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서의 군학’(群學), 그리고 봉준호
봉준호 감독의 이야기로 뜨겁다. 조용히 지나갈까 하다가 나도 직업병을 못 이긴 채 한 마디 남겨 본다.
한 달 전 쯤, 미국의 한 기자가 영화에서 사회 문제를 다루는 것이 사회학을 전공한 것과 관계가 있냐고 물었다. 봉 감독은 물론 '사회학'을 전공했지만 전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공부를 했다면서도, 그래도 사회학 공부의 영향이 영화에 부지불식간에 스며들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답했다.
영화광이었던 중고딩 시절의 봉준호는 이장호나 배창호 감독 등을 보면서, 반드시 연극영화학과에 가야만 하는 게 아님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인문학을 먼저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했고, 그렇게 선택한 전공이 ‘사회학’이었다. 그런데 지금 관점에서 보면 “사회학이 인문학인가?”라며 질문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봉 감독이 들어간 사회학과는 다른 대학들과 달리 ‘문과대학’에 속해 있었다는 점에서 약간의 의문이 풀릴지 모르겠다. 원래 ‘사회학’이란 명칭은 낯선 근대의 언어였다. 이인직, 장지연 등이 청국에서 Sociology를 번역한 ‘군학’(群學)이란 말을 처음 소개하긴 했지만 그 학문의 내용조차 몰랐다. 이후 학교 공간에서 Sociology 강의가 ‘사회학’이란 이름으로 처음 실시된 것은, 1918년 연희전문학교 문과(文科)에서 개신교 선교사 H. H. 언더우드(원한경)에 의해서였다.
르네상스 계몽주의와 인본주의는 18세기의 영국 산업혁명과 프랑스의 시민 혁명으로 이어졌고, 봉 감독이 인용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격언 “The most personal is the most creative”처럼 ‘개인’(個人)의 발견과 각성이 세계사적으로 일어났다. 이는 동시에 수천 년 지속된 중세-근세로 이어진 서구 전통 사회를 흔드는 불안정 요인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사회를 지배하고 장악하던 ‘기독교’ 세력은 타격을 입었다. 철학, 자연과학, 문헌학, 심리학 등 그 동안 ‘신학’(神學)의 통제 하에 놓여 있던 제반 학문은 일제히 ‘탈 신학, 탈 기독교’의 기치를 내 걸고 독립해 나간다. 신의 세계가 아닌, 인간 군집(群集)의 세속 세계를 체계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사회학’(Sociology)이 탄생한 것이다. 이 학문에 ‘신’(神)이 끼어들 여지는 없어졌다. 그게 바로 ‘사회학’이었다.
그런데 한국의 초대 선교사 원두우(H. G. Underwood)의 외아들 원한경(H. H. Underwood)는 뉴욕대학의 실용적 첨단 학문을 수학하고 돌아온 직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서 한국 최초로 사회학과 심리학을 가르쳤다. 먼저 세워진 평양의 숭실학교나 각 교파의 신학교에서는 생각지도 않았던 선구적 시도였다. 이는 미션 스쿨에서의 하나의 실험이자 도전이었으며 관립 학교에서의 ‘사회학’ 연구는 해방 이후에나 본격 시도된다. 원한경은 1942년에 조선총독부가 추방할 때까지도 기독교 신학과 사회학을 연결시키며 ‘종교’와 ‘인문학’의 조화를 모색하는 강의의 실시했다.
“문과와 상과의 4학년생들은 칼 박사의 지도하에 ‘종교철학’을 이수한다. 이는 삶의 실제적인 철학으로서의 기독교를 응용해가는 연구이다. 나(원한경)는 볼머(Volmer)의 ‘신약사회학’(New Testament Sociology)을 인용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Heaven)에 대한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사상에 대한 것이다. 이는 정치적 힘을 위한 조직이나 생태적, 물질적 복지를 위한 조직이 아니다. 또한 개인이 자신의 구원을 위해 이기적으로 찾는 하늘 나라오의 사닥다리도 아니다. 이 나라는 공헌과 교육적 평가 뿐 아니라, 믿음에 의해 도달 가능한 곳이다. 산상수훈에서 예수가 말씀하셨 듯, 그 나라의 헌법은 기본적 율법과 규칙, 그리고 매일 일어나는 오늘 날의 사회 문제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적용할 지에 대한 것이다.”(H. H. Underwood, “The word of God” Korea Mission Field, 제37권 제9호, 1941년 9월호, 138.)
기독교의 종교적 가치와 함께 최신 인문학의 관점을 조화시켜 보려 한 원한경 박사의 시도는 연희전문학교 문과(文科)의 특징이 되었고, 이후에도 사회학과 심리학 연구가 문과 안에서 영위되는 학풍의 초석이 되었다. 영화 ‘기생충’의 마지막 장면에 개들이 근세 몸 주변의 바베큐 고기를 뜯어 먹는 장면은, 누가복음서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에서 몸에 난 종기를 핥고 있는 개들에게서 따온 연출이라 한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자유로운 학풍의 개신교 학교에 다녔던 봉 감독의 종교적 감수성이 영화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는 건 아닐까?
“예전에 부자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화사하고 값진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였다. 그 집 대문간에는 사람들이 들어다 놓은 라자로라는 거지가 종기 투성이의 몸으로 앉아 그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주린 배를 채우려고 했다. 더구나 개들까지 몰려와서 그의 종기를 핥았다.”(눅16:19-21, 공동번역성서)
또 한 가지 주목하게 되는 것은, 한 동안 연전 문과의 사회학 강의를 『조선사회경제사』(朝鮮社會經濟史)를 집필한 백남운(白南雲) 선생이 맡았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고대중세 역사를 ‘경제사회사’적 관점에서 풀어낸 진보적 역사학자였다. (결국 김구, 김규식과 담판지으러 북에 갔다가 남아 북한의 초대 문교상이 됨 )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미국 개신교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에서 이런 학자를 품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다. 그러한 사회학 전통이 깃든 곳에서 사회, 계급, 경제의 문제를 인문학적 감수성을 유지해 가며 공부했다는 것은 민주노동당 창당 초기부터 당원으로 활동했던 봉 감독의 이력, 그리고 사회의 계급, 소외 계층, 그리고 빈부 격차 문제를 지속적으로 관심한 그의 영화와 무관하기만 한 것일까? 백남운이 벽돌 한 장을 놓은 연희전문 사회학은 기생충과 어쩌면 먼 세월을 건너 뛰어 연결돼 있는 듯한 나만의 느낌이다.
봉 감독이 공부한 대학의 사회학과는 심리학과과 함께 2004년경까지도 사회과학대학이 아닌 문과대학에 속해 있었다. 이제는 주류 학계의 논리에 편승해 모두 사회과학 분야로 소속을 옮겨 버렸지만, 인문학에 기반 한 사회학 연구의 학풍이란 것은 90년대에도 생경한 일이었다.
친한 고교시절 친구가 다른 대학의 ‘사회학과’를 지망하자, 나는 대학생활도 함께 하고 싶어 연희전문 후신의 ‘사회학과’를 적극 추천한 적이 있다. 그 친구는 하필 ‘문과대학’에 있는 게 꺼림침 하다고 처음에 반응했지만, 결국 내 꼬임에 넘어가 봉준호 감독의 학과 후배가 되었다. 그 친구는 문과대학 안의 사회학 분위기에 대만족했고, 특히 인간미 넘치는 학과 선후배 동기들과의 관계를 만날 때마다 자랑하며 뿌듯해 했다. 하루는 문과대학이 발행하는 『문우』誌를 들고 와서는 윤동주와 송몽규가 만들던 바로 그 책이라는 것이다.
봉준호의 감각에는 이러한 정체성이 일부 포함돼 있을지 모른다. 최근 한 인터뷰를 보면, 봉 감독은 전공 커리큘럼에도 없는 ‘영화사회학’(film sociology)이라는 제목의 졸업 논문을 제출했는데 교수들이 재밌게 읽고 통과시켜 주었다고 한다. 주류 사회학에서는 주변적인 주제를 다룬 학부생에게 너그럽던 인문학적 유연성을 봉 감독은 영화 현장에서도 확장해 왔을지 모른다. 한 분야나 주제, 장르에 구속되지 않은 봉 감독의 독특한 시야도, 차갑고 딱딱한 계량적 학문으로서의 사회학(社會學)이 아니라, ‘사람들’ 속에서 그 세계를 관찰하는 인문학으로서의 ‘군학’(群學)을 영화 작품에까지 구현해 낸 것이이 아닐까. 그의 영화에 나오는 ‘인군’(人群)은 선악의 구별도 모호하며 욕망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게 묘사된다. 신 앞에서 귀족과 천민, 부자와 빈자, 남성과 여성, 다중(多衆)과 소수자로 선긋기를 해내는 인간 사회의 실체를 도려 파내듯 그려 내는 힘...
작금의 거장 감독들을 보아도, 하길종은 불문학을, 이창동은 국문학을, 박찬욱과 허진호는 철학을, 강우석은 영문학을, 그리고 이장호와 이준익은 순수미술을 학부 때 공부했음을 발견하게 된다. 봉 감독과 함께 오스카 감독상 후보였던 마틴 스콜세지도 원한경 박사가 공부한 뉴욕대학에서 영문학을, 봉 감독이 존경한 알프레드 히치콕도 문학에 심취했었다. 봉 감독에게 큰 영향을 미친 구로사와 기요시(黒沢清) 감독도 윤동주가 공부한 릿쿄대학의 사회학과 출신이다. 무리한 연결일지는 몰라도, 청년 시절의 백지장에 순수한 인문학도, 예술학도로서 창작의 스케치를 해나갔던 이들이 자신만의 색깔을 지닌 작품을 들고 나타나는 두드러진 현상은 우연이기만 할까?
인문학이 경시받는 이 시대에 봉 감독의 역사적 업적은 ‘인문학’의 가치를 다시 묻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그것은 결국 ‘사람’에 대한 물음...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의 문제이다. ‘사회’도 ‘영화’도 결국은 사람이 만들어 가는 것이고, 사람이 나오는 것이니 말이다. 더 나아가 ‘사람’을 제대로 응시하지 못 하는 ‘사람’의 눈에, 동물과 식물, 강과 바다, 산과 하늘이 들어올 리 만무하다.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을 ‘매춘부’라 능욕한 류석춘 같은 자가 연전 사회학과에 선생 행세를 하는 참담한 현실이기에, 봉준호라는 창작자가 던진 돌 하나의 울림은 더욱 큰 것인 지도 모른다. (산돌배)
-----------------------------------
(한국 최초로 ‘사회학’을 강의한 미국인 원한경 박사는 자신의 강좌가 잉태한 세계적 필름 메이커가 조국 땅의 권위 있는 영화제를 접수한 오늘 모습을 보며 뭐라 말할까? 아래의 원한경 박사 강연 내용은 ‘선악’ 구분이 어려운 ‘기생충’ 속 군상(群像)에 대한 감상평 같기도 하다.)
(한국 최초로 ‘사회학’을 강의한 미국인 원한경 박사는 자신의 강좌가 잉태한 세계적 필름 메이커가 조국 땅의 권위 있는 영화제를 접수한 오늘 모습을 보며 뭐라 말할까? 아래의 원한경 박사 강연 내용은 ‘선악’ 구분이 어려운 ‘기생충’ 속 군상(群像)에 대한 감상평 같기도 하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 7:1-2) 산상수훈의 어려운 말씀들 가운데 이 구절이 가장 어려운 말씀인 것 같습니다. (…) 우리가 이 계명을 어길 때 가장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면서도 직접적인 인격적 관계가 없기 때문에 결국은 상대에게 그다지 해를 입히지 않는 방법은 바로 사회적 그룹에 의거해 사람들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부도덕하다.” “모든 중국인들은 더럽다.” “모든 남부 사람들은 게으르다.” “모든 북부사람들은 버릇이 없다.” 이런 종류의 비판들은 물론 사실이 아니며, 비판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거의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분명 해를 끼치며, 비판하고 있는 사람들과 그의 친구들에게 앙갚음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그런 태도를 가짐으로 그 비판하는 사람은 수백만의 사람들과 우호적으로 왕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끊어버리게 됩니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닙니다.
그의 비판으로 인해 그가 속한 고향의 사람들도 비슷한 ‘비판’을 받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만약 제가 그런 반격의 비판을 하게 된다면, 그 사람이 만든 벽의 높이를 두 배로 높이는 결과를 낳을 것이며, 저 자신도 비슷한 정도의 거대한 무리의 사람들로부터 고립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어떤 사회적 그룹으로 사람들을 비판하는 데 빠질 때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협력의 가능성들로부터 스스로를 제한시키게 됩니다. 그들의 가능성이 아닙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가진 가능성들입니다.
(…)
우리는 말합니다. “술을 마시는 사람은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무엇 무엇을 하는 사람은 믿을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어떤 종류의 옷을 입거나 입지 않는 사람은 좋은 여성이 아닙니다.” “일요일에 일하는 사람은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독실한 신자인 척 말하는 사람은 위선자입니다.” 등등.
이런 비판들은 예수가 이와 같은 개인적인 테스트들이 신뢰할만하지 못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기 위해 든 열두 가지 비유에 위해를 가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이삭을 뜯은 일,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신 일, 먹기 전에 손을 잘 씻는 전통을 어긴 일, 물을 와인으로 바꾼 일. 결정적으로, 사람들은 예수께 간음을 저지른 여인을 데리고 와 비판해 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테스트를 하나 할 테니, 그 테스트에 통과한 사람만 돌을 던지십시오.”
예수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이나, 모세의 율법을 무시하는 것, 위선 행위, 음주 행위, 나쁜 친구와 사귀는 것, 또는 간음을 묵과하고자 하신 것이 아닙니다. 다만 예수는 사람들이 특정 테스트들에 의지해선 안 됨을 그들 자신을 통해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을 크게 사회적 계급이나 부류에 따라 비판하는 것에, 또는 맘대로 정한 수행 평가에 의거해 비판하는 것에만 만족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모든 행동을 해석하고 평가하고 나아가 비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영수증에 실수가 있으면 우리는 말합니다. “그가 나를 속였어.” 잘못된 인용이나 작은 건망증에 대해 우리는 말합니다. “그가 거짓말을 했어.” 어떤 일 하나를 끝내지 못했을 때 우리는 말합니다. “그는 게으름뱅이야.” 어떤 의견을 하나 바꾸는 것에 대해서도 우리는 말합니다. “그가 나를 배신했어.” 나와 한편에 서길 꺼려하면 우리는 말합니다. “그가 저쪽에서 뭘 제안하는지 보려고 기다리고 있어.” 자신의 일보다 더 많은 일을 기꺼이 하려는 사람에 대해 우리는 말합니다. “그는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려 하고 있어.”
물론 세상에는 속이고, 거짓말하고, 게으름 피우고, 친구들을 배신하는 등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혹은 우리 가운데 누구라도 이런 종류의 잘못을 언제든지 저지를 수 있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것은 슬프지만 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모든 사람을 의심해야만 하는 어떤 상황이 올 지도 모릅니다. 분명 이 세상은 우리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고 소리 높여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어떤 국제 스파이가 쓴 글이 한 잡지에 실렸는데, 거기서 그는 어느 누구도 결코 믿어서는 안 된다고 훈련 받았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런 훈련을 받으며 몇 년을 지내는 가운데 그는 아무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과에 주목하십시오. 그가 말하길 가장 어려웠던 것은 고문과 죽음이라는 지속적이며 절박한 위험이 아니라 정신적 외로움이었다고 합니다. 불신과 의심은 그가 사랑이나 심지어 우정을 나누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예수가 그의 제자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 하라거나 관대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의 사랑의 계명에 속한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말하고 그들을 위해 이야기 합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프랑스 사람들은 부도덕하다.” “모든 중국인들은 더럽다.” “모든 남부 사람들은 게으르다.” “모든 북부사람들은 버릇이 없다.” 이런 종류의 비판들은 물론 사실이 아니며, 비판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거의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분명 해를 끼치며, 비판하고 있는 사람들과 그의 친구들에게 앙갚음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그런 태도를 가짐으로 그 비판하는 사람은 수백만의 사람들과 우호적으로 왕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끊어버리게 됩니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닙니다.
그의 비판으로 인해 그가 속한 고향의 사람들도 비슷한 ‘비판’을 받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만약 제가 그런 반격의 비판을 하게 된다면, 그 사람이 만든 벽의 높이를 두 배로 높이는 결과를 낳을 것이며, 저 자신도 비슷한 정도의 거대한 무리의 사람들로부터 고립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어떤 사회적 그룹으로 사람들을 비판하는 데 빠질 때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협력의 가능성들로부터 스스로를 제한시키게 됩니다. 그들의 가능성이 아닙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가진 가능성들입니다.
(…)
우리는 말합니다. “술을 마시는 사람은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무엇 무엇을 하는 사람은 믿을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어떤 종류의 옷을 입거나 입지 않는 사람은 좋은 여성이 아닙니다.” “일요일에 일하는 사람은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독실한 신자인 척 말하는 사람은 위선자입니다.” 등등.
이런 비판들은 예수가 이와 같은 개인적인 테스트들이 신뢰할만하지 못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기 위해 든 열두 가지 비유에 위해를 가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이삭을 뜯은 일,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신 일, 먹기 전에 손을 잘 씻는 전통을 어긴 일, 물을 와인으로 바꾼 일. 결정적으로, 사람들은 예수께 간음을 저지른 여인을 데리고 와 비판해 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테스트를 하나 할 테니, 그 테스트에 통과한 사람만 돌을 던지십시오.”
예수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이나, 모세의 율법을 무시하는 것, 위선 행위, 음주 행위, 나쁜 친구와 사귀는 것, 또는 간음을 묵과하고자 하신 것이 아닙니다. 다만 예수는 사람들이 특정 테스트들에 의지해선 안 됨을 그들 자신을 통해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을 크게 사회적 계급이나 부류에 따라 비판하는 것에, 또는 맘대로 정한 수행 평가에 의거해 비판하는 것에만 만족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모든 행동을 해석하고 평가하고 나아가 비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영수증에 실수가 있으면 우리는 말합니다. “그가 나를 속였어.” 잘못된 인용이나 작은 건망증에 대해 우리는 말합니다. “그가 거짓말을 했어.” 어떤 일 하나를 끝내지 못했을 때 우리는 말합니다. “그는 게으름뱅이야.” 어떤 의견을 하나 바꾸는 것에 대해서도 우리는 말합니다. “그가 나를 배신했어.” 나와 한편에 서길 꺼려하면 우리는 말합니다. “그가 저쪽에서 뭘 제안하는지 보려고 기다리고 있어.” 자신의 일보다 더 많은 일을 기꺼이 하려는 사람에 대해 우리는 말합니다. “그는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려 하고 있어.”
물론 세상에는 속이고, 거짓말하고, 게으름 피우고, 친구들을 배신하는 등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혹은 우리 가운데 누구라도 이런 종류의 잘못을 언제든지 저지를 수 있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것은 슬프지만 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모든 사람을 의심해야만 하는 어떤 상황이 올 지도 모릅니다. 분명 이 세상은 우리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고 소리 높여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어떤 국제 스파이가 쓴 글이 한 잡지에 실렸는데, 거기서 그는 어느 누구도 결코 믿어서는 안 된다고 훈련 받았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런 훈련을 받으며 몇 년을 지내는 가운데 그는 아무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과에 주목하십시오. 그가 말하길 가장 어려웠던 것은 고문과 죽음이라는 지속적이며 절박한 위험이 아니라 정신적 외로움이었다고 합니다. 불신과 의심은 그가 사랑이나 심지어 우정을 나누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예수가 그의 제자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 하라거나 관대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의 사랑의 계명에 속한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말하고 그들을 위해 이야기 합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원한경, “비판”, 1937년 강연, 『언더우드의 마지막 메시지』 중.)
“오늘날의 정치 단위는 너무 크고 복잡해서 평범한 시민들은 의당 개인적인 무력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현대 문학에서 그런 생각이 빈번하게 표현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모두 그런 생각의 확산을 느끼고 있으며, 거기에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생각을 우리의 실패에 대한 변명으로 삼으며, 성향에 따라 그것을 저주하거나 슬퍼합니다. 그러나 슬퍼하고, 투덜대고, 저주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지나치게 자주 그런 생각 위에 세워놓고 있으며, 그 결과 운명론이 그랬던 것보다도 우리와 우리 사회를 더 약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러한 감정의 취약성과 파괴적인 본성은 더 이상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믿음이 의지를 마비시키는 데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근대 심리학 실험에서뿐 아니라 다른 문명에서도 입증되어 왔습니다. 순환하는 바퀴를 가진 악순환 속에서 그 희생자들은 중세 시대 고문관의 손에서 고통을 받은 사람들보다 더 효율적으로 파괴되어 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어느 우연적 요소의 손아귀 속에서 속수무책인 것이 사실이라면, 왜 우리는 단순한 심리적인 영향을 가지고 우리 자신을 속이려 하나요? 왜 사실을 바라보지 않나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우리는 사실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든 사실을 바라보면서도, 더 나아가 가장 적나라한 사실은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자신이 단지 어느 기계의 작은 부분이라고 한탄하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힘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다는 사실만 생각합니다. 그 힘의 원천과 방향성과 힘은 그의 통제 밖에 있다고요. 그는 그런 힘들이 더 멀리 전달되기 위해 그를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데에는 실패하였습니다. 만약 그가 그의 부분을 잘 해내지 못하면 기계 전체가 삐걱거리며 깨져 멈출지도 모른다는 것도요.”
(원한경, “목적이론”, 1937년 강연, 『언더우드의 마지막 메시지』 중.)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