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호(저자) | 현대문학 | 2009-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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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장본 | 3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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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유종호의 회상 에세이. 2004년 출간된 <나의 해방전후>에 이은 회상에세이 2부로, 17세 소년의 눈으로 그려낸 6·25 동란기의 역사와 삶의 풍경을 담았다. 월간 「현대문학」에 2008년 1월호부터 일 년 동안 연재되었던 것으로, 6·25 동란기의 체험을 생생하게 복원해냈다.
<나의 해방전후>가 1941년부터 전쟁 발발 한 해 전인 1949년 무렵의 이야기를 주로 담았다면, 이번 에세이는 1951년 17세였던 저자의 6·25 동란기 체험을 담고 있다. 엄동설한에 광목천 배낭 하나 둘러멘 채 떠나야 했던 피란기의 경험을 시작으로 미군부대 노동사무소에서 문지기와 서기로 일한 뒤 다시 학교로 복귀하기까지.
저자는 암울하고 힘겨웠던 시대의 풍경을 기억 속에서 하나하나 끄집어내며, 전쟁기의 삶과 역사를 17세 소년의 눈으로 재현해낸다. 특히 이번 에세이는 단순한 에피소드의 나열이 아닌, 피란길 이후에 저자가 겪어야 했던 한 시절을 상세한 묘사와 함께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려내고 있다.
1. 북풍한설 찬바람에
2. 내가 받은 첫 새경
3. 은하수 밀크초콜릿
4. 4월의 올드 랭 사인
5. 담요 한 장 짊어지고
6. 부칠 곳 없는 편지
7. 중앙선 간현역 부근
8. 밥집의 공포
9. 여름밤의 산술
10. 마법의 손거울
11. 가을 목숨 시름시림
12. 세월이 간 뒤
너무 까마득해서 정확한 날짜는 헤아릴 길이 없다. 어느 날 갑자기 당장 집을 떠나 피란을 가라는 공고가 났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고랑포에서 격전 중이라는 좀 때늦은 신문기사를 본 것이 바로 며칠 전이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야말로 엄동설한에 광목천의 배낭 하나를 달랑 메고 떠나자니 속이 시려왔다. 서둘러 점심을 대충 먹고 난 뒤였다. 고명이랍시고 밤콩을 넣은 백설기가 내 배낭 속엔 가뜩 들어 있었다. - '1. 북풍한설 찬바람에' 중에서
많이 기억하는 쪽이 약자이며 강자는 결코 기억하지 않는다는 깨우침이 섬광처럼 머리를 스쳤다. 많은 것을 기억한다는 것은 많이 상처받았다는 것이고 많이 아팠다는 것이다. 삶의 강제가 안겨준 아픔의 흉터가 아니라면 기억이란 대체 무엇인가? 생존이란 본원적 치욕의 그때그때 상흔이 바로 기억이 아닌가? 기억은 상처 입은 자존심이고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내적 독백이다. 용서되지 않는 것이 주체이건 타자이건 우리를 번롱하는 우연과 필연의 거역할 길 없이 막강한 힘이건. 그러니 기억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다. - '4. 4월의 올드 랭 사인' 중에서
바로 그때였다. 역사 쪽에서 미친개가 잰걸음으로 광장을 질러오는 것이 보였다. 무슨 일이 있나 하고 둘러보았으나 이렇다 하게 눈에 뜨이는 것은 없었다. 그런데 그는 분명히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걸음을 멈추고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내게 다가온 그는 다짜고짜 나의 뒷덜미를 잡고 마구 흔들더니 내동댕이치듯 밀쳤다. 몸의 균형을 잃고 앞으로 넘어지면서 미친개에게 물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그가 무장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도 났다. 순간 돌멩이를 찾았다. 돌멩이는 눈에 뜨이지 않았다. 몸을 일으켜 세운 나에게 다가온 그는 다시 뒷덜미를 잡으려 했고 나는 몸을 숙이면서 피했다. - '6. 부칠 곳 없는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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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유종호
저자파일
수상 : 2006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1995년 편운문학상, 1988년 대한민국 문학상, 1959년 현대문학상
최근작 : <고전 강연 1>,<고전 강연 7>,<고전 강연 8> … 총 61종 (모두보기)
소개 :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뉴욕 주립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공주사범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를 거쳐 2006년 연세대학교 특임교수직에서 퇴임함으로써 교직 생활을 마감했다. 저서로 『유종호 전집』(전 5권) 외에 『시란 무엇인가』, 『서정적 진실을 찾아서』, 『한국근대시사』, 『나의 해방 전후』, 『과거라는 이름의 외국』 등이 있고 역서로 『파리대왕』, 『제인 에어』, 『그물을 헤치고』, 『미메시스』(공역) 등이 있다. 2018년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며,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인촌상, 대한민국예술원상, 만해학술대상 등을 수...
유종호의 한 마디
이 책은 굳이 분류하자면 자전적 에세이라 할 수 있다. 회상록 혹은 회고록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길지 않은 특정 시기의 경험을 집중적으로 다룬 것이기 때문에 어울리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회고록은 정치경제를 위시해서 모든 분야의 거물들이 역사에 남긴 흔적을 적은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우리 쪽 통념인 것 같다. 그래서 회상기 혹은 회상 에세이라 명명했고 그리 불리기를 바란다. ('책 머리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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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 평단의 거목 유종호 회상 에세이
17세 소년의 눈으로 그려낸 6ㆍ25 동란기의 역사와 삶의 풍경
<나의 해방전후>에 이은 회상에세이 제2부!
원숙한 지성과 날카로운 분석력으로 변함없이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한국 문단의 1세대 평론가 유종호의 회상 에세이 <그 겨울 그리고 가을-나의 1951년>이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월간 '현대문학'에 2008년 1월호부터 일 년 동안 연재되었던 것으로, 6ㆍ25 동란기의 체험을 생생하게 복원해내며 장편소설 못지않은 재미와 깊이로 많은 독자들에게 호응을 얻은 바 있었다. 특히 이번 회상 에세이는 저자만의 개인적인 체험을 넘어, 이 시대 젊은 세대들에게 전하는 근접 과거에 대한 역사와 삶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더 큰 의미와 울림을 전해준다.
성장소설을 뛰어넘는 깊은 감동과 울림!
2004년 출간된 <나의 해방전후>가 1941년부터 전쟁 발발 한 해 전인 1949년 무렵의 이야기를 주로 담았다면, 이번 에세이는 1951년 당시 17세였던 저자의 6ㆍ25 동란기 체험을 담고 있다.
엄동설한에 광목천 배낭 하나 둘러멘 채 떠나야 했던 피란기의 경험을 시작으로 미군부대 노동사무소에서 제니터(문지기)와 서기로 일한 뒤 다시 학교로 복귀하기까지. 저자는 암울하고 힘겨웠던 시대의 풍경을 기억 속에서 하나하나 끄집어내며, 전쟁기의 삶과 역사를 17세 소년의 눈으로 재현해낸다. 특히 이번 에세이는 단순한 에피소드의 나열이 아닌, 피란길 이후에 저자가 겪어야 했던 한 시절을 상세한 묘사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마치 한 편의 장편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와 드라마틱한 긴장감을 더해주고 있다. 내일의 삶을 기약할 수 없는 공포, 그리고 가난과 굶주림 속에서 성장해가는 사춘기 소년의 이야기는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신념과 의지로 살아낸 한 시대의 역사 이야기
불과 50여 년 전의 우리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급변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에게 6ㆍ25 동란기의 역사와 삶은 마치 먼 과거의 비현실적인 이야기로만 들리게 마련이다. 저자가 책머리에서 밝히고 있듯, 이 책은 우리 역사가 안고 있는 아픔의 한 시대를 되새겨봄으로써 그 역사가 다시금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는 암묵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저자는 무엇보다도 어두웠던 시대의 진상을 왜곡됨 없이 있는 그대로 복원해내는 일에 힘을 기울였다.
수통스럽기까지 했던 가족과 개인사, 나아가 당시 세대들이 겪어야 했던 수모와 아픔의 추억을 저자는 상세한 세목까지 조심스럽게 들춰낸다. 자의와는 무관하게 주어진 험난한 역사의 급류 속에서 꿋꿋한 신념과 희망에 대한 의지로 살아내야만 했던 시대. 힘겹게 살아낸 하루하루는 추억이 되고, 그 추억들은 모여 역사가 된다. 지금은 백발의 노인이 된 시대 최고 석학의 회상 에세이는 독자들에게 다시 한 번 역사에 대한 깊은 성찰과 삶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게 만드는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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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세한 사건을 기억하는 것도 대단하지만 16살 소년의 시선을 아직까지 잊지 않고 그대로 풀어나가신 글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점에 감사드린다.
수퍼겜보이 ㅣ 2016-08-08 l 공감(0) ㅣ 댓글(0)
진한 책이다 읽어 볼만한 책
청보리 ㅣ 2012-07-04 l 공감(0) ㅣ 댓글(0)
3부작 중 세번째(마지막) 회고록이 기다려진다.
mint ㅣ 2009-04-22 l 공감(0) ㅣ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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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 4편
그 겨울 그리고 가을 우보 ㅣ 2010-09-25 ㅣ 공감(3) ㅣ 댓글 (0)
"이 고생을 옛 얘기할 날이 꼭 올 것이다."
한국의 지나간 일제 강점기,해방후의 서민들의 생활상등을 읽다 보면 내 이웃,친척,부모들의 이야기라 관심이 가게 되고,역사적인 외침과 굴레 속에서 힘들게 살아오고 살아 간 분들의 애환은 교훈이 되고 곱씹어 밝은 미래를 열어 가는데 자양분이 될 것이다.
학자이시며 작가이신 유종호님의 유년 시절을 그린 한국 전쟁의 체험과 기억을 일기 쓰듯이 그려 놓은 에세이라 당시의 전쟁 상황과 사회분위기가 생생하게 녹아 있고 당시 상황을 허구없이 그려 놓은 글이라 흡인력이 배가되었다.
한국 전쟁의 와중이라면 제 부모님도 작가와 비슷한 연배라 같은 상황에 놓였으리라.포연과 총성이 울리는 칠흑같은 한밤중에 두두두 소리가 나면서 흙담을 관통하는 날쌘 총알의 섬뜩함과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생존 본능의식에 식구들은 한몸이 되어 부둥켜 안고,적은 양이지만 주린 배를 채워야만 했던 시절이었으리라.
저자의 말씀처럼 약자는 힘 있는 자로부터 눌리고 상처를 받아 그리 사연이 많고 할 말도 많을거 같다.그리고 오래된 기억도 어제의 일처럼 잘 보관된 영사기마냥 뇌리에서 한 올 한 올 국수가락처럼 뽑아져 나올 것이다.강자는 가해자인 만큼 오그리고 잠을 잘 것이고 하루라도 빨리 나쁜 기억을 잊으려 애를 쓸 것이다.역시 인간이 갖고 있는 무의식의 발로임에 틀림이 없다.
1951년 1.4후퇴와 함께 남으로 남으로 피난을 가고 중학생 무렵의 저자는 살을 에는 듯한 추위와 함께 대가족이 하나가 되어 연풍을 거쳐 문경 세재로 향하고 이런 저런 사람들,괴이한 소문등을 접하게 된다.그러는 와중에 청주의 미군 통운회사에 우연찮게 취직이 되어 사무실 청소와 오일 스토브를 관리하는 일이었는데,그곳에서 난생 처음 일한 댓가로 돈을 손에 쥐는 기쁨을 맛보았다고 한다.
노동사무소에서 일을 하다 짬을 내어 지물전에 꽂힌 시집을 보며 사색을 즐긴 것이 저자의 문학가로서의 길을 트여 준 계기가 된 거같다.청록파 시인,서정주 시집등을 탐독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군의 부대 이동과 함께 그도 어디론가 따라 가게 되고.맥아더가 1951년 4월 12일 유엔 총사령관직에서 해임되었다는 기억,서울 수복이 가까워지면서 총성이 잦아 들던 기억,오랫동안 씻지 않아 피로한 몸을 냇가에 시원하게 씻겨 내던 추억,간현역 근처의 색시집과 주막집의 풍경,달콤한 귀향 휴가등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으리라.
한국 전쟁과 함께 장기 방학을 마치고 저자는 고2의 학생 신분으로 돌아오게 되는데,동기들 중에는 희생된 자도 있고 행방 불명인자도 있었을 것이다.그쯤에서 저자는 전쟁이라는 비극이 남긴 것은 무엇이며,사회를 보는 시각도 커졌으리라.
청소년기,사춘기의 한복판에서 작가는 이념으로 인한 분단의 참상을 육안으로 똑똑히 보았을 것이고 함께 했던 산하,부모,은사,동기생,스쳐 지나간 인간 군상들의 아픈 기억을 후세들에게 전달하려고 애쓴 흔적이 선연하다.
비록 지나간 역사의 편린을 생생한 기억을 더듬어 작가가 바라본 한국 전쟁의 수기를 읽어 가노라니 불현듯 고인이 된 아버지,조부모님의 생전 들여 주었던 인공때의 이야기와 교차되어 그분들이 시대를 못타고 불운한 한때를 살아 왔던 시절이 역사의 교훈으로 뇌리에 새겨지고,지금은 그때보다는 몇 백배나 모든 면에서 편안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에 그분들께 존경과 감사함을 표하고 싶다.
충주, 청주, 제천, 원주의 사람들이 보아야 할 책 토쿠리오 ㅣ 2009-04-30 ㅣ 공감(3) ㅣ 댓글 (0)
이 회상 에세이집에는 충주, 청주, 제천, 원주에서 열 일곱 소년이 경험한 6.25가 잘 그려져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살아남으려고 하는 소년의 내면이 어쩌면 이렇게 오랜 시간의 간격을 두고도 자세하게 그려지 수 있는 지 의문입니다.
아마 그런 나이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처럼, 저자는 유년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궁금합니다.
백발의 교수에게서 듣는 진솔하면서도 노골적인 '생활', '생존'의 현장을 만나 볼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 하여, 스무살 청년들과 열일곱 이후의 사춘기 소년소녀게에 꼭 읽힐만한 책이라 하겠습니다.
물론 그 시대를 살아오신 분들이 옛 일을 떠올리며 읽으셔도 좋을 책이겠습니다.
천진한 소년 유종호 mint ㅣ 2009-03-08 ㅣ 공감(6) ㅣ 댓글 (0)노비평가가 16세의 소년으로 돌아가 육이오 체험을 회고하는 진실한 언어가 가슴을 울린다. 순진하면서도 예민하고 지적 호기심이 강한 유종호 소년의 언행이 인상적이다.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성장의 드라마고 인간에 대한 이해와 인간사에 도움을 주는 지혜의 보고서다. 일기도 없이 99% 기억에 의존해서 16세에서 17세 소년기를 복원한 저자의 기억의 유지를 위한 망각과의 싸움에 경의를 표한다.
전쟁중 한국인의 초상 만성 ㅣ 2009-03-08 ㅣ 공감(6) ㅣ 댓글 (0)
유종호 선생님의 문학평론은 읽은 적이 없다. 문학전공자가 아니더라도 교양인이라면 그의 글을 읽고 배울만 했지만, 교양마저 없는 나에게 그는 외계인이었다. 그런 그가 나에게 '선생님'이 된 것은 그가 정년퇴임 후 일간지 등에 기고한 칼럼 때문이었다. 우리 사회와 역사에 관한 품격있고 균형잡힌 원로의 한 말씀을 그 짧은 글에서 들을 수 있었다.
그가 몇년전 펴낸 회상록 <나의 해방전후>(민음사)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가 그 시대를 다루면서 역사학 저술이든 회고록이든 우리의 과거에 대한 저술에 항상 나타나는 판에 박은 패턴, 스테레오타입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대개의 저술은 일제시대라면 일제의 억압과 수탈-그로 인한 한국인의 희생, 저항, 투쟁을, 그리고 해방후에는 좌우의 대립, 상호 가학, 억울한 민중의 희생을 기본뼈대로 삼는다. 예를 들어 6.25전쟁기의 개인 일기로 1990년대에 큰 관심을 끈 김성칠의 <역사 앞에서>는 남과 북의 권력이 각기 얼마나 극악스러웠고 한 역사학자가 어떤 수난을 겪었는지를 담은 책으로 기억한다. 한마디로 순진무구한 한 학자의 수난사다. 그러나 <나의 해방전후>는 일제에 충직했던 한국인(교사, 교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방적 희생자만이 아닌 협조자,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더 심한 가해자의 모습이다.
이번 <그 겨울 그리고 가을-나의 1951년>도 전쟁중 한국인의 새로운 초상, 그에 관한 새로운 화법을 보여준다. 1951년 전쟁의 후방이라 할 충북 청주-강원도 원주의 미군물자하역장에서 16세 중학생 소년의 눈에 비친 한국인은 잔인한 학살자도, 억울한 희생자도 아니다. 대신 그는 난리통에 생계를 이어가야 했던 비루하고 교활하고 뻔뻔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피난민을 막으려고 돌림병이 도는 마을이라는 방을 마을 어귀에 내붙인다. 미군부대에 빌붙는 것이 유일한 생계 길이었기에 미군에 아첨하고 이미 빌붙은 한국인에게 아첨한다. 그러면서도 여차하면 미군을 속여 물자를 훔치고 허위로 일당을 계상하며 약한 입장의 노무자를 갈취한다. 16살 짜리 아들에게 일자리를 알아보라고 채근하다가 아들이 미군 노동사무소에 취직해서 돈을 버는 것을 다행스러워하고 그 아들의 청탁으로 잠시나마 취직까지 한다. 딸 하나를 거느린 젋은 여인은 대학생 미군 통역에게 몸을 의탁해 생계를 잇는다. 수복후 학교에서는 형편없는 실력의 교사들이 학생들을 가르친다...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인간성이 드러난다고 하지만, 이 책에는 정말 여러 인물의 인간성이 드러나 있다. 하지만 이를 그 개인의 허물로 치부해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만 당시 어디서나 그런 일은 횡행했을 것이니, 당시 한국인의 한 초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좌우의 대립이나 잔인한 가학, 억울한 희생이라는 거대 프레임에 새로운 틀이 더해질 필요가 있겠다.
'비루하고 교활한 사람들'이 저자가 보여주고 싶어한 주제는 아니다. 독자에 따라 다양하게 읽도록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가 여러 곳에서 한탄한 '문화적 황무지'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그밖에 삶과 사회의 숨겨진 비밀을 드러내주는 촌철살인의 문장도 많다. 예를 들어
"별것 아닌 것이 강제된 죽음의 사유가 되는 것... 아는 사람이 찾아와도 별 반갑지 않은 난시.... 많이 기억하는 쪽이 약자이며 강자는 결코 기억하지 않는다.... 모든 가난은 궁상맞을 뿐이다... 문화적 기억에 매개되어 사물을 바라본다..."
책 머리말에 적은 경구는 무서운 말이기도 하다.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 자는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마련이다." 6.25는 우리에게 결코 잊혀진 역사가 아니지만, 잘못 기억되는 역사라는 점에서 아마도 저자는 그 시대를 제대로 기억하자고 말하는 것이리라.
유종호 선생님 같은 분들은 각각의 전문분야에서 이미 큰 공헌을 한 분이다. 퇴임 후 그냥 푹 쉬셔도 아무 허물이 안될 것이다. 그런 분이 이런 좋은 책까지 남겨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3부작의 나머지 한 권도 마저 선사해 주시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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