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이 反日-反韓감정 이용… 관계회복에 걸림돌”
“정치인들이 反日-反韓감정 이용… 관계회복에 걸림돌”
배극인 특파원 입력 2015-05-26 03:00수정 2015-05-26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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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협력의 미래비전/韓日 국교정상화 50주년]
본보-아사히 공동심포지엄
“한일 관계가 나쁘다는 건 오해”라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얘기하는 오구라 가즈오 전 주한 일본대사(왼쪽 사진). 양국 정치학자들은 22일 일본 홋카이도대에서 열린 국제심포지엄에서 한일 관계의 새로운 50년을 위해 관용과 반성을 바탕으로 한 ‘햇볕정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오른쪽 사진 왼쪽부터 오니시 유타카 고베대 교수,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 박철희 서울대 교수, 이종원 와세다대 교수. 삿포로=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23일 일본 삿포로(札幌) 홋카이도(北海道)대 내 학술교류회관에서 열린 한일정치학회 국제심포지엄(동아일보 아사히신문 공동 주최)의 중심을 잡은 기조강연은 1980년대 일본 외무성 북동아시아 과장, 1990년대 주한 일본대사를 지내며 한일 외교의 최전선에서 활약했던 오구라 가즈오(小倉和夫) 일본국제교류기금 고문이 맡았다.
그는 “요즘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나쁘다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라고 운을 뗀 뒤 “한국에서 과거 총탄과 돌이 날아들던 반일 시위가 노래로 바뀌었다는 점만 봐도 한일 관계는 과거에 비하면 상당히 좋은 편”이라고 했다. 하지만 “일본 내 반한 혐한 감정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심각한 상황까지 와 있다는 게 문제”라고 했다.
이날 심포지엄에 참석한 학자들과 언론·문화인들은 양국 관계의 진단과 미래 해법에 대해 열띤 공방을 벌였다.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다양한 진단과 해법이 쏟아져 중층적이면서도 다원화된 한일 관계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줬다.
○ 한일 관계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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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라 고문이 기조강연에서 낙관과 비관을 함께 이야기했듯 참석자들 사이에서도 견해가 엇갈렸다. 일본 참석자들 사이엔 비관적인 여론이 더 많았다.
엔도 겐(遠藤乾) 홋카이도대 교수는 “유럽에서 역사 문제가 뒷무대로 사라진 것은 냉전이라는 외부 환경과 경제 부흥이라는 절박감 때문에 서로 간에 싸우고만 있을 때가 아니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냉전 이후 평화가 지속되면서 서로를 필요로 하는 외부 조건이 사라지면서 역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기무라 간(木村幹) 고베(神戶)대 교수는 한국이 일관된 입장을 보이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위안부와 징용자 문제에 대해 한국에서는 이전 정부들이 내린 판단을 뒤집는 사법적 판단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 그럴 때마다 과거사 이슈가 불거진다. 일본으로서는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게 된 상황이다.”
문화 현장에서 전하는 목소리는 훨씬 더 차가웠다. 지난 15년간 일본 내 케이팝 TV방송과 라디오의 전문 DJ로 활약해 일본 내 ‘한류 전도사’로 불리는 후루야 마사유키(古家正亨) 씨는 “한류 팬들의 마음은 요즘 매우 착잡하다”며 “한국을 좋아하면 일본을 배신하는 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좋아하는 한류 스타가 반일 발언을 하면 심리적 아노미 상태에 빠지는 아줌마가 많다”고 전했다.
한국 측 토론자로 참석한 장제국 동서대 총장도 “그 많던 일본 교환학생들이 확 줄었다. 왜 안 오느냐고 일본 대학에 물어보면 일본 부모들이 한국에 가면 맞을까 봐 걱정한다고 한다더라”라고 했다.
여기저기서 한숨이 나오는 등 토론장에 부정적 기운이 번질 때쯤 한국 학자들이 긍정론을 펼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교수(전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가 “한일 간의 2000년 교류 역사 전체를 돌아보면 사이가 나빴던 때보다 좋았던 시절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역사학자들보다 정치학자들이 더 비관적인 것 같다”고 하자 좌중에 잔잔한 웃음이 번지기도 했다.
정 교수는 “한국과 일본은 어떤 면에서 뿌리가 같은 ‘쌍둥이 국가’”라며 “이런 관계란 것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많은 노력과 정성을 들여 절차탁마(切磋琢磨)하면서 만들어낸 것으로 50년 전 한일 국교 정상화가 바로 그 노력의 가장 큰 결실”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한국과 일본은 역사인식과 과거사 처리를 둘러싸고 반목과 갈등을 되풀이해오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타협을 통해 서로 개선하고 보완하는 여정을 걸어왔음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철희 서울대 교수도 “갈수록 한일 관계가 어려워진다고들 하지만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50년간 부침을 거듭해오면서 협력하지 않으면 손해 본다는 것을 서로 잘 알고 있다”며 “비록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언젠간 복원될 것”이라며 긍정론을 펼쳤다.
‘한류 전도사’ 후루야 마사유키 “한국인 장인과 역사논쟁 벌여도 마무리는 건배… 정치도 그랬으면”
○ 한일 관계 재설정
이날 참석자들은 한일 관계야말로 ‘햇볕정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 중 가장 뜨거운 박수를 받았던 사람은 재일교포인 신이화 청구문화홀 이사였다. 신 이사는 “돌아가신 아버지는 과거를 검증하는 것만으로는 과거를 극복하지 못한다고 하셨다. 과거보다는 미래에 밝은 빛을 비출 때에야 일본인들도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과거를 돌아보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고 했다. 신 이사는 1970년대 초반 일본 고서(古書) 시장에서 조선통신사를 그린 두루마리 그림 하나를 발견한 것을 계기로 역사 뒤편으로 사라졌던 조선통신사를 영화로 다시 끌어낸 재일교포 고 신기수 선생의 딸이다.
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 도쿄(東京)대 교수는 “이른바 일본 내 양심세력이 요즘 많이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도 ‘일본 우익들까지 설득 가능한 논리’를 만들어야 한다”며 “일본이 하는 걸 무조건 비판만 하면 오히려 역효과만 난다. 상대에 대해 열린 시각을 갖고 합리적이고 진보적인 민족주의를 형성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기정 연세대 교수는 “그 시절엔 어쩔 수 없었다는 일본의 상황 논리는 면죄부가 안 된다”면서도 “지식인들의 화해를 위한 성찰과 노력이 중요하다”고 화답했다.
박철희 서울대 교수는 양국의 관료와 정치인들에게 직격탄을 날리는 발언으로 주목을 받았다. “관료들이 권력을 두려워하면서 해야 할 말을 안 하고 있다. 양국 정치인들도 ‘한일 관계가 이 정도면 튼튼하다’고 오산하고 반일 반한 감정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관계 회복의 복원력을 상실하게 된다.”
무거워진 토론장의 분위기를 바꾼 것은 ‘한류 전도사’로 한국 여성과 결혼한 후루야 씨였다. 그는 “한국에 계신 장인과 늘 역사 논쟁을 벌이면 서로 시각이 너무 달라 후끈 달아올랐다가도 마지막엔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자! 건배’ 하면서 끝낸다”며 “오늘 이 자리도 그런 건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중석에서 박수와 폭소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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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 악화 원인은
한일관계 악화 원인에 대해 우선 일본 내부의 문제를 거론한 일본인 토론자들의 솔직한 발언들이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오구라 고문은 “갑작스럽게 불어닥친 한류 붐에 대한 반발 심리도 있었지만 경제가 장기 침체하고 국제 위상이 떨어지는 초유의 상황을 일본인들이 겪으며 자신감을 상실하고 안으로만 향하게 된 게 문제”라고 했다.
그는 특히 “군국주의가 자국민들에게 안긴 상처에 대해 일본 정부가 사죄한 사례는 무라야마 담화가 유일했다”며 “이처럼 자신들의 국민에게도 정직하지 못하니 한국이나 중국에도 사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타노 스미오(波多野澄雄) 쓰쿠바대 교수는 “일본 정부는 패전 후 전쟁과 식민지 지배, 전쟁 책임의 소재에 대한 공식 견해 확립을 회피해 왔다. 이 때문에 국제적 신뢰를 잃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동북아를 둘러싼 정치 지형의 변화가 한일 양국 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초래했다는 진단도 나왔다. 배종윤 연세대 교수는 “무엇보다 북한과 중국을 보는 한국과 일본의 시각이 다르다”며 “일본은 북한과 중국을 명시적 잠재적 적으로 보고 있지만 한국에 북한은 안보 위협이자 같은 민족으로서 지원 대상이다. 중국도 한국 입장에서는 경제는 물론이고 통일을 위해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될 대상이다. 하지만 일본 입장에서는 두 나라 모두에 대해 예상 가능한 모든 안보 위협을 나열하고 대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인식차가 있다”고 했다.
심포지엄 참석자
▽한국 측=최진우 한국정치학회장(한양대 교수), 김기정 연세대 교수, 정재정 서울시립대 교수, 장인성 서울대 교수, 배종윤 연세대 교수, 박철희 서울대 교수,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 김용호 연세대 교수, 심규선 동아일보 대기자, 장제국 동서대 총장, 신이화 청구문화홀 이사, 한혜진 주삿포로 총영사
▽일본 측=오구라 가즈오 일본국제교류기금 고문, 쓰지나카 유타카 일본정치학회장(쓰쿠바대 교수), 하타노 스미오 쓰쿠바대 명예교수, 기무라 간 고베대 교수, 엔도 겐 홋카이도대 교수, 오니시 유타카 고베대 교수, 다케나카 지하루 릿쿄대 교수, 이종원 와세다대 교수, 하코다 데쓰야 아사히신문 논설위원, 구로다 후쿠미 여배우, 후루야 마사유키 한류전문 D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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