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미 25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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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는 가라
지난 주말, 약속이 있어 세종로를 지나는데 젊은 시절 외우고 다니던 신동엽시인의 시가 불현듯 떠올랐다. 세종로 양 끝에 따로 진을 치고 탄핵을 찬성 혹은 반대하는 무리들의 극한적 엠프 소리에 귀가 먹먹해졌을 때였다.
ㅡ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ㅡ
<껍데기는 가라>는 정치적메시지가 워낙 선명해서 당시 대학가나 진보적 문예판에서 가장 많이 불리워졌지만 정작 신동엽시인을 좋아했던 나는 이 시에 큰 감흥이 없었다. 민족통일을 염원하는 참여시의 전형이라 생각했고, 내 상상력과 생활경험은 교과서적인 이해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삼십년도 훨씬 더 지난 이 나이에 와서 갑자기 시인의 예술적 직관이 선취해낸 시적 진실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 시는 피상적으로 민족정서를 내세우며 남북화해를 쉽게 노래한 시가 아니다.
시인은 스무살 젊은 나이에 6.25전쟁을 겪은 후 십오년여가 지나서 전쟁의 원인과 남북화해의 방안을 숙고하여 이 시를 썼다. 시인은 총과 죽창으로 동포형제를 살육한 진짜 내전을 겪었다.
왜 그 참혹한 전쟁은 일어나야만 했는가. 어떻게 하면 서로를 죽인 한 형제가 서로를 한 나라 한 지붕안에 받아들일 수 있는가.
시인의 목소리는 총만 안들었다뿐이지 심리적 내전을 치르고 있는 2025년 1월의 서울 세종로에서 선명하게 다가왔다.
껍데기를 벗고 알몸으로 서야 한다. 중립의 초례청에 마주 서야 한 지붕을 이고 살 수 있다. 그래야 이 사상적 내전상태를 극복하고 하나된 대한민국으로 제2의 건국을 할 수 있다.
껍데기를 벗고 알몸으로 서야 한다. 중립의 초례청에 마주 서야 한 지붕을 이고 살 수 있다. 그래야 이 사상적 내전상태를 극복하고 하나된 대한민국으로 제2의 건국을 할 수 있다.
아아. 우리는 지금 껍데기를 벗는 아픔을 통과하고 있다. 이 껍데기를 벗어야 우리는 서로를 적대감 없이 존중하며 합방으로 가는 맞절을 할 수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진영대립을 극단으로 밀어부치고 있는 두 세력이 바로 이 시에서 말하는 껍데기가 아닐까. 한쪽 껍데기는 전광훈 밑에 선 태극기부태 반공보수이고 한쪽 껍데기는 민노총을 비롯한 종북진보이다.
색깔만 달리할 뿐 껍데기는 모두 갑옷이고 전투복이다. 전투복은 서로를 겨누고 있는 전쟁상태에서만 존재의 의미가 있다.
최근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선 윤석열대통령은 평생을 자유민주주의자로 살아왔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 12월 3일 자신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는 사람임을 온 국민 앞에서 생중계로 증명했다. 그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수준은 태극기부대와 일치했다. 즉 공산, 사회주의 세력에 대한 반대의 의미를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지난 임기 동안 자유주의적 정책설계나 실행은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딱 하나 외교정책에서만 자기정체성을 선명하게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 고민 없이 자유주의 블럭에 밀착하고 북중러에 대립각을 세울 수 있었다. 편을 들고 편을 짜는 것은 껍데기로 더 잘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래서 자유민주를 억압하는 계엄을 아무런 주저 없이 실행하고 아무런 반성 없이 국민들 앞에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민주당에 민주주의가 없는 것과 정확히 데칼코마니를 이룬다. 민주당과 86세대도 민주주의를 반민주세력과의 투쟁으로만 이해하는 데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자신의 존재의미를 투쟁에 두기 때문에 끊임없이 적을 만들어야 하고 적과의 타협은 있을 수 없다.선거에서 지자마자 대통령탄핵을 외칠 수 밖에 없었던 연유다.
두 양극단 껍데기는 정체성 자체가 자기실현이 아닌 타자반대로 이루어져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자유와 민주를 조직내부에서 혹은 자기생활 영역에서 실현해내는데는 전혀 무능하고 반대하는 세력을 증오하고 미워하는데 온 신경이 가 있는 것. 그것이 바로 껍데기라는 증거다.
그렇다면 이 격렬한 진영대립의 기본동력을 이루고 있는 껍데기들을 우리사회는 어떻게 해서 벗어던질 수 있을까.
“껍데기는 껍데기끼리 싸우다 저희끼리 춤추며 흘러간다.”
신동엽시인은 <껍데기는 가라>를 발표한지 2년 후에 발표한 시 <조국>에서 이렇게 말했다(찾아보니 여기서는 ‘껍데기’ 대신 ‘껍질’이라는 시어를 쓴다).
껍데기는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흘러가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다. 껍데기들끼리 싸우다 흘러간 후에야 보오얀 속살을 내보이는 알맹이가 전면에 나설 수 있다는 의미다.
껍데기가 가면 말랑말랑한 세상이 온다. 진짜 자유민주주의를 생활감정으로 정치문화로 수용한 중도진보와 중도보수가 정치세력을 대표할 수 있는 날이 온다. 양극단이 물러가고 중도 좌파와 중도우파가 중립의 초례청에 부끄럼 빛내며 마주설 그 날이 온다.
저기 광화문에 이쪽 저쪽 모인 이들 중에는 극단을 싫어하고 중도적 지향을 가지고 있더라도 북소리에 이끌려 광화문으로 나서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런 사람의 껍데기 속에 연하고 보오얀 속살이 가득 채워져 어서 탈각할 날이 오기를 바란다.
어서 중립의 초례청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아래 신동엽시집은 85년 간행된 3판이다. 내 책 중에서 가장 오래 가지고 있는 책이다. 젊은시절 광주에서 서울로, 서울 이곳에서 저곳으로, 서울에서 근교 소도시로, 다시 고향으로, 또다시 서울로 수없이 이사다녔지만 이 책은 꼭 챙겨가곤 했다.)



SeungYong Y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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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현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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