 등한시하는 양비론자들인 건 아니다.

자칭 타칭 중도라고 해서, 조국을 싫어한다고 해서, 전부 다 (이상하게 언론인들이 유독 좋아하는) 금태섭 류의 정치적으로 기회주의적인 처신까지 좋아했던 것도 아니다. 더 나아가 이번 선거결과에서 드러나듯이 자칭 타칭 중도층 유권자들도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집권여당에 힘을 실어주는 모습을 보였다.

중도층 유권자들이 원하는 건 '일하는 국회'였지 그저 다수 정당과 말 많은 호사가들이 중구난방으로 난립하는 국회를 원한 것이 아니다. 중도층 유권자들을 오해해도 너무 오해했다. 정의당과 심상정 대표는 중도층 유권자들에 대한 얼치기 논객들의 설익은 해석에 경도되어 판단을 그르쳤다. 일단 이 결과를 보고도 반성이 없는 무능한 책사(?)들과 손절하는 게 우선이다.

2. 선거제 이슈는 정의당이 차별화할 이슈가 아니었음

일부 언론과 식자층들의 주장을 보면 마치 다당제나 정치적 다양성 그 자체를 선으로 보는 같은 경향성이 있다. 그리고 이는 소수정당에 대한 불필요한 동정표나 심지어 이들의 잘못에 대한 무조건적 엄호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이런 이데올로기적 허위의식의 우산 아래 안주했던 것이야말로 소수정당이 대중적으로 성장하는데 결과적으로 방해가 됐다. 이들의 시각을 정의당이 과도하게 의식한 나머지 유권자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권력구조 재편과 선거제 문제에 매몰되고 말았다.

한편 정치적 다양성도 그것이 '내 삶을 바꾸는 정치'로 구현될 때 의미가 있지, 그렇지 않다면 정치적 다양성에 대한 강조는 형식주의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나 심상정의 기묘한 다당제 애착은 지난 대선 때의 '굳세어라 유승민' 발언에서도 확인된다. 사회경제적으로 철저히 보수주의자인 유승민의 정치적 파이가 커지는 것이 마치 한국사회의 진보로 직결되는 듯이 말이다.

진보면 진보답게 사회경제적 개혁이슈를 선도하고 그에 입각해서 정치제도와 권력구조 재편의 당위를 도출해야 하는데, 심상정 대표와 정의당이 기껏해야 '전투적 리버럴'의 포지션에서 선거제와 다당제 이슈에서 선명성을 드러내려 했던 것은 상당히 의외였다. 그 결과 전국민 재난소득 이슈도 선점당하는 등 코로나 민생문제에서 민주당에게 의제를 뺐기고 말았다. 이건 내가 아는 원래의 진보정당이 아니다.

3. 정치적 책임의 실종

정의당이 선거제 문제를 이야기할 때 마치 지금의 선거제를 사수하는 것이 '유권자들의 소신 있는 정치적 선택을 독려하기 위한 도덕적으로 올바른 노선'인 것처럼 이야기했다.

하지만 얼마전 '나아가는자'님이 뼈아프게 지적한 것처럼 지금의 준연동형 비례도 사실 민주당 지지자들의 사표방지 심리를 노렸다는 점에서(현제도에서 다수 지역구의석을 배출한 정당에 대한 비례표는 사표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 진정한 정치적 소신에 대한 옹호보다는 (의석수 극대화를 노린) 정의당과 (공수처 법안 통과를 바란) 민주당의 이해득실이 작용한 결과였다. 제대로 된 연동형 비례제도 아니었다.

따라서 원칙과 타협한 반쪽짜리 비례제를 두고서 누가 더 도덕적으로 우월했다고 따지는 건 염치 없는 행동이다.

그리고 선거제 개혁에 대한 정의당의 의도가 정말 그렇게 고상했는지는 둘째 치더라도, 보수야당의 선거제 악용 가능성에 대해 아무런 대안도 이야기하지 못한 건 정말 무책임했다. 악용될 가능성이 있는 제도는 그 자체로 잘못된 제도이다.

미통당이 위성정당을 만들겠다고 공언했을 때 이를 제도적으로 보완할 방안을 재빨리 이야기했어야 하는데, 선거제 개정을 위한 정치적 연대의 가능성을 선험적으로 배제하면서 위성정당에 대한 심판을 호소하는 건 아무리 좋게 봐도 안철수식 유체이탈 화법이었다. 그건 과거 심대표가 유독 강조했던 '책임정치'로부터 일탈하는 처신이기도 하다.

대다수 국민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반쪽짜리 선거제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지지도 않으면서(다수 국민은 준연동형 비례제를 보완하거나 폐지해야 한다고 응답함), 정작 민생문제에서도 민주당과 차별화되지도 못했다. 그런 무원칙과 혼란이 한편으로 민주당을 때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문재인 정부에 힘을 싣기 위해 우리를 지지해야 한다고 호소하는, 종잡을 수 없는 화전양면 전술로 귀결됐다.

4. 정체성 정치로 빨려들어간 노동과 민생

정의당이 독자노선으로 가야 하냐 아니냐는 지금까지의 행보를 볼 때 지극히 관념적이고 부차적인 이슈이다. 만일 정의당이 무소의 뿔처럼 독자노선으로 갔다 하더라도 선거제에 대해 이토록 어처구니 없는 몽니를 부려서도 안됐고, 그럴거면 민생문제에서 명확히 차별화를 했어야 했다. 이도 저도 아니면서 독자노선이냐 연대노선이냐를 논하는 건 내용 없는 주제로 입씨름하는 것에 불과하다.

저 내용도 없는 진보정치의 독자노선을 가지고 부심을 부리는 것 이면에는 시민들의 삶을 바꾸는 정치보다는 자신들의 '가오' 잡기가 더 중요한 저 활동가들의 관성이 자리 잡고 있다. 어쩌면 이 문제에서 활동가들의 관성적 문화에 둘러싸인 심대표만 비판하는 것은 불공정할지도 모른다.

나는 이번 선거국면에서 한 지역활동가로부터 '당비 몇푼 내는 게 무슨 대단한 유세라고 당게를 저토록 시끄럽게 하냐'는 말을 들었다. 얼마나 소통이 안되면 저렇게 문제가 발생하느냐에 대한 반성은 없는 채 세상은 오로지 나의 열심만을 알아줘야 한다는 유아적인 태도가 진보정당을 망친 거다. 당원들을 활동가들 가오 잡는 것이나 구경하려고 유료결제 한 호구쯤으로 취급하는 오만한 생각이기도 하다.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서도 심대표는 다시 지역주의로 회귀했다며 유권자들을 바보 취급하는 진단을 내놨고(완전히 틀린 분석이고 미통당이 지역정당화 된 거다), 소수정당으로 안주한 결과를 두고서도 우리는 앞으로도 소수자를 대변하겠다는 발언만 되풀이했다. 소수자와 약자를 대변하는 건 물론 좋지만 문제는 다수의 지지 없이 이들을 지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정의당이 녹색당과 노동당과 차별화됐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소수자를 위한 도덕적 선명성에서 저들과 차별화된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특히 내용 없는 다당제와 선거제 이슈, 내용 없는 소수자 정치와 정체성 정치를 관성적으로 강조하던 이번 행보에서 도대체 정의당은 누구를 대변하는지도 의아했다. 정작 IT 노동자들에게 지지받지 못하는 비례1번을 결사옹위하면서 정의당이 확실히 드러낸 색깔이 있다. 그것은 다수의 노동자와 서민을 적극적으로 대변하기보다는 이들이 얌전히 자신들만의 알 수 없는 정체성 정치의 들러리를 서주길 기대하는 게으른 인식이었다.

이런 이상한 행보를 지지하는 건 앞서 말했듯이 내용 없는 형식적 다양성을 지지하는 소수의 고학력 유권자들 밖에 없다. 이에 반해 다수의 진보적 유권자들이 원하는 건 지금 당장의 추경예산을 위해 싸우는 오카시오 코르테스 같은 유능한 투사이지, 위악적으로 메갈리아를 자처하다가 논란을 자초하거나, 허위 해고 노동자 이력 논란에 속시원한 해명 하나 못하는 무능한 아마추어들이 아니다.

그런 아마추어리즘 집단을 보고 '이래야 선명한(?) 소수정당답지'라고 흐뭇해하는 건 진중권 류의 인텔리밖에 없다. 게다가 이들은 애초에 급진적인 사회경제적 개혁을 지지하는 집단도 아니다.
171Greg Kim, Okjin Park and 169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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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열
박준열 자신들의 목표가 마치 진짜 다수를 위하는 절대적 정의이며 신성시되는 것마냥 망상을 가진 진보조무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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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욱
최재욱 그래서 당비를 대체 얼마나 내야 당게를 시끄럽게 할 자격을 얻을 수 있다던가요? 물론 그것도 애정이 있어야 하는 일이라 이제는 돈 주고 쓰라고 해도 안 쓸 거지만 궁금해서 댓글 남기고 갑니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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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가분
박가분 최재욱 프리미엄 회원제를 운영해서 당게를 시끄럽게 할 자격을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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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욱
최재욱 박가분 금권정치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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