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7

격동-메이지유신 이야기 (오욱환 지음 | 조윤커뮤니케이션 펴냄) : 월간조선

[이 한 권의 책] 격동-메이지유신 이야기 (오욱환 지음 | 조윤커뮤니케이션 펴냄) : 월간조선



[이 한 권의 책] 격동-메이지유신 이야기 (오욱환 지음 | 조윤커뮤니케이션 펴냄)
敗者 ‘마지막 쇼군’의 눈으로 보는 메이지유신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흔히 ‘역사는 승자(勝者)의 기록’이라고 말한다.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역시 마찬가지다.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에, 각성한 조슈와 사쓰마의 애국적 지사(志士)들이 260년간 누적되어온 적폐(積弊) 덩어리인 도쿠가와(德川)막부를 타도하고 근대국민국가를 창출했다는 것이 메이지유신의 서사(敍事)이다.

이 책은 그 역사를 조금은 다른 눈으로 바라본다. 미국 페리 제독의 흑선(黑船)이 나타나 개국(開國)을 강요한 이래 일본 사회가 겪은 격동의 기본 줄거리는 같지만, 그때 일본에 다른 대안(代案)은 없었을지를 생각해보려 한다. 그 대안은 ‘마지막 쇼군(將軍)’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추구했던 ‘공무합체(公武合體)’의 정치이다. 저자는 막부가 메이지유신 주체들의 주장처럼 무능(無能)하지 않았으며, 기득권(旣得權)에 연연하는 집단도 아니었다고 본다. 오히려 미국이 가한 최초의 충격이 가신 후에는 막부가 나름 적극적으로 개방을 추구했으며, 요시노부는 대정봉환(大政奉還)을 통해 막부정치를 청산하되 유력 다이묘(大名·제후)들에 의한 공의(公議)정치를 추구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개인적으로는 요시노부의 노선이 승리했어도 요시노부 역시 국수주의적 미토학(水戶學)의 세례를 받은 인물인지라 일본은 제국주의의 길을 걸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존의 관점과는 다른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보게 해준다는 점에서는 흥미로운 책이다. 개항 이후 막부의 수출정책으로 생사값이 오르면서 어려움에 처하게 된 교토의 게이샤(기생)들이 조슈 출신 유신지사들을 응원하게 됐다는 등의 이야기도 재미있다.


저자는 대한변협 사무총장과 서울변호사회 회장 등을 지낸 변호사로 일본사에 흥미를 느껴 일본을 공부해왔으며, 현재 한양대 일본학국제비교연구소 객원 연구원으로 있다.⊙









격동, 메이지 유신 이야기 
격동의 역사 끝나지 않는 세계 열강의 전쟁
오욱환 (지은이) 조윤커뮤니케이션 2022-04-28

책소개

일본통 변호사가 진단하는 일본 부국강병의 허와 실. 막부 말기 유신 무렵의 묻혀진 사실을 발견하여, 메이지 유신의 역사적 실체에서 진실을 찾아냄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기존의 선입관이나 편견 혹은 막연한 환상에서 벗어나게 한다.

메이지 유신은 세계금융자본과 서양의 제국주의가 작용한 사건으로, 제국주의의 동아시아 침탈사의 한 페이지이다. 당시 막부는 친 외세이고 개방적이었다. 따라서 외세가 막부를 쓰러뜨릴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뒤에 있던 금융 자본가들은 경제적 이득의 최대화를 노렸다. 그것은 전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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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인사의 글
프롤로그
제1장 페리와 미일화친조약
1853년(가에이 6) ~ 1854년(가에이 7)
제2장 미일통상조약과 쇼군승계
1855년(안세이 2) ~ 1858년(안세이 5)
제3장 개국과 양이
1858년(안세이 5) ~ 1863년(분큐 3)
제4장 격랑 속으로
1863년(분큐 3)
제5장 전쟁
1864년(분큐 3) ~ 1865년(게이오 원년)
제6장 영국의 책략
1865년(게이오 원년) ~ 1866년(게이오 2)
제7장 요시노부의 몸부림
1866년(게이오 2) ~ 1867년(게이오 3)
제8장 모색과 좌절
1867년(게이오 3)
제9장 에도 막부 멸망
1868년(게이오 4년, 메이지 원년)
제10장 새로운 출발
1868년(메이지 원년) ~ 1890년(메이지 23)
에필로그
연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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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글
중앙일보: 중앙SUNDAY 2022년 5월 7일자 '책꽂이'



저자 소개
지은이: 오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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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일본의 테러사>,<태평양전쟁>,<도쿠가와 이에야스 누구인가> … 총 5종 (모두보기)
대한변호사협회의 사무총장과 서울변호사회의 회장으로 재직할 때, 일본과 관련한 회무는 사실상 그가 가장 좋아하는 업무였다. 변호사로서 민간 외교관 역할도 자청하였다. 일본 오사카 변호사회가 프랑스와의 협의를 위해, 서울변호사회와의 이미 합의한 행사를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있던 때에는, 그 즉시 방일하여 계획을 변경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음을 지적함으로써 당초 계획하였던 대로 행사를 진행하도록 한 적도 있었다고. 또한 일본 도쿄대대학원 법학정치학연구과 방문학자로 연구활동을 한 후, 도쿄대 야마시타 도모노부 교수의 주선으로 도쿄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사법제도의 개혁-형사사법제도를 중심으로>를 주제로 특강을 하기도 하고, 일본대동문화대학에서 동아시아 재판 외 분쟁해결기구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주제로 강연하기도 하였다.
경기도 수원 출신으로 성균관대 법대를 졸업하고 법조계(사시 24회, 연수원 14기)에 입문했다. 대한변호사협회 공보이사, 대한변협 총무이사 겸 사무총장, 서울변호사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고 국민권익위원회 자문위원, 중앙행정심판위원회 위원, 성균관대ㆍ한국외대ㆍ고려대 등에서 법학전문대학원과 법과대학에서 겸임 교수로 활동하였다. 현재 한양대학교 일본학국제비교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격동, 메이지 유신 이야기>와 <승리한 전쟁 임진왜란 그 시작과 끝> <도쿠가와 이에야스 누구인가> <일본의 테러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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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변호사협회의 사무총장과 서울변호사회의 회장으로 재직할 때, 일본과 관련한 회무는 사실상 그가 가장 좋아하는 업무였다. 변호사로서 민간 외교관 역할도 자청하였다. 일본 오사카 변호사회가 프랑스와의 협의를 위해, 서울변호사회와의 이미 합의한 행사를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있던 때에는, 그 즉시 방일하여 계획을 변경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음을 지적함으로써 당초 계획하였던 대로 행사를 진행하도록 한 적도 있었다고. 또한 일본 도쿄대대학원 법학정치학연구과 방문학자로 연구활동을 한 후, 도쿄대 야마시타 도모노부 교수의 주선으로 도쿄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사법제도의 개혁-형사사법제도를 중심으로>를 주제로 특강을 하기도 하고, 일본대동문화대학에서 동아시아 재판 외 분쟁해결기구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주제로 강연하기도 하였다.
경기도 수원 출신으로 성균관대 법대를 졸업하고 법조계(사시 24회, 연수원 14기)에 입문했다. 대한변호사협회 공보이사, 대한변협 총무이사 겸 사무총장, 서울변호사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고 국민권익위원회 자문위원, 중앙행정심판위원회 위원, 성균관대ㆍ한국외대ㆍ고려대 등에서 법학전문대학원과 법과대학에서 겸임 교수로 활동하였다. 현재 한양대학교 일본학국제비교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격동, 메이지 유신 이야기>와 <승리한 전쟁 임진왜란 그 시작과 끝> <도쿠가와 이에야스 누구인가> <일본의 테러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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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격동의 일본 역사,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메이지 유신은, 세계금융자본과 제국주의가 합작한 사건
일본통 변호사가 진단하는 일본 부국강병의 허와 실

우리의 지난 과거를 돌아보면, 어느 한순간도 일본과 동떨어져 있던 적은 없었다. 정치, 경제, 역사, 지리, 문화... 어느 한 방면에서도 우리 혼자였던 적은 없었다. 일본은 우리와 함께 살아갈 이웃이고,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은 우리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우리가 일본의 근대화를 촉진한 ‘메이지 유신’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격동, 메이지 유신 이야기>는 막부 말기 유신 무렵의 묻혀진 사실을 발견하여, 메이지 유신의 역사적 실체에서 진실을 찾아냄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기존의 선입관이나 편견 혹은 막연한 환상에서 벗어나게 한다.
메이지 유신은, 세계금융자본과 서양의 제국주의가 작용한 사건으로, 제국주의의 동아시아 침탈사의 한 페이지이다. 당시 막부는 친 외세이고 개방적이었다. 따라서 외세가 막부를 쓰러뜨릴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뒤에 있던 금융 자본가들은 경제적 이득의 최대화를 노렸다. 그것은 전쟁이었다. 일본을 내란으로 몰고 간다. 그러나 표면상 외세가 개입된 것으로 보여서는 안 된다. 그러려면 자기들 뜻대로 움직여 줄 내부 사람이 필요하다. 영국은 이를 위하여 조슈와 사쓰마에서 유학생을 받아 친영파 인물로 만든다. 그다음 이들을 이용하여 당시까지 안정적이었던 막부 중심의 일본의 기존의 국가 질서를 전복하고 친영 정부를 수립했던 것이다.
영국은, 조슈와 사쓰마가 배상해야 할 전쟁 배상금을, 막부에게서 받아 내어, 영국에 적대적인 조슈와 사쓰마에게 돈을 대주거나 경제적 이득을 주면서, 그 돈으로 국제 시장에 남아도는 미국 남북전쟁의 재고 무기를 구입하도록 해준다. 이렇게 하여 조슈와 사쓰마는 막부를 능가할 정도의 전력을 갖추게 된다. 이제는 막부를 쓰러뜨리고 권력을 탈취하기만 하면 될 일이다. 250년 전의 쓰라린 패배를 되갚아 준다고 하는 것도, 권력 탈취를 위한, 그럴듯한 명분에 불과했다. 뒷배는 영국이 봐준다. 외세의 개입은 그렇게 진행되었다.

필자는, <격동, 메이지 유신 이야기>에서, 마지막 쇼군인 요시노부가, 그의 사상적 기반인 존황론을, 자기가 천황과 같은 존재인 프랑스식의 대통령이 됨으로써, 실현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라는 의문도 제기한다. 그런데, 최종적인 선택은 영국형 공회제였다. 물론 이것도 실현되지 못하고, 권좌에서 물러나기는 하였지만. 그가 물러났다고 해서, 피의 전쟁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은, 의회제를 받아들여 입헌국주국이 되었으나, 자본가의 탐욕과 군부의 지배욕이 얽혀 제국주의의 길을 걸었다. 결국,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고, 패망의 길로 나아감으로써, 자국민을 황폐하게 만들고, 이웃 나라들에도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안겨주었다.
이후 일본은 세상을 읽는 눈을 키워나가며, 세계의 중심국가로 다시 섰다. 일본은 메이지의 중심세력의 후손들이 아직도 일본을 좌우하고 있다. 아베가 그렇고, 기시다가 그렇고, 아소도, 고이즈미도 역시 그렇다. 현재도 메이지 유신은 진행 중이다.

저자는 일본 역사에 정통한 오욱환(吳旭煥) 변호사. 그는 “메이지 유신은 오늘날의 대한민국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면서 “우리는, 메이지 유신 이후 지금까지, 일본의 침략을 받기도 하였으나, 그들의 근대화를 모델로 삼아 오늘의 번영의 기초로 삼았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역사 애호가로서, 역사에 대한 학인(學人)으로서, 평소 궁금해하던 사실들을 살펴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막부 말기 유신 무렵의 묻혀진 사실을 발견하여, 정확하게 인식하고, 냉정하게 분석함으로써, 유신의 실상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당시의 사실에서 진실을, 그 당시 사람들의 진심을 보고 싶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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