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간 한국 특공대, 무장한비(武裝韓匪)(?)
비활성화 기간 중에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님으로부터 메시지 하나를 받았습니다. 해외에 나와 있는 북한의 지인이 보내 왔다는 메시지의 일부였지요. 주성하 기자님의 활동을 보고 있다는 인사말과 함께 다음의 내용도 덧붙여져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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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에서는 김형민이란 분의 글을 많이 봅니다.
페북에 접속하는 법을 배운 이후로, 오랫동안 그 분이 이전에 쓴 글까지 많이 봤는데, 그분 필력도 대단하지만, 제게 정신적으로 참 힘이 되는 글들, 역사적 사실들이 많아 정말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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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기회가 있으시면 나 같은 놈도 빠짐없이 보면서 큰 힘 얻고 있다고 인사 정도 올려줄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그분이 하는 유튜브가 조회수 안 나온다고 그러던데.. 나한테는 정말 감동깊은 글들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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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화를 이루어낸 분들에 대한 글은 물론,, 얼마전엔 새를 연구한 원홍구박사에 대한 글도 있던데.. 그 유튜브에 나오는 장면중 영화 《새》의 장면도 있었고.. 그게 남북이 합작한 영화란 얘기 들었는데, 그 영화는 지금도 여기서 돌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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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별로 안나오고, 지천으로 널린 유튜브 중의 하나일 뿐이겠지만, 그 얼마 안되는 분들 가운데 휴전선 이북의 나라에 적을 둔 분이 있다는 사실은 매우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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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칭찬에 흐뭇해서가 아닙니다. 그저 제가 읽고 아내가 편집해 올리는 영상이 북한 사람도 보고, 쥐뿔만큼이라도 느낌을 가지고, 힘을 얻는다는 말 자체가 그저 신기하고 고마웠다고나 할까요.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를, 아마도 영영 알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한 그분이 가끔 올리는 제 유튜브를 기다릴 거라 생각하면 쉽게 게으르거나 그만둬서는 안될 것 같다는 묘한 책임감마저 갖게 됩니다. 대단한 사명감이 아니라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소박한 다짐 정도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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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959년 재일교포 북송사업이 벌어졌을 때 이야기를 해 봤습니다. 재일교포 북송사업은 여러모로 뜨거운 감자였던 재일교포들의 수를 줄이고 싶었던 일본과 전후 재건과 경제 성장 과정에서 머리 하나 손 하나가 귀했던 북한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져 전개됐습니다. 조총련계가 우위를 점하던 교포들의 호응도 컸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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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판에 펄펄 뛰며 “이 판은 무효”라고 드잡이를 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게 한국 정부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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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는 북한 괴뢰 집단이 도사린 생지옥에 재일교포들을 보낼 수 없다고 강경하게 나왔고 전국에서 수십만이 시위를 벌이며 북송 사업에 반대했습니다. 급기야 한국 정부는 특공대를 일본에 파견, 일본 적십자사를 폭파하고 조총련계 요인들을 납치하는 ‘무장공비’ 수준의 작전을 전개하게 됩니다. 수십 명의 특공대가 일본에 파견됐습니다. 일본에 나타난 한국 특공대, ‘무장한비’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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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향 장기수들의 북송을 보면서 느낀 것 하나가 있습니다. 북한이 만행을 저지른 적도 많고 삽질을 감행한 적도 적지 않습니다. 그 와중에 공작에 실패한 공작원도 많고 한국에서 죄값을 치러야 하는 간첩들도 많았죠. 그들 중 일부는 자신의 ‘조국’을 버리고 전향하지 않았고, 기약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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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정부 역시 비전향 장기수들을 나몰라라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전쟁 때 남한에서 고립됐던 빨치산을 나몰라라 했던 비정함에 비추어 볼 때 정략적인 의도가 없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어쨌든 북한 정부는 스스로 보낸 사람들에 대한 최선을 다하는 시늉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많은 경우 그러지 못했습니다. 일본에 파견한 이 ‘특공대’들의 운명도 비슷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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