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를 떠올리며 재심 최후진술을 다듬고 있습니다 - 오마이뉴스
제자를 떠올리며 재심 최후진술을 다듬고 있습니다국가보안법에 찢긴 스승과 제자... 32년 전 '빨갱이'로 몰려 아직도 재판 중
21.05.15 11:24l최종 업데이트 21.05.15 11:24l
강성호(kangsh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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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20년 12월 8일 청주지방법원 앞에서 1인시위 하는 모습
ⓒ 강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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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사랑과 존경, 그리고 감사와 은혜를 기억하는 날이 많은 달입니다. 올해도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 전국에 있는 학교에서는 스승의 날 행사를 하며 스승 존경, 제자 사랑 정신을 기렸을 것입니다.
저는 해마다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혼자 가슴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1999년 9월, 해직 10년 4개월 만에 다시 교단으로 돌아와 학생과 함께해온 저는 '사제지간'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가슴이 아렸습니다.
32년 전 초임 교사 시절, 사랑으로 가르치고 존경으로 배워야 할 스승과 제자가 국가보안법 법정에서 피고와 증인으로 맞섰던 아픈 상처가 되살아나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책장 깊숙히 묵어둔 서류철을 꺼내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32년 전 경찰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입니다. 1989년 5월 25일 새벽 1시경 제천경찰서 대공과 수사실에서 저와 대질신문하던 제자와의 답변이 적혀 있습니다.
스승과 제자를 피고와 증인으로 맞서게 한 악법
하루 전 오전 수업하던 교실에서 영문도 모른 채 경찰서로 끌려온 저에게 경찰은 간첩 혐의를 인정하라며 다그치고 있었습니다. 경찰서 대공과 수사실에 와서야 제가 교실에서 수업 시간에 '북침설 교육'을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가 그런 얘기를 하냐며 그런 교육을 한 적이 없다는 저에게 경찰은 학생들과 대질신문을 했습니다. 제가 수사관에게 6.25가 북침이라고 말한 사실이 없다고 하자 수사관이 학생에게 묻습니다. 다음은 당시 진술조서를 그대로 옮긴 내용입니다.
"지금 강 선생이 진술하는 것과 같이 강 선생은 6.25에 대하여 말한 사실이 없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이때 학생들은 강 선생에게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저희가 들은 대로 이야기하는데 선생님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만 하십니까"하고 이구동성으로 반문하다.
"지금 학생들이 선생에게 항의하는 것 같이 피의자는 그런 말을 하였다는데 계속 부인만 하는 겁니까?"
"부인하는 것이 아니고 그런 말을 한 사실이 전혀 없습니다."
(김00 학생) "제자가 선생님에 대하여 어떻게 감히 경찰서에 와서까지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강 선생님은 분명히 6.25는 남침이 아니고 북침이다고 말하였고 사진을 보여주면서 북한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잘살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불과 몇 시간 전 같은 교실에서 제 수업을 들었던 제자가 스승을 '간첩이라고 생각했다'라느니, '스승 앞에서 어떻게 거짓말을 하겠느냐?'며 제가 북침설 교육을 했다는 진술을 했습니다.
양손에 수갑을 찬 채 제자가 하는 말을 듣고 있어야 했던 저는 정말이지 가슴이 허물어졌습니다. 그렇게 저를 몰아붙였던 제자가 자신이 들었다는 그 수업 시간에 결석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서 얼마나 참담하고 허탈했는지 모릅니다.
이 조서 내용을 읽어보면 국가보안법이 얼마나 악마 같은 법인가를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한 교실에서 만난 스승과 제자가 경찰에서는 피의자와 참고인으로, 법정에서는 피고와 증인으로 맞서게 하는 반인륜적이고 반교육적인 악법이 국가보안법입니다.
반교육적이고 반인륜적인 국가폭력에 맞서
저에게 국가보안법이 어떤 법이냐고 묻는다면 두 단어로 이야기하겠습니다. 바로 '조작'과 '사냥'이라고 말입니다.
2007년 10월 국정원 과거사 진실규명위원회에서 발간한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이라는 보고서 내용 일부를 소개합니다. 보고서 369쪽 '전교조 조직탈퇴 및 와해 공작'이라는 항목에서 "1989년 당시 노태우 정권 안기부는 공안 차원에서 교직원노조를 내사하면서 전교조 결성을 전후로 본격화된 교사들의 국가보안법위반 구속을 통해 이른바 대국민 홍보심리전도 병행하였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국정원 보고서가 밝혔듯이 1989년 5월 24일 전교조 결성을 사흘 앞두고 발생한 '북침설 교육' 사건은 전교조 결성을 저지하기 위해 당시 안기부가 연출한 '조작극'입니다. 고향 경남 진주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충북에서 갓 교단에 선 초임 교사인 저는 안기부가 선택한 가장 적절한 '사냥감'이었습니다.
국가권력과 언론을 총동원한 국가폭력 앞에 저는 속절없이 '빨갱이 교사'이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빨갱이 교사'로 낙인찍힌 채 학교서 내쫓겨 감옥살이를 하고 10년이란 긴 세월을 학교 밖에서 떠돌아야 했지만 저는 교사이기에 결코 주저앉을 수 없었습니다.
제자의 입으로 스승을 간첩으로 내몰게 만든 반교육적이고 반인륜적인 국가폭력에 끝까지 맞서, 반드시 진실을 밝히고 말겠다는 다짐 하나로 모진 세월을 견뎌왔습니다.
국가보안법, 이제는 정말 없애야
▲ 청주지방법원 재심결정문
ⓒ 강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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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창립 30주년을 맞이한 2019년 5월 28일, 저는 청주지방법원에 재심 신청을 했습니다. 그리고 2019년 11월 28일, 재심 개시 결정문을 받고 2020년 1월 30일 재심 첫 공판을 시작하여 2021년 6월 10일 결심공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열여덟 여고생이 마흔여덟 중년이 되었지만 선생님을 교단에서 내몰았다는 죄책감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는 제자를 떠올리며 최후진술을 다듬고 있습니다.
"나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제자에게. 불행했던 시대의 아픈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 단 하나, 네 잘못이 아니란다. 선생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너를 미워하거나 원망한 적이 없단다..."
스물여덟 청년 교사가 정년을 앞둔 지금, 제 마지막 소망은 단 한 가지입니다. 스승과 제자를 갈라놓은 국가보안법, 이제는 정말 없애야 합니다. 진실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제 작은 용기와 실천이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디딤돌이 되기를 바라며, 국가보안법이 없어지는 그 날까지 저는 발걸음을 멈출 수 없습니다.
제자를 떠올리며 재심 최후진술을 다듬고 있습니다국가보안법에 찢긴 스승과 제자... 32년 전 '빨갱이'로 몰려 아직도 재판 중
21.05.15 11:24l최종 업데이트 21.05.15 11:24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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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20년 12월 8일 청주지방법원 앞에서 1인시위 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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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사랑과 존경, 그리고 감사와 은혜를 기억하는 날이 많은 달입니다. 올해도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 전국에 있는 학교에서는 스승의 날 행사를 하며 스승 존경, 제자 사랑 정신을 기렸을 것입니다.
저는 해마다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혼자 가슴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1999년 9월, 해직 10년 4개월 만에 다시 교단으로 돌아와 학생과 함께해온 저는 '사제지간'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가슴이 아렸습니다.
32년 전 초임 교사 시절, 사랑으로 가르치고 존경으로 배워야 할 스승과 제자가 국가보안법 법정에서 피고와 증인으로 맞섰던 아픈 상처가 되살아나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책장 깊숙히 묵어둔 서류철을 꺼내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32년 전 경찰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입니다. 1989년 5월 25일 새벽 1시경 제천경찰서 대공과 수사실에서 저와 대질신문하던 제자와의 답변이 적혀 있습니다.
스승과 제자를 피고와 증인으로 맞서게 한 악법
하루 전 오전 수업하던 교실에서 영문도 모른 채 경찰서로 끌려온 저에게 경찰은 간첩 혐의를 인정하라며 다그치고 있었습니다. 경찰서 대공과 수사실에 와서야 제가 교실에서 수업 시간에 '북침설 교육'을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가 그런 얘기를 하냐며 그런 교육을 한 적이 없다는 저에게 경찰은 학생들과 대질신문을 했습니다. 제가 수사관에게 6.25가 북침이라고 말한 사실이 없다고 하자 수사관이 학생에게 묻습니다. 다음은 당시 진술조서를 그대로 옮긴 내용입니다.
"지금 강 선생이 진술하는 것과 같이 강 선생은 6.25에 대하여 말한 사실이 없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이때 학생들은 강 선생에게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저희가 들은 대로 이야기하는데 선생님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만 하십니까"하고 이구동성으로 반문하다.
"지금 학생들이 선생에게 항의하는 것 같이 피의자는 그런 말을 하였다는데 계속 부인만 하는 겁니까?"
"부인하는 것이 아니고 그런 말을 한 사실이 전혀 없습니다."
(김00 학생) "제자가 선생님에 대하여 어떻게 감히 경찰서에 와서까지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강 선생님은 분명히 6.25는 남침이 아니고 북침이다고 말하였고 사진을 보여주면서 북한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잘살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불과 몇 시간 전 같은 교실에서 제 수업을 들었던 제자가 스승을 '간첩이라고 생각했다'라느니, '스승 앞에서 어떻게 거짓말을 하겠느냐?'며 제가 북침설 교육을 했다는 진술을 했습니다.
양손에 수갑을 찬 채 제자가 하는 말을 듣고 있어야 했던 저는 정말이지 가슴이 허물어졌습니다. 그렇게 저를 몰아붙였던 제자가 자신이 들었다는 그 수업 시간에 결석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서 얼마나 참담하고 허탈했는지 모릅니다.
이 조서 내용을 읽어보면 국가보안법이 얼마나 악마 같은 법인가를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한 교실에서 만난 스승과 제자가 경찰에서는 피의자와 참고인으로, 법정에서는 피고와 증인으로 맞서게 하는 반인륜적이고 반교육적인 악법이 국가보안법입니다.
반교육적이고 반인륜적인 국가폭력에 맞서
저에게 국가보안법이 어떤 법이냐고 묻는다면 두 단어로 이야기하겠습니다. 바로 '조작'과 '사냥'이라고 말입니다.
2007년 10월 국정원 과거사 진실규명위원회에서 발간한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이라는 보고서 내용 일부를 소개합니다. 보고서 369쪽 '전교조 조직탈퇴 및 와해 공작'이라는 항목에서 "1989년 당시 노태우 정권 안기부는 공안 차원에서 교직원노조를 내사하면서 전교조 결성을 전후로 본격화된 교사들의 국가보안법위반 구속을 통해 이른바 대국민 홍보심리전도 병행하였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국정원 보고서가 밝혔듯이 1989년 5월 24일 전교조 결성을 사흘 앞두고 발생한 '북침설 교육' 사건은 전교조 결성을 저지하기 위해 당시 안기부가 연출한 '조작극'입니다. 고향 경남 진주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충북에서 갓 교단에 선 초임 교사인 저는 안기부가 선택한 가장 적절한 '사냥감'이었습니다.
국가권력과 언론을 총동원한 국가폭력 앞에 저는 속절없이 '빨갱이 교사'이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빨갱이 교사'로 낙인찍힌 채 학교서 내쫓겨 감옥살이를 하고 10년이란 긴 세월을 학교 밖에서 떠돌아야 했지만 저는 교사이기에 결코 주저앉을 수 없었습니다.
제자의 입으로 스승을 간첩으로 내몰게 만든 반교육적이고 반인륜적인 국가폭력에 끝까지 맞서, 반드시 진실을 밝히고 말겠다는 다짐 하나로 모진 세월을 견뎌왔습니다.
국가보안법, 이제는 정말 없애야
▲ 청주지방법원 재심결정문
ⓒ 강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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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창립 30주년을 맞이한 2019년 5월 28일, 저는 청주지방법원에 재심 신청을 했습니다. 그리고 2019년 11월 28일, 재심 개시 결정문을 받고 2020년 1월 30일 재심 첫 공판을 시작하여 2021년 6월 10일 결심공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열여덟 여고생이 마흔여덟 중년이 되었지만 선생님을 교단에서 내몰았다는 죄책감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는 제자를 떠올리며 최후진술을 다듬고 있습니다.
"나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제자에게. 불행했던 시대의 아픈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 단 하나, 네 잘못이 아니란다. 선생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너를 미워하거나 원망한 적이 없단다..."
스물여덟 청년 교사가 정년을 앞둔 지금, 제 마지막 소망은 단 한 가지입니다. 스승과 제자를 갈라놓은 국가보안법, 이제는 정말 없애야 합니다. 진실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제 작은 용기와 실천이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디딤돌이 되기를 바라며, 국가보안법이 없어지는 그 날까지 저는 발걸음을 멈출 수 없습니다.
▲ 진실을 밝히기 위한 30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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