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28

[논평] 램지어 교수 논문, 계약서 없다는 비판에 대하여 / 이우연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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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램지어 교수 논문, 계약서 없다는 비판에 대하여 / 이우연 박사

램지어 교수는 그의 논문에서 위안부와 위안소의 관계를 계약으로 파악하였다. 아직까지 활활 타오르고 있는 한국과 미국 연구자들의 그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그가 이러한 관계를 입증하는 계약서, 계약의 내용을 담은 종이(!)를 제시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의 배경에는 합의의 내용을 반드시 문서로 남기는 구미의 계약 문화와 구두 계약에 의존도가 높았던 한국 사이의 차이에 대한 몰이해가 자리잡고 있다.

계약서가 없다는 비판은 계약 자체가 없었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계약이 없는데 계약서가 있을 수 있냐고 추궁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램지어 비판자들은 공통적으로 조선 여성이 위안부가 되는 계기는 그녀들이 위안소와 맺은 계약이 아니라, 일본의 군인, 경찰, 관리 등에 의한 “강제연행”이라고 확신한다. “강제연행”이었는데, 왠 계약서나 계약을 말하냐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확신”하는 근거가 산적해 있다고 말한다. “피해자”인 전 위안부들의 “증언”, “가해자”인 요시다 세이지(吉田淸治)의 “고백”, 1992년에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가 발견한 “강제연행”을 지시한 일본군의 문서, 1993년, 일본 정부가 “사죄”를 담아 발표한 고노담화, 1996년 UN 인권위원회의 쿠마라스와미 보고서 등 엠네스티, 국제법률가연맹(ICJ)과 같은 국제기구의 각종 조사결과가 그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과 달리, 이 모든 “증거”들 중에서 현재까지 살아 있는 것은 전 위안부들의 “증언”뿐이다. 기타 모든 것들은 허구이거나, 오로지 이 “증언”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국제기구의 보고서들은 그 모두가 전 위안부와 요시다 세이지의 증언, 일본군 문서, 고노담화에 근거하였다. 또 고노담화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피해자와 가해자의 증언이 있고, 이를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일본군의 문서가 있다’고 확신하는 상황에 떠밀려 일본 정부가 작성한 것이다. 그러나 1993년 이후, 그 일본군 문서는 “강제연행”과 무관한 것임이 입증되었고, 다른 문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또 요시다 세이지의 “고백”은 “창작”임이 드러났고, 일본에서 그를 집중 보도한 아사히(朝日)은 최대 발간부수를 자랑하는 그 명성에 걸맞지 않게 요시다 세이지에 대한 지난 보도를 모두 취소해야 했다. 얼핏 보아 증거가 산처럼 쌓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 위안부들의 증언만 남아 있는 것이 객관적인 현실이다.

그러면 전 위안부들이 말하는 “강제연행”은 믿을 만한가? 그녀들이 커밍아웃을 하고 나선 1990년대 초의 증언은 “강제연행”과 무관했다. 위안부가 된 계기를 조선인에 의한 “취업사기”나 부모에 의한 “인신매매”라고 증언했다. 그런데 이후 위안부문제가 한국의 사회, 정치적 문제가 되고, 한일간 외교문제로 비화하자 말이 바뀌었다. “강제연행”을 말하기 시작했다. “증언”이 정치적으로 오염된 것이다. 하나의 예만 들어 보자.

현재 한국에서 국가원로 대우를 받고 자신을 독립운동가로 여기는 듯한 전 위안부 이용수는 1992년 8월 15일, KBS TV에 출연했다. 진행자가 어떻게 위안부가 되었는지를 묻자 그녀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저는 그때 나이 16살인데, 헐벗고 입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인가 원피스 한 벌하고 구두 한 켤레를 갖다줍디다. 그걸 주면서 가자고 그래가지고 그걸 받아 가지고 그때는 뭐 그런 줄도 모르고 따라갔습니다”

조선인이 벌인 전형적인 유괴사건을 말하고 있다. 그러던 이용수가 2007년 2월 16일에 미국 하원 위안부 피해자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증언”하며 미 하원이 일본을 비난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군인하고 그 여자아이하고 들어와서 어깨를 이렇게 둘러싸고 한 손으로 입을 막고 군인은 뒤에서 등에 뭔가를 콱 찌르면서 그냥 끌려갔습니다. 밤에. (나는) 역사의 산 증인입니다”

전 위안부들의 “증언”의 첫 번째 문제는 이와 같이 일관성이 없다는 점이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그녀들의 증언을 뒷받침해주는 어떠한 객관적인 증거도 없다는 사실이다. 일본 관헌에 의한 “강제연행”을 나타내는 공적(公的) 문서는 발견되지 않았고, 민간인을 포함하여 그러한 사건을 목격한 제3자가 남긴 기록도 없고, 그러한 증언도 나타나지 않았다. 강제연행론자들은 무려 “20만 명”이 그렇게 끌려갔다고 주장하면서 지난 30년간 그를 입증하는 증거를 단 하나도 제시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그녀들의 “증언”을 더이상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램지어를 비난하는 데 앞장섬으로써 TV를 통해 한국에서 유명해진 알렉시스 더든(Alexis Dudden) 미국 코네티컷 대학 역사학과 교수는 “만약 주장을 뒷받침할 서류가 없다면, 증거가 없다면, 그 주장은 진실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끔찍하고” “전형적인” “사기”라고 했다. 전 위안부들의 “증언”은 이 더든 교수의 기준을 통과했을까?

일본 관헌의 “강제연행”이 아니라면 조선여성이 일본군 위안부가 되는 것은 어떤 계기, 경로였을까? 먼저, 조선인 알선업자가 좋은 일자리를 소개한다며(취업사기), 위안부로 일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여성이나 그 부모를 꾀어 데려가거나 팔아넘기는 일이 있었다. 이 경우에는 위안부 고용계약이 불필요하고, 전차금이 지급되지 않거나 위안부의 경우보다는 소액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에서 취업사기를 포함한 유괴는 전전(戰前)부터 경찰의 단속대상이었다. 당시 조선에서 수천 명의 직업적 알선업자가 활개를 치고 다녔기 때문이다.

또 여성을 데리고 조선에서 출발하여 위안소에 이르는 데에는 여러 공적(公的) 서류가 필요했다. 우선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등지로 가려는 모든 여행자는 여행의 목적 등을 기입하여 경찰서장이 발급하는 [신원증명서]가 있어야 했다. 특히 위안부의 경우, 절차는 더욱 까다로웠다. 여성과 위안소 업자가 함께 작성하는 신청서라고 할 수 있는 [임시작부영업허가원 臨時酌婦營業許可願], 사진 2매, 호주(戶主)와 여성 본인이 날인한 취업승낙서, 이상 관계자의 인감증명서, 여성의 호적등본(취업승낙서, 인감증명서, 호적등본은 본인이 아니면 작성하거나 발급받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일본 영사관 직원이 여성의 위안소 취업의지 유무 등, 여성과 업자를 조사한 뒤에 작성하는 조사서가 필요했다. 취업사기로 여성을 데려오거나 납치해 왔을 때, 이런 서류를 구비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https://www.youtube.com/watch?v=YaC32K_PDD0)

유괴된 여성이 위안소에 도착한 뒤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다. 위안소를 이용하고 관리를 담당하는 부대는 위안부 본인들이 장차 무슨 일을 하게 될지를 사전에 인지하고 위안소에 도착하였는지를 확인했다. 이상과 같은 서류를 군부대에서 확인하는 절차가 있어서, 속아서 온 위안소로 온 여성을 고향으로 돌려보낸 사례도 있었다.

이상으로 볼 때, 유괴에 의한 위안부 조달보다 딸이 무엇을 하게 될지를 이미 알고 있는 부모가 딸을 파는 인신매매를 통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을 것이다. 당시 신문을 보면, 부모가 딸을 파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사회문제의 하나가 될 정도였다. 1920년대 중반, 일본에서도 같은 상황이 펼쳐졌다. 일본의 저 유명한 1926년의 226사건에서도 딸을 팔아야 하는 군인들의 어려운 처지가 사건을 촉발하는 중요한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이전 기고문에서 말했듯이, 이러한 거래는, 인신매매라는 불법, 그리고 호주제(戶主制) 하의 정당한 권리행사와 합법적 직업알선 사이의 경계에 위치하였다. 그 결과, 한편에서는 “인육시장(人肉市場)”이라고 하여 인신매매가 횡행하고 사회적 문제로 취급되었지만, 그러한 혐의에 로 경찰의 조사나 재판을 받은 사람들조차 대부분 무죄로 처분되었다.

이상과 같은 상황을 고려하면, 모집업자와 거래하는 부모는 딸이 어디로 가서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알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비록 문서에 의한 명시적 계약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부모가 그러한 사실을 알았다면, 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계약에 다름 아니다. 한국과 미국의 비판자들은 이러한 당시 실정을 전혀 모르고 있다.

위안부와 업자 사이에서 계약이 이루어지는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조선이나 외지에서 전전부터 이미 매춘부로 일하고 있는 여성을 위안부로 모집하는 경우였으리라는 추측을 이전 기고문에서도 말하였다. 이러한 당시 상황을 잘 묘사하는 조선인의 증언이 있다. 자료는 1945년 초, 미군 포로가 된 3명의 조선인 일본해군 군무원에 대한 심문기록이다(Composite Report on Three Korean Navy [Imperial Japanese Navy] Civilians List No. 78, dated 25 March 1945, Re Special Questions on Koreans). (https://japan-forward.com/some-uncomfortable-truths.../

질문은 “일본군을 위해 매춘부(prostitute)로 일할 조선 여성을 모집하는 것에 대해 조선인들은 보통 알고 있는가? 이러한 일에 대해 평범한 조선인들은 어떠한 태도를 취하는가? 당신들은 이러한 일로 인해 발생하였던 소란이나 마찰에 대해 알고 있는가?”였다. 답은 다음과 같다

“우리들이 태평양에서 본 모든 매춘부들은 자원자(colunteers)이거나 그들의 부모에 의해 매춘부로 팔린 사람들이다. 이것은 한국적 사고방식이지만, 일본인이 여성을 직접적으로 징발(direct conscription)했다면, 늙은이나 젊은이나 격분하여 들고일어났을 것이다. 남자들은 분노하여, 무슨 일을 당할지라도, 일본인들을 살해했을 것이다”

이 답변은 첫째, “강제연행”은 없었고, 있을 수도 없다는 사실과 아울러, 둘째, 부모의 인신매매나 매춘부의 전직(轉職) 또는 일반인의 취업이 위안부가 되는 일반적인 경로였음을 잘 말해주고 있다. 위안부가 되는 과정에 대해 이렇게 종합적인 증언을 필자는 아직 보지 못하였다.

위안부모집 방법에서 부모의 인신매매나 매춘부의 전직이 중심이라면, 역시 위안부 자신 또는 그녀를 대신한 부모와 업자가 경제적 계약을 맺었다고 보아야 한다.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라 성노동자(sex worker)였다. 그들이 성노동을 위해 알선업자나 업주와 계약을 맺는 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노동자와 경영자 사이의 노동계약에 다름 아닌 것이다.

행위자들이 있고 그들이 일정한 패턴에 따라 행동했다면, 그것은 계약 당사자가 계약에 따라 행동한 것이며, 이는 계약의 존재를 말한다. 이를 부정하려면, 전차금의 수수(收受), 계약기간의 존재, 위안부와 위안소간의 매출금 분할 등과 같이 램지어가 계약의 실체로서 말하는 것들이 존재하지 않았음을 증명하여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램지어 논문에 대해 제기된 어떠한 비판도, 비록 부분적이라고 할지라도, 그에 성공하지 못하였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필자는 램지어 교수의 논문이 한국을 비롯하여 세계의 학계가 위안부문제에 대해 새로이 본격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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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 Uncomfortable Truths About Comfort Women for the International Mob | JAPAN Forward
Those who dislike Harvard Law Professor J. Mark Ramseyer's scholarly interpretation — that comfort women were voluntary employees under contract — have failed to cite any credible primary 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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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 일본에선 자발적 계약이었지만, 조선에선 강제연행이라고? / 주익종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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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효
59 m ·



[위안부 문제] 일본에선 자발적 계약이었지만, 조선에선 강제연행이라고? / 주익종 박사


위안부는 6가지 필수서류를 갖추어야만 중국 등 해외의 위안소로 갈 수 있었다. 6가지 서류 가운데 조사서 외 5종 서류 중에는 △승낙서 △인감증명 △호적등본 등 세 서류는 가족 친권자나 호주가 작성, 발급받아서 제출하는 것이었다. 결국, 가족의 동의로 위안부가 성립했으며, 위안부 업주와 가족 친권자 간의 계약이 있었다.

이런 주장과 관련하여 이게 정말 사실인가, 6종 서류의 자료적 근거가 확실한 것인가, 그리고 당시 일본 정부의 정책상 6종 서류를 갖추어야 했더라도 그것은 일본에서만 적용된 것 아닌가, 조선에도 적용되었나 하는 궁금증이 생길 수 있다. 6종 서류는 크게 신분증명서와 여타 5종 서류로 나눠지는데, 각각의 출전 근거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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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 Uncomfortable Truths About Comfort Women for the International M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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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se who dislike Harvard Law Professor J. Mark Ramseyer’s scholarly interpretation — that comfort women were voluntary employees under contract — have failed to cite any credible primary source documentation to refute him.



Published 6 days ago

on February 22, 2021


By Archie Miyamoto



Harvard Law Professor J. Mark Ramseyer and his recent essay, “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 have been subjected to a storm of international criticism. Ramseyer’s view is that comfort women were not abducted sex slaves but were actually voluntary employees under contract.

Regrettably, Professor Ramseyer’s critics have failed to mention any credible primary source documentation that refutes his overall conclusion. It is one thing not to like a scholarly interpretation, but quite another to refute it.

Why the fixation on primary source documentation? It is because we are discussing events that are alleged to have taken place over 75 years ago.



RELATED: Recovering the Truth About the Comfort Women



What is very troubling to see is the number of personal attacks on the professor. Personal attacks have no place in the critique of academic scholarship. Here in the United States, we value freedom of speech and of the press as among our most cherished freedoms and rights. Such freedom exists only in democracies like ours. It should be celebrated when someone exercises his or her freedoms.

Professor Ramseyer is also accused of working for Mitsubishi of Japan because of his association with the Mitsubishi Chair at Harvard. However, that chair was established 70 years ago and has nothing to do with the comfort women issue.


Comfort Women Allegations

The allegation by many of Professor Ramseyer’s attackers is that 200,0000 or so young women, mostly from Korea, were abducted by members of the Imperial Japanese Military and used as sex slaves. One critic mentions that the contracts signed by the women were faulty. Another points out that the contracts signed by the comfort women were “very close to what would ordinarily be called debt slavery.”

We are straying from the subject matter. The contracts are not the issue. The issue is whether the Imperial Japanese Military abducted 200,000 women, mostly Korean, as sex slaves, not whether contracts signed by the women agreeing to prostitution were legitimate under current U.S. law.

Nor are we discussing the legality or morality of prostitution. One of Professor Ramseyer’s detractors mentions Germany paying reparations for its misdeeds. True, but Germany did not apologize or pay reparations for any crime it did not commit. The issue at hand here is: Were 200,000 young women abducted by the Imperial Japanese Military and used as sex slaves?

There are records of some Dutch and local women in the former Netherlands East Indies (present-day Indonesia) who were forced to work as comfort women by the Japanese military. These were crimes and were prosecuted as such. In all, there were some half a dozen war crimes trials for these and the perpetrators were punished.

Thus far, no primary source documentation of any other military abduction of local women for comfort stations has been uncovered. In the Korean comfort women cases, much of the narrative rests on oral testimonials given long after the alleged events.



RELATED: Comfort Women: Were They Prostitutes or Sex Slaves?




Korean Men Are Not Cowards — Or Were They?

Another major obstacle in accepting the former comfort women’s allegations of abduction as factual is the total absence of any evidence of resistance by Korean men.

Korean men are honorable and value women highly. I fought in the Korean War and can attest that Korean men are emphatically not cowards. They would not go into hiding and do nothing if the Japanese military was abducting female Koreans. The outcome would be worse than the U.S. Army trying to abduct 200,000 Texas women as sex slaves. To even hint at Korean men cowering in fright as their wives and daughters were abducted as sex slaves is insulting.

One woman disappearing is believable. But the allegation that 200,000 Korean women were abducted without any Korean man noticing or lifting a finger to stop it is fiction.



RELATED: Korea: Daddy Don’t Leave Me!



Some say the Japanese soldiers were armed so resistance was futile. Some 200,000 Koreans were serving in the Imperial Japanese Army. Many Koreans were officers in the Japanese Army, and a dozen or so were generals! The majority of the policemen in Korea were Koreans.

The Japanese may be guilty of strategic errors during World War II, but inciting rebellion in Korea was not one of them.


Primary Source Documentation

The following primary source document provides insight into what would have taken place if the Japanese military had used force to abduct Korean women for its comfort stations. The source is a “composite Report on Three Korean Navy [Imperial Japanese Navy] Civilians List No. 78, dated 25 March 1945, Re Special Questions on Koreans.” The information sought was Korean attitudes about Japan.

The questions asked about comfort women were: “Do Koreans generally know about the recruitment of Korean girls by the Japanese Army to serve as prostitutes? What is the attitude of the average Korean toward this program? Does the P/W [prisoner of war] know of any disturbance or friction which has grown out of this program?”

The response of the Koreans: “All Korean prostitutes that PoW [sic] have seen in the Pacific were volunteers or had been sold by their parents into prostitution. This is proper in the Korean way of thinking but direct conscription of women by the Japanese would be an outrage that the old and young folks alike would not tolerate. Men would rise up in rage, killing Japanese no matter what consequences they might suffer.”


Emotion Obscures the Facts

The difficulty in researching the comfort women issue in Korea was explained by Korean Professor Choe Kil-sung who in 2013 analyzed the diary of a Korean who had managed comfort stations with Korean comfort women in Burma and Singapore.

Professor Choe said: “The problem is that, in South Korea, Japanese colonialism is regarded as the root of all evil and South Koreans still will not discuss the reality and consequences of Japanese rule. By its very nature, scholarship must be free from the shackles of nationalism and patriotism.”

The comfort women issue is but one of the many misunderstandings between Korea and Japan. It is hoped that Professor Ramseyer and other scholars will continue researching this and other controversial issues.

The historical truth should be the basis of mutual understanding and friendship between Korea and Japan, two nations so close and yet so far apart and both so essential for the United States in maintaining peace and security in the world.



RELATED: At the Crossroads: Can South Korea Survive Without Japan?



Author: Archie Miyam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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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e Miyamoto



Archie Miyamoto is a retired U.S. Army officer. During the Korean War he became a career U.S. Army infantry officer and served two tours each in Korea, Taiwan, Vietnam, and Japan, and a special tour in Germany. Military awards include three Legion of Merits, two Purple Hearts, the Distinguished Flying Cross, Bronze star, Combat Infantryman’s Badge and Master Aviator Wings. He was also a paratrooper and Tactical Nuclear Weapons Employment Specialist. He is a recipient of Army Aviator Wings from the Republic of China and the Hwa Rang medal from South Korea. He is a graduate of the University of Nebraska (Omaha), and has a Master's degree from Troy University, Alabama. He is also a graduate of the Army Aviation School and the Command and General Staff College. After retirement from the Army he spent two years in Israel, after which he joined a Japanese corporation (Maruzen of America) in California and became its President/Chairman. He is retired and resides in California. His detailed account of the Gripsholm exchanges was distributed to former passengers but never published. He is the author of the book, WWII Military Records on Comfort Women (2017, Amazon Digital Services LLC).

[위안부문제] 하바드 대의 석 교수의 위안부문제의 진실찾기 - 램지어 교수 평가 - 그리고 나의 석교수 평가

[위안부문제] 하바드 대의 석 교수의 위안부문제의 진실찾기 - 램지어 교수 평가 

- 그리고 나의 석교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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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틀 전에 뉴요커에 나온 하바드 대의 한국계 교수 석 (Jeannie Suk Gersen) 교수의 글을 읽었다. 잘 써젔다고 생각한다. 포괄적이라서 이 글 하나만 읽어도 위안부문제의 역사적인 면과, 한일관계에서의 문제, 그리고 왜 지금 램지어 교수의 글 때문에 소동이 일어나고 있는가 까지 대강 알 수 있게 써저 있다. 그리고 관계된 여러 그룹에 대해 상당히 공정하게 써저 있다고 생각된다. 한국 미디아에서 이 글을 언급하는 걸 읽으면 마치 석교수가 <우리 편>이고, 램지어 교수를 비판하는 것 처럼 들리게 쓰여 있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 혼자서 그렇게만 생각하고 말려고 했는데, 페북에 이글에 대해서 자꾸 올라온다. 오늘 아침에 걷기 운동을 하며 불교에 관한 오디오북을 듣고 있는데,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자꾸 석교수의 글에 대해 생각이 나서 한시간 들은 오디오북의 내용이 뭐였던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 이다. 그래서 잊기 전에 석교수의 글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적어놓기로 했다. 

어떤 순서로 적을까? 

1] 우선 석교수가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우리편>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적는다.

a)  <한국에서는 조선인 업자들의 역활을 인정하는 하는 것을 (좋게 말해서) 힘들어 한다.>: 위안부지지운동하는 사람들은 하지 않고, 하고 싶지 않은 중요한 이야기이다. 
[In South Korea, reckoning with the role of native recruiters in entrapping fellow-Koreans, and with impoverished families in allowing their girls to be taken, has been difficult, to say the least.] 

b) <한국에서는 오래 동안 (1990년 이전에는) 위안부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성폭행 피해자들이 사회에 의해 낙인찍히고, 배척당하였기 때문이다.>: 
- 일본정부에 의해서가 아니라 한국사회, 그러니 한국인에 의해 그랬다는 것이다. <제국의 위안부>에 다 나오는 이야기이다. 
[For decades, the issue of comfort women was not widely discussed in Korea, the society of which stigmatized and ostracized sexual-assault victims. ]

c) <한국에서는 일본의 책임을 경시하려는 일본의 시도에 대한 원한이 쌓여 왔고, 때로는 일본군이 한국인 처녀를 성노예를 만들기 위해 총구로 납치했다는 색갈론이외로는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편협함으로 굳어졌다.>: 이건 간단히 말해서 위안부지지운동에서 말하는 강제 동원설은 틀렸다는 말이다. 그래서 내가 석교수가 공정하다고 말하는거다. 
[in South Korea, resentment about Japan’s attempts to downplay its responsibility had been building, sometimes hardening into intolerance of anything short of a purist story of the Japanese military kidnapping Korean virgins for sex slavery at gunpoint.]

d) <2015 년 한일 양국은 오바마 행정부의 격려로 아베 총리가 위안부들에게 “가장 진심으로 사과와 후회”를 표명 한다는 새로운 합의에 도달했다.>: 
- 뭐라고, 아베가 그런 말을 했다고? 대부분 한국사람들을 믿지 않을거다. "아베여, 사과하라, 사과하라", 계속 그러고 있지. 
[In 2015, Japan and Korea reached a new agreement, with the encouragement of the Obama Administration, in which Prime Minister Abe expressed “his most sincere apologies and remorse” to the comfort women. ]

2) 두번째로 박유하 교수와 책 <제국의 위안부>에 대해서:

<(이 책)은 여성을 모집하는 한국인의 역할과 일부 위안부들이“노예적 상태”에 갇혀있는 동안 일본군과 발전한 사랑의 관계를 탐구했다. 
이 책은 일부 사람들이 주장한 것처럼 일본의 책임을 면책하거나 위안부의 잔인한 희생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하버드대의  근대 일본역사가 고든은 일본과 미국에있는 66 명의 다른 학자들과 편지에 서명하여 한국 정부에 의한 박유하 기소에 대해 “큰 놀라움과 우려”를 표명하고 저자의 책의 학문적 업적에 대한 감사를 전했다.>:  
- 이건 박유하 지지자들은 다 아는 이야기 이지만 박유하 비판자들은 처음 듣는 이야기 일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인이 후자에 속한다. 

[(The book) explored the role of Koreans in recruiting the women and the loving relationships that some comfort women developed with Japanese soldiers while they were confined in a “slavelike condition.” 
The book did not, as some have claimed, absolve Japan of responsibility or deny the comfort women’s brutal victimization. 
Gordon, the Harvard historian of modern Japan, signed onto a letter with sixty-six other scholars, in Japan and the U.S., expressing “great consternation and concern” at the South Korean government’s indictment of Park, and conveying appreciation for her book’s scholarly achievement.]

3) 세번째로 램지어 교수에 대하여

a) [동료의 추론을 소화하는 데 시간을 보낸 후, 나는 그와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는 곧  의견이 일치하지 않은 것을 공개적으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학문적 자유를 행사 하는 것이나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는 것에 대한 제도적 처벌 요구에는 참여하거나 장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당연히 이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After I spent time digesting my colleague’s reasoning, I spoke with him to say that we were about to have a public disagreement, but that I would not be joining or encouraging any possible calls for institutional penalty for his exercise of academic freedom to engage in scholarship or express his opinion.]

b)  [(나는 그가) 위안부들이 무력, 위협, 속임수, 강압에 의해 징집되고 감금되었다고 믿었다면 그렇게 설명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의 견해는 위안부들의 증언이 일관성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또는 그가 쓴 것처럼 위안부들이 “자기이익추구”를 하고 “근거가 없는 말을 한다”고 간주했기 때문에 그들의 증언을 신용하지 않기로 이미 결정한 것을 반영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가 일본 정부의 성명의 경우에는 한 성명이 다른 성명과 모순되는 경우에도 일본 정부의 부정을 인정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나는) 동료의 학술논문을 가능한 한 관대하게 읽으려고 노력하면서 그의 견해가 그의 학업 경력에 영향을 준 일반적으로 받아 들여진 지혜에 대한 회의론의 산물 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 많은 한국의 학자들에게 없는 좋은 자세이다. 특히 책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싸고 일어난 일들을 생각해보라.
[I was confident that he would not have described it as such if he believed comfort women’s accounts of having been conscripted and confined by force, threats, deception, and coercion. 
  It seemed to me that his view reflected a prior choice not to credit those accounts because he deemed them inconsistent, or, as he wrote, “self-interested” and “uncorroborated.” I noticed, however, that he did choose to credit Japanese government denials, even where they contradicted other statements by the government. 
  Trying to read my colleague’s work most generously, I thought his views might be a product of a skepticism of generally accepted wisdom that had informed his academic career.] 

c) [나는 내가 강하게 동의하지 않는 인기없는 의견이나 견해를 표명 할 학계의 권리를 옹호합니다. 
그러나 Ramseyer 문제에는 학문적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강한 공감대가 드러났다.
 램지어는 위안부문제에 관해서는  (그가 생각하는) '성차별, 인종차별, 제국주의'라는 '삼위 일체'에 집착하는 학문적 합의에 의해 채택 된'순수한 허구'를 반박하기 위해 오는 정설뒤집기 하는 것이 그의 일 이라고 작정했던 것입니다.”] 

- 세번째 마지막 문장이 램지어 교수가 위안부문제에 대해 자신이 하려고 한 것을 잘 설명한다. 신화부수기를 하려고 한 것이다. 그 신화라는 것이 한국의 위안부운동에서 말하는 위안부 이야기같은 것이었다. 이 자세는 일본의 우익이나, 한국의 이영훈 등이<반일종족주의>에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니 그리 새로운 것도 아니다. 하바드 대 교수라는 것 만 다르다. 이 세 그룹이 각각 진실 밝히기를 위해서 일하는가, 아니면 자기네들이 미리 정해놓은 이데오르기에 의해 일을 하는가는 쉽게 판단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위안부지지운동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이다. 
--
[I defend the right of academics to express unpopular opinions or views with which I strongly disagree. 
  But the Ramseyer matter has revealed a strong consensus that academic freedom comes with the responsibility, 
  Ramseyer has framed his work on comfort women as that of a debunker coming to refute what he called a “pure fiction” adopted by an academic consensus obsessed with the “trifecta” of “sexism, racism, and imperialism.”]

d) 부제목에 나오는 <수상한 학문활동>이라는 말이 석교수의 램지어 교수의 최종평가이다. 이건 많은 학자들과 의견을 나누고 참고한 후에 내리는 평가이다. 램지어 교수가 학자로서 불충실한 것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dubious scholarship] 
---

4) 마지막으로 내가 부치는 말이다. 

a) 우선 램지어 교수의 학문적 스타일을 <수상한 학문활동>이라고 붙일 수 있는가는 그리 간단하지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의 스타일은 새로 생긴 것이 아니라 1990년대의 일본의 법, 사회, 경제 분석에서 부터 그랬던 것을 알 수있다. 그는 마치 <신화부수기>가 자기의 소명인 듯 학문활동을 해 왔다. 일본을 보는 시각을 바꾸려고 했다. 그가 다 올았다고나, 그의 분석과 동의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이 그의 학문적 스타일이여다는 것이다. 그 스타일이라는 것은 개인의 독자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과학의 하나의 파라다임이다. 그러니 이 파라다임을 포함시커 판단을 하지 않으면 않된다고 생각한다.

b) 두번째로 석교수를 포함한 석교수가 논하는 모든 영어세계의 학자들이 위안부이야기를 할 때, 특히 위안부제도의 강제성 이야기를 할 때,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군에 의해 점령당한 적국의 위안부를 구별하지 않고 이야기한다. 더군다나 일본인 위안부라는 것도 있다는 것을 알테지만, 포함시키지 않는다. 그런데 일본인 위안부들이 조선인 위안부들과 함께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위안부들에 대한 일반론을 일본인 위안부들에 대해 응용할 수 있을까? 일부는 할 수 있고, 일부는 할 수 없다. 그러면 조선인 위안부는 일본인 위안부에 가까운가, 아니면 적국의 위안부에 가까운가? 일본인 위안부와 동일하지는 않지만, 일본제국의 2등 시민으로서 일본인에 가까운 면이 많이 있다. 그래서 "우리도 천황을 위해서 왔다"는 말이 어느 조선인 위안부의 입에서 실제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런 구별을 하지 않고 일반론으로 위안부를 논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충분히 논하지 않고 있다. 

c) 코노담화에서 일본정부가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했다고 하는데, 그 문구가 타협에 의한 것이었다고는 나의 전 번 글에서 썼다. 일본 정부의 조사에 의하면 "그런 결론을 내릴 근거가 없었다"가 실제로의 일본 정부, 특히 일본 보수파, 우익들의 입장이다. 이 점은 이데오르기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들 나름의 양심에 의한 것이다. 한국이 열심히 노력하여 세계의 여론을 바꾸는 날이 온다고 하여도, 그럴 수록 이 조사의 결론을 믿는 "양심적" 일본인들은 받아드리지 않을 것이다. 이런 문제를 석교수는 논하지 않고 있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에 있을까?

---

https://www.newyorker.com/culture/annals-of-inquiry/seeking-the-true-story-of-the-comfort-women-j-mark-ramseyer?fbclid=IwAR3HrAE8-WZNrkk_LVnRn8h-NfEIJp6j_JlihTl1L8Cw6GFjQOnYOAvc5Bw

--

석교수의 글을 이제야 읽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위에 쓰신 내용들은 모두 정확합니다만, 램지어 교수의 주장에 근거가 없음을 석교수가 지적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네요.

.

저도 학문과 언론의 자유는 양보할 수 없는 가치라고 생각합니다만, 학자가 제대로된 근거도 없이 (예를 들면 2차 대전 이전에 유흥산업에 종사했던 일본 여성들의 계약서를 바탕으로 해서 2차 대전 중의 조선인 위안부들에게도 그런 계약과 합의가 존재했을 거라고 추정한다든가)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학자로서의 윤리가 부재하다고밖에 저는 판단이 안 됩니다. 이 외에도 그가 자료로 제시하는 정보의 왜곡 (단순 실수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는 수준의) 등 램지어 교수 논문에는 여러 가지의 문제들이 있구요.

.

또, 노동의 종류나 노동 기간 등의 세부 사항들에 대해 노동자가 인지하지 못 하고 있었다면 설사 계약이 있었다 해도 (again, 램지어 교수는 2차 대전 당시의 조선인 위안부 계약 문서를 갖고 있지도 않습니다) '자발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석교수도 저와 동일한 입장이네요. 학문의 자유뿐 아니라 학자의 integrity와 responsibility에 대해서도 석교수는 강조하고 있구요.

.

논문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이런 수준의 주장은 비민족주의적 입장에서 사실관계를 밝히려는 학자들의 운신의 폭을 오히려 좁혀 놓는, 매우 안타까운 결과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램지어 교수의 논문은, 친일적이라서가 아니라 근거가 없으므로 비판받아 마땅해 보입니다. 민족주의적이냐 비민족주의적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근거와 논리전개의 탄탄함만이 평가의 기준이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신화 부수기'에 저도 찬성입니다만, '날조'와 '왜곡'은 신화를 오히려 더욱 굳건하게만 만드는 부작용을 낳을 것 같습니다.

2021-02-27

'램지어 위안부 망언'에 NYT 등 미 유력언론도 관심 : 네이버 뉴스

'램지어 위안부 망언'에 NYT 등 미 유력언론도 관심 : 네이버 뉴스





'램지어 위안부 망언'에 NYT 등 미 유력언론도 관심
기사입력 2021.02.27.
 
NYT 램지어 망언 사태 다뤄
학계 2000여명 논문 비판 가세
日학자 "하버드는 美최고 학교"


마크 램지어 망언을 보도한 뉴욕타임스.[뉴욕타임스 홈페이지 캡처]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하버드대 로스쿨의 마크 램지어 '미쯔비시' 일본법 교수의 '위안부 논문' 파문에 대해 뉴욕타임스(NYT) 등 미 주류 언론들이 가세해 보도하는 등 논란이 갈수록 확산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26일(현지시간) '어떤 하버드 교수가 전시 성노예에 대해 매춘부로 불렀다가 반발을 샀다'는 제목의 서울발 기사에서 램지어 교수의 논문이 한국은 물론 미국 학자들 사이에서 격렬한 반응을 일으켰다고 보도했다.

해외 역사학자들은 일제히 램지어 교수의 주장이 광범위한 역사적 증거를 무시하고 일본 극우 교과서와 비슷하다면서 논문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논문 내용을 비판하는 학자들의 연판장에 2000명 이상이 서명하고, 하버드대 학생들이 비판 성명을 내는 등 학계의 반응이 크다는 점도 다뤄졌다.

NYT는 램지어 교수는 자신의 논문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학계에서 결함이 있는 논문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17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3) 할머니가 참가한 하버드대 아시아태평양 법대 학생회(APALSA) 주최 온라인 세미나도 비중 있게 다뤘다.

신문은 "두 세대로 나누어지고, 7000 마일이나 떨어진 학생들과 생존자가 줌에서 만나 광범위하게 반박당한 하버드 교수의 주장을 가르침의 순간으로 바꾸자는 공동의 목표를 논의했다"면서 할머니의 이야기도 상세히 전했다.

NYT는 램지어 교수와의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NYT는 대신 램지어 교수가 일본 산케이 신문의 해외판 선전지 저팬 포워드에 기고한 글에서 "한국 위안부들의 주장은 역사적으로 허위"라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램지어 교수 지지 서한에 서명한 일본의 우파 역사학자 중 한 명인 가츠오카 간지는 NYT에 자신은 램지어 논문 초록만 읽어봤다면서도 여성들이 돈을 받고 일한 것이라며 "매춘부라는 용어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하버드대는 미국 최고의 학교"라고 덧붙였다.

NYT의 보도는 미 저명 시사주간지 뉴요커가 석지영 하버드대 로스쿨 종신교수의 기고문을 통해 '램지어 사태'의 전말과 관련 동향을 상세히 전달한 직후에 이뤄졌다.

지난달 말 일본 언론을 통해 램지어 교수의 위안부 논문이 처음 일반에 알려진 후 이날 뉴요커와 NYT 보도 전까지 4주 동안 하버드대 교내 신문 '크림슨'과 소수의 인터넷 매체 외에는 이 사안을 다루는 미국 매체가 없었다.

soohan@heraldcorp.com

전 세계은행 수석 "램지어 논문, 아동성매매 옹호" : 네이버 뉴스

전 세계은행 수석 "램지어 논문, 아동성매매 옹호" : 네이버 뉴스



전 세계은행 수석 "램지어 논문, 아동성매매 옹호"
기사입력 2021.02.27. 
WB 수석 이코노미스트 역임한 골드버그 교수 비판성명
"10살 소녀 사례 인용은 아동강간·인신매매 정당화"

美한인들 '위안부 망언' 하버드 교수 즉각사임 요구 (CG)
[연합뉴스TV 제공]

(서울=연합뉴스) 이영섭 기자 = 세계은행(WB)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역임한 미국 석학이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의 논문이 아동 성매매를 옹호한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피넬로피 코우지아노 골드버그 예일대 경제학부 교수는 26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이같이 지적했다. 골드버그 교수는 2018년 11월∼2020년 3월 WB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냈다.

그는 "램지어 교수의 논문 '태평양 전쟁의 성 계약'을 둘러싼 논의는 역사적 기록의 정확성과 학문의 질에 집중돼 있다"라면서 "하지만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10살짜리 '오사키'에 관한 구절은 아동 성매매를 노골적으로 지지한다"라고 비판했다.

램지어는 해당 논문에서 '오사키'란 이름의 일본인 소녀의 증언을 인용해 전시 성매매 계약이 자발적이고 합법적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논문에서 "오사키가 10살이 됐을 때 위안부 모집책이 300엔의 선급금을 제안했다"라면서 "오사키는 그 일이 수반하는 것이 뭔지 알았기 때문에 모집책은 그를 속이려고 하지도 않았다"고 적었다.

램지어 교수는 이와 관련해 최근 동료인 석지영 하버드대 로스쿨 종신교수에게 자신이 사례를 사실과 다르게 인용한 점을 실토했다고 석 교수는 이날 시사주간지 뉴요커 기고문을 통해 밝혔다.

피넬로피 코우지아노 골드버그 예일대 경제학부 교수
[골드버그 교수 페이스북 갈무리]


골드버그 교수는 이 사례는 사실 여부를 떠나서 윤리적으로 혐오스럽고 문명사회에선 엄격하게 불법인 아동 강간, 인신매매 등 행위를 정당화한다고 지적했다.

램지어 교수는 지난해 12월 위안부 피해자를 자발적인 매춘부로 규정한 위 논문을 발표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위안부 문제를 '매춘업자'와 '예비 매춘부' 간 계약행위로 해석하며 이를 '게임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이에 하버드대 학생들이 집단 비판성명을 내고 학계에서도 논문에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충분치 않다는 등의 비판 목소리가 나왔다.

이런 가운데 램지어 교수는 석 교수에게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들이 쓴 계약서가 없으며, '오사키' 사례를 잘못 인용한 건 자신의 실수라고 시인했다고 석 교수는 기고문을 통해 밝혔다.

young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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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ngHa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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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는 이미 문제를 해결할 여러번의 기회가 있었다.

그 과정은 사라졌고 피해자의 요구는 이제 과한 것이 되었다.

잘못을 책임있게 인정하라는 요구는 과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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