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16

[개벽학당 세미나] 새롭게 살고 싶다 - 아띠(황지은)


[개벽학당 세미나] 새롭게 살고 싶다 - 아띠(황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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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학당
2019.06.11. 06:0674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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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rt Home, Smart City, Smart Life ©고수경
새롭게 살고 싶다
-여시재 이광재 원장님의 <새로운 사상과 가치를 가진 신문명도시>강의를 듣고

아띠(황지은)

지금까지 내 인생을 관통하고 있는 욕망은 단 한 가지, 다르게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의 아빠는 농업문명과 산업문명의 교차로에서 간신히 살아남아, 몹시 성실한 임금노동자의 삶을 살았다. 후미진 해안가 마을에서 바다 수영을 하고, 소에게 꼴을 먹이며 자라나다가 고졸 학력으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수도권 도시에서 터전을 잡았다. 그가 성실히 일한 결과, 나이를 먹을수록 아내와 자식과 아파트와 승용차와 땅과 퇴직연금을 가질 수 있었다. 물론 죽었다 깨어나도 자본가는 될 수 없었지만 말이다. 가난하지도 부유하지도 않은 애매한 중산층 계급 속에서 자라난 나는 덕분에 나만의 방과 나만의 책장과 나의 원고지를 가지고 자라났고, 대학에 가거나 가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빠는 내가 중학교에 진학하고부터 줄기차게 공무원이 되라고 종용했다. 그 직업은 그가 자식에게 물려주고픈, 가장 안정되고 지혜로운 삶의 방식을 반영한 것이었다. 과연 그랬다. 2019년 대한민국의 많은 청년들은 공시생의 삶을 선택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의 딸은 죽어도 공무원은 되지 않겠노라, 당신과는 다르게 살겠노라 선언하며 청소년기부터 배반과 거역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행복한 삶에는 먹고 사는 것 이상의 가치가 필요해서였다. 그 가치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게 있는 것이 분명했다. 사춘기가 되기도 전에 직관적으로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던 건, 아빠가 자기 행복을 희생하며 내가 걱정 없이 자랄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마련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기꺼이 아빠의 등을 밟고 다르게 살아보기로 결정했다.

나는 ‘요즘 청년’들보다 조금 빨리 경제적으로 자립했다. 기특하게도 경제적 안정을 찾았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안정된 삶을 마련하기 위한 취준생 시기를 건너뛰고, 대학과 밥벌이를 병행하며, 월세를 내는 삶을 좀 더 빨리 받아들였을 뿐이었다. 부모의 집에서 등하교를 할 수 있고, 원한다면 대학 등록금과 공무원 학원비 혹은 대학원 등록금까지 지원받을 수 있었지만 그냥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내 공간 안에서 내 욕망대로 사는 게 더 중요해서였다. YOLO로처럼 살았냐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베를린 도시를 상징하는 말은 ‘Poor and Sexy’라는데, 내 삶의 방식도 그랬다. 가난하지만 섹시하게. 정말 가난해본 적이 없어, 가난이 두렵지 않아 그랬는지도 모른다.

나는 스무살 초반에 대학을 자퇴하고 여행학교 로드스꼴라를 다녔고,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 졸업한 후, 지금은 로드스꼴라에서 일하고 있다. 내 직업은 청소년교육여행 기획자이기도 하고, 대안학교 교사이기도 하고, 주 5일 상근을 하는 노동자다. 이렇게 말하면 참 편한데, 내가 일하는 마음을 주변에 표현하는 게 만만치 않았다. 잘못 말했다가는 ‘시민단체에서 많지 않은 월급을 받으며 착취당하는 순진한 청년 활동가’ 혹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에 매달리는 꿈 많은 청년’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다분했기 때문이다. 나의 일터는 ‘워라밸’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았다. 밸런스가 다 깨졌다기보다는 워크와 라이프 자체가 무 자르듯 싹둑 자를 수 없는 일터이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이 내 앞에서 번아웃과 착취, 불공정 노동 등의 단어를 언급하며 나를 가련하게 쳐다볼 때마다 정말이지 난감했다. 불편했다. 무슨 일을 그렇게 하느냐? 라고 묻는다면 나를 살리고, 내 이웃을 살리고, 뭇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해야 했다. 그 안에서 일을 하고 있노라면 ‘내’가 자주 잊혀졌다. 헌신이 희생 같아 분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로드스꼴라의 워크는 곧 라이프였고, 동료 교사들은 생의 동지들이었다. 나는 우리 모두를 구도(求道)하는 사람들이라고 여겼다. 나의 상사는 나의 스승이었다.

그 안에서 공동체를 위한 헌신이 무엇인지 체득할 수 있었다. ‘요즘 청년’들이 부모 잃은 고아처럼 기댈 곳 하나 없이 각박하게 살아간다는데, 나는 혈연관계가 아니면서도 가깝고 친밀하고 지속적인 관계망 속에서 나름 만족하며 살고 있었다. 사는 게 마냥 불안하고 두렵지 않았다. 어디서 생겨났는지 모를 낙관적인 마음이 나를 지탱하고 있었다. 아마도 동료들과 함께하는 여행과 공부 속에서 얻은 힘인 듯했다. 그렇게 7년을 살았다. 이제는 아빠에게 산뜻하게 말할 수 있었다. 아빠, 나 다르게, 잘 살고 있어요. 그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작년부터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이렇게 살 수 있어, 하지만 앞으로는 이렇게 살 수 없을 텐데…. 여태껏 내가 믿은 다른 삶의 방식은 일과 진로에 국한된 것이었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 지향하는 가치 속에서 먹고 살기를 실현할 수 있다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몸은 자꾸 과부하가 걸렸다. 이대로는 지속불가능하다는 느낌이 자꾸만 들었다. 일하는 시스템이 문제인 걸까? 몸과 마음을 충분히 돌보지 않아서일까? 휴직을 하고 쉬면 되는 걸까? 내 삶만의 문제는 아닌 거 같았다. 나의 가족과 스승과 친구들, 이 땅에 살고 있는 숱한 생명들이 이미 한계를 느끼고 있는 거 같았다. 이대론 안 될 거 같다는 절박한 마음 말이다. 그 마음이 흐를 수 있는 새로운 길이 보이지 않아, 우리 모두 조금씩 아픈 거 같았다.

삶의 기반이 전면적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애써 다르게 살아가고 있다는 자부심만으로는 극복되지 않는 종류의 감각이었다. 여시재 이광재 원장님의 말을 빌리자면, 산업문명의 지속불가능함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만나는 청소년과 청년들이 겪고 있는 다양한 강도의 우울과 불안, 신체적 불편함 또한 그 징표 같았다. 지속불가능하다는 감각, 나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짊어져야하는 짐이었다. 앞선 세대들은 민주화 운동과 혁명으로 삶의 어려움을 돌파해나갔다던데, 그럼 지금이라도 혁명을 일으키는데 이 한 몸 바치면 되는 걸까? 그 단어들은 이미 낡아보였다. 그들의 위기감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년과 청소년의 위기감은 결이 달랐다. 전 지구적인 위기감이었다.

그런 와중에 ‘개벽’이라는 단어를 만났다. 개벽은 ‘다르게 산다’라는 말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아예 새롭게 살아야했다. 내 인식과 삶의 방식을 개벽하는 것부터 시작해야하는 듯 했다. 그런데 어떻게? 새롭게 산다는 건 대체 어떤 걸까? 한국사상사의 맥을 짚으며 정확한 자기 인식을 이뤄내는 것, 정신의 식민지 상태에서 분연히 벗어나는 것, 개벽에 필요한 사상과 언어를 복원하여 다시 ‘힙’하게 만드는 것, 물질개벽의 최전선을 직시하며 생명과 영성을 생각하는 생활방식과 정치‧사회 시스템을 생산하고 확산하는 것…. 최근 개벽학당에서 3개월 남짓 공부하며 얻은 실마리 같은 것들이다.

이광재 원장님의 강의를 통해 이 모든 걸 실질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한 단어를 얻게 됐다. 바로 ‘신문명도시’이다. 산업문명과 디지털문명의 전환기 속에서 완전히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구현해나가는 신문명도시 말이다. 그 문명은 나를 살리고, 내 이웃을 살리고, 뭇생명 그리고 인공지능과 데이터까지 살리는 힘을 잉태하고 있을 것이다. 《라이프 3.0》에 의하면, 인공지능은 미래 생명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충분하니 말이다.

콘크리트 공장과 전면이 유리로 덮인 초고층 빌딩,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 승용차와 도로, 은행과 학교와 백화점, 고층 아파트로 구성된 도시는 미국이 계획하고 건설한 것이었다. 농업 문명을 기반으로 중국의 서안이 아시아 도시 계획의 롤모델이 됐던 것처럼, 20세기 동안 대다수의 사람들은 미국의 도시 같은 곳에서, 미국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향유하며 살기를 갈망했다. 자본과 지식의 독점, 그 최첨단의 도시에 스며들었던 욕망들이 이제는 죄다 낡아버렸다.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막연한 감각을 산업문명에 기반한 고비용 저효율의 도시에서 비롯된 삶의 방식으로 설명하니, 고개가 주억거려졌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산업문명 도시에서 겪는 온갖 난감함과 어려움은 넌더리가 날 만큼 대두되었다. 거기에 인류세라는 말이 생겨나고 인공지능까지 더해지니 막연한 공포감과 불안감이 삶을 좀먹고 있었다.

다르게 살고 싶은 욕망을 넘어, 새롭게 살고 싶은 욕망이 실현된 미래는 이미 내 마음속에 도착했을지도 몰랐다. 집과 승용차와 지식과 지혜, 디지털 기술의 공공公共화, 삶의 모든 현장을 배움의 현장으로 만드는 실험, 적게 일하고 적게 벌면서도 잘 살아보기, 비건 라이프 스타일, 제로웨이스트 라이프 스타일, 마을 되살리기, 디지털 기술과 공존하면서도 직조와 목공으로 손의 감각을 깨우려는 노력들, 돌봄과 상생의 감각이 되살아나는 마을살이, 청년들이 지방 소도시에 내려가 텅 빈 공간에서 창의적인 작업과 실험을 하는 것…. 그렇게 살아버리면 얼마나 좋을까-상상하곤 했던 그 모든 일들이 여시재의 신문명도시에서 상상해볼 법한 것이었다. (물론 그 그림 속에 인공지능이라던지 데이터교의 탄생 같은 물질개벽의 구체적인 장면은 부족했지만 말이다. 그 부분은 개벽학당 세미나에서 로샤와 공부하며 나날이 업데이트하는 중이다.) 그중 제로웨이스트나 비건 라이프스타일, 손의 감각 일깨우기, 마을 되살리기 등 삶의 방식을 전환하는 실험들은 이미 치열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내가 일하고 있는 로드스꼴라와 하자센터의 교육적인 실험들 또한 그러했다.

나와 벽청들은 신문명도시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광재 원장님의 강의가 끝나고 곰곰, 생각해보았다. 역시 신문명도시에 필요한 미래 학교를 만드는 일이 가장 매력적이었다. 개벽학당에서 그 단초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막연히 나누는 대화 속에서 영월 같은 도시로 내려와 개벽도시를 만들고, 그 안에 또 하나의 개벽학당을 열고자하는 꿈이 움트고 있었다.


황지은(아띠)

고인 물처럼 살리라, 무심코 다짐했던 거 같은데 사방팔방으로 흐르고 번지며 살고 있다. 글 같은 건 쓰지 않으리라, 중얼거렸던 거 같은데 글을 쓰고 가르치며 살고 있다. 여행학교 교사가 되어 청소년들을 만나고 있다. 개벽학당 운영진으로 훌륭하기 그지 없는 벽청들도 만나고 있다. 목동글방을 하고 있다. 단조롭고 심심하게 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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