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선(저자) | 모시는사람들 | 2013-02-28
392쪽 | 223*152mm (A5신) | 549g | ISBN : 9788997472291
한나 아렌트와 유교의 교육ㆍ철학 사상의 비교연구를 통해 이 시대 교육이 인간의 참된 성장과 우주적 생명 공동체의 안녕을 위하는 본질을 회복하고, 나아가 범 생태적인 위기에 처한 우리 삶에 새 길을 열어줄 수 있는 생물권 정치학 시대를 열어 나가는 비전들을 제시한다. 오늘 우리의 정치가 참된 자유인, 교양인, 상식인 들의 마당이 되고, 오늘 우리의 교육이 그러한 사람들을 길러 내는 본연의 기능을 회복하는 일이, 이 책의 지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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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한나 아렌트와 교육
제1장 한나 아렌트의 라헬 반하겐과 한국 사회에서의 졸부의식과 교육적 속물주의
제2장 인간의 조건과 공공성으로의 교육
1. 오늘의 세계정황과 세계소외
2. 공론 영역과 사적 영역
3. 인간 활동적 삶의 세 가지 양식
4. 인간 삶의 제 조건과 교육
5. 탄생성의 교육학
제3장 한나 아렌트 교육사상에서의 전통과 현대
1. 교육에서의 전통과 현대
2. 교육이란 무엇인가?
3. 권위란 무엇인가?
4. 참으로 교육받은 사람의 모습
5. 정신적 삶이 살아 있는 학교를 위하여
제4장 한나 아렌트의 탄생성의 교육학과 왕양명의 치량지의 교육사상
1. 아렌트와 양명 비교연구의 의미
2. 아렌트의 활동적 삶(vita activa)과 양명의 심즉리(心卽理)
3. 아렌트의 정신의 삶(vita contemplativa)과 양명의 치량지(致良知)
4. 아렌트의 탄생성의 교육학과 양명의 치량지의 교육사상
5. 우리 시대의 교육적 전체주의에 맞서서
제2부 유교 사상의 새지평과 교육
제1장 성(性)과 가족, 그리고 한국 교육의 미래
1. 전통 가족의 해체와 한국 교육
2. 한국 교육철학 담론 안에서의 성(性)과 페미니즘, 그리고 가족
3. 급진적인 변화의 소용돌이 안에서의 성(性)과 가족
4. 인간성(측은지심, 仁, humanity)의 도야 장소로서의 가족, 그리고 학교
5. 새로운 대안적 가족 공동체와 한국 교육의 미래
제2장 세계화 시대 한국 교육의 무한경쟁주의 극복을 위한 인문학적 성찰
1. 세계화 시대의 경제환원주의와 무한경쟁주의
2. 한국 교육의 저력은 어디서 오는가?
3. 한국 교육의 목표 설정의 문제점
4. 친친(親親)과 경장(敬長)의 교육을 위한 입시제도 개혁
5. 우리 신뢰의 그루터기
제3장 탈학교 사회와 한국 생물(生物)여성 영성의 교육
1. 신자유주의 생태위기와 한국 교육의 위기
2.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에서의 아이들의 보편적 출생과 성장
3. 신자유주의 경제 원리와‘성장을 멈추라!’
4. 생태계 위기와 탈학교 사회
5. 한국 생물(生物) 여성 영성의 교육
제4장 어떻게 행위하고 희락할 수 있는 인간을 기를 수 있을 것인가?
1.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현재 구하기
2. 인식(知)의 출발점으로서 의지(意)를 발견한 양명과 루돌프 슈타이너
3. 사고(思)를 통해서 의지(意)의 오류성과 무세계성을 밝혀내는 퇴계와 루돌프 슈타이너
4. 희락(情) 속에서 직관(知)하고 행(行)하고 소망(意)하는 정신을 기르는 교육
5. 우리 시대를 위한 양명과 퇴계 그리고 루돌프 슈타이너
제5장 어떻게 우리의 대동(大同)사회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
1. 2013체제 구상
2. 한반도 평화 체제 도래를 위한 종교인과 문화인의 역할
3. 2013 희망체제를 위한 복지사회 구상
4. 공정과 공평이 상식과 교양이 되는 민주사회
5. 인류문명의 미래와 한국의 역할
P.91 : 오늘 우리가 사는 삶의 정황은 국내외적으로 안정과 평화라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온통 갈등과 변혁으로 소용돌이 치고 있다. …(중략)… 이러한 삶의 정황 중에서 이 위기감의 수위가 가장 높은 곳 중 하나가 바로 교육의 영역이다. 그래서 이것은‘교육 국란’을 겪고 있는 것이라고도 표현되고, 나라 전체가 이 과거와 미래 사이의 힘의 겨룸에서 오는 여러 가지 갈등적 교육 문제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교실붕괴, 학교붕괴와 관련한 대안학교의 문제, 고교평준화의 해체냐 지속이냐의 논의, 교직의 연령 제한에 관한 것, 교장의 리더십을 어디까지 인정해 줄 것이며 일선의 교사들에게 교육과정에 관한 권한을 어디까지 보장할 것인가, 해외 조기유학을 포함하여 점점 심화되어 가는 고등교육의 서구 종속화 등 과거와 미래 가치 사이에서 갈등하며 고뇌하는 한국 교육의 모습은 매우 위기적이다.
P.147 : 아렌트는 칸트가 인간의 판단력을 표현하면서 아주 특이하게도 가장 사적이고 즉각적인 미감(취미)으로, 그래서 어쩌면 가장 반대되는 것으로 표현한 것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았는지를 묻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고, 오히려 거기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미감이란 우리의 이차적인 반성이나 의도가 들어갈 여지가 없이 우리 자신을 잊고서 오직 그 대상의 현존에 의해서만 아주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판단을 말하기에 가장 적합한 모습이라고 한다. 따라서 칸트가 미(美)의 반대는 결코 추(醜, ugly)가 아니라 역겨움(disgust)라고 한 것은 매우 타당한 것이었다고 밝힌다.
P.202 : 한국과 일본의 과거와 현재를‘선비문화’와‘사무라이 문화’로 대비시켜 풀이하는 일본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호사카 유지 교수의 한국 문화 지적이 흥미롭다.
그는 한국인의 가장 큰 한(恨)은 배우지 못한 것에 있다는 통계 조사 결과를 지적하며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이 평생 모은 재산을 대학교 장학금으로 아낌없이 내놓았다는 등의 교육 미담이 흔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다른 나라에는 학교와 관련된 미담이 그렇게 많지 않다고 하는데, 학식이 있고 많이 배운 사람에게 가치를 두는 한국에서는 배움이 짧은 사람을 말할 때 무식한 사람이라는 비하의 말이 있지만, 일본에는 못 배운 사람이라도 전문기술 하나만 있으면 무시당하지 않으므로 무식한 사람이라는 욕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8
그는 또한 역사에서 지적하기를, 조선의 임금 선조는 16세기 후반에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시문은 커녕 한문조차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보고를 듣고“그는 정말로 사람인가?”하고 물었다고 한다. 조선의 엘리트들은 모두 지식인이었기 때문이고, 일본에는 과거제도와 같은 인재를 고르는 장치가 없었기 때문에 힘만 있으면 천하를 통일하겠다고 나설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는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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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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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새월호와 한국 여성신학>,<통합학문으로서의 한국 교육철학>,<환상과 저항의 신학> … 총 14종 (모두보기)
소개 :
충북 괴산에서 출생하여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불문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아버지 이신 박사의 영향으로 감리교신학대학 대학원에 들어갔다. 스위스 바젤 대학으로 유학 가서 프리츠 부리 교수 밑에서 유교와 기독교의 만남을 공부하였다. 그곳에서 또한 아들 둘을 얻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성균관대에서 한국철학을 공부했다. 세종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유교와 기독교의 대화를 ‘한국적 인지학(人智學)’으로 새롭게 구성해 내고자 고심하고 있다.
현재 한국양명학회와 유교학회 부회장, KNCC 화해와통일위원회 위원, 문체부 공직자종교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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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경쟁과 부자 되기에 치우쳐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학부모들과 학생들의 최고 관심은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다. 좀 더 인간다우며, 공공의 삶이나 공동체 문제에 관심 갖기에는 지금의 입시 위주의 경쟁이 너무도 치열하다. 대학의 입구에서 벌어진 ‘입시 전쟁’에서 이긴 사람과 패한 사람은 몇 년 후 다시 사회의 입구에서 만나 본게임을 벌이는데, 본게임은 데개 ‘부자 되기’라는 타이틀 하에서 치러진다. 한때는 “그나마 개천에서 용 난다”거나, 계층 상승의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것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그런 믿음은 희망고문(希望拷問)일 뿐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관련 통계까지 속속 발표되고 있다. 더 이상 꿈꿀 수 없는 곳. 그곳은 어쩌면 지옥이 아니겠는가.
전체주의로 치달아 가는 교육 현실
한편으로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목도되는 교육적 전체주의는 가공할 수준이다. 교육은 온통 실리주의의 도구가 되어서 ‘인적 자원’을 생산하는 공장이 된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사회적인 생산도구로 단련되고 그 단련을 견디지 못하거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사회적 시스템의 본류로부터 소외되어 '루저'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기러기 아빠가 일상적인 가족 유형이 되고, 대입 성적을 위한 자퇴가 횡행하며, 초등학생 때부터 입시를 위한 스펙 쌓기에 내몰리고, 학원가를 뺑뺑 돌며 SNS를 통한 ‘비대면 소통’에 빠져드는 현실의 그림들이 바로 그 증거들이다. 오늘 우리 사회의 교육은 그래서 더 이상 인간 존재의 자연스러운 행위가 아니다. 아렌트에 따르면 자연에 가하는 인공적 노력은 자연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할 뿐이다. ‘자연’이 바로 ‘살려는’ 또는 ‘살리는’(生) ‘마음’(心)이라면, 오늘의 교육은 자연에 반하는 전체주의로 귀결되어 왔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각자가 가지고 태어난 인간의 위대성과 자질의 씨앗을 알아보고 살펴서 위대한 행위의 인간으로 길러내는” 교육의 본래의 기능을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이상론이 되고 만다.
교육을 매개로 한 동서양의 통섭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도, ‘인간은 누구나 다 배움(學)을 통해서 위대해질 수 있다.’는 유교의 가르침을 한나 아렌트 등 서구 사상가들과의 비교 연구를 통해 부각시키면서 그 해결점을 모색한다. 저자는 그들의 담론은 동서양의 차이가 있음에도 오늘날 한없이 실리주의에 빠져 있고 제도적으로 독재(독점)화된 교육을 개혁할 수 있는 좋은 씨앗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유교적 가르침은 인간 내면의 가능성에 대한 깊은 믿음과 신뢰, 우리 정신의 힘으로서 사람의 자리보다 하늘의 자리를 더 귀히 여길 수 있는 내면적 힘에 대한 강조, 그래서 자신을 쉽게 조그마한 이익이나 명예에 팔지 않고 뜻을 높이는 일에 매진하도록 하는 의지적 결단력, 그렇게 해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내려는 인간적 상상력과 공동체적 단결력을 이끌어 내는 지혜가 충실히 담고 있다고 보았다.
아렌트는 인간 본유의 능력을 잘 확장하고 키워서 이 세계를 보존하고 문화를 일구어 내고 진리를 담보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는데, 우리의 확장된 의식은 그 사심 없음의 덕분으로 이 세상을 그 자체의 미(美)로 판단할 수 있으므로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존할 있는 힘이 되고 그래서 새로운 문화를 생산하고 보존할 수 있다고 보았다.
생물권 정치학과 생물여성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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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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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괴산에서 출생하여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불문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아버지 이신 박사의 영향으로 감리교신학대학 대학원에 들어갔다. 스위스 바젤 대학으로 유학 가서 프리츠 부리 교수 밑에서 유교와 기독교의 만남을 공부하였다. 그곳에서 또한 아들 둘을 얻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성균관대에서 한국철학을 공부했다. 세종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유교와 기독교의 대화를 ‘한국적 인지학(人智學)’으로 새롭게 구성해 내고자 고심하고 있다.
현재 한국양명학회와 유교학회 부회장, KNCC 화해와통일위원회 위원, 문체부 공직자종교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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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경쟁과 부자 되기에 치우쳐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학부모들과 학생들의 최고 관심은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다. 좀 더 인간다우며, 공공의 삶이나 공동체 문제에 관심 갖기에는 지금의 입시 위주의 경쟁이 너무도 치열하다. 대학의 입구에서 벌어진 ‘입시 전쟁’에서 이긴 사람과 패한 사람은 몇 년 후 다시 사회의 입구에서 만나 본게임을 벌이는데, 본게임은 데개 ‘부자 되기’라는 타이틀 하에서 치러진다. 한때는 “그나마 개천에서 용 난다”거나, 계층 상승의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것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그런 믿음은 희망고문(希望拷問)일 뿐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관련 통계까지 속속 발표되고 있다. 더 이상 꿈꿀 수 없는 곳. 그곳은 어쩌면 지옥이 아니겠는가.
전체주의로 치달아 가는 교육 현실
한편으로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목도되는 교육적 전체주의는 가공할 수준이다. 교육은 온통 실리주의의 도구가 되어서 ‘인적 자원’을 생산하는 공장이 된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사회적인 생산도구로 단련되고 그 단련을 견디지 못하거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사회적 시스템의 본류로부터 소외되어 '루저'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기러기 아빠가 일상적인 가족 유형이 되고, 대입 성적을 위한 자퇴가 횡행하며, 초등학생 때부터 입시를 위한 스펙 쌓기에 내몰리고, 학원가를 뺑뺑 돌며 SNS를 통한 ‘비대면 소통’에 빠져드는 현실의 그림들이 바로 그 증거들이다. 오늘 우리 사회의 교육은 그래서 더 이상 인간 존재의 자연스러운 행위가 아니다. 아렌트에 따르면 자연에 가하는 인공적 노력은 자연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할 뿐이다. ‘자연’이 바로 ‘살려는’ 또는 ‘살리는’(生) ‘마음’(心)이라면, 오늘의 교육은 자연에 반하는 전체주의로 귀결되어 왔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각자가 가지고 태어난 인간의 위대성과 자질의 씨앗을 알아보고 살펴서 위대한 행위의 인간으로 길러내는” 교육의 본래의 기능을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이상론이 되고 만다.
교육을 매개로 한 동서양의 통섭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도, ‘인간은 누구나 다 배움(學)을 통해서 위대해질 수 있다.’는 유교의 가르침을 한나 아렌트 등 서구 사상가들과의 비교 연구를 통해 부각시키면서 그 해결점을 모색한다. 저자는 그들의 담론은 동서양의 차이가 있음에도 오늘날 한없이 실리주의에 빠져 있고 제도적으로 독재(독점)화된 교육을 개혁할 수 있는 좋은 씨앗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유교적 가르침은 인간 내면의 가능성에 대한 깊은 믿음과 신뢰, 우리 정신의 힘으로서 사람의 자리보다 하늘의 자리를 더 귀히 여길 수 있는 내면적 힘에 대한 강조, 그래서 자신을 쉽게 조그마한 이익이나 명예에 팔지 않고 뜻을 높이는 일에 매진하도록 하는 의지적 결단력, 그렇게 해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내려는 인간적 상상력과 공동체적 단결력을 이끌어 내는 지혜가 충실히 담고 있다고 보았다.
아렌트는 인간 본유의 능력을 잘 확장하고 키워서 이 세계를 보존하고 문화를 일구어 내고 진리를 담보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는데, 우리의 확장된 의식은 그 사심 없음의 덕분으로 이 세상을 그 자체의 미(美)로 판단할 수 있으므로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존할 있는 힘이 되고 그래서 새로운 문화를 생산하고 보존할 수 있다고 보았다.
생물권 정치학과 생물여성 영성
저자는 의도적으로 ‘생명’권 정치학이라는 말 대신 ‘생물’(生物)권 정치학이라는 말을 쓴다. 일차적으로 ‘생물’에서 ‘생’(生)은 형용사가 아닌 동사가 되어서 ‘물(物)을 살리는’의 의미이다. 또한 여기서 물(物)은 물질이나 사물만이 아니라 인간과 사물, 생명과 무생물을 모두 포괄하는 만물(萬物)과 만사(萬事)가 되어서 샐물(生物)은 생명(生命)보다도 훨씬 더 포괄적인 개념이 된다. 유교 전통에서의 명(命)이 기독교만큼은 아니라 하더라도 여전히 인간중심적인 사고의 표현이고, 생명과 무생명, 생물과 무생물, 정신과 물질 등을 이원론적으로 나누는 의식이기 때문에 생명 대신에 중용적 생물(生物)의 개념을 쓰고자 하는 것이며, 천지생물지심(天地生物之心) 또는 생물지도(리)(生物之道(理))의 의미로 한국적 에코 페미니즘의 영성을 한국생물(生物)여성의 영성으로 표현하고 있다. 생물여성의 영성이란 여성이 생명을 낳고 살리는 ‘생물’과 맞닿는 지점에 천착한 저자의 논의이다.
새로운 인류 문명을 위한 한국의 역할
저자의 전작들이 그러하듯, 이 책 역시 인간의 삶과 (생활)정치를 더욱 인간적인 것으로 만드는 지극히 현실적인 과제에 응답하기 위하여 씌어졌다. 저자의 학문적 탐구는 끊임없이 지금 여기에서의 나와 우리의 삶을 천착하는 일상적인 노력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것이며, 그 속에서 당면하는 현실적인 물음들에 온몸으로 대답하는 과정에서 실천적으로 얻어진 것들이어서 더욱 가치가 있다. 저자는 지금의 인류 문명이 서구 문명의 압도적 우세로 인한 폐해의 극대점에서, 여전히 서(미국)와 동(중국)이 헤게모니 쟁탈을 하는 가운데, 그 가운데 위치한 한국이 어떠한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그 앞날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이 새로운 세계의 패권국가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새로운 문명을 위한 담론과 철학과 사상을 제시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책은 그러한 저자의 비전에 대한 논거의 일부로소 제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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