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03

Eunhee Kim - 양반은 누구인가? (2) 조선 후기에 양반은 격증했는가?

(6) Eunhee Kim - 양반은 누구인가? (2) 조선 후기에 양반은 격증했는가? 


Eunhee Kim
18 December 2018 ·
양반은 누구인가? (2)

조선 후기에 양반은 격증했는가?

"조선 후기에 들어와 양반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상민과 노비는 감소하였다. 농업생산력이 증대하고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하면서 부유한 농민과 상인 등 새로운 계층이 증가하였다. 이들은 축적한 재산을 이용하여 양반행세를 하였으며 공명첩 구입, 납속, 족보매매 등의 방법을 통해 양반으로 신분을 상승시켰다.
(중략)
조선 후기에 사회적 지위를 결정짓는 요소로 경제력의 비중이 커지게 되자 신분제는 크게 흔들리게 되었다. 부모가 양반이어도 가난하면 상민처럼 일하면서 살아야 하였으며 반대로 상민이라도 부를 축적하였으면 양반행세를 할 수 있었다. "


위의 글은 2017년 출판사 천재교육에서 나온 검인정 교과서 "고등학교 한국사"에서 인용하였다. 비슷한 내용의 글은 대부분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조선 후기에 양반의 수가 격증했다는 주장을 제기한 최초의 학자는 시가타 히로시이다. 그는 1938년 논문에서 1690년도부터 1858년도까지의 대구호적대장에 호주의 직역에 '유학'이라고 기재한 가구를 양반호로 분류하여 거의 170여 년 사이에 양반호가 전체 가구의 9%에서 70% 이상으로 증가했다고 보고하고 이는 양반제가 붕괴했음을 나타낸다고 설득력있게 주장하였다. 대구 호적자료에 대한 시가타의 분석은 해방 후의 국사학자들의 호적 연구를 통해서 폭넓게 수용되었다. 나아가 농업경제사 연구자들은 대구 호적에서 양반호가 격증한 것은 조선 후기 농민층의 분화가 일어나 많은 양반들이 경제적으로 몰락하여 양반신분을 유지할 수 없었고 대신 부를 축적한 농민들이 양반신분으로 상승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서 대중적 역사 담론에서 조선 후기 양반 수의 엄청난 증가는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처럼 굳어졌다.

사학자 송준호는 이미 몇 십 년 전에 대구호적을 근거로 한 조선 후기 양반제 붕괴론을 명징하게 반박하였다. 조선 후기에 "모칭유학"이라고 하여 호적에 유학이라고 칭하는 것이 행정상 가능했으며 웬만한 사람은 다 유학으로 직역에 기재되었지만 이것이 그 사람이 양반임을 뜻하지는 않았다. '유학' 중에 실제 지역사회에서 양반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유학이 준양반이나 하층 양반도 아니었다. 명문세족에 속해도 과거출신자나 전현직 관리가 아닌 사람들, 그리고 어떤 품계를 갖지 않은 사람들은 호적이나 향안에 '유학'이라고 쓰는 것이 관례였다.

또한 부를 축적한 농민이나 상민이 돈을 주고(납속) 양반신분을 살 수 있었다는 것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 정부는 전란시에 군량미를 마련하거나 혹은 기근이 들었을 때 구휼활동을 수행하기 위하여 혹은 기타 이유로 정부의 재정난이 심각할 때 곡식을 바치는 부유한 백성들에게는 공명첩(명예관직을 수여하는 임명장)을 발행하였다. 그러나 납속을 통해서 가선대부니 통정대부와 같은 품계를 받은 '납속품관' 중에는 평민 축에도 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부유한 사람이 족보를 위조하여 양반이 되는 것도 당시의 사회구조에서는 불가능했다고 송준호는 지적한다. 공동체적 농민 사회에서는 여러세대에 걸쳐 한 곳에 살아가기 때문에 서로의 집안내력을 훤히 알게 된다. 또한 인간관계가 지연, 혈연 및 (결혼으로 맺어지는) 척연으로 겹겹이 얽혀져 있어 족보 위조가 설 자리가 없었다. 다시 말하면 위조해봤자 알만한 사람은 다 알기 때문에 신분 상승의 효과가 없었다.

그렇다면 누가 양반이고 누가 양반이 아닌가?

(계속)
202박정미, Sungsoo Kim and 200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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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환
김용환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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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 Sen
Seo Sen 유학은 그냥 향교에 적을두면 되는것이고 향교는 천민제외누구나 가능이고 유학은 군면제가 가능해서 유학 조선은 평생교육 사회로 진사 생원시에 합격한 사람이상을 양반으로 인정하는데 사회적으로는 인정 안해주기도 해요
납속 공명첩은 사봤자 비석에 통정대부 한자 쓸뿐 현직이 없는건 죄다 공명첩이고 양반대우 못받고 자기만족이죠
양반은 향안에 올라야 비로서 양반대우및행세를 할수 있죠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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