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볜 대학 학생의 김일성 종합대학 유학기
-판타지와 현실 속에서의 193일
2019/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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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볜(延边)대학에서 조선어를 전공하는 후이치(慧琦)는 국비 교환학생 통지를 받았을 때 서구적인 한국의 경희대학과 신비로운 조선의 김일성종합대학 중 후자를 선택했다. 한국은 언제라도 갈 수 있지만 이번이 인생에서 유일하게 북한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래는 후이치의 김일성종합대학과 평양에서의 생활을 사진과 함께 정리한 내용이다.
번역 및 감수: 임아행 바로가기: https://bit.ly/2mqlc78
我在朝鲜最高学府留学,度过了魔幻与现实的193天
북한 최고 학부 유학기, 판타지와 현실 속에서의 193일
原创: 羽祺 地球青年图鉴
원글: 위치(羽祺) 지구청년도감
地球青年图鉴 8月30日 慧琦就读于延边大学朝鲜语专业,当公派留学交换项目的通知下来的时候,她在庆熙大学和金日成综合大学之间选择了后者,一个是洋气的韩国,一个是神秘的朝鲜。在她看来,韩国随时都能去,而深入了解朝鲜,此生可能仅有这一次机会。
옌볜(延边)대학에서 조선어를 전공하는 후이치(慧琦)는 국비 교환학생 통지를 받았을 때 서구적인 한국의 경희대학과 신비로운 조선의 김일성종합대학 중 후자를 선택했다. 한국은 언제라도 갈 수 있지만 이번이 인생에서 유일하게 북한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朝鲜街道边的彩色房子。 북한 도로변 도색된 건물 去年4月,她飞往朝鲜,从飞机上往下看朝鲜,满眼是五彩斑斓的小房子,朝鲜市民每个季节都会自发刷一次墙,让墙体时常变换颜色,“朝鲜的建筑让我想到北欧国家”,飞机上一位做生意的大叔对慧琦说。
작년 4월 후이치가 북한행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 봤을 때, 여러 가지 색으로 도색된 집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북한 주민들은 계절마다 색깔을 바꿔가며 자발적으로 도색을 한다.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갔던 사업을 한다는 아저씨는 “북한 건물들이 북유럽 국가를 연상시킨다”고 말씀하셨었다.
五颜六色的建筑渐渐显出轮廓,细节也慢慢清晰,最后,伴着飞机与地面摩擦的噪音,193天的倒计时开始,魔幻朝鲜就在眼前。
여러 색깔의 건물들의 윤곽이 차츰 드러나고 구체적인 모습도 점점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비행기의 지면 마찰음과 함께 193일에 걸친 유학 생활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신비로운 북한이 눈 앞에 펼쳐진 것이다.
以下是慧琦的自述。
다음은 후이치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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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日成综合大学门口。 김일성종합대학 교문 △学校环境。 캠퍼스 我交换的学校是位于首都平壤的金日成综合大学,它是朝鲜最高学府,朝鲜前领导人金正日曾在这里读书。学校非常大,一进门是金日成的雕像,校园的绿化非常好,在路上经常能碰到小松鼠和鸟,给人的感觉像大庄园。
내가 교환학생으로 간 학교는 수도 평양에 위치한 김일성종합대학으로 전임 북한 지도자 김정일이 다녔던 북한 최고 학부이다. 학교는 매우 컸으며 교문에 들어서자 마자 김일성 동상이 있었다. 녹음이 우거진 캠퍼스에서는 종종 다람쥐와 새를 만나볼 수 있어 대규모 정원에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学校有电子图书馆和纸质书老图书馆,它们连通在一起。其中电子图书馆是由朝鲜设计师设计而成,它可以联网,使用的是朝鲜内部的网络,电脑是Win7系统。游泳馆的设施是国家级的,有国际标准泳道,还有跳水台。
교내에는 전자도서관과 전통적인 종이책 도서관이 있었으며, 이 두 곳은 연결되어 있었다. 북한 건축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전자도서관은 북한 인트라넷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컴퓨터는 Win7을 사용했다. 수영장은 국제규격의 레인과 다이빙대를 갖춘 국가대표급 시설이었다.
△校园内的标语,用革命性的攻势,用尽全力建设社会主义强国。 교내 표어. 혁명적인 총공세로 최선을 다해 사회주의 강국 건설 校园里的石头上刻着“学习就是战斗”的标语,教学楼顶上是一排红字“伟大的金日成和金正日永远与你同在”,这排字晚上会亮,领导人的名字还会特定地放大,我们从宿舍都可以看到这一排字。
교내 돌 위에는 “공부가 바로 전투다”라는 표어가 새겨져 있었으며, 강의동 꼭대기에는 “위대한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가 영원히 당신과 함께 한다”라는 한 줄의 붉은 글씨가 밤이 되면 불이 밝혀졌다. 지도자들의 이름이 특히 더 컸고 우리 기숙사에서도 볼 수 있었다.
△同宿生与留学博士生毕业时在金日成雕像前合影。 김일성 동상 앞에서 찍은 숙우(宿友)와 박사유학생 졸업 기념 사진 △放学的中学生。 하교하는 중학생 朝鲜本地学生要佩戴徽章,上面是领导人的头像。所有的成年女性要求穿裙子一定要及膝,几乎每条街道都会有人检查穿着。如果从正门进校园的话,需要向金日成的雕像鞠躬,但是我们经常抄近道去教学楼,也就没有做过这样的事。
북한 학생들이 착용해야 하는 배지의 위쪽에는 지도자의 두상이 있었다. 모든 성인 여성들의 치마 길이는 반드시 무릎까지 내려와야 했으며, 거의 모든 거리마다 복장 검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학교 정문을 통과할 때는 김일성 동상에 허리를 굽혀 인사해야 했지만, 늘 지름길로 강의동으로 갔기 때문에 동상에 인사를 한 적은 없었다.
△70多岁的教会话课的朝鲜老师。 70세가 넘은 회화수업 북한선생님 留学生在单独的教学楼里上课,不与朝鲜本地的学生一起。走在路上本地学生不会跟我们搭话,更不允许与留学生谈恋爱,听说有个朝鲜人和留学生谈恋爱了,后来那位同学被金大宿舍开除了。
유학생들은 북한 학생들과는 다른 독립된 강의동에서 수업을 받았다. 길에서도 북한 학생들은 우리에게 말을 걸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유학생과의 연애 또한 금지되어 있었다. 유학생과 연애했던 북한 학생이 김일성대학 기숙사에서 쫒겨났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金大没有社团,多数时间都在学习。我们在学校里学讲读、会话、语法、地理、写作等几门课程,周一到周六的上午上课,其他时间用来写作业或者休息。作为最高学府,金大有一部分老师出过国,思想也会相对比较开放。
김일성대학에는 동아리가 없었으며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공부에 할애했다. 강독 회화 문법 지리 작문 등 수업을 들었는데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까지 수업을 했으며, 나머지 시간에는 작문 숙제를 하거나 휴식을 취했다. 최고 학부인 김일성대학인지라 유학을 다녀온 선생님들이 일부 계셔서 상대적으로 사고가 개방적인 편이었다.
△中国留学生与朝鲜老师合影。 중국유학생들과 북한 선생님 朝鲜的学生和公费留学生在金大读书是全免费,政府提供最好的住宿条件和教育资源。学校对公派留学生很优待,我们有由政府提供的500美元奖学金,其中有250美元是住宿和吃饭的补贴。食堂的三餐会经常变换菜式,一般都有四菜一汤,我吃胖了七八斤。如果平时在食堂吃腻了,我们还会出去找地方吃饭,汉堡、麻辣烫、烤肉、火锅都有,火锅还是北京的铜锅。
김일성대학의 북한 학생들과 국비 유학생들은 전액 면제로 정부가 최상의 주거 환경과 교육 자원을 제공해주었다. 학교측의 특별 배려로 국비유학생들은 정부 지급 장학금 500달러를 받았으며, 그 중 250달러는 기숙사비와 식비 보조금이었다. 보통 반찬 4가지와 국 하나로 구성된 식당 메뉴가 끼니마다 다양하게 잘 나오는 바람에 4~5kg 정도 몸무게가 늘어났다. 식당밥에 질리면 밖에서 먹기도 했는데 햄버거 마라탕 불고기 훠궈 등이 있었으며, 특히 훠궈는 구리솥에 먹는 베이징식 이었다.
△宿舍的床。 기숙사 침대 宿舍有点像宾馆,每个人都有单人床,在三楼的生活区还配有厨具,烤箱、微波炉等,还有电视,可以看到部分国内的电视剧。我们不能上朝鲜的内网,需要购买昂贵的可上网的电话卡上外网,200美元办一张,或者去中国驻朝鲜大使馆蹭网,但也只能用小部分app,所以大部分时候我们较少用网络。
기숙사는 약간 호텔 비슷하게 1인용 침대를 사용했으며, 3층 공동생활구역에는 주방기구 오븐 전자레인지 등이 있었고 텔레비전이 있어 일부 국내 드라마를 시청할 수 있었다. 북한 인트라넷에 접속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인터넷 사용이 가능한 비싼 전화카드를 200달러를 주고 구입해야 했다. 혹은 주북한 중국대사관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도 있지만 소수의 몇몇 app만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거의 인터넷을 하지 않았다.
记得有一天宿舍空调坏了,我热得睡不着,在楼下跟超市的姐姐说了一下,然后学校马上就派人修好了空调。
한 번은 기숙사 에어컨이 고장나 더위에 잠을 못 이루다가 아래층 수퍼마켓 누나에게 말했더니 학교에서 바로 사람을 보내줘 고쳐준 적도 있다.
△宿舍楼。 기숙사 건물 学校有同宿生制度,校方会挑出一些根正苗红的朝鲜学生作我们的学伴,他们大多是家庭富裕的孩子或者官员子女,且成绩优异,是金日成大学很优秀的学生。他们与留学生们在同一栋宿舍的不同楼层,负责帮助我们的学习和生活,也有监视的作用。每隔一段时间还会换一批同宿生,换了之后的同宿生不能再联系我们,因为会有被定为叛国罪的危险。
기숙사에는 숙우(宿友) 제도가 있었다. 즉 학교측이 출신성분이 좋은 북한 학생들을 숙우로 배정해주는 것이었는데, 대부분 부유층이나 정부관료 자녀들로 성적도 우수한 김일성대학 우등생들이었다. 이들은 우리와 같은 기숙사 건물 내 다른 층에서 생활하면서 우리의 공부와 생활을 도와주었고 감시하는 역할도 했다. 숙우는 일정 간격으로 바뀌었으며, 전임 숙우들은 더 이상 우리와 연락을 할 수 없었다. 반역죄 판정을 받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除了同宿生之外,我们也不能接触到其他朝鲜本地学生。同宿生每天过来宿舍串门,会问我们去了哪里、干了什么,有些严重的,甚至会看你的手机,或删你的照片。
우리는 숙우를 제외한 다른 북한 학생들과는 접촉할 수 없었다. 매일 숙우가 기숙사로 놀러 와 어디 가고 싶은 지, 뭐 하고 싶은 지 물어봤다. 심할 경우에는 우리 휴대폰을 본다거나 사진을 삭제하기도 했다.
△欧美留学生与同宿生。 서양 유학생과 숙우 在学校里,也有一些来自法国的、瑞典、澳大利亚、越南、老挝等国家的留学生。我的前桌是一位来自瑞典的男同学,他是瑞典第一个来朝鲜留学的人。他在瑞典学过朝鲜语,曾经来这里旅行过,后来决定来留学。第一天上学时,他穿得非常正式,穿了西装,还戴着胸章,我们问他为什么穿得这么夸张,他说是同宿生告诉他要穿成这样的。
학교에는 프랑스 스웨덴 호주 베트남 라오스 등의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도 있었다. 우리 앞자리 학생은 스웨덴 남학생으로 스웨덴 최초의 북한유학생이었다. 스웨덴에서 북한말을 배운 적이 있고 북한 여행도 했었다가 나중에 유학을 오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첫 날 양복을 쫙 빼입고 배지까지 달고 수업을 왔길래 왜 이렇게 거창하게 차려 입고 왔냐고 물었더니 숙우가 그래야 한다고 했다고 말했었다. △慧琦与欧洲留学生。 후이치와 유럽유학생 我的同宿生姐姐尹珍(化名)比较特别,她从小在北京长大,高中毕业以后才回朝鲜读大学。她原本可以选择留在北京,但是她依然想回到自己的国家,为国家做一些贡献,这大概源于他们的爱国教育。
내 숙우인 윤진언니(가명)는 좀 특이한 경우였다. 언니는 어렸을 때부터 베이징에서 살다가 고등학교 졸업 후에야 북한에 돌아와 대학에 진학했다. 원래 베이징에 계속 남아 있을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조국으로 돌아와 국가를 위해 공헌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아마 북한 애국교육의 영향인 것 같다.
有一次,学校组织我们统一去参观锦绣山太阳宫,是朝鲜已故最高领导人金日成、金正日的陵墓。我们进到灵堂里面,灯光是暗红色的,灵堂里放着《金日成将军之歌》、《金正日将军之歌》,旁边有军人守卫,每个人都要对着领导人遗体的三个方向鞠躬,去参观的朝鲜人觉得那刻无上光荣,会激动地流泪。他们对领导人的尊敬,超乎想象。
한 번은 학교에서 금수산 태양궁 단체 참배한 적이 있었는데, 이곳은 작고한 북한 최고 지도자 김일성과 김정일의 시신이 안치된 곳이다. 어두운 붉은 조명이 켜진 분향소에 들어서자 《김일성 장군의 노래》와 《김정일 장군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옆에는 군인들이 지켜서 있었다. 모든 사람들은 두 지도자의 시신 및 동상을 향해 허리를 굽혀 참배를 해야 했다. 북한 사람들은 그 순간을 무한한 영광으로 여겨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지도자에 대한 그들의 존경심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平壤外国语大学贝斯手。 평양외국어대학 베이시스트 朝鲜也有自己的乐队,只不过朝鲜的流行乐主题大多都是歌颂祖国,几乎没有关于私人情感的。私下里,我会给同宿生科普民谣、摇滚乐。朝鲜人是不允许听韩国歌的,但我在宿舍会放韩国乐队的歌,同宿生来房间找我,就无可奈何地得听到,她们会说,“韩国的音乐就是这样,很没有内涵”。
북한에도 음악 그룹이 있다. 다만 북한 유행가들은 대부분 조국 찬양에 관한 것들이고 개인 감정에 관한 것은 거의 없다. 사석에서 숙우에게 가요와 로큰롤을 전파하기도 했다. 북한 사람들의 한국 가요 청취가 금지되어 있기는 하지만 기숙사에서 내가 한국 그룹의 노래를 틀어 놓으면 나를 찾아온 숙우 언니는 할 수 없이 듣게 될 수 밖에 없었다. 언니는 “한국 음악이 그렇지, 깊이가 없어”라고 말하고는 했다. △慧琦在宿舍阳台。 기숙사 베란다에서 偶尔我会和同宿姐姐闲聊,聊到恋爱的话题,我说你那么优秀,那么多人追你,怎么不谈恋爱?她说,”自从中国男明星曾小贤出轨后就再也不相信爱情了”。我才发现原来大家都会有感情的烦恼,也会为考试焦虑,这些方面其实大家都一样。
어쩌다가 언니와 수다를 떨다가 연애 이야기를 하게 되었을 때 “이렇게 똑똑하고 쫓아다니는 남자도 많은데 왜 연애 안 해요?”라고 묻자, “중국 스타 쩡샤오셴(曾小贤) 불륜 이후 더 이상 사랑을 믿지 않아”라고 대답했었다. 그때서야 다들 사랑 때문에 고민하고 시험 때문에 초조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이런 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在我们走之前,留了一些物品作为礼物送给同宿生姐姐们,她们当时收了,还说谢谢。送机那天一位同宿生来找我,“你是班长,给你们的礼物就交给你吧。”我当时很感动。那个包裹包得特别严实,用胶布裹了好几层,拆了之后我发现里面就是当初我们送给他们的礼物。虽然我们平时都以姐姐妹妹相称,他们可能也想和我们好好相处,但因为有“任务”在身,不能把外国人当作好朋友对待。
떠나기 전 숙우 언니들에게 선물을 했고 언니들은 고맙다며 받았었다. 배웅하는 날 한 숙우가 내게 “네가 반장이니까 너희에게 주는 선물을 너에게 줄게”라고 하길래 무척 감동했었다. 선물 보따리는 무척 튼튼하게 포장되어 테이프로 여러 겹 감싸져 있었다. 포장을 푼 후 나는 그 내용물들이 바로 우리가 그들에게 준 선물인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평소에 우리가 자매처럼 지냈고 그들도 우리와 잘 지내려고 했겠지만, 결국 “임무”였던 것이지 외국인을 친구처럼 대할 수는 없었던 것이었다.
△金日成广场。 김일성 광장 △慧琦和学姐在未来科学家大街。 미래과학자거리에서 선배언니와 함께 平壤的地铁卡只要5000朝(折合人民币5元)一张,可以搭乘120次,我经常会出去学校玩。除了军事地区,手持学生证的留学生可以在平壤市内自由活动,但偶尔也会被查学生证。平壤有夜店,像我们的老年迪斯科一样,里面有很炫的灯,会放一些英文歌,只有外国人可以去,大家聚在比较大的房间里一起跳舞。
평양의 지하철카드는 1장에 5000원(RMB 5위안) 밖에 안하며 120회 탑승할 수 있기 때문에 자주 학교 밖으로 놀러 다녔다. 학생증을 소지한 유학생은 군사지구를 제외한 평양 시내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간혹 학생증 검사를 당하기도 했다. 평양에도 야간 유흥업소가 있다. 중국의 옛날 디스코처럼 현란한 조명 아래에서 팝송을 틀어주기도 하지만 외국인만 출입이 가능하고 다들 좀 큰 방에 모여 함께 춤을 춘다.
△动物园门口。 동물원 입구 凯旋青年公园,里面有跳楼机、过山车。我们也会结伴去射击、打保龄球、K歌、打台球。我在朝鲜爱上了打台球,台球厅就在高丽饭店里,台球厅里都是一些阿姨们,她们穿着包臀的裙子教你打台球,我第一次觉得打台球原来可以这么优雅。
개선청년공원에는 자이로드롭과 롤러코스터가 있다. 함께 사격 볼링 노래방 당구를 즐기기도 했다. 북한에서 당구를 좋아하게 되었다. 당구장은 고려호텔에 있으며 내부에 이모님들만 계신데 랩스커트를 입고 당구를 가르쳐 주신다. 처음으로 당구 치는 모습이 이렇게 우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慧琦常散步的街道。 늘 산책하던 길 我自己平时很喜欢散步,我记得有一次从大学旁边的商店走出来,天特别特别蓝,街道很干净,两旁的树高大笔直,非常绿,好像走在新海诚的动漫里。那条街是不通车的,很清净,因为金正日和金日成的遗体曾经从那条路经过。有一次,我往锦绣山太阳宫的方向走,当时听着音乐非常嗨,突然被街上的协管军人拦下了,他身上有枪,我当时吓得不行,说对不起我只是散步,然后他就跟队长转达了,也没有再为难我。那次我应该是超出了散步的规定范围,到了禁区。
평소 산책을 좋아한다. 언젠가 학교 옆 상점을 나섰는데 하늘이 정말 정말 파랗고, 길이 깨끗하고, 도로 옆 가로수가 하늘 높이 곧게 뻗어 있고 무척이나 푸르렀다. 마치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 속에서 거닐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 길은 김정일과 김일성의 시신이 지나갔었던 길이라 차량 통행이 금지되어 무척 청결했다. 한 번은 금수산 태양궁 방향으로 걸으면서 음악을 듣다가 너무 업 된 바람에 갑자기 거리 관리 군인에게 걸린 적이 있었다. 총기를 소지한 군인을 보고 엄청나게 놀랐었다. 미안하다고, 그냥 산책 중이었다고 말하자 대장에게 보고하더니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다. 그 때 산책 규정 범위를 벗어나 금지구역에 간 것이었을 것이다.
△学姐们在清凉饮料前吃紫菜饭。 청량음료 앞에서 김밥 먹는 선배언니들 我也会散步去清凉亭买东西,类似便利店的地方,那个地方很神奇,我想要什么都能找出来。有次我去买面粉,店里没有,店里的人打了一通电话,一位老奶奶就背着面粉过来了。还有一次,我在平壤街头见到一个地方门外写着“情报技术交流所”的地方,壮着胆子进去后,发现是卖衣服和香水的。
물건 사러 청량정(亭)까지 걸어가기도 했다. 청량정은 편의점 비슷한데 무척 신기한 곳이다.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그 곳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한 번은 밀가루를 사려는데 상점에 없었다. 점원이 전화를 한 통 하니 할머니 한 분이 밀가루를 짊어지고 오셨었다. 또 한 번은 평양 거리에서 문 밖에 “정보 기술 교류소”라고 쓰여져 있는 것을 보고 용감하게 들어가 봤더니 옷과 향수는 파는 상점이었다.
△朝鲜人民在地铁站看报纸。 지하철역에서 신문을 읽는 북한 사람들 在朝鲜市面上流通的主要货币有朝币、美元、人民币还有欧元,在小的便利店都用朝币,饭店、服装店等会用美元和人民币。如果我们带朝币出门的话,最少都得带10万朝以上,揣在兜里厚厚的一塌钱,觉得好富有。本地的商品都比较便宜,但进口商品会比较贵,比如可乐2美元一罐。我在朝鲜没有见到银行,通常在宿舍里的超市姐姐那里换朝币。
북한에서 유통되는 주요 화폐는 북한 화폐, 달러, 인민폐 그리고 유로이다. 소규모 편의점에서는 모두 북한 화폐를 사용하고, 식당 옷가게 등에서는 달러와 인민폐를 사용한다. 북한 화폐를 가지고 외출한다면 최소한 10만원 이상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 두툼한 지폐 뭉치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부자가 된 느낌이 들었다. 북한 상품은 비교적 저렴하지만 수입 상품은 비싼 편이었다. 콜라가 한 캔에 2달러였다. 북한에서 은행을 본 적이 없다. 보통 기숙사 슈퍼마켓 언니가 환전을 해줬다.
△仓田大街。 창전거리 平壤人的日常生活也很鲜活,家庭成员会一起出去野餐,他们会拿一个小音响,地上放着饭菜,然后开始跳舞唱歌,我觉得他们还挺快乐的。平壤大多数人都有手机,有钱人甚至有好几部手机,有人使用苹果最新款手机,还有华为、小米、OPPO和一些朝鲜国产的品牌手机,他们大多用来打电话、看电影,我也在地铁里看到过有人玩类似《滑雪大冒险》的手游。
평양 사람들의 일상 생활 또한 생동감이 있었다. 가족들이 함께 소풍을 가면 소형 음향기기를 가지고 가 바닥에 음식을 놓고는 춤 추고 노래를 불렀는데 무척 즐거워 보였다. 대부분의 평양 사람들은 휴대폰을 가지고 있으며, 부유한 사람은 심지어 여러 대를 가지고 있었다. 최신 아이폰을 사용하는 사람도 있었고, 화웨이(华为) 샤오미(小米) OPPO 및 북한 국내 브랜드 휴대폰을 사용하기도 했다. 대부분은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거나 영화를 감상했다. 나도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Ski Safari》와 유사한 게임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牡丹峰脚下运动场。 모란봉 기슭 경기장 我在路上碰到很多小孩,放学的路上看到有杂草就会去拔,没有规定,他们很自觉地去做。平壤的街道非常干净,没有人会往草地上扔垃圾。
하교길에 잡초가 보이면 뽑는 아이들을 길에서 본 적이 매우 많았다. 규정은 없지만 무척 자발적으로 잡초를 뽑았다. 그래서인지 평양의 거리는 매우 깨끗했으며 잔디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없었다.
△街道旁的孩子们。 길거리에서 만난 아이들 朝鲜的部分居民对外国人有一些固有的偏见,他们看到外国人会走远一点,有的父母看到小孩也会让他们离我们远一点。但也有一些孩子碰到我们时,会用中文说“你好”、“我爱你”。
일부 북한 주민들은 외국인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있기도 했다. 외국인을 보면 멀리 도망 갔으며, 어떤 부모들은 아이들한테도 외국에게서 멀리 떨어지라고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우리를 보고 중국어로 “안녕” “사랑해요”라고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有一次,我跟室友从宿舍门口出来,那天傍晚看到好多穿着军服的人,我不确定是不是军人,因为朝鲜许多人都会服兵役。他们排成好长的队伍,举着朝鲜旗帜路过宿舍,看到我们,跟我们说“你好,你好”,我甚至看不清他们的脸,因为天已经快黑了,可是我还记得声音和那面旗,我们很感动。
한 번은 룸메이트와 기숙사를 나섰는데 그 날 저녁 무렵 군복을 입은 사람들을 무척 많이 봤었다. 많은 북한 사람들이 군대를 가기 때문에 그들이 군인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길게 대오를 갖추고 북한 깃발을 든 채 기숙사를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를 보더니 “안녕, 안녕”이라고 하는데 날이 이미 어두워지고 있어서 얼굴도 제대로 못 봤지만 감동적이었던 그 음성과 깃발을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姚明在中朝篮球友谊赛现场。 북중 농구친선경기에서의 야오밍 朝鲜的电视上可以看到中国的节目,有次我们在饭店吃饭的时候,电视里在放李易峰唱歌,觉得太亲切了。朝鲜人还特别迷中国的电视剧《红高粱》和《妇产科医生》,可能因为他们本土的电视剧朝鲜的电视上可以看到中国的节目,有次我们在饭店吃饭的时候,电视里在放李易峰唱歌,觉得太亲切了。朝鲜人还特别迷中国的电视剧《红高粱》和《妇产科医生》,可能因为他们本土的电视剧都比较无趣吧,都是农村青年建设家乡之类的,比较偏大爱。中国的明星在朝鲜也很火,有次我老师在课上问我周迅有没有整容,超市的服务员姐姐问我佟丽娅到底有没有结婚。中朝篮球友谊赛时,中国驻朝鲜大使馆邀请我们一起去看比赛,姚明还去了现场。
북한 텔레비전에서 중국 프로그램을 볼 수 있었다. 한 번은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텔레비전에서 리이펑(李易峰)이 노래를 부르고 있길래 무척 친근하게 느꼈던 적이 있었다. 북한 사람들은 중국 드라마 《홍고량(红高粱)》과 《산부인과 의사(妇产科医生)》를 무척 좋아한다. 아마도 북한 드라마가 죄다 농촌 청년 새마을 운동 성공기 종류라서 대체로 희생정신을 강조하는터라 좀 재미가 없기 때문인 것 같았다. 중국 스타들은 북한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한 번은 선생님께서 수업 중에 저우쉰(周迅)이 성형을 했는지 물어보신 적이 있었다. 슈퍼마켓 점원 언니는 동리야(佟丽娅)의 결혼 여부를 물어보기도 했었다. 주북한 중국대사관의 초대로 유학생들이 북중 농구친선경기를 관람한 적이 있었는데 야오밍도 왔었다.
△平壤的主体思想塔。 평양 주체사상탑 朝鲜人每天只能靠官方的报纸或者广播来获得消息,2018年6月12日,特朗普和金正恩在新加坡第一次会晤,我们已经可以在网上看到消息了,他们会来问我们。老师也问过我去北京的机票的费用这类问题,其实他们都很渴望了解外面的世界。
북한 사람들은 매일 관영지나 관영방송을 통해서만 정보를 취득한다. 2018년 6월 12일 트럼프와 김정일의 싱가폴 1차 회담에 대해 우리는 이미 인터넷을 통해 알고 있었는데 북한 사람들은 우리에게 물어봤다. 선생님 또한 베이징행 비행기표의 가격 등과 같은 질문을 하셨었는데, 사실 그들은 모두 외부 세계를 무척이나 알고 싶어했던 것이다.
我记得暑假的时候,北大有代表团过来,团里的叔叔说:“几年前来朝鲜的时候感觉到他们都很快乐,你可能会觉得他们在这种制度下应该活得不怎么样吧,但发现每个人的脸上都洋溢着幸福。这次来看,他们好像又多了一份麻木。”我觉得说得挺对的,朝鲜经济在开放,外来信息在增多,但是思想却还一直被把控着。
여름 방학 때 베이징대 대표단이 방문했던 기억이 있다. 그 때 대표단의 한 아저씨께서 “몇 년 전 북한에 왔을 때는 다들 행복해 보였었다. 어쩌면 이런 제도 하에서 사는게 별로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모든 사람의 얼굴에 행복이 넘치는 것을 발견했었다. 이번에 와서 보니 다들 또 좀 더 경직된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었다. 이 말씀이 정말 맞는 것 같다. 북한 경제가 개방되고 있고 외부로부터의 정보가 증가하고 있지만, 사상은 여전히 제약 당하고 있었다.
△朝鲜建国70周年庆典邀请函。 북한 건국 70주년 기념식 초대장 △朝鲜建国70周年当天的报纸。 북한 건국 70주년 당일 신문 보도 2018年9月9日,朝鲜举行建国七十周年庆典,我们在平壤五一体育场里看现场表演,很幸运被请到主席台旁边,金正恩一出来,整个广场的人都在喊万岁,底下是十万人的游行队伍,有的推着金日成和金正日的雕像,有的挥舞着旗帜,有的举着现代化技术的物件,他们都走着跳跃式的步子,看上去很震撼。
2018년 9월 9일은 북한 건국 70주년 기념 행사가 열리는 날이었다. 우리는 평양 5·1 경기장에서 현장 관람했는데 다행히도 본부석 옆에 앉을 수 있었다. 김정은이 나오자 전체 광장 안의 사람들이 모두 만세를 외쳤고 아래쪽에는 10만 대오의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김일성과 김정은 동상을 미는 사람들, 깃발을 휘두르는 사람들, 현대 기술의 결과물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들의 도약하는 듯한 북한 군대식 발걸음은 전율을 불러일으켰었다.
庆典现场是不能拍照的,我们过了两次安检,全部电子设备都被没收,所以也没有拍照,我特地去邮票纪念馆买了朝鲜建国七十周年限量版的邮票,还收藏了一份阅兵当天的报纸。
행사장에서는 촬영 금지였기 때문에 두 번에 걸친 보안 검색 후 모든 전자장치를 몰수 당해서 사직을 찍지 못했다. 그래서 특별히 우표기념관에서 북한 건국 70주년 한정판 우표를 구입하고 열병식 당일 신문을 수집했다.
△成均馆大学遗址讲解员。 성균관대학 유적 해설사 △慧琦在金刚山。 금강산에서 在平壤市区之外的地区都不能独自出去,我们班有集体组织去金刚山、东海等景点旅行,和同学们一起看到了许多无人的美景。
평양시 이외의 지역은 단독으로 갈 수 없다. 우리 반에서 단체로 금강산과 동해 등 관광명소를 갔는데 학우들과 함께 인적이 없는 아름다운 풍경을 많이 감상할 수 있었다.
△同学们一起去旅行。 학우들과의 여행 虽然身处在朝鲜时也有抱怨过,但离开后,我和同学时常怀念那里的生活。因为朝鲜的网络不便,我和朋友的相处回到了最传统的方式,每天朝夕相处,也不用微信,连电话也很少打。我去敲你的门,然后进去坐一坐,或者口头约好某个时间出门。我们会在阳台上唱歌、弹吉他,也会一起去散步、聊天,通过聊天把自己当下的负能量化解掉。这七个月与同学的相处抵得上在国内的四年,这样的环境让我们能沉下心来好好去了解彼此,也让我有了更多思考的时间,而不是整天面对外界涌来的大量信息。
비록 북한에 있을 때는 불평을 하기도 했지만 막상 떠나고 나니 다들 종종 그 곳에서의 생활을 그리워 한다. 인터넷 사용이 불편한 북한에서는 친구들과의 관계가 가장 전통적인 방식으로 되돌아가 매일 아침 저녁으로 함께 하지만 위쳇을 하지도 않고 전화도 거의 사용하지 않았었다. 문을 노크하고 들어가 같이 좀 앉아서 이야기 하거나, 혹은 언제 외출하자고 구두로 약속을 하고는 했었다. 우리는 함께 베란다에서 노래를 부르고 기타를 쳤으며, 또 함께 산책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 이야기를 해가며 당시 자신의 부정적인 에너지를 없애고는 했었다. 7개월에 걸친 친구들과의 생활은 국내에서는 4년보다 값진 것이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우리는 하루 종일 외부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대량의 정보를 맞닥뜨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가라앉히고 좀 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으며, 또한 더 많은 생각의 시간을 갖을 수 있었다.
我总会想起一句话,“她还太年轻,尚不知道回忆总是会抹去坏的,夸大好的,也正是由于这种玄妙,我们才得以承担过去的重负。”回来之后,看到在那里喝过的一种豆奶,或者走到一条安静的街,看到相似的树时,我会想起朝鲜的那些景象和那段时光。
늘 이 한 마디가 생각이 난다. “아직 많이 어려. 아직 나쁜 추억은 희석되고 좋은 추억만 과장되게 기억된다는 것을 몰라. 하지만 바로 이러한 기묘함 때문에 우리는 과거의 큰 짐을 짊어질 수 있는거야.” 귀국 후 그 곳에서 마셨었던 두유를 보거나, 조용한 거리를 걷거나, 혹은 비슷한 나무를 보면 난 늘 북한의 그 풍경들과 그 시간들이 기억에서 떠오른다.
口述| 慧琦撰稿 | 羽祺图片 | 慧琦、夏小满、王仪编辑 | 图拉实习生 | 周宁、倪婉如凤凰新闻客户端 凤凰网在人间工作室出品
구술: 후이치 원고: 위치(羽祺) 사진: 후이치, 샤샤오만(夏小满), 왕이(王仪) 편집: 투라(图拉) 인턴: 저우닝(周宁), 니완루(倪婉如) 봉황 뉴스 클라이언트 봉황망 재인간공작실 출품 [
번역 저작권자: 뉴스프로, 번역 기사 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출처를 반드시 밝혀 주십시오.]
[저작권자: 뉴스프로, 기사 전문 혹은 부분을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십시오.] https://thenewspro.org/2019/09/24/the-story-of-a-chinese-exchange-student-at-kim-il-sung-university/?fbclid=IwAR0AYEM64eoGJZcdRvoEPQXiRBf5mj1sj4Z4hKbvO1U_hVdDmruGTMgQhZ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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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 뉴스프로, 기사 전문 혹은 부분을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십시오.] https://thenewspro.org/2019/09/24/the-story-of-a-chinese-exchange-student-at-kim-il-sung-university/?fbclid=IwAR0AYEM64eoGJZcdRvoEPQXiRBf5mj1sj4Z4hKbvO1U_hVdDmruGTMgQhZ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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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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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글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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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대학교에서 국어를 공부한 후이치는 공적유학 교환 프로그램 통보를 받고 경희대학교와 김일성대학교 중 하나를 선택했는데 하나는 서조선, 다른 하나는 신비한 북한이다. . 그녀의 견해에 따르면, 남한은 언제든지 갈 수 있으며 북한에 대해 더 많이 배우기 위해 그녀의 인생에서 이번 기회가 있을 수 있습니다.
△북한 거리의 형형색색의 집들.
지난해 4월 그녀는 비행기를 타고 북한으로 날아가 비행기에서 북한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알록달록한 작은 집들이 가득했다. 북한 주민들은 계절마다 한 번씩 자발적으로 벽에 페인트를 칠해 색을 바꾸곤 했다. 북한의 건축 양식은 북유럽 국가를 연상시킨다"고 혜기로 가는 비행기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삼촌이 말했다.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점차 윤곽을 드러내고, 조금씩 디테일이 선명해지며, 마침내 비행기가 땅에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193일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마법의 북한이 눈앞에 펼쳐졌다.
다음은 Hui Qi의 이야기입니다.

△ 김일성종합대학 입구.
△학교환경.
내가 교환한 학교는 수도 평양에 있는 김일성종합대학으로, 북한에서 가장 높은 기관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곳에서 공부했다. 학교가 엄청 크네요 입구에 들어서면 김일성 동상이 있고 캠퍼스의 녹지가 아주 좋습니다 길에서 종종 작은 다람쥐와 새들을 만날 수 있어 큰 장원 같은 느낌을 줍니다.
학교에는 전자 도서관과 종이 책이 있는 오래된 도서관이 있으며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중 전자도서관은 북한 디자이너가 설계한 것으로 북한 내부망을 이용해 인터넷에 연결할 수 있고 컴퓨터는 Win7 시스템이다. 수영장 시설은 국제 표준 수영 레인과 다이빙 플랫폼을 갖춘 국내 시설입니다.
△ 캠퍼스 슬로건은 사회주의 강국 건설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혁명적 공세를 내세우고 있다.
캠퍼스의 돌에는 "배움은 싸우는 것이다"라는 슬로건이 새겨져 있고, 교무실 꼭대기에는 "위대한 김일성, 김정일이 항상 함께할 것이다"라는 붉은 글씨가 줄지어 서 있어 이 타이포그래피가 빛날 것이다. 밤이 되면 리더의 이름도 구체적으로 확대되는데, 기숙사에서 이 타이포그래피를 볼 수 있다.


△ 70세 북한교회 어학연수 교사.
국제학생들은 북한학생들이 아닌 별도의 건물에서 수업을 듣습니다. 길에서 현지 학생들은 우리에게 말을 걸지 않고 외국인 학생들과 사랑에 빠졌습니다.북한이 유학생과 사랑에 빠졌다고 들었습니다.그 학생은 나중에 진다 기숙사에서 퇴학 시켰습니다.
진다는 동아리가 없고 대부분의 시간을 공부에 보낸다. 우리는 강의, 회화, 문법, 지리, 쓰기 등과 같은 학교에서 여러 과목을 배웁니다. 우리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에 수업을 하고 나머지 시간을 숙제나 휴식으로 보냅니다. 고등 교육 기관의 최상위 기관으로서 진다대학교의 일부 교사들은 해외에 나가 있으며 그들의 생각은 비교적 개방적일 것입니다.

△중국 학생들과 북한 교사들의 단체 사진.
북한 학생들과 국비 유학생들이 진다대학교에서 무료로 공부하고 있으며, 정부는 최고의 숙소와 교육 자원을 제공합니다. 본교는 국비지원 유학생을 우대하고 있으며, 정부에서 500달러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그 중 250달러는 숙박비와 식비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매점의 세 끼 식사는 종종 접시를 바꾸는데, 보통 네 가지 요리와 한 개의 수프가 있고, 저는 7~8마리의 고양이를 먹었습니다. 카페테리아에서 먹다 지치면 외식할 곳을 찾게 되는데, 버거, 매운 훠궈, 바베큐, 훠궈, 훠궈는 여전히 북경동전골이다.

△기숙사 침대.
기숙사는 약간 호텔같고, 모두 싱글침대 1개, 3층 거실에는 주방용품, 오븐, 전자레인지 등이 구비되어 있고, TV도 있고, 국내 TV 시리즈도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의 인트라넷에 접속할 수 없습니다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값비싼 전화카드를 사야 합니다 카드를 사려면 미화 200달러가 필요합니다. 적은 수의 앱으로 인해 대부분의 경우 인터넷 사용이 적습니다.
어느날 기숙사 에어컨이 고장나서 너무 더워서 잠을 못잤던 기억이 납니다.. 아래층 슈퍼에서 언니와 이야기를 했더니 학교에서 바로 사람을 보내어 에어컨을 고쳤습니다.

△ 기숙사 건물.
학교는 휴학생제도로 뿌리가 깊은 북한 학생들을 학교 동반자로 선발할 예정이며 대부분 재벌가나 성적우수 관리들이고 김일성종합대학의 우수한 학생들이다. 그들은 유학생들과 같은 기숙사의 다른 층에 있으며 우리의 학업과 생활을 돕는 책임이 있으며 모니터링 역할도 있습니다. 가끔씩 동료학생들이 모여서 교대를 하고 나면 반역죄로 처벌받을 위기에 처해 다시 연락을 할 수 없습니다.
같은 하숙집에 있는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북한에서 온 다른 현지 학생들과도 연락할 수 없습니다. 동급생들은 매일 기숙사에 와서 우리가 어디에 있었는지,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심각한 경우에는 휴대폰을 보거나 사진을 삭제하기도 합니다.

△유럽 및 미국 학생 및 동료 학생.
△ Huiqi와 유럽 학생.
제 룸메이트 언니인 Yin Zhen(가명)은 아주 특별합니다. 그녀는 베이징에서 자랐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위해 북한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녀는 베이징에 머물기를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여전히 고국으로 돌아가 국가에 약간의 기여를 하고 싶었습니다. 아마도 그들의 애국적인 교육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한번은 학교에서 우리를 조직하여 고 김일성과 김정일 지도자의 묘인 금수산 태양궁전을 방문했습니다. 상당에 들어서자 불은 짙은 붉은색이었고, 상당에는 '김일성 장군의 노래'와 '김정일 장군의 노래'가 전시돼 있었다. 그 순간이 최고로 영광스럽고 흥분해서 울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지도자에 대한 그들의 존경심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평양외국어대학교 베이시스트.
북한에도 자체 밴드가 있지만 북한의 대중가요 주제는 대부분 조국에 대한 찬양이고 개인적인 감정은 거의 없다. 개인적으로 저는 민요와 록 음악을 학생들에게 대중화할 것입니다. 북한 사람들은 한국 노래를 들을 수 없지만 나는 기숙사에서 한국 밴드 노래를 연주할 것이다. 학생들이 나를 찾으러 내 방에 오면 들을 수 밖에 없다. 그들은 "한국 음악은 이대로는 아무 의미가 없어."

△ Huiqi는 기숙사 발코니에 있습니다.
가끔 같은 방에서 언니랑 수다떨기도 하고 사랑얘기 하기도 하고 너무 착하고 쫓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던데 사랑에 빠지지 않겠습니까? 그녀는 "중국 남자 스타 쩡샤오셴이 탈선한 이후로 더 이상 사랑을 믿지 않았다"고 말했다. 모든 사람이 시험에 대한 감정적 고민과 불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사실 이런 면은 모두가 똑같습니다.
떠나기 전에 같은 기숙생 자매들에게 선물로 몇 가지를 남겼는데,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비행 당일 룸메이트가 저에게 와서 "당신이 분대장이니 선물을 주세요." 패키지는 아주 촘촘하게 포장되어 있었고 테이프로 여러 겹으로 포장되어 있었는데 개봉해보니 우리가 그들에게 준 선물인 줄 알았습니다. 우리를 보통 자매라고 부르지만 그들도 우리와 어울리고 싶어하지만 몸에 '과제'가 있기 때문에 외국인을 좋은 친구로 대할 수 없습니다.

△ 김일성광장.

△ 후이치와 언니는 미래과학자 거리에 있다.
평양의 지하철 카드는 5,000왕조(5위안 상당)만 있으면 120번 갈 수 있습니다. 군사지역을 제외하고는 학생증을 소지한 유학생들이 평양에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지만 간혹 학생증을 확인하는 경우가 있다. 평양에는 나이트클럽이 있다 우리 옛 디스코장처럼 눈부신 조명과 영어 노래가 있다 외국인만 갈 수 있다 더 큰 방에 모두 모여 함께 춤을 춘다.

△동물원 입구.
트라이엄프 유스 파크에는 점프 머신과 롤러코스터가 있습니다. 같이 촬영도 하고 볼링도 치고 노래방도 하고 당구도 치러 가요. 나는 북한에서 당구 치는 것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당구장은 한국 호텔에 있습니다. 당구장에는 이모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엉덩이를 덮는 치마를 입고 당신에게 당구를 가르칩니다. 처음으로 나는 당구를 치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당구는 매우 우아할 수 있습니다.

△휘치가 자주 걷는 거리.
평소에는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언젠가 대학 옆 가게를 나갔던 기억이 납니다. 하늘은 특히 파랗고, 거리는 매우 깨끗하고, 양쪽의 나무는 키가 크고 곧고 매우 푸르고 마치 신을 걷는 것 같았습니다. 하이청의 애니메이션. 김정일과 김일성의 유해가 지나갔기 때문에 거리는 교통이 통제되고 매우 깨끗합니다. 한번은 금수산에 있는 태양궁을 향해 걸었다. 음악을 들으면서 매우 신이 났었다. 길에서 갑자기 길에서 보좌관에 의해 말을 멈췄다. 그의 몸에 총이 있었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미안했다. 내가 방금 산책을 했다고 그는 선장에게 말했고 더 이상 나를 부끄럽게 하지 않았다. 그 때 나는 정해진 도보 범위를 넘어서 제한 구역에 도달했어야 했다.

△시니어들은 시원한 음료를 마시기 전에 김밥을 먹는다.
나는 또한 물건을 사기 위해 칭가오에 걸어가는데, 편의점과 비슷한 곳, 그곳은 놀랍고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한번은 밀가루를 사러 갔는데 가게에 밀가루가 없어서 가게에서 전화가 와서 밀가루를 등에 업고 온 할머니. 또 한 번은 평양의 거리에서 문밖에 '정보기술교류센터'라고 적힌 곳을 보았는데 과감하게 들어가 보니 옷과 향수를 파는 곳이었다.

△북한 사람들이 지하철역에서 신문을 읽고 있다.
북한 시장에서 유통되는 주요 화폐는 한국화폐, 미화, 인민폐, 유로화 등이 있으며, 한국화폐는 소형 편의점에서 사용하고, 미화와 인민폐는 음식점과 의류매장에서 사용한다. 우리가 한국 화폐를 가지고 나가면 주머니에 엄청난 돈을 가지고 적어도 10만 위안을 가져와야 하고 부자가 된 기분입니다. 현지 상품은 더 저렴하지만 2달러에 콜라 한 캔과 같이 수입 상품이 더 비쌉니다. 북한에서 은행을 본 적도 없고, 보통 기숙사에 있는 슈퍼언니에서 한국화폐를 환전했다.

△창천 대로.
평양 사람들의 일상도 매우 활기차고 가족들이 함께 소풍을 나가고 작은 스테레오를 사용하고 바닥에 음식을 놓고 춤을 추고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꽤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평양 사람들은 대부분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고, 부자들은 심지어 여러 대의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Apple의 최신 휴대전화와 Huawei, Xiaomi, OPPO 및 일부 한국 브랜드 휴대전화를 사용합니다. 대부분은 전화를 걸고 영화를 볼 때 사용합니다. 지하철에서 '스키어드벤처' 같은 모바일 게임을 하는 사람도 봤다.

△무단봉 기슭의 운동장.
길에서 많은 아이들과 마주쳤는데 방과 후 길에 잡초를 뽑곤 했고 규칙도 없고 의식적으로 한다. 평양의 거리는 매우 깨끗하고 아무도 잔디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습니다.

△거리의 아이들.
일부 북한 주민들은 외국인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 외국인을 보면 조금 더 나아가고, 자녀를 보면 우리를 멀리하게 하는 부모도 있다. 그러나 어떤 아이들은 우리를 만나면 중국어로 "안녕하세요"와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한번은 룸메이트와 기숙사 문을 나서는데 그날 저녁에 군복을 입은 사람들을 많이 보았는데 북한에서 많은 사람들이 군복무를 할 것이기 때문에 군인인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긴 줄을 서서 태극기를 든 기숙사를 지나고 우리를 보더니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어두컴컴해서 얼굴조차 볼 수 없었지만 나는 아직도 우리를 기억한다 목소리와 깃발에 매우 감동합니다.

△ 중국과 북한의 친선농구 경기를 관람하고 있는 야오밍.
북한 TV에서 중국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데, 한번은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이이펑이 TV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너무 화기애애한 줄 알았다. 북한 사람들은 또한 중국 TV 드라마 "붉은 수수"와 "산부인과 의사"에 특히 매료되는데, 아마도 그들의 지역 TV 시리즈가 상대적으로 지루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중국 유명인사들도 북한에서 인기가 많아요. 한번은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Zhou Xun이 성형수술을 했냐고 물어보셨어요. 슈퍼마켓의 웨이터 언니가 저에게 Tong Liya가 결혼했냐고 물었습니다. 중국과 북한의 친선농구 경기 중 북한 주재 중국대사관에서 우리를 초청해 경기를 관람했고, 야오밍도 현장에 갔다.

△평양의 주체사상탑.
북한 사람들은 매일 뉴스를 접하기 위해 공식 신문이나 라디오에만 의존할 수 있습니다. 2018년 6월 12일 트럼프와 김정은이 싱가포르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우리는 이미 인터넷에서 뉴스를 볼 수 있고 그들이 올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물어보십시오. 선생님들께서 베이징행 비행기표 값에 대해서도 물어보셨는데, 사실 그들은 외부 세계에 대해 알고 싶어 하셨습니다.

여름방학 때 북경대학교 대표단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대표단의 삼촌은 “몇 년 전 북한에 왔을 때 북한 사람들이 매우 행복하다고 느꼈다. 이 체제하에서 잘살아요. , 하지만 모두의 얼굴에 행복이 가득 차 있는 걸 보니 이번에는 더 멍한 것 같아요 . "맞는 것 같아요. 북한 경제가 개방되고 대외 정보가 늘어나고 있는데 마음은 여전합니다. 통제하에 유지되었습니다.


△ 건국 70주년 경축행사 초청장.

△조선 건국 70주년 신문.
2018년 9월 9일 북한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 경축행사를 거행했고 평양 5·1경기장에서 라이브 공연을 관람했다. 운 좋게도 연단에 초청됐다. 10만 인파의 행진, 김일성·김정일 동상 밀기, 깃발을 휘날리는 깃발, 현대적 기술의 물건을 든 사람들이 모두 펄쩍펄쩍 뛰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매우 충격.
기념촬영은 불가합니다 2번의 보안검색대를 통과하고 모든 전자장비는 압수되어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북한의 건국, 또한 열병식의 날의 사본을 수집했습니다.신문.

△성균관대학교 현장안내.

△ 후이치가 킹콩산에 있다.
평양 이외의 지역은 혼자 갈 수 없습니다. 우리 반에서는 금강산, 동해 및 기타 명승지로 단체 여행을 조직했습니다. 반 친구들과 함께 우리는 많은 무인도 풍경을 보았습니다.

△학생들이 함께 여행을 떠난다.
우리는 북한에 있을 때 불평했지만, 북한을 떠난 후에는 반 친구들과 자주 그곳의 삶이 그리워졌습니다. 북한에서는 인터넷의 불편함 때문에 저와 친구들은 위챗을 사용하지 않고 거의 전화도 하지 않고 밤낮으로 가장 전통적인 방식으로 교제하는 방식으로 돌아갔습니다.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 앉거나 구두로 약속 시간에 외출 약속을 잡습니다. 베란다에서 노래도 부르고 기타 치기도 하고, 함께 산책도 하고 담소도 나누며 현재의 부정적인 기운을 수다로 녹일 예정이다. 동급생들과 7개월의 시간은 중국에서의 4년의 가치가 있고, 이런 환경은 우리가 정착하고 서로를 알아갈 수 있게 해주며, 하루 종일 바깥 세상을 마주하는 것보다 생각할 시간을 더 많이 준다. 많은 정보가 옵니다.
항상 "그녀는 아직 너무 어려서 추억이 늘 나쁜 것은 지우고 좋은 것은 과장한다는 걸 알기에. 우리가 과거의 짐을 짊어질 수 있는 것도 이 미스터리 덕분이다."라는 문장이 생각난다. 그곳에서 두유를 마셨을 때나 한적한 거리를 걷다가 비슷한 나무들을 보면 그때의 북한 풍경과 그 시절이 떠올랐다. █
구강 | 희기 저자 Yu Qi 사진 | Hui Qi, Xia Xiaoman, Wang Yi 편집 | 툴라 인턴 | Zhou Ning, Ni Wanru 휴먼스튜디오에서 제작한 피닉스 뉴스 클라이언트 Phoenix.com ====
김일성대학에 유학한 중국인 학생의 글을 재미있게 읽었다.(https://thenewspro.org/.../the-story-of-a-chinese.../) 글 내용 중에 북한 사람들이 중국 드라마 <붉은 수수밭>을 좋아하고, 드라마 주인공인 주신이 성형수술을 했냐고 물어보기도 했다는 언급이 나온다. 역시 북한사람이 남한드라마만 몰래 보는 건 아닐 테다. 훨씬 쉽게 구할 수 있고 위험성이 적은 중국드라마가 당연히 더 친숙할 것이다. 드라마 <붉은 수수밭>은 모옌 소설을 각색한 것으로, 원작에는 물론이고 장예모 영화에도 없는 현대적 해석이 있다. 특히 주인공의 역할이 그러하다. 장예모가 영화화 한 <붉은 수수밭>의 주인공 공리는 가난한 아버지에 의해 문둥병자에게 팔려간다. 남편이 죽자 집안을 물려받지만 이미 개같이 망한 집안. 공리는 마님도 아니고 여자일꾼도 아닌 어중간한 존재로, 갈 곳이 없어 해방되지 못한 하인들과 함께 남는다. 마적단의 끈질긴 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다가 마을에 일본군이 들어오자 개같이 멸망한다. 원작 소설을 충실히 반영한 이 영화에서 공리의 역할은 거의 식물에 가까운 여성이다. 그녀는 어느 것도 자기 의지대로 할 수 없는 봉건시대의 피해자로, 지옥 같은 시대에 일방적으로 휩쓸렸다. 장예모의 <붉은 수수밭>에서 공리의 배역은 쇠락해가는 중국의 마지막을 담은 그릇이자 하나의 사물에 불과하다. 드라마 <붉은 수수밭>의 주인공은 다르다. 주신도 아버지에 의해 팔려간 것은 같으나, 팔려가는 과정에서 가마꾼을 반쯤 유혹해 관계를 갖는다. 남편이 죽자 상속권을 주장하는 집안의 남자친척들에 맞서 뱃속의 아기를 내세운다. 아들이 태어난 순간부터 정치력을 발휘, 하인들을 장악하고 죽은 남편의 집안을 접수한다. 이후에는 재기를 발휘해 관청에 맞서기도 하고, 정략적으로 관료의 양녀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관청과 마적단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중립을 유지하며 집안을 지켜나간다. 가난하여 팔려간 첩, 몸종으로부터도 무시당하던 어린 여자아이가 순전히 자신의 기지와 정치적 계략으로 부와 권세를 거머쥔다. 일본군이 침입했을 때도 그녀는 주도적으로 저항운동을 조직한다. 결말은 원작과 비슷하지만, 불에 타 스러지는 붉은 수수밭과 동일시되는 공리와 달리, 주신은 불에 타 사라진 옛 중국의 다음 시대를 예고하는 강렬한 인물이다. 중화권에 공리보다 나은 배우는 없다. 그러나 <붉은 수수밭>에서만큼은 주신의 연기가 공리보다 뛰어나다. 주신이 연기한 인물의 말투와 눈빛,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개같이 멸망한 시대의 독보적인 주체성을 그려낸다. 그 인물이 출신의 한계를 넘어 자신의 삶을 개척한 시작점은 남의 아이를 잉태해 세상을 속인 것이었다.
나는 북한 최고의 대학에서 공부하고 마법과 현실의 193일을 보냈다
△같은 기숙생들과 유학 중인 박사과정생들이 졸업할 때 김일성 동상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 방과 후 중학생들.
북한 현지 학생들은 지도자의 초상화가 새겨진 휘장을 착용해야 합니다. 모든 성인 여성은 무릎 길이의 치마를 입어야 하며 거의 모든 거리에서 검사를 받습니다. 정문으로 캠퍼스에 들어서면 김일성 동상에 절을 해야 하는데 우리는 교무실까지 지름길을 자주 이용하는데 그런 일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학교에는 프랑스, 스웨덴, 호주, 베트남, 라오스 및 기타 국가에서 온 유학생도 있습니다. 제 프론트 데스크는 스웨덴에서 온 남학생으로, 스웨덴에서 북한에서 공부한 첫 번째 사람입니다. 그는 스웨덴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이곳을 여행했고 나중에 유학을 결심했습니다. 등교 첫날 양복과 뱃지를 차려입은 아주 포멀한 차림새를 하고 있는데, 왜 그렇게 과장되게 차려입느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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