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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정치와 한일[세계의 눈/오코노기 마사오]
입력2021.12.08. 동아일보
원본보기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오른쪽)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018년 11월 프랑스 콩피에뉴에서 열린 제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행사에서 서로의 손을 붙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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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의 세계대전에서 서로 적국으로 싸웠던 양국은 군사, 경제 연합체에 함께 가입해 공통의 정체성을 만들면서 화해할 수 있었다.
- 파리=AP 뉴시스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명예교수일한(한일) - 역사 마찰을 이해하기 위해 최근 아이덴티티(정체성)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내셔널 아이덴티티란 언어, 문화, 종교, 역사 등에 근거하는 민족적인 자기 인식이다. 역사 마찰이란 그런 아이덴티티의 충돌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개인이든 민족이든 아이덴티티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외부로부터의 자기파악’이며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거쳐 형성되고 타인으로부터 승인을 얻어 안정화된다. 다시 말해 아이덴티티는 언제나 ‘승인 욕구’를 수반한다.
따라서 미국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말처럼 ‘아이덴티티 정치’는 욕망이나 이지(理知)의 정치가 아니다. 그것은 ‘존엄의 정치’이고, 승인되지 않을 경우 ‘분노의 정치’로 바뀐다. 더구나 영국 사회학자 앤서니 스미스가 지적했듯이 내셔널 아이덴티티의 확립은 그 자체가 내셔널리즘 운동의 중심적인 목표이므로 아이덴티티 충돌은 내셔널리즘 충돌과 거의 같은 뜻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일본인과 한국인은 정말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기 위해 다투어 왔을까. 그보다는 자신의 민족적 ‘존엄’을 지키려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는 일한역사공동연구의 아이디어를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에게 진언하고, 제1차 역사공동연구위원회에서 일본 측 간사를 지낸 사람으로서의 감개(感慨)다.
반세기 전의 일이지만 저명한 국제정치학자인 케네스 볼딩이 국가는 역사가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적국이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프랑스는 독일이 만들어낸 것이고 독일은 프랑스가 창조한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아이덴티티가 적대자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은 다소 극단적인 지적일 수 있지만 부분적으로는 일본과 한국에도 들어맞을 것이다.
아이덴티티 정치의 관점에서 보면 근대 일한 관계사의 최대 화근은 일러전쟁 후 일본이 제정러시아의 권익(요동반도 끝 관동주와 남만주 철도)을 획득해 한국을 ‘병합’한 것이다. ‘보호’ 정치에는 아이덴티티 존중의 뉘앙스가 있지만 ‘병합’ 정치가 목표로 하는 것은 영토 확대이자 아이덴티티 박탈이다. 민족사학자 이기백이 지적했듯이 한국인의 근대 내셔널리즘은 ‘저항 민족주의’가 됐다.
결과론적으로 메이지 일본의 대외 정책으로 영국 모델인 대륙 불개입 정책과 강력한 해군 건설이 바람직했다. 비록 한국이 러시아의 식민지가 되더라도 일본은 한국의 독립운동을 뒤에서 지원하면 됐다. 그렇게 하면 그 후의 역사는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일본은 일중전쟁과 태평양전쟁이라는 최대의 비극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국의 대륙 불개입 정책은 대륙과의 관계에 고심한 영국이 수백 년에 걸쳐 배운 지혜다. 페리함대의 내항 이후에도 일본은 아직 아이덴티티를 통합하지 못했다. 메이지 정부는 그것을 보신전쟁과 세이난전쟁이라는 두 개의 내전으로 극복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은 군사력에 의존해 일청전쟁과 일러전쟁을 수행하면서 한국병합으로 치닫고 말았다.
영국과 프랑스는 시민혁명을 통해, 미국은 독립전쟁을 통해 근대적 아이덴티티를 통합하는 데 성공했다. 그보다 많이 늦었지만 러시아와 중국도 각각 혁명과 내전을 거치면서 민족적 통합을 이뤄냈다. 위정척사, 개화, 동학으로 분열돼 있던 한국인의 아이덴티티도 내전 없이 통합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의 불행은 일본 지배에서 해방된 뒤에도 미소 냉전으로 국토와 아이덴티티의 분단이 지속된 것이다.
다만 일한 관계의 미래에 대해서는 두 개의 세계대전을 적국으로 싸운 프랑스와 독일이 함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및 유럽경제공동체(EEC)의 일원이 돼 공통의 아이덴티티를 만든 점에서 교훈을 찾을 수 있다. 일한이 같은 집단 안전보장기구의 일원이 되는 것은 현재로서는 생각하기 어렵다. 하지만 프랑스와 독일처럼 차이점보다 공통의 아이덴티티를 찾아야 한다.
확대하는 미중 갈등의 틈바구니에서 일한은 각각 미국의 동맹국이고, 기본적인 가치, 즉 민주주의, 시장경제, 그리고 자유와 인권의 존중을 공유하고 있다. 물론 한국은 일본 이상으로 중국과의 경제관계에 의존하지만 일본도 대동소이하다. 중국에 대해서는 억지(抑止)와 외교를 균형 있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 그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일한은 공통의 전략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게 공통의 아이덴티티를 키울 것이다.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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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전제는 입만 아프고 첨단 산업 공급망 회복이 신뢰감을 쌓을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돌아가는 꼬라지가 대만이랑 놀거 같은데.....
2021.12.08.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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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비공감공감0비공감0- hido****댓글모음옵션 열기
독일이 반성하는 모습이 보기 좋기도 하지만 유태인이 사과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돈과 지식을 바탕으로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힘을 기른다면 일본이 자기들이 아쉬워서라도 독일처럼 사과를 하게 될 것이다. 최근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높고,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반일 감정보다는 반중 정서가 더 높다. 과거의 원한보다 바로 지금 눈 앞에 닥친 위험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중국의 패악질과 북한의 핵 위협임을 깨달았으면 한다.
2021.12.08.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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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c****댓글모음옵션 열기
일본과 공동 아이덴티티를 가져가려면 중국과 북한 둘다등진체 가능함을 일교수는 잘알것.정치군사적동맹 통해 한반도 긴장 유지하며 함께 가자는건데 과연 한국 위한걸까 일본정부 이기적 발상아닐까 글쓴 일교수 독일프랑스관계 예로드니 그관계란 독일이 과거역사 대한 무한반성 사과전제되어 가능함 아는지.지정학적 군사적 동맹하려면 교육통한 일국민의 제대로된 역사인식과 경제문화관광 통한 민간교류부터 열고 다지길.정치외교관계 세월갈수록 멀어지고 양국정부간 입장평행해도 국민간 교류 더 활발하면 발전할수.일본 아니면 어차피 러 속국되었을거란 뉘앙스 웃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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