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09

李宇衍 210309 램지어 논문 관련, 계약을 맺고 계약서를 썼음을 입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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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宇衍
20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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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라 성ㅇㅇㅇ였다고 했더니 30일 정지시켰어요. 어떤 루저가 신고했겠죠. 여하튼. 램지어 논문 관련, 계약을 맺고 계약서를 썼음을 입증하는 최근 기고문입니다. 한국 언론은 전혀 보도하지 않습니다. 일본 언론에 기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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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지어논문소동] <위안부의 증언 "계약서가 없다"는 램지어 논문에 대한 비판에 대한 반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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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연 글 (20210307)

  램지어에 대한 비판은 계약과 계약서가 없다는 데 집중되어 있다. 법학 교과서를 인용하자면, “계약”의 본질은 “의사표시의 합치”이며, “계약서”는 그 “증거”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약서”의 존부에 집착하는 사람이 많으니만큼, 계약과 계약서의 존재를 입증하는 사례를 제시하겠다. 다음 상황을 보자. {중국으로 끌려간 위안부 2} (한국정신대연구회, 2003)에 게재되어 있다. 전위안부로서 증언자는 현병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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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준철(질문자): “그러면 그 집도 돈을 얼마 받고 간 거에요?” 
답: “500원 받구 2년 기한하고 갔어요. 500원은 어머니 아버지한테 드리고......그래서 한 2년 마치구서는 집에 와서 있었단 말이여......이렇게 하구선 있으면 집이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또 다른 데로 가야 또 돈을 받아서 어머니 아버지를 드려야지(하고 생각했어). 나는 이젠 촌에 안 있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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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언자는 이미 술집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 매춘을 겸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뒤 집으로 돌아와서 그녀의 오빠가 결혼하라는 말을 듣고서 오히려 다시 돈을 벌러 갈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사람을 찾아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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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가지구 박가라는 사람한테, 내가 또 박천을 찾아 올라갔지......그래 어떤 여관에 갔는데 “어디서 색시 사러 왔는데, 여기 어디메 있소?”하니까는 
“저기 저 여관인데, 저기 저 중국에서 색시 사러 왔답니다. 가보오” 
그래 가니까...남자가 하나 앉았단 말이에요. “색시 사러 왔어요?” 
“예. 처녀가 어찌, 조그마한 게 어찌?”
 “나도 중국에 가서 돈 좀 벌려고 가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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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준철: “그런데 할머니가 그때 중국에 가면 뭐 하는 건지 아셨어요?”

“알았어요. 알구 갔지요”

배준철: “일본 군인들을 많이 상대해야 된다는 것도 알구요?”

“알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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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색시”를 사는 자가 무슨 일을 위해 여자를 모으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어서 그녀는 계약 조건에 대한 협상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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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준철: “그런 얘기를 어디선가 다 들으셨어요?”

“소문이 다 있지요... 내가 찾아 댕기면서 길을 찾았죠. 그래 사 가갔는가 하니까 사겠다구. 그래 얼마 받겠냐고 묻습니다. 그래 “우리 어마니 아버지 곤란하니까, 3년 기한을 두고 얼마 주겠소?” 하니 “2,000원을 주겠다” 그런단 말야. 그래서 “2,000원을 주면 1년에 1,000원도 못 돼요. 1,000원씩만 주슈.” “아 그래라. 3천 원을 받아가지구 집에 가서 어마니 아버지 동의받아 가지구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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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기고에서 말했듯이 위안부로 취업하기 위해서는 호주, 여기에서는 아버지의 승인이 필요했다. 아버지는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딸의 청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승낙한다. 물론 아버지도 딸이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잘 알고 있었다.

배준철: “아, 도장을 받아가셨어요?”

“예. 그럼. “어마니든지 아버지든지 한 분을 데리고 오면 돈을 주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도장을 받아라.” 그때는 심했어요.

배준철: “그때는 몇 살이오?”

“열여섯 살 났을 거요. 술집에서도 한 2년 있었으니까는.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도장을 받아 오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도장을 찍어주겠나. 그래서 우리 아버지가 내 말이라면 또 믿습니다...내가 사정을 했지요. 

“아바이 나, 누가 색시 사러 왔는데 얼마얼마 주겠다는데, 내가 먼 데로 돈 벌러 가겠소”
...아버지 잘 사는 걸 보구 죽어야지. 우리 아버지 돈 쓰고 그저 잡숫고 싶은 거 잡숫구,...
“아버지 나 소개해주소.”

  이 경우, 전차금은 부모가 있어야 지급했다. 그 대신 부모와 조부모의 동의와 날인이 필요했다. 아버지 외에, 어머니와 조부모의 동의와 날인이 필요한 이유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연대보증인으로 나선 것일 수도 있다. 이것이 계약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계약 조건으로는 딸을 다른 곳에 다시 팔지 말라는 요구를 붙인다. 

“정 그렇다면 내가 소개해주지.” 그래 어머니 아버지 이름 다 쓰고 도장 찍고, “근데 할머니 할아버지 도작 다 찍으랍니다. 어카갔나? 아버지”. 
“그럼 내가 쓰지.” 아버지가 써가지구 할머니 도장 할아버지 도장 찍어서 그 다음에 다 동의를 받았수다...
우리 아버지 하는 말이 “당신한테 내 딸을 팔았으니까는 다른 데 못 넘긴다.”
 그렇게 약속을 했단 말요. 그래서 내가 “우리 아버지 요구가 이렇게 되는데 어떻습니까?” ......“그건 자네 맘이지”......“그러면 그렇게 하십시오. 갑시다.”

  아버지는 자신이 쓰고 날인했다. 아마도 계약서였을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다시 매춘부로 일하게 되었지만, 그녀가 처음에 간 곳에서는 자신에게 오는 손님이 별로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외모 탓이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중국 봉천으로 옮겨가게 된다.

“나야 뭐. 거기서 손님 하나 받을 수 없단 말이여. 얼굴이 못났는데. 손님은 색시 고운 거 골라 가지 뭐. 못난 거 누가 골라 가갔어? 거기 여자들이 많습디다. 한 20~30명 돼요. 다 조선여자들이에요. 
나 사온 주인 아들보구 “난 여기 있다간 빚 못 다 갚갔이오. 다른 데로 넘겨주우.” 
“아버지가 말하기를 못넘기기루 계약을 썼는데.” 
“내가 본인이 승낙을 했는데, 일 있습니까?” 
“그럼, 봉천으로 다시 나가자. 나가서 소개소 들러서 누가 뽑아 가면 나는 그 돈을 받아가지고 오구.” 
“그럼, 그 이자를 받을래요?”. 
“아, 난 이자 안 받는다. 그저 너 가서 잘되어서 집이나 가라”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않겠다고 “계약을 썼다”고 말한다. 전매(轉買)하지 않기로 계약서에 기입했다는 것이다. 계약서가 있었음에 틀림없다. 매춘부가 되었을 때의 전매과정도 여기에서 살펴볼 수 있다. 전차금에 대한 채권은 그대로 새로운 매입자에게 옮겨진다. 그 돈에 대해서는 이자를 받는 경우도 있고, 면제해주는 경우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가 옮겨간 봉천의 매춘숙 또는 위안소는 민간인과 일본군이 함께 이용하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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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준철 “할머니, 그런데 그 집에는 주로 어떤 손님이 와요?”

“군대도 오구, 개인도 오구, 여러 사람이 다 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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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봉천에서도 돈을 벌지 못했다. 이번에는 직접 군대를 따라가기로 작정하고 안후이성의 뻥뿌로 또 옮겨간다. 그곳 위안소 주인도 조선인이었다.

 “그래서 난 여기 못있다구 그랬지. 군대들 가는 데 따라가서 촌에 가서 돈 벌어야지 안되겠다고. 그래서 봉천에서 또 뽑혀서 빰뿌(蚌埠)로 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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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준철: 그럴 때 할머니한테 지워진 빛 3,000원이 빰뿌 그쪽 주인한테 그대로 넘어간 거군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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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준철: 빰뿌 주인도 조선 사람이구요?

“예. 다 조선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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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중국의 어느 곳에서, 봉천, 그 뒤에는 다시 뻥푸로 옮겼다. 처음 간 곳은 일반 매춘숙으로 보이는데, 상세하지 않다. 봉천에서 일한 곳은 군인과 일반인이 함께 이용하는 곳이었고, 뻥뿌는 일본군 전용 위안소로 보인다. 처음 간 곳이 일반 매춘숙이었다면, 그녀의 경로는 일반 매춘부가 일본군 위안부로 되는 과정이 매우 단순하고 평탄했음을 뜻한다. 그저 새로운 위안소 업자에게 “넘어가는” 것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매춘숙의 주인들 사이에 매춘부의 전매가 쉽사리 이루어지듯이, 매춘숙의 주인이 그녀를 군위안소로 전매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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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서 제시한 사례를 보면, 위안부가 되기 위해 계약서를 작성하였음에 틀림없다. 물론 계약서 없이 구두계약으로 처리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이 사례에서 분명한 것은 “계약”과 “계약서”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녀가 조선에서 계약을 맺을 때 이미 중국으로 가서 일본군인을 상대한다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협상을 통해 결정된 전차금 금액, 계약기간이 분명하고, 전매(轉買)에 대한 조건도 있었다. 호주 등의 동의와 날인도 있었다. 위안부와 그 부모는 일본군인을 상대한다는 등, 장차 무슨 일을 하게 될지를 잘 알고 있었다. 전매가 이루어질 경우, 전차금이 새 업자에게 넘어간다는 사실까지도 위안부는 잘 알고 있었다. 계약이었음을 입증하기 위해 더이상 무엇이 필요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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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人業者と契約し慰安所を転々とした慰安婦の証言
「契約書がない」というラムザイヤー論文に対する批判への反証
2021.3.7(日) 李 宇衍

<위안부의 증언 "계약서가 없다"는 램지어 논문에 대한 비판에 대한 반증>
이우연20210307

https://jbpress.ismedia.jp/articles/-/64369?fbclid=IwAR36bCSrcgSDGaNDgMqSw3in-LdmlwfJ9YjrfXGCbrG2W1cXvUZNxiVoJ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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