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동정 - 한국 근대소설과 감정의 발견
손유경 (지은이)역사비평사2008-09-22
320쪽
---
책소개
1920년대를 중심으로 일제 강점기의 한국 근대소설에서 나타난 고통과 동정의 감정을 세밀히 분석한 문학비평서. ‘동정’이라는 감정이 한국 근대소설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 다룬다. 191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초반의 지식인 담론과 소설의 영역에 나타난 다양한 이념적·미학적 특질들이 동정을 중심으로 전개된 양상을 고찰했다.
식민지 조선의 문학에서 동정은 공감이나 연민과는 다른, 확실한 자기만의 영역을 확보한 채 학술적 글쓰기와 소설 영역에서 영향력을 발휘했다. 특히 ‘동정’이라는 용어를 문학적으로 처음 사용한 이광수를 비롯해 나도향, 김동인, 박영희, 최서해, 김기진, 염상섭, 이효석, 유진오의 작품을 주요하게 분석한다.
‘동정’이라는 윤리와 미학이 식민지 조선 사회에서 탄생하게 된 배경과 근대 자본주의 사회가 낳은 1920년대의 ‘고통들’이 문학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살펴본다. 서양의 현대 철학과 이론의 방법론을 빌려오되, 철저하게 문학 사료에서 그 근거를 찾아 자신만의 미학 논리로 완성해 냈다.
또한 저자는 기존의 유미주의/사회주의, 감성/이성, 미학/윤리 등과 같은 이분법적 구분에서 벗어나 둘 사이의 복잡한 얽힘과 상호 긴장관계를 밝혀냄으로써 한국 근대문학사를 이해하는데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
목차
1장 동정이라는 감정
동정의 의미 / 감정에도 역사가 있는가 / 감정과 ‘망탈리테’ / 책의 구성
2장 근대문학과 감정
동정 담론의 전사(前史) : ⑴ 근대 초기의 정 담론을 이끌어간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 ⑵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근대의 화두
동정의 의미망과 사상적 관련성 : ⑴ 계몽에서 동정으로 / ⑵ 상호부조의 정신, 동정의 새 이름 / ⑶ 미덕의 발휘냐, 제도의 개혁이냐 / ⑷ 인도주의 비판론과 뜨거운 동정론의 이중주
3장 낭만적 동정의 아이러니
절대적이고 배타적인 동정의 갈구 : ⑴ 윤광호의 비극 / ⑵ 동성애적 긴장 관계의 형성 / ⑶ 동정을 통한 구원
‘참사랑’이라는 이상(理想)과 동정의 관계
연극적 관계로 지탱되는 윤리 : ⑴ 근대 저널리즘의 과장된 동정 / ⑵ 동정의 교환과 정체성 위기
4장 고통과 동정
고통 체험의 두 얼굴 : ⑴ ‘피’를 나눈 형제애와 복수의 의미 / ⑵ 공유된 고통, 무화된 동정 / ⑶ 체험이 주는 긍지와 힘의 해방
동정과 자기희생의 아이러니 : ⑴ 무산계급 해방을 향한 열정의 음화(陰畵) / ⑵ 계급주의적인 고통의 전유(專有) / ⑶ 고통의 스펙터클과 타자화
5장 값싼 동정의 신화
낭만주의적 사회관과 위선 : ⑴ 소통의 불가능성 / ⑵ 동정의 메커니즘에 대한 해부
수혜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동정 : ⑴ 동정의 거부 / ⑵ 이필순과 홍경애가 다시 쓰는 <삼대 >
부록
주석
참고문헌
찾아보기
---
어떤 슬픔은 기억되고 기록되지만, 어떤 슬픔은 무시되고 망각되고 삭제된다. 어떤 이의 고뇌는 배부른 소리라고 치부되고, 어떤 계급의 분노와 슬픔은 아예 분노와 슬픔으로 인식조차 되지 않으며, 어떤 이들은 삶이 주는 시련을 경험하지 못했음을 부끄러워하며 상대적인 박탈감에 시달린다. 이 책에서 다루는 작품들은 쉽사리 잊혀도 무방하거나, 서사화될 만한 가치도 없다고 여겨졌을 법한 수많은 개인들의 슬픔에 대한 충실한 소설적 기록이다. 이 책은 소설 속 인물들의 목소리를 빌려 식민지 시기의 시대적 ‘고통들’을 망각의 늪에서 건져오고자 한다. (……) 이 책이 다루고 있는 191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초반까지의 한국 근대소설은 고통의 원인에 대한 역사철학적 분석이 가능해진 사회, 고통에 대한 기존의 인식이 사라지고 자신이 속한 세대나 특정 계급의 고통에 대한 탐구가 새롭게 시작된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그런 사회 속에서 동정이라는 감수성에는 남다른 윤리적 방점이 찍히고, 문학은 거기서 특유의 미학적 색채를 발견해내었다. ― 1장〈동정이라는 감정〉중에서 접기
강렬한 고통, 그중에서도 특히 굶주림이나 질병과 같은 극심한 신체의 고통은 철저히 개인적인 경험에 속하기 때문에 내적 번민과 달리 공유되거나 재현되기 어렵다. 아담 스미스는, 우리의 육체가 다른 사람의 육체를 본뜨는 것보다도 우리의 상상이 그/그녀의 상상을 본뜨는 것이 훨씬 용이하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실연을 당했다거나 야심이 좌절되었다든가 하는 경우가 최악의 신체적 고통보다 더 깊은 동정을 이끌어낸다고 말했다. 따라서 공유될 수 없는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나와 남의 경계를 허무는 동정과 위로가 아니라 나의 힘을 극대화하여 그것을 견디는 데서 찾는 것이다. 최서해의 작품에는 이처럼 극심한 굶주림과 같은 육체적 고통을 자신의 힘에 대한 무한한 긍정으로 이어가는 하층민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 4장〈고통과 동정〉중에서 접기
부르주아 인도주의 비판을 깃발처럼 내건 사회주의 사상은 1920년대 중반 이후의 조선 지식인 사이에서 급속히 번졌고, 그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 사회주의 사상이 무산계급을 향한 동정과 구원이라는 지식인의 인도적 감성을 가장 강렬하게 자극했기 때문이다. <삼대>의 인물 구도는 이 작품이 이러한 현실을 날카롭게 간파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 이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는 어차피 돈으로 환산될 수밖에 없는 유산가의 인도적 정신이 감당해야 할 시대 한계를 암시한다. 사회주의 지식인의 뿌리 깊은 인도주의적 경향을 이전 시기의 박애주의자와 다름없는 이유로 시험대에 올리고 있는 <삼대>의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 5장〈값싼 동정의 신화〉중에서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손유경 (지은이)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고통과 동정』(2008), 『프로문학의 감성 구조』(2012), 『슬픈 사회주의자』(2016) 등이, 옮긴 책으로 『지금 스튜어트 홀』(2006)이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현대문학 전공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최근작 : <문화적 텍스트로서의 한국과 일본의 현대 오페라>,<다시 돌아보는 러시아 혁명 100년 2>,<슬픈 사회주의자> … 총 11종 (모두보기)
---
손유경(지은이)의 말
이 책은 거의 맹목에 가깝게 식민지 시기의 자료를 탐하던 시기에 우연히 눈에 뛴 '동정'이라는 글자가,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이라는 책에 매료돼 있던 나의 내면을 파고든 그 시점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뭔가 보일 것 같았던 그때의 나는 한국판 <타인의 고통>을 쓰겠노라 객기에 가까운 호언을 일삼았는가 하면, 타인의 고통에 대한 민감한 감수성이 왜 하필 식민지 시기 한국 근대문학 장(場)에서 그토록 중요한 위상을 점하게 되었는지 밝혀보겠다고 장담하기도 했다.
그때의 호언장담 자체만을 문제 삼는다면 부끄러움밖에 남을 것이 없지만, 그 심각한 환상이랄까 포부, 열정 같은 것이 없었다면 식민지 시기 조선이 남겨놓은 고통과 동정의 서사를 추적해본다는 일은 가능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 서문'에서)
---
출판사 제공 책소개
한국 근대소설에서 발견한 감정, 고통과 동정
이 책은 1920년대를 중심으로 일제 강점기의 한국 근대소설에서 나타난 고통과 동정의 감정을 세밀히 분석한 문학비평서이다. 특히 ‘동정’이라는 도덕 감정과 한국 근대소설이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를 다루면서, 191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초반의 지식인 담론과 소설의 영역에 나타난 다양한 이념적·미학적 특질들이 동정이라는 지배적 심성을 중심으로 전개된 양상을 고찰했다. <고통과 동정>은 기존의 유미주의/사회주의, 감성/이성, 미학/윤리 등과 같은 이분법적 구분에서 벗어나 둘 사이의 복잡한 얽힘과 상호 긴장관계를 밝혀냄으로써 한국 근대문학사를 이해하는 데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
‘누구의’ ‘어떠한’ 고통을, ‘누가’ ‘왜’ 자원화하는가?
― 근대문학에서 발견한 ‘낭만적 동정’, ‘열정적 동정’ 그리고 ‘값싼 동정’의 신화
이 책의 주된 배경인 식민지 조선의 문학에서 ‘동정(同情)’이라는 단어는 공감이나 연민과는 다른, 확실하게 구별되는 자기만의 영역을 확보한 채 학술적 글쓰기와 소설 영역에서 독보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 저자는 그 중에서도 특히 ‘동정’이라는 용어를 문학적으로 처음 사용한 이광수를 비롯하여 나도향, 김동인, 박영희, 최서해, 김기진, 염상섭, 이효석, 유진오의 작품을 주요하게 분석하고 있다.
무산계급의 고통을 구원하려는 지식인들의 노력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몰두할 수 있는 ‘헌신’이었다. 그러나 1920년대 한국 근대문학에서 집중적으로 등장한 ‘고통과 동정의 서사’는 문학 특유의 형상화를 통해 새로운 연대 원리인 동정의 본질적 모순을 노출시켰다. 동정은 근대 사회가 각 개인에게 요구하는 윤리 의식이자 미학이었지만, 고통의 당사자가 아닌 관찰자를, 동정의 수혜자가 아닌 시혜자를 중심으로 구성된 동정 담론은 결과적으로 고통을 겪는 자와 그것을 자원화하는 자 사이의 불일치를 원동력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물론 동정 담론을 이끌어나간 지식인 계급은 ‘누구’의 고통이며, ‘누가’ 그들의 고통을 자원화하느냐는 질문에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바로 이 시기에 발표된 동정을 주제로 하는 많은 소설 작품들은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인류 구원과 박애의 동정 담론이 은폐하고 있는 이 같은 모순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한낱 이야기의 재료로 전락해버린 ‘타인의 고통’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이들 소설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고통은 어떤 경우에도 다른 무엇(사회연대, 윤리, 인도주의)을 위한 자원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일련의 소설들은 자존과 긍지를 생명처럼 중시하는 등장인물을 내세워 ‘참다운 인간의 윤리란 대체 무엇이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식민지 시기 조선 근대사회에 던지고 있다.
새로운 정치적 실천과 윤리의 토대가 된 동정이라는 감정
― 한국 근대문학 연구에서 소외되어온 프롤레타리아 문학과 동인지문학의 미학적 재발견
지금까지의 한국 근대문학 연구는 사조상의 변동이나 이념의 교체 문제에 많은 논의를 할애해왔다. 1920년대 문학을 예술지상주의 문학과 사회주의 문학으로 대별하는 일련의 관점은 여전히 한국 근대소설을 분류하는 주된 관점인 반면에, 1920년대의 예술지상주의의 작품에 드러난 중층적 양상은 학계에서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더욱이 사회주의 사상이 1920년대 문인들의 미의식이나 감수성의 형성 및 분화에 미친 실질적 영향력을 밝히려는 시도는 이제껏 없었다. 이 책은 소설 속 인물들의 목소리를 빌려 식민지 시기의 시대적 ‘고통들’을 망각의 늪에서 건져오고 있다. 문학 분야에서 감정을 연구한다는 것은 사상과 이념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사상과 감정, 이념과 감수성 간의 미묘한 상관관계를 적극적으로 문제 삼는 작업을 뜻한다. 그리고 이 작업이 단지 회상에 머물지 않고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갈 때, 식민지 시기 소설 작품은 서구에서 도래한 여러 사조들의 부박한 움직임에 넋 나간 구경꾼이 아니라, 자신의 시대를 말하고 그 시대를 산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살아 있는 주인공으로 재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가 낳은 1920년대의 ‘고통들’에 대한 문학적 형상화
― ‘동정’이라는 윤리와 미학이 식민지 조선 사회에서 탄생하게 된 배경
<고통과 동정>의 가장 큰 장점은 서양의 현대 철학과 이론의 방법론을 빌려오되, 철저하게 문학 사료에서 그 근거를 찾아 자신만의 미학 논리를 완성해냈다는 점이다. 이 책의 논의는 고통과 동정을 비역사적이고 본능적인 인류 보편의 감정이 아니라 1920년~1930년대 한국 근대소설이라는 한정된 시.공간 속에서 비로소 유의미해지는 특수한 감정 현상으로 간주하는 데서 출발한다. 문제는, 역사와 문화에 따라 달라지며 시공간적으로 차별화되는 지배적 감수성이란 것이 과연 존재하는지, 그리고 있다면 그것을 측정하고 논의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우리 문학사에서 개화 계몽기로 알려진 1910년대에는 위에서 아래로 전달되는 지식의 위계적 상상력이 지식인과 민중의 내면을 사로잡았다면, 이 책의 주된 배경인 1920년대의 개인과 사회는 옆에서 옆으로 퍼지는 감정의 수평적 교류를 시대의 과제로 맞이한다. 이 시기의 식민지 조선은 전근대적인 신분제 사회에서 근대적 계급 사회로 재편되는 역동적인 과정을 겪고 있었다. 계급 사회로의 진입이라는 역사적인 변동이야말로 동정의 테마가 학술적.문학적 글쓰기 영역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