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17

알라딘: 올가의 반어법

알라딘: 올가의 반어법

  • 100자평(5)  마이리뷰(16)
  • 책소개

    <프라하의 소녀시대>와 <대단한 책>로 알려진 작가의 실화 소설. 스탈린 시대에 실존했던 무용천재 올가의 가혹했던 삶을 미스터리 형식으로 파헤친 추리소설이다. 소설의 틀은 추리형식이지만 올가와 스탈린 시대를 견딘 자들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역사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1960년, 시마는 체코의 프라하 소비에트 학교에 들어간다. 그곳에는 무용천재에 독특한 반어법으로 아이들을 강하게 키우는 무용교사 올가 모리소브나가 있다. 시마는 올가에게 금새 매료된다. 그러나 늘 뭔가를 감추고 있는 듯한 올가.

    30년이 흐른 뒤, 러,일 동시통역사가 된 시마는 모스크바로 가 올가의 반생애를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그녀가 스탈린 치하 ‘알제리’수용소의 생존자였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기억의 문이 하나씩 열리며 쏟아져 나오는 삶의 실상이 강렬하게 그려지기 시작한다.

    목차

    • 올가의 반어법
    • 대담|‘반어법’이 풍부한 세계로부터
    • 해설|여성 도스토예프스키의 탄생
    • 옮긴이의 말
    • 참고문헌

    책속에서&밑줄긋기

    한편, 인문계나 예술계 등 수용소에는 필요하지 않는 교육을 받은 여자들은 고생이 심했다. 많은 사람들이 점토벽돌 만들기에 동원되었다. 점토와 건초를 섞어서 맨발로 충분히 반죽한 다음 나무틀에 흘려 넣어서 볕 좋은 곳에 운반을 한다. 그리고 틀 안에서...+ 더보기
    카챠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시마의 젖은 얼굴을 닦아주었다. 시마도 카챠에게 똑같이 했다.
    "일본어에 '물방울이 뚝뚝 떨어질 듯 싱싱한 미인'이라는 말이 있어. 관능적인 매력이 넘치는 여자를 보고 하는 말이야."
    "하하하, 우리도 기껏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는데!"-100쪽
    "아아, 신이시여! 이거야말로 신이 내려주신 천성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거기 수려한 용모의 신동이여! 나는 감동에 겨워서 떨림이 멈추지를 않는구나."
    카챠와 시마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봈다. 올가 모리소브나의 반어법이다. 쉰 목소리와 인토네이션도 똑같았다. R도 프랑스어처럼 가래가 섞인 것 같은 R이었다. 기세등등하고 어딘지 모르게 웃음이 나오는 올가의 욕설을 들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들떴다. 지아와 핏줄은 연결되어 있을 리가 없지만, 틀림없이 올가의 딸이라고 시마는 생각했다.
    올가의 모든 것이 반어법이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치 희극을 연기하는 것 같은 의상과 화장, 그리고 언동은 그 뒷면에 있는 참혹한 비극을 호소하고 있었던 걸까.
    "뭐? 다시 한 번 말해보렴, 거기 있는 천재 소년이여! 제 생각에는......이라고! 흥, 칠면조도 생각은 참신하단다. 하지만 결국 수프 국물이 되어버렸지만. 알았니?"
    또다시 들려왔다.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 순간에 깨달았다. 올가 모리소브나의 반어법은 비극을 호소하고 있었더 것이 아니라 비극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었다는 것을......-429쪽

    줄거리

      이야기의 주인공은 러시아어 번역을 생업으로 하는 히로세 시마. 1960년대 초,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를 다녔던 그녀의 뇌리에 동구권 ‘해빙’ 뒤, 한 늙은 무용교사를 둘러싼 수수께끼가 오랜 상처처럼 욱신거린다. 재학 시절 어느 날, 올가 앞에, 살집이 좋은 커다란 남자가 스쳐지나가다가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하자, 시마와 그녀의 어린 친구들은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한다……. 나이를 알 수 없는 발레교사 올가 모리소브나의 정체는 무엇이었던 걸까. 소비에트 붕괴를 거쳐 이미 마흔을 넘긴 시마는 그 진실을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에 모스크바로 날아가서, 아카이브에서 자료를 찾고, 어린 시절의 친구와 재회를 하며, 올가의 놀라운 운명을 모조리 알게 된다. ……올가가 경기를 일으키던 ‘알제리’를 의미하는 이 러시아어가 올가의 가혹한 운명을 뜻하는 ‘강제수용소’를 가리키는 약칭이었음이 밝혀진다. 

    Editor Blog

    짧은 명절, 긴 재미- 외국어/만화 MD 김세진 l 2008-09-04
    짧은 명절, 긴 재미짧지만 그래도 명절은 명절! 어쩐지 기분 업되는 추석, 책 없이 보내기 허전하시죠? 어지간한 영화만큼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책 다섯 권을 추천합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소비에트를 경험한 일본작가, 요네하라 마리가 되살려낸 스탈린시대의 기억
    ―문제적인 역사소설


    <요미우리 문학상> <고단샤 에세이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하며 에세이스트로 명성을 떨친 러?일 동시통역사 요네하라 마리의 소설이 출간됐다. 일본의 대표적 여성지식인인 마리는 1960년대 공산당 간부였던 아버지를 따라 프라하에 거주했던 어린 시절의 독특한 경험을 바탕으로 에세이와 소설을 집필해왔다. 또 2005년 건강악화로 은퇴하기 전까지 러시아 주요인사가 방일할 때마다 수행 통역하는 일류 동시통역사로 활약하면서 국제정세와 각국의 문화 차이에 관해 새로운 시각이 담긴 글을 선보이기도 했다. 국내에도 이미,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 재학시절을 애틋하게 그린 『프라하의 소녀시대』와 다독가로서의 면모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단한 책』 등으로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올가의 반어법』 역시 요네하라 마리의 자전적 경험을 소재 삼아, 스탈린시대를 무대로 가혹한 삶을 산 무용천재 올가의 인생을 미스터리 형식으로 구성한 추리소설이다. 추리소설의 틀을 가져왔지만 주인공 올가는 프라하 소비에트 학교의 실존했던 인물이자 스탈린시대를 견딘 자들에 대한 알레고리이기에 문제적인 역사소설이기도 하다. ‘여성 도스토예프스키의 탄생’(가에야마 구니오龜山郁夫, 도쿄외국어대학 학장)이라는 극찬을 받은 이 소설은 2003년 제13회 <분카무라 두마고상文村ドゥマゴ文學賞>을 수상하였다.

    무용천재 올가의 베일에 싸인 인생, 그녀의 진실은 무엇인가

    1960년, 체코의 프라하 소비에트 학교에 들어간 ‘시마’는 무용교사 올가 모리소브나에게 매료된다. 나이는 들었지만 무용천재에, 자신만의 독특한 반어법을 자랑하는 올가. 탁한 목소리로 ‘거세 돼지는 암컷 돼지에 올라탄 다음 생각한다’(쓸데없는 짓을 한다는 뜻), ‘도대체 언제쯤이면 알겠니! 자기 불알보다 높이는 날 수 없는 법이야!’ 등 냉소적인 유머와 독설로 가득한 반어법으로, 아이들을 강하게 키우는 그녀의 솜씨는 천하일품이다. 하지만 늘 뭔가를 감추고 있는 듯한 올가는 존재 자체로 거대한 수수께끼다.
    소비에트 학교를 졸업한 30여 년 뒤, 러?일 동시통역사가 된 시마는 마침내 모스크바로 날아가 올가의 반생애를 거슬러 올라간다. 대담한 반어법을 구사했지만 유독 ‘알제리’라는 말에는 창백해지곤 했던 올가. 그녀는 놀랍게도 스탈린 치하 ‘알제리’ 수용소(북아프리카의 구 프랑스 식민지와는 무관하다)의 생존자였고, 기억의 문이 하나씩 열리며 쏟아져 나오는 잔혹한 삶의 실상은 그야말로 강렬하다. 『올가의 반어법』은 스탈린 치하에서 숙청, 가족과의 생이별, 혹독한 추위, 굶주림 등 무자비한 시대적 폭력에 시달렸던 자들에 대한 애정과, 지배 권력에 대한 분노를 생생히 그리고 있다. 또한 곤핍한 삶 가운데에서도 서로를 다독이는 끈질긴 생명력과 인간의 존엄함을 이어가는 인물들은 독자들을 압도한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여자들이 낮 동안의 노동으로 녹초가 된 몸을 딱딱한 침대에 눕히는 어두컴컴한 건물 안에서 부드러운 알토 소리가 들렸다.……그 뒤로는 매일 밤, 모두 기억 속에 있는 책을 생각해내고 소리를 내며 이렇다 저렇다 서로 보완하면서 즐기게 되었다.
    ……“그렇게 비참한 상황에 빠져있던 우리가 안나 카타리나를 동정해서 눈물을 흘리고 일리야 일프와 예브게니 페트로프의 <열두 개의 의자>에 우스워서 뒤집어졌다면 믿기지 않을 거예요.” (230쪽)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소설에 시종일관 유머를 안겨주는 ‘올가의 반어법’이다. 그것이 단순한 독설이 아니라 권력자들로부터 올가 자신과 수용자들을 지키던 무기였으므로. 여성 수감자들을 강간하려는 고위 관리에 맞서 ‘흥, 그 출렁거리는 지방은 서지 않을 텐데. 거세 돼지인 주제에 허세를 부리지 말라구. ……아아, 더러워! 거세 돼지가 올라타느니 총살되는 게 낫겠어’라고 대거리하는 장면, ‘욕설과 함께 권력과 권위에 순종하지 않는 삶을 배웠다’는 올가의 회상 장면은 이 소설의 ‘반어법’이 가진 의미를 명료히 보여준다. 가에야마 구니오의 지적처럼 올가의 반어법은 ‘그들의 양심이 은밀히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의지처였으며, 그 작고 뾰족한 혀끝이야말로 전능한 스탈린 권력이 죽을 만큼 싫어하고 무서워했던 힘’이었다.

    추리소설 구성, 개인사와 현대사를 교차시키는 다큐멘터리

    대개 자기고백적인 형식을 취하는 ‘수용소 문학’과는 달리 이 소설은 여느 추리소설 못지않은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볼쇼이 극장, 볼쇼이 발레 학교 등이 위치한 모스크바 거리를 헤매며, 소녀시절 동경했던 한 인물의 과거를 성인이 되어 풀어나가는 미스터리 형식은 소설 말미에 인물들의 정체가 밝혀지기까지 시종일관 독자들의 눈길을 잡아끈다. 그리고 이 미스터리 형식이 배경으로 하는 교차하는 세 개의 시공간―시마가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현대(1992년)의 모스크바, 올가가 발레교사로 활약하는 프라하 소비에트 학교 재학 시절(1960년대), 올가의 모든 것을 앗아간 스탈린시대(1930~1940년대)―은 때로 겹치고 흩어지며 시간적, 공간적 깊이와 풍부한 입체감을 더한다. 그것은 주인공 ‘시마’의 개인사와 ‘올가’의 현대사를 촘촘히 교차시켜 개인의 삶에 아로새겨진 역사를 재현하려는 작가의 고민에서 비롯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수용소 소설이 결국 ‘사실史實’의 추체험에만 그친다면 소설로서 지닌 생명력은 쉽게 말라버렸을 것이다. 여기서 요네하라 마리가 사용한 방법은 새롭다. 눈물과 웃음으로 가득 찬 이 소설을 단순히 미스터리로 끝내지 않기 위해서 그녀는 철저히 아카이브 자료에 천착했다. 책 말미에 수록한 참고문헌의 다양한 자료들은 그녀가 역사학자 이상으로 스탈린시대의 기록에 매달렸음을 짐작케 한다. 기록뿐 아니라 직접 수용소 생존자, 갈리나 예브게니에브나 스테파노바(소설에도 등장한다)를 취재하는 열정 또한 철저한 기록으로 시대를 증언하려는 마리만의 미덕이다.
    추리소설과 다큐멘터리를 동시에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안겨주는 『올가의 반어법』는 새로운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스타일의 수용소 문학이라 할 수 있다.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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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덕여자대학교 일어일문학과와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했다. 옮긴 책에는 오누마 노리코 《한... + 더보기

    100자평(5편)

    라훌라
    • 2016-12-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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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이라는 점이 낯설었지만, 조금만 읽으면 마리 여사의 글이라는 점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소설 구성 자체는 다소 허술하고 우연에 기댄 부분이 많음. 그러나 소재의 참신함이 그 약점을 보강하고 있음 
    키치
    • 2014-06-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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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가 가진 치유의 힘, 회복의 힘을 믿게 해주는 소설. 요네하라 마리의 팬이라면 필독, 팬이 아니어도 반드시 읽어보길 권한다. 
    AROA
    • 201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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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네의 읽기를 읽는듯한 기분.가학적인 내용들이 읽기힘들때도 있지만 당당한 여자의 모습이 왠지 숙연해지는 책. 
    sma
    • 2010-10-10
    • 댓글 0
    • 좋아요 2
    • `마녀 한 다스`를 만난 이후 요네하라 마리와의 두번째 만남입니다. 
    wlvha25
    • 2010-02-25
    • 댓글 0
    • 좋아요 1
    • 전에부터 한번 봐야지 한고 맘먹었던책이50%할인을 아항 좋아부러 

    마이리뷰(16편)

    껌정드레스
    • 2015-0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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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가의 반어법 
    • 국내에 소개된 요네하라 마리의 저작 16권을 완독했다.  (정확히는 15권 반. <대단한 책>을 1부까지만 읽고 포기했다) 마치 16봉 등정에 도전한 것 같다. 하산하면서 생각해보니, 내 취향에는 이 책이 최고봉이었다. 저자의 역사 문화 지식과 인간 관찰력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를 연결해가는 구어체 문장이 다음 페이지가 궁금해서 미칠지경으로 읽는 이를 몰아쳐간다.

      일본인 히로세 시마는 1960년, 체코의 프라하 소비에트 학교에서 무용교사 올가 모리소브나를 만난다. 나이 많지만 묘한 매력이 있는 올가는 몸치 학생에게 "이런 천재를 보았나!"하는 식의 반어법을 구사한다. 또한 성적인 욕도 걸판지게 해 댄다. 그녀의 절친인 프랑스어 교사 엘레오노라 역시 수수께끼의 인물이다. 구 러시아 시절 귀족 출신같아 보이지만 약간 치매기가 있다. 시마는 일본으로 귀국하고 30여 년 뒤, 러일 번역가가 되어 구 소련 체제 붕괴 후 모스크바로 날아가 올가의 생애를 추적한다. 이 시기 배경은 1990년대다.  소비에트 학교 시절 절친인 카챠와 함께. 올가는 스탈린 치하 ‘알제리 라게리(수용소)' 생존자였다.  시마와 카차의 추적에 의해, 스탈린 치하 숙청 역사와 가슴아픈 개인의 역사가 낱낱이 드러난다. 이  시기 배경은 1930년대. 이렇게 이 소설은 세 시대와 여러 공간을 넘나들며 전개된다. 시마의 기억, 생존자의 수기, 증언 서적, 인터뷰 등등 이야기가 겹겹으로 등장한다. 어느 정도는 우연히 만난 사람이 너무 쉽게 실마리를 제공해주며 술술 풀려가는 유치한 우연성도 있지만, 그런 단점도 소설 전체의 힘을 가리진 못한다.

      이미 요네하라 마리의 전작을 읽었기에 어느 정도가 논픽션이고 어느 정도가 픽션인지 구별이 가능하다. 프라하 학교에 독특한 무용 선생님의이 존재했다는는 사실이다. 물론 스탈린 시대 배경도 다 사실이고. 끔찍하고 슬픈 이야기도 꽤 나오지만, 다 읽고나면 남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비극을 견디는 힘'이다. 여성 수감자들을 강간하려는 고위 관리에게 '거세 돼지'라며 욕하고 덤비는 올가, 그러다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작은 상자같은 징벌방에서 일주일간 음식 없이 갇힌다. 그러나 조금도 기죽지 않고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등장한 올가. 그녀는 징벌방 안에서 단식과 요가수행을 했다고. 그런 그녀를 수용소의 관리들도 두려워했다고.  ‘욕설과 함께 권력과 권위에 순종하지 않는 삶을 배웠다’는 올가! 올가가 수용소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나서 시마는 그녀의 반어법을 이렇게 정의내린다.

      올가의 모든 것이 반어법이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치 희극을 연기하는 것 같은 의상과 화장, 그리고 언동은 그 뒷면에 있는 참혹한 비극을 호소하고 있었던 걸까.
      - 429쪽

      그 순간에 깨달았다. 올가 모리소브나의 반어법은 비극을 호소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비극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었다는 것을,,,,
      - 430쪽

      그외에도 230쪽, 수용소의 여자들이 고통스런 현실을 잊기위해 밤이면 자신들이 읽었던 책을 각자 구연해서 들려주는 대목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아래에 인용한다. 고된 수용소 생활, 책도 필기구도 금지되었다. 어느날, 배우 출신 수감자 여성이 과거 자신이 맡은 배역을 연기해 보여준다. 다음날부터는 각자 책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뒤로는 매일 밤, 모두 기억 속에 있는 책을 생각해내고 소리를 내며 이렇다 저렇다 서로 보완하면서 즐기게 되었다. 예전에 읽은 소설이나 에세이, 시를 차례로 '독파'해갔다. 그처럼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나 허먼 멜빌의 <백경>과 같은 대장편까지 대부분 글자 그대로 재연했다.
      “그렇게 비참한 상황에 빠져있던 우리가 안나 카타리나를 동정해서 눈물을 흘리고 일리야 일프와 예브게니 페트로프의 <열두 개의 의자>에 우스워서 뒤집어졌다면 믿기지 않을 거예요.”
      어깨를 움츠리며 갈리나는 조용히 웃었다.
      매일 밤 열리는 낭독회는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수면 시간을 크게 잡아먹었는데도 이상한일이 일어났다. 여자들의 피부에 다시 윤기가 돌기 시작한 것이다.
      "자유의 몸일 때 마음 속에 새겨두었던 책이 생명력을 불어넣어준 거죠."
      - 230쪽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인 소녀>만큼이나 문학의, 이야기의 효용에 대해 잘 표현된 책이다. 사후세계가 있다면 이담에 꼭 고인이 된 요네하라 마리 작가에게 이 책을 써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겠다. 열 살 때 읽었던 <소공녀>만큼이나 내게 이야기의 힘, 문학과 역사의 힘, 부당한 현실에 개기고 버티는 힘을 알려준 멋진 소설이다.

      강추!
    키치
    • 2014-06-10
    • 댓글 0
    • 좋아요 1
    • 반어법 같은 삶, 그 속의 진실 [올가의 반어법 / 요네하라 마리] 
    • _ "자유의 몸일 때 마음속에 새겨두었던 책이 생명력을 불어넣어준 거죠." (p.230)
        
      _ 그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책은 한 권도 읽지 않았어.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거야. 앞으로도 계속 내 자신의 인생에서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그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게 견딜 수가 없었어. (p.414) 

      _ 궁극적으로 극악무도한 사람이 한 명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악이 시스템적으로 분산되어 있어요. 그거야말로 자본주의 국가의 악 같아요. (p.441)
        
      _ 이 세상에는 역사 자료를 읽고 또 인간의 영혼에 관련된 근원적인 뭔가를 배우지 못하는 역사가가 역사가가 얼마나 많은가 (p.453)


      어떤 소설가들은 소설 속 주인공이 소설가의 분신이라고, 소설 속 이야기가 소설가 자신의 이야기라고 착각하지 말아달라고 한다. 물론 그들의 말대로 소설가의 실제 삶과 허구를 착각하지 않는 자세는 독자들에게 꼭 필요하다. 그렇지만 어떤 소설은 소설가 본인의 생애와 너무나 닮아서 착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다. 요네하라 마리의 장편소설 <올가의 반어법>이 그렇다. 나는 이 소설의 처음 몇 장을 읽고 소설이 아니라 저자의 수기인 줄 알았다. 1960년대 초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주인공 히로세 시마가 무용가의 꿈을 접고 현재는 러시아어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는 점, 소련 붕괴 후 러시아에서 어린 시절 친하게 지냈던 친구 몇 명을 우여곡절 끝에 다시 찾는 점(이 이야기는 요네하라의 다른 책 <프라하의 소녀시대>에 담겨 있다) 등은 저자의 실제 삶과 똑같다.


      하지만 저자가 '80%가 픽션, 20%가 논픽션'이라고 공언한 대로 비슷한 건 앞부분에 나오는 설정 정도이고 뒷부분은 기존의 요네하라 마리 책에서 전혀 볼 수 없었던 내용이다. 소설의 실질적 주인공인 무용교사 올가는 우아한 옷차림, 몸동작과 달리 입이 험했는데, 이상하게도 그녀의 욕을 들으면 기분이 나쁘지 않고 오히려 즐거워졌다. 어른이 된 후로도 그녀의 욕을 기억하고 있었던 일본인 제자 히로세 시마는 불현듯 그녀의 삶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그 길로 모스크바로 날아가 흔적들을 찾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올가 선생님에게는 스탈린 독재 시절 '알제리'라는 별칭으로 불리던 수용소에 수감되었던 전적이 있었으며, 러시아 국적을 숨기고 체코 프라하의 학교에서 무용선생으로 취직한 수상한(?) 이력이 있었다. 오직 무용만을 사랑하는 것 같았던 올가 선생님에게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그녀는 누구일까? 시마는 점점 과거 속으로 빠져든다.


      이 소설은 전체적으로 시마가 올가 선생님의 자취를 쫓는, 일종의 추리소설 형식을 띠고 있지만, 올가 선생님의 이야기만 떼놓고 보면 과거 소련을 무대로 펼쳐지는 역사극이다. 이 시절의 이야기는 끔찍하기 짝이 없다. 평범한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반정부 인사로 지목되어 목숨을 잃고, 남은 가족들은 영문도 모른채 수용소에 끌려가 강제노역에 시달리는 일이 실제로 벌어졌으며, 이렇게 끌려간 사람들은 수용소에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생활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갖은 폭력과 고문에 시달렸다. 아이들은 부모의 얼굴은 물론 이름조차 모른 채 고아원에서 살다가 입양되었다. 이렇게 독재 정권에 의해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사람들이 기록으로만 수백만 명, 기록에 남지 않은 사람들까지 합하면 수천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잔혹하고 끔찍한 현실에 쉬이 스러질 법도 한데 꿋꿋이 살아낸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는 것이다. 올가 선생님이 수용되었던 '알제리' 수용소에서만 해도 그렇다. 그들은 비록 푸짐한 밥도, 따뜻한 이불도 제공받지 못하고 하루하루 근근히 살아가는 처지였지만, 매일밤 이른바 '수용소 낭독회'라는 것을 열며 삶의 의지를 불태웠다. 수용소 낭독회란 책도 영화관도 TV도 없는 수용소에서 서로의 기억력에 의지해 <안나 카레리나> 등 과거에 읽은 책이나 보았던 영화의 이야기를 재현하는 것인데, 매일밤 수감자들끼리 재미난 이야기를 하고 연기와 노래를 하며 한바탕 웃고 울며 즐기고 나면 밥을 안 먹고 잠을 못 자도 다음 날 아침 피부가 반짝반짝 빛나고 생기가 돌았다고 한다.


      올가 선생님이 구사하던 걸진 욕도 수용소에서 배운 것이었다. 가슴속에 차오르는 분노와 극복하기 어려운 현실에 대한 답답함을 수용소의 여인들은 구수한(?) 욕으로 풀었다. 한참 욕을 하고나면 어쩐지 힘이 솟고 무서운 것도 사라졌다. 역사상 수많은 정권과 정부와 권력자들이 있었지만 모두 사라지고 이야기와 욕은 대대로 전승되고 있는 것은 다 이 때문이 아닐까? 아무리 무서운 일이 벌어져도 민중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위로하고 욕으로 대신 억누린 마음을 풀었던 것이다. 이야기가 가진 치유의 힘, 회복의 힘을 믿게 해주는 소설 <올가의 반어법>. 요네하라 마리의 팬이라면 필독, 팬이 아니어도 반드시 읽어보길 권한다. 


    AROA
    • 2014-03-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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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아프지만 생생하게 재밌어요 
    • 순전히 제목만 보고 골랐던 책이라 사실 이런내용인줄은 전혀몰랐는데..
      읽다보니 우리의 일제강점기나 유태인 학살사건등이 떠오르면서....
      인간의 가학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되고...
      마음이 아프면서도 그안에 소녀시절의 감성도 묻어나기에 재미나게 읽을수 있었다.

    고도
    • 2012-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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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밑줄긋기] 올가의 반어법 - 요네하라 마리 / 2012.2.29 

    • 카챠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시마의 젖은 얼굴을 닦아주었다. 시마도 카챠에게 똑같이 했다.
      "일본어에 '물방울이 뚝뚝 떨어질 듯 싱싱한 미인'이라는 말이 있어. 관능적인 매력이 넘치는 여자를 보고 하는 말이야."
      "하하하, 우리도 기껏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는데!"-100쪽
      "아아, 신이시여! 이거야말로 신이 내려주신 천성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거기 수려한 용모의 신동이여! 나는 감동에 겨워서 떨림이 멈추지를 않는구나."
      카챠와 시마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봈다. 올가 모리소브나의 반어법이다. 쉰 목소리와 인토네이션도 똑같았다. R도 프랑스어처럼 가래가 섞인 것 같은 R이었다. 기세등등하고 어딘지 모르게 웃음이 나오는 올가의 욕설을 들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들떴다. 지아와 핏줄은 연결되어 있을 리가 없지만, 틀림없이 올가의 딸이라고 시마는 생각했다.
      올가의 모든 것이 반어법이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치 희극을 연기하는 것 같은 의상과 화장, 그리고 언동은 그 뒷면에 있는 참혹한 비극을 호소하고 있었던 걸까.
      "뭐? 다시 한 번 말해보렴, 거기 있는 천재 소년이여! 제 생각에는......이라고! 흥, 칠면조도 생각은 참신하단다. 하지만 결국 수프 국물이 되어버렸지만. 알았니?"
      또다시 들려왔다.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 순간에 깨달았다. 올가 모리소브나의 반어법은 비극을 호소하고 있었더 것이 아니라 비극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었다는 것을......-429쪽
    베짱이
    • 2011-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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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가의 반어법] / 요네하라 마리 / 김윤수 옮김 / 마음산책 
    • 재미는 물론이거니와
      소련시절삶과 문화의 이런저런 모습을이곳저곳에서만날수 있는 책..



      p.66 진실과 자신의 양심에 충실한 러시아 지식인을 만나고 싶다면 아카이브에 가라는 말을 하죠. ... 쥐꼬리만 한월급 받고 그런 곳에서계속 일을 한다는건 진정한 인텔리겐치아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에요.

      p.230 자유의 몸일 때 마음 속에 새겨두었던 책이 생명력을 불어넣어준 거죠.

      p.231 정말로 매일 밤이 학예회였어요. 당장 쓰러질 듯이 아무리 고단해도 노래를 듣고 춤을 보면 신기하게도기운이 나는 거에요. 수용소 당국에게는 노래나 무용, 음악이 무용지물이었는지 몰라도 우리한테는 살아가는힘의 원천이었어요.
      p.388 욕설과 함께 권력과 권위에 순종하지 않는 삶도 배웠단다.

      p.415 그렇지 않아. 거대한 악이나 힘에 농락당하는 것도 힘들지만, 그렇게 사소한 불합리에 맞서거나 견디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힘들지도 몰라. 아냐, 분명 그럴 거야. 당길 것인지 멈출 것인지, 그 남아 있는 선택은 항상자기 자신의 의지와 책임으로 정해야 하는 거잖아...


      <대담>요네하라 마리/이케자오 나쓰키

      p.443 러시아인의 장점이네요. 무엇보다 자신의 양심에 충실하려고 하고 누가 뭐라고 하든 흔들리지 않는, 그런 사람...

      p.444 발레 같은 예술이 서방으로 가면 상품이 되어버리죠. 상품이 되어 교태를 부리며 망가져요. 소련에는 그런 게 없었어요. 그리고 재능에 대한 오해와 질투가 거의없었어요. ... 러시아에 있는 동안은 재능이 있다는 것만으로 모두가 좋아하고 지지해줬는데, 서방으로 온 순간 엄청남 방해와 질투가 있었던 거죠.(로스트로포비치)

      p.445 노래나 그림이 뛰어난 아이가 있으면 선생님들이 당신들 일인 양 호들갑스럽게 기뻐하고 학생들도 그 아이와 똑같은 교실에서 똑같은 공기로 숨을 쉰다는 것만으로도 아주 행복해지거든요. 열등감을 갖지 않아도 되고 다른 사람의 재능을 아주 기뻐하는 분위기였어요(프라하 학창시절) ... 일본의 교육은 자신은 이 세상에 오직 한 사람밖에 없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자각을 갖지 않도록, 절대 갖지 않도록 만들어져 있어요. ... 사실은 개개인 모두 다르니까 그것을 발견해주는 것은 선생님과 반 학생들의 역할이죠.

      <해설> : 가메야마 이쿠오 도쿄외국어대학 학장

      p.454 올가 모리소브나는 20세기의 러시아를 살아간 의식 있는 지식인, 아티스트의 총체적 상징이다. 그리고 반어법(혹은내 식으로 말하는 모순된 말)은 그들의 양심이 은밀히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의지처였으며 그 작고 뾰족한 혀끝이야말로, 전능한 스탈린 권력이 죽을만큼 싫어하고 무서워했던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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