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06

박정미 - 어느 586, 다시 지식인을 꿈꾸다

박정미 - 어느 586, 다시 지식인을 꿈꾸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던 그 해 87년에 6월항쟁이 터졌다. 3월과 4월... | Facebook

박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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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586, 다시 지식인을 꿈꾸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던 그 해 87년에 6월항쟁이 터졌다. 3월과 4월 초 잠깐 푸르른 젊음과 자유를 맛보았을까. 그 다음부터는 온통 교문 안이나 밖이나 자욱한 최루탄 연기로 뒤덮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 이후로 내 젊음은 회색빛 우울 속에 잠겨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이전까지 내가 얼마나 야심만만하고 명랑하고 씩씩한 아이였는지, 지금은 나조차도 가뭇하다. 시대의 격류에 휩쓸려 그만 나는 내 손을 놓치고 말았다.
 내 야심은 진정한 지식인이 되는 것이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까지 왔으니 세상과 사람을 제대로 경험하고 공부해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길들을 걸어보고 싶었다. 그 봄날에 내 앞에는 분명 수많은 기회가 보였다.
하지만 봄이 깊어지기도 전에 길은 일도양단 두 갈래로 좁혀졌다. 이 길 아니면 저 길이었다. 
 어린 지식인 지망자는 채 눈을 뜨기도 전에 도덕적 결단과 실천을 요구받았다. 그 요구를 수락하기 위해 지금까지 쌓아올린 모든 관념체계를 허물고 유물론적 세계관을 수용할 것을 자신에게 강요하게 되었다. 지식인의 기본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중심을 세우지도 못한 채로 한쪽으로 내몰렸던 것이다.
 정치적 참여와 실천이 지식인의 우선적 덕목으로 인식되었던 시절이었다. 모든 것들은 정치적인 입장에서 판단되었고 정치적일수록 도덕적이었고 지적으로 높이 평가받았다. 
 그 때 각인된 정치적 도덕적 결단성의 요구는 우리세대 전체의 무의식 속에 남게되었다. 도서관에 있든 거리에 있든 우리는 모두 최루탄세례를 받으며 성년이되었다.도서관파나 가두파나 정치과잉으로 웃자란 이가 태반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게 은연 중 스며든다는 것이다. 내 안에 무엇이 들어오는 지도 무엇이 자리잡은 지도 모른다. 실체가 잡히지 않아 도무지 대적할 수 없다.
판단과 견해의 명시적 대립은 물론 아프겠지만 진검승부를 통해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정서와 분위기로 들어온 것은 대결자체가 안된다. 이것은 당시 운동권학생들이 장년기에 접어들기까지 삼, 사십년간 행보를 보면 알 수 있다.
 상대적으로 책과 토론을 통해 마르크시즘을 받아들였던 당시 피디계열은 새로운 시대의 요구와 사상조류에 적응할 탄력성을 가졌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책보다는 가투와 뒷풀이 술자리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역사를 배웠던 엔엘계열은 그 대표적 정치인만을 보더라도 아직 그 시절에 머물러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탄핵정국을 기점으로 우리사회가 지나치게 좌편향화 되어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그것은 우리세대가 사회의 중추가 되면서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어린시절의 가정교육이 인간관계에서 사적태도를 대부분 규정하듯이 스무살 무렵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받아들인 이념과 사상이 그의 공적인 태도를 규정짓는다. 그것이 한 가정과 시대의 분위기, 즉 대세의 힘이다.
거기서 한발짝 더 나아가 인격의 완성과 사회적의식의 진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정말 드문 존재다.
하지만 국가와 사회의 책임있는 일을 맡고 있는 사람들마저 아직까지 젊은시절의 정치과잉에 발목잡혀있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특히 자유민주주의의 원칙을 견지하고 흔들리는 국가와 사회의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할 사법부가 그렇다는 지적은 특기할만 하다.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지도층일수록 결단보다는 합리적 이성을, 정치적 실천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원칙의 수호에 힘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스무살은 새 것의 탐구에 흔들려도 괜찮았지만 쉰과 예순의 나이는 다르다. 사회를 지탱해나가기 위해서는 더 이상 흔들리지도 치우치지도 않는 깊은 내공과 뚝심이 필요하다. 중심을 잡고 흔들림에 맞서 오랜 원칙과 가치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 시절이다.
좌와 우가 극단으로 갈려서 한 판 뒤집기 싸움이 한창인 지금만큼 지식인의 지식인다움이 절실히 필요로 한 시기가 없었던 것 같다.
 이는 쥘리앙 방다가 <지식인의 배반>에서 이미 말한 바 있다. 그는 "좌와 우가 기준이 아니라 지식인 본연의 원칙이 기준"이라며 정치인과 지식인을 분리 했다. 지식인의 본령이 ‘역동이 아니라 이성, 실천이 아니라 원칙’에 있다며 이를 벗어난 행위를 지식인의 배반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우리세대의 문제는 교수도 정치인이고 목사도 정치인으로 링 위에 뛰어오르고 판사도 정치적발언을 서슴지 않는다는데 있다. 정치과잉에서 벗어나 교수는 교수답게 목사는 목사답게 판사는 판사답게 되는 것이 지식인으로 바로 서는 길이다.
 젊음이 다 가버린 이제서야 38년 전 갓 대학에 입학한 후 맛 본 한달 보름여간의 짧은 행복을 되새겨본다. 다 잊고 산 줄로만 알았는데 그 꿈은 아직도 생생한 빛으로 내 안에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시절을 잘 만났다면 내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고,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배우고 공부하여 원칙을 세우고 서서히 서서히 세상에 진입하여 나를 잃지 않는 지식인이 되었을 것이다. 정치과잉으로 헤매지 않고 행복하게 진리의 추구에 정진하는 삶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그런 나를 찾고 싶다.
 이 나이에 원칙과 가치를 확인하며 백수 지식인으로 새출발하는 것은 너무 늦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늦었으면 어떠랴. 어차피 끝이 없는 길인 걸. 서두르지 않고 쉬지도 않고 죽을 때까지 나아가면 내내 행복하리라.
(사진은 소월길 끝에 있는 하이얏트호텔의 겨울 불꽃)
박인만
추구하는 가치와 원칙을 확인하고 매일 정진하며 신 지식인으로 포지셔닝 하신다는 말씀 정말 정말 기쁘고 반갑고 축하드립니다.
11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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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미
박인만 고맙습니다.요즘은 시간 날 때마다 조금 어려운 책을 찾아 공부를 하는데요. 매일매일이 신이 납니다.^^
9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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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만
박정미 잘 어울리십니다
3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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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hee Kim
제가 보기엔 이미 훌륭한 지식인(an intellectual)이세요~ 끊임없이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11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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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미
Eunhee Kim 아이고! 과찬이십니다. 기본원칙과 가치의 정립이 안된 얼뜨기 글이 대부분입니다^^
9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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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hee Kim
박정미 아녜요. 아직 젊고 반짝반짝 빛나요~^^
8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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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ong-Woo Lee
87년과 지금을 함께 생각해보면 87년에 운동권은 아주 심하게 좌경화되어 있었지만 시민들, 넥타이 부대가 동의한 내용은 결국 군부독재타도, 직선제 쟁취까지였죠.
이번에도 윤통이 시작한 계엄소동에 2030세대와 국민 절반이 동의하는 내용은 중국과 교류는 필요하지만 중국의 속국화는 안되고, 불법편법으로 나라를 쑥대밭 만드는 이재명의 민주당은 안된다는 것이고요. 80년대 세대가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되면서 만든 문제에 대한 거부이지요. 여전히 대한민국의 주류는 자유민주주의 신봉자들인 것같습니다. 그 내용을 더 채워가야겠지요.
11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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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미
Jeong-Woo Lee 우리세대에게는 국가관, 국가를 정립할 책무가 주어진 것 같습니다. 민족편향 사상의 흐름이 모순을 빚는 현실이 여기저기서 드러나고 앞으로 해명해야 할 문제가 구체화되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특이한 형태이지만 12.3으로 촉발된 현재의 대결국면도 그 선상에 있는 것 같고요. 고름이 밖으로 터져야 상처가 낫듯이 바로 그런 과정의 아픔이라고 스스로 위로하고 있습니다.
9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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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목
내 나름 원칙과 가치 확인 ㅡ꼭 필요하죠.^^
11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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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미
이헌목 현재로서는 더 구체적인 지적목표 설정이 어려운 수준이네요. 일단 큰 그림을 그렇게 그려봅니다.^^
9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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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목
박정미 남다르신데요!
11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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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철
10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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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No photo description available.
8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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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미
이병철 선생님. 고맙습니다. 입춘이 지나니 냉기는 거세도 봄볕살은 푸짐하네요. 오늘 자안언니 찾아갔는데 선생님과 정원선생님 공동명의가 적혀진 자작나무사진 화환을 봤어요. 이뻤습니다.
8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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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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