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07

Sejin Pak - 나에게도 사회적인 적대심이란 것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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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jin Pak  - 나에게도 사회적인 적대심이란 것이 있(었)을까?

[마음공부] "안으로 자신을 채우지 못한 구멍 많은 뼈의 주먹질"이라는 표현을 읽으며 생각한다.
- 밑의 박유하 글에서의 이재명의 사회적 적대심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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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공부>란 말은 누구 생각처럼 힐링이라는 의미가 아니고, 나에게는 <객관적인 자기분석>이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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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도 사회적인 적대심이란 것이 있(었)을까?

- 나에게는 1960 년대 전반에 한국에서는 중상 정도의 편안 한 집안에서 살다가, 십대에 가족과 함께 돈없이 브라질 이민을 하여, 또 브라질에서는 한국의 중학졸업장도 인정하지 않아, 미성년 때, 풀타임으로 일하며, 언어공부하고, 검정고시로 중학 졸업장을 따고, 3년 늦게 정규고등학교를 들어갔지만, 또 빨리 졸업하려고 다시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장을 딴, 그런 경험이 있다. 
- 이 경험은 그 후의 나의 삶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보이기는 해도, 은퇴할 때까지 이야기로 꺼낼 일은 없었는데, 페북에서 일기처럼 여러가지 회상을 하다보니, 나오게 된다. 
- 그런데 정치인 이재명의 자기 이야기에서 가난한 집안 배경에 불구하고 성공하는 이야기가 가진자들에 대한 적대심과 함께 표현되는 듯해서, 정치인은 아닌 삶이었지만, 나 자신의 경험을 되돌아본다. 
- 브라질에서는 십대에 불루칼라 노동자로서의 생활이 당시에 나에게  그 전의 한국에서의 편안한 십대에 비교해서 사람이 완전히 바뀔 만한 자극적인 경험이 된데에는, 우선 같이 일하는 브라질 노동층의 사람들로부터 브라질어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바보 취급을 받는 것이 있었다. 그것이 나에게 말을 빨리 배워야겠다는 심리적 자극이 되었다. 
- 또 한가지의 자극은 노동자로 일을 하고는 있어도, 부모의 대졸 교육수준이나, 집안의 문화환경으로 보아서 60년대에도 자식 모두가 대학에 가는 것을 당연히 생각했던 문화자본적 배경이 있었다. 그러니 미성년 때의 풀타임 노동은 단지 임시적인  단계라는 생각이었다. 더군다나 집안의 이민의 목적이 자식의 교육을 위하여라는 명분하에 행해젔으니, 브라질 사회의 노동층이건 가진자에 대한 적대심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 적대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보다 생활 수준이 낮아질 미지의 땅으로 가려고 한국을 떠나야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만하다. 이 이슈에 대하여는 부모 자식 간에 꺼네놓고 집중적으로 이야기해 본 적이 없었다고 기억한다. 집안의 일반적이고 공통적인 이해는 한국에서는 네 자식을 대학에 보내기는 힘들겠다는 이해와, 한국 사회는 부패해서, 그곳을 벗어나는 것이 자식들의 장래를 위해 좋을 것이라는 이해가 있었던 것 같다. 60년대 초반에 한국사회가 부패했다는 생각은 일반 시민들 사이에도 충분히 있을 수 있었겠지만, 우리 집안에서는 아버지의 사회적 위치가 작용했던 것 같다. 
- 식민지 시대에 동경제대 공학부 졸업하고, 에바라라는 일본 펌프 제작 회사에서 일하던 조선인으로서, 아버지는 해방 후에는 그 계통일을 계속하며 컨설팅 일을 하셨던 것 같다. 한국 전쟁 얼마전에는 한국 정부가 미국에 기계공업 관계의 공장들에 시찰을 보낸 것 같다. 미국에 있는 동안 전쟁이  일어나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동경에 와서 2-3년 정도 미군정을 위해 통역일을 하셨다. 휴전 후에는 한양공대에서 교수직을 하는 한편 작은 펌프제조+서비스 공장을 차리고, 주로 정부와의 관계되는 사업을 하신 것 같다. 후에는 자동차 재생 타이어 공장도 하셨다. 어머니가 공장의 지배인 역할을 하셨다. 이 시기에 한국 사회의 경험이 한국은 부패할데로 부패한 곳이라서  벗어냐야겠다는 생각을 만들게 했다는 것 같다. 그런데 이민의 아이디아는 어머니에게서 나왔다고 한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없었다.
- 한국에 살았을 때나, 한국을 떠난 후에도 자식하고의 이야기 중에는 없었던 이야기 이지만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는 것이 또 하나 있었다. 그것은 한국의 반공법과 연좌죄와 관계되었던 것 같다. 우리 집안에는 남쪽에서 북으로 간 친척들이 몇명있는데, 그들의 가족이 사회진출에 격는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들을 가끔 들어오곤 했다. 그래도 그런 문제는 남의 이야기로 들었지만 아버지의 경우에도 비자를 얻는 때 그런 문제로 시간이 걸리곤 했다는 이야기를 듣었다. 북으로 간 친척의 가족은 모두 미국으로 이민을 했는데, 나와 같은 나이의 오촌인가는 한국에 남아살았는데, 계속 연좌죄 문제로 한국사회에서 일하는데 걸리곤 했다는 이야기를 70년대에 그 친구에게서 직접들었다. 그런데 그 후로 깨달케 된 것이 외할아버지가 자진해서 북으로 가신 것이 우리 가족에게 문제가 되었을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당시에 자식들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 문제를  누구보다고 잘 알았던 사람이 어머니였을 것이다. 
- 관계해서 한국전쟁 당시 고교교사였던 어머니에게는 더 가까운 사상범의 이슈가 있었던 것도 생각해보아야한다. 전쟁 중, 북조선 군이 서울을 점령하고 있었을 때 서울에서 계속 교사 일을 했다는 것이 북조선 군이 물러난 후에 남측 경찰에 의해 공산당과 협력했다는 죄로 취급되었던 것이었다. 처음에는 서울 형무소에 감금되었다가, 후에 대전 형무소로 옮겨젔는데, 북조선 군이 다시 돌아온다는 이유로 감금되어있는 사람들이 모두 총살되는 상황이 생겼던 것이다. 어머니는 아마도 시간의 차이로 여기서 살아남게 되고, 풀리어 났지만, 그 사상범의 전과는 기록에 남아있었던 것 같다. 
- 휴전 후에 한국 사회에서의 생활에서 반공법과 연좌죄와 관계된 이러한 가족 배경이 한국을 떠나기로 한 중요한 이유가 되었는지는 가족 안에서는 고의적으로였는지는 모르겠지 만 브라질에서도 카나다에서도 대화가 없었다. 이민 생활에 적응하느라고 그런 과거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부모에게서 나오는 한국 사회나 정치에 대한 많지 않은 이야기는 일반적으로 부정적이었다. 아버지는 한국을 떠난 후, 카나다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한번도 한국을 다시 찾아간 적이 없었다. 사고 싶지 않았던 곳이었다.
- 나역시 한국을 떠난 10년 정도는 이민생활에 적응하느라고 한국을 생각하는 여유는 없었으나, 백인 사회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는 문제는 오히려 피부에 가깝게 느끼고 살아가게 되었다. 그것은 나도 격는 인종차별의 문제에서 시작하여 북미의 흑인과 원주민이 격은 착취와 차별의 역사에 대한 문제의식이 나에게 인간해방에 대한 의식으로 심어지게 된 사유었다. 그 후로 맑시즘을 공부하게 되어, 자본주의의 모순이나, 계급착취 등의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지만, 나는 이런 문제를 구조의 문제로 보았기 때문에 특수한 사회 그룹에 대한 적대심으로 옭겨지지가 않은 듯하다. 구조문제라는 것은 사회구조이기도 하고 문화구조도 겹치어 진 것으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였던 것 같다. 
- 그런데 한국에서 살아오지 않아 북한이나 일본에 대한 적대심도 없었지만, 반공의 주인공인 한국의 독제정권에 대해서도 민주화라는 일반적인 인류적인 열망을 지지하는 식이었지, 청산해야 할 한국의 역사적인 사회적 그룹에 대해 적대적으로 생각하지 않아온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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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2016년  12월 5일 글
[대통령의 딸로서의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이에 대한 반대가, 이재명 같은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이에 대한 선택으로 이어지는 건 불행한 일이다. 중요한 건 그 자신의 책임이 아닌 환경자체가 아니라, 그 환경을 "어떻게" 살아냈는지다. 
이재명이 간간이 보여주는 폭력적 행보는, 박근혜가 대선토론때 이미 드러냈던 (공주의)신경질을 많이 닮았다. 성공이 곧, 불행한 환경을 이겨냈다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 
중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마친 건 흠이 될 수 없다. 하지만 가진 것 없는 자의 고독한 노력이 오로지 가진 자의 "힘"에 대적하기 위한 것인 한, 그의 노력은 결국 세상을 향한 주먹질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안으로 자신을 채우지 못한 구멍 많은 뼈의 주먹질은, 우리에게진짜 필요한 힘이 되지 못한다. 
사이다는 골다공증을 유발하고,  몸에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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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a Kim
이동해
이소
Soon Ae Choi
Nara Jang
崔明淑
박정미
Okjin Park
Ekpo Perpetual
Hyung Hahn
근향차
Namjoo 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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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Sejin Pak
박유하 글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566183076741934
 · Reply · 1 d
박정미
가난을 비천함으로 치환함으로써 자신의 반사회적 폭력적성향을 가난탓으로 싸잡아 변명하며 동시에 국민의 편가르기를 시도하는 신묘한 솜씨입니다.
 · Reply · 1 d
회리
왜 사람들은 전체를 평가하지 않고 부분을 확대하는 것일까요?
절대선에 대한 동경일까?
'자아'의 발달이 동물성과 결합한 결과일까?
조금씩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라마지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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