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생가외(後生可畏), 그 너머
by조우성 변호사Nov 20. 2015후배들이 뛰어난 모습을 보일 때
우리는 흔히 '후생(後生)이 가외(可畏)라'는 표현을 쓰곤 합니다.
자기보다 먼저 태어나서 지식과 덕망이 나중에 태어난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이 선생(先生)이고, 자기보다 뒤에 태어난 사람, 즉 후배에 해당하는 사람이 후생(後生)입니다.
그런데 이 후생은 장래에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가히 두려운 존재라는 것인데, 이 말은 《논어》 〈자한편(子罕篇)〉에 나옵니다.
(공자가 후생가외라고 한 것은 그의 제자 중 특히 재주와 덕을 갖추고 학문이 뛰어난 안회(顔回)의 훌륭함을 두고 이른 말입니다)===
[틴틴충전소] 사자성어 - 後生可畏 (후생가외)
입력 : 2017-05-25
사진 확대후생가외(後生可畏)에서 後는 뒤 후 · 生은 날 생 · 可는 가히 가 · 畏는 두려워할 외로 '뒤에 난 사람들(젊은 후배들)은 두려워할 만하다'라는 뜻으로 '논어(論語)'의 '자한편(子罕篇)'에 나오는 말이다. 젊은 후배들은 나이가 젊고 의기가 장하므로 학문을 계속 쌓고 덕을 닦으면 그 진보는 선배들을 능가하는 경지에 이를 것임을 비유하는 말이다. 춘추시대의 대철학자이자 사상가인 성인(聖人) 공자는 말했다.
"젊은 후배들은 두려워할 만하다. 장래에 그들이 지금의 우리를 따르지 못하리라고 어찌 알 수 있겠는가? 40, 50이 되어도 명성이 들리지 않으면, 이 또한 두려워할 것이 못 될 뿐이다(子曰 後生可畏 焉知來者之不如今也 四十五十而無聞焉 斯亦不足畏也已)."
먼저 태어나서 지식과 덕망이 나중에 태어난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이 선생(先生)이고, 자기보다 뒤에 태어난 사람, 즉 후배에 해당하는 사람이 후생(後生)이다. 그런데 이 후생은 장래에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가히 두려운 존재라는 것이다. 후생가외(後生可畏), 여기서 '외(畏)'란 좋은 의미에서 존경하고 주목할 만한 것을 말한다. 즉 뒤에 태어난 사람인 후배들에게 무한한 기대를 걸고 한 말이다. 그들의 장래가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알 수 없는 기대가 섞인 두려움인 것이다. 지금의 나보다도 더 뛰어난 학문적 성과를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가 40, 50이 되도록 이름이 나지 않으면 두려워할 것이 못 된다고 말함으로써 젊었을 때 학문에 힘쓸 것을 충고한다. 공자는 이 말을 통해 젊은이는 항상 학문에 정진해야 하고, 선배 되는 사람들은 학문을 대하는 태도가 겸손해야 함을 일깨우고 있다. 공자가 후생가외라고 한 것은 그의 제자 중 특히 재주와 덕을 갖추고 학문이 뛰어난 안회(顔回, 자는 자연(子淵) 기원전 521∼490)의 훌륭함을 두고 이른 말이다.
후생가외(後生可畏), 이 한자성어는 '나중에 난 뿔이 우뚝하다'는 '후생각고(後生角高)'라는 말과도 뜻이 통한다. 후생각고(後生角高)는 제자나 후배가 스승, 선배보다 훨씬 나을 때 이르는 말로 '청출어람(靑出於藍)'과도 뜻이 통한다.
사람이라고 다 훌륭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공자는 논어(論語)에서 한마디 덧붙였다.
"싹은 자라도 꽃이 피지 않는 것도 있고, 꽃은 피어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수도 있다(苗而不秀者, 有矣夫. 秀而不實者, 有矣夫)."
공자의 이 말은 두렵지 않은 후생(後生)도 있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 그는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나이를 40, 50대라고 보았다. 그 나이에도 족적(足跡)을 남기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두려워할 만한 인물(人物)이 못 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는 나이 마흔에 외부(外部)의 유혹(誘惑)에 이끌리지 않았으며(不惑), 쉰이 되면서부터는 하늘의 명(命)을 터득(攄得)하게 되었다(知天命)고 스스로 밝힌 적이 있다. 이렇게 본다면 인간(人間)의 40, 50대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평가(評價)받을 수 있는 매우 중요(重要)한 시기(時期)인 셈이다. 2500년 전 공자의 시대에도 후배들은 두려운 존재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후배들은 두렵다. 무섭게 성장한다. 하지만 선배들은 후배들을 배척하지 말고 존중해 줄 수 있는 아량과 포용력을 갖추어야 한다.
[고용철 중대부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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