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브라함의 집에서 온 편지 - 당당뉴스
일본, 아브라함의 집에서 온 편지농촌선교훈련원 서형준목사, 2년동안 일본 공동체 연수과정을 떠났었다
당당뉴스 | leewaon3@chol.com
입력 : 2006년 09월 25일 (월) 00:00:00 [조회수 : 2579]
농촌훈련원 사무국장으로 일하던 서형준 목사가 지난 6월15일 일본 '아브라함의 집'으로 2년간 일본 공동체 연수과정을 위해 떠났었다. 서형준목사가 며칠전 농목 동역자들에게 보내온 편지와 사진을 전재한다.
2년간의 서형준 목사 일본 생활비를 농목회원들이 십시일반하여 모금하기로 하였단다. 이미 1차 160만원을 송금했단다. 혹 여러분도 서형준목사 생활비 돕기에 참여하기를 원한다면 아래 계좌로 입금하면 된다. 후원금은 2년치를 한꺼번에 보내도 되고 약정한 금액만큼 약정하신 금액 만큼을 자동이체 신청해도 된다.
계좌번호 : 농협 예금주 홍승표, 415015-51-021073
[서형준 목사 일본 생활비 후원 현황 ]
3.30. 박유일 2만원 / 4.3. 백성현 24만원 / 4.14. 윤여군 10만원 / 4.25. 이기선 6만원 / 5. 1. 김종훈 5만원 / 5.12. 박유일 2만원 / 5.30. 김종훈 5만원 / 6. 19 김선인 20만원 / 6.20. 박유일 6만원 / 6.30. 김종훈 5만원 / 7. 13. 박순웅 10만 / 7. 13. 김부린 10만 / 7. 13. 홍순일 12만 / 7. 13. 김명준 12만 / 7. 15. 김재철 5만 / 7. 18. 정원기 5만 / 7. 20. 이 헌 12만 / 7. 20. 지동흠 6만 / 7. 20. 편무창 6만
<아브람의 쉼터에서>
모두들 더운 여름 어떻게 잘 보내셨는지요? 이곳 아브람의 쉼터(あぶらむの宿 )는 8월말로 접어들면서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게 가을이 다른 곳보다 일찍 찾아오려나 봅니다.
이곳에 온 지도 벌써 두 달이 훌쩍 넘었습니다. 바다를 한번 건너오기는 꽤나 어렵더니, 시간이란 녀석은 언제 그랬냐는 듯 이곳에서의 시간은 빠르게만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곳 아브람의 쉼터는 연중 제일 바쁜 때가 7월과 8월입니다. 여기 저기서 휴가를 보내러 오는 손님들을 비롯하여 여름 캠프를 다녀가는 초, 중, 고생들로 빠꼼한 날이 거의 없다시피 했습니다.
오고 히로시(大鄕博) 선생님이 아브람의 쉼터를 설립한 목적 가운데 하나는 이론과 실천을 일치시키는 살아있는 현장 교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어린이 자연학교를 비롯해 이곳을 찾아오는 학교나 교회의 수련회와 여러 단체들의 연수회를 통해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숨쉬며, 몸으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여러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등산, 야간트레킹, 목공품만들기, 천연염색, 농사체험, 장작만들기, 숯굽기, 물놀이, 요리 등이 주요 프로그램으로 농촌선교훈련원이나 대안교욱에 관심있는 분들이 실행하고 있는 계절학교와 대동소이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프로그램 중에서 저나 참가한 학생들 모두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야간 트레킹이었습니다. 26.4km의 거리를 산길을 밤새 랜턴없이 달빛에만 의지해서 걷는 기분은 항상 대낮같이 환한 전기불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는 색다른 체험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수미터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자신의 감각을 동원하고 옆에 있는 동료를 의지해서 걷다보면 흥얼흥얼 노랫가락이 절로 나옵니다. 도시에서 잘 볼 수 없는 수많은 별들을 고요한 숲 속에 드러누워 한동안 바라보다 보면 동화 속의 어린왕자가 된 듯한 기분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물론 때때로 짖궂은 친구들이 장난을 쳐서 풀숲에서 무슨 소리라도 날라치면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지만 혼자가 아니라 든든한 친구들이 곁에 있으니 무서움은 잠깐...! 8시간의 트레킹을 무사히 마친 아이들에게 오고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두운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땐 두렵고 힘들 수밖에 없지만 좋은 길동무들과 함께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것을 느꼈듯이, 우리네 인생길에서도 모두들 힘들고 지친 이들에게 어깨를 빌려 줄 수 있는 좋은 길동무들이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선생님의 인생 철학이 담겨 있는 말씀이셨죠. 일가친척 아비집을 떠나 아무 의지할 이 없는 미지의 길을 오직 하느님의 말씀만 믿고 떠나 결국 열국의 믿음의 아비가 된 아브라함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길을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걸어갈 수 있는 힘을 기르고 또한 지쳐 쓰러진 이들에겐 어깨를 빌려줄 수 있는 좋은 길벗들의 모임이 바로 아브람회의 설립 정신이기도 합니다.
사실 오고 선생님의 인생 여정에 제일 큰 영향을 준 것은 오키나와(沖繩) 아이라쿠엔(愛樂園)의 한센병자들과의 만남입니다. 대학 시절 인생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던 선생님에게 이분들의 삶의 모습은 크나큰 충격이었습니다. 사지육신이 멀쩡한 사람들도 살면서 겪게되는 조그만 역경에도 힘겨워하고 삶을 포기하기는 경우도 종종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인간다운 대우는 커녕 모두들 기피하는 이 한센병자들이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넘어지면 다시 일어선다`는 굳건한 신앙심으로 자신들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받아들이고 밝게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선생님은 자신도 그들과 같은 삶을 살아보겠노라 결심하고 오늘에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내친 김에 이곳 아브람의 쉼터와 식구들에 대한 얘기를 좀더 하겠습니다. 먼저 아브람의 쉼터가 자리한 히다 타카야마(飛?高山) 지역은 역사와 자연이 잘 어우러져있는 곳입니다. 몇 대째 대를 이어 내려오는 가게들을 운영하며 옛날 거리의 모습이 잘 보존돠어 있는 상점거리와 민속촌이 있으며, 노리쿠라(乘鞍岳)를 중심으로 3천미터의 연봉들이 저 멀리 눈앞에 늘어서 있는 일본의 북알프스라고 불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명도 우리말로 높은 산을 뜻하는 타카야마입니다. 쉼터의 바로 뒷산인 우츠에 시쥬 핫타키(宇津江四十八?)는 아기자기한 폭포들이 모여 시원한 계곡을 이룬 곳으로 일본의 자연100선 중 하나로 뽑히기도 한 현립자연공원입니다. 또한 쉼터의 건물들은 이 지역의 200-300백년 정도 오래된 옛날 집들을 해체 이전해서 지은 고풍스러운 공간입니다. 그래서 쉼터를 찾아오는 이들은 아름다운 주위 경관과 아늑함을 느끼게 하는 집에 매료되어 먼저 고단한 몸과 마음을 풀어 놓습니다
이곳의 선장인 오고 선생님은 8년간 몸담았던 릿쿄(立敎)대 교목직을 그만둔 후, 1987년 아브람회를 설립하고 4년여의 준비과정동안 인간의 생각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하느님의 여러 도우심을 경험하며 1990년 아브람의 쉼터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하느님이 원하시는 인생 여정의 좋은 나그네가 되기 위한 몸와 영혼의 힘을 기르는 실천교육의 장인 동시에, 여로에서 지친 이들에게는 위로와 재충전의 기회와 좋은 길벗들과의 만남의 장을 제공하는 쉼터입니다.
아브람회의 후원회원은 약 1,000여 명 정도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처음 오고 선생님이 이곳을 설립하기 위해 생각해낸 모금방법인 `생전 장례`입니다. 선생님 자신의 생전에 미리 부의금을 받아 그 돈으로 쉼터를 마련하고자 했던 것이지요. 이런 선생님의 생각에 공감한 많은 이들이 장례 부의금 대신 후원회를 조직하게 되면서 아브람회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안락만을 추구하는 나약한 현대인들에게 '신앙은 모험'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계신 것이지요.
그리고 이런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만남의 장은 일본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제 프로그램으로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매년 3월에는 네팔 트레킹을 통해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산을 바라보며 일본인들이 네팔의 문화와 대자연을 체험하는 자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지난 한 달동안은 네팔 현지 가이드를 수년간 해주고 있는 `홈(hom)`이라는 친구가 이곳에서 함께 생활하며 스텝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매년 4월에는 `사쿠라미찌 네츄럴 런(さくら道 natural run)`이라는 국제 울트라 마라톤 대회(36시간내에 250km를 완주)를 여러 단체들과 함께 공동으로 주관하여 흐드러진 벚꽃길을 달리며 자신과의 싸움에 도전하는 세계인들의 만남을 주선하기도 합니다. 한국인 참가자들도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릿교대 교목 시절부터 학생들의 현장교육의 일환으로 진행했던 `필리핀 농촌봉사활동`을 이제는 필리핀 산간마을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계속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처럼 한국인들과의 교류도 활발합니다. 한국 성공회 관계자들도 많이 다녀가시는 모양이고, 우리 감리교농촌선교훈련원에서도 2년에 한! 번씩 정주목회훈련으로 이곳을 찾기 시작한지도 벌써 7년이 되었습니다.
오고 선생님은 환갑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 못지 않게 정력적으로 이 모든 활동을 주도하고 계십니다. 교목직을 사임한 후 아브람의 쉼터를 준비하는 동안 경제적 자립의 방편으로 직업훈련소에서 목공을 1년동안 배우셨는데 목공품과 성구제작 및 판매 등을 통해 이곳 재정의 일부를 충당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대목(건축)일과 포크레인 운전도 손수 하시는데, 이런 일들은 쉼터를 짓는 과정에서 목수들의 일을 도우면서 배운 것을 토대로 이런 저런 일들을 직접 해보면서 터득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가끔 같이 일하는 스텝들에게 "무슨 일을 하든지 다른 사람을 무조건 따라할 것이 아니라, 이 일은 어떻게 하면 되겠는지 스스로 일머리를 생각하면서 일을 하면 일의 체득도 쉽고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고 일러 주시곤 하십니다. 이곳에서 남자 스텝들이 주로 하는 목공이나 건축 및 건물 보수 등은 재미있기도 하지만 힘들고 위험한 일이라 선생님은 일할 때는 매우 엄하신 편입니다. 물론 평소에는 유머도 많고 개구장이처럼 장난도 곧잘 하십니다.
선생님의 또 한가지 특기는 트럼펫 연주이십니다. 휘영청 달밤에 듣는 트럼펫 소리는 참으?! ? 근사합니다. 어느 날은 "서목사도 악기 하나는 다룰 수 있어야지" 하는 말씀에 저는 그동안 악기 하나도 익혀두지 않고 뭐했나 싶어 한심한 생각도 들더군요. 때때로 힘든 인생길, 음악은 우리에게 좋은 위안과 힘이 되어 주기도 할텐데 말이죠.
이쿠(大鄕博) 사모님은 이 큰 살림을 도맡아서 척척 해내는 걸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16년 동안 쉬지 않고 일하시느라 무리가 되었는지 지금은 퇴행성 관절염과 고관절 질환으로 몸이 불편한 날도 많습니다. 그래서 가끔씩 제가 수지침을 놓아드리다보면 조금은 안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늘 밝고 활기찬 분입니다. 그리고 근처 타카야마 시내에 살면서 매일 출퇴근을 하는 나루미(門谷成美) 아주머니는 4년째 이곳 스텝으로 일하면서 이쿠 사모님의 오른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큰 소리로 웃으면서 사람들의 말을 잘 듣고 응대해주는 기분좋은 분입니다. 여기 일을 하기 전에는 보육원 교사였기 때문인지 규민이와 가장 잘 놀아주기도 합니다. 이곳의 남자 스텝인 시즈야(靜谷英一)는 우리 부부와 동갑내기로 과묵하고 성실하게 오고 선생님의 조수 역할을 톡톡히 하는 듬직한 친구입니다. 너무 과묵해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때때로 모두의 궁금증의 자아내기도 합니다. 어릴 때는 싱가폴에서 자라다가 고등학교는 캐나다에서 나오고, 대학은 교토에서 건축학을 공부한 후 목공일을 배웠다고 합니다. 작년 봄부터 ?! 隔殆【? 생활하기 시작했는데 앞으로 자신의 목공소를 갖는 것이 꿈이라고 합니다. 또 한 명의 여자 스텝인 도모코(小川智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철학을 공부한 재원입니다. 올해 초부터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내년 여름에는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원에서 유기농업과 관련된 사회학을 전공하고 싶어 합니다.
이곳 쉼터의 중요한 활동 가운데 하나 빠진 것이 있군요. 오고 선생님의 실천 교육에 대한 생각과 활동이 알려지면서 이곳은 몇 해 전부터 고베(神戶) 법원으로부터 청소년보호지도위탁시설로 지정받았습니다. 그래서 매년 보호관찰 대상으로 판결받은 청소년들이 이곳에서 6개월간 생활하며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기회를 얻고 있습니다. 지금은 올해 4월부터 이곳에 와 있는 열여덟살 신이찌(森之上眞一)라는 친구도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신이찌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사랑과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시설에서 어렵게 자란 불우한 친구입니다. 비록 어른들로부터 제대로 된 지도와 사랑을 받지 못해 탈선을 하긴 했지만 심성은 여리고 귀여운 아이입니다. 같은 또래들에 비해 아직 학력이 떨어지고 적극성과 자신감이 부족해서 안타깝습니다. 이제 10월이면 고베로 돌아가 혼자 힘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모두들 걱정스러워 하지만, 하느님께서 그 길을 잘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신이찌를 보면서 다시 한번 우리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의 중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사실 이곳에 연수를 오기 전에 제일 걱정했던 것은 저희 가족 모두 일본말이 서툴다는 것이었지요. 그래도 저는 작년 두어달 이곳에서 적응훈련을 먼저 한 터라 크게 염려가 되지는 않았지만 아내나 6살박이 아들 녀석은 어떻게 하나 내심 많이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역시 어른들과 아이들의 적응 속도는 놀랄 만큼 차이가 나더군요. 한 일주일 정도 여기 식구들과 낯을 익히더니 그 후로는 모두에게 항상 웃음을 선사하는 이곳의 재롱둥이가 되었습니다. 특별히 누가 잘 가르쳐주지 않는데도 이제는 짧은 문장 정도는 곧잘합니다. 이곳 식사시간의 기도 담당이기도 하지요. 9월부터는 보육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선생님의 이야기도 곧잘 전달하는 것이며, 친구들에게 이곳 사투리를 배워 떠드는 모양으로 보아 아마 앞으로는 저보다 훨씬 말을 잘하게 될 것 같습니다.
역시 아이들은 하느님이 보내주신 천사인 모양입니다. 예수께서 어린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는데 아들 녀석을 보면서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닫습니다. 규민이는 조금 기분 상한 일이 있더라도 5분이상 가지 않습니다. 조금 투정을 부리다가도 금새 언제 그랬냐?! ? 듯이 새로운 놀이에 빠져듭니다. 결코 어제 일로 계속 맘 상해있거나 내일 일로 미리 걱정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늘 현재만을 즐기는 것 같습니다. 영원한 현재를 누리는 행복, 그것이 바로 하느님과 함께하는 천국이 아니겠습니까? 참 부러운 일입니다.
이곳 생활도 세 달째 접어들고 있지만 타향살이가 그리 녹녹치만은 않습니다. 아직 말도 서툴고 약간의 문화 차이도 있어서 때로는 소외감을 느끼기도 하고, 담고 있는 마음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해 답답함을 느끼기도 하니까요. 더구나 저는 지난 7월 19일에 장작을 자르다가 기계톱에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을 다쳐 거의 일도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사실 처음 사고를 당했을 때는 두렵기도 하고 하느님이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어렵게 일본까지 연수를 왔는데, 뜻밖의 사고로 많은 사람들에게 심려를 끼칠뿐더러 밥만 축내게 되었으니 말이죠.
그러나 낙심하고 있는 저에게 하느님은 이런 말씀으로 깨우침을 주시더군요.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좋은 것을 받았는데 나쁜 것이라고 하여 어찌 거절할 수 있단 말이오."(욥기 2:10) 저의 신앙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성숙하기까지는 아직도 많이 멀었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조금 시간은 걸리겠지만 이 정도 일로 주춤거리고만 있을 수는 없겠지요. 저에게도 어려운 중에서도 정성어린 기도와 후원을 보내주시는 좋은 길벗들이 있으니 그 응원에 힘입어 더욱 분투해야 되겠지요. 저와 ! 저희 가족이 이 연수 생활을 통해 즐거울 때뿐만 아니라 시련 중에서도 감사하며 하느님의 선한 뜻을 깨닫고 이루어 갈 수 있도록 모두의 지속적인 기도 부탁드립니다.
이곳은 벌써 날씨가 쌀쌀해져서 오늘은 여름 옷가지들을 정리하고 가을옷을 꺼내 입었습니다. 모두들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하시기를 빕니다.(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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