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커밍스(저자) | 조행복(역자) | 현실문화 | 2017-11-30 | 원제 The Korean War: A History (2010년)
정가 25,000원
판매가 22,500원 (10%, 2,500원 할인) | 무이자 할부
반양장본 | 416쪽 | 224*152mm | 776g | ISBN : 97889656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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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로 가는 전쟁의 기억"
한국전쟁을 이해하는 방법은 여럿이다. 가장 익숙한 방법은 발발 이후 남한에서 지금까지 이어져온 북한에 대한 이해이고, 마찬가지로 잘 알려졌으나 남한에서 수용되기 어려운 남한에 대한 북한의 태도가 맞은편에 존재한다. 이외에도 대표적인 참전국 미국, 소련, 중국에 주변국 일본까지, 한국전쟁을 둘러싼 다양한 기억은 여전하지만, 각 국가에서는 줄곧 하나의 기억만 강조되었다. 남한이든 북한이든 미국이든 피할 수 없는 오늘의 현실이고, 비극이 여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브루스 커밍스는 한국전쟁을 중심으로 한국현대사를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주목을 받았는데, 한국전쟁 발발 60년을 맞아 집필한 이번 책에서는 한국전쟁을 둘러싼 다양한 기억을 입체적으로 분석하고, 이 전쟁으로 말미암아 미국이 어떻게 세계의 경찰국가로 발돋움했으며, 그럼에도 왜 미국 내에서 한국전쟁을 '잊힌 전쟁'으로 만들었는지, 그런 한편 북한과 여전히 다툼을 이어가는지를 성찰한다. 6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남한에서 한국전쟁을 새로 쓰고 기억한다면 이와 같은 태도가 꼭 필요하지 않을까. 계속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실로 화해하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 역사 MD 박태근 (2017.11.21)
<한국전쟁의 기원>으로 한국전쟁과 한국 근현대사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꿨던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학 석좌교수가 총정리한 한국전쟁의 모든 것. 새로운 사료를 반영하고 아주 쉬운 필치로 써내려 간 역작이다.
저자는 한국전쟁의 발단과 전개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부터 '저항세력'과 '부역세력' 사이에서 벌어졌던 대립,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의해 추진된 일본과 남한에서의 조치, 북한과 중국.러시아 사이의 관계 등 다양한 요소들의 영향을 되돌아보며, 이후 분단이라는 형태로 고착된 대결이 어떻게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지 폭넓게 살펴본다.
그리고 이 대립의 근본적인 원인을 이해하지 않는 이상, 그 연장선상에서 지속되고 있는 한반도 위기를 풀 해법도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책은 분단이 고착되어 냉전이 만성화된 한반도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평화의 길을 걸을 수 있을지 알려 준다. 바로 현재의 우리를 만든 분단과 전쟁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에 관한 찬사 _ 4
한국의 독자들에게 _ 9
들어가며 _ 18
1장 전쟁의 전개: 발발에서 휴전까지 _ 29
재래식 전쟁이 시작되다 _ 34
“중국인의 인해”: 북진 _ 55
중국이 가까이 있다 _ 57
전쟁의 연장 _ 66
2장 억압과 저항의 기억 _ 73
기원과 시작 _ 81
취해진 조치 _ 86
꼭두각시 _ 91
소련과 김일성 _ 97
3장 한국전쟁은 어떻게 잊혔나 _ 101
내전 _ 107
오, 얼마나 문학적인 전쟁인가 _ 111
중국인의 시각 _ 124
4장 반공주의 그리고 기억의 왜곡 _ 127
억압의 본능 _ 139
동양, 서양, 그리고 억압:
훌륭한 자들이 고정관념을 만드는 방식 _ 150
그림자가 드리우다 _ 156
5장 38도선 분리: 잊힌 점령 _ 159
군정 시기 한국 남서부 _ 173
삼척의 해방 _ 178
제주반란 _ 181
여수반란 _ 194
38도선을 따라 벌어진 전투 _ 202
6장 초토화된 한반도: 공습의 여파 _ 211
궁극의 폭격 _ 221
보랏빛 잿더미 _ 224
7장 학살의 기억 _ 229
정치적 계보, 혈연의 계보 _ 239
진실은 무엇인가? 한국의 스레브레니차 학살 _ 241
취해진 조치: 한국전쟁 중 남서부 _ 248
미스터 학살자 _ 253
북한이 저지른 잔학 행위 _ 256
취해진 조치: 북한 지역 점령 _ 262
전쟁의 유령들 _ 273
조사의 진실과 정치적 거짓말 _ 276
8장 ‘잊힌 전쟁’은 어떻게 미국과 냉전을 바꿔놓았나 _ 279
조지 케넌과 딘 애치슨 _ 283
군산복합체 _ 286
제국의 군도 _ 294
케넌인가, 애치슨인가? _ 297
9장 진혼곡: 화해의 길에 들어선 역사 _ 301
미국: 진혼곡은 없다 _ 307
두 개의 기억술: 한국과 이라크 _ 311
화해의 분위기 _ 314
감사의 말 _ 326
연표 _ 327
미주 _ 329
더 읽을거리 _ 375
찾아보기: 개념 및 내용 _ 385
찾아보기: 인명 _ 403
저자 : 브루스 커밍스 (Bruce Cum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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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
현재 시카고대학 석좌교수이며, 한국 근현대사와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연구해 왔다. 1960년대 후반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한국에 온 뒤 한국 현대사 연구에 몰두해 왔으며, 1981년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특히 『한국전쟁의 기원』은 국제정치학·사회학·역사학을 아우르는 학제적 접근을 통해, 전쟁의 발발과 전개에 대한 천착을 넘어 한국전쟁의 역사적·사회적 기원을 파고든 역작으로서 국내외 한국전쟁 연구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한국전쟁의 기원』 1권으로 미국역사학회의 존 K. 페어뱅크 상을, 『한국전쟁의 기원』 2권으로 국제연구학회...
역자 : 조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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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 1966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대학원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옮긴 책으로 『폭정: 20세기의 스무 가지 교훈』 『나폴레옹: 야망과 운명』 『20세기를 생각한다』 『재평가: 잃어버린 20세기에 대한 성찰』 『세계 전쟁사 사전』 『1차세계대전사』 『독재자들: 히틀러 대 스탈린, 권력 작동의 비밀』 『포스트워 1945~2005 1·2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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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운명과 냉전의 양상을 결정한 한국전쟁,
지금도 계속되는 위기의 근원을 파헤친다!
한국 현대사 연구의 대가 브루스 커밍스가 총정리한 한국전쟁의 모든 것
북한의 연이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북한과 미국 사이의 거친 설전, 남북한을 둘러싼 국내외 세력들의 대립 등으로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정국은 극단적인 대립과 애매한 평화 사이에서 요동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화의 가능성은 아직도 멀어 보이고 ‘군사 옵션’의 가능성이 끊임없이 회자되는 지금, 한반도가 전쟁에 휩싸일 것이라는 두려움 또한 커져 간다. 우리는 한반도 평화의 시계가 여전히 안개 속에 있는 이 위기의 시대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 것일까. 무엇보다 이 위기의 근원은 무엇이고 앞으로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 전쟁의 기억과 분단의 미래』는 전쟁의 기억을 되살리고 평화를 향한 길을 다듬기 위한 디딤돌이 될 책이다. 이 책은 『한국전쟁의 기원』으로 한국전쟁과 한국 근현대사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꿨던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학 석좌교수가 새로운 사료를 반영하고 아주 쉬운 필치로 써내려 간 역작이다.
저자는 한국전쟁의 발단과 전개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부터 ‘저항세력’과 ‘부역세력’ 사이에서 벌어졌던 대립,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의해 추진된 일본과 남한에서의 조치, 북한과 중국?러시아 사이의 관계 등 다양한 요소들의 영향을 되돌아보며, 이후 분단이라는 형태로 고착된 대결이 어떻게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지 폭넓게 살펴본다. 그리고 이 대립의 근본적인 원인을 이해하지 않는 이상, 그 연장선상에서 지속되고 있는 한반도 위기를 풀 해법도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은 분단이 고착되어 냉전이 만성화된 한반도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평화의 길을 걸을 수 있을지 알려 준다. 바로 현재의 우리를 만든 분단과 전쟁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한국전쟁을 둘러싼 기억을 다시금 살려 내고 이를 잊지 않기 위해 분투할 때에야 우리는 현재와 같은 분단 상태를 딛고 평화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한국전쟁은 내전이다
한국전쟁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단지 3년간의 비극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그 대답은 1950년 6월 25일일 것이다. 하지만 브루스 커밍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파고든다. 그는 한국전쟁의 기원을 1930년대 만주에서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벌어졌던 항일투쟁에서 찾는다.
일제강점기의 조선은 두 세력으로 분열됐다. 바로 ‘항일세력’과 ‘부역세력’이 그들이다. 특히 만주에서 격렬한 유격대 투쟁을 벌였던 이들은 이후 북한 지도부의 핵심 계보를 형성했다. 반면 미국은 소련 주변부에 자생 가능한 정권을 배치하기 위한 ‘대大 초승달’ 전략에 따라 일본의 산업을 부흥시켰고 남한을 이에 연결시키고자 시도했으며, 이에 따라 부역세력의 복권이 이루어졌다. 많은 친일파가 청산되기는커녕 요직을 차지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여기서 커밍스는 ‘동서 냉전’이라는 현상의 이면에 ‘내전’으로서의 성격이 있음을 발견한다. 일제강점기부터 지속되어 온 대립이 미국과 소련 사이에 성급하게 그어진 38도선을 경계로 첨예화됐으며, 한국전쟁은 갈등이 거대한 규모로 폭발하면서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 지도부가 강조하는 항일 경력은 여전히 북한 정부의 정치적 정당성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따라서 1950년 6월 25일이라는 시점과 3년간의 전쟁이라는 현상에만 치중하면 한국전쟁의 뿌리와 근원적 성격을 간과하게 되며, 이는 북한의 체제와 지도부를 이해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한국전쟁, 세계의 경찰국가 미국을 완성하다
한국전쟁은 상충하고 대립하는 두 경제체제, 즉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대결의 장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커밍스는 베트남전쟁과 달리 한국전쟁은 단순히 두 체제 사이의 대립을 반영하기만 한 것이 아니며, 무엇보다 미국의 대외정책을 결정하는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지적한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미국은 ‘세계의 경찰국가’로서 발돋움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에서 한국전쟁은 ‘잊힌 전쟁’으로 불린다. 여전히 중요한 전쟁으로 기억되는 제2차 세계대전이나 베트남전쟁과는 달리 거의 거론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커밍스는 미국이 한국전쟁을 계기로 방위비가 급격하게 증가했고, 많은 수의 상비군을 유지하게 됐으며, 광범위한 해외기지를 구축하게 됐다고 지적한다. 특히 한국전쟁은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1950년대에 출현하게 된 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미국에게 있어 주요한 분기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전쟁은 미국을 전 세계에 광범위한 군사기지 네트워크를 지닌 ‘새로운 제국’으로 만들어 냈다. 그리고 한반도는 한국전쟁을 거치며 미국이 소련/러시아, 중국, 일본 등의 강대국들과 격돌하고 때론 협력하는 핵심적인 지점이 되었다. 저자는 미국이 동아시아 지역 분쟁의 핵심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많은 변화를 가져온 한국전쟁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는 역설을 상기시킨다. 이는 전쟁 중에 발생한 학살과 공습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잔혹한 학살과 공습의 기억
한국전쟁에서 지워진 또 하나의 측면은 잔혹한 학살과 광범위한 공습이다. 1945년 해방 이후 한반도 전역에는 인민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인민위원회는 일제가 사라지면서 나타난 행정의 공백을 메우는 자치기관으로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실제로 미군정 초기에는 이들의 활동이 인정되기도 했지만, 인민위원회는 이후의 억압 정책 속에서 광범한 유혈사태를 거치며 해산되기에 이른다. 남한에 수립된 정부는 경찰과 우익 청년단체를 이용해 폭압적인 정책을 펼쳤고, 이에 반발한 이들이 제주, 지리산, 여수, 순천 등에서 벌인 반란은 잔혹한 학살 속에서 잠재워졌다.
그런 점에서 한국전쟁 중 남한에서 벌어진 학살들은 해방 후의 학살과 분리될 수 없다. 커밍스는 이전부터 이뤄졌던 억압과 학살이 전쟁을 매개로 더 광범위하게 벌어졌음을 지적한다. 그는 대전 학살, 노근리 학살, 국민방위군 사건 등의 사례들을 통해서 이러한 참혹한 사건들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그리고 그 와중에 미군이 어떻게 가담했거나 이를 묵인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저자는 북한의 잔학 행위 또한 지적하면서 그들 역시 학살의 원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명확히 한다.
전쟁의 상처를 더욱 깊게 한 것은 바로 공습이다. 한국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한반도에는 제2차 세계대전을 넘어서는 엄청난 양의 폭탄이 투하되었다. 한국 전역, 특히 북한 지역은 미군이 무제한적으로 퍼부은 공습에 의해 ‘달의 표면’처럼 변해버렸다. 도시가 초토화되었으며 민간인을 압박하기 위해 전쟁과 관계없는 댐과 저수지에 대한 공습 또한 이뤄졌다. 이와 같은 학살과 폭격은 한국전쟁이 우리에게 ‘잊힌 전쟁’이 될 수 없는 것임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망각을 넘어 평화로 나아가기 위하여
한국전쟁은 어느 쪽도 승리하지 못한 채 ‘휴전’ 상태로 들어가 현재까지 그 상태가 고착되었다. 그리고 전쟁의 기억은 그대로 고착된 채 무의식적인 동시에 강요된 망각에 둘러싸이게 되었다.
남한에서 전쟁의 기억은 진영 논리에 따라 왜곡되고 억압되었다. 전쟁 이후로도 이어진 억압적인 정권 아래에서 남한 세력이나 미군에 의해 저질러진 만행들은 잊히거나 공산주의자의 탓으로 돌려졌다. 공산주의자라는 꼬리표는 연좌제에 의한 박해로 이어졌기 때문에, 남은 이들은 그저 망각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기억은 유령처럼 그들의 삶에서 다시 출몰하곤 했다.
북한에서 전쟁의 기억은 경직된 전체주의 체제를 낳았다. 일제와 부역세력의 만행, 한국전쟁 중 미군 및 “친일파가 장악한” 남한과 벌인 처절한 투쟁, 미군의 일방적인 공습에 의한 국토의 초토화는 적들에 맞서기 위해 대규모 군대를 보유한 ‘유격대 국가’를 낳았다. 전쟁의 기억은 끊임없이 소환되었고 다음 세대로 이어졌으며, 정통적인 입장에 반하는 어떤 의견도 용납하지 못하는 전체주의 체제를 지탱하는 데 동원되었다.
미국은 한국전쟁을 망각하는 쪽을 향해 갔다. 자신들이 주요한 행위자로 참여했으며 한국전쟁이 제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쟁에 비할 만한 대규모의 참혹한 전쟁이었음에도, 게다가 이를 통해 자국이 전 세계적인 패권국가로 거듭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잊힌 전쟁’을 상기하는 것을 피했다. 커밍스는 이 때문에 오늘날 미국의 대북정책이 역사적 무지와 역사의식의 부재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으며, 그로 인해 한반도의 위기가 지속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화해와 극복은 불가능한 것일까?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남한의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진행한 역사적 작업들에서 발견한다. 커밍스는 진실화해위원회가 그동안 잊혔던 학살의 진상을 밝힘으로써 화해와 극복의 길을 열었으며, ‘미래를 여는 역사’를 통해 한국과 이웃 나라 사이의 불편한 진실들을 밝히고자 했음을 강조한다. “국내에서든 국가 간에든 진정한 화해는 오로지 역사적 진실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커밍스는 과거에 대한 이해 없이는 서로를 이해하는 것도 불가능하며, 이러한 이해 없이는 한반도를 둘러싼 대립의 극복이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역사에 대한 미국의 망각은 역사의식 없는 강경한 정책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북한이 더욱더 과거에 고착되게 하고 유격대 국가를 공고히 하는 데로 나아갔다. 한편 이후의 남한 정부는 이전 시기에 일궜던 성과들을 후퇴시켰다. 한국전쟁에 대한 이해가 과거에 있었던 일을 복기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적인 지점이 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 전쟁의 기억과 분단의 미래』는 우리가 역사적 기억을 평화로 가는 디딤돌로 삼을 때에야 비로소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남북한을 둘러싸고 세계정세가 요동치는 지금 시대에 우리에게 꼭 필요한 논의를 담고 있다. 무엇보다 더 이상 이 땅에서 같은 비극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하는 한 학자의 절절한 기록을 통해 우리 역시 평화로 나갈 힘을 얻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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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 4편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 ujcnn@nate.com ㅣ 2018-01-22 ㅣ 공감(0) ㅣ 댓글 (0)외국인의 시각으로 한국전쟁을 보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구요 원문으로 된 책을 먼저 읽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 전쟁의 기원‘이후 새롭게 정리한 한국 전쟁 사랑지기 ㅣ 2017-12-25 ㅣ 공감(11) ㅣ 댓글 (2)
책은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이었던 2010년 미국에서 출간됐다.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한국전쟁의 기원》 이후 새롭게 기밀 해제된 자료를 추가하는 등 한국 전쟁을 총정리했다. 그는 '미국인이 미국인을 위해 쓴 한국전쟁에 관한 책'이라고 소개한다.
그는 한국전쟁을 '내전'으로 보면서, 내전을 초래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힘의 기원을 일본의 식민통치 시대까지 확장한다.
"특히 불평등한 토지 보유, 한국인 중 일부는 항일 운동에 참여하고 다른 일부는 일본에 협력했던 것, 그리고 수많은 한국인이 여기저기 끌려 다니며 일본의 방대한 산업화와 전시 동원 노력에 복무해야 했던 1935∼45년의 10년 동안 평범한 한국인이 겪은 경악스러운 혼란에 그 뿌리가 있다."(163쪽)
그에 따르면 한국전쟁은 일본의 한국 식민통치 시기(1910~1945)의 특징이었던 계급 간의 분열과 항일투쟁의 분열에서 비롯된 내전이었다.
미국은 한국 전쟁을 통해 새로운 체계로 도약했다. 미국은 방위비를 대폭 늘렸고, 해외 기지를 광범위하게 구축했으며, 안보 국가를 수립했다. 미국을 세계의 경찰국가로 만든 것도 제2차 세계대전이 아니라 바로 한국 전쟁이었다.
한국 전쟁은 미국인이나 우리 모두에게 “잊혀진 전쟁”이 되었다. 한반도의 분단은 미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보수 진영의 정치적 기반을 강화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수단이다.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2016년 10월 21일 제주칼호텔에서 ‘미국의 책임과 제주의 학살'이란 주제로 강연을 가졌다. 그는 2017년 4월 제2회 제주4.3평화상을 수상했다.
특히 그는 한국 전쟁 중 벌어진 잔혹한 학살과 광범위한 공습에 대해 주목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과 미국이 투하한 폭탄의 총량은 120만 톤이었다. 미국은 한국에서 64만 5천 톤의 폭탄을 투하했는데(3만 2557톤의 네이팜탄은 별도), 이에 비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태평양 전쟁구역 전체에 투하한 것이 50만 3천 톤이었다. 북한의 22개 주요 도시 중에서 18개 도시는 최소한 50%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북한의 도시와 마을의 파괴 정도는 “40~90%까지로” 추산되었다.(226쪽) 저자에 따르면 북한 지역은 공습으로 '달의 표면'처럼 변했다.
저자는 최근 미국의 트럼프와 존 매케인 등 극우 진영이 북한을 겨냥하여 “화염과 분노”, “절멸”이라는 망령을 불러낸 것은 역사의식 없는 정치인의 소행이라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2017년 오늘날을 사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저자는 한국인들이 자신들의 내전을 기록한 역사가들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한 그는 “과거에 대한 이해 없이는 서로를 이해하는 것도 불가능하며, 이러한 이해 없이는 한반도를 둘러싼 대립의 극복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이에 우리는 한국 전쟁을 새롭게 조명하는 한편, 남북한 공동체 차원의 화해를 모색해야 한다.
커밍스 교수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서 넬슨 만델라에 비견되는 화해와 치유의 정치를 발견했다. 그는 이번 책을 김 전 대통령께 헌정한다고 밝히고 있다. 지난 2007년 제1회 김대중 학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북핵 위기를 빠르게 푸는 방법? 저자에 따르면 북한이 요구하는 두 가지 사항, 즉 최종적인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한국 전쟁을 끝내고, 북한을 외교적으로 승인하는 것이다. 왜 미국은 이것을 거부할까? 이는 바로 러시아와 중국을 포위·압박하기 위한 군사적, 정치적 책략 때문이다.
[마이리뷰]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 베터라이프 ㅣ 2017-12-09 ㅣ 공감(5) ㅣ 댓글 (0)
한국 전쟁을 진지한 학술 연구의 시초로 닦은 ‘한국 전쟁의 기원’의 저자이자 미국 시카고대 석좌 교수인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최근 출간작인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전쟁’ 을 일독했습니다. 그는 80년대에 미국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한국전쟁에 대한 수정주의적 입장을 견지했는데요. 박명림 교수를 비롯한 국내의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한국 전쟁에 대한 ‘실제 역사’가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최근에 러시아가 공개한 구소련 시절의 스탈린과 마오쩌둥, 김일성 간의 외교적 대화와 기록들이 공개되면서 당시 김일성의 행적이 낱낱이 검증되어 논란이 불식되었습니다. 1950년 초에 스탈린이 김일성의 요구를 잠정적으로 인정하면서 김일성이 주도한 북한군의 38선 이남 남진이 사실로 밝혀졌죠.
지금도 한국의 많은 관련 학자들은 커밍스 교수의 한국 전쟁론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밍스 교수는 특유의 노력으로 미국이 보유했지만 그동안 잊혀져 있던 수많은 한국 전쟁 자료들을 발굴해 내었기에 이 부분 만큼은 인정 받을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1999년에 공개된 남측에 의한 대규모 민간인 학살에 대한 사진 자료들이 일부 실려 있고, 책 후반부에 이 주제에 대한 글이 다뤄지고 있습니다.
제가 고교 시절에 배웠던 국사 교과서에도 나와있던 소쉬 ‘애치슨 라인’ 이 간접적으로 북한의 남침을 제공한 것으로 설명되는데, 커밍스 교수는 ‘한국 자체로서 대 공산주의 대결에서 매우 중요한 지역이라는 것을 애치슨을 비롯한 트루먼 대통령이 인식하고 있었지만, 이것을 표면적으로 밝히는 것이 어려웠다. 그 이유는 이런 미국의 입장을 내세워 이승만이 겁없이 전쟁을 시작할까 두려웠기 때문” 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전쟁 기간 내에 맥아더와 트루먼의 대립은 익히 알려진대로 그러했지만, 숨어있던 내막은 트루먼이 맥아더를 그 자리에서 끌어내렸던 이유는 미국 정부가 핵폭탄 사용을 결정하면 햔직에 더 신뢰할 만한 지휘관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 번역 출간된 데이비트 핼버스탬의 ‘콜디스트 윈터’에서 보여지는 맥아더, 트루먼의 일련의 갈등의 본질을 잘못 끄집어 냈다는 것으로 여기는 모양입니다. 그외에도 핼버스탬이 미국 정부에 있어서 한국 전쟁에 대한 실제적 이해에 대해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으로 커밍스는 받아들이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이에 애치슨의 표현대로 ‘한국 전쟁은 발발하여 우리(미국)를 구한 위기’ 였다고 평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봐야겠죠. 당시 매카시즘의 광풍에 휩싸여 있던 미국 정계에서도 이 한국 전쟁의 의미는 단순히 먼 아시아의 내전으로만 한정하기에는 어려웠을 겁니다. 더욱이 자신들의 태평양 안보에 있어서 중요한 일본을 재건하는데 한국전쟁을 십분 이용함으로써 미국의 정치권에게는 실로 적절한 위기였다고 해석하고 싶군요.
그리고 미국인들이 우리에게 갖고 있던 인종주의적 편견에 대해서도 2008년에 출간된 커밍스 교수의 공저 ‘악의 축의 발명’에서 언급된 공통된 인식이 들어가 있는데요. 특히 당시 남한에서 군정을 수립하고 거기에 참여했던 미군과 그 수뇌부들이 갖고 인종주의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데요. 제가 느끼기에는 제주에서의 사건, 여수와 대전, 수원 등지에서 자행되었던 한국군과 경찰에 의한 민간인 학살에 이러한 인종주의적 편견으로 인식되어 정치적으로 또 물리적으로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은 당시 현지의 (권력을 지닌) 미국인들에 대한 비판입니다. 물론 일차적인 책임은 이승만 정권과 그에게 부역했던 권력이 무고한 민간인들을 확인되지도 않은 사상의 껍데기로 싸잡아 처단해 아직도 진실과 화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는 미국에게도 공통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노근리 사건에서 보여졌던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의 대응을 봤을 때 이러한 화해는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지나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외에도 한반도 전체를 ‘달 표면’과 마찬가지로 만들었다는 미 공군에 의한 무차별 폭격과 먼 미래에 이라크에 대해 1945년의 한국과 거의 동일한 과오를 저질렀다고 자기 고백하는 미국인 커밍스 교수의 언급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한국 전쟁의 진실은 아직도 많은 부분이 가려져 있지만 커밍스 교수의 용기가 느껴지는 이 단행본은 조금이나마 우리가 과거의 동족 상잔의 비극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약간의 논외지만 미일 동맹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많은 미국의 연구자들과 학자들과 달리 일본에 의한 냉혹한 한국 식민 통치와 ‘아베는 근본적으로 고노 담화를 거부한다’ 고 평가하는 그의 진심은 약간의 학자적 양심을 느껴지게 했습니다. 그래서 정치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역사와 진실을 날 것 그대로 마주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듯 싶습니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 만화애니비평 ㅣ 2017-11-22 ㅣ 공감(16) ㅣ 댓글 (0)
2018년 평창 올림픽이 개최된다. 올림픽 마스코트가 백호와 반달곰을 기반으로 제작된 캐릭터이다. 이 캐릭터를 보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단방에 생각한 것이 있었다. 곰과 호랑이는 한국인의 국조 단군신화에 나오는 존재이다. 단군신화는 한국인의 시작이고, 한국의 역사와 신화의 시작이다. 단군신화가 없다면 한국인이란 정체성은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1988년 서울에서 개최된 올림픽 역시 호돌이와 반달곰 캐릭터가 등장했다. 한국에서 단군신화를 결코 놓칠 수 없는 이유는 많을 것이다. 하지만 단군신화의 중요성은 단순히 국제행사의 마스코트로 상징성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인은 하나의 민족이지만, 국가는 2개로 분단되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전신은 고종황제께서 반포하신 대한제국(大韓帝國)에서 따온 말이고, 한국(韓國)은 고대 우리의 국가인 삼한(三韓)의 한(韓)을 가지고 온 것이다. 생각하면 그렇지 않은가? 한국이란 국가는 우리이기도 하나, 한편으로 우리는 남한(南韓)이라고 말하고, 저 위에 있는 정권은 북한(北韓)이라고 한다. 반대로 북한은 자신을 두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이라고 한다. 그들은 자신을 두고 북조선(北朝鮮)이라 하고, 우리를 보고 남조선(南朝鮮)이라 한다.
단어를 본다면 북한은 조선을 우리는 한국을 인용하는 점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역사, 그리고 대한민국 이전의 역사 조선, 조선이란 국가가 단군조선을 계승한 점을 생각하면 국가의 이름에 아주 깊은 뜻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전쟁이나 전투에서 다른 국가와 민족보다는 같은 국가 내에서 같은 민족끼리가 더 잔인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부른다. 신화에서도 그리스비극 오이디푸스왕과 아가멤논왕의 가족이야기는 비극을 넘어 인간의 딜레마를 보여준다. 같은 종족이기에 같은 형제이기에 갈등은 더욱 무섭다.
집안에서도 마을에서도 친하게 지낸 사람끼리 다투면 그 화가 더 심해진다. 타인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높을수록 증오와 복수는 깊어지는 게 인간이 가진 딜레마이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4주년이 되고, 광복절은 61주년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일제로부터의 광복과 한국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여전히 조선총독부에 의해 징용에 끌려간 청년들, 위안부 성노예로 끌려간 소녀들의 영혼은 안식을 찾지 못했다. 이들의 영혼을 위로받지 못하는 이상 우리는 영원히 독립국가라 말할 수 없고, 한국이 통일되기 전까지 한국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다.
한국전쟁(韓國戰爭)은 종전(終戰)이 아닌 휴전(休戰)이다. 최근 북한 핵문제나 휴전선 귀순병사 사건을 보면서 우리에게 남겨진 지난날의 슬픔을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문제로부터 시선을 돌리면 안 된다. 조선을 잊는 것은 분단 이전의 한국을 버리는 것이고, 일제와 전쟁을 피해 멀리 외국 타향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고려인들을 버리는 것과 같다. 이 모든 비극의 씨앗은 그 당시 살아간 이들만 아니라 이들의 후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후예들은 아직도 우리라는 사실을 가끔 우리들은 망각한다.
예전에 형과 집안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우리 집안은 일본제국주의에 많은 원한을 가지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큰형님과 동생분이 징용에 끌려가고, 해방 후 돌아오신 할아버지의 큰형님은 그만 병으로 세상을 하직했다. 본래 집안이 양반가문이나, 몰락한 남인의 후예이기에 그 여파로 할아버지는 한자를 제대로 읽지 못한 농부였다. 그래서 한국전쟁 전후로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자유주의는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 그러나 한국전쟁 시기 밤이면 늘 시골집 근처에 있는 저수지 들풀 사이에서 숨어 지냈다고 한다.
게다가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아무 관련도 없는데도 빨갱이로 몰린 누명도 있었다고 했다. 비록 20년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분이 살아온 인생은 순탄치 못한 굴레의 연속이었다. 징용에 끌려갈 뻔했으나, 스스로 몸을 자해하여 운 좋게 징용당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가족의 비극적 시나리오에서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을 읽었다. 한국전쟁과 관련된 도서로 가장 잘 읽은 서적은 박태균 교수의 <한국전쟁>, 김태우 박사의 <폭격>이었다. 한국전쟁사를 일방적인 관점이 아니라, 미국과 소비에트 러시아의 군사기밀해제문서를 다각적으로 정리하여 만든 도서이다.
전쟁은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전후맥락을 관찰해야 하고, 특히나 그 시대에 전쟁 당사국이 아닌 주변 국가의 정치군사적 갈등도 확인해야 한다. 한국전쟁을 시기적으로 잘 정리하고 풀이한 도서는 박태균 교수님의 서적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한국전쟁에 가려진 분노와 역사적 관점은 브루스 커밍스와 김태우 박사의 책이다. 김태우 박사의 책에서 북한이 패배한 전쟁이 아닌 것처럼 보이나, 사실 북한은 상당한 피해를 받고 모든 것이 사라진 전쟁이라 말한다. 이에 반해 브루스 커밍스는 미국은 한국전쟁에서 이기지도 못하고, 압록강에서 후퇴하여 패배한 전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승패가 나누지 못한 패배한 전쟁이라 말한다.
전쟁은 패배하지 않아도 패배라고 말하는 이유는 미국은 이 전쟁에서 이기지 못했고, 그들이 저지른 행동들이 결코 떳떳하지 못했던 것이다. 최근 노근리 사건을 대두되고 있는데, 노근리 학살과 관련하여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에 대한 학살이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 한국전쟁에서 한국인이 300만명이 사망하고, 그 중 반 이상이 민간인이다. 한국인에 대한 학살이 미군도 그러하나 왜 자국민끼리 그럴까? 브루스 커밍스는 한국전쟁에서 미군과 중공군의 개입보다 한국인끼리의 혈전에 많은 생각을 보여준다.
전쟁의 시작은 1950년이 아니라 1932년부터란 점이다. 일본의 괴뢰국가인 만주국이 설립된 시기, 만주군관학교에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군장교로 임관하고, 그 중 일부는 유명한 대한민국 육군 장군이 되었다. 대한민국 초기 육군 장군과 육군사관학교는 친일세력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들과 더불어 경찰과 관료조직은 친일파들이 메우게 되었다. 이들은 자국민에 대한 탄압이 무척 잔혹했고, 항일독립투사에 대한 탄압도 지독했다. 민간인 학살에서 보여준 만행은 이가 떨리는 정도이다.
어느 친일파 장교출신 육군 장군은 한국전쟁 당시 마을 소년을 산에 끌고 와서 10명 중 9명은 일본도로 목을 베고, 나머지 1명에게 죽은 9명의 머리를 가져가게 했다고 한다. 군부와 경찰에 대한 불신과 문제점은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서 등장하고, 대한민국 독립운동가 중에 가장 많이 몸담은 단체가 대종교이다. 대종교는 국조 단군을 모시는 민족종교로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대종교 신자였다. 대종교 신자가 해방 후 서울에 오니 당시 자신을 지독하게 고문한 일본순사가 한국경찰이 되어 있었다. 항일무장투쟁을 하던 김원봉 대장도 해방직후 일제시대 순사를 했던 친일파에게 잡혀 고문을 당하고, 북으로 넘어갔다.
따라서 친일파와 친일파에게 불만을 가진 한국인의 대립이 이미 1930년대부터 존재했고, 쥐잡이작전은 육군사관학교에 가장 인기 높은 전략이다. 그런데 그 작전의 기원은 일본군이 하일유격대를 처치하기 위해 고안한 고도의 전략이다.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은 대부분 중국 및 러시아 일대에서 활약했고, 사회주의 노선 항일투쟁가들은 중국 공산당과 협력하여 활동했다. 중국내전에서 조선인이 있었다는 사실은 의외였다. 한국전쟁은 중국과 소비에트연방, 그리고 미국의 파워게임에서 시작되었으나, 이미 그 전초는 한국인 내부에 있었다는 점이다.
브루스 커밍스 교수가 미국인이나, 은근히 한국사회와 역사, 게다가 문학과 신화 등 전반적인 한국문화를 이해하고 있었다. 한국전쟁의 갈등은 당시 전쟁만이 아니라 21세기에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책의 서문에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자신의 책을 바친다고 적었다. 반정부 인사, 평화중재자, 정치가로 활동한 그를 말이다. 지금도 김대중 전 대통령을 두고 호남에 태어났고, 한국전쟁 전에 인민위원회 활동으로 빨갱이란 꼬리표가 따라 다닌다. 하지만 브루스 커밍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몸담은 곳은 공산주의 세력과 무관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아닌 각종 인민위원회는 자생적 조직이라 말했다.
그런 증거는 미군의 문서에서 발견되었고, 당시 미군은 한국의 자체조직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으며, 이들을 공산주의와 같은 세력으로 보았다. 대표적인 학살사건은 제주도의 4·3사건이고, 당시 제주도 주민들은 아무런 통신장비도 없었기에 공산세력과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생리를 잘 이해하지 못한 미군과 서북청년단은 경찰세력으로 편입하여 민간인 학살을 주도했다. 아직도 제주도는 4·3사건의 비극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다. 당시 몇 만명의 주민들이 살해당했고, 몇 만명의 주민은 일본으로 대피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의 후손은 아직도 일본에 있다고 한다.
빨갱이로 낙인찍히면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에게 화가 미친다. 빨갱이라고 지목된 남자의 아내 여동생, 누나가 있다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윤간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희생자의 성기 안에 수류탄을 넣었다고 한다. 이 글귀를 보는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 잔인함이란 인간으로 해서 안 될 경계선을 넘은 것이다. 3살짜리 어린 여자아이가 총에 맞아 울고 있으니, 총에 달린 검으로 그 아이의 목을 베기도 했다. 당시 8살 소년은 자신의 여동생이 억울하게 죽어간 모습을 보았다. 평생의 상처가 되어 부모의 이름조차 말하지 못하다, 드디어 21세기 (진정한 의미로) 민주주의 정부가 도래하면서 당시의 비극을 말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미국은 한국에 대해 더 심각하게 대했다. 지금은 우방국가라고 하지만, 당시 한국전쟁 전후는 일본의 전진 군사국가, 일본의 전후경제 복구를 위한 체계로 보았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군수물자 공장을 맡은 일본은 경제적으로 급성장을 했다. 미군에 의해 항복한 전범들은 일부 사형에 처해졌지만, 그들의 후손 대부분이 일본의 총리와 의원직을 차지하고 있다. 아베 신조를 비롯한 자민당 의원은 대부분 우익정치가 내지 군인들의 후손이다. 미국에게 가장 치욕을 당한 그들이 이제는 태평양 국가 중에서 미국과 가장 가까운 나라가 되었다.
한국인들은 미국의 최고 우방은 한국이라 여기나, 사실은 일본이다. 동북아시아 미군기지 중 가장 핵심 전략은 일본 오키나와 주변에 포진하고 있다. 괌은 미국의 영토이니 그렇다 하더라도 미국영토가 아닌 미군의 군사력은 일본에 많이 포진하고 있다. 1950년 한국전쟁은 내전이고 주변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의해 좌우된 전쟁이다. 하지만 전쟁에서 보여준 잔인성과 비극은 이미 뿌리내린 씨앗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이나 북한군과 아무 관계없어도 단지 북한군의 의복을 세탁을 해준 이유로 많은 여성들이 살해당했다.
그들은 이데올로기 내지 사상 따위는 전혀 모르는 까막눈이며, 오로지 원하는 것은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는 식량이었다. 이런 민간인들의 속성을 모르는 미군과 주변 강대국, 일제강점기 때부터 싹이 튼 원한과 공포는 광기의 도가니로 몰았다. 한국전쟁이 세계전쟁사 특히 항공전쟁사에서 가지는 의미가 중요한 점은 세계 2차 대전보다 한국전쟁에서 폭격기의 역할이 두드러지게 활약했고, 폭격기는 각종 군사시설 및 산업시설을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민간인들을 죽이게 만들었다.
한국인은 대부분 흰색옷을 입으니 그들은 민간인인 것을 알아도 흰색만 보이면 무조건 폭탄을 투하했다. 민간인들에게 대피할 것을 권유해도 떠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도 있다. 한국인은 기본적으로 농업에 종사하고, 집안의 조상이 산에 있기에 쉽게 고향을 버릴 수가 없었다. 여기에 만주군관학교 출신 친일파장교들이 수행한 독립군 토벌작전도 포함되어 있다. 간도나 만주의 조선인들은 몰래 독립군에게 식량과 군자금을 지원하는 지원세력이었다. 그곳 출신 청년들은 독립군의 용사가 되어 일제에 항거했다.
조선의 민간인을 친일파 조선인들이 무참하게 살해하였던 것이다. 이런 그들이 이승만의 정치세력으로 등장하여 한국전쟁까지 이어졌다. 제주도 4·3사건 당시 제주도 주민들은 대부분 희생자의 친척들이었다. 이들의 증오와 복수심은 지금도 제주도의 한으로 남아있고, 이들의 저항을 막기 위해 더 심한 억압과 폭력을 가한 것이다. 제주도만큼 심하게 압박을 받은 곳은 전라도지역이다. 전라도는 동학운동 시절 가장 착취를 많이 당한 지역이고, 외세가 가장 많이 초토화시킨 지역이다. 청일전쟁에서 전라도 지역이 많은 타격을 받았고, 일제강점기 시대에 가장 많은 곡식을 수탈당했다(왜 군산시가 항구도시로 성장했을 수 있는가?).
전라도 지역사람들이 폭압을 당한만큼 그들 역시 저항을 많이 했다. 그래서 제주도처럼 이데올로기의 대립에서 많은 사람들이 갈등을 빚은 곳이었다. 지금 전라도 내부에서는 자신들끼리 이데올로기적으로 대립하기보단 타 지역과 갈등을 빚고 있다. 518의 비극에서 아직도 빨갱이로 낙인이 찍히고 있는 그들을 보면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 한국전쟁 전후의 한국사를 보면 항상 피해자가 악마나 마녀 내지 적으로 간주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나, 단지 그것은 살아남은 하나의 국가나 사회적 합의체이지 그 사회 내의 존재들이라면, 결국 역사적 진실은 다시 우리에게 찾아오는 법이다. 브루스 커밍스의 책을 보면서 E.H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가 다시금 떠오른다. 역사는 과거에 있었던 일이고, 그것은 하나의 진실이다. 하지만 진실은 어느 관점에 따라 사실과 왜곡으로 변모된다. 20세기 한국에서 광주는 불온세력이 포진한 지역이라면, 21세기 현재 광주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성숙시킨 곳이다.
서평을 보자면 한국전쟁 전후로 민간인 학살을 한국인과 미군만 했을까 라는 의문이 들겠지만, 북한군 역시 민간인을 학살했다. 문제는 민간인학살을 하던 전범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부정한다는 점이다. 그 죄를 건들면 아직도 이데올로기적인 마녀사냥을 구가한다. 당시 한국전쟁의 전환점은 미군의 군사력이다. 미군은 2차 세계대전 시에도 국방력을 그렇게 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군사력이다. 한국전쟁을 기해 미국은 방위산업체의 확대되고, 지금 미국의 방산업계는 세계 최고이다. 한국전쟁은 미국에게 있어서 2차 세계대전처럼 파시스트에게 이기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세계 패권을 잡기 위한 싸움이다.
그 전쟁은 베트남전쟁도 이어지고, 냉전체계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당시 미국 상원위원인 메카시가 있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메카시즘은 미국정치와 사회를 숙청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고, 그 시기 한국은 공산진영과 전쟁을 벌였다. 브루스 커밍스의 책에 언급했지만, 더 자세한 것은 <폭격>이란 도서에 나와 있는데, 미군은 유색인종인 동양인을 상당히 무시했다. 일본 상공에 폭격을 하나 한국의 농촌을 폭격하는 심정이었다. 한국인도 그들에게 하나의 gook(동양인을 멸시하는 말)이었다. 그렇게 학살하고도 이기지 못한 전쟁, 게다가 민간인학살까지 저지른 일들이 한국전쟁은 미국에게 잊어진 전쟁이 되었다.
다르게 생각하면 미국에서 베트남전쟁에 대한 미디어가 참 많다. 베트남전쟁에서 미군에게 베트남 그 자체가 적이나, 한국은 적이 아니라 반쪽자리 우방국이다. 압록강까지 올라가 흥남부두에서 쫓기듯 내려온 그들에게 한국이란 인상은 좋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전쟁을 두고 변증법적인 논리로 보자면, 한국전쟁 이전 일제치하에서 조선인들을 상대로 횡포를 부린 친일파와 그들과 대치한 민중의 갈등에서(방안에 가득 찬 메탄가스), 소비에트의 지원을 받은 김일성 정체세력이 총(라이터)을 발사한 것이다.
1950년보단 못하나, 아직도 그 메탄가스는 여전히 우리 주변을 부유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갈등은 정치적 세력으로 표출되며, 정당간의 대립은 한국전쟁과 그 이전에 존재했던 과거의 그늘에서 나오고 있다. 저자의 놀라운 관찰력은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로 나올 때의 이야기도 알고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영부인 권양숙 여사는 어릴 적에 아버지를 여의였다. 아버지는 사회주의 단체와 연계되어 있지만, 앞을 볼 수 없는 맹인이란 점에서 그가 실제 전쟁에서 한국군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조건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과거를 가지고 색깔론을 상대편 후보가 펼쳤다. 그 시대가 한국전쟁이 끝난 지 54년이 넘어도 그런 말이 나왔다. 이런 이데올로기적 갈등이 계속 우리 사회에 남아있다면 한국전쟁의 불씨는 꺼질 수 없을 것이다. 당장 북한과의 대화를 해야 하나, 한국사회의 갈등은 국내외적으로 정치, 군사, 외교에 큰 갈등을 야기한다. 전 정권의 정부는 일제가 저지른 위안부 문제와 징용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려 했다. 당시 자국민들과 그들의 후손들이 지울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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