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반기문님은 믿음이 안갑니다.
위안부 합의나 사드배치 찬성이나 친미 친일을 넘어
대변자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일본의 군국주의가 부활되고 군사정보 교류를 빌미삼아
일본군을 한국에 주둔할 수도 있기에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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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옴] 임명 이후의 비관과 낙관 (송필경 의사)
장관 임명 청문회를 겪으면서 야당v은 정파 이해를 앞세워 여당을 휩쓸어 버릴 기세로 덤볐습니다.
대통령이 장관을 임명을 하자 야당은 나라를 쪼개 버릴 것 같은 태세입니다.
언뜻 보면 장관 자리 하나에 저렇게 분노를 머금을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비상식적인 모습입니다.
지금은 사회적으로 앞선 유럽도 지난 역사를 보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나라들이었습니다.
선진 유럽이 상식(Common Sense)을 확립하기까지 지성인들은 사회적 편견과 엄청나게 투쟁을 했습니다.
마녀 사냥은 중세 유럽을 암흑사회로 몰아넣었으며, 19세기까지 신구교의 종교 갈등으로 엄청난 학살이 일어났습니다.
20세기 초에 발생한 ‘드레퓌스 사건’은 사회 전체가 대결한 대표적 갈등이었습니다. 프랑스 장교가 적국인 독일에게 기밀을 팔아먹다가 들키자 한 유태인 장교를 희생양으로 삼아 누명을 씌웠습니다. 진실을 알아차린 에밀 졸라를 비롯한 프랑스 소수 지성인들은 허위와 대결했습니다. 유태인에 대한 편견이 가득한 다수의 민중은 유태인을 두둔하는 이런 지성인들을 매국노라고 심하게 역정을 내었습니다.
지성인들이 여론의 역경에도 불구하고 진실의 행진을 멈추지 않자 민중들은 차츰 깨어났습니다. 프랑스는 진실과 허위의 전쟁으로 나라가 두 토막 날 정도였습니다.
이 처참한 분열을 보고 톨스토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심한 역경도 때로는 그 목적이 있다.
프랑스가 양심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은
프랑스를 위해 좋은 일이 될 것이다.“
프랑스는 드레퓌스 사건에서 진실이 이기고 나서 비로소 사회적 상식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인류애적인 상식에까지 이르지 못했습니다. 베트남을 침략했고, 알제리 독립운동을 극심히 탄압했습니다.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이 저지르는 야만을 보면서 프랑스는 인류 양심의 문제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이 깨달음이 ‘68 혁명’으로 이어져 인류 보편적인 상식의 개념을 확립한 거죠.
“불관용만은 관용하지 않는다.”는 ‘관용의 법칙’이 상식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일제에서 해방 후 매국 친일이 지금까지 남한의 기득권을 독점했습니다. 이 기득권에 도전하면 ‘빨갱이’가 되어야 했습니다. 막강한 기득권은 ‘빨갱이’에게는 어떤 관용도 베풀지 않았습니다. 민주주의 핵심인 사상의 자유를 박탈한 셈이었습니다.
강제 징용과 위안부 문제에서 보듯이 일본을 숭상하는 친일 매국 세력은 일본에 굴종하지 않으면 ‘빨갱이’로 몹니다. 일본의 경제 제재에 결연히 맞서는 대통령까지 ‘빨갱이’가 됩니다.
이렇게 남한 사회는 상식이 마비된 상태입니다.
친일 매국 기득권에 저항하는 자들에게 ‘빨갱이’의 누명을 씌워 재갈 물리는 핵심 세력이 바로 검찰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사회적 <상식>을 짓밟는 첨병이 이제까지 우리 검찰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번 검찰을 지휘할 수 있는 유일한 조직인 ‘법무부’의 장관 임용을 두고 난리 피우는 모습은 상식을 확립하지 않으려는, 상식을 거부하는 친일매국 기득권 세력의 치부가 드러난 사건이라고 봅니다.
진보 쪽에서 조국 장관 임명에 반대하는 의견을 제 나름대로 어제 하루 종일 분석해 두 가지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한 의견은 민정 수석으로 대통령 임기 반 넘어 지나도록 검찰 비롯한 적폐 청산에 손대지 않고 시간을 허비해 놓고 왜 이제냐는 냉소적인 비판입니다. 저는 이 의견에는 수긍합니다.
다른 의견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같은 윤리적인 잣대를 대면서 조국 개인과 가족 간의 처신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 저는 이 의견에는 전혀 동조하지 않습니다. 지식인의 이중성을 옹호하자는 것이 아니라, 사적인 흠집보다는 공적인 의무감이 이 시점에서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뭐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듯이, 제 눈에는 들보가 있으면서 남의 눈 티끌만 찾는 친일 매국 세력의 비난은 가소로워 언급할 가치가 없겠지요?
이들은 대한민국은 자유의 나라라고 항상 떠듭니다. 시민의 자유를 존중하는 시민사회에서 자식의 교육 문제로 조국에게 손가락질 할 자격 있는 자가 친일 매국 세력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있겠습니까?
‘조국 청문회’에서 치고 박고 싸우는 현상으로 보면 우리사회를 이해할 수 없는 미친 집단이라 비관할 수 있겠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상식을 확립하려는 목적으로 고통을 겪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를 매우 낙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식의 확립이란 검찰 개혁을 통해 ‘불관용만큼은 관용하지 않는’ 관용의 사회를 이루는 것입니다.
관용의 사회에 가장 걸림돌은 상식적인 생각을 억압하는 ‘국가보안법’입니다.
‘국가보안법 폐지’야 말로,
검찰 개혁의 궁극적 목표라는 것을 조국 장관이 너무나 잘 아시리라 저는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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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군사협정, 최대 수혜자는 미국"
더 충격적인 건, 이런 군사적 협력을 위해
'위안부 합의'를 서둘러 체결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습니다.
(http://bit.ly/2fwWPPl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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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선님의 글입니다.
내가 어렸을때만해도 우리가 더럽고 미개해서 일제가 들어와 위생을 가르치고 계몽했다고 말하는 어른들이 많았다. 나는 화가 났다. 그러나 일제한테 그렇게 당하면서도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지배계급의 착취가 일제 못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남루한 옷을 입고 못먹고 그저 하루하루 연명하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임진왜란도 막았고 병자호란도 견뎌냈고 45년의 착취에도 목숨으로 저항했다.
항상 문제는 정치를 하는 사람들.
돈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1801년 공노비 해방에 이어 1886년 노비 세습법 폐지, 1897년 노비제도 폐지까지 모두 조선 말기에 이루어진 일이다. 평등과 인권때문이 아니라 조세를 더 거둬들일 방안으로 노비를 양민을 만든 것이고 동학 혁명이나 신분의 매매, 여러 경로를 통한 면천이 가능함으로 더 이상 제도 유지가 힘든 것도 있었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노예 제도위에서 유지가 되는 사회였다.
지배계층 스스로 이런 제도를 없앨 정도였다면 얼마나 다급한 상황이었단 말인가? 하다하다 안돼니까 더 착취하기 위해 없앤 것이 이 노비 해방이다.
조선 말기 지배계급의 모럴해저드는 끊임없이 백성의 피를 빨아 먹었다. 노비가 머슴으로만 바뀌었지 삶이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러나 노비 문서가 없다는 것때문에
"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 누가 못하게 하는것도 아닌데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준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얼만큼 가능했을까?
지금은 그 형태만 달라졌지 정치권과 재벌에 의한 모럴해저드는 계속되고 있다. 보기에는 우리를 위한 것 같지만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느라 우리의 언발에 오줌을 누워주고 간악함을 자행하고 있다. 주는척 하면서 신노비 문서 만들기에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
내가 어렸을때만해도 우리가 더럽고 미개해서 일제가 들어와 위생을 가르치고 계몽했다고 말하는 어른들이 많았다. 나는 화가 났다. 그러나 일제한테 그렇게 당하면서도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지배계급의 착취가 일제 못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남루한 옷을 입고 못먹고 그저 하루하루 연명하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임진왜란도 막았고 병자호란도 견뎌냈고 45년의 착취에도 목숨으로 저항했다. 막았다는 표현이 잘못되었다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결과적으로 나라는 살아 남아 있지 않은가. 지배계층때문은 아니었으리라...
항상 문제는 정치를 하는 사람들.
돈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1801년 공노비 해방에 이어 1886년 노비 세습법 폐지, 1897년 노비제도 폐지까지 모두 조선 말기에 이루어진 일이다.
평등과 인권때문이 아니라 조세를 더 거둬들일 방안으로 노비를 양민을 만든 것이고 동학 혁명이나 신분의 매매, 여러 경로를 통한 면천이 가능함으로 더 이상 제도 유지가 힘든 것도 있었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노예 제도위에서 유지가 되는 사회였다.
지배계층 스스로 이런 제도를 없앨 정도였다면 얼마나 다급한 상황이었단 말인가? 하다하다 안돼니까 더 착취하기 위해 없앤 것이 이 노비 해방이다.
조선 말기 지배계급의 모럴해저드는 끊임없이 백성의 피를 빨아 먹었다. 노비가 머슴으로만 바뀌었지 삶이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러나 노비 문서가 없다는 것때문에
"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 누가 못하게 하는것도 아닌데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준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얼만큼 가능했을까?
지금은 그 형태만 달라졌지 정치권과 재벌에 의한 모럴해저드는 계속되고 있다. 보기에는 우리를 위한 것 같지만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느라 우리의 언발에 오줌을 누워주고 간악함을 자행하고 있다. 주는척 하면서 신노비 문서 만들기에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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