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25

마츠바 토미의 이유 있는 살림살이 - 중앙일보

마츠바 토미의 이유 있는 살림살이 - 중앙일보

마츠바 토미의 이유 있는 살림살이
[레몬트리] 입력 2011.12.01 17:51

인천에서 1시간 반이면 도착하는 일본의 시마네현. 레몬트리는 이달부터 3회에 걸쳐 그곳의 숨겨진 장인과 문화를 찾아 떠날 예정입니다. 그 첫 번째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군겐도의 디자이너 마츠바 토미입니다. 일상에 숨겨진 소소한 디자인에 비범한 가치를 불어넣는 그녀, 마츠바 토미. 지금, 만나러 갑니다.






마츠바 토미는…

30년 전, 남편의 고향인 시마네현 오오다시 오오모리 마을에 귀향해, 패치워크 작품을 팔기 시작했다. 1989년 잡화 브랜드 ‘브라하우스’를 세웠고, 150년 된 고민가를 개조해서 매장을 열었다. 1998년 브라하우스를 ‘군겐도’로 변경했으며 2008년부터는 숙박시설로 아베가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1 아베가는 1789년에 지어진 집으로, 1975년 시마네현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2 아베가와 군겐도가 있는 오오모리 마을의 풍경.





222년 된 무사 가옥을 복원한, 아베家

시마네현 오오다시의 이와미긴잔. 200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은 1923년 휴광에 이르기까지 4백 년 동안 실제로 은을 채굴 하던 은광 지대였다. 은을 수송하던 가도와 항구 등 옛 은광 지대의 정취가 그대로 남아 있는 오오모리마치에 위치한 222년 된 무사 가옥 아베가. 이곳이 바로 일본의 마사 스튜어트, 마츠바 토미가 살고 있는 집이다. 아 베가는 30년 가까이 사람이 살지 않아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했던 옛 무사의 집을 무려 10년에 걸쳐 복원한 것으로, 현재는 관광객이 머무를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하고 있다.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것에 기준을 둔다면 저희는 세상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사람들이죠.” 고민가(古民家) 복원 프로젝트의 중심에 서 있는 마츠바 토미의 남편, 마츠바 다이키치가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베가는 사실상 주요 골격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부분을 허물고 새로 쌓아 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손이 많이 가고 까다로운 복구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건물을 해체하고, 그 과정에서 나온 재료들은 재활용되어 다시 집의 일부가 되었다.



주변에 오래된 집을 허문다는 소식이 들리면 열 일을 제쳐두고 달려가 재활용이 가능한 흙이나 기둥, 창문 등을 받아와 아베가 복원에 사용했다. 복원에 무려 10년의 세월이 걸린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마츠바 토미는 “단지 오래된 집의 하드웨어를 되살리는 게 목적이 아니라, 그 안의 소프트웨어 즉 옛 의식주를 함께 재생시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베가의 살림살이는 그런 그녀의 바람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1 아베가에서 유일하게 양식 스타일의 침실이 있는 2층 객실로 올라가는 입구. 계단을 오를 때마다 삐걱삐걱하는 나무 소리가 정겹다. 정원으로 난 창문에 끼워진 유리는 요즘 제작되는 유리처럼 평평하지가 않다. 미세하게 굴곡진 유리는 이제는 구할 수 없는 옛날 유리창이라 더욱 애착이 간다.

2 기둥에 액자처럼 걸어 만든 간이 책꽂이.

3 마치 천을 짜깁기해 붙여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사 프린트된 종이다. 이런 작은 것에서부터 마츠바 토미의 살림 감각을 느낄 수 있다.

4 마츠바 토미가 좋아하는 고서들이 꽂힌 서재 공간. 중간 중간에 놓인 액자에는 이와미긴잔에서 나고 자란 세 딸의 성장 과정이 담겨 있다.






아베가에 머물렀던 한 학생의 할머니가 ‘손녀를 잘 돌봐주어 감사합니다’라는 의미로 자신의 오래되어 낡은 스웨터를 풀어 덧버선으로 짜서 보내주었다. 마츠바 토미는 일본 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따뜻한 사연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기사를 본 팬들이 똑같이 덧버선을 만들어 보내주어, 어느덧 바구니 3개를 꽉 채우는 분량이 되었다. 아베가를 방문하는 이들이 자유롭게 신을 수

있도록 입구에 비치해두고 있다.








지역 양조장에서 담근 사케와 수십 가지 종류의 잔들. 그릇장 옆에는 새하얀 정수기가 옛스러운 부엌의 분위기와 어울리도록 케이스를 만들어두었다.





마츠바 토미의 부엌

지역의 신선한 계절 식재료를 이용해 만든 저녁 식사를 함께하는 것은 아베가에 머무는 큰 재미 중의 하나다. 열 명은 넉넉히 앉을 수 있을 것 같은 널찍한 테이블. 아베가에 머무는 손님들은 모두 이곳에 모여 함께 저녁을 먹는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함께 밥을 먹고 나면, 금방 빨리 친해진다”고 말하는 마츠바 토미에게 한국에도 그런 문화가 있다 일러주었더니, ‘그게 바로 밥의 힘’이라고 반가워하며 맞장구를 친다. 살림살이의 대부분은 버려진 물건들을 재활용해 만든 것들이다.



두툼하게 투박한 식탁은 폐교한 인근 초등학교의 계단 난간 부분을 업사이클링해 만든 것이다. 가만 보면 테이블 측면에는 층계를 끼우던 홈이 그대로 살아있다. 그녀는 테이블을 가리켜, “함께 식사를 하며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는 테이블이 마치 살아 있는 존재처럼 친근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백화점에 진열된 반짝거리는 비싼 테이블을 봐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그녀의 말은 너무나 ‘마츠바 토미다운’ 대답이었다.








마츠바 토미의 손때 묻은 주방 살림살이들. 쓰임도 있지만 그 자체로 부엌의 오브제 역할을 하는 살림살이들이다.






1 실제로 장작불을 때서 매 끼니 밥을 짓는다. 그 옛날 우리네 어머니들이 불길을 살리기 위해 아궁이를 향해 부채질을 하듯, 대나무 관을 후후 불어 화력을 조절하는 마츠바 토미의 모습에서 향수를 느낀다.

2 앞에 살짝 드리운 천은 기저귀 천에 고구마로 만든 스탬프를 찍어 만든 행주. 일회용 기저귀로 인해 천기저귀를 만드는 공장이 망해간다는 소식을 듣고, 그것들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다 흡수력이 좋은 기저귀 천을 행주로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는 향후 디지털 프린팅하여 군겐도 매장에서 판매할 예정이다.

3 부엌을 가득 메우는 수많은 그릇 중에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꺼내 든 초미니 사이즈의 잔. 그녀는 그릇의 쓸모를 떠나,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사랑스러운 면을 가졌다고 했다. “여기에 별사탕 세 개를 넣어 손님들에게 차와 함께 낸 적이 있는데 너무들 좋아하셨어요. 그건 별사탕 때문이 아니라, 이 그릇이 가진 사랑스러움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사소하지만 결코 하찮치 않은 물건들의 가치를 발견하는 즐거움이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이라 말했다.





옛것의 가치 발견, 군겐도

아무것도 없던 폐광 지역이 사람들로 활기를 띠게 된 것은 순전히 마츠바 토미가 시작한 ‘군겐도’ 덕분이다. 군겐도는 일본의 재료·기술로 만든 의류, 생활 잡화 등을 판매하는 리빙 브랜드로 시마네현의 본점을 비롯해 전국에 22개의 매장이 있다. 군겐도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한 여성의 살림지혜와 디자인 안목이 만들어낸 브랜드가 지역사회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30년 전 남편을 따라 가난한 시골 마을에 들어온 마츠바 토미.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자투리 천을 바느질로 이어 붙인 패치워크나 아플리케 등을 만들어 파는 일이 고작이었다. 우연히 친구의 권유로 도쿄 기프트쇼에 출전하게 되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녀의 작품이 세상의 관심을 얻게 되었다. 대량 생산품에 대한 회의와 더불어 손으로 만든 따뜻한 것들에 대한 향수와 동경이 싹트던 시기였다.



몰려드는 주문으로 늘어난 일감은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졌다. 훌륭한 손재주를 갖고 있지만 아이 때문에 밖에서 일을 할 수 없었던 주부들과 노인들은 집에서 할 수 있는 일거리를 얻고 돈을 벌기 시작했다. “마을 주민들이 정말 열심히 해주셨어요. 너무나 순박하고 성실한 분들이라 내일처럼 성심껏 일해준 데 대해 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전통 기술을 가진 장인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마츠바 토미는 옛 전통 방식을 응용해서 만드는 아이템 개발에 열심이다. 그 지역만의 재미난 소재가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생활 잡화 등에 적용시킬지를 늘 고민한다.





군겐도 가는 법

인천공항에서 요나고 공항까지 1시간 10분 소요. JR 요나고역에서 특급열차를 타고 다시 1시간 10분을 가면 오다시역에 도착한다. 여기서 버스를 타고 30분이면 군겐도가 있는 이와미긴잔에 도착한다.








1 펠트로 만든 냄비 받침대. 2 파라핀이 아닌 식물성 재료로 만드는 일본 전통 초. 3 손으로 직접 엮어 만든 대나무 피크닉 가방. 4 군겐도의 ‘슬로 라이프’를 떠올리게 하는 절구.





주부의 살림력이 일궈낸 마을 부흥 운동

그녀의 디자인이 인기를 끌자, 외국의 저렴한 인력으로 그녀의 제품을 모방한 유사 제품들이 시중에 나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본격적인 브랜드 사업을 하기 위해 1백50년 된 고민가를 개조해 1호 점포를 열었다.



“아무것도 없는 시골 마을에 가게를 낸들 누가 찾아오겠느냐고 마을 사람들이 모두 만류했어요. 좀 더 사람이 많은 도시에 가게를 내는 게 어떻겠느냐고요. 하지만 저는 확신했어요. 옛것에 깃든 가치, 손맛의 가치을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시대가 반드시 올 거라고요.” 그녀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그녀의 제품을 사기 위한 도시 사람들의 발길이 시작되었고, 무엇보다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났던 젊은이들이 그녀와 일하기 위해 역귀향하는 놀라운 변화들이 일어났다.



하지만 마츠바 토미는 말한다. “저는 결코 마을을 부흥시키려고 이 일을 시작한 것이 아니에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비즈니스로 이어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마을 부흥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진정한 마을 부흥 운동은 시끌벅적한 행사가 아니라, 작은 일이라도 지속적으로 해나가는 끈기가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은 모두가 꿈을 가지고 일을 해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죠.”




더불어, 그녀는 한국의 주부들에게 조언했다. “저는 ‘마음에 품고 있으면 이루어진다’라는 말을 문에 붙여놓고 늘 마음에 새겨요. 포기하지 않고 꿈꾸면 언제든지 이룰 수 있습니다. 꿈을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노력한다면 주위의 좋은 인연들이 좋은 기회를 물어줄 것입니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세요. 그러면 당신도 가능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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