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14
최진석. 경계에 흐르다
경계에 흐르다
최진석(저자) | 소나무 | 2017-08-23
]
정가 15,000원
판매가 13,500원 (10%, 1,500원 할인) | 무이자 할부
반양장본 | 316쪽 | 210*140mm | 480g | ISBN : 9788971390993
'경계의 철학자' 최진석의 첫 산문집. 그가 경계의 흐름 속으로 비집고 스며들었던 자기 삶과 사유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엮었다. 거칠고 시큰둥했던 유년과 청소년 시절 그가 체득한 두려움과 갈망에 대한 이야기, 철학 공부의 시작과 '이상한 눈빛'에 대한 이야기, 칸트에서 장자로 시선을 옮기게 한 무료함에 대한 이야기, 장자와 적대관계로 지낸 이야기 등 그가 불안하고 비밀스러운 경계에서 빚어낸 무늬를 보여준다.
서문 ― 경계, 비밀스러운 탄성
1부 늑대의 털은 쓸쓸한 눈빛을 데우지 못한다
고향, 나의 까닭
금방 죽는다
불언不言의 가르침
배반의 출렁거림
우물에 물이 차오를 때
보는 사람
오직 혼자서 덤비는 눈빛
비틀기와 꼬임
약 오르면 진다
‘읽기’와 ‘쓰기’, 그 부단한 들락거림
심심하기 때문에
나를 만나는 일
경계에 선 불안을 견딜 수 있는가
‘사람’으로 산다는 것
잔소리에 대하여
원심력과 중력 사이
직職과 업業
2부 게으른 눈, 부지런한 손발
앞서기 위해 물러선다
위대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철학이 의자가 되는 방법
진리냐 전략이냐
정치란 너의 혀를 굽히지 않는 것
친구를 기다리지 마라
투명한 벽
공부의 배신
덕德에 대하여
문자를 지배하는 사람 1
문자를 지배하는 사람 2
새로워지는 일
봅슬레이와 마늘 밭의 진리
신뢰에 대하여
외우기의 힘
이익(利)을 논하라
모르는 곳으로
3부 아득한 하늘이여, 이것은 누구의 탓이더냐
이탈자들
무엇부터 할 것인가
거칠고 과감하게
너 자신을 알라
돈과 자본, 부자와 자본가
혁명을 꿈꿀 때
시가 잘 써지지 않는 까닭
지식보다 지루함을
흘러야 썩지 않는다
지성의 폐허
지식인의 몰락
과거와 벌이는 전면적 투쟁
잡스러워진 손에 담아야 할 것
움직임, 그곳에서, 홀로
4부 무거운 주제에 관한 가벼운 이야기
불손함이 빚어내는 생각의 기울기
낯설고 깜짝 놀라는 그 순간 시작되는 것들
타이어가 아니라 바람일 뿐
놀이와 여가, 그 비밀스럽고 찰나적인 접촉
저자 : 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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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경계에 흐르다>,<나는 누구인가>,<인문학 아고라 시리즈 세트 - 전3권> … 총 22종 (모두보기)
소개 :
1959년 음력 정월에 전남 신안의 하의도에서 태어나고, 유년에 함평으로 옮겨 와 그곳에서 줄곧 자랐다. 함평의 손불동국민학교와 향교국민학교, 광주의 월산국민학교, 사레지오 중학교, 대동고등학교를 나왔다.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학부와 석사 과정을 마치고 중국 흑룡강대학교를 거쳐 북경대학교에서 '성현영의 ‘장자소’ 연구(成玄英的‘莊子疏’ 硏究)'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창 시절에 가르침을 받았던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해 한다.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건명원(建明苑) 원장과 섬진강인문학교 교장을 맡고 있다.
쓴 책으로 <인간이 그리는 무늬>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탁월한 사유의 시선>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이 있고, <장자철학> <노장신론> <중국사상 명강의> <노자의소>(공역) 등의 책을 해설하고 우리말로 옮겼다.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은 <聞老子之聲, 聽道德經解>(齊魯書社, 2013)로 중국에서 번역 출판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조용히 앉아 ‘나는 금방 죽는다’고 서너 번 중얼거린다. 그러면 적어도 그날 하루도 덜 쩨쩨해질 수 있다. 나 자신을 번잡하고 부산스러운 곳에 두는 일을 그나마 조금 줄일 수 있게 된다. 그래도 사는 것이 이 모양 이 꼴인 것을 보면 나는 아직 덜 죽은 것이 분명하다. 더 철저하게 죽어 버려야겠다.” ― <금방 죽는다>에서
경계, 그 비밀스러운 접촉에 대한 이야기들
백발의 짧은 머리를 한 철학자 최진석은 대개 청바지에 반팔 티셔츠를 걸치고 강연에 나선다. 노자와 장자를 ‘현대의 철학자’로 우리 시대에 소환하며, 이념과 신념에 포박된 무거운 ‘사명들’에 직격탄을 날린다. 일상의 좌표를 명사에서 동사로 전환할 것을 귀띔한다. 곧 내가 ‘바라는 일’ 대신에 ‘바람직한 일’을, 내가 ‘하고 싶은 일’ 대신에 ‘해야 할 일’을 하는 데 전념해온 우리의 맨 얼굴을 응시하게 만든다.
<경계에 흐르다>는 ‘경계의 철학자’ 최진석의 첫 산문집이다. 그가 경계의 흐름 속으로 비집고 스며들었던 자기 삶과 사유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엮었다. 거칠고 시큰둥했던 유년과 청소년 시절 그가 체득한 두려움과 갈망에 대한 이야기, 철학 공부의 시작과 ‘이상한 눈빛’에 대한 이야기, 칸트에서 장자로 시선을 옮기게 한 무료함에 대한 이야기, 장자와 적대관계로 지낸 이야기 등 그가 불안하고 비밀스러운 경계에서 빚어낸 무늬를 보여준다.
“시 아닌 곳으로 자폐하여 시를 멀리하고 스스로를 맷돌 삼아 거기에다 자신을 갈고 또 갈다 보면 몇 방울의 피가 엉겨 붙는다. 그 피들을 긁어모아 놓으니, 거기에 시라는 이름이 다가와 걸릴 뿐이다. 설령 시가 아니어도 된다고 포기한 채, 자신을 학대하다 보면 오히려 빛나는 시가 태어난다. 시는 쓰는 것이 아니라 토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 <시가 잘 써지지 않는 까닭>에서
“빗방울은 그 이름을 받는 순간 낙하의 운명을 실현한다. 빗방울이 낙하하며 겪는 속도는 그가 세상을 읽는 속도와 맞먹는다. 낙하는 빗방울에게 하나의 ‘읽기’다. 빗방울은 운명처럼 대지의 어느 한쪽을 지정받아 송곳처럼 꽂히며 자신의 시선을 대지의 다양한 모습들에 구겨 넣는다.” ― <읽기와 쓰기, 그 부단한 들락거림>에서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최진석 첫 산문집
최진석은 10대 초반부터 답답하고 갑갑했다. 정해진 것들은 모조리 그에게 울타리였다. 편안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자신을 막아서는 울타리 말이다. 뭔가를 넘고 싶었다. 그는 ‘단편소설 정도의 길이도 감당이 되지 않는 지구력’ 탓에 자주 시를 읽었다. 짧은 문장들로 조직된 시가 긴말 하지 않고 자신을 이리저리 넘겨주는 탄성에 몸을 실었다. 어떤 권위에도 시큰둥했던 그는 ‘모범생의 얼굴을 가졌지만 내면은 거칠고 삐딱’하게 성장했다.
그는 철학자의 길을 걸으며, 이미 있는 이론에 철두철미해지기보다는 세계에 직접 한번 닿아 보려 했다. 이론을 가지고 세계를 보려 하지 않고, 세계에 직접 접촉하여 문제를 만나 보려 했다. 문제가 보이면 그때 필요한 이론을 얻어다 써 보려고 했을 뿐이다.
“나는 문제아로 남고 싶었지, 정해진 이론에 의하여 모범적으로 정련되는 것을 싫어했다. 구멍이 좀 듬성듬성 나고 허점이 가려지지 않더라도, 그냥 그렇게 걷고 싶었을 뿐이다.” ― <불손함이 빚어내는 생각의 기울기>에서
낯설고 깜짝 놀라는 그 순간 시작되는 것들
지난 몇 해 동안 최진석은 인문학 특히 철학을 우리 곁에 강력히 밀착시켰다. 그는 인문(人文)을 ‘인간이 그리는 무늬’라고 명명하며, 인문학은 고매한 이론이나 고급한 교양을 쌓기 위함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도구임을 단호히 말해 왔다.
이 책은 중진국 트랩에 갇힌 우리 사회에 건네는 창의적 시선의 높이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성의 폐허를 딛고 독립적 사유를 시도하는 지성의 두께를 갖추는 일은 처절한 고독에서부터 시작한다. 경계의 불안을 감당하는 눈빛, 비밀스러운 경계에서 오직 혼자서 덤비는 쓸쓸한 눈빛이 지배적이며 독립적인 삶으로 우리 시선을 옮겨 줄 것이다.
“사자의 눈을 보자. 늑대보다 더하다. 한없이 쓸쓸한 그 눈빛에 나는 무섬증보다 사자가 지키는 그 고독의 지경으로 빨려들 것만 같다. 이제 알겠다. 강한 놈일수록 눈빛은 더 쓸쓸하고 처연하구나. 호랑이도 그러하더라. 강한 자의 눈빛은 쓸쓸하다. 쓸쓸한 눈빛은 고독에서 나온다. 고독을 감당하는 놈이라야 강하다.” ― <오직 혼자서 덤비는 눈빛>에서
경계에 서야 자유롭고 강렬해진다는 인문적 통찰의 첫 걸음을 거칠고도 유려하게 제시해온 철학자 최진석, 그의 첫 산문집 <경계에 흐르다>를 펼쳐 보자.
“경계에 서 있으면 과거에 붙잡히고 않고 미래로 몸이 기운다. 미래가 열리지 않는 것을 한탄하지 마라. 내가 그저 한쪽을 지키는 성실한 투사임을 한탄해라. 경계에 서 있는 상태를 자유롭고 독립적이라고 한다. 자유롭고 독립적이어야만 창의적이고 혁명적이다. 거기서 모든 위대함이 자란다. 하지만, 경계는 안타깝게도 비밀스럽다.” ― <경계, 비밀스러운 탄성>에서
“두 면을 동시에 장악하거나, 두 면 사이의 경계에 처하지 않으면 전면적 인식이나 진보적 삶은 구현되지 못한다. 한쪽을 택하면 과거에 박히고, 경계에 서면 미래로 열린다. 한쪽을 택하면 얼굴에 짜증기가 새겨지고, 경계에 서면 밝고 환해진다.” ― <앞서기 위해 물러선 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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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하는 분이 한국의 현 상황에 대해 울분을 토하고 전략의 필요성, 하부구조, 경제, 국방, 조세의 중요성 또한 역설한다. 신선하다.
madwife ㅣ 2017-11-23 l 공감(3) ㅣ 댓글(0)
자기를 죽여야 자기 밖으로 나온다는 노자 사상을 알기 쉽게 해석이 되어 있어서 좋았습니다.
나의 직업이 자아를 실현하고 나를 완성시키는 업이된다는 글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밑줄치고 간지를 많이 붙여놓은 책입니다. 시간 날 때 마다 또 볼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풀꽃사랑 ㅣ 2017-10-12 l 공감(0) ㅣ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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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 1편
037. 경계에 흐르다 좀 ㅣ 2018-04-07 ㅣ 공감(1) ㅣ 댓글 (0)
일전에 철학에 관련된 오픈채팅에 들어갔던 적이 있었다. 그 안에서 ‘철학이란 무엇일까’ 란 질문에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풍요로운 학문이 아닐까 한다고 대답한 적이 있었다. 철학이란 무엇일까. 지금 우리가 살아가면서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것들에 대해 의심하고 물음을 던져서 그것에 대한 자신만의 개념을 도출해내는. 그렇기 때문에 내 주변의 모든 것을 나만의 생각으로 정의를 내림으로써 내게 새로운 의미로 작용하게 만들어주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학문이다. 일상을 의심하며 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깨달을 수 있고 그것으로부터 다른 개념들과의 연결고리를 발견할 수도 있다. 그리고 노자와 장자의 철학에 대해 연구한 최진석 교수 또한 그런 시선으로 바라본 세계를 보여준다. 그의 산문집은 내가 느끼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새로운 시선을 부여해주며 생각과 경험의 폭을 더욱 확장시켜주었다. 이런 것이 그가 말한 탁월한 사유의 시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두 가지의 경계. 얼마 전에 에리히 프롬의 고전 명저 <소유냐 존재냐>를 열독했다. 두 가지의 가치에 관한 책을 읽고 ‘그것들이 서로 온전히 양립할 수 있는가’ 란 질문을 도출하며 책읽기를 중간에 멈추었다. 각각의 가치에 저마다 지향하는 바가 분명히 있겠지만 프롬은 존재의 의의를 더욱 부각시켰다. 그러한 가치들의 개념을 이 책의 이념에 대입해도 될지는 모르겠으나 최진석 교수는 두 가지 대립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극단적 근본주의로 치달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어버리면 이념화가 되어 그 안에 발전이 없는 상태로 고착될 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펼쳤다. 두 가치의 경계에 서서 내게 이로운 것을 취하는 선택적 전략이 더욱 나를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어떠한 일이건 자신의 확고한 주장을 갖추고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 라며 갈팡질팡한 모습을 가지고 있던 내게 상당히 신선한 이야기로 들려왔다. 한 가지의 가치에 다가서서 그것만을 수용하고 신념화한다면 내 생각의 흐름은 줄곧 같은 방향으로만 흐를 것이다.
인간은 살면서 끊임없이 고민을 하게 되며 여러 가치의 경계에서 갈등을 벌이게 된다. 선택을 하던 하지 않던 경계에 맞닥뜨린 이상 사람은 한 단계 더 진보해 있다. 당연히 고민 없는 삶은 진정 가치 있는 삶이 아니다. 우왕좌왕하며 성장의 고통에 고뇌하고 있을 세대들에게 시대는 ‘고민보다 GO’라는 키워드로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저질러 보자고 말하기도 한다. 이 기치도 사람이 성장해나가는 것에 있어 무척이나 필요한 요소지만 저지르지 않고 경계에 머물러 그 상태를 받아들이는 것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성장해나가고 있음을 깨우칠 수 있다. 그렇기에 당면할 고민들을 간직한 채 그것들의 경계에 서서 진정한 삶의 태도를 또 한번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신선했다.
최진석 교수의 시선은 무척 새롭고 탁월하다. 물론 가끔은 궤변에 가깝지 않은가 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의 내공 깊은 통찰력으로부터 받은 놀라운 깨우침은 그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게 만든다. 아무렴. 최 교수님이 그렇듯 나 또한 이 책을 읽는 이유도 단순하다. 그저 그의 시선이 재미있으니까.
p 27
교육의 핵심이 무엇일까? 다양한 각도에서 여러가지 관점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자신에게만 있는 고유한 힘을 발견하고 그것을 키우며 살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위대하고 창의적인 모든 결과가 출현한다고 믿는다. 밖에 있는 별을 찾아 밤잠을 자지 않고 노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바로 별이라는 것을 알게 해줘야 한다. 자신이 바로 별이라는 것 혹은 자기에게만 있는 자기만의 고유한 별을 찾게 해주는 것이다.
p 35
인간이 그리는 무늬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하나의 의미로 고정될 수 있다면 이미 무늬도 아니다. 예술가의 고뇌는 여기서 시작된다. 즉 이 무늬에서 저 무늬로 이동하는 인간을 포착하다가 이곳에 있는 자신이 저곳을 봐 버린 것이다. 이곳과 저곳 사이에 걸쳐져 있는 자신은 분열을 겪는다. 저곳으로 건너가기 위해 이곳에 저항하는 모습이다. 익숙한 이곳에 대한 배반이며 변신이다. 혁명가와 예술가가 중첩되는 지점이다.
p 59
자신의 잘못을 온전히 자기의 것으로 삼는 데에부터 진실은 힘을 얻는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을 정당화하는 한, 진실은 흔들린다. 남보다 좀 더 나은 것이 핵심은 아니다. 내가 나에게 자랑스러운가가 진짜 핵심이다.
p 106
모든 창의적인 일이나 사회적인 공헌 등은 우선 자신이 확장되어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공적인 역할로 자리 잡은 경우들인데, 그런 일들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하는 데서 생긴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기 때문에 자신에게는 하나의 수고가 된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수고가 있어야만 세상은 더 나아지고 자신은 더 성숙해진다. 자신이 전체 세상으로 확장되는 일이자, 자신을 성숙시키는 일이라는 점에서 개별자로서의 자신과 전체로서의 세상이 서로 섞이고 일치하며 교류한다.
p 116
하지만 두 면을 동시에 장악하거나 두 면 사이의 경계에 처하지 않으면 전면적 인식이나 진보적 삶은 구현되지 못한다. 이것을 부정하다가 저것에만 빠지는 것은 부정의 고착화다. 지속 부정을 통해 부정을 살아 있게 해야 한다. 그것이 성숙한 이탈이다.
p 161
그런데 한국에서는 인이라 하면 으레 어질다는 의미로만 새긴다. 논어를 읽을 때 혹은 중국 고전을 읽을 때, 인을 어질다는 의미로만 새기면서 스스로의 사유의 폭과 높이를 제한해 버리고 있다.
p 183
쉽게 말하면, 이익을 이익으로만 추구하면 안 되고, 이익이 도덕적 명분 위에 있어야 진짜 큰 이익을 취하게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기업도 어느 단계에서는 윤리적이어야 더 큰 발전을 이룬다는 연구 결과와도 맥을 같이한다.
p 211
바로 ‘자본‘이라는 말이다. ‘돈‘이 ‘자본‘으로 성숙되는 사회는 발전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바로 정체되거나 후퇴한다. 자기가 가진 ‘돈‘을 ‘자본‘으로 승화시키는 활동을 하는 사람을 우리는 비로소 ‘자본가‘라고 말할 수 있다.
p 224
‘본질‘과 ‘기능‘ 사이에서 우선 기능만 다듬고 서두르다가 자초한 일들이다. 고등학생들에게는 우선 대학만 합격하면 된다고 가르치지 않았는가. 젊은이들에게 예의를 가르치지도 않았다. 삶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서도 가르치지 않았다. ...... 사람이라면 기능을 제어하는 더 근본적인 능력, 즉 덕을 갖고 있어야 한다. 덕은 지식보다도 심부름이나 노동이나 여행이나 방황이나 지루함이나 실패의 경험이나 봉사나 자발적 독서 등에서 길러진다.
p 263
하지만 한국에서는 모두 다 천편일률적으로 이해와 분석에 관한 것으로만 채워져 있다는 것이 문제다. 철학이 이처럼 독립적이지 못하다면, 우리의 모든 분야가 독립적이지 못하다는 얘기다. 종속적 삶이 있을 분이다. 종속적 삶이 종속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자기 최면을 스스로 강화한다. 전체적으로 창의의 기운은 없고, 훈고의 답습만 있다. 철학은 이렇게 국가와 민족의 삶을 결정한다.
p 283
철학은 생각의 결과를 숙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철학하는 것이다. 즉, 스스로 철학적인 높이에서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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