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13

17 대한민국 좌파, 그들은 누구인가 2] 한국의 진보가 주체사상 허물어야 - 김운회



한국의 진보가 주체사상 허물어야 - 미래한국

한국의 진보가 주체사상 허물어야
[연속기획] 대한민국 좌파, 그들은 누구인가 2]

승인2017.08.02

김운회 동양대 교수 webmaster@futurekorea.co.kr


이른바 ‘좌파의 세상’이다. 그러나 정말 좌파의 세상일까. 좌파는 자본주의 현실 속에서 사회를 보다 도덕적으로, 또 인간적으로 개선하고자 하는 진보의 철학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좌파는 종북에 갇혀 있다. 그들은 누구이며 어떻게 오늘을 확보했던가. 
미래한국이 상하 연속기획으로 묻고 답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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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사상’이란 용어는 1961년 9월 4차 조선노동당 대회 이후부터 사용되기도 했지만, 이것을 본격적인 국가 이념으로 정식화한 것은 김정일이다. 1974년 김정일은 힘겹게 후계자로 등장한 직후,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김일성주의’를 선포했다. 1982년, 김정일의 이름으로 <주체사상에 대하여>라는 논문이 발표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위대한 주체사상 총서(1985)>를 간행해 국가이념으로 정착한다.

주체사상의 본질

1970년대 말까지 북한은 주체사상이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차이가 없으며 다만 북한의 현실에 맞게 창조적으로 적용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북한은 주체사상을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능가하는 사상이라고 주장했다.

주체사상은 혁명과 건설에서 주인다운 태도를 가지는 것, 즉 자주적 입장과 창조적 입장을 강조해 ‘사상에서 주체, 정치에서 자주, 경제에서 자립, 국방에서 자위’를 구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주체사상과 마르크스주의와 구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인간 중심 세계관과 수령주의다. 이로부터 마르크스주의와 결별하면서 좌파 역사상 가장 그로테스크한 사상이 완성되면서 북한은 보편적 진보의 역사로부터 단절된다.

마르크스주의와 다른 주체사상의 핵심은 이른바 ‘수령론’에 있는데,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 사람이 운명 개척의 주인이다”라고 하면서도, 다만 “운명 개척의 온전한 주인이 되려면, 수령의 가르침과 인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생명을 주는 부모가 있는 것처럼, 정치적·사회적 부모도 있는데 그것이 바로 김일성의 백두혈통이라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논리처럼 인민대중이 역사의 주체이지만, 인민대중이 자기의 운명을 스스로 창조적으로 개척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수령의 올바른 영도를 받아야만 역사의 주체로 재생(再生)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김일성가문을 어버이로 여기고 따르라는 것이다. 이것은 정상적인 국가이념 체계가 아니라 종교적 논리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를 통하지 않고서 아버지께로 올 사람은 아무도 없느니라.(요한복음14:6)”와 같은 논리를 어설픈 사회과학 용어로 분식(扮飾)한 것에 지나지 않는 사이비 종교다.

농노가 된 인민

루카치(Lukacs)를 비롯한 대부분 신좌파 이론가들은 마르크스 사상의 핵심이 인간 ‘주체’에 있다고 봤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같은 생각이 좌파 역사상 최악의 정치종교인 주체사상으로 양질전화 되었다.

이 양질전화에 대해 가장 분노해야 할 사람들은 좌파 지식인인데 그것을 분노할 만큼 한국의 주류 좌파의 지적 수준이 이르지 못했다. 여기에는 지난 70여 년간 북한의 대남전략이 성공적으로 진행된 부분도 있고, 해방전후사에 있어서 건강한 민족주의 세력이 남북 양측에서 소멸됨으로써 나타난 현상일 수도 있다.

일부에서는 김일성의 항일운동 경력에 대해서 왜곡 과장된 주장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마치 청산리대첩처럼 떠들어대는 ‘보천보 전투(1937)’도 작은 파출소 습격사건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박금철 등의 갑산파의 작품이지 김일성의 업적은 아니다.

김일성은 주로 중국군 소속(동북항일연군), 소련군 소속으로 활동한 사람이었다. 좌파 내부에서도 수많은 기라성 같은 독립투사들을 제치고 당시 33세의 어린 김일성이 북조선의 수반이 된 것은 소련군 경력과 소련과의 인맥 때문이지 항일운동 경력을 합산한 결과가 아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좌파 역사상 최악의 3대 세습정권을 구축하고 현대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동족 학대로 최악의 인권 탄압을 자행하고 있는 것인데, 이것은 전적으로 김일성의 책임이다.

북한의 주체사상은 가장 종교적인 정치사상이며 인간 구속을 극대화한 정치적 종교다. 주체사상은 오히려 민중의 주체성을 부정하고 수령을 중심으로 한 종교국가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 구조가 유지되려면 구성원들에 대한 끝없는 종교적 세뇌(洗腦)와 탄압이 필요하다.

결국 북한에서의 인간은 철저히 객체로 전락할 수밖에 없고 객체화된 민중들은 중세의 노예나 농노와 유사한 형태가 된다. 사멸 직전의 마르크스주의의 구원자로 칭송을 받았던 구조주의자 알튀세르(Althusser)의 ‘객체의 가장(假裝)된 주체화’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핵심 개념 중의 하나인데, 주체사상은 아예 주체를 객체화, 노예화하고 있으니 북한 정권을 진보주의의 공적으로 보는 것이 좌파로서 가져야 할 도덕적 품성이다.

필자가 이미 여러 차례 강조한 것처럼, 진보의 적은 자본주의뿐만 아니라 봉건적·종교적·관료적 반동도 포함한다. <공산당선언>에서는 봉건반동은 적대적 모순으로 자본주의보다 더 악질적인 것이므로 시민(부르주아)들과 함께 이를 먼저 처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르크스의 눈으로 보면, 북한 체제는 봉건 반동성, 종교성, 反프롤레타리아적 관료주의, 왕조적 폭압과 反인권적 통제구조라는 이중 삼중의 적대적 모순을 가진 체제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건강한 진보사관을 가진 자라면 일단 시민계급과 힘을 합쳐서 북한 정권부터 제거하고 다시 진보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한국에서 진보라고 주장하는 세력들은 김일성과 북한 정권에 대한 비판은 고사하고 극악한 인권 참상에 대해 끝없이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고무·찬양하는 사태가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 한국 좌파의 현주소다. 여기에는 학습이 부족하거나 또는 지적 능력이 떨어지거나 편집광적인 집착이 아니면, 북한으로부터 일반인들이 알 수 없는 어떤 부채를 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이제 한국의 귀족 좌파들은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북한정권과 대화나 협력을 모색한다는 것은 북한의 통일전선 전략에 철저히 이용만 당하고 만다는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


종북의 갈림길

박정희의 개발독재는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경제적 성공과 번영을 가져 왔지만 그 이면에는 압축성장과 개발독재에 따른 후유증도 심각했다. 1972년 박정희가 유신체제를 선포해 장기집권의 기반을 마련하자 광범위한 반독재 투쟁이 나타나면서, 좌파가 번성할 수 있는 토대가 형성되었다.

1970년대 주요 사건 가운데 후일의 종북에 영향을 미친 가장 중요한 사건이 남민전 사건(1979)이다. 남민전은 베트콩(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을 모방해 결성된 급진 좌파단체로 김세원(광주), 이재문(대구) 등이 주도했는데 후일 주사파의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세원은 남로당·빨치산 출신으로 광주운동권을 정비하고 김남주(남민전), 윤상원(5.18 주도) 등과 연계했다. 남민전은 김일성에게 “피로써 충성을 맹세”하며 북한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당시 북한 정권은 이들을 아마추어에 불과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1980년은 한국현대사의 갈림길이었다. 정통성이 결여된 신군부의 등장으로 촉발한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좌파에게 절대적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안겼다. 해마다 5·18 당시 일부 진압군의 만행을 담은 출처 불명의 정체 모를 사진들과 악랄한 괴소문들이 끝없이 유포되면서 많은 지식인과 대학생이 좌파에 동조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고, 좌파의 수많은 진지들이 구축되었다.

광주민주화 운동은 두 가지의 분명한 흐름을 가지고 있다. 초기의 온건파 중심의 ‘반군부 자유민주체제 수호’라는 성격과 후기의 강경파 중심의 ‘파리 코뮌식 무장투쟁’의 형태가 나타난다. 5.18 초기, 송기숙(전남대 교수)·김창길을 중심으로 한 ‘학생수습위원회’는 무장투쟁을 철저히 반대하고 ‘반군부 자유민주체제 수호를 위한 민주화 운동’의 성격을 띠었다.

그러나 민주화 운동 사상 유례없는 교도소 습격, 20사단 차량 행렬을 습격해 차량을 탈취 후 방위산업 업체인 아시아자동차 공장을 습격해 4대의 장갑차와 370여 대의 군용 차량의 탈취, 4시간여 만에 전남의 38개 무기고를 습격해 5000여 정의 무기, 8톤 분량의 TNT, 뇌관, 도화선 등을 탈취한 사실 등 단순한 민주화 운동으로 보기에는 수많은 의문점을 남기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전두환 회고록(1)>도 항목별로 보다 구체적인 증거를 들어 조목조목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송기숙의 <5월의 꿈, 5월의 분노>, 윤한봉의 <녹취록>, 김대령의 <역사로서의 5.18>, 자유북한군인연합의 간행물, 많은 탈북인사들의 증언, 이주성의 <보랏빛 호수> 등 수많은 자료도 의문을 증폭시킨다.

무엇보다 5.18을 전후로 한 주도 세력들의 친북·종북적 경향을 눈여겨 봐야 한다. 광주 학생 운동권 뿌리는 ‘광랑(광주일고 이념서클)’이다. ‘광랑’의 박경호(10기)는 통혁당원이고 김정길은 남민전 전사이며, 5.18의 주역은 11기와 14기이다.

윤한봉(11기)은 미국으로 밀항해 친북 활동에 헌신했고(<윤한봉 녹취록>), 남민전 하부 조직인 구국청년학생회의 김남주(남민전)는 대표적 종북 분자로 “남조선에 민중혁명이 일어나면 최우선적으로 민족 반동세력 200만을 철저히 죽여야 한다”고 했으며 사망 후 5·18 희생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김남주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자가 윤상원(5.18 후기 주역)이다. 비전향 장기수인 남파간첩 손성모는 5.18 이전에 이미 광주로 잠입해 증심사에서 5.18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시민군은 그를 철저히 보호했다. 5.18의 또 다른 주역인 서경원(카톨릭농민회)은 대표적 강성 친북 인사다.

결국 1980년대 대학가는 주사파(NL : 주체사상파)가 장악했다. 1989년 민족해방혁명론(NL)의 자민투(반미자주화 반파쇼 민주화 투쟁위원회 : 주사파)와 민중민주주의혁명론(PD)의 민민투(반제반파쇼 민족민주화 투쟁위원회 : 신마르크스 계열)가 극심한 사상투쟁을 거쳐 NLPDR로 연대를 구성했으며 한국 대학가는 자민투, 즉 주사파에 의해 통일됐다.

주사파는 최대 학생운동단체인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을 결성하고(1987), 북한의 대남혁명노선을 수용해 좌파운동을 주도했다. 대학에서는 비판의식이 사라지고, 오직 주사파로 양성되는 교육과 훈련이 주가 되었고, 주체사상의 두 기둥인 ‘품성론’ ‘수령론’이 자리 잡았다.

당신은 진정 ‘진보’인가?

2000년 PD 중심의 ‘민노당’(민주노동당)이 창당되자 2001년 급진 주사파(NL)들은 대중 정당을 통해 정권을 잡고 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폐지 후 북한과 연방제 통일을 이룬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이들은 2004년까지 민노당에 입당해 당을 실질적으로 접수하고 국회의원 10명을 당선시켜 국회에 주사파의 강력한 진지를 구축했다.

그러나 ‘종북 청산’을 문제로 2008년 PD계(심상정)는 탈당해 진보신당을 창당했다. 2011년 주사파 출신 인사들은 야권연대를 추진해 진보신당(심상정), 국민참여당(유시민) 등과 연계해 ‘통진당’(통합진보당)을 구축했고 국회에서 13석이나 얻었다. 이후 이들의 노골적인 종북 활동 등으로 2014년 헌법재판소가 ‘통진당 해산’ 결정을 내렸다.

최근 통진당의 해산에 대한 비판 논의들이 나타나고 있지만, 통진당에 대해 긍적적 견해를 가진다는 것은 마르크스주의 자체에 대한 모독이다. 통진당을 옹호하는 것은 한국 좌파의 지적 수준을 가늠하게 한다. 필자가 늘 강조했듯이 한국 좌파는 ‘종북’을 청산하고 보다 의미 있는 휴머니즘에 입각한 글로벌 트렌드와 함께 하는 ‘진보’로 나아가야 한다.

북한은 성경을 가지고 있기만 해도 처형을 당하기도 하는데 정신없는 많은 종교인이 친북적인 행각을 일삼고 있다. 북한은 연좌제(緣坐制)가 살아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국가이기도 하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람시와 루카치, 마르쿠제와 아도르노 등이 살아 있었다면 가장 경멸했을 역사상 유례가 없는 반동 국가인 북한을 혁명적 동반자로 삼는다는 것은 인류의 양심에 대한 도전이다. 그리고 이 기괴한 ‘컬트 정권’을 애써 외면하면서 ‘진보’를 가장하는 것은 한국의 비극이자 또 다른 ‘메피스토’의 속삭임에 굴복하는 것이다.

이른바 좌파정권의 ‘햇볕정책’은 숨이 끊어져 가는 북한 정권을 회생시켜 민족 파멸의 핵무장을 시켜줬다. 햇볕정책의 상징인 개성공단도 외형적으로는 ‘경제통합’의 한 걸음으로 선전하지만, 그 실체는 또 하나의 대남 ‘통일전선’이 될 수밖에 없다. 북한 체제는 일반적인 시스템의 변화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의 테제(These)로서의 사회체계는 ‘가변성’을 가지는데 일정한 수준의 사회적 반발 탄성(elasticity)을 상실할 정도의 가공할 폭력에 의한 살해와 숙청이 지속되면 그 사회는 정체하게 된다. 북한은 반발 탄성이 상실한 체제로 자체적인 쿠데타나 혁명의 발생은 매우 어렵다. 철저한 상호 감시와 사회 통제, 공포정치 때문이다.

새로운 귀족계급, 한국좌파

현대 한국좌파는 매우 특이한 성격을 띠고 있다. ‘강남좌파’라는 말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한국좌파는 특이하게 귀족성, 중산층적 성격을 띠고 있다. 주대환(사회민주주의연대의 공동대표)은 “상위 10%의 기득권(대기업 정규직, 공무원, 교사 등이 주축으로 세계적 수준의 임금과 연금혜택을 누림)을 대변하는 좌파 정부가 정권을 장악, 이들이 친북 또는 종북적인 올드 레프트 프레임(Old Left Frame)에 빠져 있다.… 가장 밑바닥의 하층 노동자들은 200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하고도 경쟁해야 하는 처지다 … 이러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타파하여 임금의 평준화를 이룰 꿈도 꾸지 않는, 탐욕스런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나, … 전교조 선생들이 어떻게 좌파가 될 수 있겠나? ”라고 지적한다(조선일보 2017.6.7).

2017년 현재 한국의 소득 점유율을 보면, 상위 10%가 국민 소득의 48.5%를 차지하고 있고, 이 가운데 중산층 좌파는 올드 레프트 프레임에 사로잡혀 있으며 이들이 최상위 1%의 재벌과 특권층에 대해 공격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것은 “기득권을 지키고 방어하려는 무의식적 행동(주대환)”이지만, 특이하게도 친북·종북과 궤를 같이 한다는 점이 무서운 일이고 한국의 장래를 어둡게 한다.

만약 북한과 평화협정 체결 후 미군이 철수한 상태에서 북한의 전격적 기동전으로 적화가 된다면, 한국 좌파 리더들 가운데 북한 체제에서 적응하거나 생존할 만한 자들은 거의 없다. 특히 주체사상에 반하는 종교인은 제1의 숙청 대상이다. 이것은 북한 정권의 성격과 행태를 봐도 자명하다.

이 같은 분석과 조치들은 북한 정권으로부터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한 한국좌파의 리더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한국 좌파는 장래에 대해 지나치게 단순하고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장성택의 숙청과 김정남의 암살을 보면서도 이 사태를 낙관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과거 남로당 인사들은 여성들을 제외하고는 짧게는 3년 길게는 5년 안에 대부분의 주요 인사들이 처형되었다.

지난 2012년 후 140명에 이르는 당-정-군 고위간부들을 숙청되었다. 이들은 소위 ‘반공화국 분자’들이 아니라 북한 정권에 가장 충성한 자들이었고 권력의 실세들이었다. 여기에는 리영호(총참모장), 장성택과 추종자들, 변인선(총참모부 작전국장), 조영남(국가계획부위원장), 현영철(인민무력부장), 최영건(내각부총리), 김용건(내각부총리) 등도 포함되어 있다. 민주당이나 국민의당, 통진당, 민노총, 전교조도 예외가 아니다.

이를 반증할 수 있는 역사적 경험은 1970년대 베트남 적화 과정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남베트남에서의 적화 주도세력이었던 베트콩과 민족주의자 등은 긴 세월 동안 북베트남 공산당원들과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 하면서 미군과 힘겨운 전쟁을 치렀지만, 베트남이 통일되는 그날, 예외 없이 수용소로 보내지거나 숙청당했다. 이 과정들은 튠뉴탄의 증언 <배반당한 베트남 혁명>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제 한국의 귀족 좌파들은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북한 정권과 대화나 협력을 모색한다는 것은 북한의 통일전선 전략에 철저히 이용만 당하고 만다는 현실 인식을 해야 한다. 돈을 주고 평화를 구걸하는 행태는 더욱 더 참담한 미래가 있을 뿐이다. 이제 한국의 좌파들도 종북을 청산하고 보다 의미 있는 휴머니즘에 입각한 글로벌 트렌드와 함께하는 ‘진보’로 나아가야 한다.

김운회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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